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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룡현아
2012년5월2일 01시50분    조회:2948    추천:4    작성자: 바위
     사람마다 아름다운 추억들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되새기면서 인생을 즐기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좌절속에서도 그런 추억들은 아마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여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날 계기도 마련할수 있을터니까. 생활의 어려움속에서 이런 경우는 더욱 쉽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어쩐지 나에게는 아름다운 추억보다 힘들었던 나날들 그리고 아쉬운 추억들이 언제나 가슴깊이 갈마들때가 많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이질적인 성미에서 기인된 남다른 사고방식에서인지 어쨌든 나름대로의 추억과 추억에 대한 정리 그리고 추억에서 얻는 힘과 아픔이 언제나 따로 있다. 지난 인생들을 정리해보면 생존의 기본을 위해 싸워온 힘든 인생이였으나 나름대로 사계절의 향기를 골고루 맡으면서 살아온 보람도 있는 인생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종종 지난 세월의 즐거움에 온몸을 묻혀버리다가도 추억속에서 힘든 세월의 흔적을 찾아 헤매일때도 적지 않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나의 아리숭한 추억속에서 멀어지던 한 소학교 동창의 얼굴이 동영상으로  나를 향해 점점 큰 모습으로 다가 옴을 직감할수 있었다.
    세월이 보약이라고 수십년 세월이 흐르면서 추억속에서 자취를 감추어가던 그 이름이 요즘 봄날의 정취에 빠져 있는 아련한 나의 마음을 완전히 정복한채 꿈자리마저 부산하게 만들고 있다. 너무도 또렷이 안겨오는 그 주인공은 바로 룡현이였다.
    룡현, 그는 불행의 세월에 불행의 병인 소아마비증으로 두다리를 절면서 아주 불편한 몸으로 자신과의 전쟁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던 불행아였다. 쌍지팽이를 짚고 학교를 오가는 그는 남들의 배려와 관심을 받아야 할 대상임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룡현이는 사건발생의 주역으로 자주 등장하면서 그 시대의 《로선분석》의 대상으로 될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문화대혁명시기라 행사가 유별나게 많던 그 시절에 언제나 불편한 몸이여서 룡현이는 종종 홀로 남아 교실을 지킬때가 많았다. 장애로 남들 처럼 뛰놀지 못하고 집단행사에 참여할수 없는 불행을 안고 있던 그에게 인위적인 불행 그것도 사실 아닌 황언의 불행을 뒤집어 써야 하였으니 이보다 처참한 불행이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소학교4학년 다닐때 일이다. 일찍 아버지를 잃은 우리가족은 생존의 최하층에서 근근득식하였지만 그래도 갖은 난관과 애로도 용케 이기며 흩어지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고 영리하여 남들의 칭찬을 독차지하던 나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고 집에서 그래도 좋다는 학용품은 내가 독차지하고 쓰다싶이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형에게 누군가가 큰 선물로 금색원주필을 주었는데 지금은 흔한 물건이겠지만 그때는 너무도 고급스럽고 사치해 보였고 보는 이마다 탐욕이 날 정도였다. 어린나이에 새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는 애걸복걸 다해가며 끝내 형에게서 하루만 빌리기로 약속하고 나의 필통에 원주필을 살며시 넣고는 학교로 향했다.
    궁색한 우리 살림에 원주필은 나에게 있어서 큰 자랑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금색이라 보는 학우마다 절찬하면서 이손저손으로 공중에서 춤을 추며 돌면서 좋은 구경거리가 되였다. 야단법석들인 학우들을 보며 나는 신난 기분에 푹 빠진 채 이전에 있어본적 없는 만족감과 자부심에 젖어 들었다. 그러던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서 책가방정리를 하고 집으로 가려던 중 원주필이 깜쪽같이 사라진것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부러운김에 채가기나 한것이 아닐까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기분이었다. 구석구석 샅샅이 뒤지며 찾았지만 필은 얼굴을 내밀지 않았고 나의 속은 바삭바삭 타들어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온반 학생들이 달려들어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감감하였다. 약삭 빠른 사람은 벌써 선생님한테 일러바쳐 다른 때와 달리 파장이 큰 이번 사건에 선생님도 그저 넘길 태세가 아니였다. 집도 못가고 모두들 제 자리에 앉은채 사건 파악에 응할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룡현에게로 혐의가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이튿날까지 연장된 탐문은 끝내 룡현이가 원주필이 탐나 어딘가에 묻어 숨겼다는 《사실적》결론으로 점 찍어졌다. 그러나 어느 땅속에 뭍혀 있는지 찾을 길 없었고 나의 마음은 분노로 이어져 부글부글 하였다. 모두들 원주필 그림자도 찾지 못한채 룡현이를 단단히 교육하기로 하고 일단 매듭을 지었다. 룡현이는 검토서를 쓰고 전반 학생앞에서 반성을 하고 집단교육을 받느라 불편한 몸으로 오죽 고생하였으리라. 그래도 나는 나대로 형한테 한바탕 혼나고 형의 집안당번 일을 한주일간 내가 도맡는것으로 형의 용서를 받아내였다. 그후에도 계속하여 이어지는 룡현에 대한 모두의 시선은 멸시와 함께 차갑기만 하였고 룡현이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일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제당번으로 위생청결을 하면서 원주필사건이 백일하에 들어나게 될 줄이야. 원래 우리가 공부하던 교실은 일제시기의 건물로 바닥은 마루로 되여있었는데 세월의 흐름 타고 깔끔한 일본새로 다듬어진 일본식 마루도 인젠 여기저기가 삐거덕 거리기 시작하면서 널판자사이로 틈이 많이 생기고 있었다. 쓰레기가 끼여 널판자를 들고 들여다 보던 나의 시선에 삽시에 그렇게 말썽 일으키던 원주필이 안겨드는것이 아니겠는가. 원주필을 잃어버릴때가 의외의 타격이라면 원주필을 되찾은 그때 심정은 의외의 환희나 다름 없었다. 나는 홀로 보물을 얻은 기분에 들뜬채 원주필을 호호 닦고 또 닦고는 필통에 넣은채 계속 일을 시작하였다. 그때 주위에 사람이 없은것이 어찌보면 오늘까지 나에게 깊은 유감을 남긴 원인이 되였는지 모른다. 당시 흥분으로 퐁퐁 뛰였어야 할 나의 성미에 이상하게도 그렇게 침착성을 보였는지 나 스스로가 의문스럽다. 아마 빨리 소제하고 집에 돌아가 형한테 돌려주고픈 심정이였으리라.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형에게 원주필을 내보이며 찾았다고 춤 절반 보채자 원체 말수 적은 형은 그저 받아챙기고는 아무일도 없은듯이 그래도 일요일까지 내가 해야 할 집안당번일은 계속 유효라고만 어름장을 놓았다. 더욱 난감한것은 이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원래 순진하고 착한 나로서는 선생님께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번 사건의 충격이 큰 데다가 사실상 마무리를 지은 상태라 어린 나로서 어떻게 해야 할 방도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조용한 성미의 형이 주변 사람들한테 인심을 잃을 필요없이 그저 덮고 지나라고 타이르자 그것이 묘방인것 같아 입을 다물고 오늘까지 지나왔다. 그러나 그후부터 룡현이를 마주하는 나는 오래동안 부담스러웠고 룡현이를 향한 나의 시선은 말못할 사연으로 언제나 자책감과 불안이 력력하였다. 그저 룡현이가 왜서 그런 억울함을 당하고도 받아들여야 하였는지 지금까지 궁금할 뿐이다. 당시 인격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운동의 위력이 룡현이의 존엄을 산산히 부셔놓아서일까 아니면 지루한 탐문으로 궁색에 몰린채 당당히 대응하는 신심과 용기 그리고 정력이 모자라여서 일까. 지금 생각하여보면 그때 세월에는 그저 그럴수 밖에 없었겠지 라고 받아드릴수 밖에 없다.
    요즘 들어 교단에 나선채 학생들에게 인간성을 가르치면서 착한 학생으로 되라고 설교할때마다 종종 룡현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왜서 그때 당당하게 사실을 밝히지를 못했던가. 어렵게 매듭을 진 “사건진상”이고 또 그 사건들을 탐문하느라 고생한 사람들의 로고때문이라면 없는 사실앞에서 굴복한 장애인 룡현이의 가슴속에 뭍힌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까. 그땐 우리 모두가 어린나이이기에 받은 상처가 쉽게 세월의 보약으로 치유되겠지만은 사실은 영원한 진리로서 사실 그대로를 밝히고 량해를 구하고 구겨진 추억을 털고 일어나는 것이 인간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을 부르짖는 오늘의 사회에서 미래를 지향하며 인간의 량심을 내걸고 한번 반성해 보자. 룡현이도 부모에게는 왕자일것이고 부모의 목숨보다 귀중한 존재이니까.
    룡현아, 늦더라도 너에게 무릎꿇고 사죄하고 싶다. 수십년이나 좀도적의 모자를 쓰고 살아온 장애자 룡현에게 당당하지 못한 옛날의 내가 당당했어야 할 인간 너에게 사죄한다. 룡현아 미안하다. 지난 세월 얼마나 힘들었냐. 성한 몸으로도 살아가기 힘든 요즘 세월 장애인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니? 너의 상황 궁금하고 알고 싶고 보고 싶고 너에게 사죄하고 싶다. 인제라도 꼭 한번 너를 찾아가 마음의 창문을 열고 참회의 술잔을 들고 깨끗한 동년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
    룡현아, 앞으로 봄날같이 화사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살아가거라. 여름의 폭양처럼 들끓는 인생을 체험하면서 살아가거라. 가을의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인생을 수놓으면서 살아가거라. 겨울의 눈송이처럼 깨끗한 인생을 살아가거라.
    진심이다. 룡현아 만날 그날을 꼭 기다려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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