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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문제
2014년12월19일 05시19분    조회:2286    추천:2    작성자: 리태근
집터문제

리태근

 
   아버지는 나에게 초가삼간 한채 마련해주는게 평생소원이였다. 생산대에서 집터를 나눌때마다 제일 좋은 집터를 차지했건만 해마다 흉년이라 손에 쥔게 없어서 벼른도끼만 무디였다. 벌써 몇해째 집터를 닦았는지 모른다. 금년에는 좀 낫겠지 하고 소불알 떨어지길 기다려 칼도마에 소금알 갖춰놓고 기다리면 난데없는 홍수가 터져서 농사를 망쳤다. 올망졸망한 돌멩이로 기초를 쌓아놓은 집터에 앉아서 한숨짖던 아버지가 눈에 선하다. 시골사람들은 농사를 망치면 애매한 산짐승과 화풀이 한다. 아버지는 해마다 이불속에 녹이 쓴 올무(옹노)를 감춰 가지고 고동하산속으로 산수부업 떠난다. 농사는 하느님께 맡겼으니 어쩔수 없지만 짐승잡이는 운수놀음이였다. 산야에 널린  여러가지 동물의 발자국만 보아도 짐승의 크기와 몸무게, 암,수를 정확하게 판단했다. 모두들 아버 지를 《산귀신》이라고 불렀다.
 
    농사가 흉년들면 산짐승이 풍년이라는데 흔해 빠졌던 짐승들이 미국놈의 쌕쌔기 소리에 놀라서 한반도로 도망갔는가 한마리도 못잡았다. 《혹떼려 갔다가 혹 달고 온다》더니 산판에서 모진 리질을 만났다. 약담배까지 복용했지만 멈추기는 고사하고  날마다 몰라보게 축해갔다. 아버 지는 무서운 골병이 들었다는것을 짐작했는지 날 보고 골안에 마련해놓은 집재료를 실어 들이란다. 생전에 내 집을 져주고 가겠다고 벼른것 같다. 아버지는 짬짬이 서쪽골 막치기에 봇나무대들보와 피나무서까래를 껍질까지 말끔하게 벗겨 놓았다. 나는 악을 쓰고  집재료를  실어다가 마당에 무져놓았다. 벌써 네귀번듯한 팔간집이 들어앉은 기분이였다.
 
     아버지는 한평생 비바람 눈보라를 가리지 않고 선톱질하였다. 아츨한 톱틀에 올라서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아름드리 통나무를 켜서 숱한 집재료를 만들었다.소학교, 병원, 향정부를 덩실하게 지어놓고 왜서 토끼굴같은 땅막집신세를 면치 못했을가? 해마다 야무진 꿈을 꾸었건만 오막살이 한채도 짓지 못한게 원인이 있었다. 집을 지을만하니깐 마누라가 몹쓸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단다. 중년에 상처한 아버지는 날개 부러진 기러기신세가 되여 꿈을 접어야 했다. 쥐구멍에도 해빛이 들날이 있다고 어리무던한 어머님을 만나서 또다시 희망을 품고 열심히 톱질하였다. 늙으막에 복이 쌍으로 날아들었다. 생각밖에 삼대독자 아들을 얻어보고 또다시 신심이 생겨서 해마다 집터를 닦아 놓았다. 
 
    아버지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면서도 날마다 정주문을 열어 놓으란다,. 정신이 들때면 앞마당에 무져놓은 집재료를 바라보며 베개잇을 적시였다. 내 집을 지어주지 못하고 떠나는게 한이 맺혔는가, 끝내 눈을 감지 못하고 운명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집재료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아무때든지 꼭 내 손으로 덩실한 기와집을 지어놓고 아버지의 제사상을 차린다고 맹세하였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내집을 마련한다는게 《하늘에 별따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간부가 되면 벽돌집은 《떼놓은 당상》 이라고 믿었는데 아들 둘씩이나 낳아도 세집신세를 면치 못했다. 남들은 《연길 사람》으로 출세하면 집문제가 저절로 풀린다는데 아직도 급이 낮아서인가? 살아갈수록 심산이였다. 건설공지에 버려진 판자집을 만나면 내집인양 들어 앉아서 새집을 꾸미는 기쁨을 상상해 보았다. 네온등이 빛발치는 연길의 밤거리를 걸을 때면 저 많은 층집속에 내 집이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옥상의 비둘기굴이라도 좋으니 내 집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식구 야섯이 비좁은 단칸방에 가로세로 누워서 잠꼬대를 할 때면 아버지가 남겨둔 집재료가 생각났다. 사원들이 집재료를 싣고 가라던 충고를 듣지 않은 게 후회되였다. 겨울마다 연탄가스 먹고 병원놀음하는 식구들을 바라 볼 때면 또다시 고향의 집터가 생각났다. 밤이면 기치굴같은 단 칸방 중간에 백학이 나래치는 벽보막을 내걸었다. 오랜만에 마누라와 운우지정을 나눌가 하면 오줌이 마렵다고 막을 열어 젖히는 아들놈이 얼마나 괘씸하던지? 새벽에 또다시  마누라를 더듬는데 어머니가 목이 마르다고 막을 열어 젖힌다...어둠속에서 베개안고 흐느끼는 마누라를 바라 볼 때면 생과부를 만든 죄책감에  마누라와 눈을  마주치는게 무서웠다. . 하수도 없는 세집에서 살아온게 습관이 되여서 친구집에 놀려 갔다가도 문앞에 구정물 바께쯔를 발견하면  던져 버린다. 괜히 돈 받는 구정물을 던졌다고 창피를 당한 일이 몇번인지 모른다.
 
연길에 온지 십삼년만에 내집이라고 차례졌다. 그런데 아직 관직이 낮아서인가? 6층 꼭대기에에서 살란다. 돈이 없고 급이 없는사람은 하늘꼭대기에서 살아가는 게 정해진 관례인가? 한평생 《골뱅이 집》 신세를 면치못하던 《촌놈》에게 백두산 꼭대기면 어떠냐? 날마다 6층집 란간에서 도시를 바라 보노라면 하늘아래 별천지라 온 천하를 몽땅 차지한 기분이다. 남들은 층집을 《개똥》처럼 나무리지만 나는 층집이 좋다! 이사 온 첫날밤에 새 집에 부모님의 유상을 모시고 새집들이 히였다. 인제야 남편구실을 시작하게 되였다. 실컷 취해서 첫날밤을 즐기려는데 욕심 뿐이지 생각대로 안된다. 한평생 세집에서 견우직녀로 살아온게 완전히 시들어 버렸는가? 벌써 처마밑에 녹아내리는 고드름이 될줄은 누가 알았으랴...
 
    아!  오매불망 그리던 내 집이 차레졌는데 왜서 눈물이  납니까?
 
 2012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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