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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술병
2015년6월25일 03시46분    조회:2202    추천:1    작성자: 리태근
인삼술병
 
리 태 근
 
 
      세상이 정말 좋아졌단다.  호화로운 술집으로 드나드는 게  술맛에 끌려서 찾아가는 이유도있겠지만 그보다 아버지가 생전에 만져못본 유명한 모태주와 프랑스, 이딸리아, 빠리의 양주, 포도주 등 유구한 명표 술을 기끈 마셔보자고  찾아다닌다. 불쌍한 아버지와 고향의 선배님들의 생전에 만져도못본  세상의 모든 술을 기끈 마시고싶은 심정이다.
 
      아버지는 한평생 술과 목숨걸고 살아왔 다. 술 이라면 오금을 못쓰고 술 썰썰이가 올라온다 하면 당장 아침쌀까지 들고 나가서는 <술 미치광이>였다. 외상술 이라면 범코등의 돈도 따다가 마셨고 술 때문에  쓸만한 가장집물은 몽땅 저당잡혔다. 술 때문에 귀떨어진 공책에다 동네 나그내들의 생일을 몽땅 적어놓고 손꼽아 기다린다. 톱질쟁이 <리태백>이라면 온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술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아버지에게도 술 마시는 원칙이 있었다.  아버지는 죽어도 혼자서  집에 서 <도적술>을 마시는 버릇이 없었다. 늘쌍 톱질짝 인  절름발이 도령감이 아니면 혹뿔령감 그리고  때도 시걱도 없이 찾아드는 심목수와 쑈펄집(구멍가게) 령감을 데려다가 술을 훌훌 불면서 맛있게 마시였다. 그렇게 험악한 세월에 술안주 타발을 하지않는게 천만다행이였 다. 죽어날게  순두부였다. 주정뱅이 아버지를 만나 서  어머니는 열두폭 치마를 몇개 썩였는지 모른다. 온종일 칼바람 쌩쌩 불어치는 탈곡장에 나앉아 발을 동동구르며 콩깍대를 들추던 어머니를 방불히 보는 것같다.  한나절 들춰도 콩짜개를 한줌도 얻기 어려운 세월이 였지만 어머니는 괘씸한 동네령감들에게 게으 르다는 평판을 받지않으려고   밑천을 끊지않고 이 어 댔다. 그래서 <매돌로친, 두부집 아매>라고 소문났는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아버지가 주정뱅이들을 자주 끌여들인것은 은근히 마누라를 자랑을 하느라고 그랬 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어머님은 처음에 만난 천상배필이 아니 였다. 두분은  마흔에 상처한 다리 불러진 노루라고 할가?  한집식구가 되였다는게 기적이였다. 얼마니 살기 힘들었으면 젖먹이 딸을 둘이나 달린 주정뱅이 아버지를 선택했을가? 아버지와 어머님은 사랑을 위해서 만난게 아니라 살기위해 만났다. 가제도 게편이라고  아 버지는  어리딸을  코빠는 이붓아들 둘씩이나 달린 어머 님을 모셨을가?  지금 생각해도 억이 막혀서 말이 나가 지 않는다. 삼대독자인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나를 낳아준 어머님은 하늘이 내려보낸 천사였을 것이다.
 
     아! 주정뱅이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세상을 구경할수 있었을가? 그래서 리태백의 아들  톱질 쟁이 아들이라는 별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는지도 모릅 니다.
 
   그 세월에 술이란 몽땅 한등급이다. 쑈펄집에 가보면 큰 독에다 채워놓고 한근들이, 반근들이, 한냥짜리 주걱으로 떠주었다. 술을 금싸락처럼 여기는 술군들 은  쑈펄령감의 술주걱을 가시돋힌 눈길로 주시했다. 기름은 늦게 뜨고 술을 빨리 뜨라고 했는데 장사군이 제 애비를 숙인다고  쑈펄령감은 사람을 골라가며 속도를 조절하는것 같았다. 그래서 주정뱅이들은  눈금이 밝혀 져있는 포도탕병(링게르 주사병)을  얻어다가 술병을 만들었다. 포도탕병은 눈금이 뚜렷해서 만져만  보아도 술량을 정확하게 맞출수 있었다. 그리고 누가 얼마나 마셨는지 주정뱅이 마음을 속속들이  빤히 들여다 보 았다. 집집마다  닝게르술병을 얻지못해 애간장을 태웠 다. 아버지의 술병은 남달리 삼년묵은 인삼뿌리가  있 어서 특별히 아끼였다.
 
  아버지는 한평생 선톱질 하면서 수많은 가옥을 졌다고 자랑하는데 왜서 한평생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햇 을가?   비좁은 단칸방에는 술친구들이 넘쳐났다. 바빠 난건 나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두부콩을 삶느라고 복새판을 벌리면 나는 슬그머니 술병을 들고  8리나되는 와룡으로 술심부럼 가야했다.범이 담배를 피웠다는  범 바위 공동묘지를   혼자서  걷는다는게 차라리 죽기보다 못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바지에다 오줌을 쌌을 가? 개똥불이 눈앞에서 반짝일때면 물귀신이 따라오는것 같아서 돌멩이를 꽉쥔 손이 마구 떨리였다. 제딴에는 위풍을 살리느라고  공동묘지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그러다가도 굽인돌이를  벗어나기 바뿌게  다리야 날 살려라  정신없이 뛴다.
  
   인삼술병 때문에 나는 아버지에게 한평생 값지못할 마음의 빚을졌다. 그날도 저녁노울이 서산에서 줄뛰기를 하는데 늦은저녁 술심부름을 떠났다. 고추가루 팔려고 떠나면 바람이 분다더니 때마침 쑈풀집 령감이 없 어서  밤 늦게야 귀로에 올랐다. 혹시나 왕지평으로 가는 길손이 있나 해서 동구밖에서 한나절이나 기다렸지만 사람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다. 사내대장부가 굽인돌이 때문에 집으로 못가다니?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뒤축이 물러앉은 아버지 왕바신(그때는 솜신을 왕바신이라고 불렀다. 왕바란 자라를 말한다.)을 질질 끌면서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그날따라 개똥불이 어찌나 많은지 온몸에 귀신이 매달리는것만 같아서 굽인돌이를 벗어나자  줄달 음치기 시작했다. 빨리 뛸수록 귀신은 나를 앞질 러  따라왔다.  잠간새에 집까지 뛰여왔다. 아! 살 았구 나. 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귀신은 간곳없고 내가 끌고있는 왕바신소리가 귀신의 발자국 소리로 둔갑한게 아닌가. 온몸이 땀벌창이 되였다. 너무 흥분한 김에 철뚝 을 훌쩍 뛰여넘다가 폴싹 넘어졌는데 아불싸!  술병 이 박산났다.
        
  귀신에게 쫒기우면서도 놓지 않았던 인삼술병을 집문 앞에서 박산냈다. 술은 다시 떠오면 되지만 인삼술병은 어디가서 얻는단 말인가? 내가 문밖에서 오도가도 못하는데 아래집 미자아버지가 나를 알아보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였다. 옷섶이 질벅하게 젖은 꼴을보고 두말없이 궤짝에다 감춰두었던   반근도 안되 는  술병을  안겨주며 아버지에게 드리란다. 내가 술병을 들고 서성거리자 내 눈치를 알고서 술병에다 물을타서 한근들이로 만들었다. 그래도 애매한 술병을 만지며 서성거리자  그제야 알겠다고 언제 불궜는지 소라지같은 도라지뿌리를 술병에 넎어주는 것이였다. 그제야 나 는 시름놓고   술병을 아버지에게 바쳤다. 그러지 않아도 한밤중에 8리나되는 인적없는 산길에 내보낸게 은근히 근심되여 벌써 두 세번이나 들락날락했다는 아버지는 두말없이 술병을 들고 손님들에게 기꺼히  권해다.
 
    “아니 그런데  무슨 술맛이 왜 이모양이야” "고양이 오줌맛이구만? 싱겁기 짝이없는능께" 술군은 술을 감식하는 귀신들이다. 술군들이 뭐라고 자꾸 물어보는데 아버지는 여느날과 달리 카!ㅡ 하는 술의 독특한 카발소 리를 길게 빼더니 엉뚱하게 인삼술병은 쏘펄집령감이 욕심내서 막 바꿨다고 둘러대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묵은 술이래서 그런가? 왜서 이렇게 독한가?  짐짖 취했다고 물에 빠진 오리처럼 온몸을 떨면서 입을 쩝쩝 다신 다.  여느때 같으면 강술만 마시던 아버지가 오늘따라 순두부를 빨리 올리라고 재촉하는 것이였다. 나는 정지 칸에서 이 모든것을 똑똑히 보았다. 주정뱅이 아버지도 맨물에 취할때가 있구나 아! 언젠가 진짜 인삼을 캐서 독에다 불궈놓고 기끈 대접하리라.  맹세하였다.... 그 런데 그게 어째서 생각대로 되지않았는지. 아버지 생 전에  끝내  인삼술 한냥도 대접못하고 말았다...
 
    세월이 갈수록 물에 탄 인삼술을 그렇게 맛있다고 입을 쩝접 다시며 마시던 주름덮인 아버지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아버지 산소에 갈때면 비싼 양주를  올리고 인삼을 통채로 파묻으며  죄송한 마음을 달래보지만 아버지가 웃는지 우는지 알길이 묘연하다…
2009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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