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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시백님 가시는 길에
2018년11월14일 07시23분    조회:612    추천:0    작성자: 김동진
 추모글
시백님 가시는 길에
                                  김동진
 
먼 곳에서 전해오는 비보는 언제 보아도 뜻밖의 비통한 소식이다. 그래서 청천벽력에 비유하거나 태풍이 폭우를 몰아온다고 한다. 이번에 리상각 시백님이 작고하셨다는 소식도 그러하였다.
8월 18일 아침 6시경, 평시의 습관대로 스마트폰을 열고 위쳇을 돌아보는데 내두산작가촌 김춘택 촌장이 올린 메시지가 있었다.
“2018년 8월 17일 21시 45분, 원로시인 리상각시인이 청도에서 작고”라는 슬픈 내용의 소식이였다.
아니, 얼마 전에도 텔레비죤 앞에서 딴스를 추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리고 그 동영상을 나의 서류함에 저장해놓았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그 안타까운 글자를 한자씩 다시 확인하는 순간, 나의 눈 앞에는 나의 마음 속에 각인된 고인의 생전의 인자하신 모습과 마지막으로 찾아가보았던 그날의 만남이 하나의 생생한 화면으로 떠올랐다.
재작년(2016년) 여름이였다. 연변시인협회의 현지창작모임이 있어 연길에 갔었는데 김응준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리상각선생이 엘리 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고 그런데 거동이 전보다 더 못하다고 하시는 것이였다.
활동이 끝나 돌아오는 날, 김영능, 최기자와 나는 집을 안다는 김철학 이를 앞세우고 선생님댁으로 병문안을 갔었다. 그날 선생님은 병환에 계시면서도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그날 우리는 받지 않겠다고 뒤걸음치는 선생님의 손에 우리의 작은 마음을 억지로 떠맡기였다. 선생님 은 1층 문어구에서 나의 손을 꼭 잡고 “고맙소”를 반복하시였다. 우리가 돌아올 때 선생님은 불편한 몸으로 큰길까지 나와서 차를 타고 떠나는 우리를 손저어 바래주시였다.
왜소한 체구, 창백한 안색, 다듬지 않아 헝클어진 하얀 머리, 불편하신 걸음걸이 이것이 내가 본 그 날의 리상각선생님의 모습이였다. 이 모습이 이제 와서 내가 본 리상각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으로 된 것이다.
그후 들려온 소식은 청도에 있는 딸이 선생님을 모셔갔다고 하였다.
돌이켜보면 나도 리상각선생님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수많은 후배들 중의 한 사람이다.
황장석선생이 생전에(1997년 5월 2일) 훈춘에 왔을 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79년 년말의 어느날, 리주필이 내 사무실로 건너와 ‘장석동무 좋은 글이 올라왔다니까. 이 원고를 한번 보오.’ 하기에 하던 일을 밀어놓고 그 원고부터 보았다니까. 문혁이 쓴 서정서사시 <거리의 울음소리>였소. 단숨에 끝까지 읽었는데 속이 찡해 나더구만. 내가 아주 좋다고 채용하겠 다고 하니 리주필이 즉석에서 동의하였소. 이렇게 이 시가 이듬 해 2월에 잡지에 실리고 민의조사와 평심을 거쳐 그 해에 처음 설치한 제1회 <<연변문예>>문학상 수상작이 된 거라오.”
뜻인즉 내가 수상자로 된 데는 시편집인 황선생의 수고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리상각 주필님이 나의 작품에 관건적인 찬성표를 놓았기에 그런 결과를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옳은 말이였다. 아무리 시편집이 좋다고 해도 주필이 반대한다면 그 작품은 ‘사형선고’를 받아야 하니까…
그 덕을 입어 나는 하늘의 별따기로 생각하던 연변작가협회 회원이 되였고 정식으로 시인들의 행렬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러니 문학의 풋내기 에게 시운이 트이게 길을 열어주신 선생님의 그 은혜를 어찌 작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리상각선생님을 만나게 되였다. 시상식 때  선생님은 나의 손을 잡고 자기도 흑룡강사람이니 우리는 한 고향사람이라 하시면서 기뻐하시였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의 세월 속에서 초기에는 거리와 지역 관계로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훈춘으로 이사를 와서부터는 문단의 여러가지 모임에서 종종 만나뵐 수 있었다.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선생님댁 에서 하루밤을 묵은 이야기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였다. 한번은 문단행사가 있어 연길에 갔다가 저녁만찬까지 참가하고 보니 밤이 되였었다. 촌바우인 내가 잠자리 때문에  근심하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였다.
“가기오. 우리 집으로 가기오.”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시였다. 정작 따라가 보고서야 나는 손님을 재울 만한 집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다. 판자로 만든 쪽대문 안에 초라하게 들어앉은, 고작 20평방미터가 되나마나한 헐망한 단층집 이였다. 부엌이 딸린 정주칸에 사이문을 단 웃방이 하나 있었는데 웃방은 리주필 내외의 거처이고 정주칸은 로모님께서 손군들을 데리고 자는 자리였다.
내가 웃방에 들어가 리선생님과 나란히 누울 때까지 사모님께서는  (원<<연변녀성>>잡지사 주필, 김세영선생님) 아직 퇴근하지 않았었다. 체면을 무릅쓰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깨여나보니 로모님께서 부엌마루 우에 담요를 펴고 새우잠을 쉬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때의 난감했던 심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이 어리숙한 손님 때문에 리주필네 하루밤 수면질서가 마구 헝클어졌던 것이다.
그래도 로모님과 사모님은 안쪽 시골에서 온 나를 귀한 손님처럼 뜨겁게 대해주시였다. 이튿날 아침, 나는 미안한 대로 사모님이 지어주신 밥을 먹고 귀로에 올랐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름 있는 잡지사의 주필님이 어찌하여 둘이 누우면 돌아누울 자리도 없는 그런 코구멍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리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가끔 그 일을 생각하면 그 때 내가 너무나 철이 없었다는 가책을 받군 한다. 한편 손님을 데리고 갈 형편이 아니 되는데도 데리고 가서 재워주신 선생님의  그 날의 처사가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지워 버릴 수 없는 감동을 심어주었다.
내가 리상각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은 결코 이런 저런 신세를 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리상각선생님의 너그러운 품성과 뛰여난 문학재능 을 존경하는 동시에 또한 참되고 정직한 인격을 존경한다.
나에게는 28년전 내가 녕안현문련에 있을 때 리상각선생님이 보내 주신 한통의 편지가 있다. 다른 문안편지는 다 버리면서 이 한통의 편지를 지금까지 소중하게 보관해두고 있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한 선배님의 지극히 순결한 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천지>>월간사의 사무용 종이에 쓴 그 편지의 원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김동진동무
안녕하오?
바삐 보낼 줄로 아오.
작년에 연변에서 만든 록음대에 <꼬부랑나그네>, <나는 몰랐네> 등 노래가 나의 작사로 발행되였으므로 내가 <<연변일보>>에 글을 써서 빨리 시정하라고 한 일이 있었소. 그런데 요즘 <나는 몰랐네> 노래 원고비가 나에게로 왔소. 다시 텔레비방송국에 의견을 제출하니 그들 말이 한사코 내가 쓴 거라고 했소. 그래서 작곡가 리정옥을 찾아가서 원고를 뒤적여 보았더니 김동진 작사더군. 이제야 작사자를 찾아냈소. 얼마나 서운하겠소. 나에게로 온 원고료를 동진동무에게 보내니 받아두오.
좋은 원고를 계속 보내오.
안녕히
 
90.2.27 상각 ”
 
보다싶이 리상각선생님은 이런 분이시였다. 작사자의 이름이 바뀐 노래가사 때문에 그리고 그 한수의 가사 원고비 때문에 신문사와 텔레비죤 방송국에 시정을 요구하는 글을 쓰고 의견을 제기하고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작곡자를 찾아가서 끝내 가사의 임자를 찾아내신 선생님! 그리고 고작해야 10원 밖에 안되는 원고비를 편지와 함께 보내주신 선생님!
참대처럼 곧은 마음 하나로 사업하고 생활하신 선생님의 정직한 인격은 내가 따라배워야 할 하나의 귀감을 보여주시였다.
선생님은 인생만년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시였다. 망각증이 와서 손목에 시계를 차고서 시계를 찾는 사모님, 밖에 나가면 방향감각을 잃고 계속 다른 곳으로 가는 사모님, 치매에 걸린 사모님 때문에 늘 마음을 놓지 못하시였다. 중요한 회의나 모임 같은 데는 부득불 사모님을 데리고 다녀야 했다. 자기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년세에 치매가 온 부인을 밤낮으로 돌보아야 했으니 그 고생인들 오죽했으랴.
선생님은 연변시인협회의 고문으로 있는 동안 처음에는 모든 활동에 꼭꼭 참가하시였는데 사모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자신의 건강에까지 문제가 생기여 더는 활동장소에 나오시지 못하였다. 그나마 다행히도 스마트폰에 위쳇이 활개치는 세월이여서 사이버라는 가상공간을 통하여 선생님의 모습을 두번 볼 수 있었다.
한번은 선생님의 생신날, 식모의 도움을 받으면서 식사하는 사진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고 다른 한번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 회담이 이루어진 다음 날 즉 4월 28일, 석문주시인이 연변시인협회췬에 올린 사진과 동영상에서 다시 한번 선생님의 모습을 만나게 되였다.
선생님은 객실에 놓인 액정텔레비죤 앞에서 병환을 털고 일어난 사람처럼 웃음이 넘치는 얼굴로 딴스를 추시는 것이였다. 이전처럼 무릎을 꺾고 두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두 손으로 무릎을 치고 좌우로, 앞뒤로 바꿔치기를 하면서 즐거워하시였다.
사실 선생님의 로씨야딴스 실력이 프로급이라는 것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우리 문단의 문인들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경쾌하면서 날렵한 동작과 멋스럽고 세련된 기교로 하여 어느 오락장소에서나 한몫을 단단히 했으니 말이다.
그 날 선생님의 자제분은 아버지께서 남북 두 정상이 악수하는 장면 에서  조선반도의 통일서광을 보시였고 그것이 너무 기뻐서 옛날의 딴스 동작이 절로 나오신 것 같다고 하였다.
비록 젊은 날의 고급동작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운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80고령 로인의 몸에서 딴스가 나온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기적이 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생황혼의 남아있는 기력을 모아 여생의 한 순간을 장식한, 꽃보다 향기롭고 시보다 아름다운 선생님의 마지막 걸작이였다.
동작은 헝클어졌어도 환히 웃으시면서 딴스를 추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나는 선생님의 몸과 정신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였다. 저런 상태에서 조금만 더 회복이 된다면 얼마든지 연변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또 만나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나의 판단과 바램이였다. 선생님은 그 때로부터 3개월이 조금 지나 영별의 길, 영면의 길에 오르시였다.
인연의 갈피에 새겨진 하많은 이왕지사와 운명을 앞두고 남북통일에 대한 소원을 담아 추신 선생님의 딴스를 그려보는 나의 마음의 하늘에서는 지금 존경과 슬픔으로 반죽된 애도의 비가 내리고 있다.
‘백설’이라는 필명으로 하얗게 살다가 가신 선생님!
<두루미>처럼 하얀 날개를 저으면서 가신 선생님!
선배님이면서 은사님이신 리상각 시백님이시여!
부족함이 많은 이 후배가 시백님이 가시는 길에 눈물에 젖은 하얀 국화꽃 한송이를 드리옵니다.
옷깃을 여미고 두 손을 모아쥐고 머언 청도의 하늘을 우러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201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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