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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두만강칼럼]위기상황과 국민의식(서옥란) 댓글:  조회:1619  추천:0  2020-02-25
극한적인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 나라와 국민의 수준을 분명히 들여다볼 수 있다. 최근 무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는 그 감염범위가 늘어남에 따라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였다. 중국 당과 정부 및 인민들은 이번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막강한 응집력과 단결력, 즉 멋진 국가이미지와 국민이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습근평 주석은 인민대중의 생명안전과 건강을 시종일관하게 첫자리에 놓고 코로나19 예방통제 인민전쟁, 총력전, 저격전의 승리를 따낼 데 대해 강조함으로써 전국 인민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었다. 중앙 및 호북성을 비롯한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일심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 폭발 초기에 일부 사람들은 확실히 불안에 싸이고 일부 리기적인 면도 드러냈다. 알베르 카뮈가 쓴 장편소설 《페스트》(1947)에서는 흑사병이란 재앙에 직면한 알제리 오랑시의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떠올리고 있다. 전염병을 피해 은신하는 시민들,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신부, 페스트에 맞서서 자신의 천직을 다하는 의사들 등 장면들은 재앙 앞에서의 부동한 인간들의 부동한 본성을 보는듯이 그려냈다. 최근 몇년간 전염병을 주제로 다룬 한국의 영화 《감기》, 《부산행》과 같은 작품에서도 강한 치사률을 가진 전염병 앞에 선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통해 인간의 리기심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위기 앞에서 인간은 흔히 나약해지고 인간본성의 가장 어두운 일면을 드러내게 된다. 특히 전염병이 발생할 때 인간의 공포심과 리기심, 타인에 대한 배척심리가 강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있었던 극단적인 사례들도 있다. 이를테면 에볼라 발병 이후, 에스빠냐의 어느 한 환자의 애완견도 감염되였는데 정부에서는 그 애완견을 안락사를 시켰다. 그러자 그 환자는 불만을 품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여러가지 도경을 통해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미국 텍사스주의 한 대학교 학장은 아프리카 나이제리아 출신의 입학지원자들을 무턱대고 거부하였다. 에볼라에 감염된 미국의 한 간호원은 자신을 격리한 데 대해 거세게 반발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까지 하였다. 이번 코로나19의 사태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마스크를 먼저 가지겠다고 격렬한 몸싸움까지 하며 충돌을 일으켰다. 또한 덮어놓고 무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혐오하거나 인터넷 공간에서 언어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못난 행위를 보여주기도 했다. 기실 남을 위한 배려와 헌신정신 또는 리타(利他)정신은 결국 자기를 위한 것(利己)이기도 하다. 거리에 나설 때 마스크를 꼭 끼고 침을 함부로 뱉지 않으며 입을 팔소매로 막고 기침과 재채기를 하는 등 사소한 일들은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행위이다. 이번 코로나19 저격전에서 깊은 배려심과 희생정신으로 전체 인민들을 고무시키고 한마음한뜻으로 뭉칠 수 있게 한 아름다운 장면들도 속속 나타났다. 바이러스 감염을 무릅쓰고 불철주야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리고 있는 의료진들의 모습, 그들의 희생정신과 인간애는 14억 중국인민과 세계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직책을 다하는 《페스트》라는 소설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이들의 인간다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공포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위기의 극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다가 일터에서 쓰러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건축로동자들은 열흘 사이에 건축면적이 3만평방메터에 달하고 근 2천여개 병실을 갖춘 화신산(火神山)병원을 일떠세우는 기적― ‘중국속도’를 창조하여 세계를 놀래웠다. 필을 놓으면서 필자는 국가나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 우리 모두가 철통같이 뭉친 강한 집단의식을 보여주어야만이, 우리 모두가 리기심을 버리고 서로 배려하고 포용하고 상생하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가져야만이 눈앞의 재앙을 일거에 깨끗이 물리칠 수 있다는 도리를 부언하고 싶다.   길림신문/서옥란(연변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원래는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페염과 같은 시기는 물론 평소에도 사람의 속을 긁는 부면적인 내용은 가급적이면 언급하지 않기로 자신을 자제하기에 애써왔다. 같은 값이면 서로가 웃을 수 있고 더욱이 지금처럼 어려울 때에는 마음이 한결 밝아지는 내용을 찾으려 노력하고 참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옆에서 들리는 여론들이 심경을 불편하게 만들며 가만 놔두지를 않는다.   아픈 다리에 찜질 한다는 뜻의 한어의 성구가 혹시 우리말에 대응되는 사자성어가 있지 않을가 싶어서 설마 하면서도 검색해 봤다. 아니나 다를가 떡하니 나와 있었으니 “낙(락)정하석”이다.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기는 커녕 도리여 괴롭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비슷한 사자성어로 하정투석도 있다.    그야말로 옥편 하나를 옆에 놓고 한어의 모든 성구를 대역하면 없는 사자성어가 과연 있을가 라는 의구심도 든다. 이렇게 봤을 때는 우리말에 한자어가 70%를 웃돈다는 학설도 너무 보수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쉽게 즐기자는 취지의 한국 연예프로에 봐도 저렇게 어려운 사자성어를 써놓고는 그게 또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괄호를 치고 한자를 적어놓는다. 그러다보니 죽을 사자와 죽일 살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하는 자막도 보인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페염에 대한 초창기 보도에서  우리나라의 성 이름을 한어발음으로 표기하다 보니 한국의 개별 언론은 호북성(후베이성)을 하북성(허베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봤다. 애매한 하북성이 순식간에 여론의 초첨이 될 번 했다.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예민한 이 시기에 하북성으로서는 환장할 일이다. 호북성과 하북성이 헛갈리는데 그럼 산서성과 섬서성은 어떻게 구분할지 심히 걱정된다. 하기야 또 뒤에 한자를 적어놓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학교 때 은사님 강의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공식 문서에 찍는 도장을 지칭하는 우리말 단어 “공인”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음 ‘공장’을 그대로 갖다 써놓고는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뒤에다 다시 한자를 밝혀놓는 신문을 봤습니다.”    도장의 뜻으로 우리말에 “공장”이라는 단어가 없는 건 제쳐놓고라도 언어의 경제성으로 봤을 때도 괄호에다 한자까지 합치면 지면에서 네개 음절을 더 차지하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가. 하물며 우리말로 된 신문은 독자가 한자를 한글자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글이 완성되여야 한다. 그렇다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접했을 때 뒤에다 괄호를 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해서 그게 배려일가. 독자가 알아보지 못하거나 다른 뜻으로 리해할가봐 념려하는 배려심이나 로파심은 가상하나 언어문자도 엄연한 과학이다. 사전에 있든 없든 내가 편한대로 적어놓고 다시 한자를 밝혀놓는 식이면 길거리에 뿌려지는 전단지를 만드는 지하구멍가게도 언론이다.   최근 서울 시장이 2015년 메르스사태로 서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북경시가 도와줬다며 이번에는 서울이 도울 차례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그에 앞서 삼성과 LG도 선뜻이 성금을 내놓으며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 마당에 또  한국의 개별적인 “정의”의 언론이 가만있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개괄하면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의 걱정을 할 때냐는 거다. 다시 말하면 국내  수급도 어려운데 왜 남의 일에까지 신경쓰며 퍼주냐는 비난이다. 그럼 2015년에 북경시는 돈이 남아돌고 물자가 썪어나서 도왔을가. 명색이 기자인데 생각을 좀 하고 기사를 쓰자.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일찍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고 했고 최근에는 “코로나-19”라고 밝혔음에도 왜 일부 언론은 아직도 굳이 “우한페렴”이라고 고집하는지 그 의중이 무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마당에 옆에서 동정하고 우려해주는 건 좋은데 꼭 신규확진자와 사망자수에만 눈이 아홉이 돼서 공포를 조성하는 심리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사선을 넘나들며 고생하는 의료진을 포함해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과 희생은 잘 보이지 않고 아픈 곳만 꼬집고 사정이 있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만 부풀려 보도하는 언론이야 말로 백신이 시급하다.    그럼 여기서 나는 중국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 사니까 이 나라의 룰에 따르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열번 양보한다 치자. 그런데 이런 나라에 가 있는 개별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또 괜히 그쪽 립장에 서 있는 걸가. 그러고는 자기는 아주 알권리가 잘 보이는 높은 곳에라도 서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이른바 “안타깝게”  바라본다. 뭐 또 백번 양보해서 많은 시간을 그 나라에서 커왔으니 생각이 바뀔수도 있다고 치자. 그래도 낳은 정이라는 게 있는데 이 조국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해서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중국에 살 때는 안 그랬었는데 그 나라에서 살면서 그런 말만 듣고 그런 그림만 접하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끌려가게 되나 보다. 그런데 항상 잘난 척 하는 그 나라도 대범하고 투명한 것처럼 떠들지만 번마다 지나오고 보면 결국에는 저들의 리익을 위해 우리를 공격한 것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먼 례를 들지 말고 국가 안보를 리유로 우리나라 통신장비업체 화위를 공격했던 미국은 다른 나라의 정보를 하나도 빼내지 않고 성역에서만 살아왔을가. 아쉽게도 미국이 “크립토AG”라는 스위스의 암호장비 회사를 통해 수십년간 다른 나라 심지어는 동맹국의 기밀정보까지 빼냈다는 사실이 최근에 드러났다. 이 스위스 암호장비 업체의 실소유주가 바로 미국의 모 기관이였다. 이건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도한 게 아니고 워싱턴포스트가 독일의 ZDF방송사와 함께 모 기관의 비밀자료를 입수해 밝힌 보도이다. 그럼 이 대목에서 또 서방의 달이 더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나빠서 악의적인 보도를 한다고 두둔해 나선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그 나라에서 꿩을 기어코 닭이라고 하겠다면 그건 그 나라의 마음이라고 치자. 그런데 그 나라에는 살고 있지만 국적이 우리나라인 사람들까지 덩달아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출 필요까지야 있을가. 아무리 애를 써서 그들의 힙합 장단에 맞춰 흐물거려도 우리의 아리랑 뿌리는 어디 가지 못한다. 괜히 용을 쓰지 말자. 사촌이 기와집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누가 사촌이고 누가 남인지 정도는 가리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이 시기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훼방은 놓지 말자.    그게 인간 도리의 최저 양심이다. 글 궁금이/중국조선어방송넷 
65    이데올로기적 편견도 바이러스다 댓글:  조회:1542  추천:0  2020-02-14
중요한 시기 국제사회는 정의와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선택과 중국에 대한 선의, 중국 편에 서고자 하는 데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인류의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된 힘이 모든 감염 사태를 반드시 승리하게 할 것이다. 신종 코로나 감염 사태 앞에 세계는 중국과 동고동락하며 중국을 응원하고 가슴 따뜻한 온정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적과 같은 감염 사태에 대응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미국 일부 정치인들은 중국을 비방하는 정치적 쇼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은 중국과 중국 제도를 공격하고, 중국과 타국 관계를 이간질하며, 도덕과 문명 마지노선까지 짓밟으며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냉전사고 바이러스를 만들어 정상적인 국제관계를 공격한다. 이 얼마나 대비되는 모습인가? 정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반전이다! 중국의 대응 노력과 성과와 관련해 최선을 다하는 중국 공산당의 인민 봉사에 대한 근본적 취지와 전국 인민들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이끄는 집권력을 놓고 전 세계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가 중국을 칭찬할수록 힘겨루기에 빠진 미국 정치인들은 더욱 안절부절해 한다. 연일 떠들썩하게 각종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다른 사람의 위기를 틈타 불 난데 부채질하는 격의 비열한 수법을 자행해 인류문명의 기본 마지노선은 물론이고 인성조차도 찾아볼 수도 없다. 이들은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억누를 길 없는 심보로 공공연하게 감염 사태 가운데 “중국의 실점이 미국의 득점일 수 있다”고 말하며, ‘남의 불행으로 이득을 보려는’ 악독한 속셈을 보였다. 미국 일부 정치인의 편협함과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두려움은 바로 이들이 중국 경제 사회발전과 인민 생활의 부유, 국가번영과 강대함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황당한 논리에서 보자면 중국 공산당은 중국 인민들이 역사적 성과를 거두고, 비약적 발전을 거듭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고, 이들의 끊이지 않는 황당한 발언도 주류 언론의 지휘봉이 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몇 십 년간 중국 공산당 주도로 8억 명이 넘는 중국인이 빈곤에서 탈출했고, 4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중등소득계층에 진입해 전 세계에 엄청난 발전 기회를 가져왔다고 인정한다. 올바른 도는 사람 마음에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의 전국적인 감염 사태 대응 행동은 세계로부터 존중과 칭찬을 얻었다. “중국 공산당은 전례 없는 안전조치를 취했고, ‘중국속도’로 의료 시설을 신설하는 동시에 예방수단을 보안해 중국 공산당의 뛰어난 통치력이 드러났다”, “중국 공산당이 취한 정치적 정책과 보건 방역 조치는 인류 전염병 역사상 이정표가 될 것이다” 국제사회는 중국 공산당의 주도로 중국이 이번 감염 사태를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 능력, 통제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책임감과 성실함을 가진 중국 공산당은 바로 중국의 행운인 동시에 세계의 복이다. 우스운 것은 미국 일부 정치인들은 일찌감치 판단력이 흐려져 현실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즐기고 있다. 자연계 바이러스가 인류에 가하는 해에 대한 대처로 국제사회가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이들의 심리는 “여유를 부리며”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냉전사고 바이러스를 퍼뜨릴 시기라고 여긴다. 그래서 일각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의 첫 번째 지정학적 라이벌이 되었다”고 떠들어대고, 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빌미로 중국과 이웃나라 관계를 이간질하며 심지어는 언론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중국이 아프리카에 질병관리본부를 지어주고 아프리카 대량 유전자 데이터를 훔쳐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때를 막론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유언비어는 스스로의 이미지를 망쳐 결국 망신을 당하고 만다. 퓨 연구센터가 작년에 실시한 조사 데이터를 보면, 응답자 중 45%가 미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본다고 응답했다.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가 자초한 화가 미국에도 적지 않은 해를 가져올 수 있는데 위협 또한 크지 않을 수 있을까?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냉전사고 바이러스는 결국 국제관계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전염병 때 양심이 보이고, 위기 때 진심이 보인다. 중요한 때에 정의와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선택과 중국에 대한 선의, 중국 편에 서고자 하는데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인류 운명공동체 의식은 이미 국제사회 주류가 된 동시에 각 국민의 감염 대응에 대한 공동 행동이 되었다. 인류의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된 힘이 모든 감염 사태를 반드시 승리하게 할 것으로 모두가 확신한다.  원문출처 인민일보/번역: 인민망 조미경
64    응답한 건 시대가 아니라 양준일이다 댓글:  조회:1508  추천:0  2020-02-07
[대림칼럼]   [대림칼럼] 응답한 건 시대가 아니라 양준일이다 -우리가 받은 선물- 글/전은주 시인·문학평론가       1. 한국사회의 이중성   한국사회는 요즘 '양준일 신드롬'으로 뜨겁다. 90년대 한국사회는 낯설고 이상한 가수였던 1969년생 '양준일'에게 돌을 던졌다. 한국어가 서툴고 영어를 마구 쓴다는 리유로 재미교포였던 그에겐 철퇴가 내려졌다. 그는 90년대 초반 파격적인 안무와 가사, 패션 센스로 젊은 청중을 후끈 달구었지만 당국은 그를 '선정적 퇴페'로 몰아 방송출연 정지를 내렸다. 그런 그에게 아무도 노래를 주지 않았고 비자도 연장해주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소의 어떤 직원은, "나는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게 싫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이 도장은 절대 안 찍어줘! 너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어!" 라며 증오로 비자 연장을 거절했고, 그 20대 초반의 청년은 히트곡 몇과 궁금증만 남긴 채, 황급히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30년이 흐른 뒤, 한국사회는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 '20세기를 살아온 21세기의 천재'로 양준일을 다시 소환해냈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자신이 겪었던 모국에서의 아픔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양준일을 보며, 겸손하고 성숙한 그 모습에 손석희 앵커마저 미안함과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대중들은 그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듯 '양준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가? 지금 이 사회에는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였던 ‘스무살의 양준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가? 만일 '22세기 양준일'이 등장한다면 세상은 선뜻 그를 열렬히 환영해줄가?     얼마전, 녀성의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설리는 악플러들의 온라인 '조리돌림'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나치게 앞선 그녀의 녀성적 권리는, 아직 많은 이들에게 포용받기 힘든 '노매너'였던 것이다. 한때 '리틀 싸이'로 인기를 얻었던 십대 소년 역시 다문화가정의 자녀라는 리유로 악플러들의 총알받이가 되고 말았다. 세상은 더 글로벌하고 더 자유롭게 변하고 있지만, 나와 '다르다는 것'은 여전히 '틀린 것'이 되고 너무나도 쉽게 적대적 공격의 대상이 되고 만다.    물론 이제는 30년전처럼 직접 무대를 향해 돌을 던지지는 않겠지만, SNS의 익명뒤에 숨은 무차별 공격의 칼날은 더욱 예리해졌다. 지난 2019년을 돌이켜봐도,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성차별, '노키즈존'에 관련된 아동차별, 지역갈등, 임대아파트, 다문화, 장애인 등등, 세상은 차별과 편견으로 넘치고 있다. 오히려 30년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세분화되고 잔인해졌다. 설령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도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2019)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30년전에는 응답받지 못했던 그가 50대가 되여 다시 세상의 부름을 받고 빛을 보게 된 리유는 무엇일가?    2. '현재'를 찾은 사람   사라진 가수를 찾는 프로그램인 '슈가맨'에 양준일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미안함이였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50대가 된 그는, 현재 미국의 한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매달 월세와 생활비를 걱정하면서 살고 있다. '슈가맨'에서 그를 찾았을 때도, 프로그램을 위하여 한국에 오면 그 며칠 사이로 일자리를 잃게 될가봐 망설이기도 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울컥했던 것은, 그가 안타까워 보여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담담했고 또 소박했기때문인 것 같다. 다음날 jtbc 뉴스 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사람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했다고 하자 그는 오히려 웃으면서, "저는 슬프지가 않았어요. 사실(현실)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슬퍼한 것은 무엇일가? 어쩌면 그가 착함을 가장하지 않고 선량함을 위장하지 않는 것에 슬퍼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슬프게 본 '가난'을 그는 '사실'(현실)이라고 한다. 참 그랬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가난은 슬프고 궁상맞은 것이였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사실(현실)은 그 자체로 소박해서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무엇때문에?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가? 나는 왜 오래동안 '가난'을 부족한 것, 숨기고 싶은 것, 모자란 것들로 규정하고 무엇때문에 그렇게 오래동안 부끄러워하고 감추고 싶어했을가?    양준일의 30년동안의 삶은 분명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도 표현했듯이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을 것이다. 그는 오래동안 투명인간으로 살았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가수의 꿈을 접으면서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모국이 밉고 원망스러웠을 것이고,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가?" 하며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사람들은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가"라며 사람들을 탓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그는 시대를 잘 못 만나 좌절한 '비운의 천재'로 우울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천재'들을 여러 만난 적이 있다. 드문드문 만난 천재들의 등장은 모두의 부러움과 놀라움의 대상이 되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만난 그들은 대체로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천재'가 되여 있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함께 시대를 탓하거나 안타까워하며 동정을 보내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또는 당연하다는 듯, 이미 예견했었다는 듯 뻔한 반응들을 보였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지극히 보편적인 패턴이였다. 시대를 잘못 만났거나, 부모를 잘못 만났거나, 상사를 잘못 만났거나, 친구를 잘못 만났거나, 대체적으로 우리들의 '실패'는 늘 뭔가의 '탓'과 련결되였다. 오죽하면 얼굴도 보지 못한 조상 탓과도 련결시킬가. 특히나 천재로 불렸던 사람마저도 실패하는 '세상'이라면, '나'라는 개인의 실패 정도는 당연하다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스스로에 대해 위안거리로 삼기도 했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의 탓이나 외부적 상황 탓으로 돌려왔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악화되지만, 한사코 스스로의 책임에서 도망치면서 살아왔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럴진대, 아주 잠시라도 인기의 중심에 섰던 스타라면 더더욱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어려운 삶을 살고 있더라도 "나도 한때는 잘나갔었는데"라는 과거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재 위치를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생 거지로 살면서도, 어린 시절에 점쟁이가 왕이 될 상이라고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심지어 자신이 왕이 된 줄 착각하다가 죽을 때도 '짐이 붕어한다'라며 죽었다던 이야기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 양준일은 그 패턴을 깨뜨린 채 귀환했다. 분명히 가난한 데, 비참하지는 않은 사람으로! 그 리유는 그가 뉴스 룸에서 했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실패를 바탕으로 미래를 가늠하는 그 '쓰레기'같은 생각들을 비우고 버려내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살면서 나는 왜 존재 하냐는 퀘스천마크가 굉장히 큰데, 나 자신의 편견을 버리기 위해, 노력을 생활처럼 해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 한마디를 그는 쉽게 했지만, 실천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나 생각에서는 좌절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면 될 것 같지만, 막상 힘든 현실이 닥치면 이내 용기를 잃고 부딪쳐 보기도 전에 "안 돼", "못 해!"라고 부정하기 쉽다. 그러한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쩌면 자신에 대한 자신의 편견인지도 모른다. 그 한 겹을 벗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만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양준일은 어쩌면 자신의 허상을 비워냄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20대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욕심대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걸 알아. 하지만 걱정 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그는 결코 자신의 과거를 원망으로 채우지 않았다. 물론 그도 수없이 시대를 탓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못한 모국을 탓하고 자신을 탓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수시로 거침없는 증오와 원망이 그를 덮쳤을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비우고 버리는 행동을 통해 그는 매일 자신의 '현재'와 만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필연적'으로 다시 모국으로 돌아와, 그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자신에게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증명해냈다.    우리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쉽게 "난 안돼!",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을 가끔 한다. 과거의 실패의 경험으로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포기해 버린다. 그 실패의 순간마저도 그때 자신의 실력으로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완벽'했음을 믿지 않는다. 그가 한 것처럼 끝없이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현재에서 늘 도망쳐 팔자 탓, 세상 탓만 하다가 영원히 '2019년의 양준일'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열광해야 할 것은, 그의 노래나 춤보다도 그가 스스로 비워내여 얻은 '깨우침'이며, 그가 그의 '현재'를 찾은 일일 것이다. 비록 그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양준일의 귀환'은 우리가 받은 가장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흑룡강신문 
63    새해를 맞으며 나누는 인사말의 계시(박병대) 댓글:  조회:1683  추천:0  2020-01-14
해마다 낡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즈음이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따사로운 위챗인사말이 봄나비같이 춤추며 찾아와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더해준다. 세상에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고 많은데 그들만이 나한테 설인사를 보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맙다. 그러면 나도 급급히 회답인사를 보내고나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나 문우들한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말을 올리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옛날 농경사회에 살 때 우리는 설날을 맞으면 부모님이 해주는 새옷을 갈아입고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어르신들을 찾아가 세배를 올리고 떡조각이나 엿가락 하나씩 받아먹던 동년시절이 눈에 삼삼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 부모님의 고초를 모르는 나는 설을 맞을 때가 일년중 가장 행복했었다. 그리하여 늦가을이 가고 첫눈이 내릴 때부터 설날이 며칠 남았나 손꼽아 기다리군 했다.   사회가 발전하니 설인사를 하는 방도 많이 바뀌였다. 동네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는 옛법은 슬쩍 사라졌고 먼 곳에 계시는 친인들한테만 인사편지를 올리는 것만이 설전후의 일과로 되였다가 얼마 안지나 전화문안이나 년하장 보내기가 성행하더니 이메일시대를 거쳐 위챗세상에 들어서니 인사편지도 골동품이 되고 누군가 위챗에 올린 멋진 년하장을 복사해 란발하는 것이 시체멋으로 되여버렸다. 보내기 간편하고 위챗을 열어보고 한번쯤 즐길 수는 있지만 어쩐지 깊은 감동을 받기는 정성들여 쓴 편지만 훨씬 못한 듯 하다.   너도 쓰고 나도 쓰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설문안의 중심문구를 가만히 음미해보노라면 떠오르는 생각이 많아진다.   이 세상에 오는 복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복을 많이 받으라는 것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 것과는 다르잖는가? 많이 받고 싶어도 욕심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복이거늘 왜 자꾸 많이 받으라는 것일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마 새해에 복을 많이 받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간략한 것이란 뜻으로 리해하면 되는 것을 구태여 인사말을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것도 례가 아닌 듯하였다. 그래서 입을 꼭 다물고 있노라니 새삼스레 깨우쳐지는 것이 있다.   《천자문(千字文)》에 '화인악적(祸因恶积)이요, 복연선경(福缘善庆)'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나름대로 풀이하면 "화는 악이 쌓여 생기고 복은 착한 일을 한 보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또 항간에 '덕은 쌓을수록 복이 더 생긴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시라는 말의 참뜻인즉 "새해에 덕을 쌓아 복을 많이 받으시라'는 뜻으로 리해가 된다. 생각할수록 참 현명한 말이다.   새해 첫날부터 사람들을 좋은 길로 안내하는 이 인사말은 우리 모두에게 깨우침을 주고 힘을 주니 들을수록 감미롭고 정다워진다. 그래서 어르신들과 친우들에게 다시 한번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료녕신문
62    [두만강칼럼]정겨운 ‘지옥’(심명주) 댓글:  조회:1815  추천:0  2019-12-19
이국에서 살며 된장국 냄새만 맡으면 역겨움을 느낀다던 고향친구가 있다. 살던 곳과 물리적으로 뛰여넘을 수 없이 떨어져있는 사람에게 고향은 정신적 ‘울렁증’이다. 그러면 한곳에 죽치고 사는 사람에게 고향은 어떤 존재인가? ‘마지 못해’ 사는 오래된 ‘부부관계’이다. 낡투를 뒤집어쓰고 온갖 전통과 세습으로 뭉친 집합체, 지켜야 할 풍속들이 켜켜이 쌓인 곳, 결코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비박한 과거가 타투흔적처럼 남은 곳, ‘쉰내 나는 이곳을 떠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넌덜머리를 치면서 또 살아내는 곳이다. 려행에세이에서 김연수작가는 그 고향을 두고 ‘정겨운 지옥’이라고 칭했다. 그런 치렬하던 고향 감정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곳이 있다. 바로 온라인이다. 시공간의 경계가 사라진 온라인의 가상세계. 이젠 아무하고나 24시간 소통이 가능하고 초당으로 생사를 확인하고 분당으로 소식을 공유한다. 경제 돌기와 정비례로 불어난 지구적인 인구 류동시대에 서로 상생하며 급시우같은 존재로 온라인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천착했다. 이왕의 어떤 수단으로든 대타가 어려운 역동으로 오프라인과 경계가 허물어져 갖가지 정보의 공유와 전달의 스피드, 생활의 편리 등 편익에 우리 삶은 졸부처럼 시간과 공간의 폭리를 얻었고 감정의 폭리도 얻었다. 파생으로 각종 명목의 다양하고 활발한 온라인 가상 모임장― 위챗그룹같은 것이 람발한다. 공감대가 불어났다. 사람이 외로울 사이가 없어졌다. 잇달아 가족애, 향수… 이런 단어들이 빛을 잃었다. 그런 온라인 때문에 도래한 ‘몸 따로 정신 따로’의 ‘량다리’시대, 요즘의 시대이다. 더불어 실체와 가상의 줄다리기에서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온라인 찬양 군단이 넘쳐난다. 온라인 ‘고향’설까지 제기된다. 그러면 과연 가상에 고향을 대타할 만한 감정의 안식처를 세울 수 있을가? 대답은 “노”이다. 코로 들이마시는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곳, 몸의 귀소본능으로 로후에 ‘지옥’일지언정 찾아가 드러눕고 싶은 땅이 고향이다. 태줄이 묻히고 부모가 살았던 곳,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이컨텍츠, 스킨십이 곁들인 만남과 소통, 이 모든 걸 이루는 고향은 오로지 정신적인 것도 아니고 몸만 남은 곳도 아닌, 량자가 분리될 수 없는 혼합실체이다. 온라인 출시로 십년도 안되는 사이 느리던 소통 방식이 철저히 깨진 것만은 사실이다. 온라인의 혁혁한 공로이다. 뛰여넘을 수 없는 거리로 오는 괴리감도 단연 단축되였다. 그러면 온라인은 정신기탁의 믿음직한 공간일가? 그것도 의심스럽다. 우선 온라인의 영향력은 절대 과소평가하지 못한다. 실제로 온라인이 가진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온라인의 가상공간은 결코 청정지역은 아니다. 정신기탁을 하기에는 너무 혼잡스럽고 시비가 란무하며 더우기 온라인 힘을 역리용하는 ‘댓글부대’, ‘온라인 홍위병’이 기승 부리는 곳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온라인의 영향력에 대해 무시하고 소통에 소극적인 것이 문제인듯이 과대평가도 기피할 문제이다. 온라인이라는 가상세계의 힘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현실적인 행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곳은 현실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는 도피처일 뿐이고 유토피아의 란잡한 허상이다. 조직화된 가상 속의 활력을 이끌어내는 힘은 더욱 치렬하게 조직되여 움직여야 하는 현실에 있다. 때문에 실체가 우선이다. 모든 가상은 실체를 위한 존재이다. 실체를 떠난 가상은 아무리 화려한들 그것은 떠도는 유령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은 우선, 도덕과 법규의 미숙한 불모지인 온라인에 만능의 온라인 몰카같은 것을 출시시켜, 저질스럽고 치졸한 손가락 터치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인간탈’의 곪아가는 정신들을 물샐틈없이 엄벌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아울러 거침없이 쳐들어오는 온라인에서의 바르고 건강한 구조체계,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거시적인 우리 현실의 고향― 지구를 더욱 정겨운 ‘지옥’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길림신문
61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는 것(최해선) 댓글:  조회:1575  추천:0  2019-11-20
[대림칼럼] 1    고양이 세마리와 함께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되고 동물들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게 되고 동물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였다.   그런 나는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 일이다. 동네 이웃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어쩌다 우리집에 들어온적이 있었다.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이 탐이 나서 몰래 키우려는 마음을 품게 되였지만 그 마음도 잠간이였다. 고양이의 습성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얄미워서 이불장위에 집어던졌던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고양이에 대해서 아는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강아지는 충신, 고양이는 간신”이라는 세속의 고정관념만 믿고 있었던 터라 누군가가 강아지를 좋아하느냐 고양이를 좋아하느냐고 질문하면 관례적으로 강아지를 좋아하고 고양이는 싫다고 대답했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종종 아무런 리유없이 고양이에게 가했던 폭행을 떠올렸고 그럴때마다 자신의 내면속에 잠재되여있는 폭력성과 잔인함에 몸서리쳤고 오래동안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였다.     둘째 고양이 쿠로와 함께.   그 죄책감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게 된 것은 고양이를 입양하고나서부터였다.   10년전의 늦가을 천진의 어느 상가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줏는 계기로 얼떨결에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였고 이 작은 계기의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번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후로 나는 두마리의 길고양이를 더 입양했고 한국으로 이주할 때 까다로운 반려동물 해외반입절차도 마다하고 몇개월의 시간과 거금을 들여 세마리를 모두 데려오게 되였다.   어떤이는 극성이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이것은 나의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이자 가족에 대한 사랑이였다.   한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의 서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게는 소박한 신념이 하나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믿음입니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돌에 맞아 싼 사람도 왜 그런 일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알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 심성입니다.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알면 알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 스스로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믿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천번만번 공감이 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주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쉽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쉽게 싫어하고 배척한다. 이런 서뿌른 판단이 오해와 편견을 초래하고 혐오를 생산하는 것이다. 2   한국에 정착한지 어언 5년이 지났고, 여기서 생활하면서 한가지 발견한것은 한국사회와 중국동포사회는 서로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였다.   개인적으로 경악을 금지 못하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2018년 10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였다. 게임 아이디가 한자라는 이유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가해자를 조선족으로 추측하고 사이버상의 공격을 서슴치 않았다. 경찰이 중국동포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국적을 취득한 조선족이거나 부모중에 조선족 출신이 있을 것이라고 근거없는 댓글을 람발했다. 게다가 가해자의 생김마저 “조선족스럽다”라는 것이다. 그저 가해자는 조선족이여야만 했었고 이런 잔인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절대 한국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조선족 전체를 범죄자로 몰아갔다. 그후 진상이 규명되자 조선족을 비방했던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듯이 순간에 사라져 버렸지만 중국동포들의 마음은 상당히 불편했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중국동포들은 범죄자와 일탈자로 락인이 찍혀버렸다.     2007년 로터리 장학재단 주최 효고현(兵庫県) 아와지시(淡路市)관광 중 시즈노사토 공원(静の里公園)에서.   이 사건을 접했을 때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시기의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 사건과 오버랩된 것이였다. 1923년, 도쿄를 중심으로 관동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재난으로 인한 사회불안속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근거없는 랑설이 확대되면서 6천여명의 조선인이 무고하게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정말로 소름 끼치게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한편, 내 머리속에는 만약 중국동포에 대해 그 이주력사와 한국으로의 재이주과정을 잘 알고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조선족 혐오”가 사회적으로 문제화되었을가 하는 의문이 맴돌았다.   많은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한국의 88올림픽이후 급속하게 팽창하는 재개발위주 경제발전과 중국의 개혁개방시기 력동력의 자유이동이 적절하게 잘 맞물렸기 때문이다. 한국은 값싸고 언어가 통하는 안정적인 노동력이 필요했고 다수의 농촌출신에 생산수단과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는 중국 동포로서는 코리안 드림이 경제적 부를 꿈꿀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오랜 단절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동포 로동자들은 바로 한국의 산업전선에 투입되였고 상대적으로 한국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을 도맡아 종사하게 되였다. 어쩌면 중국동포들의 한국에서의 신분은 동포보다는 외국인로동자가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현시대의 가치관은 철저하게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만 판단한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진다.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저성장, 저출산, 청년 일자리 문제, 로인 빈곤문제 등 일련의 사회문제들은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이런 미래 불투명의 불안과 생존권마저 장담할 수 없는 사회적 불안은 급기야 중국동포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인식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재중동포들이 한국에서 정착해서 살아가는 것은 한국의 자원과 세금을 축내는 존재로 알고 있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온갖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해오다 어느날 갑자기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존재로 전락했으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재한 중국동포들은 억울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재한 중국동포들의 현주소에 대해 조금만 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어느 한 개인의 잘못으로 전체 중국동포들을 평가하거나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일이 없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사실 나는 중국동포 4세이다. 이주력사가 다소 빠른 집안이다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중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새중국에서 태여나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국적을 부여 받았기에 근대 국민국가적인 나의 신분은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고 반도에 루트를 갖고 있는 한민족이다.   중국동포들은 광복후 중국의 복잡한 사회변형속에서 자신들의 루트를 제대로 알아갈 기회를 잃고 지금까지 오게 되였다. 필자도 한국의 력사와 지리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운적이 없었으며 배운건 고등학교때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 3페이지 분량의 ‘3.1운동’이 전부였다.   그나마 조선에 대해서 알게 된것은 과외독서로 따라오는 이야기책, 집안 어른들의 구술, 소신있고 량심적인 력사선생님들의 번외가르침 덕분이였다.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부모로부터 가족의 이주력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해들었지만 그것만으로 반도에 대해 애착이 생기기엔 어딘가 조금 부족했다.   그러던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몸소 겪고 단편적인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점점 이 땅에 대해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마치 한국이라는 선조의 나라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중국의 동북처럼 뼈를 저리는 추위도 없고 일본 렬도처럼 찜통과 같은 무더위도 없는 한국의 쾌적한 날씨는 최고가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강산”이란 말이 그저 국가권력에 강요된 찬양의 말이 아니었던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풍수지리가 좋은 곳에 선견지명의 조상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특히 옛사람들의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그들의 삶의 자취를 하나하나 알아갈 때면 슬기로운 선조들의 모습과 깊은 문화에 존경심마저 생긴다. 4   올해의 추석연휴 마지막 날에 고궁을 다녀왔다. 작년에는 경복궁과 덕수궁을 다녀왔기에 이번엔 종묘와 창덕궁을 다녀왔다.   종묘는 경복궁이나 창덕궁, 덕수궁처럼 티켓만 구매하면 바로 구경할 수 있는 개방된 곳이 아니다. 사전에 예약을 해야 구경할 수 있고 지켜야 할 에티켓도 많다. 례를 들어 종묘의 정문 외대문안에 들어서면 돌로 깔아놓은 길이 쭉 뻗어있다. 길은 세갈래로 나뉘어져있고 가운데 길이 가장 높고 량쪽으로는 살짝 경사져있다. 가운데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고 해서 신로라고 한다. 신로의 오른쪽은 임금이 다니는 어로이고 왼쪽이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때문에 종묘에 가서 아무길이나 막 걸으면 안된다.     2003년9월 경복궁에서.   종묘는 조선시대의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태조임금이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한양으로 천도한후 가장 먼저 만든 것이 경북궁도 창덕궁도 아닌 종묘와 사직이라고 한다.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최고의 존엄한 사당이며 조선왕조의 정신과 력사가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근간이 유교였고 유교의 핵심이 효와 충인지라 종묘의 의미는 백성들에게 유교적 가치관을 전파하면서 권력과 통치를 강화했다.   신을 모신 곳이기도 하기에 단청을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색상을 절제하여 다른 궁궐에 비해 보다 단조롭고 심플하면서 근엄하고 고귀한 기품이 흐르도록 지어졌다.   정문으로 들어갔을 때 눈에 띄는 것은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사각형 못이다. 이는 천원지방의 원리를 따른 것으로 사각형 못은 땅을, 둥근 섬은 하늘을 의미하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 둥근 섬에는 향나무가 심어져있고, 종묘의 특성상 못에는 물고기도 꽃도 없다.   종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례는 철저하게 남성중심으로 진행되고 제사 음식 장만에서부터 제관집사, 악공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성들이 담당했고 녀성의 출입을 금기시했다.   이런 종묘가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해인사의 장경판전, 석굴암과 함께 한국의 최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5월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되였다. 다른 궁궐은 임금이 살지 않아서 박제된 력사라고도 하지만 종묘에는 임금의 영혼이 깃들어있고 예전과 같이 제사 의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책정될 때 산 력사가 진행된다는 점이 크게 평가받았다고 한다.     2018년 10월 고궁나들이중 북촌에서.   종묘를 구경을 하고 나니, 한층 더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고 조선왕조의 희로애락이 느껴졌고 그들의 정신에 대해서 리해하는 뜻깊은 앎의 시간이였던 것 같아서 뿌듯했다. 지금까지 집에서 지내던 전통이라고 믿고 왔던 제사문화와 비교도 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였다. 또한 여기서 생활하는 시민으로서의 주체성도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5   이렇듯 알게 되면 더 알고 싶어지고 알면 좋아하는 마음이 싹트고 존경심과 긍지감이 생기고 사랑의 마음이 생긴다. 알고 리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립장에 설줄 안다는 것을 의미하며 서로의 소통에 도움이 되고 인식을 함께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많은 중국동포들은 한국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 찬란한 문화를 통해 자긍심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인들도 중국동포들의 이주력사와 형성, 한국으로의 재이주에 대해서 모르니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느끼고 서로 공감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조금만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편견과 차별이 없이 감정적 대립이 없이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지 않았을가. 평화롭게 공생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상대방의 차이에 대해 인정하고 알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아닐가.   앞으로 서로에게 더 많은 앎의 기회들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될테니까.     최해선 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일본 에히메대학 사회학 석사, 일본 칸세이가꾸인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현재 한국 모 IT회사 해외마케팅 팀장.   동북아신문
60    우리는 무엇을 물려줘야 하나?(김동수) 댓글:  조회:1427  추천:0  2019-11-06
[두만강칼럼]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70년전 모택동 주석은 천안문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창립을 전세계에 장엄하게 선포하였다. 중화민족 대가정의 당당한 성원으로서 중국 조선족은 새 중국의 창립을 위하여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모택동동지께서 말씀하다 싶이 오성붉은기에는 조선민족의 붉은 피도 슴배여있다. 중국 조선족은 당의 민족정책의 해빛 아래 전국의 56개 민족 가운데서 우수한 소수민족이라는 긍지와 자랑을 안고 뿌듯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우리 민족 앞에는 많은 위기와 넘어야 할 과제들이 불거져 학자나 지성인들의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속담에 “나라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민족의 평범한 일원으로서 후대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남겨주고 물려줄 것인가를 늘 심사숙고해보았다. 며칠전 북경에 갔다가 연길로 돌아오는 고속렬차에서 연변 유람을 온다는 몇몇 한족들과 동석하게 되였다. 중국 조선족에 대하여 얼마나 아느냐고 물었더니 첫마디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춘다는 것이였다. 옳바로 맞추었다고 내가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더니 그 밖에도 랭면과 개고기를 즐겨 먹으며 녀성들은 현숙하고 깨끗하며 남성들은 술을 잘 마시고 축구를 잘한다고 덧붙였다. 참으로 맞는 말이였다. 조선족의 집거지인 연변은 한때 교육의 고향, 가무의 고향, 축구의 고향으로 전국적으로 이름 났고 그 위망이 대단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차분히 랭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도 이미 한물 간 어쩌면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일’로 되지 않았나 하는 위구심과 함께 심각한 고민과 사색에 빠지게 된다.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형제 민족들도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상전벽해와도 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고 축구를 잘하는 것은 이제는 더는 우리만의 ‘대명사’가 아니다. 무엇을 더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즘즉해지더니 나더러 말해보라고 반문하는 것이였다. 나는 당신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는데 바로 새 중국의 창립을 위해 피 흘린 조선족의 중대한 공헌이라고 말머리를 떼고는 흑룡강성 목단강시 강변 공원에 세워져있는 ‘8녀투강’(八女投江)조각군상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38년 10월, 항일련군 제5군 1사의 8명 녀전사들은 적들을 유인하고는 우쑤훈하(乌斯浑河)에 뛰여들어 놈들의 기관총과 박격포의 사격으로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중 안순복과 리봉선은 조선족이다. 8명중에 2명이면 비례로 25%를 점한다. 연변지역에서는 항일전쟁시기 3301명(그중 조선족 3204명, 97%), 해방전쟁시기 4313명(그중 조선족 3713명, 86%), 항미원조전쟁시기 6981명(그중 98%는 조선족)의 혁명렬사가 배출되였다. 그 가운데서 조선족 항일 녀렬사가 366명이다.(《북방민족》 2017년 제7기) 하경지의 “산마다 진달래, 촌마다 렬사비”라는 시구는 조선족혁명력사의 축도이다. 나의 말에 일행은 조선족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료해하게 되였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각설하고 새 중국의 창립을 위하여 안순복, 리봉선을 비롯한 조선족의 수많은 우수한 열혈청년들은 자기의 귀중한 청춘과 생명을 다 바쳐 중국혁명력사에 길이 아로새길 빛나는 서사시를 엮었다. 선렬들의 초심은 중국공산당의 령도 아래 나라의 해방과 민족의 독립을 이룩하는 것이였다면 새로운 시대 우리 민족의 초심은 인민의 행복을 마련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공헌하고 우수하고 지혜로운 민족으로 영원히 남는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상하가 협심하여 우리 민족의 우수한 고급인재들을 많이 육성해내고 우량한 민족전통과 언어, 문자를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 더우기는 새 중국의 창립을 위해 쌓아올린 우리 민족 선인들의 혁명정신과 불후의 업적을 교과서화(教科书化)하여 세세대대 물려주고 중화대지에 널리 알리고 고양하여야 한다고 나름 대로 생각한다. “효력은 당대에 있고 리익은 천추에 있다”(功在当代,利在千秋). 길림신문
59    ‘쓰러’지는 모교를 보면서 댓글:  조회:1769  추천:0  2019-10-22
모동필 요즘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교가 ‘건재’해있다는 것이 커다란 자랑거리나 위안이 되는 세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얼마전에 위챗으로 전송된 모교청사 철거 영상을 보았다. 학생수가 줄어든 관계로 D시의 초중을 고중과 합병하였기에 초중건물이 옛터에서 속절없이 ‘쓰러’지는 영상이였다.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글소리 대신 중장비의 거친 잡음이 교정을 때리는 광경을 보면서 수많은 감회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올랐다. 오늘에는 무너지는 모교를 뜬눈으로 바라보면서 무가내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면 래일에는 또 어떤 력사적 실존들이 소실되고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한스러운 마음을 집어뜯어야 할지 걱정이 퍼그나 크다. 많은 조선족들의 ‘모교’가 ‘페허’로 남거나 ‘페교’돼버리는 비감스러운 일은 꽤 이미전부터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편벽한 지역으로부터 시작된 페교나 합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선족 집거지역에서까지 차차 ‘류행’처럼 퍼지고 있다. 그나마 ‘모교’가 페허로 남아서라도 물리적 실체를 ‘뽐내’는 것이 어쩌면 불행중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나의 모교처럼 실체가 사라져버린다면 그 상실감은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은 ‘모교’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것들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일들이 다발적으로 감지되고 있어 이마살이 찌프러질 때가 많다. 그 어려운 이민과 개척의 력사에서도 교육을 틀어쥐고 ‘서전서숙’이나 ‘명동학교’같은 교육시설을 설립했던 이주민의 후예들은 현재 해내외로 랭면발처럼 쭉쭉 뻗어 대륙 곳곳에, 지구촌 방방곡곡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국내의 여러 대도시에서 ‘주말학교’같은 민족교육시스템이 가동된 것은 다소 위안을 얻는 일이긴 하지만 새로운 정착지에서 전일제 조선족학교와 같은 관립교육기구를 설립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상대적으로 편벽한 지역의 기초교육에서부터 시작된 조선족교육체계의 점층적인 붕괴 위기는 조선족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국내 여러 지역의 농촌공동화 현상을 상기해볼 때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엇비슷한 것 아닌가 싶다. “고된 농사일을 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였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꽤 많이 들은 적 있다. 어느 시기,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나’의 삶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수많은 청년들과 로동력이 ‘고향’을 등지고 떠난 궁극적인 책임도 ‘이민자’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킨다”는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수많은 ‘자식’들이 ‘고향’을 떠나간 것은 보다 큰 세상에서 자아가치 실현을 위한 ‘개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내 대도시에 정착한 분들의 아이들은 부득불 한어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들이 우리 민족의 언어문자를 비롯하여 민족 정서나 전통, 문화 등에서 선대들과 일치된 기억의 텍스트를 가질 것을 요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한어권에서 생활해온 조선족 아이들은 중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함에 있어서 여러 방면에서 부모세대보다 우세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타민족과 통혼하는 것도 상례적인 현실일 수 밖에 없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처한 위기의 본질과 원인을 숙지하지 못하고 그것을 분명하게 규명하지 못한다고 할 때 우리는 더욱 깊은 위기 속으로 스며들면서 결국 소멸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을 외면한 론의는 공허한 소모에 불과하다. 우리의 두 손으로 가꾸어놓은 현재의 삶과 우리의 두 발로 걸어온 발자취들을 면밀하게 되새겨보는 것이 ‘처방’을 기다리는 ‘환자’의 참된 자세나 마음가짐이 아닐가 싶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병’들을 숨김없이 진단해보아야 하는 것은 순리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도 똑바로 정시하면서 공론화할 수 있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언어문자를 비롯한 문화적 ‘동일성’은 ‘하나’로 무어지는 근간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형태의 노력을 몰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선족들은 점차 우리 언어문자나 문화생활과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쓰러’지는 ‘모교’를 직시해서 바라봐야 한다. 비록 음산하고 허탈하고 쓸쓸하지만 굳은 마음으로… 길림신문
58    국가급 풍경구와 ‘옥에 티’(황동수) 댓글:  조회:1505  추천:0  2019-10-11
연길 사람이라면 ‘모아산에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아산은 그 산세가 완만하고 험준한 구간이 별로 없어 로인들에게 더없이 안성맞춤한 등산루트이자 유산소운동의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모아산이야말로 연길의 ‘금산이고 은산’인 것 같다. 모아산 삼림공원은 30여년간 수많은 연길사람들이 대를 이어 견지한 식수조림과 지방정부의 드팀없는 ‘봉산육림’ 방침정책의 결실로 1992년 11월에 드디여 국가급 삼림공원으로 전면 승격되였으며 그 후 지속적인 투자건설을 거쳐 ‘국가4A관광풍경구’란 황금빠찌를 달게 되였다. 모아산의 자랑을 한입으로 다 말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헌데 ‘옥에 티’ 라고 해야 할지 모아산 삼림공원에도 국가급이란 그 명찰을 무색하게 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한마디로 ‘중점구역’과 ‘일반구역’간의 불균형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는 점이다. 모아산 삼림공원 입구 쪽 즉 주봉 입구 주변의 인프라는 국가급에 전혀 손색이 없다. 헌데 공원의 총 부지면적이 1100헥타르라고 할 때 이 ‘중점구역’은 엄연히 모아산 삼림공원의 얼굴이긴 하지만 그 면적은 전체 부지의 10퍼센트에도 못미칠 것이다. 문제는 천여헥타르에 달하는 ‘일반구역’의 인프라가 너무 뒤진다는 점이다. 첫째, ‘일반구역’에는 수년간 괄목할 만한 건설대상이 고작 하나에 그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2008년에 총길이가 7키로메터이고 폭이 2메터인 콘크리트 로반(路基)에 대리석 등 자연석을 깐 등산길 즉 성신로(诚信路)를 닦은 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 구간에 배치된 15개 벤취마저도 거의 전부가 연길시 북산가두 뢰봉반에서 2014년 7월 1일에 기증한 것으로 표기되여있다. 경제래원이 전무한 비영리 사회봉사단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참으로 신선하고 경이롭다. 둘째, 나름 대로 적당한 리유는 있었겠지만 기존에 있던 시설마저 철거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연변호텔 쪽에서 시작하는 등산길 성신로를 따라 약 30분 정도 산행을 즐기다 보면 첫번째 샘물터를 만나게 되는데 그 곳엔 워낙 정자 한채가 있어 여러모로 등산객들에게 많은 편리를 주었다. 헌데 언제 사라졌는지 정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4개의 주추돌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 시설은 건축 못할망정 기존의 멀쩡한 정자마저 철거한 그 저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결과적으로 보면 천여헥타르에 달하는 ‘일반구역’에 정자의 씨가 말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급이 아닌 일반적 아빠트 구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정자를 말이다 . 셋째, ‘일반구역’에는 애초부터 공중화장실이 없었다. 인류문명과 더불어 아프리카 원시림 원주민들도 차츰 화장실 문화를 접수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오늘날에 1100헥타르에 달하는 국가급 풍경구에 화장실이 달랑 한채 밖에 없다 보니 유독 모아산에서만 본의 아니게 목격할 수 있는 난처하고도 민망한 광경이 자주 발생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바이다. 상술한 상황에서 만약 환경오염을 고려하여 화장실 건축을 보류했다면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본다. 모아산 삼림공원 프로필을 자세히 읽어보면 주차장 동쪽에 유일하게 건축한 ‘미생물순환 화장실’ 그 핵심기술은 국내선진 기술인 미생물처리 공법이여서 악취는 물론 환경오염도 전혀 없다고 소개되여있다. 만약 재력부족이 그 리유라면 얼마간 리해가 될 법도 하겠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다 싶이 연길시는 다년간 치렬한 경쟁 속에서도 ‘전국 백강 현시’란 보좌를 굳건히 지켜왔다. 재력 및 종합실력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당시 총체적인 설계도를 검토할 때 면밀하지 못하여 인기된 시행착오가 아니겠는가 하고 감히 짐작해본다. 만약 상술한 관점이 설득력이 있다면 아래와 같은 몇가지 건의를 제기한다. 첫째, ‘전국문명도시 쟁취활동’ 큰 틀내에서 ‘모아산 삼림공원실태 및 금후투자방향’을 전방위적으로 재검토하여 실효성를 전제로 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국가급’ 문명도시 건설과 ‘국가급’ 풍경구 건설은 배척관계가 아니라 호상 보충하고 호상 추진하는 공동체라는 리념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삼림공원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길빈하공원’ 건설 노하우에서 해답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 공원이든 풍경구이든 사람이 우선이란 원칙을 견지하여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인위적으로 조성된 ‘옥에 티’를 조속히 제거하여 모아산 삼림공원으로 하여금 국가급이란 ‘골든 타이틀’에 걸맞는 명실공히 4A관광풍경구로 연길시는 물론 더 나아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금산 은산’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해야 할 것이다. 길림신문/황동수(공무원)
57    우리는 무엇에 가치를 부여하는가(정련) 댓글:  조회:1340  추천:0  2019-10-08
갤럭시 노트10이 나오면 폰을 바꾸겠다고 버티던 지인이 있다. 폰은 바꾸었는지 모르겠으나 갤럭시가 나의 관심사였던 적은 한번도 없다. 150만원의 아이폰을 주저 없이 사대고, 맥북에 애플 전 라인을 시도해본 나에게 있어서 "나오면 바꿀꺼야"는 상당히 납득이 되는 얘기다. 돈이 많아 넘쳐서도 아니고 신상에 환장해서도 아니다. 그냥 내가 "돈"을 써서라도 얻고 싶은 하나의 확실한 가치를 "애플"은 나에게 주고 있다.   우리는 무엇에 가치를 부여하는가.   인생관, 가치관이라는 고리타분하고 애매한 이야기보다 나는 내 기준에서 "가치"를 부여하는 현실적인 카테고리를 이야기 해보고 싶다.       1.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   내가 가장 쓸데 없이 시간을 썼다고 느꼈던 것은 단순한 "폰게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쓸데 없지는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정확히 한계적이고 그래서 더 아껴써야 하는 것이 시간이다.   어제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 왔는데 딸들이 늦게까지 안자고 있다고 남편한데 혼나고 있던 터였다. 려행 후 정리 안된 짐과 많은 것들이 나의 신경을 긁었지만 나는 그들을 제쳐 놓고 두가지 일을 했다. 두 아이에게 "갯벌에서 사는 생명체"와 관련된 만화책을 읽어 주었고 남편과 기대어 오붓하게 TV를 한참 봤다.   내가 운전 출퇴근을 선호하는 리유는 집과 직장 사이의 "길"에 가장 짧은 시간을 쓸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막상 지하철에서 책 읽고 게임포인트를 쌓지 못하면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너무 아쉬운 "강박적" 성향의 나다. 시간이란, 나의 생명 세포세포이고 내가 물리적으로 소유한 것의 전부다.   내가 시간을 내여 만나는 사람, 시간을 내어 걷는 길, 시간을 내여 하고 있는 사랑, 내가 나 그리고 내 인생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들만 골라서 한 것이고 또 그렇게 해 나갈 것이다. 나에게 희열과, 행복과, 인내와, 편안함을 주었던 나의 "시간"에 대하여 뿌듯하게 생각한다.   돌아와서 다시 나의 소소한 폰게임을 이야기 하자면 내가 정말 좋아하고 TV를 볼 때, 화장실에 갈 때, 지하철에서 앉지 못할 때 나에게 엄청난 만족을 준다. 애니팡 포코팡 지인 1위는 물론, Player 상위 0.15%, 다른 그림 찾기 코인 모으기(사실 힌트를 얻기 위한 코인이지만 이게 쌓이는 것이 이렇게 좋다), 캔디크러쉬는 항상 개발자의 새 게임을 기다리는 등이다. 머리 속에서 뭔가 내려놓는 것이 좋아서 인지, 아니면 정말 딱 뭐 하나만의 생각에 집중하기 위한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냥, 나는 이 아무 의미 없는 게임의 결과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나를 리해하거나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인간은 원래 미스터리하고 나처럼 생각이 많은 인간은 더더욱 미스터리 할 테니까. 머리 아팠던 시간은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으나 선택한 것들 때문에 따라오는 후유증이라면 풀려고 영화 보고 공부 하고 소설 읽고 그냥 묻어 둔다. 저질러 놓은 무언가를 해결할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2. 돈은 어디에 쓰는가   나나 남편이 "돈"에 조금 더 영민하고 연연했다면 지금쯤 우리 집의 두배가 되는 집에서 살고 있겠지만, 우리는 돈을 그렇게 쓰지 않는다.   친구가 SNS에 "이거 가지고 싶다"라고 사진을 올렸는데 가볍게 "그럼 빨리 가져"라고 댓글을 달았다.   신혼 초기에 새댁의 살림마인드로 가계부를 쓴 적이 있다. 일주일 뒤 나는 가계부란 다이어트할 때의 식사 메모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식사 메모란 내가 정말 많은 것을 먹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가계부란 내가 정말 많은 돈을 썼구나를 알려줬다. 그 다음, 가계부를 쓴 적이 없었다.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아주 순수한 말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어머니께서 "애키우고, 집도 사고, 돈 쓸 일이 많은데, 먼 용돈을 이렇게 줘…"라고 하시면 나는 "어머니, 돈은 이렇게 쓰려고 버는거죠"라고 한다. 나는 우리 집의 엥겔지수가 높다고 늘 롱담처럼 이야기 하지만 가계부를 써보면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어디든지 바로 먹는다.   서점 냄새 속에서 바로 Get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10% 더 비싸게 항상 산다. 호구 소리 늘 듣지만 나는 그냥 호구 이고 나는 꼰대이고 나는 머리 긁적이며 내가 그렇지, 라고 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얻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련애하는 남녀 중에 남자가 돈을 써서 뭔가를 사준다는 것은 단순하고 간편한 그 생물 종의 직관적인 애정표현이라고 한다. 나를 위해 돈을 안 쓰는 남자는 마음도 안 쓰고 있을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물론 사랑을 위한 만남만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니 확대해석은 하지 않기 바란다.       3. 마음은 어디에 쓰는가   최근 네이버 과학에서 이별의 아픔에도 타이레놀을 먹으라는 글을 봤다. 우리 몸이 느끼는 아픔은 사고가 났을 때 느끼는 통증과 같다고 한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는 유물론적 세뇌교육을 받은 나지만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미세신경반응의 개똥과학에 걸어보고 싶다.   사윤이(10살, 3학년, 개인정보 로출을 꺼려하지만 실명 거론함)가 2학년 때 힘들만한 일이 있어 단둘이 손 잡고 산책을 나간 적이 있다.   "엄마는 사윤이가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게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고마워. 하지만 사윤이가 슬프고 화나고 속상한 일도 엄마한데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어. "   "엄마, 나는 속상한 일은 잊어버리는게 좋던데."   "사윤아, 엄마가 해봐서 아는데 속상한 일은 잊어버린 것 같아도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서 사람을 아프게 해. 화를 내고 울고 이야기하면서 풀어야 되더라고. "   "그렇구나. "   "그럴 일이 있으면 엄마랑 같이 소리지르고 화내고 해볼까? 우리 같이 하자."   "그래."   웃었던 순간은 잊혀지고 울었던 순간의 기억은 오래 간다는 연구보고와 책이 상당히 많다. 웃고 우는 것, 또한 그 시간 그 상황에 대한 내 몸의 대처에 지나지 않겠지만 누구에게는 상처 받고 누구에게는 괜찮은지는 분명 많이 다르다.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를 하고 누구에게 상처를 받는가.   그 사람은 싫든 좋든 내가 "가치"를 부여한 사람일 것이다.   4.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가치   나는 목표 지향적이고 저돌적이고 심지어 가끔 공격적이고 무모하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해내고 살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았던 많은 것에 눈을 감고 마음을 닫고 살았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물론 뭔가를 얻는 것보다 내려놓는 것이 어려운 법이기에 내가 지금 느끼는 "가치"를 소홀히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가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닿지 않는 리념, 희망 같은 것도 조금 그려볼까 한다.   한때 정체성 이야기의 좁은 골로 빠져서 살던 시기가 있어서 정체성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마냥 거슬렸었다.   지금 많이 론의되는 현실의 모양과 먹고 살기 위한 길이 아니라 단순하고 무모하더라도 누군가 따라가고 싶은 길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을 요즘은 좀 하게 된다.   우리는 어디에 가치를 부여하는가   우주의 어느 새 별을 발견하여 나의 이름표를 붙이는 일이 세대에 세대를 이어 바다를 메워 베네치아를 만들어낼 정도의 유전자적 공포("감동, 너무 주관적인 이태리 기행" 참조)만큼의 크나큰 꿈이 된다면 나는 나의 아이들은 우리는 100년 뒤 어디쯤에서 뭘 하고 있을까. 술집에서 떠들지 않는 교양 같은 것으로 삿대질 하면서 싸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련 약력: 흑룡강성 상지시 조선족중학교. 2002년 흑룡강성 문과 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02학번, 학부 졸업. 동북아신문 칼럼니스트. [업무경력] 2006년 9월~2010년 9월 우리에프앤아이(우리금융그룹 자회사, 현재 대신에프앤아이), 투자팀. 2010년 10월 ~ 2014년 6월 동양증권(현재 유안타증권) IB부문 기업금융업무. 2014년 6월 ~ 현재 유안타증권 기획팀, 비서팀 팀장. 동북아신문
56    브랜드와 기업의 가치□ 김준환 댓글:  조회:1491  추천:0  2019-09-27
  요즘 브랜드가 뜨고 있다. 명표브랜드 이름만 달려도 술술 팔리는 세상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명품브랜드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질이 담겨있다. 명품브랜드가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소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브랜드 전략으로 성공한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2015년에 우리 주는 질량강주 및 브랜드 전략을 전면 실시하여 전 주 제품 질의 총체적 수준을 힘껏 끌어올렸다. 2015년 12월부터 시작하여 2018년 12월까지 유효기간인 길림성 브랜드 기업과 제품은 각각 11개와  11가지이며 연변 브랜드 기업과 제품은 각각 7개와 7가지에 이른다. 연변은 입쌀, 소고기 시장에서 국내 5위의 큰 시장으로 불리우고 있다. 연변소는 연변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굳건히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한때 연변소가 좋다는 건 널리 알려졌지만 브랜드가 없어 소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았다.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았지만 구심점을 찾지 못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에 룡정장백산분복청진육업유한회사가 브랜드 전략으로 연변소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룡정장백산분복청진육업유한회사는 우선 사육기지,도축장과 선별장, 저장실 등을 갖춘 현대가공사업장을 설립해 제품개발에 주력했다. 또 이곳저곳에 흩어진 브랜드를 통합해 ‘분복’이란 이름을 달고 품질관리에 나섰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지난 2006년 4월부터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갔다. 품질이 좋은 소고기를 엄선해 발효, 숙성시킨 소고기를 개발하는 등 명품 소고기를 내놓은 데서 매출이 빠르게 성장했다.   2006년 설립 첫해에 80만원의 매출에 이어 2014년에 6000만원의 매출을, 2015년에는 7000만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으며 지금은 매출 1억원을 훌쩍 넘기면서 짧은 시간 안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회사는 지금까지 제품을 조직화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이제부터는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마케팅 능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며 명품브랜드가 붙은 상품이 얼마나 우수하게 만들어지는지를 나타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에는 가공공장 안에 판매장은 물론 견학시설 등으로 고객들을 맞아 앞장서 ‘분복’의 명성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도 들어있다. 기업의 브랜드 전략은 이젠 필수다. 브랜드는 기업이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조건으로 되고 있다. 단순히 제품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브랜드로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야만 기업이 성장할 수 있으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브랜드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 연변일보 
55    그 곳이 차마 꿈엔들…(리은실) 댓글:  조회:1486  추천:0  2019-09-16
리은실/민족출판사 조문편집실 편집 이태전에 중국당대문학작품선집에 수록된 산문 몇편을 번역한 적이 있다. 그중 라는 제목의 산문 한편이 기억난다. 훌룬부이르초원을 찾은 한 년로한 작가의 애수와 탄식이였다.  그 아름답고 넓디넓은 훌룬부이르초원의 목초지들이 당지 목민이 아닌 타고장 상인들의 차지가 되여가는 것을 작가는 안타까와하고 있었다. 그 곳 목민들의 젊은 자식들은 모두 그 아름다운 초원을 떠나 가까운 도시에 진출했던 것이다.  “그들은 말 타는 것을 좋아했지만 외로운 방목생활을 즐기는 것은 아니였다. 그들은 ‘몽골포’와 ‘젖차’를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고 청바지를 입고 ‘마라탕’을 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들은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월급쟁이로 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다시 예전처럼 아버지에게서 ‘투마간’을 물려받아 선대와 같은 생활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타인의 손에 넘겨주는 순간 바로 전통과는 멀어지게 된다.” 저자는 그 젊은이들의 도시진출을 이렇게 안타까와하면서 개탄했다.  읽다 보니 이런 한탄이 퍽 낯설지는 않았다. 우리말 신문에서, 잡지에서 이런 개탄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온 것 같다.  “해외, 내지 대도시에로의 진출로 인해 우리의 조선족 농촌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땅을 지켜야 합니다. 한치 보기로 당장 눈앞의 리익만을 쫓으면 안됩니다.” 한동안 여러 매체들에서 이런 구호들을 많이 웨쳤다. 마을이 비고 우리 민족의 공동체가 해체될가봐 너무 안타까와서 웨친 줄로 알고 있다. 물론 필자도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러나 오늘 필자가 말하고저 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그들이 왜서 정든 고향을 등지고 해외로, 도시로 갔느냐는 문제이다. 내 부모님은 작은 진 마을의 국영공장에 근무했다. 지난 세기 1990년초 쯤, 국영공장은 파산되였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리실업 비슷하게 퇴직을 하고 말았다. 그 때 이미 년세가 많으셨던 부모님들이라 해외행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아니 못했지만, 그 때 다 성장한 두 오빠가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학업을 완수할 수 있었을가 하는 의혹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옆마을에 사는 이모네는 딸 둘을 키우면서 마을에서 땅을 부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나오는 수입으론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집안형편을 속속 헤아린 언니는 고중을 졸업하자 마자 스스로 일본류학을 택했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어 택한 류학행은 아니였다. 혼자서 학비도 벌 수 있고 가정에 보탬도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노래를 잘하고 풍금도 제법 잘 쳤던 동생은 유아사범전문학교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을 생각하고는 전문학교 입학을 포기하였다.  만약 두 딸이 모두 국내에서 대학을 다녔더라면, 이모네가 농사만 지었더라면 과연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할 수 있었을가?  해외행과 도시행은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수입이 얼마 되지 않는 땅을 파다가 실망한 농민들이 할 수 없이 선택한 길이였을 것이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개인의 삶이 공동체를 위해 영위되진 않는다. 또 그러해서도 안된다. 인간에게는 공동체의 발전보다 당장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의 세끼 밥이 더 절박하다. 그런 걱정을 안해본 사람의 이러쿵저러쿵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인류력사상 세계 그 어느 나라, 민족이든 근대화에 들어서면서 경제발전의 흐름에 따라 공동체사회 구조에서 리익사회 구조로 전환된 것은 모두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외국이나 대도시의 삶을 선택한 이들중에는 물론 어떤 환상이나 꿈에 부풀어 무작정 고향을 떠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서두에서 인용했던 글 속의 젊은 목민들처럼 말이다. 더 좋은 삶을 향한 그 소박한 욕구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도시의 유혹은 강렬하다. 초원을 사랑하고 말을 사랑하지만 그들에게 도시의 번화함은 강렬한 유혹일 것이다. 그 유혹에 꿈틀대는 젊은이의 욕망이 왜 문제시되여야 하는가? 누가? 무엇 때문에? 무슨 자대로? 이모들중에서 넷째 이모가 제일 처음으로 도시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이의 공부를 위해서 분연히 시골을 떠나 연길에 간 것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연길에서 넷째 이모네는 발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연길 호적이 없는 아이들에게서 돈을 많이 거뒀는데 그 호적을 해결하느라 또 없는 돈을 써야 했으니 이모네는 꽤 오래동안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세집살이를 해야 했다.  코구멍만한 세방 귀퉁이에 설치된 수도가에서 세수하고 물을 버리면 하수도로 물이 꿀렁꿀렁 흘러들어가는 소리가 잠시 후에 주인집 쪽에서 들리군 했다.  조선족사회의 해체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 발전의 과정이지 않을가 싶다. 그들은 땅을 떠났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고향에 두고 있다. 가끔 고향의 희소식이 날아들 때면 그들은 기쁨에 겨워 눈굽까지 적시며 정든 고향의 이야기로 날이 새는 줄 모른다. 그들은 글로, 축구로 고향을 소환하고 서로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있다. 또 한국에서, 일본에서, 북경에서, 상해에서… 겨레의 단체들이 일떠서고 있다. 몸은 고향을 떠났어도 마음만은 흩어지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 산업으로 도시와 농촌이 융합을 이루면서 해외에서, 내지 도시에서 돈깨나 좀 번 일부 조선족기업가들이 고향에 돌아와 창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향의 아름다운 미래가 각일각 눈앞에 펼쳐질듯 싶다. 때문에 떠나가는 사람들에게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날 것이요”, “그렇게 떠나면 이 땅은 어찌하란 말이요?” 하는 텅 빈 감정적 호소보다는 그들의 떠날 수 밖에 없는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가. 그 고민 우에서 다시 해결책에 대한 론의가 나오는 게 순서일 것이다.  보다 발전하고 부강해진 고향에서 우리가 다시 모여 공동체를 꾸려가고 오손도손 살아갈 날을 꿈꿔보기도 한다. 비록 갈길은 멀고도 멀지만 모두가 신심만 가진다면 뭐나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5G시대이다. 초고속, 초저지연, 초련결이라는 특징으로 대표되는 5G세상! 땅 하나에 매달리지 않아도 우리의 련결망은 촘촘하다. 가상의 공간에라도 우리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그 안에서 공동체를 재구축한다면? 다시 그 속에서 우리가 나갈 길을 고민해본다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길림신문
54    ‘조선말 새 규범’을 두고(김미월) 댓글:  조회:2163  추천:1  2019-09-09
일전 모 대학에서 ‘조선말 새 규범’에 관한 무료강연을 조직하였다. 세차례에 걸쳐 한주 동안 진행된 강연이였는데 조선어로 먹고 사는 한 사람으로서 강연 내용에 눈독 들여야 마땅하지만 필자의 주의를 끈 것은 오히려 홍보포스터였다. 새 규범의 문장부호법 대로 쓰지 않은 문장부호 두개가 버젓이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연이 끝나는 날까지도 오점을 그대로 달고 활보했다는 것은 마음 아픈 사실이요,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 해설’이라는 내용으로 하는 강연의 홍보포스터에서 거듭서명표를 써야 할 곳에 서명표가 씌여져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홍보포스터가 강연자와는 무관한 일일 수도 있고 조선말 새 규범을 접촉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만들었을 수도 있다. 또 아무리 새 규범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이라도 실수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포스터가 한주 동안 위챗모멘트를 도배했고 여러 조선족 공식계정에도 ‘당당히’ 올라있었다는 것이다. 우의 사실은 두가지를 설명해준다. 하나는 습관이고 다른 하나는 관심이다. 어느 개인이나 집단을 물론하고 모두 기존의 습관을 유지하려는 힘 즉 새로운 변화와 발전에 저항하는 힘이 있다. 하기에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습관으로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조선말 새 규범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언어실태에 비추어 조선반도와의 공동성분을 늘이고 과학성, 련속성, 점진성, 대중성을 골고루 구현하였으며 실제 언어생활에서 많은 편이를 가져다줬음에도 불구하고 규범이 바뀌는 주기가 짧은 것을 비롯한 여러 원인으로 변화에 저항하는 힘이 꽤 오래갈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1988년 《표준어사정원칙》을 반포한 이후 큰 틀에서의 변화가 없이 30여년간 하나의 규범으로 서사생활을 해왔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한국어맞춤법 때문에 혼란을 겪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은 거의 십년에 한번씩 규범이 변해왔다. 물론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지만 변화를 통해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은 그대로 두거나 변화를 가져오더라도 대부분의 언어사용자들이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쪽으로 규칙이 정해졌으면 한다. 2016년에 새로 나온 《조선말규범집》과 《 해설》(2019.2)을 보면 확연한 변화를 가져온 몇개 부분은 리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울 법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변화된 부분이 자지레하게 많다. 하여 새 규범이 반포된 지 3년이 돼가는 지금도 가끔은 무진기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일례로 《 해설》의 띄여쓰기부분에서 보면 “수사가 인체기관 이름과 결합될 경우에는 띄여쓴다.”고 함으로써 종전과는 달리 규정하였다. 그러나 “단 사전에 오른 ‘한손, 한발, 한눈, 한입, 두어깨, 한몸, 한가슴, 한다리…’는 붙여쓴다.”고 례외의 경우도 설정해놓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수사와 인체기관 이름이 결합될 때는 무조건 사전을 찾아서 올림말로 올랐으면 붙이고 오르지 않았으면 띄여써야 한다는 말인데 편집이나 교육 과정의 번거로움은 둘째치고 참고해야 할 사전의 범위도 모호하다. 또 사전에 오른 단어라 할지라도 본의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전의로 쓰이는 경우도 있는데 차라리 “수사와 인체기관 이름이 결합될 때 띄여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전의로 쓰일 경우에는 붙여써도 된다.”고 한다면 구분도 명확하고 사용에 있어서도 더 편리하지 않았을가? 그러면 사용해오던 언어습관을 고치는 데도 무리가 가지 않고 좀더 쉽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기왕 반포된 규범,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사용하도록 노력하여 한국어와의 혼용, 예전 규범과의 혼용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들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들이다.”는 다윈의 교시대로 새 규범이 교육이나 출판 관련 일군들만의 일이 아닌 우리 조선족 모두의 공동의 관심사로 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이 내린 뿌리에서 조선말이 튼실한 가지로 자라 오래오래 자기만의 색갈을 뽐냈으면 좋겠다. 흑룡강신문
53    [대림칼럼] 언행의 품격을 갖추자(곽미란) 댓글:  조회:1554  추천:10  2019-08-19
5월 21일은 한국에서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부부의날”이다. 이날, 랭면생각이 간절하여 대림역 11번 출구에 위치해 있는 화룡랭면식당으로 가면서 보니 거리 풍경이 색달랐다. 영등포경찰서의 순경 십여명이 조를 지어 거리를 순라하고 있지 않은가.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은 순경들이?…나는 대뜸 며칠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동영상을 떠올렸다. 술 취한 조선족 남성이 경찰에게 욕을 하고 뺨까지 때린 사건이였다. 두마디 안짝에 욕을 퍼부으며 손찌검까지 하는 모습은 존대말을 꼬박꼬박 쓰는 한국 경찰의 언행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하긴 대림동 하면 나는 정겨운 고향 분위기나 입에 맞는 음식보다는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거북한 욕지거리부터 떠올리게 된다.   왜 그럴가? 같은 동포 출신이지만 솔직히 나는 대림동중앙시장이 있는 대림역 11번, 12번 출구에 도착하면 대번에 불온한 기온을 느끼게 된다. 지하철 출입구 계단에서부터 눈과 귀에 들어오는 화면을 보자. 술에 취해 핸드폰을 들고 어느 녀인에게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전화를 하는 아저씨의 모습, 삼삼오오 떼를 지어 노래방 앞에서 혹은 식당 앞에서 남정네들이 말끝마다 쌍소리를 섞어가며 목에 피대를 세우는 모습, 대낮에 이미 얼근히 취해서 량 겨드랑이에 녀자 한명씩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등 불미스러운 모습들에 눈살이 찌프려진다. 솔직한 심정이지만, 나는 내 딸애를 대림역 근처에 데려가는 것도 저어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한국에 온지 10년 됐소, 20년 됐소, 하는 일부 조선족들은 한국의 상냥한 서비스문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욕설만 일취월장한 것 같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 갚는다”, “말이 씨가 된다” 등 고운말, 바른말에 대한 속담들이 참 많다. 그런데 하필이면 욕설이 마치 한국말의 정수라도 되는 듯 입만 열면 육두문자를 쏟아내고 있으니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왔다고 우리가 고향에서 쓰던 말을 다 버리고 어설픈 서울말을 흉내내자는 게 아니다. 연변에서, 료녕에서, 흑룡강에서 우리가 어릴 적 배운 말을 악센트들을 고치지 않더라도 좀 더 교양있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나는 서툰 서울말보다 투박한 내고향 흑룡강 말이 훨씬 듣기 좋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언행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고 나아가서는 한 사람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나, 조선족이요"하고 당당하게 밝히며 사는 건 참 보기 좋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조선족들 참 례의바르고 존경스럽다"는 느낌이 들게 행동을 하면 좋지 않을가. 듣기 거북한 말 한마디, 잘못된 행동 하나로 조선족의 위상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걸 나는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다.   한국에서 발발했던 미투운동을 보자. 문학계, 예술계, 정계가 한동안 떠들썩했다. 피를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남성들은 술좌석이나 모임장소에서 저급한 롱담과 음담패설을 수시로 툭툭 뱉어낸다. 본인은 그것이 술상 분위기를 돋구는 위트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엄연히 언어성폭력이다.   문인들도 례외가 아니다. 어느 한번 나는 문단에서 꽤 알려진 한 조선족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였다. 그자리에는 그분이 모셔온 한국 문인 몇분도 함께 했는데 그 조선족시인은 식사를 시작해서부터 끝날 때까지 "X새끼, XX년"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거기다가 오랜 세월 현장 생활에서 몸에 밴 높은 목청으로 식당이 떠나갈 듯 고아대니 일행인 나는 너무 듣기 거북하여 몇번이고 자리에서 당장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물론 그후엔 두번다시 그 시인을 만나지 않기로 했다. 3D업종에 종사하다보니 거친 말투가 몸에 뱄고 현장에서는 걸쭉한 롱담이나 거친 육두문자들이 귀맛좋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발 누울자리 앉을자리 봐가며 발을 뻗자. 어디까지나 글을 쓰는 문인답게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한국에서 글을 쓰는 개별적인 조선족문인들이 언행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전반 조선족 문인들을 욕보이게 된다.   화룡랭면집에서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서 나는 문이 활짝 열려진 어느 식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 심기가 불편해졌다. 60세좌우로 돼보이는 한 조선족남성이 서빙을 하는 20대중반의 아가씨에게 “미금아, 노래방 가자”하고 막말을 내뱉는 걸 들었던 것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 흐린다”   제발 언행에 신경쓰자. 한 사람의 언행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 민족이며 나라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대림동 조선족 경찰 폭행사건 같은 경우엔 공무집행방해죄로 추방당한 후 비자신청을 아예 할 수가 없어 두번다시 한국에 입국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술먹고 사소한 실수가 일으킨, 돌이킬 수 없는 후과이다.        곽미란 략력 (필명: 백한) 흑룡강성 탕원 출생, 숭실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 졸업.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출간. 소설 "로마로 가는 길", "이 밤은 아름다워", "먹골에는 겨울에도 비가 내린다" 발표. 재한동포문인협회 소설분과 부분과장. 동북아신문
52    [두만강칼럼]방관자의 리기주의(윤윤진) 댓글:  조회:1547  추천:0  2019-08-13
길림신문/윤윤진(길림대학 교수) 얼마전에 한 로작가를 만나 우리 문단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목하 우리 문단의 병페를 진맥하면서 최대 문제는 ‘인성 또는 인간성의 부재’라고 일갈하였다. 평생을 문학에 바쳐온 한 로작가의 일장 열변을 들으면서 나는 다소 노기 어린 로작가의 대성질호에 지금 확실히 그런 현상이 가끔씩 존재하고 있다고 동조하면서 그의 일갈에 일리가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전 모 신문에 게재된 내용이다. 한 녀성이 자결하려고 높은 층집 우에 올라가 서있는데 소문이 퍼지자 그 광경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더 한심한 것은 누구 하나 그 녀성을 제지하지 않았고 지어 어떤 사람은 핸드폰으로 그 천하없는 명장면을 찍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어떤 이는 한식경이 지나도 뛰여내리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다리기에 지쳤다면서 “어서 빨리 뛰여내리라”고 손짓에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녀성이 왜 그런 ‘비장한 선택’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필경 한 생명의 종말은 사람들의 동정을 받아야 할 일이며 적어도 인간으로서는 그러한 행위를 제지해야 한다. 한사람의 죽음 앞에서 방관자 즉 다른 한 생명들이 나타낸 인간성의 ‘민낯’이다. 수많은 방관자들의 인간성이 이 정도이니 인간의 정신문명 건설은 홀시할 수 없는 과제로 나서고 있다. 불현듯 근대 일본의 저명한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龙之介)가 떠오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소설에서 언제나 사회와는 일정한 간격을 두면서 추악한 인간사회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보았다. 인간 사이의 랭혹한 관계와 그러한 랭혹한 관계 때문에 나타나는 인간사회의 비극을 바라보는 방관자의 극단적인 리기주의에 대해 랭철하게 꼬집고 있다. 이는 근대 물질문명에서의 인간과 인간비극을 바라보는, 자신의 리익만 생각하는 방관자의 랭혹한 인간성을 가장 철저하게 파헤쳤다고 할 수 있다. 자기와 상관이 없다면 옆에서 누가 죽어간다고 해도 시종 방관자로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사회도덕의 병페, 그리고 방과 후 아이가 잃어졌다는 소식, 어디서는 아이가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졌다는 소문이 전파를 타는 요즘이다. 사회의 발전은 물질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전례없던 부를 창조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하지만 진정한 사회의 진보는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원래 가난하던 사람들이 여유가 생기니 더 무섭다. 세상이 손바닥 만큼 보이는 모양이다. 일궁이백(一穷二白)의 중국은 개혁과 개방을 통해 거대한 부를 창조하면서 G2의 반렬에 들어섰다. 경제 총액이 벌써 일본을 저만큼 따돌리고 미국 버금으로 간다. 이제 10년, 20년만 지나면 미국도 추월하고 ‘넘버원’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성은 그러한 급성장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성이 날로 엷어지고 인성이 소실되고 있는 시장경제시대이다. 시장경제는 언제나 자기 론리로 사회질서를 잡아간다. 이른바 시장 론리란 바로 금전, 돈, 가격과 가치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론리이다. 금전은 모든 대상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로 시장과 사회를 지배한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그것에 의해 좌우되니 안타깝기만 하다. 시장경제, 오늘의 안목으로 보아 이것은 우리 인류사회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한 단계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장경제는 인류에게 거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으며 최상의 써비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오늘날 우리 어느 누가 시장을 떠나 살 수가 있으며 경제를 떠나 생존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변증법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물은 동전의 량면이며 량면의 칼이다. 말하자면 모든 사물은 좋은 점을 가지고 있으면 나쁜 점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말이다. 빅도르 유고는 미는 추의 옆에 있고 악은 선의 옆에 있다고 하였는데 사실은 옆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와 추는 영원히 공존하는 것이고 선과 악도 여전히 공존하는 것으로 미가 있으면 영원히 추가 있을 것이며 선이 있으면 악도 있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미가 추로, 추가 미로, 선이 악으로, 악이 선으로 전환할 수 있다. 같은 시공간에서도 어떤 사람에게는 미로, 어떤 사람에게는 추로, 어떤 사람에게는 선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악으로 될 것이다. 이것을 굳이 말하자면 미추의 상대성, 선악의 상대성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장경제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이기에 인간성이 구비돼야 한다. 이것은 인간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다. 때문에 우리는 인간성을 뒤로 한 리기주의 성행에 대비해 효과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중국인민들의 행복과 중화민족의 부흥을 도모하는 것을 새시대 인간들의 초심과 사명으로 삼고 효과적인 대책을 대여 리기주의자들이 하루속히 ‘금전만능’에서 헤여나와 남을 돕는 것을 락으로 여기게끔 이끌어줌이 절실히 필요하다. 여기에서의 관건은 사회주의핵심가치관을 인간학의 지침으로 삼는 것이다. 끝으로 인성교양은 어릴 때부터 틀어쥐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 특히 부언하고 싶다. 길림신문
51    [대림칼럼]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에 대해서(엄정자) 댓글:  조회:1461  추천:0  2019-08-12
오늘 아침 『텔레비 아사히』(テレビ朝日)의 “하토리 신이치의 모닝쇼”에서 개시 3일 만에『아이치 트리엔 날레』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코너가 중지당한 일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아이치 트리엔 날레』는 2010년부터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 예술제이다. 이 예술제의 한 코너로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서 위안부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하였다. “표현의 부자유전”은 2015년에 개인 전시회로 열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아이치 트리엔 날레』에 전시하게 되였다.     15년 전의 “표현의 부자유전”   예술감독을 맡은 스다 다이스케(津田大介)는 이 코너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공립미술관에서 전시 후에 철거당하거나 거부당한 작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용납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실행위원회 회장 대리인 나고야시 카와무라(川村) 시장이 “상당히 많은 거의 전부에 가까운 일본국민이 반일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발언하며 회장인 오무라(大村秀章) 현지사에게 즉각 중지할 것을 제기하였다. 그러자 뒤이어 스가(菅義偉) 관방장관은 “보조금 교부 결정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세밀한 조사를 거쳐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다.”라고 발표하였다. 이때문에 대소동이 일어났다.   많은 메일 전화가 쇄도하였는데 그중에는 테로 예고 협박 내용도 있었다. 결국, 안전상의 문제를 고려한다는 명의하에 3일 만에 전시회가 중지되였다.   8월 5일 오무라 현지사는 카와무라 시장의 발언은 “헌법 21조의 금지된 “검열”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문제없다”라고 하면서 “행정이나 관청 같은 섹터이기에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자기 마음에 안드는 표현이라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의견을 말했다.     항의성명을 제출하는 아티스트들.   예술제에 참가한 72명의 아티스트들도 이 결정에 대하여 “일부 정치가들에 의한 폭력적인 개입과 페쇄로 몰아넣는 협박과 공갈에 강력하게 항의한다.”라고 련명으로 항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에는 구체적인 리유도 없이 누가 어떻게 판단해서 중지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는 등 7가지 항목을 제기하였는데 10일까지 답변을 요구하였다.     헌법 위반에 대해 해설하는 법학 교수 무라키 소타.   해설자로 나온 무라키 소타 법학 교수는 “이번에 카와무라 씨의 일련의 발언은 헌법위반의 혐의가 극히 농후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면서 “세금을 쓰고 공권력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코멘테이터 다마카와 아키라.   코멘테이터인 다마카와 아키라(玉川徹)는 “선진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카와무라 시장은 헌법공부부터 해야 하겠다. 테로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라고 비판했다.   도쿄예술대학의 모리(毛利嘉孝) 교수는 “‘국제전’인 만큼 각국의 사람들이 온다. 그들은 자기 나리의 의견을 대표한다. 일본의 나라를 대표하는 작품만 전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이후에도 공적자금이 투입된 전시회에서 과격한 발언을 하면 중지시킨다고 생각하는 류사범이 계속 나올 우려가 있다”라고 하면서 전시회의 중지를 반대했다.   이번 소동에서 전시회에 대해 가보지도 않고 여론의 흐름에 따라 떠드는 사람들이 많았고 공갈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특히 포퓰리즘 정치가들의 발언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웠으나 언론과 학자들은 카와무라 시장의 언행은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데 의견이 모여지고 있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 전시된 작품들은 정치적인 리유로 전시되지 못했거나 전시를 중지당한 작품들이다. “평화의 소녀상”도 마찬가지이다.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민주국가에서 이번 일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짓밟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자키 데츠야(小崎哲哉)는 『뉴스위크』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썼다. 이번 이 일을 통해서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얼마나 어이없는 반민주주의자들인가 하는 것이 다 알려졌다. 그렇다고 해서 ‘검열의 가시화(可視化)에 성공하였다.’ 고 들떠서는 안된다. … 그래서 분별이 있는 사람은 계속 싸워야 한다. ‘정의는 꼭 이기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픽션(허구) 안에서만이다. 현실사회에서 ‘바른 것’은 계속 싸워서 이길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가 악화되여가는 현실 속에서 이번 소동은 지금의 현실을 다시 돌이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였다. 특히 한국 비판 일색이던 언론도 이번 일에서는 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이번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들여다보려고 하였다.     신오쿠보 코리안타운. 사진출처 aumo.   오늘 아침 뉴스에서 보니 도쿄 신오쿠보 코리안타운에는 아직도 쇼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 가게 사장들이 앞으로의 정세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나 한국문화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번 소동처럼 정부와 공권에 의해서 강제적인 조치로 두 나라의 문화교류까지 억제하고 금지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문화예술이 정치적인 리유로 배제당하는 현상만은 회피하고 싶다.        엄정자 략력 1982년 1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연길시 10중 국어교사, 1983년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국어교사. 1994년 길림신문사 기자, 1997년부터 일본에 거주.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 한국어강사. 연변작가협회회원, 일본조선학회회원, 일본조선족연구학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수상경력: 수필 “화산 우에서 사는 사람들” 제9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필 『감나무에 담긴 정』 제1회同胞文學安民賞.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50    [대림칼럼] 글쓰기에 대한 단상(류경자) 댓글:  조회:1721  추천:0  2019-08-01
     나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나를 혐오한다. 글쓰기의 형태란 흔히 창작으로 여겨지는 시, 소설 쓰기와 창작에 대한 비평으로 여겨지는 평론, 논문 쓰기 등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번역 또한 다른 측면에서의 창작적 글쓰기로 여겨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나에게 글쓰기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싫지만 어느 순간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것.       내가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던 대학교수, 심지어 그 유명한 작가마저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 때 글쓰기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논문은 유일하게 대놓고 표절을 ‘허용’하는 글쓰기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썼던 글귀를 베껴도 성실하게 각주만 달면 표절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논문이 인용된 저자는 이러한 ‘표절’에 고마워할 수도 있다. 두말할 것 없이 대학교수의 논문이 표절 논란에 휩싸인 것은 성실하게 각주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독자의 독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각주를 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각주를 찾아 읽다보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작가들은 각주를 달지 않는 소설 쓰기를 선호한다. 그 유명한 작가의 표절 논란에 휩싸인 글귀를 비교한 문장을 읽다보면 우연이라고 해도 그런 우연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똑같은 문장이 나열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무에서 창조란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모든 작품의 탄생에는 언어의 구축이라는 기본적인 토대가 필요하다. 알다시피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거의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다. 남의 글을 읽지 않고 순전히 내가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쓰기의 역사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이 조금씩 쌓아놓은 언어의 토대 위에서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글을 읽고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통째로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화시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은 파괴 위에 다시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역사의 천사’는 폐허 위에서 역사의 파편들을 끌어 모아 다시 구축한다. 벤야민은 역사를 잔존해 있는 폐허로부터 거꾸로 읽을 것을 제안하며, 그의 이러한 작업에는 역사를 파괴하는 동시에 복구하는 기획을 담고 있었다. 글쓰기란 그러한 파편들을 끌어 모아 다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루쉰은 '무덤'이라는 작품집을 내면서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정신은 되밟을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모질게 끊어 버리지 못하고 찌꺼기들을 주워 모아 자그마한 새 무덤을 하나 만들어 한편으로 묻어 두고 한편으로 아쉬워하려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과거를 주워 모아 재구성하는 루쉰의 ‘새 무덤 만들기’ 작업은 역사의 파편을 모아 재구성하는 벤야민의 방식과 닮아있다. 루쉰이 ‘찌꺼기’로 표현한 과거와 벤야민이 말하는 ‘역사의 파편’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루쉰의 '고사신편'에 수록된 소설들을 보면 루쉰이 어떠한 작업을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루쉰은 누구나 아는 옛이야기를 끌어 모아 전혀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며 자기만의 소설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렇다고 루쉰의 소설이 표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루쉰은 신화와 전설을 높이 평가하면서 신화와 전설이 모든 종교, 예술, 문학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루쉰은 중국 상상력의 진정한 기원을 보았던 것이다. 루쉰에게 글쓰기란 과거를 파괴한 폐허 위에서 새롭게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의 모든 창작을 학습하고 분석한 딥러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예술 창작에 대해 어떤 이는 두려워했고 어떤 이는 경이로움을 표했다. 예술가의 존재가 위협 받는다는 목소리와 기계는 기계일 뿐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존재한다. 진정한 작가라면 나는 이를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훌륭한 작품을 써내는 사람들이 많다. 널리 알려진 사람도 있고 무명작가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엄청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발굴되기도 한다. 이런 작가에 대해서는 시대를 초월한 글쓰기를 한 작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든 널리 알려진 작가이든 나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훌륭한 작품의 평가에는 기준이 없다. 흔히 입상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데 훌륭한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입상 따위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는다. 또 그렇게 해야만 훌륭한 글이 나올 수 있다. 매번 노벨문학상 시즌이 오면 문학계는 이 문학상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그 전에 제도권에 의해 규정되기를 거부한다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사르트르와 같은 작가도 있다. 그것 또한 그 작가의 소신이자 그의 작품에 반영된 그의 사유이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올 수 있는 것만이 작품이 될 수 있다.   류경자 약력:   동서대학교 조교수, 한국체육대학교 강사   연변대학교 중문과 학사∙석사, 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   역서 『디지털기술과 신사회질서의 형성』   논문 “루쉰의 탈경계적 상상력과 치유의 글쓰기”, “장용학 소설의 역사인식 연구”외 다수. 동북아신문
49    [대림칼럼] 디아스포라의 명상학 개론(최수석) 댓글:  조회:1369  추천:0  2019-07-10
      나 자신을 찾아간다는건 참 고요함과의 동행을 자처한 의미있는 일이다. 채바퀴 돌듯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있는 현대인들에게 '나 찾아 떠나는 려행'이라는 타이틀이 참 이율배반적인 단어이기는 하지만 내외면의 에너지를 척결해가며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목마름과 갈증으로 다가오는게 바로 '마음챙김'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길'에 있는 당신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게 있다. 바로 명상이다. 내가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현대인들이 한번씩 경험해보지 않고는 섭섭하다고 생각될만치 귀족병으로 자리매김한 우울증을 경험하고 나서서부터이다. 우울감을 느끼고 그 출구없는 메마른 감정의 벽을 허물고 에고와 참나와의 거리를 좁혀가고있는 힐러로서 무너짐이야말로 더 큰 열림이라는것을 경험해봤다. 주인도 없이 해가 슬어놓은 고요를 나른한 오후가 갉아먹는것 같은 느낌이지만 랴명전의 암흑은 분명히 내삶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종합비타민과도 같았다. 한번 경험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았다.   우울증을 경험하게 되는데는 에고와 참나와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 가장 크다. 어찌보면 애써 찾을 필요도 없이 늘 그곳에 있던 존재인데 다만 알아차림이 부족했던건 아닐까? 기본적으로 철학의 기본질문인 '나는 누구인가'가 '나를 찾아 떠나는 려행'의 기본테마가 되여야 하는데 '나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패러다임이 그 려행을 막아나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인가'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와 직결된 문제이다. 개인적인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 등 여러가지를 포괄시킬수 있겠지만 특히 디아스포라들은 정체성에 대한 치렬한 고민을 하고 살아왔고 어찌보면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요아닌 강요를 스스로에게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아닌가 싶다. 특히 스스로 의식있는 디아스포라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더 큰 멍에를 짊어지고있는게 아닐까. 하지만 그 멍에가 과연 자동화된 무의식적인 반응이 아닐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참나와 만나는 작업을 하면서 든 생각이다.   사람으로 태여나 짊어지게 되는 가장 큰 책임은 바로 매 순간 내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에 대한것에 대한 책임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을 가리켜 "B와 D사이의 C"라고 말했다. 결국 인생은 BIRTH(탄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이라는 것이다. 선택 역시 또 하나의 반응인 셈이라고 볼 때, 결국 인생은 곧 반응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마음이란 령역을 공부하고 탐험하면서 경험한 모든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할수 있을가? 바로 삶의 여러가지 자극속에서 반응하는 태도와 힘이 달라진것이라 할수 잇을것 같다.   반응과 무반응. 무반응도 반응하지 않음을 선택한 반응이다. 반응에는 다양한 각도의 반응이 있다. 나의 건강, 행복, 평화, 성공에 도움이 되는 반응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지구의 건강, 행복, 평화에 도움이 되는 반응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반응을 선택할수 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동화된 무의식적 반응을 하며 살아간다.   최소 95%이상의 무의식적 반응으로 살아간다고 보통 이야기한다.       연변대학에서 공부할 때 나는 석사론문 테마로 "한중 영상물에 나타난 조선족 녀성의 형상'에 대한 론문을 썼다. 그리고 한국류학에서 선택한 나의 박사론문 주제 역시도 "조선족 자생설화에 나타난 디아스포라 연구"이다. 어찌보면 디아스포라에 대한 주제는 내 백그라운드를 봐서도 그렇게 가장 흥미가 있고 잘할수 있는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B와 D사이에 선물과도 같은 C가 있었듯, 석박사 과정을 완성하는 중간에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우울증이라는 선물이 찾아왔고 그것이 디아스포라에 대한 내 사고의 틀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였다.   학문분야에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연구라 하면 자연스럽게 련결된 키워드가 있다. 바로 정체성 연구, 소외의식, 주체와 주변부, 망향의식, 정착의식 등 모름지기 중심부에 편입하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맴도는 주변부 의식에 대한 연구와 직결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문연구에서는 이런 연구방법론이 아직까지 잘 적용이 될수밖에 없다는건 당연한것이고 나 역시도 이런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구방법을 도입할것이다. 워낙 소설이나 시창작 등 텍스트자체가 갖고있는 완결성 구조가 어느 정도의 주제의식을 내포하고있기 때문에 기존의 디아스포라 틀연구로도 론문을 완성하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겪는 디아스포라적인 경험에 대한 성찰과 분석을 할 때도 우리는 이런 패러다임에서 풀기가 십상이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론리에 맞는 패러다임이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무언가 경직된 틀에 자신을 옭아매는게 아닐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석사론문 주제로 "한중 미디어에 등장한 조선족의 형상 연구"를 택했던 것도 사실은 "우리 조선족은 이런데 잘 알지도 못하고 곡하고있다"는 약간의 분심을 표출하기 위한 발로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는 조선족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있는 예민함임에는 분명하다. 한국진출 조선족 80만명시대, 무엇보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확대된 한국사회에서 내 이야기(조선족의 이야기)가 어떻게 영상물로 제작이 되였을가가 일차적인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 부모님, 친척, 친구들의 이야기로 비춰질수도 있고 미디어의 파급력과 더불어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족들 역시 이제는 코미디는 코미디로, 예술은 예술로 봐줄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지긋이 지켜볼 여유가 있지 않는가?   우연한 기회에 몇년전까지만 해도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황해"에 나왔던 개그우먼 이수지씨를 만나게 되였다. 커피 한잔 하면서 "황해"라는 코너 때문에 조선족들이 한국 사회에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대명사가 되였고 그것때문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고 솔직히 얘기했었다. 이수지씨는 거듭 죄송하다고 하며 사실 재미있는 코너들이 너무 많은지라 남들보다 더 튀고 재미있는 코너를 만들지 않으면 개그계에서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미 하나만 바라보고 매주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고 얘기해줬다. 사실 한국의 미디어시장은 철저히 상업위주로 돌아가는 경쟁시대이다. 영화를 만들고 코미디를 만드는 피디나 작가들이 조선족에 대한 어떤 폄하의 의도를 갖고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디어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한 한국사회에서 잘못된 이미지의 고착화는 오래동안 왜곡된 패러다임을 형성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겠지만, 이곳은 대통령도 코미디 소재로 등장할수 있는 곳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부단히 할수밖에 없는 디아스포라들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약간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긴장돼있던 '디아스포라 정체성 감성근육'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가?   원하는 방향으로 반응하기 위해 필요한것,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기 위한 힘인 반응력, 탄생과 죽음사이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것이 바로 마음챙김이다. 그 마음챙김과 여유를 갖고 자기 정체성, 사회적인 자아로서의 정체성까지 생각을 한다면 좀 더 느슨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세상과의 소통을 할수 있지 않을가 싶다.   마음을 놓친다는것은 무엇이고 마음을 챙긴다는것은 무엇일가.그러면 마음은 무엇일가?정체성이 없다는것은 무엇이고 정체성이 바로 잡혔다는것은 무엇일가.그렇다면 정체성은 무엇일가?   조선족이기 때문에, 한국인이기 때문에, 중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정체성이 과연 원자 5,000억개로 구성된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서 보내는 객관적인 정보의 집합체라고 할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정체성이 있지만 또 정체성이 없는 존재들이다.     최수석 략력    본명 최옥란, 전 '동북저널' 신문사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문학 박사 수료. 동북아신문
48    집 탓에 집 덕에□ 김준환 댓글:  조회:1503  추천:0  2019-06-13
주택구매자들이 현명해졌다. 저성장과 저물가가 특징인 새로운 정상상태에서 부동산 가격만 홀로 급등할 수 는 없다는 믿음이 서게 됐다. 이젠 집만큼 안전한 투자 대상은 없다는 믿음이 멀어지면서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부어도 불이 붙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인구 구조, 소득 수준, 주택 수급 상황 등을 따져보면 향후 부동산 가격은 인기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분명한 판단을 가졌다. 하여 집 투자에 욕심 내기보다는 내집마련을 더 중요시하며 온전히 나만의 집을 가지려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한마디로 집에 대한 가치가 바뀌면서 펄펄 끓던 부동산 투자 열풍속에서 은행 대출을 끼고 투자대렬에 뛰어들었던 그런 모습에서 주택 시장의 알짜 정보에만 눈길을 돌리며 맹목적인 구매를 피하고 싶어하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주택구매자들에게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의 대답은 일치할만치 '보기 좋은 집, 살기 좋은 집'이란 대답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에서 나만을 위한 실용적인 주택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을 다분히 의식한 집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새집들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평생에 한번 장만하는 집이니깐', '자식들 생각해서', '이왕 하는바에 멋지게 고급스럽게 하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집장식을 할라 치면 예상을 훌쩍 뛰어넘기가 일수 이다. 집꾸미기에서 어떤 내장재를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는 완전히 내 몫이다. 집장식에 들어서는 소비자들에게 '보기 좋은 집으로 꾸미겠습니까? 살기 좋은 집을 꾸미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백이면 백이 다 '살기 좋은 집에서 살겠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막상 집장식에 들어서면 보기 좋은 집으로 무게중심이 옯겨간다. 자신이 꿈꾸던 집을 꾸미는데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너무 막연해 한다. 집을 꾸미기 전에 그 집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먼저 생각해보라. 그래도 보기 좋은 집을 꾸밀것인지? 무턱대고 '보기에 좋은 집'만을 고집하는 것은 집꾸미기에서 가장 기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보기 좋은 외관만을 따지다 보면 집을 지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집을 모시고 사는 꼴이 된다. 집이란 모름지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집보다는 완벽히 나를 위한 공간으로 되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대답이다. 집은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를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내 행복이 먼저라는 그런 이기적인 마음으로 집을 장식해야 하고 그런 집에서 살아야 즐겁고 행복해 진다.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야 한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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