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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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바르게 그리고 무겁게 댓글:  조회:3445  추천:0  2015-03-27
바르게 그리고 무겁게  인생수양에 대한 단상 장 경 률   인간세상에서 그 무슨 사업을 펼치거나 큰 인물이 되자면 반드시 하나의 기본조건이 있어야 하는바 바로 는것이다. 이는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면 모든 성공한 이들의 공성, 지도자의 덕목이라 할수 있다. 《지도자가 바르면 명령이 없어도 따르나 지도자가 바르지 않으면 지시를 해도 복종하지 않는다。》 《론어(论语)》에 나오는 말이다. 실상 이는 당연지사이기도 하다. 바르고 강직한 사람은 자연히 뭇 사람들의 존중을 받으며 그의 말에도 무게가 있어 감히 반박하거나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역으로 자기가 잘낫다고 코대를 잔뜩 쳐들고 자기자랑에 골몰하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 대면서 안하무인격으로 함께 좌석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그런 몰상식한 인간들은 몇분도 가지 않아서 동석한 이들의 반감을 사게 됨은 십분 자명하다. 대체 누가 이런 인간들의 말을 따르겠는가? 허니 이런 인간들이 대기(大器) 다시 말하면 큰 인물이 된 것을 본적이 있는가? 좌석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실상 재난을 묻어두는것과 같다고 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는 것은 우리들이 평소에 항상 념두에 두고 경계하는 좌우명이라 할수 있다. 제 잘난척 떠들다 보면 말이 많아 지고 그러면서 말 실수가 있게 되고 자기약점도 저도몰래 드러나게 된다. 만약 라이벌과 마주 앉았다고 하자. 말이 많아지면서 사물에 대한 견해, 상황발전에 대한 자기도 모르는 루설, 향후 청사진 등등에 대하여 상대방이 속속들이 장악하고서 상응한 대응전략을 세울것인바 그 결과는 비참할것이다. 말이 많아 손해를 보게 되는 다른 한 경우는 바로 자신이 화가 났을 때이다. 화가 난 나머지 불평, 불만을 쉴새 없이 주절주절 토로하면서 화풀이로 그 누군가를 말밥에 올린다면 기필코 지나친 언사가 튀여 나오기 마련. 옛날부터 전해 오기를 《병은 입으로 들어 오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지 하다싶이 우리들이 겪는 대부분의 고배는 말실수에서 비릇된것이다. 상대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말할줄 안다면 쓸데 없는 불화를 좌초하지 않을것이고 불필요한 고배도 마시지 않게 될것이다. 말 때문에 겪는 수난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뒷일은 생각도 없이 주변사람들이나 기타 크게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일에 대하여서도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경솔하게 의론하고 말밥에 올릴 경우 그 어느 때 겪게 될지 모르는 불씨가 될수 있다. 타방으로 경솔한 수다쟁이가 되여 이 일 저 일 다 끼여들어 삐치면서 이것이 옳다거니 저러면 틀린다거니 한다. 마치도 전지전능하신 재판관인것처럼 행세를 한다. 모순과 갈등이 생긴 당사자들을 상대로 오늘은 네가 옳고 래일은 쟤가 옳다는 식으로 자기정확성을 나타내는 그런 인간은 수양이 부족하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바 곁에 사람이 없게 됨은 십분 자명하다. 말은 항상 분수에 맞게 내 뱉어야 하는바 절대 한 켠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찮아도 이처럼 행세하였다가 모순과 갈등을 빚던 쌍방이 그 본질을 안후에 그들로부터 동시에 버림들 받은 그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일반적으로 때론 침묵도 일종 미덕이다. 하지만 이는 꼭 해야 할 말도 침묵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분수에 맞게 말하는것도 인간됨됨이의 기본적처세술의 하나라 할수 있다. 얼마전 우리 주변에서 있은 일이다. 산업경영인 A가 사업에서 실패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되였다. 이에 A의 동창생이자 다른 회사를 경영하는 친구 B가 동창생 몇 명을 청하여 A를 위로하는 식사를 마련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이런 장소에서는 친구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사업에 관한 얘기는 되도되 피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헌데 술이 몇순배 돌고 취기가 오르자  B는 저도몰래 자기자랑에 빠져들었다. 자기가 얼마나 명지한가를 자랑하면서 목돈을 번 얘기,  경영수단 등을 한바탕 역설하더니 이어서 점차 경험과 재간을 일방적으로 친구 A에게 전수하는 식으로 번져졌다. 그러더니 자기셈평이 괜찮으니 자금지원도 하겠다고 아주 호방하게 제기하는것이였다. 물론 술기운에 호의에서 한 얘기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아니였다. 위로대상인 친구 A는 말 한 마디 없이 고개를 숙이고 술만 마시더니 화장실에 간다 세수를 한다 하고는 종당에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말았다. 실의에 빠진 친구앞에서 자기자랑이나 성공담은 절대 금물이라 이런  최저한도의 상식마저 지키지 못하였으니 결국 호의가 그 불쾌감으로 변질한것이다. 당신이 열을 올리면서 떠들 때는 좋았는지 모르지만 결국 이로하여 당신은 모든 것을 잃는 후과를 초래할수도 있다. 숲에서 자기홀로 우뚝 솟은 나무는 태풍에 먼저 꺽이거나 벼락을 먼저 맞기가 십상이다. 말이란 《조심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좋다. 말이 씨가 되여 뭇 사람을 해치고 동시에 당신 자신도 해친다는 것을 항상 아로새겨야 할것이다.
44    기회란 찾기 나름 댓글:  조회:2927  추천:1  2015-02-05
    기회란 찾기 나름이다. 기회는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을 따르는 법이다 우리는 이렇게 푸념질하는 젊은이들을 흔히 보게 된다. 사업에서 크게 성공한 이들의 공동한 대답일것이다. 일전에 탕웨이라는 온주청년의 성공담을 매체에서 본적이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 청년은 온주는 물론이고 광주, 류주 등 남방 대도시의 적지않은 골프장으로 출입하였다. 골프에 미치다싶이 한 그는 골프장마다에서 실수로 친 공이 호수에 빠지는 장면들을 비일비재로 보았다. 항상 무심코 그저 그런일로 지나쳐 버리던 그에게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가 직접 골프장호수에 들어가 보니 물속에는 엄청 많은 골프공들이 잠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혼자 건져내였다. 이를 본 숱한 사람들이 골프공건지기에 자연적으로 동원되였다. 그러자 탕웨이는 헐값으로 그 공들을 몽땅 사들였다. 연후에 일군을 고용하여 깨끗이 닦은후 새롭게 칠을 하여 판매하였다. 현재 탕웨이는 골프공을 회수하는 전문회사를 경영하는데 그 수입이 가관이라고 한다. 세인들은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미국에서 치러진 제43대 대통령선거시 공화당대통령후보 부시와 민주당대통령후보 고어간의 피말리는 접전을 말이다. 득표수가 초박빙이다 보니 미국은 물론이고 전 지구촌의 대통령후보에 대한 지지자들의 성향에 따라 여론이 오르내렸다. 플로리다주에서 개표과정에 문제가 발생하자 두 후보는 모두 상대방을 비난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은 점점 늦어지기만 하였다. 밀레니엄의 새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주화를 발행하려던 한 회사는 대통령선거가 난항을 겪자 자칫 숱한 경축행사준비물이 쓰레기로 전락될 위험에 처하였다. 이때 회사의 톰 브로클사장이 기지를 발휘하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묘안을 구상했던것이다. 미리 준비하였던 부시와 고어의 동판을 리용하여 한 면에는 부시의 초상화를 다른 한 면에는 고어의 초상화를 새겨넣었던것이다. 비록 새로운 대통령은 산생되지 않았지만 기념장은 며칠새에 날개돋친듯이 팔려나갔다. 위기를 기회로, 난항을 순항으로 역전환시킨것이다. 우리는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들을 가르켜 이라거나 이라고 비하하면서 골려주고 폄하할 때가 흔히 있다. 하지만 치렬한 시장경쟁에서는 이런 반짝 아이디어의 발휘가 더없이 절실한것이다. 상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쓰레기가 되고 폐품이 된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것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그런 사유야 말로 사업에서 성공할수 있는 황금열쇠가 아니겠는가? 혹자는 이런 기회와 성공은 우연의 일치라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수도 있다. 허지만 현실은 이처럼 용기가 있고 안목이 남다른 개척자, 모험가들에게 항상 풍성한 성과물이 부여된다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기지를 발휘할수 있는것은 그가 평소에 항상 준비된 상태에서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런 조건을 간직하고 있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는 우연과 필연의 변증관계이다. 시체나 류행이나 대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피동적행위, 장기간 경직된 사고방식은 될수록 빨리 구중천에 던져버리는것이 좋다. 타인보다 새로운 생각, 남다른 발상을 할수있도록 항상 준비된다면 성공의 아침노을이 비낀거나 다름이 없다. 미구에 찬란한 해돋이를 맞이할것이다.   출처- 일보 2015년 2월 4일
43    개성을 잃지말고 원모습 그대로 댓글:  조회:2810  추천:1  2015-01-22
  우리들은  면접시험을 보게 되거나 공중앞에 나설 일이 생기면 흔히 시험관이나 공중의 비위를 맞추기에 골몰한다. 그것이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총명한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런 실례가 있다. 한번은 필자가 연길에서 잘 나가는 회사의 인사담당자를 찾아 직업을 구하는 문제에 대하여 취재하고 자문을 청한적이 있었다. 그 회사는 경영이 잘 되기로 소문이 나서 취업희망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형편이였다. 한 번은 5명을 물색하는데 200여명이나 신청하였다고 한다. 10여년의 회사인사담당자로서 이미 2000여명을 면접한 경험자로서 그는 몹시 안타까워 하였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모습, 인격을 갖고 있는바 그것을 잘 전달해야 하지 면접관들의 마음에 들려고 억지로 포장할 필요가 없다는것이다.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한 감독 샘 우드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자기만의 색갈을 지키지 못하는 젊을 배우들로 하여 항상 골머리를 앓는다고 개탄하였다. 젊은 배우들은 거지반 이미 이름을 떨친 명배우들을 모방하면서 그들처럼 하려고 든다는것이다. 샘 우드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명기해야 할 좌우명이 있다. 그렇다면 나만의 개성과 특점이 있을것이다. 나만의 노래, 나만의 그림, 나만의 경험, 나만의 가정과 환경 이런 복합체인 나는 좋든 나쁘든간에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나만의 화원을 가꾸어가야 할것이다. 나만의 인생은 이 세상에 나만의 족적을 남기고 나만의 인생사명을 완수할것이다. 세인이 공인하는 챠플린이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선배와 감독들은 그더러 희극학원에 가서 연기를 다시 배우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우세를 알고 자기특장을 알기에 그것을 고집하면서 외길을 걸었는바 종국에는 자기만의 독특한 연기를 련마하고 온 세상이 감탄하고 우러르는 명배우가 되였다. 진 오트리는 데뷔할 때 뉴욕에 왔으니 자기의 텍사스억양을 고치고 뉴욕의 멋진 신사처럼 보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그의 어색한 말투에 동료들은 입를 싸쥐고 웃어댔다. 그는 여기서 교훈을 찾고 텍사스의 말투를 살리면서 기타를 치고 서부노래를 불렀다. 얼마후 그는 인기가 수직상승하면서 전 세계의 TV와 영화계에서 맹활약하는 명스타가 되였다. 필자도 10대말부터 20대초반에는 전쟁영화를 보고나면 전투영웅이 되고 싶어 그처럼 해보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웠고 비행기를 보면 비행사가 되는 꿈을 꾸면서 그처럼 부러워 하였다. 하지만 점차 그것이 허황한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농민의 자식으로 고향에 마음을 붙이고 농촌의 일들에 열심하였으며 여가에 언론사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글쓰기를 배우면서 자기만의 인생행로를 개척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그 무슨 위인은 못됐지만 그런대로 예순이 넘는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였다. 동시에 는 철리도 터득하였다. 물론 타인이 이미 걸어서 성공한 길, 세인이 쏠리는 류행을 타는것은 잠시 도움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장원한 안광으로 본다면 남들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것이 훨씬 도움이 될것이다. 연변일보 2015-1-21
42    사이비종교는 사회를 해치는 악성종양 댓글:  조회:2929  추천:1  2014-12-31
사이비종교의 유령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배회하면서 정직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유혹하고 공갈하고 해치고 있으며 건전한 사회유기체를 해치고있다. 법륜공은 세인이 주지하는 사이비종교로 이미 수년전에 정부에 의하여 취체된 상태이다. 하지만 자기들의 기지를 외국에 두고서 수시로 우리 사회에 나타나 교란하고 있다. 지난해 중앙정부로부터 취체된 사이비종교 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취체되여 공개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음으로 양으로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진출한 우리 조선족동포사회도 좀먹으면서 적지않은 사람들을 유혹,포섭하여 기로에로 밀어넣고있다.   지난 11월 13일 한국의 한 신문에 실린 미국기자 아나스타시아의 문장을 보면 잘 알수있다. 그 녀는 지난 8월 미국 도편망에 문장을 발표하여 에 대해 평론을 발표하면서 , 고 주장했다.   지난 한 시기 전 중국의 신주대지에서 유령처럼 배회하면서 민심을 롱락하였던 사이비종교 은 일명 라고도 한다. “동방번개”는 이단사이비성으로 인해 이미 정부에 의하여 취체되여 법적제재를 받은 상태이다.   중국기독교회도 같은 사이비종교가 정상적인 종교활동을 교란하고 인심을 현혹하고 있는데 대해 경각성을 높일것을 수차 호소하였다. 또 2000년이래 자기들의 기관지에 40여편에 달하는 문장을 발표하여 사이비종교들을 폭로비판하였다. 그중 10여편은 동방번개(전능신교)를 상대한것으로서 "전능신"이 중국기독교회의 정통적이고 정직한 교리에 대하여 왜곡하고 국민들을 현혹하는 가장 파괴성이 강하고 가장 저질적인 사이비종교이기 때문이였다.   사이비종교의 가장 큰 위협성는 바로 그의 기만성이다. 이런 사이비종교는 늘 과학과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병치료를 한다거나 가난구제를 한다는 미명으로 신도들에 대해 절대적권력과 정신적 혹은 심리적통제를 실시하면서 략탈과 착취를 감행하는것이다. 이들은 신도들의 절대적맹종과 충성을 강요하면서 무지몽매한 신도들을 기로에로 몰아가고 있는것이다.  정신적, 심리적으로 조금만  건강한 인간들이라면 즉시 간파할수 있지만 일단 그 사이비종교에 물든 사람들은 이미 색안경을 건데서 옳바른 충고와 교양이 먹혀들리 만무하다. 전문가들은 사회, 개인, 자유, 건강, 교육과 민주체제에 지대한 위해를 끼치는것이 바로 사이비종교라고 정의를 내리고있다.   문제는 이런 사이비종교,  전능신교가 한국에도 언녕 진출하였다는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의 중국조선족동포사회에서도 추종자들을 모으고있다는 사실이다. 한 언론에 따르면 전능신교는 '12.21 종말론'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지난 2011년 무렵 한국에서 포교를 시작한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사이비종교가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정통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물론 한국에서도 상기한 사이비종교가 보편적인 질책을 당하고있는 상황이다. 해당교회가 발표한‘전능하신 하나님교회(동방번개)에 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적지않은 중국인들이 ‘동반번개’에 미혹되어 사회문제가 되자 최근 중국 정부는 본격적인 단속에 나서고있다”면서 “이로 인해 이들은 종교자유가 보장되고 중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국으로 침투하고 있는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이단사이비 단체”라고 락점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로 인한 미혹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교회의 경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하였다. 자유, 민주, 평등 그리고 종교신앙자유는 지구촌의 보편적인 가치관념이고 공동한 추구목표이다.   하기에 우리는 지구촌의 그 어디에 가던지 그 나라의 법, 그 지역의 법규를 따르고 준수하고 모범적으로 집행하여야 할것이다. 그 지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공동한 삶의 공간을 마련하고 지켜야 할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중국에서의 조선족사회는 물론이고 한국 등 지구촌의 적지 않은 나라와 지역에 진출한 우리 중국조선족들에게 주어진 공동한 과제라고 사료된다. 연변일보 2014-12-30  
41    각자 주어진 삶 보람있게 댓글:  조회:2954  추천:0  2014-12-04
  최근에 영화 세편을 보았다. 아무루(Amour, 사랑)와  콰르텟(Quartet, 4중창)  그리고 쏭 포 유(Song for You)이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주연이 모두 80대이고 로년의 생활과 죽음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아무루는 프랑스어로 사랑이란 뜻이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로후를 보내던 음악가 부부가 있었는데 부인이 어느 날 갑자기 마비증세를 일으키면서 그들의 삶은 하루 아침에 달라진다. 부인은 자존심 때문에 료양원에 가기를 거부하고 남편은 반신불수가 된 안해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부인은 점점 병세가 악화되어 말을 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지친 남편은 부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고통에 모대기는 부인을 벼개로 안락사 시키고 자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영화의 줄거리다. 콰르텟은 왕년의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은퇴하여 실버하우스에 모여 사는데 과거 사랑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테너 가수의 옛 부인이었던 바람둥이 소프라노가 입주하여 우여곡절 끝에 4중창를 부른다는 얘기인데 로년의 사랑을 다루었다. 쏭 포 유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초긍정적인 부인이 마지막까지 합창대회 오디션을 위해 년금술사(년금으로 술술 사는 사람들) 합창단에서 열정적으로 련습하는데 남편은 부인의 건강을 념려하여 합창련습을 말린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끝내 대회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데 안해의 상사를 치른후 남편이 합창단에 합류하여 상까지 받는다는 얘기다. 상기 세 편의 영화는 고래희라는 70을 넘기고 있는 로년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출연자의 90%이상이 80살을 넘긴 로인들로서 주제가 100세 장수시대와 무관하지 않은듯 하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살것처럼 살아간다. 머리로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막상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는 아직 죽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저항한다. 삶 속에서 죽음의 사색을 놓지 않고 살아갈 때 비로소 좋은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을 뿐더러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죽음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성현들은 갈파한다.죽음은 인생의 완성이다. 죽음을 만날 때 태연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생사가 공포가 아닌 그것을 초월한 삶을 누렸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죽음은 자연의 현상이다. 태어났다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각자 주어진 삶에서 사람답게 인생을 즐기면서 보람이 있게 사는 게 중요하다. 한 인간의 인생에서 청년기는 활달하고 능동적이고 개척과 모험정신이 강하지만 아직 미성숙단계라 덜익은 열매라고 할수 있다. 하다면 로년기는 원숙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체력적으로 혹은 기력적으로 쇠잔해져 흔히 마음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들은  흔히 고 한다. 대개 60세를 계기로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 전통습관으로 자리매김한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로령화사회에 진입하면서 따라서 은퇴하고도 살아야 할 기간이 길어졌다. 건강관리를 잘한 이들은 은퇴후에도 웬만한 젊은이들을 찜쪄먹을 정도로 체력과 정력이 왕성하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인생 2모작은 물론이고 3모작도 가능하게 된 시점이다. 그래서 오늘날 100세시대라는 개념도 생겨났으리라! 필자의 경우도 그렇다. 인생의 전반생이 끝나면 완전히 끝나는가 하였더니 그것이 아니였다. 한 려정이 끝나니 새로운 시작이였다. 마찬가지로 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인생을 2모작하라고 인생의 후반부에 역시 그 나름대로의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성사하고 나면 그에 알맞게 즐거움이 온다는것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인류력사의 기나긴 행정에서 한 인간의 일생은 천공을 헤가르며 피끗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별찌에 지나지 않는다. 김철호시인은 인간은 일수도 있다고 갈파하였다. 이처럼 짧기에 그리고 이처럼 하잘것 없기에 더욱 귀중하고 보람차게 한생을 장식할것이 소요된다. 진붉고 화려한 목단꽃처럼 그 존재의 의미를 더욱 살려야 할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전반기에는 흔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먹고사는 문제로 로심초사하면서 거의 모든 정력을 할애하기 마련이다.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면 제정신이 아닌 동물적인 삶이였다. 하다면 2모작을 하는 인생의 후반기에는 거의 모든 부담을 일소하고 또한 살기 위하여 남의 눈치를 보지않아도 되게 되였다. 인제는 제정신에 인간으로서의 제 삶을 살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2모작 인생의 후반생이 삶의 가치가 더욱 값진 것이 아니겠는가! 연변일보 2014.12.2
40    선생님 생각 댓글:  조회:3045  추천:3  2014-09-24
지난 교원의 날 새삼스레 그젯날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이제 우리도 기회만 있으면 선생님들을 종종 찾아 뵙고 인사 드리자.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이네들, 세월이 지난후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드리자 9월, 수확의 계절을  맞아 올해 수확물중 가장 훌륭하고 오래 남을것이 무엇인가고 잠간 돌아 보았더니 바로 년초에 50년전 담임교원을 모시고 새해맞이를  한것이라  하겠다.  원 주인대상무위원회 부주임 김정해씨의 창의하에 지난 세기 60년대초 연길현 개산툰진 회경소학교시절 담임교원 박옥자선생님을 모시고 동기동창생 10여명이 50여년만에 첫 동창생모임을 한것이다. 우리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저마다 코마루가 찡해남을 금할수 없없다. 그젯날 우리를 가르칠 때 20대초반으로 한창 꽃피는 시절의 그 해맑던 선생님의 형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나타난것이 아닌가!  하기야 당시 10살좌우 개천에서 세치네잡이를 하면서 한 발씩이나 흘러 내린 코물을 손등으로 쓱 닦던 때가 어제같은데 우리들도 어느덧 환갑을 지나 손자 손녀를 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였으니깐. 선생님은 영원한 선생님, 인류령혼의 공정사이다.  박옥자선생님도 당시 비록 처녀였지만 항상 바다와 같은 너른 마음으로 자기 학생들을 골고루 보살피고 가르쳐 주셨다.  잘 살든 못살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든 못하는 학생이든 곱게 생겼든 추한 몰골이든 성한 학생이든 불구자이든지 가리지 않고 조개떡이 안팎이 없듯이  이 없듯이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모두 품어 주었다. 우리 민족 속담에 는것이 있다.  선생님들은 제자들을 위하여 그만큼 속을 태우셨기에 그 배설물도 타버려 개도 먹을수 없을 지경이라는 말이다.  당시를 회고해 보면 우리 반에도 키가 제일 작은 축이지만 제일 쏠락대면서 선생님들을 애먹인 김무를 비릇한 쏠쏠이패들이 몇이 있었다.  그래서 처녀선생 박옥자선생님도 애가 탄 나머지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요즘에는 풋내기 교원들한테서 선생노릇하기가 참으로 힘겹다는 푸념을 흔히 듣게 된다.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스스로 실증을 내게 된다는것이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해소안되고 기분이 잡치는 일들만 거듭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선생님들은 이런것들을 응당한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열중하였던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일찍 선생을 직업으로 삼고 평생 종사한 사람은 공자라고 한다.  공자는 가르치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훈장, 선생들의 선각자였으며 본보기로도 되였다. 공자는 인생의 후반기를 거의 모두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할애하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생활을 영위해 갔다. 이런 공자에게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오늘날의 시체말대로 하면 이라는것이다. 여러 제자들이 공자에게 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수하의 수십명에 달하는 제자들의 각자의 자질과 지위와 처한 환경 등에 따라서 다르게 대답하여 주었다. 박옥자선생도 당시 비록 풋내기교원이였지만 교육학을 체계적으로 전공하였는지라 학생들의 특장과 우점과 부족점 등을 고려하여 갖지 않는 교육방법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잘 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족한 아이, 약점이 두드러진 아이, 지어 지력적으로 많이 저하된 아이들도 모두 하나같이 가르쳐 나갈수 있었다. 지난 교원의 날에도 새삼스레 그젯날 가르쳐주던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이제 우리도 기회만 있으면 선생님들을 종종 찾아 뵙고 인사 드리자.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이네들,  세월이 지난후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드리자! 연변일보 2014.9.23        
39    남이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하라 댓글:  조회:2981  추천:0  2014-08-13
  진정으로 큰 사업을 펼치고 성공하려면 단순 용기로만은 부족하다. 남다른 혜안이 있어야 하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대담하게 개척하는 그런 개척정신이 있어야 한다. “젊은이는 무엇인가 창조해야 한다. 남이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하라.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토론하고 분석하면 해결책을 찾을수 있다.” 쿠바의 저명한 혁명가 체게바라(1928―1967)의 딸  알레이다 게바라마치(54살, 의사)는 일전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할 때 이렇게 호소하였다. 알레이다 게바라마치는 “아버지는 생전에 ‘젊은이가 가장 중요하고 젊은이들이 분발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며 “1950년대 쿠바혁명을 한것도 카스트로와 아버지 등 당시 젊은이들이였다”고 했다. 그는 강연회에서 젊은이들은 개척형의 인간이 되여 인류를 위하여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면서 “젊음을 마음껏 누리되 지역공동체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자신이 할수있는 일이 무엇인지 주변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간은 한생의 인생행로에서 기필코 자기 나름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마련이다. 헌데 이 길은 자기만이 걸어가는 길, 그 누구도 대신 걸어가주지 못하는 길일진대 어떤 길을 선택하여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따라 그 인간의 인생에 판이한 결말이 생기게 됨은 십분 자명하다. 이를테면 이 순간 당신앞에 두갈래의 길이 펼쳐졌다고 하자. 하나는 평탄한 길, 이미 타인이 개척해놓은 비교적 안정된 길이다. 하다면 다른 하나는 한치 앞도 예측키 어려운 험난한 길, 그 누구도 가본적이 없는 미지의 길이다. 어느 길을 선택할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탄한 길을 선택할것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에서 성공한 명인, 인생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인생철학을 후대들에게 이렇게 전수하고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라면 당신은 망설일 필요없이 그 길을 포기해야만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두번째 길을 가거나 또 다른 세번째 길을 갈수 있다면 당신은 크게 성공할것이다.”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큰돈을 벌던 담배사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항로를 찾음으로써 세계 해운업계의 거물이 되였다. 1922년 난민신분으로 그리스에 들어온 오나시스는 돈 한푼도 없는 거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 16시간씩 일하고 야근까지 하면서 고달픈 창업을 하였다. 오나시스는 한푼 돈도 헛쓰지 않고 그 돈으로 담배사업을 펼쳐 성공, 큰 돈을 모았다. 오나시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였다.  당시 카나다의 국영철도기업이 자금난에 모대기면서 6척의 화물선을 내놓았고 오나시스는 그 배를 몽땅 사들여 해운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해운사업은 대단한 불경기상태라 그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비난하였다. 얼마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치렬해지면서 해운사업도 재빨리 회복되여 오나시스의 투자가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얼마후 그의  6척의 배는 하나의 황금광산마냥 벌이가 대폭 확장되여 일약 그리스의 선박왕이 되였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해운사업이 다시 기로에 들어서자 오나시스는 과감하게 유조선에 투자하였다. 2차대전전에는 그의 유조선 총적재량이 1만톤에 불과하였지만 1975년에는 이미 유조선 45척을 가진 거대한 해운대왕이 되였다. 그의 유조선중 15척은 적재량이 20만톤을 넘는 초대형유조선이였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가 하나의 촌이 되고 하나의 경제, 하나의 문화마당을 이루는 글로벌시대에 살고있다. 우리 중국조선족젊은이들도 국문이 활짝 열린 이 절호의 챤스를 빌어 지구촌의 곳곳에 가 제나름대로 재질을 꽃피우면서 재능을 한껏 과시하고있다. 일본의 히다찌, 도시바, 한국의 삼성, 현대, 미국의 록펠러, 포드 같은 세계적회사와 가족의 저명한 인물들처럼 인류에 기여하는 큰 사업을 펼치겠다며 저마다 용트림하고있다. 진정 훌륭한 거동들이 아닐수 없다. 과시 경하할만 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큰 사업을 펼치고 성공하려면 단순 용기로만은 부족하다. 남다른 혜안이 있어야 하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대담하게 개척하는 그런 개척정신이 있어야 한다. 동업종, 같은 분야를 선택하였을지라도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처럼 남이 이미 간 길을  경험과 거울로 삼고 자기나름의 인생행로를 찾아야 한다 세상에는 원래 길이란 없었다. 인간이 다니면서 생겨난것이다. 새로운 길도 폭설이 내린 망망한 황야에서 내가 첫 발자욱을 내는것처럼 내가 먼저 감으로 개척되는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남이 하지 않은 일에 더욱 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연변일보 2014-08-12
38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긴다 댓글:  조회:2646  추천:1  2014-07-21
  일전에 한국 강원도 화천지역을 문화답사하면서 이외수문학관을 찾아 다목 감성마을에 이르자 동네어구에 큼직한 돌비석이 맞아 주었다. 그 돌비석에는 상기한 이외수의 명구가 새겨지여 탐방객들의 발목을 잡았다.   실상 소설가 이외수의 외길문학인생이 바로 남이 가지 않은 자기나름대로의 길인것이다. 그의 말을 빈다면 고 하면서 평생을 자기가 선택한 길을 가고 거기서 성공한다는것은 실로 조련치 않다고 부언하였다.   이외수는 번득이는 재치와 타고난 상상력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연금술을 펼치는, 기행과 파격의 작가이다. 특유의 괴벽으로 바보 같은 천재, 광인 같은 기인으로 명명되며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문학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인제중학교와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에 춘천교육대학에 입학했으나 1972년 중퇴했다. 〈강원일보〉에 잠시 근무했고 학원강사로 일했으나 1979년부터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전념하였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어린이들〉이 당선되었고,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 勳章〉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꽃과 사냥꾼〉(1976), 〈꿈꾸는 식물〉(1979), 〈고수〉·〈개미귀신〉(1979), 〈겨울나기〉·〈박제〉·〈언젠가는 다시 만나리〉·〈붙잡혀온 남자〉(1980),〈장수하늘소〉·〈틈〉·〈자객열전〉·〈들개〉(1981), 〈칼〉(1982), 〈벽오금학도〉(1992), 〈황금비늘〉 (1997),  〈괴물〉(2002), 〈장외인간〉(2005) 등의 소설을 썼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추구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술의 힘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작품에는 구도(求道)에의 집념과 인간에 대한 연민, 인간 존재의 시원을 묻는 그리움과 아픔이 일관되게 배어 있다. 그의 탁월한 상상력과,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내용, 신비 체험과 초현실세계를 다루는 묘사적문체 등은 신비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소설은 40만~50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1983), 〈외뿔〉(2001),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1985), 〈말더듬이의 겨울수첩〉(1986), 〈감성사전〉(1994),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1998),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2002),〈뼈〉(2003),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2007), 〈하악하악〉(2008), 시집 〈풀꽃 술잔 나비〉(1987),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2000),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쉴 때까지〉(2006), 문장비법서 〈글쓰기의 공중부양〉(2006) 등이 있다.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1994년과 2008년에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2008년부터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인간은 한생의 인생행로에서 기필코 자기나름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 마련이다. 헌데 이 길은 자기만이 걸어가는 길, 그 누구도 대신 걸어가 주지 못하는 길일진대 어떤 길을 선택하여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따라 그 인간의 인생에는 판이한 결말이 생기게 됨은 십분 자명하다.   이를테면 이 순간 당신앞에 두 갈래의 길이 펼쳐졌다고 하자. 하나는 평탄한 길, 이미 타인이 개척해 놓은 비교적 안정된 길이다. 하다면 다른 하나는 한치 앞도 예측키 어려운 험난한 길, 그 누구도 가본적이 없은 미지의 길이였다. 어느 길을 선택할가?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탄한 길을 선택할것이다.   헌데 인간세상에서 성공한 명인, 인생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인생철학을 후대들에게  이렇게 전수하고있다.     그리시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큰돈을 벌던 담배사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항로를 찾음으로서 세계 해운업계의 거물이 되였다.   1922년 난민신분으로 그리스에 들어 온 오나시스는 돈 한 푼도 없는 거지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 16시간씩 일하고 야근까지 하면서 고달픈 창업을 하였다. 오나시스는 한 푼돈도 헛 쓰지 않고 그 돈으로 담배사업을 펼쳐 성공, 큰 돈을 모았다.   오나시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였다.  당시 카나다의 국영철도기업이 자금난에 모대기면서 6척의 화물선을 내놓았고 오나시스는 그 배를 몽땅 사들여 해운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해운사업은 대단한 불경기상태라 그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비난하였다.   얼마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치렬해지면서 해운사업도 재빨리 회복되여 오나시스의 투자가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얼마후 그의  6척의 배는 하나의 황금광산마냥 벌이가 대폭 확장되여 일약 그리스의 선박왕이 되였다.   2차세계대전이 끈나면서 해운사업이 다시 기로에 들어 서자 오나시스는 과감하게 유조선에 투자하였다. 2차대전전에는 그의 유조선 총적재량은 1만톤에 불과하였지만 1975년에는 이미 유조선 45척을 가진 거대한 해운대왕이 되였다. 그의 유조선중 15척은 적재량이 20만톤을 넘는 초대형 유조선이 였다.   진정으로 큰 사업을 펼치고 성공하려면 단순 용기로만은 부족하다. 남다른 혜안이 있어야 하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대담하게 개척하는 그런 개척정신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원래 길이란 없었다. 인간이 감으로서 생겨난것이다. 새로운 길도 폭설이 내린 망망한 황야에서 내가 첫 발자욱을 내는것처럼 내가 먼저 감으로 개척되는것이다. 해란강닷컴 2014-7-17
37    허무하게 뺏기는 무가지보 댓글:  조회:2744  추천:4  2014-07-16
  성현들은 그 어떤 강박에 의하여 자기의 생명 같은 시간을 허비하는것은 무위도식하느니만 못하다고 말했다. 원치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것은 두말할것없이 거대한 랑비가 아닐수 없다. 한 고객이 서점에 와 책을 사려고 책값을 물었다. 점원은 5딸라라고 하였다. 헌데 그 고객은 아무런 용건도 없이 밖에 나가더니 다시 돌아와서 재차 책값을 물었다. 그러자 점원은 6딸라라고 답하였다. “잠간 밖에 나갔다가 왔는데 그 사이에 책값이 올랐어요? 어디 이런 법이 있어요?”고객이 격분하여 그 연유를 물으며 항변하였다. “시간은 곧 돈입니다.” 그 점원은 이렇게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자기가 보던 독서에 전념하였다. 자신이 독서하는 귀중한 시간을 의미없이 뺏아간 고객에 대한 분명하면서도 타협이 없는 일갈이였다. 물론 이는 책 판매로 수입을 올리는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 점원이 바로 후에 미국의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작성한 벤자민 프랭클린으로서 유명인물이 된후 미국 100딸라짜리 지페의 주인공으로 되였다. 중국의 고대 성인 공자는 내가에서 “흘러가는것이 이와 같으니라!”라고 하면서 세월이 흐름을 한탄하고 촌음이 금싸락이라고 갈파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일상생활가운데서 흔히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간은 곧 금전이다.” 혹은 한 술 더 떠 “시간은 금전으로도 바꾸지 못한다”고 시간의 귀중함을 곧잘 강조한다. 중년을 넘긴 사람들은 거지반 “참 세월이 빠르다. 뭘 해놓은것도 없는데 한해를 훌쩍 넘기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래서 인간이 체감하는 인생의 속도는 나이의 두배로 빨리간다는 설도 있지 않는가? 생각과 감각이 훨씬 앞서 간다는것이다. 그래서인지 새벽일을 할 때 시험공부를 할 때 ,모종의 절박한 사무를 처리할 때, 데이트를 할 때 지어 사사로운 일들을 처리하면서도 “빨리!빨리!…”다. 순간의 시간도 아끼는데 뇌즙을 짠다. 영화 “옛지 오브투모로우”의 주제는 시간에 대한 상상력을 담고있다. 외계인의 시간지배능력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인공은 우연하게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상대를 이길 방법을 모색하기에 골몰한다. 주인공이 택한 방법은 바로 시간을 쓰지 않고 정지상태에 있게 하는것이다. 시간을 쓰지 않으니 결과도 없었다. 감정적, 육체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다른것에 더 많이 집중할수 있었다는것이 이 영화가 고취하는 주제였다. 촌음도 금싸락이라 그래서 일각도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택한것이 바로 헛된 시간을 정지상태로 만든것이다. 성현들은 그 어떤 강박에 의하여 자기의 생명 같은 시간을 허비하는것은 무위도식하느니만 못하다고 말했다. 원치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것은 두말할것없이 거대한 랑비가 아닐수 없다. 우리는 일상 생활가운데서 본의가 아니게 원치도 않게 남한테 시간을 략탈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비일비재이다. 지난 세기 80년대초 룡정에서 주재기자로 사업할 때의 일이다. 년초에 거행되는 농촌사업회의에서 한 지도간부가 단상에 올라 차물을 훌훌 불면서 세시간 반이나 장편대로를 해대는데 끝이 없었다. 점심시간을 훨씬 넘기자 안되였든지 현의 주요책임자가 슬그머니 귀뜸하였다. 연후에 그 주요책임자가 10분 이내로 요점만 말하고 페회를 선포하는데 단하에서는 힘찬 박수갈채가 터졌다. 물론 그 주요책임자의 이채로운 연설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였지만 해당 책임자의 무책임하고 두서없는 장편대론에 대한 야유와 질타이기도 하였다. 얼마후 필자는 이 현상을 두고 “짧을수록 좋다”는 제목으로 “사색의 여울목”에 발표하였다. 헌데 이것이 거대한 반발을 가져와 몇해 동안 애를 먹은적이 있다. 참담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별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도 자기방심하는 사이에 아까운 시간, 아니 자기의 생명과같은 무가지보를 “찬탈”당하고있다. 바로 그 어떤 모임이나 그 어떤 회의 같은 행사에서 사회자 혹은 연설자들의 끝없는 자화자찬이나 그 어떤 “박식함”의 표현을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그 일례이다. “게으른 녀편네들의 고린내나는 발싸개” 같다고 모택동이 비판한 그런 당팔고의 피해를 보게 되는것이다. 이럴 때면 “노!”하고 웨치면서 그만하기를 호소하거나 그렇찮으면 아예 회장에서 퇴장해버리거나 하는데 약한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이다. 큰 국면을 위하여 즐겁게 “나”를 희생시키는것이다. 그 장황한 연설자가 숱한 청중 다시말하면 행사참가자들의 금쪽 같은 시간, 아니 그네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있는데도 말이다. 기실 언론에서는 오래전부터 상기 현상을 수없이 비판하고 “회의는 짧을수록 좋다”, “텅빈 구호식 당팔고를 단호히 척결하자”는 등의 훌륭한 칼럼이나 단론들을 많이 실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현상이 도처에서 버젓이 살판치고있으니 어찌겠는가! 이제 예순을 넘으니 비로소 시간의 귀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또다시 화제에 올려보았다. 연변일보 2014-7-16
36    찹쌀떡과 열반연 댓글:  조회:2757  추천:2  2014-06-04
  6월은 입시의 계절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6월 초순에는 대학입시가 있고 6월 하순에는 고중입시가 있다. 대학입시든 고중입시든  응시생들에게 있어서 이는 지금까지 갈고닦은 지식을 검증하고 그  결과를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시각이기도 하다. 부모들도 결코 응시생들 못지 않다. 이로부터 생각나는것이 찹쌀떡과 열반연이다. 먼저 찹쌀떡의 의미는 무엇일가? 바로 응시생이 시험을 치러서 높은 점수를 따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속깊은 마음이다. 말하자면 수험생이 응시에서 고점수로 찰떡처럼 떡 붙으라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이 떡을 대복병(大福饼)이라고도 하는데 문자 그대로 합격내지 고득점으로 큰 복을 받으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찹쌀떡이 복(福)과는 관련이 없었다고 한다. 찰떡을 먹으면 속이 든든해지고 배가 부른대로 오래 가기에 마음도 든든해진다고 하여 배불뚝의 떡, 대복병(大腹饼)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자로 복자(腹)와 복자(福)가 발음이 일치한지라 배불뚝이 대신 큰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풀이하였다고 한다. 어원이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민간에서는 응시생한테 찹쌀떡을 선물하는것으로 자식의 립신양명을 기원하였던것이다. 1977년 필자도 문화대혁명후 대학입시가 회복되여 첫 시험을 치르게 되였다. 대학시험을 치르던 날 나와 나의 외6촌 녀동생이 함께 시험 치러 가게 되였다. 이날 아침에 우리 집도 찰떡을 쳤다. 다른 때와는 달리 큰어머님이 친히 찰떡을 베여 밥상을 차렸는데 웃어른들이 아니라 우리 두 수험생의 떡사발을 먼저 놓는것이였다. 그 덕분일것이리라. 그번 대학입시에서 우리 둘은 모두 대학교에 입학하는 기쁨을 만끽할수 있었다. 다음 열반연은 무엇일가? 열반(热饭)은 문자 그대로 더운밥이다. 여기에 잔치 연(宴)자를 붙여 놓으니 뜨거운 밥 한그릇 차려놓고 벌리는 잔치라는 뜻이다. 그 유래는 이러하다. 고려말 대학자 이제현은 명성은 뜨르르하여도 째지게 가난하였다. 당시 일찍이 부모을 여윈 조카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찾아와 큰절을 올리자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이 소식을 듣고 하객들이 불시에 달려들자 그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쌀을 꾸어다가 따뜻한 하얀 쌀밥을 지어 대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열반연”(热饭宴)이였다. 혹자는 장원급제를 축하하려 온 손님에게 고작 쌀밥 한그릇이 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쌀밥을 마음대로 먹을수 있는 시절이 아니였다고 한다.  그리고 미처 잔치음식을 준비할 사이도 없는 상황에서 그처럼 귀한 쌀밥을 대접한다는것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한다.  하객들도 빈손이 아니라 술이나 과줄이나 과일 같은 귀한 음식을 한두가지씩 장만해 가지고왔는데 여기에 갓 지은 뜨거운 하얀 쌀밥이 오르면 제법 풍성한 축하연이 마련되는것이다. 우리 민족이 이어온 전통이였을가! 1977년 대학입시 첫해에 연변대학에 입학한 필자도 고향사람들의 축복속에서 축하연을 베풀게 되였는데 10년동란을 금방 겪고난 뒤라 집살림이 말이 아니였다. 그래서 현금 20원을 꾸어 술 10여근 사고 두부나 앗고 하였다. 헌데 이집저집에서 메돼지고기, 꿩고기, 산나물, 찰떡 등을 가지고 와 챙겨주어 대학입시잔치를 잘 치를수 있었다. 지금보면 “열반연”이나 다름이 없었다. 헌데 언제부터였던가, 검소하고 뜻 깊고 자랑과 긍지로 넘쳐야 할 축하연이 한껏 색바래진것이다.  대학입시연을 겨끔내기로 더 잘 차리고 축하금도 갈수록 높아가면서 돈냄새로 악취를 풍겨가고있다. 모처럼 축하하는 행사가 부담거리로 되고있는것이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올해의 대학입시가 펼쳐진다. 푸른 꿈을 꾸면서 3년간 밤잠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갈고닦았던 실력을 발휘하게 되는 시각이 오고있다. 이제 우리의 사랑스러운 응시생들이 저마다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원하는 훌륭한 성적을 올리고 누구나 열반연을 차릴수 있기를 기원한다. 고상하고 건전한 우리 축하문화를 고양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연변일보 6월 3일자  
35    가족의 의미 댓글:  조회:4128  추천:5  2014-05-20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주요현안의 하나로 제기되고있는것이 바로 가정의 해체문제이다. 개혁개방이래 출국과 연해지역에로의 진출이 시대적추세로 되면서 가정문제는 더욱 뚜렷하고도 첨예하게 나타나고있다. 해당 부문에 따르면 지난해만 해도 연변지역에서 7800여 쌍이 리혼하여 리혼률이 40%에 달했다. 이처럼 리혼률이 상승하고 있는 주원인은 남녀 사이 교육, 수입, 사회적 지위 차이가 점점 줄어들면서 혼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식 때문에 참고 견디며 살다가 자식들이 가정을 이루자 자신의 생활을 되찾는 황혼리혼도 늘고있는 추세다. 또한 결혼적령기인 80년대생들도 날로 늘어나는 생활압력, 사업압력 때문에 결혼에 대한 기대치는 높으나 현실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서 리혼하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연변에서 결혼등록을 한 인원은 1만8000여 쌍에 달했는데 리혼한 부부가 6700쌍을 웃돌아 리혼률이 37%에 달했다. 그 이듬해부터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에는 40%까지 상승선을 그었다고 한다. 1만9500여 쌍의 결혼부부중 7800여 쌍이 리혼을 한 셈이다. 실로 심사숙고해야할 공동한 과제라 생각된다. 이런 사회문제를 상대하여 최근에 특정매체들에서 목적성있게 란 주제로 토론무대를 설치하거나 시리즈보도를 조직하고 있는데 아주 적시적이고도 의미가 심장하다고 사료된다. 가정은 인간사회의 세포로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개개의 가정은 보잘것없지만 방울물이 모여 대해를 이루듯이 이런 가정들이 인간세상을 이룬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부부간이다. 남녀가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면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거느리게 된다. 그러다가 부모님들이 세상을 뜨고 자식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게 되면 부부는 고요히 만년을 지내면서 저 세상을 기다린다. 만물의 령장인 인간은 가정이란것이 생겨나서부터 줄곧 이러하였다. 그래서 라 하였다. 부부는 자식들과는 1촌으로 촌수가 있어도 둘 사이에는 촌수가 없다. 하지만 일단 등을 돌리고 갈라지면 남남이 된다. 부부간은 상대를 가리켜 흔히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인정해주는것만큼, 그 사람을 살맛나게 하는 일만큼 중요한건 없을것이다. 장점은 인정하고 약점은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그 관계는 더없이 친밀해지고 신뢰감이 생긴다. 그러한 관계속에 성장이 있고 치유가 있고 상대가 가진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게 하는 힘이 있는것이다. 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행복해야 한다. 내가 옆 사람에게 인정받는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옆 사람을 인정해 주는것도 필요하다. 내가 먼저 옆 사람을 살맛나게 만들면 나 또한 저절로 살맛이 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행복에 나의 행복이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중화민족의 성현으로 불리우는 고대의 저명한 교육자 공자는 고 토파하였다. 여기서 전자는 국가의 질서와 국가건설에 대한 기본요구이고 후자는 가정의 질서와 가정건설에 대한 기본요구라고 할수 있다. 우리 민족은 는 격언을 대대로 전해 내려 오고 있으며 는 전통도 항상 고수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전통미덕이 오늘도 지속적으로 전해지고 고양되기에 우리 민족을 비릇하여 전 사회적인 상황은 량호하다고 본다 시장경제체제의 정립과 동반하여 경제가 고속으로 발전하고 물질적인 부가 급속하게 창조되면서 물질적인 추구가 갈수록 강렬해지고 있는 반면 정신적인 욕구가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가정이란 개념에도 심각한 변화가 생기고있다. 그제날 부부를 중심으로 우로는 증조부모, 조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들과 손군들을 거느리며3, 4대가 한 집에서 살던 대가족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부부가 아이만 하나나 둘을 키우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로인들은 별도로 양로원으로 가거나 보모를 두어 간호하게 하는것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소형가정도 무시로 무너지면서 부부가 백년해로하는것이 절반도 차지하지 못하고있는 상황이다. 출국붐, 대도시진출붐과 동반한 리혼과 림시혼인(혼인등록을 하지 않고 사는 림시부부), 그리고 아예 비법동거를 하거나 중혼을 하고있는 상황이 비일비재이다. 또 단친아이거나 무친아이가 갈수록 많아지면서 자녀교양에서도 엄중한 문제가 속출하고있다. 일례로 연길시 모소학교 한 학급에서  가정상황조사를 하였는데 단친아이가 30%를 웃돌고 무친아이가 20%를 웃도는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모두 함께 있는 아이는 20%를 조금 웃돌았다고 한다. 어떤 학급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그리고 무친아이들은 실상 부모가 있지만 모두 출국하였거나 리혼하였거나 외지에 나가 있기에 로인들 혹은 친척들 손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낳기만 하고 기르지 않으면 결과적으로는 문제아가 되는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하다면 이 달을 보내며 는 사명감, 의무감으로 가정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것도 아주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
34    훈장정신 댓글:  조회:2649  추천:4  2014-04-08
“배우고 늘 익히라!” “학문에 실증을 내지말고 교육에 게이름이 없어야 한다” 공자가 항상 갈파한 명언이다. 요즘에는 선생노릇하기가 참으로 힘겹다는 푸념을 흔히 듣게 된다. 따라서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스스로 실증을 내는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것은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해소안되고 기분이 잡치는 일들만 거듭되니 그러리라. 고금중외를 막론하고 선생이란 사업은 항상 만만치 않았다. 선생님들의 천성적이고도 공동된 특점이 바로 보수는 되외시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집념하는것이였다. 그러다보면 제자들의 일로하여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갈때가 비일비재라 어지간하면 “훈장의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격언도 생겼겠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선생을 직업으로 삼고 평생 종사한 사람은 공자라고 한다. 그만큼 공자는 가르치는 사람들, 다시말하면 훈장, 선생들의 선각자였으며 본보기로도 되였다. 공자는 인생의 후반기를 거의 모두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할애하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생활을 영위해갔다. 공자는 “나는 일찌기 건포 한묶음을 가져온 사람에게 가르쳐주지 않은적이 없다”고 스스로 밝히면서 “가르치면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착한 사람이 된다”며 교육의 중요성과 절실성을 강조하였다. 이런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서당훈장들도 거지반 청백리였는바 제자들이 나무 한단, 쌀 한되 가져오면 종래로 가리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거절한적은 더욱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산은 좀처럼 모여지지 않아 어지간하면 가난을 비유하여 훈장네 마당같다고 하였겠는가? 온집안과 마당이 텅빈것처럼 그만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훈장정신은 고상하고 청렴하였다. 사책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는 3000명, 그중 공자의 교과목인 륙예를 모두 터득한 제자를 72현이라 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빼여난 제자를 10철이라 하였다. 론어에 기재된 제자의 이름은 도합 22명. 공자의 교육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맞춤교육”이다. 여러 제자들이 공자한테 “인(仁)”에 대하여 물었을때 공자는 제자들마다 그들의 자질, 지위, 우점과 약점 등에 맞추어 제각각 다른 대답을 주었다. 론어의 첫마디도 “배우고 늘 익히라”는 것이다. 공자도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학문에 실증을 낸적이 없으며 교육에 게으른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공자의 가장 훌륭한 계승자라고 세인이 공인하는 맹자는 군자의 세가지 락 가운데의 하나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것”을 꼽았다. 오늘날 새로운 시대를 맞으면서 우리 교육이 많이 변하였다. 따라서 교원대오건설에도 수많은 새로운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공자의 교육사상, 우리 민족의 훈장정신만의 기본만은 의연하다. 수천수만의 선생님들은 어려움속에서도 군자삼락을 항상 되네이면서 신성한 교단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에서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영원히 돋보이는 것이리라! 연변일보 4월 8일자
33    황혼의 아름다움 댓글:  조회:3040  추천:1  2014-02-27
  오늘날 우리 이 시대를 사는 인간은 참으로 행운이자 행복이라고 생각된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의학의 눈부신 발전의 혜택으로 그제날 사람들이 누려보지 못한 건강과 장수를 향수할수 있게 되였다. 특히 로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로령인구는 늘어나고 늙은이들은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더 긴 삶을 살수 있게 된것이다. 20대에 뜻을 세우고 30대에 일떠서면서 자신의 야망을 실천해가는 젊은 시절, 왕성한 의욕으로 일을 하면서 리상을 현실화해가고있는 장년시절은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난것이 없다. 하지만 그에 반해 늘그막의 삶은 배로 늘어났다. 현대인간의 늘어난 삶의 대부분은 늘그막삶이라는것이 전문가들의 지론이다. 이처럼 늘어난 삶을 한결 윤택나게 하고 참뜻을 부여하면서 질적으로 풍요로운 늘그막삶을 영위하자면 물론 여러가지 여건이 충족하게 마련되여야 한다. 그래야만이 자식과 배우자를 포함한 타인에게 페를 끼치지 않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수 있는것이다. 이런 여건중 물론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건강과 체력 그리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기 조건에 못지 않은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정신적건강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강조하고싶은것이 바로 이 정신적풍요문제이다. 늙은이는 늙은이다와야 한다. 그러자면 늙으막의 마음가짐이 특히 중요하다. 늙은이로서의 정신적수양이 뒤받침되지 않는다면 세속적인 욕망에 찌든 삶을 살게 될것인바 그러면 타인들로부터 존경은커녕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면 대덕인줄로 알아야 할것이다. 조선조중기 평생 학문연구에 집념한 대학자 여헌 장현광(1554년—1637년)선생은 “늙으막에 해야 할 일”이란 글에서 “언어를 그치고 경영을 끓고 마음을 크게 비우고 사시에 맡겨야 한다”고 하였다. 이 뜻을 풀이하면 늘그막에는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고 잡스러운 일을 줄여 심신을 피곤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잡념을 끊고 자신의 삶을 천지자연의 리치에 맡기라는것이다. 같은 시대의 다른 대학자 동계 정은(1569년—1641년)선생도 “백발”이란 시에서 “늘그막은 의당 오게 마련인거로 젊은 시절 호시절이 얼마나 되랴. 백발 본디 나 따르는 물건이거늘 굳이 뽑아 버릴 필요 뭐가 있으랴”라고 읊조렸다. 봄이면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이면 풍성한 열매로 결실을 맺으며 겨울이면 사라져가면서 다른 새봄을 잉태하는것은 대자연의 섭리이다. 인간의 삶의 전과정도 태여나고 성장하고 대를 잇고 늙어가고 사라져가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생의 전반생이 끝났다고 인생이 완전히 끝나는것이 결코 아니다. 제정신에 사는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인생을 2모작하라고 인생의 후반부에 역시 그나름대로의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성사하고나면 그에 따르는 즐거움이 온다. 그러니 절대 “성 쌓고 남은 돌”이 아니다. “성 쌓고 남은 돌”, 공직에서 물러나고 정년퇴직만 하면 흔히 이렇게 말한다. 또한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설사 성 쌓고 남겨진 막돌이라도 역시 그 막돌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그 “돌”의 하기에 따른다.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유용한 “돌”이 된다면 다시 “옥돌”이 될수도 있지만 그냥 자포자기하고 부담거리가 된다면 그때는 걸림돌이 되는것이다. 실상 우리 주변에는 “성 쌓고 남은 돌”이 되였지만 “인생 2모작”을 잘하여 자기가치를 열심히 살려가면서 만년에 우리 문화지킴이, 새세대양성 보도원, 훌륭한 사회봉사자로 나서 유익한 일을 한분들이 적지 않다. 아침노을이 찬란하여 아름답지만 불타는 석양노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나이가 들면 지난날의 이런 불평, 저런 불만, 요런 후회 등 좋지 않던것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것도 지어 평생 다시 보지 않겠다고 작심할 정도로 미웠던 사람이 있는것도 십분 자명하다. 그러나 이런  묵은것에 집념하는것은 다 부질없다. 오직 자기에게만 해로울뿐이다. 그리니 마음을 비우고서  긍정해주고 리해해주고 용서해주는 그런 바다같은 심태를 갖춘다면 기필코 황혼의 아름다움을 만끽할수 있을것이다. 연변일보 25일자
32    배우면서 실천하는 즐거움 댓글:  조회:3278  추천:1  2013-11-22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자!” “아는것이 힘이다.” 인류는 지난 수천년간 이런 격언을 줄곧 고양하여 왔다. 전인들은 후대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력설하면서 학문에 게으르지 말고 허심하게 배우고 열심히 실천하면 기필코 하는 일이 성공하고 그 혜택을 톡톡히 보게된다고 대를 이어 전해왔다. 하다면 오늘날 과학이 폭발하고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을가. 지금은 지식정보화시대다. 다시 말하면 현대사회변화의 핵심은 정보와 지식의 보편적보급이다. 사회구성인들은 시시각각 이런저런 정보를 접수하게 된다. 이런 정보들에는 차원이 높은것도 낮은것도 필수적인것도 아무 쓸모가 없는것도 함께 뒤엉켜있다. 이런 정보를 다 정리할수는 없다. 그리고 설사 쓸모있는 정보라 하여도 모두 맘껏 활용하게 되는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단순한 정보수집능력인것이 아니라 이런 정보들을 분류하여 필요한 정보들을 알맞게 해석하고 그것을 실천에 제공하는 능력이다. 정보에 정확하고 가치있는 의미를 부여할줄 아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하다면 우리는 이런 능력을 어떻게 키워갈가? 당연히 배워야 한다. 하지만 무작정 배운다고 되는것도 아니다. “열심히”보다는 “정확하게” 배워서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学而时习之,不亦悦乎?)”공자로작의 핵심인 “론어”의 첫 구절이다. 풀이하면 리론으로 배운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실습해보는 일,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는 뜻이다. 공자는 이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움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런 배움은 탁상공론인것이 아니라 리론을 배운다는 학(学)자와 직접 실천한다는 습(习)자를 따로 써서 구분하여 언급하였던것이다. 지난날 적지 않은 “론어”연구가들은 “학”과 “습”을 항상 “학습”으로 붙여쓰면서 죽어라고 글에만 매달리였다. 그래서 “죽은 글”만 읽는데 열중하고“습”, 다시 말하면 실천은 홀시하였다. 실상 공자가 강조한 배움의 실체는 구체적인 행동의 규범인 “례”인바 “례”를 리론으로 배우고 기회만 있으면 실천해 보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는것이다. 실상 오늘날도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쓴다고 하는 사람들은 제자들이 글깨나 안다고 희떠운 소리를 치고 다니게 하기보다 배우는만큼, 배운족족 행동에 옮기기에 노력하도록 제자들을 채찍질하는것이 마땅한줄로 안다. 배움의 핵심은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을 얻어 자신의 희망과 의지, 다시 말하면 푸른꿈을 펼쳐가는데 있는것이다. 허나 지금도 비애를 느끼는것은 죽은 글만 읽는 현상때문이다. 물론 기초지식은 열심히 배우고 커서 사회에 진출할수 있는 토대를 믿음직하게 닦는것은 필수적이며 비난할바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반성해 보아야 할것은 바로 우리의 교육이 진정 자질교육으로 승화하자면 아직도 교육개혁, 반성과 시정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등하교시간이 엄격하고 수업, 시험, 합격, 불합격 그리고 등수를 뽑아서 배렬한다. 최하위는 물론이고 우수생도 포함하여 우수생은 더욱 우수해지려고, 최하위는 이 울타리를 탈출하려고, 중간층도 자기의 순위를 앞당기려고 공부에만 집념한다. 이렇게 대학본과까지 졸업하였는데 지어 대학교에서 배운것의 적지 않은 부분은 사회에 진출한후 무용지물이 되고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많은 이들은 사회에 진출한후 다시 새로운것을 배운다. 그래서 새로운 독서무용론이 대두한다는 주장도 다시 제기되여 이목을 끌고있다. 지식을 배우고 배운것을 실천하고 또 실천하면서 더 깊이 있게 배우는 일, 즐기면서 배우는 일은 교수하는 이나 교수받는 학생이나 모두에게 즐거움이다. 그래서 배움과 동시에 실천에 더 뇌즙을 짤것을 권장하는바이다.
31    조선족동포들이여, 자중하자 자애하자! 댓글:  조회:3996  추천:3  2013-10-30
한국에서 중국조선족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4론 27일, 한국의 수도 서울의 심장지역 시청광장에서는 중국조선족동포와 로씨야를 포함한 구쏘련지역의 고려인동포 근 3만명이 참가한 집회가 거행되였다. 집회는 조직자측과 참가자들의 공동한 노력으로 소란이 없이 질서있게 무난하게 펼쳐지였다. 행사뒤끝에는 자기쓰레기를 자기가 소지하고 행사장도 말끔하게 정리하는 성숙함을 여실하게 보여 주었다. 필자는 참가자들의 높은 법의식과 높은 자질에 감복이 갔다. 3만명이 참가하여 소란이 한점도 없었고 앉은 자리가 쓰레기 하나 없이 말끔하였다. 실상 중국조선족동포들과 구쏘련지역의 고려인동포들은 그 지역에 살면서도 도덕수준, 지식수양, 법의식이 높은것으로 제 민족가운데서 우수한 민족, 모법적인 군체로 전 사회적인 승인을 받고있는것은 사실이다. 자고로 고 하였다. 우리 동포들은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하기에 집회의 자유, 시위행진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헌법으로 명시되여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자유, 절대적인 민주란 없다. 반드시 법과 제도의 범위안에서의 자유이고 민주인것이다. 자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국법을 무시하고 제 하고싶은대로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은 절대 용허치 않는다. 하기에 우리 동포들은 지구촌의 그 어디에 가던지 그 나라의 법률과 제도를 우선적으로 준수하면서 법과 제도안에서 사업하고 생활하면서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오늘날 중국조선족동포들과 구쏘련의 고려인동포들은 한국에 거주하면서 갈수록 많은 한국의 지성인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고 주류사회의 동정과 관심과 배려를 받고있다. 이는 우리들이 피부로 느끼게 되는 현실이다. 한국보도매체에 따르면 강지원 변호사, 김지하 시인 등 한국 각계 시민사회인사 63명은 24일 는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는 고려인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자유롭게 왕래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은 "고려인·중국 동포는 1948년 제정된 '국적에 관한 조례'에 따라 한국 국민이 됐지만 정부는 로동시장을 보호한다며 동포 귀환을 제한해 왔다"면서 "결국 이들은 여권 위조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입국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재외동포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고려인·중국 동포들도 재외동포로서의 자격을 가지도록 해야 하며 재외동포의 미성년 자녀에게도 양육과 교육의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갈수록 많은 본토국민들과 지성인들이 조선족동포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있다. 이는 민심이고 대세의 추세에 순응하는것으로서 아주 훌륭한 흐름이라고 할수 있다. 무시에도 구체적분석 요망 필자는 본칼럼시리즈의 첫번째 칼럼 에서 한국에서 중국조선족의 역할에 대하여 3개 방면으로 피력하였다. 중국동포들은 확실히 이처럼 중요한 존재로서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철 같은 현실이다. 하다면 조선족동포들이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왜 무시할가? 우리는 이 문제를 랭정하게 사고할것이 절실하게 수요된다. 무시한다면 반드시 무시하는 일방과 무시당하는 일방이 있기 마련이다. 우선 무시하는 일방에 대하여 분석해 보자. 한국에서 중국조선족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이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력사적인 원인과 국가사회제도로 인한 리념의 갈등 등으로 인한 같은 뿌리 깊은 불신과 갈등으로 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리해하지 못하는데서 인기되였다고 본다. 이들은 실상 협애한 민족적우월감에 푹 젖어서 중국조선족들의 력사와 그 참상을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하등인취급을 한다. 실상 30년전까지만 하여도 한국의 실상이 우리보다 더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국민의식이나 사회질서를 포함한 사회 전반이 더 나았던것도 아니였다. 이는 한국의 지인들도 승인하는바이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내면서 사회경제발전과 더불어 선진국행렬에 들어서면서 점차 국민들의 의식도 근본적인 전변을 가져왔던것이다. 필경 일정한 시간, 일정한 과정이 수요되는것이다. 이러한데도 이 오늘의 존재가 타고난것처럼 조선족동포들에 대하여 그처럼 타박하고 무시하는것이다. 그리고 일시적인 감정으로 하여 무시행위가 나타나게 되는것도 홀시할수 없다. 이는 서로간의 래왕과 소통과 함께 있으면서 사업하고 생활하는 것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해결될것이다. 만사는 급하다고 하여 인츰 해결되는 것이 아니 다. 재삼재사 강조하건대 일정한 시간과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 과정을 앞당기고 빨리는것도 쌍방의 공동한 노력이 수요되지만 그래도 주로 무사당하는 일방의 주동적이고 열정적인 자태가 더욱 중요하다. 조선족동포들은 무시하는 일방의 다른 한 부류는 무지와 몽매로 인하여 무턱대고 무시하거나 그렇찮으면 참다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그런 쓰레기인간들이 고의적으로 악의적으로 무시하는것이다. 이런 인간들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기에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제 무시하는 일방을 상대로 얘기는 이만하면 족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무시당하는 일방 중국조선족동포들을 상대하여 담론해 보기로 하자. 자고로 반성할줄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독일을 보라. 제2차세계대전당시 파시스트국가 히틀러의 독일은 유태민족과 동유럽국가들에 얼마만한 피해를 입혔던가? 그후 40년이 지났건만 당시 독일총리는 2차세계대전당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이웃나라 뽈스까를 찾아가 뽈스까국립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면서 통절하게 사죄하였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당시 전쟁피해배상금을 피해국에서 서운함이 없이 지불하였다. 이런 대국다운 처사는 같은 2차세계대전당시 아세아국가들에 그처럼 엄청난 피해를 주고도 반성을 모르는 바다건너 그 나라와 얼마나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가?! 비록 성질이 다르고 차이는 있지만 한국에서의 우리 조선족동포들도 자기를 직시하고 수시로 자기반성할것이 수요된다고 본다. 무시를 당하고있는 중국조선족의 경우 역시 자기를 몰라서 떳떳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하여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악덕업주에 의하여 분명하게 어이없이 불리익을 당하면서도 자기앞의 발명조차 못하는것이다. 타방으로는 무식한 인간, 악의적인 인간들에 의하여 무작정 당하는것이다. 자기를 아는것, 자중자애의 선결조건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사업하자면 항상 자중하고 자애할것이 지극히 수요된다. 자중자애하자면 우선 자기를 잘 아는 것이 선차적이다. 공자는 일찍 고 하였다. 자기를 아는데는 자기민족의 빛나는 력사와 우수성을 잘 아는 것이 우선적이다. 자기민족의 력사를 잊으면 근본을 잃는다. 중국조선족으로서의 력사를 알아야 하고 조선반도에서의 우리 고국의 력사도 잘 알아야 한다. 중국에서 우리 민족의 어린애들이 지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소년들까지도 라고 물으면 고 하면서 중국력사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달달 외우듯이 말한다. 비애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 언녕 20년전에 연변일보는 김철호기자의 특별기행 하는 주제로 한 개면, 1만여자에 달하는 편폭으로 2년간 100여편의 시리즈기사를 보도하였다. 글짓기콩클도 경상적으로 펼치고서 는 문장에 특등상을 주기도 하였다. 그후 인츰 조선족학교들에 우리 민족력사과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우리 민족의 지성인들은 이처럼 우리 민족 바로 알고 바로 알리기에 오늘날까지 열심히 노력하고있다.  이런 작업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 될것이다. 이런 사업은 한국에 와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여야 한다고 필자는 인정한다. 조선족동포들이 자중자애하자면 동시에 우리 민족의 렬근성과 고질적인 약점도 치유하고 시정하고 극복할것이 필수적이다. 일전에 김정룡선생이 에 올린 칼럼 를 감명깊게 읽었다. 재한조선족동포사회를 잘 해부한 훌륭한 문장이라고 본다. 작자는 여기서 우리 동포들의 부족점과 고질적인 약점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우리 조선족동포들은 지성인들의 이런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시정하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자기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언행을 명심하고 도처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여 자기행실을 바로하는 것은 결코남한테 보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는 실상 자신을 위하는것이다. , 우리는 이런 격언들을 항상 명기하고서 자기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줄로 안다. 이는 대자연의 섭리이다. 하다면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진출한 우리 동포 선지선각자들, 사회의 지성인들은 매체를 통하여 특강을 통하여 혹은 이런저런 행사를 통하여 기회만 있다면 우리 동포들의 렬근성, 고질로 된 오점, 바르지 못한 행실들을 질타하고 훌륭한 본보기들은 충분히 긍정하고 널리 선전하면서 한국의 건강한 시민사회건설, 옳바른 사회기풍건설에 동참하고 일조해야 한것이다. 동포사회의 지성인들이 지난날 이렇게 하였고 지금도 이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고질병은 의연히 고쳐지지 않고 문제는 의연히 남아 있다. 이는 바로 우리들의 공동한 사업이 어느만큼 간고하고 막중한가를 단적으로 시사해 준다. 필자는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의 존재와 역할을 주제로 한 시리즈칼럼, , , , 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4기에 거쳐 펴내였다. 상기칼럼 4편을 제가끔 뜯지 말고 하나로 통합하여 읽어 주시고 리해하여 주신다면 고맙겠다. 그리고 미흡함점이 많은것만큼 적시에 따끔한 비판과 조언을 부탁한다. 이미 많은 분들이 글을 올려 긍정도 해주고 혹은 비판도 하였고 혹은 가르침도 주었는데 몹시 고맙기도 하다. 그리고 악성댓글도 있고 듣기 거북한 욕설과 인격을 모독하고 혹독하게 폄하하는 언사도 있었는데 모두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기야 필경 당신의 잘못인데 그것으로 하여 내가 앙앙불락하면서 성질을 낸다면 오히려 나의 금싸락 같은 몸과 마음이 해를 입을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30    박근혜정부의 대중국정책과 우리의 자세 댓글:  조회:4648  추천:18  2013-10-22
박근혜정부의 대중국정책과 우리의 자세 __한국에서 중국조선족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3론   본론전에 먼저 몇 마디 , , 얼마전 한국 서울에서 거행된 중국조선족 1만여명이 참가한 집회에서 적지 않은 집회참가자들이 이런 구호를 들고 나왔다. 한국에 거주하고있는 중국조선족들의 내심의 발로이고 피타는 웨침이 아닐수 없다. 타방으로 수많은 이들이 이처럼 자기존재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하는데서 두서를 잡지 못하여 방황하고 수없이 당하면서도 그 울분을 토할데는 없고 하여 정신상, 심리상에서 모순과 갈등에 모대기고 있는 것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10월 27일이면 서울의 한 복판 시청광장에서 3만명이 참가한 대형집회를 거행한다고 한다. 그때면 또 어떤 구호, 어떤 슬로건들이 등장할는지.   현재 한국에서의 조선족사회는 말그대로 중심이 없고 분산되고 각자 제나름대로 분전하는 잔뜩 흩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지인들은 이를 가르켜 , 라고도 한다. 이에 절대대부분 조선족들은 지성인들이 론쟁은 적게 하고 하나같이 뭉치여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들의 내심을 대변해 주고 자기들의 근본적리익을 확실하게 수호해 주는 그런 단체가 출범하기를 갈망하고있다. 이런 현실이 필자가 이번 시리즈칼럼을 쓰게되는 계기이고 리유이다. 그 무슨 할일이 없어서 말장난이나 하려고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무슨 멍청이가 이처럼 아까운 시간, 귀중한 정력을 소비하면서 지어 일부 사람들에게는 오해까지 받으면서 이런 일에 나서겠는가? 헌데 반가운 것은 이미 를 통하여 발표된 , 이 두 칼럼을 읽은 독자가 연인수로 1100여명에 달한다는것이다. 그리고 그많은 독자, 그 중 적지 않은 한국의 지성인들로부터 긍정적인 호응과 격려를 받았다는 점이다. 물론 일부 잡음도 있다. 혹자는 쥐꼬리만이 알면서 깨그루에 앉아 동천하를 다 아는 것처럼 너덜댄다. 혹자는 악플로 자기 허기진 심리를 채우고 자극을 찾는가하면 혹자는 우물안의 개구리신세면서도 우리 민족의 일에 대하여 왈가왈부한다. 혹자는 쓰레기글, 지어는 욕설과 잔뜩 폄하하는 그런 비방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기에 반박할 의사가 없다. 로신선생은 그의 명작 에서 고 하였다. 그래서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고 력설하면서 짖는 개도 상대하지 않고 그냥 두어서 짖다가 제풀에 그만두게하는 것이 상책이다고 하였다.     일전에 한국농촌진흥청에서 조직한 재한중국조선족동포 한국농촌알기행사에 참가하여 3박4일간 충청남도 홍성군 농촌생태마을,, 문당환경농업마을 등지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지구촌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농촌건설에서 본보기로 되고있는 한국의 새마을건설사업을 료해하게 되였다. 실상 한국의 새마을운동경험은 아주 보귀한바 중국에서 사회주의 신농촌건설에서 몹시 훌륭한 귀감이 되였다. 한국농업기술자협회 윤천영회장은 중국조선족농민들을 돕기 위하여 중국에 50여차례나 다녀 왔다고 한다. 그는 선후로 동북의 목단강, 할빈, 연변지역과 길림, 장춘, 료녕의 농촌 등지에 다니면서 새마을운동경험 전수, 유기농법보급하였는데 조선족농업기술자, 전문호 등 2만여명을 강습시겼다. 북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산동, 섬서, 절강, 하북, 하남 등 20여개 성을 돌면서 44기에 거쳐 중국인들을 20여만명 강습시키기도 하였다. 윤천형회장은 고 하면서 고 표시하였다.   필자가 한국에서 만나 본 대학교 교수, 학자,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도시의 일반 직원이나 농촌의 농부들도 거지반 중국에 대하여 우호적이고 중국에 대하여 알려고 하였다. 중국조선족들에 대하여 그 무슨 협조라도 더 주려고 열성을 다하였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당면 한국에서 박근혜정부의 대외정책 특히 대중국외교정책과 방침은 국민들의 보편적인 긍정과 지지를 받고있다. 박근혜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는것중의 하나가 대중국외교가 성공적데 있다는것은 세인이 주지하는바이다.   본론: 톱2에 대한 등거리외교, 박근혜정부 대외정책의 핵심내용 박근혜정부의 대외정책에서 핵심의 하나는 오늘날 지구촌에서 톱2로 불리우는 중국과 미국에 대한 등거리외교라고 할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구촌의 사무를 이끌어 나가는 두개의 수레바퀴인 대중국관계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제반분야에서의 친선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 그리고 미국과는 전통적으로 계승하여 오고있는 혈맹관계를 동등시한다는것이다. 최근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태지역20개국정상회의에서 박근혜대통령이 습근평국가주석과의 접견, 박근혜대통령과 리극강총리와의 접견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지는것이다. 미국과는 의연히 혈맹관계로 처리한다. 중국과는 민감한 국제현안, 조선의 핵개발에 대한 립장문제, 일제의 침략력사에 대한 문제 등에서 중한은 항상 동일하거나 비슷한 립장을 취하지만 대일본정책은 기본상 쌀쌀하고 랭기가 싸늘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선보인 '균형외교'의 효과가 주목된다. 한국의 주요 우방인 미국과 이웃 대국인 중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려는데 힘을 기울인것이다.. 박 대통령의 균형외교는 노무현정부의 그것과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리명박정부가 미국과는 절친하고 경제적으로만 중국과 접근하던 정책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미중 량국 사이에서 섣불리 중재역할을 자임하는 게 아니라 이들 국가에 대한 설득을 강화하고 걸림돌을 제거해 양측 모두와의 관계 수준을 높여나가려는 구상이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마치 자동차 얼라인먼트를 조정하는 것과 같다"며 "그래야 차가 앞으로 잘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비유했다. 박 대통령이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취임 후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조선핵문제에 대한 공조를 재확인한 것도 그 일환이다. 특히 시 주석은 조선의 핵무기 보유는 물론 "추가적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며 보다 분명하고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조선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상황에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대화 재개를 둘러싼 한국, 미국, 일본과 중국, 조선, 러시아의 전통적인 3각 대립구도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그래서 한국정부도 조선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주장하고있다. 이와 달리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두고 저울질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박 대통령은 당초 TPP 참여에 관해 거론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우리의 궁극적 목표인 아태자유무역지대(FTAAT)라는 큰 강을 향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TPP 같은 다양한 지류가 나가야 한다"고 밝히는데 그쳤다. TPP는 중국이 구심점인 RCEP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질서 패권을 놓고 겨루는 상황인 점을 고려해 미국이나 중국 중심의 지역경제 통합 논의 대신 포괄적인 자유무역체제에서 출구를 찾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신 TPP 체결에 대비해 TPP 회원국들과의 량자회담을 잇따라 열고 개별적인 FTA 협력에 속도를 냈다. APEC 정상선언문에 "투명하며 비차별적이고 포용적인 다자무역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미중간 힘겨루기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한중간 안보협력을 동시에 강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사일방어체제(MD)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우리에게 돈을 벌어가면서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냐고 중국이 반발할 우려가 크다"며 "균형외교라고는 하나 강대국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길림신문, 흑룡강신문에 따르면 지난 18일, 주심양한국총령사관에서는 료녕성 심양시 베이웨커호텔에서 "2013대한민국 국경일기념 리셉션"을 거행한 가운데 주심양한국총령사관 총령사 조백상은 환영사에서 《한국과 중국, 량국관계는 지난 21년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고 특히 금년 6월 박근혜대통령의 중국방문은 량국이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의 새로운 높이에로 발전하는데 력사적의미가 깊다》면서 《량국 관계의 발전추세와 함께 한국과 동북3성간의 교류협력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총령사는 《최근 2년동안 한국과 동북3성간 교역액은 30%가까이 증가했고 동북3성에 대한 한국기업의 투자도 꾸준히 이뤄지고있다》면서《주심양한국총령사관은 심양한국주, 할빈과 장춘의 한국문화주, 한국-동북3성경제협력포럼, 주요대학에서의 강연, 동북3성 한류축제 등 다양한 협력사업들을 통해 한국과 동북3성지간의 우의증진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관광 등 제반분야의 교류협력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앞으로 중한 량국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이룰수있도록 동북3성 각 지방정부와 협력해 상호 윈-윈할수있는 프로젝트를 적극 발굴하겠다》고 표시했다. 상기보도를 통하여서도 우리는 중한관계사상 가장 좋은 시기에 진입하였음을 보아낼수 있다. 본론후에 몇 마디: 박근혜정부의 이와 같은 대중국정책은 중대한 변화로서 두 나라와 두 나라 국민간의 친선과 발전에 지극히 중요한 조건을 마련해 주고 이를 계기로 더욱 돈독한 공생, 공영이 이룩될 것은 의심할바 없다. 이처럼 중대한 성과를 이룩한 것은 중한수교 20년간 두 나라정부와 두 나라 국민들의 드팀없는 공동한 노력과 갈라 놓을수 없다. 특히 이 와중에 중국조선족들의 역할은 세인이 공인하는 바이다. 수교초기의 반목과 불신이 지금은 퍼그나 사라지였다. 이를 토대로 향후 서로 신임하고 서로 협조하고 서로 추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새로운 결실을 창출해야 할줄로 안다. 필자가 인정컨대 앞으로 한국에서 중국조선족들의 존재가 더욱 뚜렷해지고 그 역할도 한결 커질 것이다. 이럴수록 중국조선족은 자기만의 우수성을 더욱 잘 발휘하면서 한국의 법률과 제도를 엄수하고 자기의 사업과 생활을 법과 제도안에서 펼쳐나가야 할것이다. 자고로 고 했다. 우리 동포들은 한국에서의 사업과 생활가운데서 불리익을 당하였거나 악덕업주에 의하여 경제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손해를 보았다면 해당 기관을 찾거나 변호사에 선임하거나 그렇찮으면 서울의 이주동포개발연구원과 같은 정책제도적으로 그리고 기타 방식으로 중국동포들을 위하여 전문적으로 봉사하는 단체, 동포타운신문, 동북아신문, 동포세계신문 그리고 길림신문 서울지사, 흑룡강신문 서울지사와 같은 동포언론사들을 찾는 것이 지극히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한국에서 어떤 행사에 참가하여 언권이 차려지거나 지인들과의 좌담회 혹은 만남이 있으면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분렬상태에 있는 것이 오직 조선반도와 중국의 대륙과 대만이다. 중국인들은 현재 량안문제를 시대에 알맞게 잘 처리해 가고있다. 하지만 조선반도는 하나의 화약고와 같아서 언제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중국의 조선족들은 조선반도 두 고국의 현상태에 대하여 더없는 불행으로 간주하면서 몹시 가슴이 아파하고 불안해 한다.   한국의 지성인들도 조선반도(한반도)의 통일에 대하여 몹시 고민하고있다. 이들에 대하여 필자는 이런 말을 한다. 중국조선족들은 조선반도의 남과 북의 국민들에 대하여 똑 같은 감정을 가지고 대하고있다. 한것은 조선반도의 북이든 남이든간에 리념, 체제, 사회제도은 잠시 뒤로 하고 남과 북의 국민은 모두 사랑스러운 형제요, 갈라놓을수 없는 피붙이다. 특정적인 력사적인 원인으로 하여 대한민국의 국민들과는 중한수교를 계기로 50여년만에 비로서 서로 접촉하고 서로 교류할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지난 20여년간에 수많은 중국조선족들이 대한민국의 땅을 밟을수 있었는데 오늘날 대한민국에 체류하고있는 것이 50만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정부와 국민들은 주동적으로 찾아 온 중국 조선족동포 50만을 잘 대해주어야 한다. 당신들은 말끝마다 하면서 몹시 신경을 쓰고 통일비용으로 하여서도 몹시 고민하고있지 않는가? 실상 중국조선족들에 대한 투자는 통일에 대한 투자이다. 이 문제를 잘 풀어간다면 당신들은 통일비용을 수없이 절약할수 있다.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면 오늘날 한국에서 중국조선족들의 역할은 조선반도의 통일에 일조하고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가!   기사로 보기
29    우리는 우리다, 떳떳하라 당당하라! 댓글:  조회:5385  추천:11  2013-10-17
한국에서 중국조선족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한 재론   한국에서 체류하고있는 적지 않은 우리 동포들은 이처럼 자문하면서 곤혹스러워한다. 이렇게 떳떳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자기신분을 말하기를 저어한다. 지어는 숨기려고까지 한다. 그럴수록 더욱 천대와 멸시가 뒤꽁무니를 따르게 마련이다. 우선 우리는 중국조선족, 우리 민족은 과경민족이다. 오늘날 중국에는 주체민족인 한족을 포함하여 기타 자치민족까지 도합 56개 민족이 살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 민족은 과경민족(过境民族) 이라 하는데 다시 말하면 국경을 건너 와서 뿌리 박은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중앙민족대학 황유복교수에 따르면 조선족은 중국과 조선반도의 국경선인 두만강 혹은 압록강을 건너 와서 정착한 민족이다. 특히 1949년에 중국의 전 지역이 해방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후에는 중화민족의 대가정에서 중국조선족으로서 떳떳한 일원으로 되였다. 이제 간략하나마 력사적으로 따져보기로 하자. 서기 1616년 청태조 누르하치가 허투아라(료녕성 신민현)에서 금나라(중국력사상 후금이라 함) 세웠는데 년호는 천명이였디. 1636년 누르하치의 아들 황태극이 성경(오늘의 심양)에서 황제로 등극하고 국호를 이라고 고치고 녀진족을 만주민족 다시 말하면 만족이라고 하였다. 1644년 청나라는 산해관을 넘어 명나라를 멸망시킨후 수도를 지금의 북경으로 옳기였다. 그리고 신빈현 이북, 이통하 이동, 두만강이북의 천여리 땅을 발상지로 정하고 봉금령을 발부하였다. 명목은 는 것이 였지만 주되는 목적은 한족과 몽고족 그리고 우리 민족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 침입하는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그후 봉금한 200여년간 장백산지역을 포함하여 광활한 대지는 원시밀림이 울창하고 산짐승이 득실거리는 불모지 땅, 황페한 땅으로 되였다. 상기한 봉금정책이 해제된데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원인, 하나는 1881년 짜리로씨야의 침공을 막고저 봉금령을 페지하고 이민실변정책을 실시한것이다. 그리하여 이 해에 훈춘 초간국을 설립하였다. 200여년에 달하는 봉금정책을 해제한 다른 하나의 원인은 바로 조선반도의 특대기근이였다. 청나라는 봉금 200여년간 봉금지역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였다. 당시 두만강이나 압록강 이동의 조선사람들이 일단 강을 건너 와서 약초를 캐거나 수렵을 하거나 지어 가만히 농사를 짓는것만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목을 잘랐다. 그렇잖으면 리씨조선관리들이 월경자들의 목을 잘랐다. 그 일례로 강희황제 49년(1710년) 평안도 위원사람 리만건네 4형제와 기타 몇 명이 강을 건너와 인삼캔것이 들통이 나 5명이 참수형을 당하였다. 1860년부터 1870년 10년사이에 함경도일대를 포함한 한반도북부지역에서 전례없던 자연재해가 발생. 특히 1869년에는 얼마나 굶어 죽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해를 라고 불렀다. 젖먹이 엄마가 환장하여 등에 업은 아이도 삶아 먹고 미친사건도 발행하였다. 그래서 변경민들이 목숨걸고 월강하여 화전농사를 지었다. 당시 화전농사를 짓는 방식이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 전형적인 방식의 하나가 바로 , 혹은 이런 화전농들이 붙잡히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당시 강을 건너간 남편을 외롭고 쓸쓸하게 기다리다가 지쳐버린 안악네들의 참상을 반영한 민요..당시에는 상당히 류행된것이다. 그 민요의 제목이 바로 새봄이 다 가도록 기별조차 없는 님을 가을밤 안신까지 또 어찌 참으래요. 두만강 눈얼음은 다 풀리여 갔다는데 새봄이 아니오라 열세 봄 지났어도 못 참을 내 아니언만 가신님 날 잊었을가 강남의 제비들은 제 집 찾아왔다는데... 1883년 청나라는 두만강을 건너 오는 월강민들을 막을 방법이 없어 두만강이북 해란강이남을 조선인들의 으로 정하고 대량적으로 조선이민을 받기 시작하였다. 우리 민족이 연변지역을 포함하여 대량 중국으로 이주하면서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났다.이처럼 우리 민족은 조선조말기에 봉건지배 및 봉건지주들의 가혹한 압박과 착취에 견딜수 없어서 범월잠입한 월경민, 일제의 식민지략탈에 파산된 농민, 를 원치않은 반일군중, 일제의 식민지이민정책에 의해 강제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이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청나라말기부터 지난 20세기 40년대, 일제가 패망한 광복전까지 중국조선족인구는 무려 216만3115명으로 나타났다. 우리 민족은 인가가 없는 심산속에 귀틀집을 짓고 개척의 첫 괭이날을 박고 황무지를 개척하고 밭농사를 지으면서 이 지역을 개발하였다. 이 지역의 개척자, 개발자로서 역시 중국땅의 북방지역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키고 보급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중국동북지역의 벼농사는 개산툰의 천평벌, 룡정부근의 세전이벌, 대교동으로부터 시작된것이다. 중국조선족은 민족독립과 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의 선구자들이다. 당시의 특수한 력사적환경에서 조선에서는 독립운동을 하기 힘들었기에 리상설, 김약연같은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가정을 이끌고 혹은 온 집안의 친척들을 이끌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서 반일사립학교를 꾸리면서 반일교육운동을 진행하였다. 서전서숙의 설립, 그 얼마후 설립된 명동, 창동, 정동, 광성 등 수많은 반일학교들이 반일인재양성의 요람, 반일투쟁을 전개하는 여론진지, 행동중심으로 된것이다. 이와 동시에 김약연, 리동춘, 백옥정, 김립 등 수많은 저명한 반일투사들이 탄생되였다. 이처럼 조선반도가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민족해방투쟁과 민족독립의 기지로, 전장으로 된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넓은 중화의 대지에서 제일먼저 반일의 봉화를 피워 올리였다. 제일 먼저 항일항쟁의 첫 총성을 쏘아 올렸다. 세인을 놀래운 봉오동전역, 청산리대첩 그후 1945년 8월까지 장장 20여년간 일제와 피비린전쟁을 펼친 불요불굴의 민족이다. 특히 동북지역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은 가렬처절하고 전대미문이였다. 중앙민족대학 정희숙교수는 론문 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중국관내지역은 지난 20세기 전반기 조선혁명가들과 독립지사들이 중국의 대력사 사변들속에서 진리를 찾고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일제와 굴함없이 싸웠던 력사의 현장이다. 조선혁명가들과 독립지사들은 신해혁명으로부터 북벌전쟁, 토지혁명, 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중국혁명의 거친 물결속에서 만악의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하여 중국의 군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으며 중국혁명과 항일전쟁승리에 마멸할수 없는 공적을 남겼다. 수많은 조선혁명가들은 중국혁명의 승리는 곧 조선혁명의 승리로 이어질이어질 것 굳게 믿으면서 중국의 신해혁명과 북벌전쟁에 참가하였다. 조선혁명가 양림, 무정, 리철부, 김산, 주문빈 등이 그 대표적인물이다. 한편 김원봉과 윤세주, 김규광, 박건웅, 류자염을 비릇한 조선혁명가들과 신정, 신채호, 김구를 비릇한 독립지사들도 각자의 민족독립과 구국의 길을 찾으면서 일제와 싸웠다.이들은 서로 비슷하거나 다른 주장을 가지고 중국의 현대사와 함께 하면서 조선민족 반일투쟁사에 영광스러운 한패지를 엮어놓았다. 필자는 최근에 연변대학의 교수들과 함께 을 편찬하고있다. 이 와중에 수많은 독립투사, 항일투사들이 민족의 독립과 구국을 위하여 20대의 꽃나이에 일제와의 싸움터에서 하나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장면을 수없이 목격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남을 금할수 없었다. 중화의 대지우에 광활한 동북지역의 그 어느곳에 이름없이 묻혀 있는 그네들을 생각하면 정말 저도몰래 숙연해진다. 중국조선족은 필경 조선반도에서 과경한 민족인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이나 한국의 국민들과는 달리 이미 원래 그 자체가 아니다. 조선족은 어려운 시절 조선반도에서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이민해 왔고 중국의 혁명과 개발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중국국민의 자격을 취득한 소수민족이다.지난 150여년이 넘는 정착과정을 거쳐 성공적으로 중국에 뿌리를 내렸고 중국에서 주류사회에 (국가의 령도층에도, 군의 장성에도, 학계의 최고 위치에도)진입한 우수한 민족이다.중국조선족은 중화의 대지에 정착하면서는 자기나름대로 자기특색의 문화를 창출하였다.  우리는 반드시 이 점을 알아야 할것이다. 중국조선족은 원래에 토대하여 자기특성의 우수성을 형성하였다. 다시 말하면 반도에 안주하는 의 의식에서 해탈되여 대륙의 기질를 갖추어 대범하고 포옹력이 강하고 끈질기고 그 어떤 역경도 잘 참고 견디며 이겨내는 우수한 민족이다. 이런 우수성은 우리 조상들이 일단 중국 땅을 밟고 이 곳에 정착하면서 그 시각부터 한족, 만족, 몽골족, 회족, 등 수많은 민족과 함께 생활하고 생산활동을 진행하면서 이런 과정에 서로 융합되고 서로 보충하고 서로 충실하게 받아들인것이다. 타방으로 연변지역을 망라한 중국 다시 말하면 지정학적인 특점에 의하여 결정된다는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 영향을 받게 되고 그 락인이 찍히게 된다. 우리는 흔이 이를 가르켜 고 한다. 한반도는 필경 10만평방킬로메터에 달하는 반도이지만 중국은 960만평방킬로메터에 달하는 대국이다. 령토는 로시야, 카나다 다음으로 가는 세계3대국인것이다. 그리고 연변지역을 포함하여 중국조선족이 절대대부분 집거한 구역인 흑룡강성, 료녕성은 기후가 춥고 산구이고 그런 기후환경, 자연조건에 의하여 기필코 한반도에서 가지고갔던 그런 자연력사적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나름의 민족적특성과 민족적군체, 민족적민속과 문화를 형성하고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고있다는 얘기다. 중국조선족은 재래로 중화대지의 타민족과 공존하면서 서로 돕고 타민족이 곤경에처하면 자기 일처럽 그 역경에서 해탈되도록 최선을 다한것으로 모범이 되고있다.하다면 동족임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지난 60여년간 중국조선족은 조선반도에 대하여 종래로 등한지 않았다. 중국조선족은 압록강, 두만강을 사이에 둔 조선의 사회진보와 발전, 경제비약과 진흥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이는 세인이 주지하는 바이다. 중국조선족은 지구촌에서 랭전이 종식되고 중국과 한국이 수교를 한것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였다. 하기에 중한수교를 계기로 한국에 진출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된 것을 몹시 보귀하게 여기고 적시에 틀어 잡았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 한국에 진출한 중국조선족은 50여만으로 헤아린다. 물론 초기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돈을 벌려고 경제적부를 창조하려고 여기를 찾은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으로 하여 민족적자호감을 느끼고 여기 와서 열심히 일하면서 피땀으로 돈도 많이 벌어 잘 살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 20년이 지난 오늘날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였다. 중국조선족은 한국사회에서 절대 홀시할수 없는 사회력량, 경제세력으로 성장하면서 한국에 엄청난 재부를 창조해 주고 거대한 기여를 하고있다는것도 철 같은 사실이다. 혹자는 주제가 이라고 하면서 다 아는 조선족의 력사에 대하여 왜 새삼스레 이처럼 장황하게 늘여놓는가고 의이를 제기할지 모르겠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절실하기에 이처럼 반복하여 력설하는것이다. 한국에서 현재 거주하고있는 50여만에 달하는 중국조선족은 현실적인 존재로서 바로 상기한것과 같은 아주 영광스러운 력사를 자랑하는 군체이다. 이 군체는 막강한 실력을 갖춘 빛나는 력사로 하여 자호감을 느끼는 자랑스러운 민족, 위대한 민족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은 모르거나 얻어 들은 방편에 불과하다. 이런 분들에게 자기를 분명하게 알고서 절대 주눅이 들지 말고 떳떳하고 당당하라는것이다. 한국서 기사 원문보기  
28    우리를 절대 무시할수 없다 댓글:  조회:3961  추천:2  2013-10-11
우리를 절대 무시할수 없다 ___중국조선족 한국에서의 역할에 대한 단론   중국조선족의 현황 해당 부문에 따르면19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한국내 외국인은 중국조선족을 포함하여 산업연수생 등 도합38만여명에 불과하여 이들은 한국사회의 이방인으로 분류되였다. 그러나 글로벌화의 급속한 진척과 더불어 지구촌이 갈수록 일체화하면서 단일민족을 전통으로 삼아 온 한국 사회에도 전대미문의 격변이 일어나고있다. 외국인 류입이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2012년 8월말까지 체류 외국인은 총 144만명으로 국내 총 인구의 2.8%에 해당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외국인과 더불어 살수 밖에 없는 다문화환경에 진입하게 되였다. 그중 중국조선족은 방문취업을 포함하여 도합 47만여명, 기타 체류인원까지 합하면 대략 50만명 (이 가운데서 F4비자의 소지자는 14만명), 이는 한국체류중인 외국인 총수의 33%를 차지한다.   중국조선족의 역할 한국 이주.동포정책연구소 곽재석소장의 주장이다. 중한수교초기에는 중국조선족들의 모국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도를 두고 론의가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론의가 일소되였다. 그것은 중국조선족의 한국의 경제와 사회발전에 대한 거대한 기여는 추호의 의심할 여지가 없기때문이다. 우선 중국동포들이 가진 국제적 인적자원의 역할이다. 그중 가장 뚜드러진 분야는 무역이나 투자 등 실물경제와 관련된것이다. 무역과 투자는 중국동포들의 한국발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밀접한 련계를 맺으면서 발전하여 온 분야이다. 선진국의 비공식적인 무역장벽, 특히 비공식적인 국제계약 체결 또는 국제무역기회의 불합리한 정보 등과 관련하여 중국조선족은 동포간의 비즈니스 및 사회적네트워크는 국경을 넘어서 다양한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인 무역장벽을 극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동족간의 네트워크는 또한 고수익의 국제무역과 투자정보의 상호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소비자의 특이한 성향에 대한 내밀한 정보를 수출기업에 제공함으로서 중한간의 무역중개활성화에도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다음 중국조선족들이 한국의 로동시장의 활성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동반하여 고소득시대에 진입하면서 1990년대중기부터 3D산업분야에서 로동력부족의 현상이 갈수록 엄중해 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고 동일한 문화적배경을 공유하고 로동시장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중국조선족근로자들의 고용이 선호되였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중국조선족근로자들의 한국의 서비스산업시장에로의 대거 진출은 한국경제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거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은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로동시장의 애로를 풀어나갈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보편적으로 인정하고있다. 중국조선족들이 조선반도의 통일에서의 가교역할도 절대 홀시할수 없다. 중국조선족사회의 건전한 발전은 조선반도 평화와 안전 조선반도 북과 남의 접촉과 관계개선, 나아가 통일문제까지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것이 전문가들의 지론이다. 중국조선족은 지정학적으로 지구촌의 그 어느 지역에 있는 해외동포들보다 더욱 밀접하고 력동적인 기능으로 관계개선에 매체역할, 완충역할을 할수 있다는 점이 중대한 의의를 갖는것이다. 동시에 중국조선족은 사회주의문화와 자본주의문화 이 량자에 모두 익숙하고  북과 남을 자유로이 왕래할수 있기에 북과 남간의 동질적인 문화의 소통과 융화를 이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조선족은 북과 남 사이에서 기본상 중립적인 립장이기에 량자간의 문화충돌에서 우호적인 완충지대로 부각되고있다.   당면 주요한 모순과 갈등 한국진출 중국조선족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바로 중국조선족이라는 이 기본적인 성격과 특점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리념을 주창하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정신적기둥이 결여된것이다. 중국조선족이라는것으로 하여 자랑스럽고 떳떳한것이 아니라 마치도 그 무슨 오점으로 잘못인정하면서 회피하거나 지어 포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하고있다. 결국은 한국사회에서 본토인들에 의하여 하등인, 외래인, 지어는 4등인으로 전락되면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됨은 십분 자명하다. 중한수교를 계기로 한국사회에 대량 진출하였지만 초기에 절대다수 사람들은 단순 , , 등 물질적인것, 금전적인것이 주로였다.(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진것도 사실). 그래서 더럽고 위험하고 간고한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고 잘 살수 있는 조건도 창조하였다. 동시에 중국조선족들은 한국사람들이 아예 하지 않는 지어는 입에 올리기조차 싫어하는 그런 업종들에서도 피함이 없이  악착스레 일하면서 한국에 엄청난 부를 창조하여 주었다. 그러나 이제 20년이 지나면서 그런 간고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있다. 하지만 뚜렷한 리념이 없는데서 정신적으로 공허하고 심리적으로 항상 불안하기만 한것이다.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사회는 기본상 흩어진 상태이다. 일심 단합되고 힘이 센 조직체를 구성하여 구심점역활을 하는 그런 단체의 탄생을 고대하지만 정작 그런 인물이나 조직이 나타나지 못하고있다. 고향동향회, 스포츠단체, 지역단체, 언론을 중심으로 한 단체 등 각종 단체들이 적지 않지만 규모가 작고 응집력이 약하고 성격이 단일하고 그 조직자들이 적지 않게는 리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여서 규모를 형성하지 못하고있다. 그래서 절대대부분의 중국조선족동포들을  흡인하는데는 역부족이다. 강력한 조직력, 응집력, 포옹력이 결여된 것이 주되는 원인이다. 중국조선족동포들의 실질적권익을 수호하고 한국에서의 그 존재를 분명히 하면서 그 역할을 더욱 잘 발휘하자면 중국동포사회는 반드시 잘 단합되고 그 힘을 한곬에 모아서 세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주류사회와 조화를 이루면서 한국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유조한 건전한 력량으로 발전해야 할것이다. 동시에 막강한 경제력을 갖는것도 필수적이다. 경제력이 강해지면 기필코 그에 알맞는 사회세력을 형성하게 되는바 중국동포들의 권익을 수호하는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사회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게 될것이라고 인정한다. 오늘날 한국에 거주하고있는 중국조선족동포출신 정치인이나 교수, 학자,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 와서 류학하고있는 우리 동포 연구생, 대학생들도 상당한 수자이다. 동시에 한국인들가운데서 중국조선족동포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있고 몹시 동정하고 지극히 관심하면서 중대한 문제에서 항상 발벗고 나서는 지성인들이 아주 많다. 이런 한국의 명망높은 교수, 학자, 전문가나 사회활동가들은 중국조선족들의 존재를 아주 중시하고 그들의 진정한 역할발휘에 큰 기대를 가지고있다. 그리고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하여 꾸려지고있는 신문도 10여종이라 한다. 언론의 역할도 절대 간과할수 없는것이다. 물론 이런 동포언론지들이 중국조선족의 대변인으로 되여 동포사회를 이끌어 가고 동포들의 권익수호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언론지들도 하나같이 뭉치여 중국동포사회의 구심점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것이 몹시 기대된다.      
27    쓰레기에서 “황금알” 캐라 댓글:  조회:3369  추천:0  2013-08-21
쓰레기, 쓸모없어 버려진 이런 물건더미를 대할 때면 사람들은 흔히 이마살을 찌프리기가 일쑤이다. 악취 풍기고 볼품없이 망가지고… 이런 무질서한 쓰레기더미를 처리할수 없어서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도 실용가능한 자원으로서 활용하기나름이고 여기서도 “황금알”을 캐내여 부자가 될수 있다. 오늘날 지구촌 신흥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우리 나라의 경제력은 일본을 언녕 제치고 G2로 자리 굳혔고 이제 20여년후면 일약 미국을 제치고 제1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주장도 제기될만큼 세인의 이목을 끌고있다. 이와 더불어 공업용쓰레기, 건축쓰레기, 생활쓰레기, 자연적으로 생기는 환경쓰레기 등 각종 쓰레기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고있는것도 절대 홀시할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또한 지구촌에서 제일가는 쓰레기대국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는 재활용산업발전에서 굉장한 저력을 확보하고있는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재활용사업도 줄기차게 펼쳐지고있는 상황이다. 재활용산업이 갈수록 세분화되면서 페재료에 따라서 알맞는 재활용기업이 속출하고있다. 이를테면 페금속을 종류에 따라 재활용하여 신제품을 가공하는 기업들이 우후죽순마냥 생겨난것이다. 이런 기업들을 돌아보느라면 인간의 생산, 생활, 과학교육, 교통, 국방 등 제반 사회, 경제 활동가운데서 이미 1차적으로 개발리용된후 페기된 물건들도 반복적인 회수, 수리와 가공을 거치면 재리용될수 있는 물질자원이라는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신흥산업으로서의 재생산업이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갈수록 지능화하고 과학화하고있는 가운데 “재생연”, “재생협객”, “재생가능에너지”, “재생사이트도매시장”, “재생정보사이트” 등 전문사이트들이 대량 출범하면서 하나의 경제주류, 정보세력을 형성하고있다. 또한 쓰레기 처리 및 재활용 산업과 관련된 립법사업도 다그쳐지고 있다. 국가적으로 “전자쓰레기 회수처리에 관한 7가지 건의”를 공포한것이 일례이다. 쓰레기의 관리와 처리는 이미 민생과 환경의 질과 직결되면서 국가적인 대사로 부상했다. 얼마전에는 국무원 제551호 정령으로 “전기전자제품의 회수처리 관리조례”도 출범됐다. 연변도 국가적인 경제발전추세에 발맞추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연변은 중국내에서도 인민대중의 소비량이 가장 높은 5대 지역에 속한다고 한다. 이미 상해, 광주를 제치고 일약 앞자리를 차지한것이다. 헌데 재활용산업은 아직 초급단계이다. 동북아 금삼각의 명주로 불리우는 연길시에 페고품경매, 중고품도매교역시장이 하나뿐이고 중고품 가정용전기제품매장도 몇개뿐이다. 거의 대부분 중고품은 페물로 페기처분되는 상태이다. 국가급개방도시 훈춘의 상황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중국내의 거의 대부분 중소형도시는 거개 연길이나 훈춘과 같은 상황이다. 재활용산업이 기본상 미형성상태이라는것을 말해준다. 지난날 우리는 건축물을 지을 때면 흔히 최저로 100년은 견딜수 있도록 “백년대계 질 제일”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지금 보면 20년 혹은 30년도 넘지 못하고 허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건축물을 철거할 때 새것이나 다름없는 완전한 창문유리도 거침없이 들부시고 아직 쓸만한 문틀이나 기타 부속물도그대로 부셔버린다. 젊은 세대들이 새롭고 고급적인것만 추구하면서 2~3년도 쓰지 않고 바꿔버리는 가전제품이나 가장집물들도 기수부지이다. 이런 물건들이 그냥 거리에 버려지면 페고물상들이 주어서는 페물로 팔아버린다. “왜 이렇게 망탕 처리하는가? 이것이 다 돈인데…” “조금만 손질하면 금방 새것처럼 쓸만한데…” 이러한 현상을 목격하면서 항상 아쉬움과 우려를 금할수 없었다. 동시에 무궁무진한 재생산업의 저력과 함께 그 과업이 아주 막중함을 절감했다. “세상에는 쓰레기란 없다. 오직 활용 가능한 물질자원만 있을뿐이다. 쓰레기를 포함한 모든 자원이 유용하게 활용된다면 모두 보물로 전환될수 있다.” 한국에서 재생산업을 흥기시키여 “평생환경파수군”,“쓰레기더미에서 황금알을 캐는 사나이”란 명성을 얻은 재활용 운동가, 실천가 천정곤선생의 명언이다. 연변일보 8월 21일
26    축제마다 개성있게 댓글:  조회:2782  추천:0  2013-07-24
축제의 계절이다. 삼복철의 불볕더위를 동반하여 각종 축제도 달아오르고있다. 이제 도문에서 펼쳐지는 두만강축제, 룡정에서 펼쳐지게 되는 9.3경축행사, 연길에서 펼쳐지는 길림성 제6회 소수민족전통체육경기 등 축제와 경축행사가 꼬리를 물고있다. 정녕 즐겁지 아니할수 없다. 헌데 일침하고싶은것은 이왕에 펼쳐졌던 축제와의 동일성은 될수록 피면하고 이번 축제는 그 나름으로의 개성을 살리는데 더 많은 뇌즙을 짜야 하겠다는것이다. “이게 무슨 축제람? 지난해 하던 그대로네.” “저 도시에서 하던것을 그대로 옮겼네?” 축제장을 다녀온 사람들의 실망스러운 말이다. 축제조직자들에게 던져지는 의미깊은 숙제가 아닐수 없다. 축제장에 가보면 흔히 보게 되는 일색장면, 판에 박은듯한 프로그램과 불법주차와 바가지상혼, 흥청망청한 무질서는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축제장의 전형적모습이다. 축제는 실상 인류가 산생되면서 동시에 출범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에는 물론 지금도 나라, 민족, 종족, 지역마다 나름대로 그에 걸맞는 정착된 축제문화가 있다. 성공적인 세계 명품축제는 오래동안 그 명성을 유지하며 세인을 매료한다. 이를테면 매년 3월이면 4일 동안 밤낮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흔들어대는 정열의 브라질 “리우삼바축제”가 있다. 또 3000여명이 한꺼번에 거리 천막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독일 “뮌헨의 맥주축제”, 동남아일대의 종전시장을 련상하게 하는 태국 전통의 “치앙마이 대형축제”, 도로우에 막 뿌려진 도마도로 온몸을 샤와하듯 수만명의 젊은이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스페인 “부뇰도마도축제”도 있다. 가까운 일본의 “삿포로눈꽃축제”는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면서 일본을 세계로 알리는데 효자노릇을 하고있다. 오늘날 이곳 연변에서도 도시에서는 도시로서의 자기 자랑을 살리고 농촌은 자연생태농업의 자연우세와 특점을 앞세우면서 다투어 각종 축제를 펼치고있다. 축제를 개최하면 관람객이 몰려와 그 지방 브랜드를 홍보하는 한편, 지역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때문이다. 그래서 “축제=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것이다. 또한 그래서 널리 보급되고 선호되는것이 아니겠는가! 축제는 그 지방의 력사와 문화, 환경 등을 품격높게 조합한 내용이여야 한다. 지방마다 차별화된 문화콘텐츠를 개발해야 축제가 성공하여 가치가 창조되고 정신적, 문화적 나아가 물질적 성과로 련결된다. 축제가 성공하려면 근시안적 상업성을 배제하고 지역의 전통성과 력사성에 기초하여 철학과 품격높은 특성화로 절묘하게 구성되여야 한다. 해마다 동일한 축제를 조직하더라도 왕년과는 다른 색채, 다른 풍격을 부여하기에도 알심을 들여야 할것이다. 이를테면 장춘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장춘시조선족민속문화축제를 거행한다. 헌데 이번 7월 19일에는 처음으로 “조선문도서전”이라는 뜻깊은 행사가 선보였다. 민속문화축제에 즐거운 노래와 춤, 체육경기, 맛있는 음식과 함께 “책”들도 등장시켜 우리 글의 향기도 함께 느껴볼수 있게 한다는것이 그 기본취지란다. 이번 “조선문도서전”은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고 민족 문화, 전통을 지키고저 장춘애청자애독자 클럽에서 주최한것이다.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은 장춘조선족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회원의 대다수는 로인들이다 농촌지역에서 생태문화, 자연환경을 주제로 동일한 내용의 축제를 조직하더라도 차별성과 개성에 력점을 두고 지역마다 고장마다 자기 특성을 살리기에 알심을 넣어야 할줄로 안다. 타고장에서 하던대로 앵무새처럼 따라할것이 아니라 타지방의 축제들을 거울로 삼고 배울것은 배우면서도 그것과 다르게 또 그것을 릉가하게 펼쳐야 할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쾌활하고 기분좋은 삶, 창조적 유희의 즐거움”이라며 축제를 찬미하였다. “축제”를 그리스어로 직역하면 “신에 대한 사랑의 증명”으로 풀이된다.우리들이 축제를 조직하면서 상기 명언을 항상 되새겨봄이 마땅하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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