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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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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2016년 04월 14일 19시 04분  조회:1425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나의 길 
 
 
1916년에 아름다운 항구도시 원산에서 나는 누룩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여났다.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 언제나 통신부에서는 새 을(乙)자들이 판을 쳤다.
“또 오리(乙)투성이구나. 넉가래(甲)는 하나두 없구.”
어머니가 체념적으로 탄식하시는것을 들을적마다 나는 몹시 열적었다. 그래도 “다음 학기엔 잘할테니까 엄마 념려 마” 소리는 한번도 안했다. “넉가래”는 애당초에 나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것을 자신이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그 대신에 어머니가 “네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홀어미 자식 소리를 듣는다. 알겠느냐?” 하신 말씀만은 명심해 철저히 지켰다. 70년 동안을 청교도처럼 술담배와 담을 쌓고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우리 큰아버지는 대서업자였으므로 대일본제국의 “6법전서”를 성전(圣典)으로 받들어모셨다. 그래서 나를 불러다 앉혀놓고 루루이 타이르는것이였다.
“공산당이란 불한당패니까 아예 가까이할 생의를 말아.”
후에 내가 총을 맞고 일본감옥으로 끌려갔을 때 바로 그 큰아버지가 우리 어머니를 보고 “제놈이 총 한자루 들구 숫제 제국군대와 맞서보겠다구? 그놈이 아주 돌지 않았다면야 언감생심 그따위짓을 할리가 있나. 허 참!” 하는 바람에 우리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천지간에 용납 못될 대역죄를 지은줄 알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는것이다.
그 큰아버지가 나를 훈계하고있을 바로 그무렵에 우리 외삼촌의 처남인 안몽룡(安梦龙)은 ML파였으므로 “치안유지법위반”에 걸려 서대문형무소에서 징역을 살고있었다.(해방후 그는 원산시의 초대시장으로 됐다.)
이런 무슨 갈래판인지를 도무지 알수 없는 환경속에서 자라던 나는 서울 보성고 재학중에 리상화의 시를 접하게 된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부르짖음에 열광한 나머지 나는 그 빼앗긴 땅에서 살아야 하는게 새삼스레 절통했다. 그런데다가 또 입쎈의 “민중의 적”에서 주인공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것은 혼자 따로 서는 사람”이라고 갈파하는것을 보고는 그만 아주 환심장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
문학지《조선문단》이 복간됐을 때 나는 볼런티어(자원봉사자)로 뛰여들어 심부름군이 됐다. 심부름을 다니면서도 은근히 딴마음이 있어서 제 주제도 돌보잖고 명색소설 한편을 써다가 편집부에 디밀었더니 편집장 리학인(李学仁, 보성고와 일본대졸)이 읽어보고 “이봐 총각, 이두 안 나서 뼈다귀추렴부터 하겠나?” 하는 바람에 나는 도리여 웃음이 나왔다. 등뒤에서 몰래 어른의 흉내를 내다가 들킨 아이모양 쑥스러웠다.
—빼앗긴 땅을 붓으로 되찾지 못한다면 총으로 찾지!
그리하여 나는 상해로 건너가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 김원봉(金元凤)의 부하가 돼 반일테로활동에 종사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나는 웽그리아 애국시인 뻬뙤피의 시를 접하게 된다.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마저 바치리
하지만 사랑이여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
 
외아들인 나는 홀어머니도 돌보지 않고 외국으로 달아나와있었다. 무엇때문에? 목숨보다 더 중한 사랑, 그 사랑보다 더 중한 자유, 그 자유때문에!
그후 나는 중앙륙군군관학교(교장 장개석)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의 전신)에 입대하게 된다. 그러니까 정식으로 장총을 멘 조선독립군이 된것이다.
1938년 10월, 일본군에게 함락되기 직전의 무한—당시 세계반파쑈진영에서 동방의 마드리드라고 부르던 무한—에서의 일이다.
그때부터 긴장한 전투의 나날을 보내던중에 우습기도 하고 또 한심스럽기도 한 일 하나가 생겼다. 전투중에서 우리가 사살한 적병의 잡낭(멜가방)속에서 우리 글로 된 수진판책 한권을 뒤져냈는데 거기에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단편 하나가 수록돼있었던것이다.
책뚜껑이 다 떨어져나갔던 까닭에 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랐지만서도 아무튼 우리 문인들의 “걸작”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후 여러해가 지나 해방된 서울에서 나는 리태준, 김남천 등을 통해 비로소 그 작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때 사살한 적병이 우리 동포라 추측하니 웬지 마음이 아팠다. 학도병 같은 무슨 그런 사람이였으리라.
1941년 12월, 태항산항일근거지에서 나는 홍사익(洪思翊)휘하의 일본군과 접전을 하다가 중상을 입고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가 나가사끼(长崎)감옥에서 그물 뜨는 작업을 하다가 같은 복역수인 송지영(宋志英)과 사귀게 됐다.(송은 해방후 한국문예진흥원장 등을 력임했다.)
나를 “비국민(非国民)”이라고 극도로 미워하는 감옥의사가 총상입은 다리를 치료해주지 않아 나는 3년 동안 내내 고름을 흘리며 견뎌야 했다. 그러다가 45년초에 그 못된 놈의 의무과장이 전근이 되는 바람에 겨우 소망의 절단수술을 받게 되니 나는 곧 살것 같았다. 않던 이가 빠진것 같이 거뜬했다. 그러나 마음 여린 송지영은 도리여 나를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리는것이였다.
“이봐요 송형, 내가 우산귀신이 됐으니 이제부턴 비맞을 걱정은 안해두 돼.”(우산귀신은 외다리로 통통 뛰여다닌단다.)
이런 롱담을 하기는 하면서도 국민학교 교원으로 있는 누이동생에게 사실을 그대로 알리기는 좀 난감했다. 그러나 결국은 알리지 않을수 없어서 편지를 쓰는데 짐짓 호기롭게 이렇게 썼다.
“사람의 정의(定义)는 ‘인력거를 끄는 동물’이 아니다. 다리 한짝쯤 없어도 문제없다. 걱정 말아!”
나는 혁명군인으로서의 출로가 아주 막혀버린 고비에서 문학의 길로 전환할 결심을 내렸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는 격이다.
1945년 10월 9일, 맥아더사령부(련합군사령부)의 명령으로 일본 전국의 정치범들이 일제히 풀려날 때 송지영과 나도 출옥하여 시모노세끼(下关)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서 1년 동안 소설명색의 글들을 부지런히 써서 발표하다가 정치정세가 험악해지는 바람에 나는 조직의 결정으로 부득이 월북(越北)을 하잖을수 없게 됐다.
평양에서는 김사량과 친교를 맺었고 또 리태준과도 래왕이 잦았다. 그러다가 장편소설 하나 넉넉히 엮을만큼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1950년 가을 북경으로 들어와 중앙문학연구소[소장은 녀류작가 정령(丁玲)]에서 연구원으로 본격적인 문학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1952년 가을,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된 뒤에 나는 역시 아직은 밝히기 어려운 사정들이 있어서 연변에 와 정착을 했다.
그러나 창작활동은 4년 정도 했을뿐이다. 1957년 “반우파투쟁”때 나는 숙청을 당해 장장 24년 동안 붓을 꺾어야만 했다. 그간에 또 분노에 찬 정치소설《20세기의 신화》(27만자, 미발표)를 쓴 죄로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도 다시 3년 동안을 반혁명전과자라는 극히 “고귀”한 신분으로 안해가 공장에 다니며 벌어다주는것을 얻어먹고 사는 신세가 될줄이야. 그러다가 1980년 12월에 다시 열린 공판정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명예를 회복하고보니 내 나이 자그마치 65살이였다.
나의 현재 진행중인 라스트 헤비—최후의 분발은 그때부터 시작된것이다. 그리고《격정시대》가 서울에서 출간되는것을 계기로 나의 활동령역은 갑자기 넓어졌다.
문학의 정상에로의 등반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젠 잘 알았지만 그래도 죽을 때까지 견지할 작정이다.
민족의 질을 돋워올리는데 이바지하지 않는 문학이란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런 무의미한 문학에다는 정력을 허비하지 않는다는것이 나의 소신이자 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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