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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터에서 맺은 인연
2021년 03월 30일 10시 08분  조회:601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샘물터에서 맺은 인연

리영자



우리 몇몇 친구들은 일주일에 두세번씩은 대흑산에 가서 샘물을 길어온다. 크고 작은 물병을 넣은 가방을 메고 공공뻐스를 타고 대흑산 근처에서 내린 다음 2리 길을 걸어서 산어구에 있는 샘물터에까지 톺아올라 물을 받아 내려오는데 꽤나 힘든 작업이다.
길어온 샘물은 반은 갈라서 아들집에 가져가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전에 한번 샘물을 길어다 줬더니 손자가 나 보고 “할머니가 길어온 샘물은 저녁에 공부할 때 마시면 졸리지 않는 같아 좋아요.”라고 신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한마디가 힘이 되여 그 뒤로는 날마다 무슨 임무라도 수행하듯 샘물터로 오가군 했다.
샘물터로 가자면 울창한 소나무숲과 무성한 수풀을 지나야 했다. 우리 일행은 자연이 주는 선물에 흠뻑 취한 채 맑고 시원한 공기를 한껏 마시면서 때론 노래를 흥얼거리고 때론 익살스러운 우스개로 배를 끌어안고 웃기도 하면서 힘든 줄 모르고 산어구까지 씽씽 톺아오른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 샘물터에 이르러 샘물줄기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맑고 시원한 물을 몇모금 들이키고 나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단번에 가셔지는듯이 뿌듯해진다.
샘물이 보배라고 여기저기 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먼 대련시내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려객들도 푸술하다. 하많은 사람중에 조선족인 우리 셋의 목소리도 들려 기분난다.
우리끼리 조선말을 하며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슬쩍 옆에 와서 혹시 조선족이 아닌가고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우리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조선족 김치 너무 맛 있어요.” 라고 서투른 조선말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펴보인다. 그 때면 자부감 때문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난다. 저마다 싸들고 간 도시락에서 김치를 꺼내는가 하면 손수 빚은 물만두도 맛 보라고 넘겨준다. ‘선족’이라고 잘못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때마다 ‘조선족’이라 불러야 한다고 상냥하게 바로잡아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하루, 105번 공공뻐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로인증이 나지지 않았다. 멜가방 안에도 없고 호주머니에도 없었다. 뻐스에 오른 친구들더러 먼저 가라고 시늉을 하고는 정류소에 멍하니 서있었다. 로인증을 분실하면 다시 고향 연길에 가서 수속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걱정부터 앞섰다.
머리 속에 문득 샘물터에서 친구들과 반듯한 돌들을 주어다 그 주위를 다듬어놓은 기억이 떠올랐다. 가방이 열려져있는 걸로 보아 십중팔구 그 때 떨어진 거 아닌가 싶다. 그길로 스무근도 더 되는 멜가방을 둘러메고 샘물터로 돌아섰다.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혹시 로인증 같은 걸 보지 못했느냐고 물어보니 한결같이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이였다. 헐레벌떡 샘물터 어구까지 이르러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한 녀인이 중국말로 “이거 혹시 어르신의 로인증 아닙니까?” 하면서 카드 한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받아보니 과연 내 사진이 박혀있는 로인증이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녀인을 유심히 바라보니 웬지 낯설지 않았다. 전에 내가 맛 보라고 준 김치가 하도 맛 있다고 칭찬을 해서 포기김치까지 가져다줬던 분이였다. 샘물터에서 로인증을 주었는데 펼쳐보니 ‘김치할머니’ 사진이 박혀있기에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면서 힘들었겠는데 목을 추기라고 하면서 가져온 고뿌로 샘물까지 따라주었다. 시원한 샘물을 한모금 들이키고 나니 그 사이 어디 날아갔던 정신마저 다시 돌아오는듯 차분해났다.
잠간 휴식하는 사이 우리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올해 53살이였는데 집에 딸이 하나 있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자기를 양딸로 삼아달라고 청을 드는 게 아니겠는가? 아들 둘을 낳고 평생 ‘목메달’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면서 딸을 그토록 부러워했는데 호박이 넝쿨 채로 굴러오니 별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후로 우리는 뻐스역에서, 샘물터에서 만나서 정을 나눴고 워이신으로 안부를 전하면서 모녀의 정을 쌓아갔다. 맛 있는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눴고 간혹 내가 몸이 불편하다고 하면 집에까지 찾아와서 보살펴주었다. 하루라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마음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샘물터에서 맺어진 인연, 피를 나누지 않고 민족은 달라도 우리 모녀간의 사랑과 우정은 석양으로 향한 우리의 삶에 사막의 오아시스마냥 생기와 기쁨을 가져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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