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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보은의 끝 / 노인기
2022년 10월 14일 13시 03분  조회:212  추천:0  작성자: 설야

[중편소설]

보은의 끝
 

노인기


     풍성한 버드나무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 있다. 오후 산들바람은 갈대와 나뭇잎으로 하여금 부드러운 소리를 발하게 하고 그리고 그 소리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미롭게 들렸다. 하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발트블루 빛깔로 드리워져 있었고, 하얀 구름은 포메라니안의 귀 같은 모양들을 하고 있었다.
     잔디가 짙게 깔린 넓은 마당에는 유독 큰 너도밤나무와 버드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데 버드나무 아래 자작나무로 만든 의자가 마치 밥 로스의 풍경화를 옮겨 놓은 듯 그림 같이 놓여있었다. 지금은 나무와 함께 의자도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을 때 항상 얇은 담요를 챙겨서 목 위까지 올려 덮고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후를 즐길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엄마! 지금 시간이 이렇게 됐어요.” 하고 알려주어야만 겨우 일어난다. 그러면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하고 분주히 챙겨서 서둘러 들어가신다.
     엄마가 의자를 이용하는 경우는 딱 두 경우다. 휴식할 때와 고민거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용하지 않으신다. 이제는 앉은 자세만 봐도 지금 무슨 일이 있어서 고심하고 있는지, 아니면 휴식을 취하는 중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고민할 때의 자세와 휴식하는 자세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고민이 있을 때는 옆으로 돌아 눕듯이 의자에서 다리를 겹친 다음 자세를 옆으로 돌아 앉아있고, 휴식할 때는 몸을 반듯하게 하여 팔걸이에 팔을 올려놓고는 나름 편안한 자세로 먼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다. 기분이 좋을 때도 혹 근심이 있을 때도 담요는 항상 챙긴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과 내가 몇 살 때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는데 아마 동생 찰스는 네 살 아니면 다섯 살 겨울로 기억되고 나는 열 살이 채 못된 것 같다. 아니, 열 살 생일 무렵으로 어렴풋이 기억된다. 왜냐하면 생일 케이크에 초를 열 개를 꽂고 불을 한 번에 끄지 못하자 동생이 두 개 정도는 불어주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날은 유독 날씨가 화창했다. 그런 날은 일 년 중 손꼽힐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엄마는 의자에서 돌아앉은 채 도무지 자세를 바로 하지 않으셨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 나름 판단하고 중얼거렸다.
     다른 날처럼 시간을 알려 주려고 다가갔지만 엄마하고 부를 수가 없었다. 고정된 시선은 미동조차 없었고 무슨 일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표정과 모습은 그때까지만 해도 처음 보았다. 결국, 말을 붙이지 못하고 뒷걸음질 쳐 돌아서 왔다.
     그날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의 손길이 여늬 때와는 사뭇 달랐다. 힘겨워 보였고 얼굴은 어디가 많이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에게 조용히 물었다.
     “엄마 어디 아파요?”
     “아, 아니. 아픈 곳 없어.”
     “그럼 왜 돌아앉아 그렇게 오래 있어요? 그리고 저녁도 먹지 않고......”
     “점심을 늦게 먹어서 생각이 없었어. 그래서 안 먹은 거야.”
     엄마는 다음 날 병원에 다녀왔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병원 다녀온 사실을 말하지 않고 숨겼다. 표정이 많이 어두웠는데 애써 감추려 하는 것이 력력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와 동생 찰스와 함께 바닷가 백사장으로 공놀이를 갔다. 모래 위를 맨발로 달렸다. 햇살은 물결 위에서 빛나고 서로 공을 던지고 받으며 즐겁게 놀이를 하는데 얼마 못되어 엄마는 지치셨는지 먼저 언덕 위로 올라가셨다.
     동생과 나는 바닷물이 물러간 뻘밭에서 조개를 잡으며 놀았다. 아니, 잡는다는 표현보다 땅을 파듯이 뻘을 파고 그 속에 숨어있는 조개를 캐고 놀았다. 물론 얼굴과 옷은 온통 뻘 투성이다. 언덕 위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엄마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앞으로 푹 꼬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공을 잡은 나는 너무 놀라 동생을 재촉하여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두 손을 어긋맞게 하여 가슴을 움켜쥐고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어디가 아픈 거야?” 놀램과 두려움으로 다급하게 흔들어 보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처음이었다. 부축하여 엠블런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자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울며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동생을 겨우 진정시키고 밖에서 담당 의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누나, 엄마 많이 아파? 언제 와?” 찰스가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동생을 보자 눈물이 났다.
     “병원에 왔으니 괜찮으실 거야.”
     애써 동생 앞에서 태연한척했지만 그래도 겁이 났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울고 싶었다. 세 시간이나 지나도록 아무도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생은 내게 기댄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수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는 아무래도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될 것을 알려주었고 쉴 곳을 안내해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한다. 침대 여러 개가 놓여있는 입원실이었다.
     “여기가 엄마 자리다. 수술받고 오실 때까지 조용히 하고 절대 떠들면 안돼. 알았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동생은 침대에 올라가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많이 놀라고 피곤했나 보다.
     다섯 시간이 되도록 엄마가 오지 않자 걱정이 앞섰다. ‘엄마의 병세가 많이 위중해서일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평소 나름 운동도 열심히 하셨는데 괜찮을 거야.’ 하고 스스로 위안해 보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선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생소한 병원에서의 밤을 거의 뜬눈으로 보내고 새벽 녘에 깜박 잠이 들었는데 간호사가 곧 엄마가 온다며 급히 깨운다. 동생은 그때까지도 곤히 잠들어있었다. 서둘러 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얼떨결에 깬 동생은 잠시 멍하니 누나인 나를 올려다 보고는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다.
     “아직 병원이야.”
     “엄마는?”
     “지금 오고 있어.”
     “아직도 안 왔어?”
     “응.”
     잠시 후, 복도는 바퀴 달린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고요를 뚫고 점점 가까워지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선명해진다. 엄마는 환자복으로 입혀졌고, 코에는 산소호흡기 장치로 보이는 녹색의 가느다란 호스 두 개가 콧속으로 들어가 있고, 왼쪽 팔에는 링거 여러개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이런 모습은 생소하여 어린 마음에 말도 못 할 정도로 무섭고 떨렸다. 동생은 다짜고짜 울며 엄마 품에 안기려는 것을 간호사가 겨우 안고 달래서 떼어놓았다.
     그날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언제까지나 곁에 머무를 줄 알았던 엄마도 언젠가는 나와 동생을 남겨두고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슬펐다. 눈물이 났다.
     엄마는 눈을 감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가만히 이마에 손을 올려 봐도 아는지 모르는지 기색이라곤 없었다. “엄마~”하고 처음으로 애처롭게 불러 보았다.
     잠시 후, 간호사가 짙은 녹색 가운과 수술실 모자와 파란 마스크를 착용한 의사와 함께 왔다. 엄마를 수술한 의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이름을 대며 가족이냐고 묻는다. 많이 불안했다.
     ‘네.’하고 대답이 나오지 않아 겨우 고개만 끄덕였다. 의사는 속에 형광등이 켜있는 네모진 아크릴판에 여러 장의 까만색 필름을 끼운다. 놀랍게도 학교에서 몇 번 본 것 같은 인체의 뼈의 형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엄마의 X-lay 사진이란다.”
     심각한 것 같아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보이는 이쪽이 엄마의 왼쪽 어깨이고, 반대편이 오른쪽이란다. 좌우로 보이는 활모양의 12쌍으로 이루어진 뼈들은 사람의 갈비뼈로 피를 생성하고 외부의 충격에서 폐, 심장 가슴 부위의 장기들을 보호해주는 역할들을 하지. 등 뒤로 에스 자로 약간 굽어서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뼈가 척추란다.”
     내가 아직 어린 학생임을 의식해서인지 의사는 비교적 자세하게 부연 설명까지 곁들였다.
     “엄마는 어디가 아파요?” 내가 물었다.
     “엄마의 아픈 부위는 바로 이 부위다.”
     의사가 가리킨 곳은 거의 까만 부분으로 내 눈에는 뼈의 형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가 어디예요?”
     “사람의 심장이란다.”
     “........”
     “엄마는 오래도록 심장의 기능이 좋지 않아 힘들어하셨지. 심장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멈추는 일이 없단다. 우리 몸 곳곳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장기로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 어떤 장기보다 크단다. 심장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늘 조심하면서 살아야 되는데 엄마는 이번에 운이 매우 좋았다.”
     “그럼, 다음에 또 쓰러질 수도 있어요?”
     “안타깝게도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쓰러질 수 있다.”
     “다음에 또 쓰러지면 어떡해요?”
     막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지푸라기도 붙잡고 싶은 절박함을 처음 느꼈다. 이럴 때 아빠가 계셨으면 큰 힘이 되었을 텐데, 그리고 아빠라면 엄마의 병을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빠를 속으로 불러 보지만 대답이 없다. 엄마로 인해 아빠가 몹시 그립다. 하지만 아빠는 계시지 않는다. 어린 내가 지금 상황을 감당하기란 무척 힘들었다.
     “현재로서는 이식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단다.”
     이식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
     “그럼, 이식을 받으면 완치가 되나요?”
     “그럼. 조건이 맞고 건강한 심장이라면 가능하지.”
     “대기자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엄마에게도 기회가 주어질까요?”
     의사는 잔뜩 희망을 기대하고 있는 나에게 결코 희망적인 말을 할 자신이 없었는지 난처한 표정으로 나의 물음을 대신했다.
     “선생님, 이번에 수술을 받았으니까 잘 하면 회복될 수도 있잖아요? 엄마는 몸에 해로운 것은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어요.”
     “엄마는 수술로 완치되기는 힘들단다.”
     의사는 명확히 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턱으로 끌어내리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술은 상당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이식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나 보다. 엄마 앞에도 수많은 대기자가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리고 의사는 이번에는 다행히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또다시 쓰러진다면 그때는....... 순간, 희망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의사라도 더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일까. 간호사에게 보통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지시를 내리고는 황급히 사라진다. 나는 그동안 엄마의 아픔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아프다고 내색한 적이 없었으니까. 의사의 설명을 다 듣고는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는 깨어서 동생과 함께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엄마의 팔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아빠는 직업이 소방관이셨다. 청소년 때부터 소방관을 꿈꿔왔었고 그 꿈은 성인이 되어도 변함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어릴 때부터 체력이 또래 아이들보다 크고 민첩하기까지 하여 운동선수가 되기를 원하셨는데 특히 야구에 소질을 보여 장차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기를 기대하셨다. 처음에는 아빠도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어릴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운동했었다. 적어도 하이스쿨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 꿈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전교생이 단체로 극장에서 영화를 시청할 기회가 주어졌다. 화재(火災)를 다룬 대표적인 재난영화였다. 불조심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깨우쳐주기 위해 백 마디 말보다 한편의 영상을 선택했나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그 효과는 매우 컸다.
     그날 영화를 관람하는 이는 학생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방관들이 소방제복을 입고 단체로 입장해 같이 시청했다. 신입 소방관들로 몇 주간의 교육과 훈련을 마친 다음 자신들의 삶을 다룬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소방 교육 마지막 시간에 포함되 있었다. 그날 소방관들의 자세는 묵념하듯 엄숙했고 한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학생들만 있을 때는 시끄럽고 산만했지만 점차 소방관 아저씨들의 진지한 태도에 감동을 받아서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도 숙연한 얼굴로 영화에 집중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작은 불씨, 설계도 대로 시공하지 않아서 결국 전선에 불이 붙었고, 그리고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삼켰다.
     비록 영상이지만 소방관들의 눈부신 활약과 희생정신은 청소년들에게 감동과 화재의 심각성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소방대원 모두가 주인공들이었고, 끝끝내 소방대원의 말을 듣지 않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살아나 올 수 없는 불꽃 가운데서 구조를 받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몇 명의 소방대원들의 희생이 따르긴 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불 속을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영화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소방대원들을 인솔한 소방대장으로 보이는 분이 무대위로 올라와서 마이크를 잡고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30년 베테랑이었다.
     “학생들 영화 잘 봤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더 묻는다. 마지못해 앞줄의 몇몇 학생들과 여선생님 몇 분이 조그맣게 대답했다.
     “너무 감동이 되어서 말이 잘 안 나오나 봅니다. 화면으로나마 우리 소방관들의 수고로움을 조금은 알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소방대장은 영화의 중요한 장면들을 상기시키며 베테랑답게 부연 설명을 이어가다가 어떤 특정한 장면을 떠올리고는 학생들에게 나 같으면 이때 어떻게 대처를 했을까, 하고 질문들을 던진다. 엄숙한 분위기는 금방 누그러지고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나름 진지하게 대답한다. 다행히 엉뚱한 대답으로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 결국 재난으로 이어지고 조심할 부분을 조심하지 않으면 끔찍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영상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깨우쳐주었다.
     “학생 여러분들의 진지한 태도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실제로 화재현장은 조금 전 시청한 영상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절박하고 위험합니다. 화면에서도 순식간에 불이 번지듯이 나 한 사람 부주의로 또는 소방대원 같은 경우 나 한 사람 신속하지 못함으로 귀한 생명이 불 가운데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소방 대장의 마지막 인사말에도 생명을 향한 투철한 희생정신이 뜨겁게 느껴졌다. 그날 그 충격은 아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자신의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심각한 물음이었고, 이 물음에 대해 자신에게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했다.
     며칠 고민 끝에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메이저리그를 내려놓고 대신 고통 중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던지겠다고 뜻을 정했다. 이런 아들의 확고부동한 신념 앞에서 조부모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힘든 소방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는 곧바로 소방관 직무를 시작했다.
     시카고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였는데 그때 아빠의 나이 겨우 24세였다. 이글거리는 화염을 뚫고 위험한 곳은 언제나 본인이 앞장서고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현장은 동료를 앞세웠다. 해마다 최우수 소방관으로 선정되니 진급도 그만큼 빨랐다.
     시카고에서의 생활이 5년 정도 되어갈 무렵, 한살 적은 엄마와 1년 3개월 정도 만난 다음 그해 가을에 결혼했다. 그리고 이듬해가 거의 저물어 갈 무렵, 마치 새해 선물처럼 내가 태어났다. 아빠는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동생 찰스가 태어났다. 그때는 아빠의 근무처가 뉴욕이었고, 시카고 소방서에서 10년을 근무한 다음 뉴욕 생활은 2년째 접어들었다. 미국에서 제일 큰 도시로 인구가 타 도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래서였을까, 확실히 출동하는 횟수도 그만큼 많았다.
     7살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아빠의 아침 출근 때, 나와 동생 찰스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일어나 배웅했다. 엄마 품에 안겨 아직 잠이 덜깨인 듯 눈을 비비며 하품하는 찰스도 아빠가 두 손을 내밀자 얼른 아빠에게 건너갔고, 아빠가 얼굴을 돌려 볼을 가까이하니 침이 잔뜩 묻은 입을 갖다대고는 아빠의 거친 수염 때문인가 금방 엄마에게로 두 팔을 내민다. 그리고 아빠는 나를 번쩍 안아 들고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공주님, 아빠 올 때까지 엄마하고 동생 잘 데리고 놀아요.”하고 부탁한다.
     그날 기쁨에 찬 아빠의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귓가에 아른거린다. 몇 번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때마다 엄마와 동생과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날 화재발생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처음엔 큰불이 아니었다. 최초 신고자는 건물에서 약간의 타는 냄새와 연기 정도만 피어나고 불꽃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부하 대원들이 진화에 나섰다. 그런데 진화작업 도중 예기치 못한 곳으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확산되었다. 현장에서 급히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해 SOS 긴급 출동이 내려졌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고 시뻘건 불꽃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있었다. 화염과 유독가스로 인해 대원들은 진화하는데 여간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두 사람 구조되어 거의 다 빠져 나올 무렵, 2층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동료 소방관의 말을 듣고 아빠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다음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화장실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녀를 발견했다. 모녀는 욕조에 들어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는 이미 연기를 많이 마신 상태로 거의 정신을 잃었다. 모성 본능을 따라 온몸으로 아이를 감싸 안고 떨어지는 불똥을 자신의 등으로 받치고 아이를 감싸 안고 있었다.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먼저 엄마를 둘러메고 겨우 화염을 뚫고 나왔다. 다시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동료들이 곧 건물이 무너질 것 같아 너무 위험하다고 만류한다. 그러나 자신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저 불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딸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사람의 강한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빠는 다시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그대로 욕조의 물 속에 있었고, 급히 아이를 안고 돌아서는데 맹렬한 불에 콘크리트와 그 속의 철제와 골조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더미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건물을 거의 빠져나왔을 때 그만 가열된 골조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그대로 아빠 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끝까지 아이를 품 속에 안고 자신은 뜨겁게 가열된 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불에 달구어진 더미와 그 엄청난 무게에 의해 압사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품 속의 아이는 무사하여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그날 화재는 소방차에 의해 진압된 것이 아니라 전소로 끝이 났다. 장례는 엄숙히 거행되었고, 대통령도 뉴욕시장도 아빠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은 동생 찰스가 두 살 되던 해에 일어났다.
     이 후, 엄마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병원치료가 지원되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어느 때부터인가 심장의 두근거림이 점점 심해지더니 가슴 가운데로 자주 손이 올라갔다. 결국,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육체까지 병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수술 후 7일이 지나자 식사량도 처음보다 많이 늘었고 움직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8일째 되는 날, 담당의사는 퇴원해도 괜찮겠다고 오후 회진 때 알려주었다.
     “이 같은 수술의 경우 두 주 정도 입원하여 환자의 동태를 충분히 살핀 다음 퇴원해야 되는데 다행히 환자분은 회복이 빠른 편이어서 사흘 정도 조기 퇴원하는 것입니다.”
     2주 간격으로 내원하여 검사를 반드시 받을 것을 권하더니 아예 예약날짜와 시간을 그 자리에서 정했다. 퇴원해서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또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게 했다. 특히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당분간 병원에서 지정한 것으로 식단 관리를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다음 외래는 2주 후 오늘로 그러니까 목요일로 해야 되지만 학술회의가 잡혀있어서 그 다음 주 화요일로 정했다.
     “2주를 넘겨서 조금 그렇긴 한데, 약 잘 챙겨 드시고 주의할 부분만 조심하시면 괜찮을 겁니다.”
     괜찮을 거란 의사의 마지막 말은 마치 경쾌한 음악같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일 뿐 이식을 받지 않고는 결코 회복되지 못한다는 것은 엄마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퇴원하고 2주가 되어갈 무렵 그때까지 엄마는 잘 견뎌 주었다.
     물론 동생 찰스도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예전처럼 매달리거나 떼쓰고 투정 부리는 일은 많이 줄었다. 비록 어린아이지만 자신의 그런 행동들이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것쯤은 아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동생과 나는 엄마가 입원한 다음부터 많이 의젓한 느낌이 든다. 엄마가 쓰러지고 아무 말도 못하자 그 두려움과 놀람은 어린 마음에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일은 내게도 처음 경험해보는 일로 대단한 충격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오늘이 정확히 퇴원 후 2주가 되는 날이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중간검사를 받아야 하는 날인데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아침부터 그리 밝지가 못했다. 정말 의사의 말대로 2주가 고비인 것 같다.
     병원에 가기를 권했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오늘 하루를 지내보고 그래도 안 좋으면 병원에 가겠노라고 하신다. 엄마의 고집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고 답답하여 심호흡과 헛기침을 했다. 괜히 다툼이라도 할라치면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기도 할 뿐더러 지금 엄마는 환자가 아닌가. 현기증이 나서 어질어질했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불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바람을 맞으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햇살도 좋았다. 순간,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때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엄마가 앉았던 것처럼 버드나무 아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자작나무 의자에 앉았다. 아니, 이유 없이 찾아온 외로움에 못 이겨 그 의자에 앉았는지도 모르겠다. 의자는 마치 어머니의 품같이 포근했다. 슬펐다. 눈물이 났다. 괜히 고집 피우시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그때는 어떡할까? 걱정과 고민으로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5년째 접어들면서부터 수술받기 전처럼 자주 가슴으로 손이 올라간다. 어느 순간 눈에 튀게 호흡은 거칠어지고 가슴이 죄여오는 고통은 다시금 불안과 함께 통증을 불러온다. 그리고 괴로움을 견디기는 무리다 싶었을까. 결국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엄마의 상태를 본 주치의는 몹시 당황했다.
     “왜 빨리 오지 않으셨어요?”
     물론 엄마의 변명이나 해명을 들으려고 물은 것은 아니었고, 참고 견딜 것이 따로 있지 이 지경이 되도록 뭐했냐는 다소 원망 어린 의사의 말투였다. 심전도는 예상대로 불규칙적이고 심장은 생각보다 힘이 없었다. 검사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는지 바로 응급상황을 발동하여 방송으로 알리고 수술에 들어간다. 단순히 통증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이 다 되도록 수술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실로 긴 밤이었다. 어쩌면 그때까지 나에게 가장 긴 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입원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먹지 못한 데다 두 번의 큰 수술로 인해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 아름답던 얼굴은 윤기와 탄력을 잃어 이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깨어나는데 거의 하루 정도 걸린 것 같다. 입술은 피와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주름지고 메말라 있어서 핏기라고는 없는 것 같다. 거기에 움푹 들어간 두 눈은 볼 때마다 안타까움만 더하게 한다.
     아직 담당 주치의로부터 수술경과에 대해서 듣지 못했다. 답답하다. 간호사에게 물어봐도 전달받은 것이 없으니 달리 할 말이 없을 수밖에.
     다음 날 아침 회진 때, 담당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 마디 큰소리로 엄마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간호사에게 체크 시트를 가져오게 하고 그 사이 환자 몸에 부착된 의료기기들을 이곳저곳 살펴본다. 체크 시트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언제부터 맥박이 약하게 뛰었어요?” 간호사에게 묻는다.
     “수술방에서 올라오면서부터입니다.”
     뒤따르던 다른 의사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전문용어로 새로운 처방을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바로 시행할 것을 지시하고 병실을 나선다.
     거의 종일 엄마는 어찌 된 영문인지 깨어나지 않는다. 오실로스코프 상의 맥박은 정상적으로 뛰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의 뒤척임은 고사하고 팔다리 손가락도 움직임이라고는 없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자가호흡이 아닌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숨을 쉬고 있었다. 오전에 담당의사의 지시를 받던 의사가 의식이 돌아왔는지 확인차 두어 번 찾아와서 몇 마디 물어보고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힘없이 돌아간다.
     저녁 무렵, 아침때보다도 더 굳은 얼굴을 하고 담당 의사가 뛰어들어왔다. 수 간호사가 그 뒤를 황급히 따른다.
     의사는 차근차근 그리고 또박또박하게 낮에 간호사들이 체크했던 사항들을 물어보았다. 답답하다. 엄마의 손을 잡아보는 것도 또 소리내어 불러 보는 것도 두렵다. 자정이 넘어서는 심장 맥박을 나타내는 모니터의 그라프가 갑자기 빨라지고,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더니 간호사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진다.
     어디론가 급히 연락을 취하더니 물어보는 대로 증상을 말하자 곧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고요히 잠들었던 병원 전체를 들쑤시듯 휘감고 흘러나온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1001, 코드블루, 코드블루 1001!”
     그렇게 방송과 동시에 엄마는 어디론가 옮겨지고 그 자리는 비었다.
     벽에 기댄 채 두 다리를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간호사가 찾아와 “괜찮으실 거야.” 하고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지만 이미 내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열리지 않았다.
     방송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옆 침대의 보호자들이 며칠 전에 옆 병실에 입원해있던 할머니도 갑자기 심정지가 왔을 때 지금처럼 똑같은 방송이 나왔는데 결국 숨을 거둔 적이 있었다는 얘기들을 주고 받는다.
     ‘아~ 엄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반쯤 튀어나왔다. 결국, 엄마도 잘못되는 것일까? 또다시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그리고 새벽이 되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보조의자에서 피곤에 겨워 나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었다.

     간호사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한다. 잠시 뒤, 비교적 큰 문 입구에 섰는데 안내 푯말도 없었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아까 왔던 사람들이 거의 빠짐없이 모여있는데, 공기는 한없이 무거웠고, 사방은 눈처럼 하얗게 페인팅 되있었다.
     큰방은 칸막이가 되어있는데 중간부분은 유리로 되어있어서 내부가 훤히 보였다. 침대가 놓여있었고, 그 위를 하얀 천이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는 입원하면서부터 줄곧 엄마의 아픈 몸을 뉘었던 바로 그 침대였다. 동생과 함께 검은색 옷을 입었다.
     동네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오래되고 황량한 교회당이 있는데 주일에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곳은 아니었다. 십자가 비석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공동묘지였다. 목사님과 몇 분을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분들로 한결같이 검은 옷을 입었는데 여자들은 모자조차 검은색이었다.
     십자가 비석 아래 저마다 꽃다발을 놓은 것이 어느 새 수북이 쌓였다. 동생은 오래전부터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던 곰인형을 그 옆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어색한 듯 웃는다. 아직 엄마의 부재를 실감 못하는 모양이다. 비로소 눈물이 난다.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바람에 날려 옆에서 있는 동생에게 떨어진다.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무릎을 꿇어 동생과 눈을 맞춘 다음 천천이 입을 열었다.
     “찰스, 내 말 잘 들어. 엄마는 이제 우리에게 올 수가 없어. 다만 네 마음 속에만 머무르실 거야.”
     이 말을 듣고 뭔가 깨달았는지 아니면 누나가 울고 있으니까 따라 울었을까, 동생도 곧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지금껏 동생 앞에서 태연한 척했던 나도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엄마의 십자가 비석을 어루만지며 엄마를 부르는데, 그런데 누가 세차게 흔든다. 처음에는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해서 흔들기에 돌아보니 동생 찰스였다.

     “누나, 누나! 일어나.”
     “응, 이게 어떻게 된거지? 여기가 어디야?”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꿈이었다.
     새벽 녘에 피곤에 지쳐 보조 의자에서 잠깐 잠이 들었을 때 꿈을 꾸었나 보다.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왜 하필 엄마의 장례식 꿈을 꾼 것일까? 혹시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많이 불안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회복실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잠시 후, 엄마를 담당하는 의사가 왔다. 지난 마지막 수술이 후 또 수술을 기대하기란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사실상 힘들다고 한다. 지금의 상태로 생명을 연명하기란 거의 어렵다.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지 못하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다소 절망적인 얘기였다.
     처음에는 5년 정도도 예상 못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5년째 접어 들어서는 엄마의 몸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나를 내려다보며 계속 말을 이어간다.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이번 주 안으로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래도......”
     힘들다는 말 대신 의사는 한숨과 더불어 절망의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역시 다음 말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의사에게 그래서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하고 물어본다면 결국 의사는 자기 입으로 의사로서 제일 하기 힘든 말을 하게 될 테니까 묻지 않았다. 의사의 가느다랗고 붉은 입술은 거짓이나 농담 같은 말은 내뱉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회복실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엄마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빠르게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 꿈 속의 장면들이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시간은 흘러가고 가슴에 부착된 전기신호기가 점점 약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회복이 늦어 그날은 입원실로 올라오지 못하고 회복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가끔 링거를 살피는 간호사 외에는 찾는 이가 없다. 엄마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다시 듣기를 희망한다. 이식 수술도 받아보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마치 넋이 빠지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 온다.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의사는 이번 주말까지라고 했다. 오늘이 목요일 이제 이틀 남았다. 희망은 엄마와의 이생의 끈이 끊어진 것처럼 소멸하여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무겁게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가 되었다. 야속한 강물처럼 머무르는 법이 없다. 16시를 막 넘어가는데 갑자기 흰 가운을 입은 네 명의 의사와 간호사 두 사람이 들어오더니 맥박과 혈압을 체크하고는 빨리 수술실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한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 것일까?
     “선생님! 엄마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해쓱한 얼굴로 의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의사의 표정이 의외로 밝았다. 아니, 오히려 기쁨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아직 말씀 안 드렸군요. 오늘 오후에 어떤 분이 장기를 어머니께 기증해주셨어요.”
     “아 정말요?” 믿어 지지가 않았다. 또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꿈은 아니었다.
     “혈액형 및 여러 조건들이 마치 기적같이 엄마와 잘 맞아서 우리 의료진도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서 긴 시간을 기다렸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건강한 모습의 어머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실에서 하루 정도 머문 다음 입원실로 올라갔는데 코드블루가 발동되고 일주일 만이었다. 회복이 빨랐다. 의사도 엄마도 같은 일을 두고 역할은 다르지만 동일한 기적을 체험하는 것 같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퇴원날짜가 다가오자 문득 기증자가 누구인지 또 어떤 연유로 기증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어머니에게까지 이르렀는지 궁금했다. 그 모든 것을 그냥 기적으로 치부하기에는 왠지 사람의 도리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 보니 기증자는 머라이언 클락으로 루이지애나에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누구이며 어떤 사연으로 장기를 기증하고 죽음과 맞바꾸었을까?’ 병원과 장기기증 센터에 수소문해 보았지만 그 어떤 자료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이름과 거주지역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퇴원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창백했던 얼굴은 정상을 회복했다. 예전처럼 입술도 빨갛게 생기가 돌아 한층 도톰해 보였다.
     나는 매일 엄마와 함께 바닷가 옆길을 한 시간 정도 거닌다. 오래 전 셋이서 공놀이를 하던 곳도 지나고 수년 전 가슴을 움켜지며 쓰러졌던 그 자리도 지난다.
     여전히 장기를 기증한 사람이 누구인지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가 모처럼 버드나무 아래 자작나무 의자에 앉아 오후의 햇살을 즐긴다. 오늘은 우체부가 조금 늦게 우편물을 전해 준다.
     “톰! 오늘은 좀 늦었네요.” 엄마는 오래전부터 우편물을 전달해주는 흑인인 톰 아저씨에게 항상 말을 먼저 건넸다. 더운 여름은 시원한 음료와 함께 쿠키와 베이컨도 잊지 않았다.
     “네! 오늘은 우편물이 평소보다 많아서 조금 늦었습니다.” 우편물을 가방에서 찾다가 멈추고 갑자기 엄마를 낯선 사람처럼 한참을 쳐다본다.
     “왜요 톰! 뭐가 잘 못 됐어요?”
     “아니요. 바실래르! 얼굴이 몰라보게 좋아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떤 우편물이 왔나요?”
     “발신인 주소는 적혀있지 않은데 우표 직인이 멀리 루이지애나 직인이 찍혀있는 편지가 한 통 있어요.”
     가방에서 우편물을 꺼내어 먼저 살펴보고는 엄마에게 내밀었다.
     “네 고마워요.”
     모두에게 친절한 톰 아저씨는 아무리 배달업무가 많아도 안부 묻기를 잊지 않았다. 톰 아저씨와 오랜만에 서로 안부를 여쭙고는 천천히 편지를 열어본다.
 
     친애하는 맥밀런 부인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머라이언 클락의 딸 마가렛 프랭키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여서 많이 당황되실 줄 압니다. 어머니 머라이언 클락과 저는 오래 전 뉴욕의 화재사고 때 맥밀런 소방관님의 희생으로 죽음의 불 가운데서 살아난 모녀입니다. 소방관님의 가족들에게 그날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 화재 당시 어머니는 연기와 유독가스를 너무 많이 흡입하여 쉽게 회복이 어려웠고, 화상의 상처가 너무 깊어 오래도록 고생하셨습니다. 그 후,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견디다 못해 결국 루이지애나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루이지애나는 어머니의 외가댁으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당하신 맥밀런 소방관님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릴까봐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화상에 의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회복되었지만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에 의한 데미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오래도록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가 더 이상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소방관님의 가족들을 뵙기를 희망하셨습니다. 이곳저곳 어렵게 수소문 끝에 겨우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인께서 심장병을 앓고 계셨고 급기야 이식을 받지 않으면 부인 또한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담당의사에게 비밀로 해줄 것을 약속하고 본인의 심장조직과 부인의 조직에 문제는 없는지 검사를 의뢰하셨습니다. 검사결과 기적같이 맞아 주었고 이식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놀라운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야 겨우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은 것 같다고 그리고 훗날 그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 감사의 말씀을 잊지 말라고 하시고 수술실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맥밀런 소방관님에게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저를 꼭 껴안고 불길을 해치며 나오시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제 가슴에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어떤 말이 부인과 자녀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소방관님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부인께서도 소방관님하고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며 자녀들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 마가렛 프랭키
 
     편지를 다 읽은 어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눈물이 두 뺨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이분들이 또 나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셨구나.’
     편지를 가슴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얼굴은 슬픈 표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쁜 표정은 더욱 아닌 어쩌면 아빠에 대한 그리움의 표정이었다. 바람은 어머니의 머리칼과 버드나무의 무성한 가지를 헝클어 놓고는 바다 멀리 날아간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옛날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그때 엄마가 뒤에서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던 일이 생각 난다. 동생 찰스는 누나가 타는 두 발 자전거를 자기도 타보겠다고 고집 피우며 자신의 세발자전거는 내팽개쳐버린 일들을 떠올리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나는 지금 그 옛날 어머니가 버드나무 아래 자작나무 의자에 앉아서 오후를 보내던 것처럼 그때를 지나고 딸아이는 그 무렵 내 어린때를 지나고 있다.
     어머니는 유치원 수업을 마친 나를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부르며 두 팔을 활짝 펼친 채 달려오고, 나도 엄마 하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간다. 막 안기려는 찰나 “엄마, 엄마 일어나세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요.” 하며 딸아이가 깨우는 것이 아닌가.
     석양의 해는 눈이 부시지 않다. 다만 물결 위에서 빛난다. 대서양이 내려다 보이는 푸른 잔디 위 버드나무 아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행복한 꿈은 아직 꾸어 보지 못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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