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선
호두는 우리말 사투리로 ‘가래토시’라고 부른다.
내가 호두를 알게 된 것은 아홉 살 되던 해였던 1975년 10월이였다. 아버지는 도문 철도부문에서 근무하다가 사업의 수요로 왕청현 묘령역으로 전근하셨다. 묘령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이였다. 이사 때문에 전학이 늦어져 나는 한 달 동안 집에서 놀아야 했다.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기다리던 끝에 드디어 아버지와 함께 학교로 갔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홍경복 선생님이시였다. 짧은 파마머리에 키가 작고 아주 날씬한 녀선생님이셨다. 동그스럼한 얼굴에 자그마한 두 눈, 얇은 입술…… 첫인상이 엄격해 보여 조금 무서웠다.
학교 입구에는 단층짜리 기다란 새 벽돌 기와집이 있었고 그 앞에는 3층짜리 낡은 벽돌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새 벽돌집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가셨다. '다른 볼일이 있으신 건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 걸어가자 단층짜리 낡은 초가집이 보였다. 문이 세 개였고 벽은 언제 회칠했는지 흰색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한군데는 어느 개구쟁이가 공을 차서 장난질 쳤는지 벽이 허망 떨어져 나갔다. ‘여긴 아마 창고인가 보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두 번째 칸 문을 열며 말씀하셨다.
"어서 들어와. 여기가 우리 교실이란다."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런 데서 공부를 한다고? 지붕은 낮고 벽은 회색빛이였다. 바닥은 세멘트도 아니고 흙을 다져 놓은 것인데 울퉁불퉁했다. 작은 유리창 때문에 교실 안은 더욱 어두웠다. 비가 오는 날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 마음에도 먹구름이 꼈다.
지붕이 새서 비물이 떨어지고있었다. 비가 많이 새는 곳은 양동이로 받고 조금 새는 곳은 아이들이 책상을 옮겨 피했다.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맨 앞자리에 앉았다. 종소리가 울렸다. 칠판 앞에는 낡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고 선생님은 교단도 없이 그냥 칠판 앞에 서 계셨다. 칠판은 나무에 먹칠을 한 것이였는데 너무 오래되여 군데군데 검은색이 지워져있었다.
"오늘 우리 반에 새 학생이 왔습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모두 박수로 환영합시다."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힘껏 박수를 쳤다.
첫 시간은 수학 시간이였다. 그때는 수학을 ‘산수’라고 불렀고 더하기는 ‘가하기’, 빼기는 ‘감하기’, 곱하기는 ‘승하기’, 나누기는 ‘제하기’라고 했다. 나는 이사 때문에 한 달 동안 학교에 못 가서 나누기를 배우지 못했다. 선생님이 문제를 내고 풀라고 하셨다. 나는 곱하기로 푸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앉은 아이가 말했다.
"야, 이건 제하기야. 승하기로 풀면 틀려."
"몇 배인가 하면 승하기잖아."
"제하기야! 빨리 고쳐. 너 제하기 못 배웠지?"
나는 얼른 그 아이 답안을 보고 고쳤다. 그때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속이 두근두근했다. ‘첫날 첫 교시인데 틀리면 어쩌지?’
원래 학교에서 나는 늘 백 점을 맞았다. 학습위원으로 활동하며 선생님을 도와 학생들의 숙제를 걷어 드리고 선생님이 바쁘실 때는 숙제 검사도 했다. 담임이셨던 박보옥 선생님은 참 인자하신 분이셨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으셨고 수업이 끝나면 우리에게 소설책도 읽어주셨다. 지금도 박 선생님이 읽어주시던 《반짝이는 별》의 반동자가 생각난다. 우리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때면 선생님은 이렇게 롱담을 하셨다.
"어떤 동무는 지금 생각이 옥수수밭에서 헤매고 있구나."
그러면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틀렸습니다."
홍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크게 곱하기 표시를 그으셨다. 너무 힘차게 그어서 내 공책이 다 찢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집에서 외동딸로 자라며 이렇게 호된 꾸지람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늘 칭찬과 응석 속에 자란 나는 너무 슬펐다. 선생님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셨다.
"어떻게 28명이 모두 틀릴 수가 있습니까? 시간에 정신을 어디에 팔았기에 한 명도 맞는 학생이 없단 말입니까?"
목소리는 매우 신경질적이였다. 선생님은 다시 나누기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고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듣고 문제를 풀어 내려갔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무의식중에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이 한 남학생의 멱살을 잡아 벽 쪽으로 밀치셨다.
"문제는 안 풀고 장난만 치니? 선생님이 목 아프게 가르치는데 정신도 안 차리고 뭐 하는 거야?"
그 남자아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머리를 숙이고 땅만 내려다보았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이튿날 나는 학교에 가기 싫었다. 원래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가마목에 누워 버렸다.
아버지가 다가오셨다.
"우리 예쁜 딸, 어디 아프니?"
아버지가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 보셨다.
"열도 안 나는데…… 학교 갈 시간인데 왜 그러니?"
"머리가 아파서 학교에 안 갈래요."
"하루 가고 안 가면 어떻게 하겠니? 아버지가 학교까지 업어다 줄게."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등에 업히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 등은 따뜻했다.
"아버지, 나 원래 학교로 다시 다니면 안 돼요? 이 학교가 싫어요."
"어떡하니? 도문에 집은 다 팔고 이사왔는데... 어떻게 거기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겠니? 너한테 정말 미안하구나."
아버지는 속상해하시며 한숨을 쉬셨다. 평소에는 하늘의 별도 따 주실 것 같던 아버지가 그러시니 나는 더 떼를 부리지 못했다. 아버지등에 엎혀서 학교에 거의 도착했다.
"아버지, 내려서 걸어 갈게요. 애들이 보면 비웃을 거예요."
"머리 아프다며 괜찮겠니?"
나는 억지로 웃으며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들어갔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집에서 가져온 간식들을 꺼내 주었다.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는 전혀 없는 일이였다. 집에서 볶은 콩, 옥수수, 잣 등 너무 많아 손에 받아도 넘쳐서 책가방에 넣었다. 하학해서 집에 와 보니 파란 열매 몇 개가 섞여 있었다.
그것이 궁금해서 아버지께 물어보았다.
"아버지, 애들이 이걸 줬는데 뭔가요?"
"오, 이건 가래토시란다. 잠간 아궁이에 넣어 구우면 맛있지."
한참 후,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다. 파란 껍질은 사라지고 짙은 갈색 열매로 변해 있었다. 겉면은 울퉁불퉁했고 마치 하트 두 개를 마주 붙여 놓은 듯했다. 바닥에 놓고 망치로 깨자 복숭아 모양으로 딱 갈라지면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아버지는 송곳으로 하나하나 속살을 파내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아~ 고소해!"
태여나서 처음 맛보는 고소한 맛, 너무 맛있었다. 세상에 이런 맛있는 먹거리도 있다니!...
홍경복 선생님은 엄격하시면서도 마음속은 따뜻하신 분이셨다. 덕분에 우리 반 친구들은 문학과 기초를 튼튼히 다질 수 있었고 사회에 나가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승부욕도 하늘을 찌르셨다. 운동회에서 지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다. 줄다리기를 할 때면 선생님은 목청껏 응원하셨고 우리는 그 응원에 사기가 올라 더 힘을 냈다. 이기면 선생님은 달려와 우리를 껴안으며 "잘했다, 장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지금 옛추억을 되돌아보면 우리 선생님은 참 호두와 같으셨다. 겉은 무심하고 투박하지만 속은 알차고 사람 냄새가 가득한 분이셨다. 정이 깊고 엄격하면서도 제자를 사랑하는 참 스승이셨다. 그런 선생님이 계셨기에 나는 그 시절 힘든 사춘기도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같다.
홍경복 선생님이 너무 그립다. 지금은 많은 세월이 흘러서 이미 타계하셨지만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과 함께 영원히 존경스럽고 고마운 인연의 향기로 남아있다.

장춘선 프로필
1966년생
연길시에서 진료소 원장으로 근무
생태문예창작동호회 회원
연변가사협회 회원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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