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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시한부 삶이 남긴 여백
조글로미디어(ZOGLO) 2026년9월22일 10시40분    조회: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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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순자

삼 년 전,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돌아온 남편은 열흘 넘도록 꽃에 물을 주지 않았다. 창가에 놓인 화분의 흙은 바싹 말라 있었고 잎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믿기 힘든 의사의 진단으로 인해 일상의 리듬이 깨져버린 것이다. 

“폐암 말기입니다!” 

의사의 말은 지나치게 짧았고 뒤이어 이어진 설명들은 공기처럼 흩어져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남편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남편은 나를 의식했는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숨 막히게 고요했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췄을 때 남편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날씨 좋네.” 

그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가슴에 박혔는지? 

아무 의미 없는 말처럼 들렸지만 어쩌면 그는 이미 끝을 가늠하고 있었고 그 끝 앞에서도 평범한 하루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삶은 더 이상 앞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멈춰 서기도 하고 뒤돌아보기도 하며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병원을 다녀온 뒤로 남편은 저녁 식사 후 밖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집에 돌아온 후 보면 조용한 곳을 찾아 울다가 들어온 사람이였다. 얼굴이 부어 있고 눈도 충혈돼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그가 붙잡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대신 부엌에서 등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며 물소리에 울음을 섞어 삼키는 날들이 늘어갔다. 

남편의 일상도 달라졌다. 뉴스만 보던 량반이 자연인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가까운 산을 하루가 멀다 하게 오르내렸다. 살아 있는 것들, 숨 쉬는 것들, 버티는 것들을 모조리 붙잡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나한테는 견딜 수 없이 애처롭게 다가오며 마음이 아렸다. 

항암 치료가 시작되면서 남편의 하루는 병원을 중심으로 반경이 좁아졌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시간은 삶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련속 같았다. 이제는 항암제에도 내성이 생겨 방사선 치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는 여전히 똑같은 말만 한다. 

“괜찮아.” 

그 말이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다. 차가버섯 분말과 비단풀 약초가 효과가 있다 하여 큰 돈을 들이면서도 계속 사들였고 식이료법 역시 신경 써서 병행해 보았다. 그런 것이라도 안 하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손을 떼는 순간, 리별이 시작될 것 같아서였다. 

요즘 남편은 유난히 말이 많아졌다. 술기운을 빌려야만 겨우 입을 열던 량반이 아침이면 먼저 손주들에게 말을 건다. 

“우리 똘망이들 잘 잤어?”

“밥 많이 먹어.”

“유치원 잘 다녀와.”

행동도 이상해졌다. 멀쩡한 가스레인지 후드와 환풍기를 새것으로 바꾸고 내 손에 현금카드를 쥐여주며 말한다.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 

그 말 뒤에 숨은 조급함을 알기에, 사라질 시간을 붙잡는 몸부림 같아서 숨이 막혀온다. 사랑이 깊을수록 리별은 이렇게 잔인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밤이 되면 그는 잠들기 전 내 손을 꼭 잡는다. 나는 그 손의 온기를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말을 꺼내는 순간 울음이 먼저 쏟아질 것 같아서이다. 이제 우리는 말없이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손끝에서 손끝으로...

남편은 자신의 건강을 지나치게 믿었다. 감기 한 번 앓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바쁜 일정과 잦은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믿고 나 역시 안일함 속에서 남편의 몸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사이에는 분명 틈이 있었을 것이다. 서로의 삶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 틈, 매일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은 틈, 그 보이지 않는 여백 사이로 병은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괜찮다’는 말에 오늘이 매일로 이어질 것이라 믿고 안심하며 지냈던 것이 가장 큰 오만이였는데도 말이다.

삶은 늘 이렇게 무겁게 가르친다. 잃어갈 때에야 소중함을 알게 하고 끝이 보일 때에야 사랑을 선명하게 만든다. 후회는 늘 늦게 도착해 도착한 뒤에는 갈 곳을 잃고 마음속을 맴돈다.

작년 늦가을, 남편은 낚시를 다녀오다 밤서리에 움츠린 들꽃 한 포기를 뽑아 화분에 옮겨 심었다. 따뜻한 방에서 하루밤을 보낸 꽃은 아침이 되자 금방 얼굴을 펼쳤다. 마치 잠에서 깬 아이처럼 해맑게 말이다. 그때 나는 그 꽃이 살아난 것을 보고 남편을 생각하니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목에 걸려왔다.

지금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 속에서 여백을 배운다. 이제 무엇을 더 채워야 하는지, 아니면 그저 이렇게 멈춰 서서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 상실의 두려움 속에서 뼈 아픈 교훈을 얻었지만 시한부 삶이 남긴 여백은 분명 저렇게 다시 살아나는 꽃처럼 남은 삶을 잘 가꾸라는 은유인 것 같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우리 집 창가에는 늘 꽃이 있다. 월계화, 초롱꽃, 무궁화…. 물 주는 일은 언제나 남편의 몫이다. 시들던 꽃도 그의 손을 거치면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생명을 대하는 그의 손길은 늘 조심스럽고 자상하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자기 몸에도 저만큼의 정성을 쏟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고 말이다.

어느 날 큰딸이 제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는 왜 꽃만 키워요?”

남편은 잠시의 당황스러움도 없이 대답했다.

“너희 엄마가 좋아하니까.”

그 짧은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평생 말문이 무겁던 사람이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남긴 고백 같아서였다.

창가에 핀 꽃들이 어쩌면 남편의 마음을 대신해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사랑한다’는 말,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말이다.

나도 아직은 그에게 같은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꼭 전하고 싶다.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요즘은 남편이 먼저 일어나 나를 깨운다.

“좀 쉬여.”

“무리 하지 마.”

아픈 사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을 걱정하는 이 풍경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선다. 이 말들이 품고있는 시간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이다.

남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다만 하루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다. 함께 밥을 먹고 창가의 꽃을 보고 병 없이 지내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느끼게 하고 싶다.

저녁 무렵, 창가에 놓인 화분에 해빛이 스며든다. 꽃잎 우에 머문 빛이 천천히 사라진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 지나간 뒤에야 보이는 것들... 시한부 삶이 남긴 여백은 오늘도 그렇게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건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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