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만한 세월이 흘렀지만 날이 갈수록 부모님이 더욱 그립고 보고 싶기 때문이다.
'흥취가 선생이라'고 어려서부터 남달리 음악을 좋아한 나는 노래나 악기를 보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소학교를 다닐 때 다른 과목 시간은 별로였는데 유독 음악 시간만 되면 저절로 신이 났다. 선생님이 시키지 않아도 다짜고짜 친구를 데리고 교무실에 가서 발풍금을 교실까지 옮겨 왔고 그 시간에 배운 노래도 즉시 선생님의 손풍금 반주에 맞춰 부를 수 있었다.
나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점차 악기를 갖고 싶은 마음으로 자랐다. 악기? '자리를 보고 이불 펴라'는 말처럼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 형편을 아는 이 맏아들이 감히 악기를 사겠다는 말을 어찌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그러다 하늘이 내 심정을 알아주었는지, 하루는 길을 가다가 쓰레기 더미에서 반짝반짝 새하얀 빛을 뿌리는 하모니카를 발견했다. 하모니카!? 이게 웬 떡인가? 좋고 나쁜 것을 따질 사이 없이 얼른 호주머니에 넣고 집에 돌아와 몇 번이고 불어 보니 정말 괜찮았다. 와— 얼마나 기뻤던지, 바로 그때부터 잘 불든 못 불든 내 멋대로 기억 속에 있는 노래를 다 불어 보았다. 너무너무 재미있어 밥 먹는 시간 외에는 한시도 떨어질세라 불고 또 불었다.
얼마 지난 후 엄마에게 통사정해서 겨우 금방 낳은 계란 네 알을 들고 동네 합작사에 가서 팔아 제일 싸구려 피리를 샀다. 악기가 두개 있으니 더 신이 났다. 한참은 하모니카, 또 한참은 삐리리 듣기 싫은 피리 소리가 온 집안을 떠날 줄 몰랐다.
당시는 공농병대학생을 추천받는 시기여서 많은 졸업생들이 추천받아 대학교에 간다고 난리였다. 나도 중학교 졸업생으로 추천받을 조건은 되였지만 키도 작고 몸집이 약해 남들 보기에 어설펐다. 그러나 나는 음악에 대한 자부심을 안고 음악 전문 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피리와 하모니카를 불어야 했다. 그런데 연습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낮에는 그런대로 들로 나가면 되지만 밤이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낮에 힘들게 들일하러 다니며 피곤하게 주무시는 엄마, 아버지와 방문 사이를 두고 웃방에서 혼자 피리를 불었는데, 연습이 때로는 새벽 두 시 넘어까지 이어지군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근 2년이란 긴 시간을 매일 밤 불고 또 불었으니 얼마나 한심했던지 후에 나도 후회를 많이 했다. 하지만 존경하는 부모님들은 한 번도 시끄럽다거나 그만두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이튿날이면 점점 더 잘 분다고 격려해 주셨다. 철없는 나는 진짜 잘하는 줄로만 여겼고 더욱이 모든 것을 참아내면서 부모님의 잔소리 한 마디 없으니 마음 놓고 매일 저녁 하모니카와 피리를 번갈아 불며 도레미 등 음에 대한 기본 지식을 장악하게 되었다.
드디어 학생모집 사업이 시작되였는데 부지런히 일도 잘하고 대대 선전위원으로 여러 가지 문화 활동도 많이 조직했고 각 생산대를 다니며 소근장(小靳庄) 문예 연출도 많이 지도해 사원들의 신임을 얻어 추천받는 것은 쉽게 해결되였다. 그러나 이 음악 전문 신청은 음악 기초지식이 더 중요해 많은 친구들이 락방했다. 나는 다행히 끈질기게 매일 밤 늦게까지 집에서 피리를 불며 음악 지식을 자습한 데다 이어서 손풍금 단기 훈련반에 다니며 악기에 관한 기초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웠기에 1975년 연변예술학교 사자반(师资班) 시험에 합격하였다.
입학 통지서를 받던 그날, 나는 세상을 다 안은 기분이었다. 부모님도 너무 기뻐하시며 그 없는 살림에 술상을 차려 이웃 어르신들을 대접하셨다. 그때 나는 이웃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다시 한번 부모님께 깊이 감동되어 하마트면 눈물이 날 뻔했다.
“네가 음악학교에 가게 된 것은 무던한 부모님 덕이야. 인정 많고 사리 밝은 너희 엄마가 아들이 밤 늦게까지 피리를 불어 이웃에 폐를 끼친 게 미안하다며 손 절구로 입쌀가루를 내어 백설기를 해서 돌렸고 아버지는 간단한 술상도 차려 인사를 했어! 아니면 그 누가 그렇게 오랜 시간 밤중까지 피리 부는 걸 좋아할 사람이 있겠니!”
"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죄송합니다!"
아, 이런 부모님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는 눈물을 닦고 부모님 사진을 꼭 껴안은 뒤 학교로 가서 2년간 열심히 노력해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화룡현 로과중학교 음악교원으로 분배받아 일하다 정년 퇴직했다.
만약 그때 부모님들이 내가 피리 부는 것을 시끄러워하고 반대했으며 또 친구 아버지처럼 피리를 부러뜨려 놓고 막아 놓았다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되였을지 상상하기도 두렵다. 더구나 내 이름으로 작곡된 노래가 어디 있으며 오늘날 로인협회에서 내가 작곡한 곡으로 합창하고 음악 지휘까지 맡을 수 있겠는가!
남은 인생도 여전히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피리를 불며 배운 음악 지식을 잘 활용해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선률을 더 많이 창작하고 선전하며 음악 인생을 보람있게 보내리라 다짐한다.

최훈 프로필
1953년생
연변예술학교 졸업
연변음악가협회 회원
현재 북경시 조양구 망경에 거주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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