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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56]달걀 한 알에 담긴 위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26년10월14일 12시06분    조회: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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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순자


70년대 초, 우리 집 닭장은 항상 닭들로 북적였다. 새벽이면 닭이 울어 마을을 깨웠고 엄마는 닭장을 뒤져 따끈따끈한 달걀을 모아두었다가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우리 다섯 남매의 연필이며 공책을 사왔다. 달걀은 밥상 반찬이 아니라 살림의 밑천이였다. 우리 집 밥상엔 달걀이 오르는 날이 뜸했다. 그것은 오직 귀한 손님이나 찾아왔을 때에나 비로소 나타나는 음식이였다.

그러던 어느 한겨울 무렵이였다. 화룡에 계시는 작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셨다. 엄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작은 둥근 밥상에 모셨다. 그런데 그 상에만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달걀지짐이 올라 있었다. 반면 우리 일곱 식구가 늘 쓰는 네모난 밥상은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에 우리가 늘 먹던 밥과 김치 등 몇 가지 밑반찬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였다. 엄마와 우리 다섯 남매는 그 상에 둘러앉았다.

나는 그 달걀지짐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어른들이 먼저 드시고 일어나시면 그 남은 달걀지짐을 한 점이라도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어느새 다른 생각으로 채워졌다. 숟가락을 드는 순간 그 생각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눈앞에 보이는 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밖에 나가 뛰여놀고 싶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때였다. 엄마가 나와 아홉 살 터울의 막내 동생에게 작은 숟가락으로 그 달걀지짐을 비벼 밥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박혔다. 아차, 마음 한켠이 시큰하게 저렸다. 그러나 어쩌랴, 동생은 나보다 더 어리고 더 귀했으니까. 그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였다. 그 후로도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달걀 반찬은 례외 없이 손님상에만 올랐다. 나는 그때마다 ‘이번에는 혹시…’ 하는 덧없는 기대를 품었지만 한 번도 달걀을 먹은 기억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랐다. 달걀은 언제나 내게 손에 닿지 않는, 그래서 더 간절해지는 무언가였다.

시간이 훌쩍 지나 나도 어른이 되였다. 큰언니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언니가 아무 말 없이 부엌 가마솥 뚜껑을 열더니 따뜻한 삶은 달걀 하나를 내게 건넸다. 뜨끈한 그 손길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날 이후로 나는 언니 집에 갈 때마다 가마솥 뚜껑을 살며시 들춰보군 했다. 시루에 점심밥과 함께 달걀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달걀을 먹기 위해 일부러 큰언니 집을 자주 찾았다. 그 시절 언니 집은 나에게 소박한 위안의 터전이였다.

언젠가 나는 큰언니에게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언니, 나는 시집가면 달걀을 제대로 실컷 먹을래.”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알았다. 달걀에 대한 그리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언니 또한 나와 같은 시절을 살아내며 비슷한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언니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나 혼자만 서럽지 않았구나. 그 생각이 어린 시절의 뼈저렸던 기억을 살며시 어루만져 주었다.

80년대. 나는 련애를 시작했다. 지금의 남편과 데이트하러 나갈 때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뭐 먹을래?”

나는 망설임 없이 달걀지짐이라고 말했다. 달걀지짐 한 접시에 밥 한 공기, 그 얼마나 꿀맛이였던지. 씁쓸했던 어린 시절이 어느새 녹아 있었고, 그 맛 하나만으로도 나는 흠뻑 행복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문득 깨달았다. 나는 누구네 집에 문안 인사를 갈 때마다 어김없이 토종달걀 한 박스를 품에 안고 간다. 보기 좋게 포장한 그 박스를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들고 간다.

“아, 나는 왜 자꾸 달걀을 들고 갈가?”

처음에는 그냥 익숙해서, 또는 귀하고 정겨워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되돌아보니 알 것 같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잠재의식이였다. 어린 시절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그 달걀이여서 이제는 내가 먼저 남에게 건네고 싶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도 하루 세 끼 달걀과 밥만으로 식사를 에때워도 조금도 아쉽지 않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여러 가지 반찬을 다양하게 먹어야 한다니 별수 없다. 내 나이 60대 중반, 이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게 되였지만 여전히 달걀 앞에 서면 그때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내가 달걀을 좋아하는 리유는 맛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성장통과도 같고, 살아내며 깨달은 작은 지혜와도 같기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더욱 정겨운 일이 있었다. 한 지인의 남편이 산장에서 나에게 토종달걀 한 박스를 선물하며 조용히 청들었다.

“선생님, 혹시 집에서 담근 배추김치를 조금 얻을 수 있을가요?”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누군가에게 나의 음식 솜씨를 인정받은 느낌, 내가 좋아하는 달걀을 선물로 받은 기쁨이였다. 곧장 집에 돌아와 내가 담근 배추김치를 정성스레 싸서 드렸다. 달걀과 김치, 그렇게 우리는 먹을거리를 주고 받으며 마음을 건넸다. 그 작은 교환이 내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였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많은 순간들에 달걀이 있었다. 어릴 적 먹고 싶었는데 먹지 못했던 그 아쉬움, 언니 집에서 먹은 작은 위로, 련애 시절 남편과 나눴던 소박한 식사, 그리고 지금의 이웃과 나누는 정겨운 선물들... 달걀은 그저 식재료가 아니라 내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따뜻하게 련결시켜주는 고리였다.

예순이 넘은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고 따스한 추억이다. 언니는 왜 시집가면 달걀을 실컷 먹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 시절을 함께 겪은 이들만이 아는 그런 정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도 기다리지 못한 채 눈빛으로 훔쳐보던 날들, 그래도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던 포근한 손길, 그리고 그 아쉬움이 어른이 되여서는 작은 나눔의 기쁨으로 돌아오는 기적 같은 시간들.

달걀 한 알로 시작된 이 기억은 단순히 먹는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리해하고 감싸며 자랐는지 말해 주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끔 달걀지짐을 부친다. 그리고 그 옛날 그 작은 밥상 앞에 앉았던 나를 떠올린다. 그 아이에게 살며시 말한다.

“너는 이제 받지 않아도 돼. 내가 먼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였으니까.”

그것이 내게 달걀이 주는 가장 큰 위로이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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