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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때, 해외 바이어도 감탄한 그의 장사 원칙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14일 09시50분    조회: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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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꾼집 막내아들, 美 공화당의 100대 기부자가 되다
1000만달러 이상 私財 털어 디케이킴재단 운영하는 김동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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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벌어서 베푸는 것이다.’ 김동구(가운데) 디케이킴재단 회장은 자신의 호인 능산(能散)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지난달 29일 서울 세빛섬에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주최한 ‘제2회 한미 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 음악회’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회장은 이 어린이재단의 핵심 후원자다. / 김지호 기자
전쟁은 인간을 파괴한다. 소년 김동구도 그랬다. 천석꾼 집 막내아들이었던 그의 삶은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무너졌다.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큰형도 병으로 죽고, 작은형은 뒷집 아저씨 고발로 북으로 끌려갔다.

아홉 살 때 어머니와 함께 온 피란지는 충남 당진 합덕읍. 전쟁 중에도 5㎞를 걸어 학교에 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밤낮으로 먹을 것을 구하느라 도시락을 쌀 시간이 없었다. 점심때 벨이 울리면 그는 운동장에 나와 시간을 보내다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던 점심시간. 운동장에 있던 그를 선생님이 불렀다. "너 왜 도시락 안 먹고 밖에서 놀고 있어." '무슨 말인가' 하고 교실로 가보니 책상 위에 도시락이 있었다. 그 후로 일년을 매일 그랬다.

어느덧 학기 말. 시험 후 선생님이 자신의 집으로 와 답안지 채점을 도와 달라고 했다. 채점 후 선생님 어머니가 차려 주신 저녁을 먹는데 익숙한 김치와 장아찌 맛. 점심시간 도시락은 선생님 몫이었다. 다음 날 등교해보니 선생님은 그에게 도시락을 주곤 운동장에 나가 배고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결심했다. '나중에 자라면 꼭 훌륭한 선생님이 돼야겠다. 그래서 나처럼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야겠다'고.

이 소년은 자라서 어떻게 됐을까. 미 공화당 100대 기부자, 타켓·월마트 등에 제품을 공급하는 미국 유통업계 대부, 한 해에 수천만달러의 주문 제품을 생산해내는 김동구(76) 비피인더스트리 회장이 바로 그다. 김 회장의 직함은 또 하나 더 있다. 1000만달러 이상의 사재로 운영하는 디케이킴재단 회장. 지난달 29일 방한한 그를 한강 세빛섬에서 만났다.

천석꾼 집 막내아들

그가 태어난 곳은 서울 종로구 효자동. 흔히 말하는 사대문 안 부자 집이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三代)는 간다던데.

"해방 후 집안에서 관리하던 적산가옥(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집이나 건물)이 여러 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정신없으신 사이 이리저리 다 없어졌다. 소작농으로 관리하던 땅들도 많았는데 (이승만 정권 때) 토지개혁으로 사라졌다. 효자동 자택은 십대에 불과했던 누나가 싼 가격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팔았더라. 사기당한 거지. 당시 여자는 북으로 끌려가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나는 일하는 사람들과 서울에 남고, 나와 엄마만 피란을 갔었는데 돌아오니 집이 팔려 있었다. 결국 나, 누나, 엄마 이렇게 셋이 빈털터리로 남았다."

―얼마나 힘들었나.

"전쟁 중은 물론이고 끝나고도 하루 세 끼를 먹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남의 집 일해주면서 먹고살았다. 구호물자로 받은 운동화가 아까워 모셔 놓고 맨발로 다녔다. 집은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지붕은 맥주 깡통으로 엮어 간신히 올려놨다. 겨울엔 나무로 된 사과 상자 속에 백열전구를 넣어 그 온기로 추위를 이겼다. 방에 있는데 머리 위로 눈이 떨어졌다."

―그래서 공부를 포기했나.

"고학(苦學)으로 대학까진 갔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2년 다니다 군대에 갔다. 카투사에 뽑혀 판문점에서 근무했다. 제대 후 복학하려는데 다시 등록금 구하는 것도 힘들고, 책도 손에 안 잡히더라. 공부보다 지긋지긋한 가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자퇴하고 군대에서 만난 지인(知人)과 무역업을 시작했다."

―누구였나.

"카투사에서 만난 통역 장교였다. 영어를 너무 잘해 전쟁이 끝나고 미국 현지에서 FBI 교육도 받고 왔다. 그런데 그분이 김창룡 암살 사건(이승만 정권 당시 특무대 김창룡 소장이 암살당한 사건)에 연루돼 옷 벗고 나왔다. 그 후 나와 매일 등산을 하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같이 일하기로 했다."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성공으로

1967년 그는 25세의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사무실은 서울 중구 명동에 있던 사무실 한쪽 구석. 책상 두 개와 전화기 하나가 유일한 자본이었다.

―어떤 사업이었나.

"일종의 상사(商社)다. 당시 미국 대사관에 가면 현지 회사들의 이름과 업종, 인원, 규모가 적힌 '던 앤드 브래드 스트리트(Dun & Bradstreet)'라는 책자가 있었다. 이걸 보고 각 회사에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예측해 편지를 보낸다. 타자기로 종일 치면 120통까지 쓴다. 발송에만 15~20일 걸리는 국제우편. 100통 보내면 그중 2~3통만 답장이 온다. 회신 온 회사 중에도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건 10%가 안 된다. 0.1%의 확률에 도전하는 일이다."

―첫 거래 상품은.

"대나무로 만든 칵테일 파라솔이다. 미국 회사 쪽에서 부탁한 제품이었다. 처음엔 뭐에 쓰는지도 몰랐다. 담양 대나무마을에 의뢰해 동네 사람들과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었다. 몇 년 뒤 조선호텔에 갔다가 칵테일을 주문하고 파라솔의 용도를 알았다."

―만드는 법을 모르는 물건을 의뢰받았을 때 어떻게 방법을 찾나.

"무조건 답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거다. 앉아서 자료를 찾는 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계가 있다. 제품 하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백 곳의 현장을 누볐다. 운동화가 닳아서 3개월을 못 신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건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어제까지의 해답이지, 오늘 내가 찾은 답이 아니다."

―그러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래서 난 모든 계획을 120%로 잡는다. 오늘 8시간 일을 해야 끝나는 일이면 2시간 더해 10시간 일한다. 마감 시간도 당겨 잡는다. 그러면 생산 속도도 빨라지고, 중간에 실수가 생겨 일이 지체돼도 마감 기한을 넘기지 않는다."

―잠은 몇 시간 자나.

"정해놓은 게 없다.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이 있으면 몇 시에 잠들던 알람 시계 없이 일어난다. 계획은 10분 단위로 세우고 움직인다."

―팔아야 할 아이템 찾는 법은.

"돈이 생기는 대로 전 세계 무역박람회를 다녔다.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환승하는 비행기를 골라 경유지마다 일정을 넣었다. 그렇게 얻은 아이디어 중 하나가 아이스크림 회사 '배스킨라빈스'에 비치볼 팔기다. 사은품용이었는데, 미 캘리포니아 출장 갔다가 해변에서 사람들이 갖고 노는 걸 보고 제안해 거래를 성사시켰다. 1년에 50만개씩 4년을 팔았다. 아이템을 찾을 때는 평범한 제품에서 특별한 부분을 찾는 것이 방법이다. 그렇게 300종류 이상의 물건을 개발했다."

―도자기 수출 주역(主役)이기도 하다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였다. 난 그분이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도자기는 국내에서 재료(고령토)가 나는 몇 안 되는 제품이다. 인력도 훌륭하고. 도자기는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공장 가동을 멈추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한국도자기에 찾아가 도자기로 샐러드 그릇을 만들어 미국에 팔자고 했다. 대표를 3년을 설득해 초반에 3개월치 물량만 만들었는데 1개월 만에 다 팔렸다.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일본 나고야에서 분업 시스템도 가져왔다. 그 당시 일본은 우리의 좋은 롤모델이자 경쟁자였다."

―상사는 1970~1980년대 재벌들의 주요 사업이기도 했는데.

"당시엔 대기업이라고 해도 특별할 게 없었다. 상사는 결국 인맥 싸움인데,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알고 발이 넓었다. 오히려 대기업에서 날 찾아와 도와 달라고 했을 정도다. 내가 미국 시장에서 물건을 잘 판다는 소문이 나서 일본 미쓰비시(三菱)상사에서도 동업 제안을 받았다. 인조 스웨이드 가죽 건이었다. 내가 그걸 미국 코트 회사에 팔았다. 이 일은 계속하면 할수록 경험이 쌓인다.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을 믿게 된다. 이렇게 쌓인 신뢰의 힘은 당신에게 더 큰 기회를 준다.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성공을 만든다."

―계약에 성공하는 '협상의 기술'이라도.

"모든 협상은 '균형'이 맞아야 한다. 누군가는 '장사는 자신의 이익만 보고 하는 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당장의 이익을 위해 불공정 협상을 한다면 그 계약은 오래가지 않는다. 무역업은 IMF 외환 위기 때 덕을 봤다. 보통 달러로 계약하는데 환율이 두 배가 올랐으니 가만히만 있어도 수익이 두 배가 된다. 그런데 난 '이게 공평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바이어에게 '환율이 올랐으니 50% 할인해줄게'라고 했다. 바이어가 '이런 말 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더라. 내가 싸게 넘기니 그쪽에서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서 결론적으로는 더 많은 이익이 생겼다. 이는 약소국과의 계약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시기 내가 태국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미국 월마트에 팔던 제품이 있었다. 300만달러의 이익이 추가로 생겨서 그 돈을 100만달러씩 월마트와 나, 태국 공장에 나눴다. 그랬더니 그 일이 태국에서 소문나면서 내가 '왕' 대접을 받았다. (웃음) 나중에 태국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 업체들이 뛰어들었는데, 내 거래처 중 빠져나간 곳은 없었다."
 
200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공화당 갈라 행사에서 기념 촬영 중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김동구(오른쪽) 디케이킴재단 회장, 김 회장의 장남(왼쪽). 공화당 주요 기부자들에게 감사를 표명하는 자리였다. / 김동구 회장 제공
가난을 구하는 경제 모델

김 회장은 1989년 돌연 회사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운영하던 회사는 알고 지내던 거래처 사람에게 돈 안 받고 넘겼다. 직원들을 잘 보살펴 주는 조건이었다. 투자한 돈이 없었으니 회수할 것도 없었다. 거래를 중개하는 상사 특성상 회사 공장도, 팔 땅도 없었다. 이민 온 미국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책상 하나와 전화기 하나. 외국인은 사업 자금 대출이 안 돼 제2금융권에서 10만달러를 빌렸다. 그래도 20년간의 일이 헛되진 않았다. 한국에서 쌓았던 미국 내 인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회사는 금방 다시 컸다. 그리고 2003년 개인 재산을 털어 재단을 만들었다.

―왜 떠났나.

"경쟁이 심해지면서 사업 여건이 어려워졌다는 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 번 돈을 부동산 투기나 은행 이자 놀이로 돌리라는 제안을 너무 많이 받았다."

―왜 그런 게 싫나.

"돈은 땀 흘려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투기를 했으면 지금 더 부자가 됐을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사는 건가. 지금 대기업 회장들이 사업 확대하는 거, 그들도 현금을 그대로 은행에 넣고 있으면 더 안전하게 벌 거다. 사업하는 재미, 사회적 공헌을 위해 사업을 키우는 거다."

―재단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인가.

"50대 초반까지는 돈 버는 일에만 열중했다. 이후에 여유가 생기니깐 '사는 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 잊고 살았던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생각났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원조는 교육에 대한 지원이다. 내 재단이 하는 주요 사업은 UC버클리, USC, 한양대 등 명문대에 재학 중인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면 언젠가 내가 준 것의 1000배 이상을 세상으로 돌려줄 것 아닌가."

―아들들의 불만은 없나.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말했다. '내가 번 돈 중 너희 줄 것은 없다'고. 첫째는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둘째는 미국 변호사다."

―사업하는 아들에게 조언해준다면.

"내 말은 안 듣는다.(웃음) 좀 게으른 것 같은데."

―공화당 100대 기부자 중 한 명이다.

"당에서 요구하는 일정금액 이상을 꾸준히 기부하면 그렇게 불러준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 행사 등에도 초청된다. 미 시민권을 딴 1999년부터 공화당 지지자였다. 모든 이에게 퍼주자는 민주당에 공감하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는 자주 만났다. 정말 애국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 초에 한 번 봤다. 전형적인 사업가다. 사람들이 트럼프 보고 미쳤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땐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그가 하는 말은 미국 국익에 전부 맞는다.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설은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트럼프는 연설은 서툴러도 하겠다는 건 다 한다."

―앞으로의 꿈은.

"'경제 원조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다. 가난한 마을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 사실 캄보디아에서 지난 11년간 수백만 달러를 넣어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지금 도전하는 곳은 콜롬비아다. 최근 콜롬비아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할 정도로 정부 시스템이 많이 개선됐다. 그래도 나라 안의 헌팅턴병(신경 퇴행성 유전 질환) 집성촌 등은 나라에서 손대기 어려운 가난한 마을이다. 이들이 불편한 몸으로도 경제활동을 지속해 자립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현재 1년째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 모델을 개발해 전 세계 가난한 마을에 적용하고 싶다."

그의 호는 능산(能散)이다. 지인이 소학(小學)의 '적이능산(積而能散·재산을 능히 베풀 줄 안다)'을 읽고 지어줬다. 호가 그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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