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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림기획련재-1] 동이의 방국(方國)에서 함께 만난 유불선(儒佛仙)의 성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0월26일 15시59분    조회: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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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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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신문=하얼빈) "엄마, 저기 바위에 사람이 있어요!" 소녀는 어딘가 흥분에 젖은 목소리로 뒤를 따라 오는 여인을 소리쳐 재촉하고 있었다.

  공망산(孔望山) 서쪽의 이 작은 바위벼랑에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좌상(坐像), 입상(立像), 와상(臥像)… 또 바위에 사진처럼 맨 얼굴만 박힌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사자 모양을 방불케 하는 짐승도 있었다.

  여인은 금세 소녀와 함께 바위에 새겨있는 조각상을 하나하나 찾는데 몰두한다. 엄마나 딸애나 모두 바위의 천태만상의 군상(群像)에 흠뻑 도취된 듯했다.

  공망산은 강소성(江蘇省) 연운항(連云港) 시내의 서쪽 외곽에 있는 위치한다. 옛날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고 해서 중국의 사서에 남은 천년의 기이한 산이다.

  재미있는 민간전설이 있다. 그때 공자는 담국(郯國)에 와서 동이 사람들에게 '예악(禮樂)'을 가르치고자 했다. 그때 그 시절 공망산은 바다에 둘려 있었다. 공자가 산에 올라 보니 산기슭의 모래톱에 대게들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대게들은 하나같이 큰 집게발을 흔들며 기고 있었는데 마치 산 정상의 공자 일행에게 손을 저어 경의를 표하는 듯 했다. 이에 놀란 공자는 신변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곳은 게마저 예의를 아는구나! 그렇다면 뭘 더 가르친단 말이냐?" 공자는 실망해서 일행과 함께 노(魯)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담국은 전국(戰國) 시기에 나타난 동이 방국으로 춘추(春秋) 시기에 노나라에 속했다. 동이족은 일찍부터 공망산 주변에 그들의 흔적을 적지 않게 남기고 있다. 서남쪽의 금병산(錦屛山)은 바로 그들이 쓴 중국 최초의 '천서(天書)'로 유명하다. 금병산은 청나라 때 산이 그림의 병풍처럼 아름답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천서는 이 '병풍'의 있는 석각 부호로 동이족의 토지신과 태양신 숭배를 반영하고 있다.

  각설하고, 공자는 정말로 산에 올랐으며 담국의 국왕 담자(郯子)에게 관직제도의 학문을 물었다고 한다. 사서에 기록된 "공자문관孔子(問官)"이라는 유명한 고사古事는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마애석각에 깃든 천년의 정적은 소녀의 앳된 목소리에 또 한 번 깨지고 있었다. "엄마, 저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예요?

  그러나 엄마의 대답은 인차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보아하니 인물 군상의 신분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마애석각의 표지석에도 단지 "마애석각, 세계문화의 보물"이라고만 씌어있을 따름이니 그럴 법 했다.

  일행 중 누군가 부지중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걸 마애석각이 아니라 '백불암(百佛岩)'이라고 이름을 지었더라면 금상첨화였겠는데요."

  마애석각은 오래 전에 벌써 전문가와 학자들에 의해 판독된 상태이다. 석상(石像)은 대소 108존이며 대부분이 불상이다. 이런 조각상들은 동서 길이 18m, 상하 높이 약 9m의 바위벼랑에 새겨져 있다.

  석가모니가 원적(圓寂)에 들어 극락세계로 갈 때의 정경을 형상한 '열반도(涅槃圖)', 살타왕자가 몸을 던져 호랑이에 먹힌 이야기의 '사신사호도(舍身飼虎圖)'가 석각에 나타난다. 석각 군상(群像)에는 머리 위에 지혜를 상징하는 높은 육계(肉髻)가 있는 인물, 어떠한 두려움도 없애준다는 시무외(施無畏)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는 인물, 가부좌를 하고 선정(禪定)에 든 인물, 불도를 성취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이룬 나한(羅漢), 초인성(超人性)을 나타내는 광배를 두르고 있는 인물 등이 들어있다. 또 마애석각의 부근에는 동 시기의 두꺼비 조각상이 있으며 코끼리 조각상은 연꽃을 밟고 있다. 와중에 육계가 있는 인물은 입상이며 중국 최초의 석각 입불상으로 된다.

  석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에누리 없는 불교이야기와 불상은 공망산에 불교예술의 성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공망산의 불교석각은 서기 170년의 동한 말년에 만든 것으로 전진(前秦) 건안(建安) 2년(366)부터 시작된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보다 200년이나 앞선다. 막고굴은 불상과 불교이야기를 제재로 그린 벽화로 유명하며, 동굴이 약 1천개에 달한다고 해서 일명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불린다.

  그러고 보면 공망산의 마애석각은 중국 대륙의 최초의 불교석각으로 된다. 공자가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고 공망산이라고 불리지만, 궁극적으로 이 산에서 유명한 것은 인도에서 건너온 석가모니인 것이다.

  예전에 불교는 인도에서 서역을 통한 육로로 중국 대륙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망산의 석각 불상은 이 정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최초의 대륙 전래는 해상 항로를 통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운항은 '육상 실크로드'의 종점이면서도 또 '해상 실크로드'의 시점으로 되어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을 수 있다.

  이맘때 등장하는 특별한 인물이 있다. 초왕(楚王) 유영(劉英)은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첫 황제 한명제(漢明帝)의 동생이다. 불교신도 유영의 저택에는 승려와 거사들이 숙박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중국 사상 제일 일찍 나타난 승단(僧團)이다.

  불자의 최초의 출현은 유영에 앞서 수십 년 지어 백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시초의 신도는 순리대로라면 통상 정사에 기록될 수 없는 이역의 상인 등 민간인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불교가 이들을 통해 은연중 주변의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대륙에서 신도와 승단, 사원으로 발전되었다고 하는 추론은 여전히 가능하다.

  유영의 봉지(封地)는 초나라의 도성(都城)인 팽성(彭城)이었다. 팽성은 현재의 서주(徐州)로 연운항의 바로 서부에 위치한다. 연운항에서 내륙의 낙양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는 것이다. 유영이나 승단의 승려, 거사들이 해상 경로를 통해 불교를 접했을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왕족인 유영은 그 신분 때문에 기전체 사서 《후한서(後漢書)》에 등장하며, 불교 전래의 역사도 비로소 글의 행간에 일각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 전래 역사에서 물론 황제 한명제의 사건은 더구나 유명하다. 한명제가 꿈에 서방 대신大神을 만나며 사절을 서방에 파견하여 이 신을 청해오게 한다. 나중에 사절과 인도의 승려가 백마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실어오며 한명제는 이때 중국 대륙의 최초의 사찰인 백마사를 세운다. 《사십이장경》은 중국에 전래된 첫 불교경전이다.

  고대의 중국 대륙의 해상 교통상황은 많은 경우 승려들의 서행 구법기록에 의거하고 있다. 항구 연운항에 '마애석각'으로 기록된 불상은 우연하게 나타나는 게 아니며, 불교가 유입된 해상 경로의 존재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실물이다.

  사실상 해상 항구는 고대 여러 국가와 세력이 교류하는 거점과 관문이었다. 해상 실크로드는 그 누가 혼자 독점한 길이 아니었다. 여러 국가와 세력은 육상뿐만 아니라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서로 문화를 교류하고 인류문명의 꽃을 피워왔다. 와중에 해상왕(海上王) 장보고(張保皐) 승려 김교각(金喬覺), 신라방, 등 인물과 지명은 반도와 대륙의 해상 교류의 진기록이다.

  연운항은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적인 항구로 반도의 삼국과 만난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옛날 남쪽의 보가산(保駕山) 일대에는 신라촌이 있었다. 장보고는 바로 마을 부근의 고찰 법기사(法起寺)에서 발인(發軔)을 했다고 전한다. 발인은 글자 그대로 수레가 떠나간다는 뜻으로, 그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장보고는 이곳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바다를 누빈 해상왕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백제 사람들도 신라인들처럼 연운항 일대에 나타난다. 이 일대의 특이한 이름인 '장군동(藏軍洞)'은 일명 토석실土石室이라고 하는데 백제의 석실무덤과 흡사하다. 백제의 해상 활동은 대륙 연해의 이 고장에도 이어졌던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신라인들이 살던 보가산은 어가를 보호했다는 의미의 산이다.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고구려의 명장 연개소문(淵蓋蘇文)에게 쫓길 때 이 산에 숨었다가 수하 장령의 구원을 받아 요행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보가산의 북쪽에는 이때 연개소문이 군사를 주둔했었다고 하는 소문항(蘇文項)이 있다.

 

  보가산은 연운항 일대의 명산인 운대산(雲臺山)의 일부이다. 운대산은 산간에 늘 구름이 자오록하게 감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청나라 강희(康熙) 50년(1711) 전까지 운대산은 바다에 둘려 있었다. 금병산이나 공망산은 물론 보가산의 기슭에도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운대산의 여러 산봉우리들은 저마다 외로운 돛대처럼 바다위에 불뚝불뚝 솟아있었다.

  청나라 시인 당곤기唐昆基는 이 절묘한 풍경을 보고 시 《외첨산(桅尖山)》을 지었다.

  "신선이 배를 타고 운대산에 오거늘

  백자 길이의 돛대가 바다위에서 기우뚱거리네.

  구름이 산허리를 맴도니 배가 움쭉 방향을 바꾸는 듯…"

  고대 중원사람들의 개념에 오늘의 발해(渤海)는 북해(北海)였다. 송나라 이전 동쪽의 바다는 '동해(東海)'라고 불렸다. 고대의 문화중심은 황하 중하류와 회하 일대의 평원이었기 때문에 이곳의 사람들에게 '동해'는 그 동쪽의 망망한 바다에 대한 일종의 지리적 개념이었다. 송나라 말 황하가 범람하여 물곬을 바꿔 회하(淮河)를 통해 바다로 흘러들면서 동쪽의 바다는 흙탕물 때문에 누런 황색으로 되었다. 또 남송(南宋) 때 금나라의 군사가 남하하여 중원을 강점하면서 대륙의 많은 부분은 금나라의 속지로 되었다. 황금 '금(金)'의 색깔도 황색이기 때문에 동쪽의 바다는 드디어 황해(黃海)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일찍 바다가 '동해'로 불릴 때 이 고장에는 동해국(東海國), 동해군(東海郡), 동해현(東海縣)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적지 않은 부분은 오늘의 연운항에 걸쳐 있었다. 옛날 '동해사당(東海廟)'에 신주로 섬긴 동해군(東海君)은 바로 옛 동해의 신이었다. 동해군은 도교가 공봉을 하는 오제(五帝)의 하나 동방 창제(蒼帝)이다.

 

  이러니저러니 서기 549년에는 이 고장에는 또 바다 이름을 딴 해주(海州)가 설치되어 있었다. 해주는 훗날 연운항이라는 새 이름으로 등장한다. 연운항 지역은 명실공한 고대 동부 연해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본토에서 흥성한 도교가 이 연운항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아닐세라, 공망산 마애석각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3존의 제일 큰 인물상은 한나라 때의 세속적인 의관 복식차림이다. 일부 인물상은 주변에 '연좌(蓮座)', '향로', '등잔 접시' 등이 설치되는 등 도교의 거룩한 인물임을 알린다.

  결국 유불선(儒佛仙)의 성인은 공망산에서 함께 만나고 있는 것이다. 유불선은 유교와 불교, 도교 삼교(三敎)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연운항에 본토의 유교와 도교, 서토의 불교가 일제히 나타나고 또 바다 저쪽의 삼국이 함께 나타나는 게 결코 우연하지 않다.

  산정에 오르니 앞서 이른 관객들이 조각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법석을 놓고 있었다. 공자가 제자 안회(顔回)와 자로(子路)를 데리고 서있는 삼인상(三人像)의 '공자망해(孔子望海)'였다. 삼인상 앞에 서니 금세 많은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옛날 공자는 산기슭에서 철썩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전설의 '예의' 있는 대게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석양에 검붉게 물든 시멘트의 수풀이 차들의 소음을 타고 시야를 꽉 메워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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