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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중국조선족력사(16)-청산리대첩(1)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0월10일 00시00분    조회: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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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안에 든 침략군 삼단처럼 쓰러지고

반일무장부대 백운평서 첫 승리 맞아

백운평전적지 직소 동쪽 구간

결전전야

화룡시 부흥향 청산리마을에서 해발 1677메터의 베개봉(일명 증봉산)이 커다란 베개마냥 뭇산의 두령으로 덩그렇게 누워있는 것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마을어구의 작은 산언덕에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가 세워져있다. 기념비는 500평방메터의 부지에 너비 25메터, 높이 17.60메터의 굉장한 화강석으로 다듬어 세워졌다. 보기만해도 기분이 상쾌했다. 석비 앞면에는‘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라고 조한문자로 새겨져있었고 밑면에는 일제와 격전을 벌리고 있는 반일무장전사들의 군상이 조각되여있다.

청산리마을에서 해란강 상류를 향해 4—5리 쯤 올라가면 유명한 백운평참안지가 나타난다. 찬찬히 살펴보면 불에 그을린 기초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지금은 황페한 쑥밭으로 되여버렸고 벌목공들이 거처하는 귀틀집이 있을 뿐이지만 당년에는 몇십호가 오붓하게 모여 살던 조선인마을이였다.

가리마처럼 뻗은 산길을 따라 산을 계속 오르노라면 개울물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오는데 고요한 산곡간이여서 그 물소리가 더욱 청쾌한 것 같다. 이렇게 6-7리 더 올라가면 발밑 낭떠러지 아래에 맑은 개울이 여울치며 흐르는 작은 소를 발견할 수 있다. 커다란 바위를 껴안고 흐르던 개울물이 락차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면서 소를 이루었다고 하여 직소택이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소이다. 물론 봉오동전투에서 혼쌀이 난 일제 륙군소좌 야스가와가 지휘하는 제73련대 선봉부대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부대에 의해 전멸되다 싶이 한 곳이여서 더 이름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무장투쟁을 활발히 전개하던 반일무장부대들은 일제의 ‘토벌’에 대비하여 1920년 8월 하순부터 근거지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청산리 직소택

연변대학 력사학 교수 박창욱선생은 당시의 반일무장부대의 이동정황을 설명해주었다. 봉오동전투 후 명월구(묘구)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은 안도현 장백산록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여 9월 21일경에는 안도현과 화룡현의 접경지대인 어랑촌부근에 도착하였다. 의란구에 근거지를 설치하고 있던 안무가 인솔하는 국민회군은 8월 31일 안도현방면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여 9월말경에 어랑촌부근에 도착하였다. 봉오동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최진동의 군무도독군부는 초모정자와 탁반구를 거쳐 9월말경 왕청현 라자구에 도착하였다. 김좌진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은 근거지인 왕청현 서대파, 십리평을 떠나 10월 12일, 13일에 화룡현 삼도구 청산리부근에 도착하였다.

10월 2일 ‘훈춘사건’을 조작한 일제는 10월 14일 간도침략을 선언하고16일에는 연길 도윤에게 17일 0시를 기하여 간도에서 반일부대 ‘토벌’의 군사행동을 시작함을 알렸다.

룡정, 국자가, 투도구 방면의 ‘토벌’을 책임진 아즈마지대는 10월 17일 홍범도부대와 김좌진부대가 어랑촌, 청산리 부근에 주둔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10월18일에 부대를 나누어 삼도구 청산리 부근에 있는 김좌진부대와 와룡구 어랑촌 부근에 있는 홍범도부대를 ‘토벌’할 목적으로 부대를 움직였다. 이렇게 되여 일본침략군과 반일부대의 청산리전역은 불가피하게 되였다.

“전투를 앞둔 10월 19일,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련합부대 수뇌자들은 묘령에서 일본침략군의 ‘토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에서 주전파와 피전파간에 론쟁이 붙었는데 북로군정서의 부총재인 현천묵이 력량을 보존하려면 절대 일본주력부대와 결전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피전책을 취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하여 북로군정서군은 왕팔어구에 군대를 매복시켰다가 저격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청산리 쪽으로 철퇴하게 되였습니다. 부대는 이튿날 백운평에 도착하게 되였습니다.” 박창욱교수의 설명이다.

10월 17일 아즈마지대장의 작전명령을 받은 야마다련대는 좌우종대로 나누어 좌종대는 야마다대좌가 직접 거느리고 팔가자, 충신장, 송월평을 거쳐 20일에 청산리에 도착하였으며 우종대는 나까무라 대대장이 인솔하고 이도구를 거쳐 봉밀구로 우회하여 북로군정서군의 북쪽 퇴로를 차단하고 좌우종대와 대응하여 북로군정서군을 포위하려 시도하였다.

백운평전투

북로군정서군의 연성대장 리범석은 김좌진장군의 지령에 쫓아 직소부근에 부대를 배치, 매복전을 벌려 추격해오는 적을 제어하면서 본부대의 후퇴를 엄호하려 했다. 하여 교성대 200여명을 직소택 량면에 매복시키고 림범석은 정면에서 전반 전투를 지휘하게 하였다.

김좌진장군

북로군정서군이 포치한 매복진은 좌우 량켠에 톺아오르기 힘든 산이 있고 그 사이에 끼인 골짜기는 20—30메터 되나 마나 하고 넓은 곳이라야 40-50메터 밖에 안되는 매복전에 더없이 리상적인 장소였다.

때는 상강절기를 앞둔 마가을, 북로군정서군 장병들은 한기가 뼈속을 파고드는 추위 속에서 밤을 패야 했지만 래일의 격전을 생각하면서 긴장한 마음을 도사려야 했다. 몸에 락엽을 뒤집어쓰고 지루한 밤을 보낸 전사들은 초조한 심정으로 적군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협곡 량켠 산기슭에 반일부대 용사들이 매복해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한 침략군은 거들먹거리면서 좁은 산길을 따라 들어오기 시작했다. ‘월강추격대’를 거느리고 들어왔다가 봉오동에서 참패를 당한 야스가와 소좌가 이번에도 선발부대 한개 중대 90여명을 거느리고 죽음의 포위망 속으로 기여들고 있었다. 이들은 서쪽 2키로메터 지점인 공지에서 북로군정서군이 밤에 숙영했던 곳과 60여개의 불무지흔적을 발견하고 경계를 강화하면서 한줄로 쭉 늘어서서 북로군정서군의 행적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땅!”

연성대장 리범석의 공격을 알리는 첫 총소리가 산곡간을 찢으면서 맵짜게 울렸다. 앞 뒤 산마루에 매복해있던 200여개의 총구에서 삽시에 불벼락이 터졌다.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돌연적인 습격에 당황해난 적들은 사면으로 날아드는 총탄을 피하느라 갈팡질팡하면서 어쩔줄 몰라했다. 적들은 대응사격으로 발악도 해보았지만 반일부대의 매복지점을 판단할 수 없어 헛총질만 할 뿐이였다. 코앞에다 적을 둔 반일부대는 복수의 총탄을 여지없이 내뿜었다. 전투는 속결전으로 끝났는데 약 30분가량 진행되였다. 전투에서 적군 90여명이 거의 소멸되다싶이 했다.

전투에서 승리한 북로군정서군은 김좌진이 제1제대를 거느리고 먼저 이동하면서 제2제대에 제1제대의 철수를 엄호할 것과 다음날 새벽 2시전에 봉밀구 갑산촌에 집결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지시에 쫓아 제2제대는 제1제대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한근원중대를 후위로 안도 로령으로 철퇴하는 것처럼 하다가 급전환하여 밀림을 헤치고 북상하여 밤도와 갑산촌으로 철수했다.

청산리대참안

백운평전투에서 참패를 본 일본침략군 야마다련대는 반일부대가 안도현 쪽으로 후퇴한줄 알고 추격하다가 반일부대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게 되자 오후 2시에 추격을 중지하고 되돌아와서 그 분풀이로 무고한 백운평백성들에게 ‘토벌’을 감행했다. 적들은 집들을 전부 불살라버리고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지어 어린애마저 생매장하거나 총으로 쏘아죽였다. 전하는 데 의하면 그 날 외지로 친척방문 갔던 두 사람이 살아남고는 다 살해되였다고 한다.

청산리마을 전경

당시 백운평에는 인가가 50, 60세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한세대당 평균 5명으로 쳐도 백운평찬안에서 살해된 사람은 300여명 된다. 오붓한 조선인마을은 일제의 야수같은 만행으로 하루아침 사이에 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놈들은 청산리마을 뿐만 아니라 그 일대 마을을 모조리 불사르고 사람을 만나는 족족 죽였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백운평에서 사흘동안 연기가 피여올랐다고 합니다. 그 뒤에도 적들은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죽이는 정책을 사용하여 수많은 조선인마을을 재더미로 만들었고 무고한 백성을 죽였습니다.”

박창욱교수의 비분에 차 하는 말이다.

길림신문/연변일보 김철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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