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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봉기의 유일한 조선사람 진룡학 (2)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7월12일 09시38분    조회: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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퇀장 로덕명(卢德铭, 1905—1927)은 사천 의빈(宜宾)사람이고 1924년 봄에 제1기생으로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25년 11월에  국민혁명군 제4군 엽정독립퇀 제2영 4련 련장,  북벌전쟁에서는 제1영 영장, 제73퇀 참모장으로 뛰다가 1927년 6월에 국민혁명군 제4집단군 제2방면군 총지휘부 경위퇀(무한 국민정부 경위퇀이기도 하다) 퇀장으로 부임하였다.

1927년, 장개석과 왕정위의 련이은 혁명배반은  참혹하였다. 이해 7월 중국공산당은 혁명을 만회하기 위하여 무한 한구에서 림시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가지고 당의 조직이 비교적 강대하고 로농운동의 토대가 비교적 좋은 호남, 호북, 강서, 광동 4개 성에서 추수폭동을 단행하여 농민들의 토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중공중앙은 한구에서 ‘8.7’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진독수의 우경 투항주의 로선을 시정하면서 무장으로 국민당반동파의 도살정책에 맞서며 토지혁명을 전개할 총방침을 확정하였다. 모택동은 “반드시 총에서 정권이 나옴을 알아야 한다.”고 제기하였고 회의는 모택동을 호남에 파견하여 중공호남성위를 개조하며 상악감(湘鄂赣)변계 추수봉기를 지도하기로 결정지었다.

모택동이 지도한 추수봉기의 주력부대는 로덕명을 퇀장으로 하고 진룡학이 소속된 경위퇀이였다. 1927년 8월 1일 남창봉기가 폭발한 후 무한에 주둔한 이 경위퇀은 남창에서 발송한 전보—“우리는 이미 기의하였다.(我们已经起义了)”는 전보를 받았다. 이어 구강(九江)의 장발규가 발송한, 경위퇀이 신속히 무한을 떠나 륜선으로 구강에 와서 대기하라는 전보도 받았다. 로덕명 등은 연구를 거쳐 장발규의 명의를 빌어 륜선으로 동으로 움직이며 남창봉기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지었다.

8월 2일 저녁, 진룡학 소속 경위퇀은 초상국(招商局)의 륜선 ‘덕흥호’ (德兴号)로 무한을 출발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등륙하여 그날로 강서변계와 가까운 호북땅 양신(阳新)에 도착하였다. 4일에 양신현성에서 국민혁명군의 명의로 식량을 해결하고는 민간의 배로 양신 패시(排市)에 이르고 6일 아침 패시에서 등륙하였다. 그다음은 보행으로 연하, 룡강을 거치며 강서 무녕 쪽으로 진군하다가 남창봉기 주력부대가 남하하였다는 소식을 입수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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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위퇀은 명령을 받고 진군방향을 수수(修水)현성으로 돌리였다. 수수현성에 도착한 날은 8월 12일. 잇달아 호남의 평강 로농의용대(平江工农义勇队)가 선후하여 강서 수수현성에 도착하였다. 이 두 부대는 8월 하순에 수수현성에 이른 호남 통성(通城), 호남 숭양(崇阳)의 농민자위군과 더불어 수수현의 산구(山口)에서 약 5000명에 달하는 ‘로농혁명군 제1군 제1사’(산하에 4개 퇀을 두다)로 개편되였다.

로농혁명군 제1군 제1사는 우리 당, 우리 군 력사에서의 첫 로농혁명군의 부름이다. 로덕명이 제1사 총지휘로, 여주도(余洒度, 후에 혁명을 배반)가 사장으로, 모택동이 전적위원회 서기로 부임하였다. 모택동은 중공중앙 특파원의 신분으로 상감변계의 추수봉기를 지도하는 전권대표였다. 당의 지시로 경위퇀에 파견되고 수수현성에 이른 진룡학은 사기가 부쩍 올랐다. 그는 부대내의 공산당원들과 함께 당의 지도를 받들면서 추수봉기 준비에 나름의 힘을 보태였다.

마침내 1927년 9월 9일, 상감변계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추수봉기가 폭발하였다. 새로 개편된 로농혁명군 제1군 제1사는 추수봉기의 주력부대로서 퇀을 단위로 강서의 수수(修水), 안원(安源), 동고(铜鼓) 등지로 진격하면서 선후하여 호남의 례릉(醴陵), 류양현성(浏阳县城)과 평강의 룡문창(平江的龙门厂), 류양의 백사(浏阳的白沙), 동문시(东门市) 등지를 신속히 점령하였다. 봉기에 가담한 철도로동자들과 농민들은 선참 악양에서 황사가(岳阳至黄沙街)로, 장사에서 주주(长沙至株洲)로 이어지는 두갈래 철도를 파괴하여 적의 교통운수를 마비상태에 빠뜨리였다. 황포생 진룡학은 추수봉기 진두에서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혁명정세가 이미 저조에 처하고 적이 강하고 우리가 약하고 당지 토비무장으로 새로 개편된 제4퇀이 반변하는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봉기군은 세갈래 방향에서 엄중한 좌절을 당하였다. 불리한 정세에 직면하여 모택동은 9월 14일, 호남 류양 동향의 상평(浏阳东乡上坪)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과단성 있게 나중에 장사를 진공하기로 한 원래의 계획을 개변하였으며 전적위원회 서기의 명의로 봉기군 제1, 제2, 제3퇀의 나머지 부대들에 류양현 문가시에 신속히 집결하라고 통지를 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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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봉기는 모택동이 호남 동부와 강서 서부에서 직접 지도한 우리 로농혁명군(즉 홍군)의 한차례 무장봉기이다. 이 봉기는 8월 1일의 남창봉기에 이어 중국공산당이 일으킨 또 한차례 무장봉기로서 그 후의 광주봉기와 더불어 중공당사, 군사에서의 3대 봉기의 하나로 불리운다. 모택동이 지도한 이 위대한 봉기에 조선인 진룡학이 참가하여 추수봉기에도 조선인이 활동하였음을 세상에 알리였다.

9월 19일, 봉기군 부대들이 호남성 류양현 문가시(文家市)에 륙속 도착하자 모택동은 그날 밤으로 전적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는 호남 동부지구(湘东地区)에서 철거하여 강서로 진군하며 라소산맥(罗霄山脉) 이남지구로 전이하여 혁명력량을 보존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튿날 오전 봉기군 1500여명이 문가시를 떠나 남으로 진군하였다.

9월 23일, 봉기군이 정강산으로 진군하던 도중 강서 평향현 로계진(萍乡县芦溪镇)에서 국민당군의 습격을 받아 수백명의 손실을 보았다. 포위돌파를 엄호하던 로덕명 총지휘도 장렬히 희생되였다. 비분에 잠긴 모택동은 “나에게 로덕명을 돌리라! 나에게 3개 사를 준다 해도 바꾸지 않는다.” (还我卢德铭!给我3个师也不换)며 통분해마지 않았다. 진룡학도 자기의 황포시절 선배인 로덕명의 희생을 애절해하며 확고부동하게 모택동을 받들었다.

9월 29일, 봉기군은 영신현 삼만촌(永新县三湾村)에 이르렀다. 봉기군은 봉기 이후의 20일간을 거치면서 원래의 5000여명 대오가 1000명에 미치지 못하였다. 장관이 많고 병사가 적은 데다 부대의 사상이 혼란하고 조직규률성이 매우 차하였다. 이날 저녁 모택동은 전적위원회 회의를 부르고 부대개편을 실시하였다. 이것을 중국혁명사상 저명한 삼만개편(三湾改编)이라고 하는데 봉기군의 원래의 사를 한개 퇀으로 축소하였다. 따라서 당의 지부를 련에 조직하고 퇀과 영, 련에 각급 병사위원회를 두었다. 부대내에서 민주관리제도를 실시하고 정치상에서 관병이 평등하도록 하였다.

  2013년 8월 27일, 조선인혁명가 진룡학의 발자취를 따라 정강산 현지답사길에 올라보았다. 이날 아침 7시 정강산시를 떠난 답사택시는 답사의 첫 역인 강서 영신현(永新县)성으로 달렸다. 진룡학이 참가한 그제날 영신현성 진공전투와 룡원구다리에 이어 세번째 답사현지는 영신현 삼만촌으로 정했다.


추수봉기의 유일한 조선사람 진룡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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