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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는 왜 부친 묘를 네 번이나 옮겼을까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7월18일 09시44분    조회: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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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찾아 거듭한 이장
풍수에 빠진 어리석음일까

12번의 이장 끝에 경남 하동 화개장터 맞은편 산에 정착한 김종회 전 의원의 증조부모 묘. /김두규 교수

자기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대로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그러나 “도에 관심 있으세요?” 혹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등을 외치거나 종교를 정치의 도구로 삼아 거리로 나서는 이들을 보면 거부감이 든다.

고려와 조선의 국교는 불교와 유교로 각각 달랐지만, 두 종교는 풍수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여 한국만의 독창적인 ‘불교풍수’와 ‘유교풍수’를 만들어낸다. ‘유교풍수’ 가운데 ‘피안차안설(彼安此安說)’이 있다. 중국 성리학자 정자(程子)의 풍수론 ‘장설(葬說)’에 나오는 말이다. 조상과 자손은 같은 기를 공유하는데, “조상이 편안하면 후손이 편안하다[彼安則此安]”는 것이다. 이후 조선의 유학자들이 즐겨 인용하였다. ‘조상 유택이 불편하면 어찌 그 후손들이 편하겠느냐?’는 관념에 따라 후손들의 마음에 들 때까지 이장을 거듭하기도 하였다.

조선의 명풍수 남사고(1509-1571)의 유명한 일화 ‘9천10장(九遷十葬)’도 이와 같은 믿음의 결과다. ‘9천10장’이란 ‘남사고가 아버지 묘를 아홉 번 이장하여 10번 장사 지냈다’는 고사다. 조선 말엽 명성황후도 친정아버지를 4번 이장하여 ‘4천5장(四遷五葬)’의 기록을 남겼다. 사대부나 명문가가 아니더라도 민간에서 더 나은 길지를 찾아 조상 묘를 한두 번 이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필자 역시 20여 년 전 30대 중반의 나이로 할머니 묘를 이장한 적이 있다. 유교적 관념과 풍수설이 합해진 자연스러운 생사관(生死觀)이다.

필자는 최근 12천13장(十二遷十三葬)의 현장을 답사하였다. 12번 이장하여 13번 장사지낸 현장이다. 구례·광양·하동이 만나는 화개장터 맞은편 하천산 9부 능선에 묘가 있다. 유학자이자 정치가 김종회(20대 국회의원) 선생의 증조부모 묘다. 김종회 선친은 유학자 김수연(1926-2019) 선생이다. 김수연은 1954년 ‘학성강당’이란 서당을 설립해 7000여 명의 제자를 육성하였다(전북 김제시 성덕면 소재). 12천13장을 주관한 인물은 그 아들 김종회 선생이다. 국회의원 당시 국회도서관 최다 이용자로 상을 받았을 만큼 학구적이다.

 

유학자 가풍을 따라 그는 20대부터 집안 장사(葬事)를 주관했다. 34년 전, 24세 나이로 증조부모 묘를 전남 광양 하천산(화개장터 맞은편) 9부 능선에 이장했다. 12번째 이장이자, 13번째 장사였다. 고조부모 묘는 무주 덕유산 높은 곳에 모셨다. 조부모 묘는 정읍 상두산 9부 능선에 자리한다. 높은 산에 모신 까닭은 평지의 경우 개발로 인한 땅의 깨짐[破地]을 염려해서다. 고조부모와 조부모의 묘도 이장을 거듭한 끝에 현재의 자리에 ‘정착’했다.

풍수라는 미신에 빠진 어리석음인가? 그렇지 않다.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유교적 신앙과 이전의 시행착오들 때문이었다. ‘천하에 상종 못할 인간이 셋 있으니, 하나는 풍수쟁이요, 둘은 사주쟁이요, 셋은 약쟁이라!’란 말을 집안에서 절감하였다. 술사 중에 백에 아흔아홉은 사기꾼이거나 돌팔이였다. 그리하여 김종회 선생은 대여섯 살 때부터 유학 경전 말고 직접 사주·풍수를 공부했고, 나이 들어서는 원광대에서 한의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러한 풍수 행위는 정자가 말한 ‘피안차안설’의 일관된 실천이다. 김종회 선생은 자신이 직접 한문으로 쓴 ‘감여론(堪輿論: 풍수론)’에서 “명당발복이 목적이 아니라, 조상의 체백이 편안함을 으뜸으로 해야 조상[彼]과 후손[此]이 영생하는 피차생생(彼此生生)의 천리(天理)가 완성된다”고 했다. 유학자의 이러한 생사관을 존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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