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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신라에 왜 ‘이모티콘 세트’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23년2월1일 21시20분    조회: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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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출토된 사람 모양 도기 항아리(위). 문화재청은 2019년 발굴된 경북 경산 소월리 출토 ‘사람 얼굴 모양 도기’를 활용한 이모티콘 24종을 최근 공개했다. / 문화재청 제공

‘무표정인 듯, 심각한 듯, 말하는 듯…. 어찌 보면 뾰로통한 듯, 잔뜩 화난 듯….’

문화재청이 얼마 전 경북 경산에서 출토된 ‘사람 얼굴 모양 도기(토기) 항아리’를 활용한 그림말(이모티콘) 24종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및 트위터 등에서 쓸 수 있답니다.

이 ‘도기 항아리’는 각기 다른 표정의 세 얼굴을 드러낸 독특한 모습으로 출토됐는데요.
문화재청 공식 SNS는 유물이 출토된 2019년 말부터 프로필 이미지로 활용해왔답니다. ‘문화유산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을 없애려는 의지를 반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 ‘항아리’는 세 얼굴로만 볼 수 없습니다.
항아리를 살살 돌리면 얼굴과 얼굴 사이에 ‘또 다른 표정의 얼굴’이 보입니다. 입을 동그랗게 벌린 얼굴들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 항아리에는 모두 여섯 얼굴이 표현된 겁니다. 이제 한국 고고학 발굴사상 처음 출토된 ‘다중인격의 도기 항아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중인격의 항아리 출현 2019년 11월이었습니다. 조사기관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이 경북 경산 와촌면 소월리에서 도로공사를 위한 사전발굴조사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심상치 않은 구덩이(깊이 2m·밑지름 1.6m) 1기를 확인했습니다. 30㎝ 땅 밑에서 도기편들이 출토됐고요. 그보다 50㎝ 정도 더 파내자 정체 모를 도기 항아리 1점과 시루 1점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겉에 묻은 흙을 걷어내던 발굴자(김상현 화랑문화재연구원 연구부장)는 깜짝 놀랐습니다. 둥그런 항아리에 사람 얼굴이 셋이나 표현돼 있었습니다.

각 사람 얼굴은 두 눈과 입은 길게, 타원형으로 표현했습니다. 콧구멍은 안에서 밖으로 찔러 만들었는데요. 손가락을 이용해 콧등을 중심으로 양쪽을 살짝 눌러 도드라지게 했습니다. 항아리 높이는 28.4cm, 지름은 17.5cm 정도 됐습니다.

이리저리 한참 돌려보던 발굴단은 바로 옆에서 출토된 시루의 뚫린 부분에 이 항아리를 맞춰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꼭 맞았습니다. 그제야 ‘얼굴항아리+시루’가 한 세트가 됐습니다. 시루의 양 손잡이가 마치 사람의 양손처럼 보였습니다. 발굴단은 이 ‘얼굴항아리+시루’ 세트의 연대를 5세기로, 이 구덩이를 조성한 시기는 6세기로 추정했습니다.

얼굴항아리를 살살 돌려보면 세 얼굴뿐 아니라 전혀 다른 표정의 얼굴이 나타난다. 다면인격의 얼굴처럼 보인다. /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유난히 ‘줄임말’을 선호했던 신라인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얼굴항아리+시루’ 세트 밑의 유물이었습니다.

명문 목간과 함께 나뭇가지 다발, 목기가 정연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목간은 지극히 장대했습니다. 그 길이(74.2㎝·직경 4.3~2.8㎝)가 다른 신라 영역 출토품보다 2~3배 이상 길었습니다. 목간의 5개 면마다 글씨가 쓰여 있었고요. 읽을 수 있는 글자만 100여자에 달했습니다.

명문 가운데 눈에 띄는 글자들이 몇 보였습니다. 골짜기를 경계로 들어선 마을을 가리키는 ‘곡(谷)’과 논을 가리키는 ‘답(畓)’, 제방(둑)을 의미하는 ‘제(堤)’, 그리고 신라의 토지면적 단위인 ‘결(結)’과 ‘부(負)’였습니다.

그중 ‘답(畓)’ 자가 흥미로웠습니다. 왜냐면 이 ‘畓’ 자는 신라에서만 쓰인 줄임말이었던 겁니다. 백제에서는 논을 지칭할 때 ‘수전(水田)’이라는 중국 단어를 쓰고 있었거든요. 예컨대 561년(진흥왕 22) 창녕에 세운 척경비에 ‘전답(田畓)’으로 표기됐고요.

각 마을의 인구 및 농사 등의 현황을 기록한 ‘신라촌락문서’(일본 쇼소인·正倉院 소장·7세기 이후)에도 ‘답’ 자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신라인들은 밭은 ‘전(田)’으로, 논은 ‘수전(水田)’을 한 글자로 줄인 ‘답(畓)’으로 분류해 표기했습니다.

비단 ‘답(畓)’ 자뿐이 아니고요. 신라에서는 관직명이나 숫자처럼 많이 쓰는 표현을 줄여 기록한 예가 많습니다.

예컨대 ‘사천신라비’(8세기)에는 ‘상대등(上大等·최고관등·국무총리)’을 쓰면서 ‘상(上)’ 자는 정자로 쓰고 ‘대등(大等)’은 ‘大 밑에 木’이라는 한 글자로 표현했습니다. 또 ‘남산신성비’(제4비·591년)는 ‘일벌(一伐·지방 관직 중 8번째)’과 ‘일척(一尺·지방관직 중 9번째)’ 등을 한 글자처럼 표기했습니다. 이를 두고 경상도 출신의 연구자는 우스갯소리로 “성질 급한 경상도 사람들이라 줄여 쓴 단어가 아니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답(畓)’ 자는 ‘1500년 전 인터넷 줄임말’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토지장부인가 업무수첩인가 명문 목간은 6세기 경산 와촌면 소월리 인근 지역의 토지현황을 기록한 문서로 추정되는데요.

소월리는 금호강의 지류인 청통천 주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라에서는 429년(눌지왕 13)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요. 531년(법흥왕 18) 임금이 저수지 축조를 명한 사실도 있습니다.

이때부터 각 지방에서 본격적으로 제방을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금호강 유역에는 ‘청제(菁堤)’라는 제방을 쌓은 기록인 ‘영천 청제비’(536)와 영동리촌의 저수지 축조기록인 ‘대구 무술오작비’(578) 등이 보입니다. ‘청제’ 축조에는 연인원 7000명을 동원했답니다. 국가적인 대역사였습니다. 이러한 수리시설 축조를 통해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전답을 확보하고 수확량과 토지이용률을 향상시켜 중앙정부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늘렸을 겁니다.

그렇다면 같은 금호강 유역인 소월리 부근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제방이 축조됐을 거고요. 소월리 목간에서 보이는 ‘제(堤)’ 자가 당시의 상황을 암시해 줍니다. 제방 축조 후 소월리의 논·밭과 그곳에서 나온 소출량을 꼼꼼하게 쓴 1차 기록물이었던 겁니다. ‘지명+토지종류+토지면적’ 등으로만 나열된 목간에는 동사가 보이지 않는데요.

때문에 정식 문건이라기보다는 ‘감말곡 마을 논 7결(結)’, ‘둑 위(堤上)의 땅 1결’, ‘구미곡 마을 3결’, ‘둑 아래(堤下) 땅 40부’, 뭐 이런 식으로 정리한 일종의 장부 혹은 업무용 수첩일 가능성도 개진됩니다.

또 목간 한 면의 밑을 보면 ‘제제제(堤堤堤)’, ‘사사사사(四四四四)’와 같은 반복된 글자들이 보이는데요. 이것은 필자가 연습한 글씨, 즉 습서(習書)로 보이죠. 이 명문 목간은 장부 혹은 업무용 수첩으로 쓰였다가, 연습 글씨 용도로 재활용된 뒤 마지막으로 ‘얼굴항아리+시루’ 밑에 고이 모셔둔 것으로 해석됩니다.

혹리를 다스리는 징벌의 회초리? 이 명문 목간이 나뭇가지 다발과 함께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나뭇가지 다발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일종의 싸리비이며, 옆에 있는 ‘폐기 목간’은 그 싸리비의 손잡이 구실을 한 것이 아니냐고 추정하는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그럼 왜 싸리비를 그렇게 고이 모셔두었을까요.

어떤 연구자는 6세기 무렵 소월리 주민들이 지신(地神·땅의 신)에게 수확량의 40%를 뜯어간 세리들의 수탈을 고발하는 의식을 치른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연구자는 “목간에서 논 13결 30부에서 5결 40부를 거뒀다는 내용이 읽힌다”면서 “그렇다면 대략 40%가량을 세금으로 뜯어갔다”는 얘기라는 겁니다. 맞다면 너무나 가혹한 세금이죠.

소월리 구덩이에서는 지금도 지하수가 계속 용출되고 있다. 따라서 지하에서 용출되는 물이 눈, 코, 입과 정수리 등에 뚫린 구멍으로 솟구쳐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 얼굴항아리가 물과 관련된 신이거나, 상반신은 사람인 용어(龍魚)의 의인화된 모습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 이동주의 논문에서

여기에서 세리의 혹정을 꾸짖는 징벌의 회초리, 즉 싸리나무가 등장합니다. ‘회초리’와 관련된 고사가 있죠.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두 인물인 염파와 인상여의 ‘문경지교(刎頸之交)’입니다. ‘평소 인상여를 시기 질투하던 염파가 인상여의 진심을 알아차리고는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 채찍을 짊어지고(肉袒負荊) 용서를 빌었다’는 내용이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죽음도 함께할 친구(刎頸之交)’가 됐답니다.(<사기> ‘염파·인상여 열전’)

소월리 주민들이 수확량의 40%나 징수하는 세리를 고발하면서 ‘혹정의 증거’인 목간과 세리를 징벌하는 의미의 회초리(싸리나무 다발), 세리의 얼굴을 토기에 새긴 ‘항아리’를 넣어두었다는 겁니다. 지신에게 봉헌한 시루의 음식(떡과 밥)과 함께요.

그래서 항아리의 세 얼굴은 ‘세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는 흡족한 표정’, ‘적당히 낸 사람에게는 보통의 표정’, ‘적게 낸 사람에게는 화내는 표정’을 각각 지었다는 겁니다.

풍년을 기원하는 어린 토착신의 3단 표정?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나뭇가지 다발이 싸리비일 수도, 볏가리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싸리비일 경우 ‘혼(魂)이나 잡귀를 쓸어버리거나 수확물을 담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고요.

중국에서는 점을 칠 때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일본에서는 임산부가 빗자루로 배를 쓰다듬거나 머리맡에 두어 순산을 빌었습니다. 한국의 민담에서 빗자루는 풍요와 재복의 상징으로 활용됐습니다.

또 작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며 짚꾸러미를 단 장대를 높이 올리는 볏가리가 있죠. 몽당이 빗자루나 나무 다발에 불을 붙여 논·밭두렁을 태우는 정월 대보름의 쥐불놀이가 있습니다.

얼굴항아리와 시루는 한 세트를 이루고 있었다. 시루의 양 손잡이가 마치 사람의 양팔처럼 보인다. /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어떤 경우든 소월리 출토 나뭇가지 다발은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도구일 가능성이 있답니다.

명문 목간은 어떨까요. 지역사회의 수확량이 기록된 내용을 감안하면 이 역시 풍작의 의미로 묻어두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루 역시 비슷합니다. 경북 봉화에서는 떡시루에 불밝이를 하고 절을 하면서 농사의 풍작을 비는 농신제가 있었고요.

그러면 사람 얼굴항아리는 어떨까요. 일본에서는 소월리 항아리처럼 구멍을 뚫어 표현한 예는 없지만, 도기에 얼굴을 그린 사례가 더러 보이는데요. 일본의 사람 얼굴 도기에서는 질병신, 물신(水神), 부엌신(조신·?神), 토착신 등과 관련된 명문이 보인답니다.

또한 소월리가 속한 경북 경산에서는 ‘전동신(田童神)’을 믿었는데요. ‘풍작’을 뜻하는 전동신은 비와 바람을 거느리는 신이었다고 합니다. 또 경북 영일과 의성 등에서도 비슷한 신(영동신·靈童神)을 믿었는데요. 영일에서는 민가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그 끝에 가늘고 긴 볏짚단을 붙였고요. 의성에서는 취사장에서 각종 음식을 옮기고 그해의 풍요를 기원했답니다.

이들 지역에서 믿는 신의 공통요소는 ‘아이(童)’이고요. 소월리 출토 ‘나뭇가지 다발’을 ‘볏짚단(영일)’으로, ‘시루’를 취사장(의성)의 구성요소로 대입시킨다면 어떨까요. 소월리 출토 ‘얼굴 도기+시루+목간+나뭇가지 다발’은 바람과 비 등을 관장하며 농업의 풍흉과 지역의 안녕을 좌우하는 ‘아동 토착신’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해석을 토대로 아이 얼굴의 3단 표정을 풀어볼까요. 평온~심각~분노까지 3중인격으로 묘사된 이 토착신은 각각 날씨와 기후변화에 따라 표정이 바뀜을 가리킵니다.

또 다른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유물이 확인된 구덩이의 맨 밑바닥에 설치된 가공목재에 주목한 연구인데요. 이 목제가 흡사 콩나물시루 받침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겁니다. 이 받침대 위에 시루와 얼굴항아리를 올려놓았다면 어떨까요. 이 구덩이에서는 지금도 물이 샘솟듯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하에서 끊임없이 용출되는 물이 얼굴항아리의 눈, 코, 입 등 구멍마다 솟구쳐 쏟아지겠죠. 바로 이 얼굴항아리가 물과 관련된 신이거나, 상반신이 사람인 용어(龍魚·인어)의 모습이지 않을까, 뭐 이렇게 보는 연구자도 있더라고요.

즉 이곳 사람들이 지하에서 용출되는 풍부한 물을 통해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을 벌였다는 겁니다. 또 일본학자 가운데는 소월리의 골짜기 논을 수호하기 위한 일종의 부적으로 이 얼굴항아리 세트 유물을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소월리에서 출토된 얼굴도기+시루+목간+나뭇가지 다발은 바람과 비 등을 관장하며 농업의 풍흉과 지역의 안녕을 좌우하는 ‘신격화된 아동’, 즉 토착신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자료·이용현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연구교수의 논문에서

세 얼굴인가 여섯 얼굴인가 어떻습니까. 각기 나름의 근거를 두고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얼굴항아리’를 두고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습니다.

1500년 전 소월리 사람들이 왜 이 얼굴항아리를 시루와 명문 목간, 싸리비(혹은 볏짚단) 등과 함께 그렇게 정연한 상태로 고이 놓아두었는지 가늠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또 겉으로 보기엔 ‘세 얼굴을 가진 항아리’로 보이지만 슬슬 돌리면 보기에 따라 ‘여섯 얼굴’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이도록 일부러 만든 것일 수도 있죠.

무엇보다 소월리 출토 유물들은 아직 완전공개되지 않은 채 발굴기관(화랑문화재연구원)이 보관 중인데요. 보존처리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물의 성격이나 성분도 면밀히 분석 중이고요. 2024년에 발굴보고서를 완성한 후에 국가기관(국립중앙박물관 혹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이관할 것이라고 하네요. 그 이후 실물이 공개되면 더 다양한 연구가 나오겠죠.

분명한 것은 세 얼굴이든, 여섯 얼굴이든 ‘사람 얼굴 항아리’로 대표되는 소월리 출토품들은 오랜만에 ‘스토리텔링’의 무대를 마련했네요. ‘1500년 전의 이모티콘’, ‘1500년 전의 인터넷 줄임말’…. 뭐 이런 스토리가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이 기사를 위해 오승연 화랑문화재연구원장, 김상현 화랑문화재연구원 연구부장, 이용현 경북대 인문학술원교수,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 이관호 전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참고자료>

김상현. ‘경산 소월리 유적 추가발굴조사보고’,
<경산소월리 유적의 종합적 검토>,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제3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 2021
김재홍. ‘금호강 유역의 제와 오의 축조 의미’, <경산 소월리 유적의 종합적 검토>,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제3회 국제학술대회 발표 자료, 2021
손환일. ‘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의 내용과 서체’, <한국고대사탐구> 제34집,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20
오승연·김상현. ‘투각인면문 옹형토기가 출토된 경산 소월리 유적’, <한국고고학저널>, 국립문화재연구소, 2019
이동주. ‘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과 유구의 성격’, <동서인문> 16호, 경북대 인문학술원, 2021
이용현. ‘경산 소월리 유적 출토 인면투각토기와 목간의 기능-목간의 기능과 농경의례’, <동서인문> 16호, 경북대 인문학술원, 2021
이용현. ‘경산 소월리 문서 목간의 성격’, <목간과 문자> 27호, 한국목간학회, 2021
전경효. ‘경산 소월리 목간의 기초적 검토’, <목간과 문자> 24호, 한국목간학회, 2020
주보돈. ‘경산 소월리목간과, 금호강 문화’, <동서인문> 16호, 경북대 인문학술원, 2021
화랑문화재연구원,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개설공사부지 내 유적발굴조사 약식보고서’, 2022
히라카와 미나미(平川南). ‘고대 한국과 일본의 곡호(谷戶)와 마을’,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사업단 제3회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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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용가] 역신이 아내 옆에 누운 모습 본 처용, 도망치지 않고 춤과 노래로 몰아내 이후 신라서 역병 막는 곡으로 불려 집단 노래 중 가장 오래 된 '구지가' 가야 백성들 구지봉서 노래 부르니 하늘서 황금알 내려와 수로왕 탄생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가운데, 이 위기를 이...
  • 2020-03-24
  • 개성 현화사에 있었던 석등. 현화사는 고려 현종의 ‘불우한 부모’를 추념하기 위해 세운 절이다. 이 절의 석등이 반출돼 1911년 일본인 골동품상인 곤도가 조선총독부에 팔아넘긴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북한 땅 개성에 현화사라는 절이 있다. 북한의 국보유물(제139호)인 7층석탑으로 유명한 절이다. 이...
  • 2019-10-29
  • 전 신사임당 필 조충도.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여류예술가로서 조선 사대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폐쇄적인 조선사회에서 사대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여류예술가도 있다. 바로 율곡 이이(1536~1584)의 어머니 신사임당(1504~1551)이다.  고전은 여성을 차별하던 조선 선비들...
  • 2019-10-12
  • 영산강 유역 드넓은 평야를 다스린 5세기 말 6세기 초 마한 토착세력의 지도자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정촌고분의 피장자는 40대 여성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발굴된 인골을 분석해 복원한 얼굴이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영산강 유역 다시벌(평야)을 다스리던 마한 출신 토착세력의 지도자는 ...
  •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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