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무정세월의 유정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2월11일 15시44분    조회:63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0)

◇김규칠 구술 김숙자 대필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규칠 로인 부부

내 나이 금년에 80이다. 긴 세월 수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잊혀지지 않는 사연도 많다. 그런데 요즘 인정세태가 삭막해서 그런지 그 때 그 일이 어쩐지 더 자주 떠오르군 한다.

온 나라가 문화대혁명의 세례를 겪고 있던 지난 세기 7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때 나는 화룡현 동성공사 해란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교육이 무산계급정치를 위해 복무하고 교육은 생산로동과 결합해야 한다는 당중앙의 호소에 따라 학교마다 거의 반공반독(공부 절반 로동 절반) 상태에 있었다. 학교마다 실험전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농사일을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규모가 작은 공장 같은 것을 꾸릴 수 있었는데 학교지도부에서는 토론 끝에 문구(文具)공장을 꾸리기로 결정하였다. 피나무로 만든 20센치메터짜리 자대는 학생들이 수업 때마다 쓰는 도구인지라 수요가 많을 것 같았다. 사업의 수요로 학교지도부에서는 공장원료를 구매하는 일을 내가 책임지게 하였다. 자대를 만들자면 나무원료도 중요하지만 관건적인 것은 신나수(新那水)라는 화학품이 있어야 한다. 당시 료해한 데 의하면 온 연변에 딱 한곳 연변대학 화학계(학부)에서 생산한다고 했다.

공장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이 화학품은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나는 날자를 잡아서 기차를 타고 연길로 갔다. 물어물어서 겨우 연변대학 화학계 신나수창고를 찾아갔는데 눈앞에 벌어진 정경에 그만 겁부터 집어먹었다. 두 사람이 한참 크게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들어보니까 한사람은 신나수창고 보관원이고 한사람은 훈춘에서 온 운전수였다. 창고보관원은 신나수가 없다고 딱 잡아떼고 운전수는 기어코 내놓으라 야단하는 것이였다.

나는 그들의 말다툼을 보면서 아차 오늘 헛걸음을 하였구나 하고 실망하는 마음에 온몸의 맥이 탁 풀렸다. 힘들게 멀리서 왔는데 헛걸음을 하였다고 생각하니 발걸음도 제대로 내디딜 수 없었다. 멍하니 한참 서있는데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가 끝나고 쾅 하고 문 닫기는 소리가 귀 아프게 들려왔다. 와들짝 놀라 어쩔 바를 모르는데 창고보관원 선생님의 욕소리가 들린다.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큰소리 치기는, 참 꼴 보기 싫어서!” 그리고는 성차지 않아 한참이나 얼굴이 벌개서 씩씩거리다가 무심결에 옆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아래우로 찬찬히 살펴보더니 무슨 일로 왔는가 물어보는 것이였다.

그 때 나의 행색은 말이 아니였다. 자식 넷에다가 안해마저 장기환자여서 가정형편이 곤난하다 보니 옷차림새가 형편 없었다. 낡은 골덴 옷도 여러 곳을 기운데다가 ‘왕바신’마저 몇군데나 기웠었다. 실말이지 그 때 나는 긴장한데다가 옷차림까지 너무 창피해서 쳐다보는 그 선생님의 눈을 피해 책상밑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나는 그 선생님의 묻는 말에 얼른 모주석어록이 씌여있는 학교소개신을 내밀었다. 그는 한참 소개신을 들여다보더니 “학교 선생인가?” 하고 억양을 낮추어 상냥하게 물었다. 나는 얼른 그렇다고 말하면서 “학교공장에서 꼭 써야 하는 물건인데…” 하고 말끝을 흐리면서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보관원선생님은 나를 좀 기다리라 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였다.

한참 지나서 그 선생님이 어느새 20근 들이 비닐통 두개에다 신나수를 골똑 채워가지고 들어섰다. 나는 너무도 놀랍고 고마워서 어쩔 바를 몰랐다. 없다고 딱 잡아떼던 신나수가 어디에서 났는가고 조심스레 물어보니 땅크 안의 건 이미 없고 고무호스에 남은 걸 담아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급히 학교에서 가지고 왔던 돈 200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땅크 안의 것이 아니라며 기어코 돈을 안 받는다 한다. 너무 미안하고 황송해서 어쩔 바를 모르는데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어떻게 가지고 가겠는가 물어온다.

신나수는 화학약품이여서 뻐스에 가지고 다니지도 못한다. 나는 미안한대로 새끼줄이나 바줄 같은 거 있으면 등짐에 지고서 역전까지 가겠다고 하였다. 기실 그 시기 연길에 하남다리 하나 뿐이여서 연변대학에서 역전까지 걸어가려면 한시간 넘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보관원선생님은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어떻게 등짐에 지고 역전까지 가는가 하면서 나더러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참 후에 해방패자동차를 모는 운전수를 데리고 와서는 이 선생님을 역전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너무도 감동되여 몸둘 바를 몰랐다. 농촌학교에서 아무런 연줄도 없이 그것도 처음 만난 나 같은 허줄한 사람한테 이런 고마움을 베푸는 그 선량한 마음을 어디에 비기랴!

연길역까지 도착한 후 나는 또 한번 아차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신나수 값도 받지 않았는데 담배 사서 피울 돈이라도 일전 한푼 내놓지 못하고 온 일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랐다. 그 후 한동안 내 머리 속에서는 항상 그 일이 또렷이 떠오르면서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세기 90년대 어느 날 나는 한동네에 사는 사촌처남네 딸의 잔치에 갔다가 우연히 그 창고보관원 선생님과 한상에서 또 만나게 되였다. 첫눈에 알아본 것이 아니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나니 옛날 연변대학 화학계에서 사업했다 하고 신나수창고 보관원 사업을 했다기에 찬찬히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옛날 고마운 선생님이 분명했다.

“아이구, 선생님… 선생님을 이 자리에서 만나다니…” 나는 무작정 그 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때까지도 어리둥절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그 분과 같은 상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는 그 때 그 날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낱낱이 전했다. 이야기를 하는데 여태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서 잊혀지지 않던 그 날의 고마움이 일시에 솟구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그렇게 신세를 지고도 담배 한대 제대로 권하지 못하고 급급히 떠났던 그 때의 미안함도 함께 전했다.

알고 보니 사촌처남 처가집 친척이 되는 분이였다. 그 날 나는 그 선생님한테 수수께끼 같은 그 일의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왜서 훈춘에서 온 운전수한테는 신나수가 없다고 딱 잡아떼고 안 주고 나같이 허줄한 농촌교원한테는 돈도 안 받고 차까지 내여서 역전까지 바래주었는지 말이다.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시기 학교마다에 로동자선전대가 들어와서 학교를 관리한답시고 얼마나 우쭐렁거리는지 꼴 보기가 싫었는데 그 날 훈춘에서 온 운전수도 자기가 로동자선전대라고 너무 으시대는 꼴이 눈꼴 사나워서 기어코 없다고 딱 잡아뗐단다. 그 날 우리는 지나간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나는 그 기회에 옛날 미안했던 마음을 술에 담아 술잔이 찰찰 넘치게 부어올려 다소나마 위안받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제일 어려울 때 따뜻한 손길을 보내준 사람이다. 40여년이 지나갔지만 오늘날까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도리여 생생하게 떠오르는 무정세월 속의 유정 이야기, 항상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즐겁게 했던 그 때 그 일, 정직한 창고보관원 선생님의 대바른 일, 내 평생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페지로 오늘까지 남아있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양명금 “늦은 나이에 이렇게 글을 쓰려니 너무 어렵습니다.”    12일, 룡정시에 거주하는 지체장애인 양명금(60세)은 불편한 몸을 지탱하고 앉아 글을 몇줄 적더니 힘든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적 공부를 많이 했어야 했는데…”   &...
  • 2021-01-28
  • 지난해 12월말 나는 북경에서 서울로 향했다. 당시 한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1천 명씩 발생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시기였다. 취재를 위해 나는 한국으로 '역행'하게 됐다.   북경 수도국제공항의 로비는 텅 비여있었다. 공항 면세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려객기의 좌석점유률은 절...
  • 2021-01-19
  • 새로운 한해인 신축년(2021년)을 맞으며 연길 두만강문화쎈터에서는 로인들을 위한 설날 떡국잔치를 열엇다. 이번 행사에는 약 백여명의 로인들이 참석해 명절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연길 두만강문화쎈터의 주최로 열린 떡국잔치는 오수화 사장이 직접 나서서 사회를 했다. 이날 행사는 어르신들께 떡국...
  • 2021-01-06
  • 원 연변연극단 배우 최금순의 연극 인생 수많은 연극 속의 인물형상과 텔레비죤드라마 《민들레할머니》 연기로 조선족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배우 최금순, 그의 70여성상 인생길에는 과연 어떤 달고 쓰고 신 사연들이 깃들어있을가. 필자는 그녀의 삶을 살펴보았다. 연극과의 만남 1946년 금순이가 13살 나던 해에 엄마...
  • 2021-01-06
  • [애심녀성컵]-더 미워질 데 없는 녀자 김경희   나는 스물여덟살 나던 해 언니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였다.   진한 눈섭에 정기 도는 쌍겹눈, 덩실한 코마루, 영준하게 생긴 얼굴에 중점대학 학력까지… 바로 내가 오래동안 마음속으로 그려봤던 리상형이였다. 평생 시집 갈 것 같지 않아 로심초사...
  • 2020-12-22
  • 고중 졸업할 때까지 매달 500원씩 지원키로 지난 4일, 연변봄비애심회 수재원 신입생 맞이 조학금 전달식이 연변제1중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5명의 신입생을 맞이한 연변봄비애심회 수재원은 신입생들을 포함하여 15명의 학생에게 인당 1000원의 조학금을 전달했다. 1999년에 설립하여 지금까지 259명의 학생을 지원해...
  • 2020-12-09
  •  우리나라 최동단, 중국 로씨야 조선 3국 국경선의 접점에 자리잡고 있는 방천은 현재 유명한 관광지로 위상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력사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방천이 사실 20세기 60년대부터 전국적인 군민공동방위의 본보기로 꼽힌 영예의 과거를 알 수 있다.       군민이 일심협력하여...
  • 2020-11-25
  • [수기] 방천에서의 아버지의 벅찬 나날들 김정일 10월 3일은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가신지 벌써 8년째 되는 날이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가 어디론가 외출 갔다가 얼마후면 돌아올 것이라며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럴 때면 아버지를 위하여 뭘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이야기며 내 눈으로 보았던...
  • 2020-11-17
  • [수기 59] 지지리도 운이 안좋은 나 리기준 나는 삼형제중 막내로 태여났다. 내가 네살 때 친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우리 집은 매우 어렵게 생활했다. 사람들은 쩍하면 우리를 ‘애비 없는 새끼’ 라고 놀려주었고 어머니는 이상한 남자들의 무시를 당하기가 일쑤였다. 2년 후 우리 어머니는 룡정시 금불사...
  • 2020-11-12
  • 80년대초기 중학교 1학년이였던 내가 쓴 동요 이 일본의 어느 한 국제교류협회가 조직한 글짓기콩클에서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상장과 선물들이 학교에 도착하여 업간체조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표창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그 시기가 바로 중국과 일본간의 친선관계 상징이였던 자이언트판다...
  • 2020-10-13
  •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부모님 산을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빈 박금석 형제분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고향을 찾아 조상들의 무덤 앞에 술을 붓고 제를 지내며 고인들의 공적을 기리는 박금석(76세), 박금룡(65세) 형제는 대소과수농장마을을 굽어보며 감회가 깊었다. 최근 들어 빈곤부축사업이 초요건설사업의 주요...
  • 2020-10-13
  •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하는데 왜 여자인 내가 단풍사랑에 빠졌을가? ...  가을정취가 다분한 국경절연후 막바지날, 가고싶었던 단풍구경 떠나는 기분좋은 날이다. 화창한 날씨에 쪽빛하늘이 하사한 따스한 해볓이 길 떠난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모임장소까지 가는 길은 신바람에 룰라라가 저절로 나온다.&nbs...
  • 2020-10-10
  • 새 집을 짓던 나날들 김삼철 요지음 나는 103평방메터의 화려한 아빠트에서 혼자 생활하느라니 가난했던 1970년대 연변과는 수천리 떨어진 길림성 동북쪽 맨 끝자락의 길림성 유수현 연화조선족향에서 근무할 때 내 손으로 초가집을 짓던 어려운 나날들이 추억의 쪽문을 열고 밀려나온다.   1970년 가을 나는 지인의 ...
  • 2020-10-04
  • 지난 9월4일 가목사조선족학교에서 진달래마을 장학금을 지급했다.  진달래마을 조선족장학단체(이하 진달래마을)가 9월 개학을 맞아 동북3성 8개 지역 14개 조선족학교들에 장학금을 전달, 오래만에 개학을 맞아 열기 띈 학교분위기에 활기를 더 하고있다.       흑룡강성, 길림성, 료녕성, 내...
  • 2020-09-18
  •     교육대계는 교사육성이 핵심   소외된 교사들 교육열기 재점화   현재 전통지역 학생래원의 급격한 감소와 고갈, 페교위기, 교사의 로령화와 청년교사의 부재로 전통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자평나 있다.   이러한 와중에 교육이 살아야 미래가 보인다는 사회풍조가 일면서 학교에 대한 사회적인...
  • 2020-09-14
  • 오승룡동지, 남, 조선족, 1972년 11월 출생, 1990년 10월 사업에 참가, 2005년 4월 중국공산당에 가입, 대학학력. 왕청현사법국 선전과 과원, 인사국 중재과 과원, 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 로임복리과 과장, 부국장, 2018년 7월 왕청현당위 조직부 부부장 겸 로간부국 국장. 선후로 '전 주 법률상식 보급 법에 따라 다스리...
  • 2020-09-11
  • 성송권                                                                                    ...
  • 2020-09-07
  • 위챗 수금기능 24시간 동안 마비되어       월드옥타 청도지회 김금란 회장을 비롯한 운영진이 김홍화씨에게 사랑의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8월 28일 본지에 “저희 남편 살려주세요” 란 기사가 발표된 후 한민족사회에 큰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 2020-09-02
  • 올해 85세인 엄마는 신문과 책 보기를 무척 즐긴다. 해마다 《길림신문》, 《종합참고》, 《장백산》, 《연변녀성》 등 신문 잡지를 주문하여 구독하고 도서 대여증으로 여러 면의 좋은 책들을 수시로 빌려보고 있다. 근년엔 엄마는 다년간 간행물을 읽으면서 배운 많은 지식을 “인젠 나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 2020-08-27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