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화려한 아나운서에서 소박한 호리원으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월3일 15시08분    조회:122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양로사업을 영원한 직책으로 여기는 ‘이쁜 아가씨’ 박진화의 이야기

“로인을 돌보고 어린 애들을 보살필수 있는 양로원, 고아원을 차리는것이 어릴적 저의 꿈이였습니다.”

아니운서라는 화려한 후광을 벗어둔채 2011년 2월, 호리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지금 사회복리원 특수호리구역에서 주임으로 일하고 있는 박진화는 호리사업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자부심에 차있다.

청춘스타트, 우리네 동산 등 한 시대 청소년들의 성장을 동반했던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인기 프로에서 아나운서(1999-2003)를 맡았던 박진화는 결혼하면서 아나운서라는 화려한 직업을 접고 남편을 따라 타지로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이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되였고 고향에 돌아와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점점 자신을 깡그리 잊어버리군하였다. 애들마저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허전했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1년에 박진화는 연변주민정국에서 호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어릴적 부터 로인과 애들을 그토록 좋아했고 동정심이 많았던 박진화는 별다른 배척심이 없이 호리원이라는 이 직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육아에 전념하는 동안 공부할 여유가 없었기에 관련 지식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애들이 학교에 가고난 틈, 애들이 자는 틈을 타서 기초지식부터 착실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가면서 공부했던 그는 결국 원하던 일터에 합격되였다.

금방 사업에 참가한 박진화는 경험부족 등으로 일터에서 많은 곤난에 부딪치게 되였다. 특히 사랑만 받던 아나운서에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묵묵히 헌신해야만 하는 호리원으로 전환하기에는 결코 쉽지는 않았다.

“5층의 창문유리를 닦게 되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높은 곳에서 유리를 닦자니 정말 무서웠습니다.”라고 그는 그때 모습을 회억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서 곱게 자랐던 터라 높은 곳에서 창문을 닦을 일 같은 힘든 일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바닥 청소, 방 청소, 변기 청소 등 가장 어렵고 힘든 일부터 시작했다. 작업복마저 선임들이 두고 간 것을 입고 일했다. 예전의 그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단지 바닥 청소를 하는 젊은 아주머니로 되였다.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곱게 곱게 키워 놓았더니만 낮에는 변기나 청소하고 저녁이면 힘들어 옷도 벗지 않은채 침대에 쓰려져 자는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속상한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였다.

“왜 그렇게 사니?” 시어머니의 질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택했던 길을 포기 하지 않으려 했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우물도 물이 나올때 까지 파는 성격이라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끝까지 버텼다.

‘제가 일하는 모습을 몰래 와서 보셨다고 하셨어요. 그러다 나중에 제가 너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가족들도 감동받고 저의 의견을 존중할테니 한번 해보라고 지지하였습니다.’박진화의 말이다.

 

가족의 허락을 받은 후 그는 열성을 다해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그는 우수한 호리원은 단지 열성 뿐만 아니라 뛰여난 호리기술과 로인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애심이 필요하다는것을 깨닽게 되였다. 그는 자신의 업무면의 부족점을 미봉하기 위해 호리지식을 익혔고 세부적인 동작마저 하나하나 반복적으로 련습하였다. 드디여 그의 변화에 대해 로인들이 만족했고 기타 호리원들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호리사업은 고상하면서도 매우 번거롭다. 수력된 기술과 고도의 책임감, 사명감이 필요하다. 5년간 호리사업에 참가하면서 아침 일찍 나가서는 저녁 늦게 들어오는것이 일상이자 습관으로 되였다. 두 자녀의 엄마로서 육아의 중임도 제쳐놓고 일체는 로인들을 위하는 알뜰봉사에 정력을 물부었다.

연변사회복리원에는 고령의 로인들이 많다. 특히 특별호리구에는 치매에 걸렸거나 자립이 불가능한 로인들이 많다.

“늙으면 어린애와 같습니다. 때문에 애들처럼 달래주어야 합니다.”

박진화는 늘 로인들을 제집 식구처럼 생각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웃는 얼굴로 대했으며 세심하게 돌보았다.

한번은 치매로 앓고 있는 할머니가 환각으로 부모님이 자기를 보러 왔다고 하면서 꼭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호리원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때 박진화는 할머니의 부모님들이 오는 길에 차가 막혀 좀 늦을 것 같으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내려가자고 하면서 할머니의 정서를 안정시켜 주었다. 그렇게 안정을 취하는 사이에 할머니의 환각증상이 완화되였고 더 이상 이상한 행동이 생기지 않았다.

어느 한번은 자기 담당구역의 할아버지 한분이 사망되였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눈을 뜬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걸 차마 볼 수 없어 박진화는 자기의 따스한 손을 내밀어 직접 할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렸다.

그래서 로인들은 매사에 세심한 박진화를 늘 “이쁜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다들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학교때의 전공이 무용이였던 그는 다년간 갈고 닦은 춤실력으로 사회복리원내 각종 문예활동에서 늘 무용을 선보여 로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였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과 각급 령도들의 인정을 받게 되였고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원에 가입하였으며  2012년에는 특수호리구역의 주임으로 승진하였다. 주임으로 승진하면서 관리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였고 압력도 느끼게 되였다.

부임 초기 여러면에서 주는 압력과 그에 대한 질의로 많이 힘들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원망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주어진 일을 착실하게 하면서 점차적으로 주변에서 주는 질의에 대해 회답했고 주변의 지지를 받게 되였다.

관리면에서 그는 인성화 호리를 견지했다. 로인들의 수요와 만족 및 호리원들의 만족을 원칙으로 책임을 세분화했고 봉사의 질을 높였으며 환경을 일층 개선하였다.

호리원들의 업무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문적인 강습을 강화했고 호리원들의 복리대우를 올려주었으며 근무제도를 세워 호리원들의 근무시간을 규범화했고 실제와 결부해 호리하는 과정에 생기는 문제와 대책들을 전수하여 그들의 응변능력과 대처능력을 일층 높였다.

주임으로 승진한지 일년도 안되여 그가 이끈 특수호리구역은 사회복리원 선진집단의 영예를 안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입당한지 2년만인 2016년에는 주민정국의 우수공산당원으로 뽑혀 표창받았다.

매일 하는 일들이 그토록 힘들고 고달팠지만 정연하게 정돈된 호실과 정신상태가 좋아진 로인들을 보노라면 하루의 피곤이 깡그리 사라지군 한다고 말하는 박진화다. 그러면서 그는 로인들에게 건강하고 즐거운 로후를 마련해드리는 것이 자기의 영원한 직책이라고 밝힌다. 

/길림신문 정현관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2016년 5월 13일, 장장 13시간 하늘을 날아 우리 일행은 마침내 상해로부터 프랑스 빠리에 도착했다. 지친 몸을 가눌새도, 구겨진 옷을 갈아 입을 새도 없이 부랴부랴 관광버스에 올라 유럽려행 첫 코스 개선문을 향한 마음은 흥분에 들떴다. 빠리의 거리는 상해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상해 륙가주(...
  • 2022-05-17
  • 최선 다해 삶을 살아가는 녀강자 고향이 흑룡강성 가목사인 정계화(1967년생)는 부모형제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정계화는 아버지가 장기환자인,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3남매 중 맏이로 태여났다. 호도거리를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대부금을 내주며 ‘전문호’로 될...
  • 2022-05-17
  • 올해 봄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본지방을 마음대로 리탈하지 못하는 방역지침을 따라야 하기에 진달래꽃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타지방으로 가지 못하고 가까운 일광산, 후안산 진달래꽃 구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요즘은 그 진달래꽃도 어지러이 락화하는지라 어디로 구경갈 데도 마뜩잖던 차에 등산애호가인 윤선생이 4월 30일...
  • 2022-05-10
  • 봄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어느 휴일, 나는 강변을 거닐다가 우연히 연 띄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였다. 연이 자유로이 날아오르기도 전에 연줄을 너무 세게 잡아당겨 조금 날다가 휙 돌아치며 땅에 곤두박질하는 ‘물고기 연’이 있는가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보일락 말락 까만 점으로 되자 급히 연줄을 ...
  • 2022-05-10
  •   [료녕신문 최수향 기자] 5월 8일, 대련아리랑예술단 전체 단원 31명은 80세 이상 장수로인 5명을 모시고 뜻깊은 어머니날 경축모임을 가졌다.   이날 대련아리랑예술단 성원들은 예술단의 장수로인 리복록, ...
  • 2022-05-10
  • 빈곤퇴치 난관공략 촌주재사업팀 일군에서 전염병퇴치 ‘따바이(大白)’가 되기까지 연변주청소년사업발전쎈터 부주임 김명길은 그야말로 ‘전문역행자’이다. 이 동북 조선족 ‘90후’는 “어디에서 나를 필요로 하면 나는 어디에 간다.”고 말했다.   3월초, 연변 훈춘에서...
  • 2022-05-07
  • 김향자 촬영작품 《고향•넋》 전시 포스터 4월 16일, 연변녀성촬영가 10인 초청작품전의 첫 행사로 김향자(61세)의 《고향•넋》작품전시가 연길백화청사(8층) 하건나(哈根娜)커피청에서 정식 개막되였다. 녀성의 달 3월을 겨냥하여 준비한 작품전이건만 코로나사태로 미뤄진 행사라 모처럼 이루어진 모임에서 주...
  • 2022-04-22
  • [수기 103]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4-15 20:40:27 ] 클릭: [ ] 인생은 홀로서기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강인한 힘으로 인생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이겠다. 손에 손 잡고 가자는 말도 있다. 이는 함께 살아가는 동조의 뜻이다. ...
  • 2022-04-17
  • [수기] 마음의 가책 김영숙 (룡정시북안소학교) “앗…” 종합 실천활동 시간에 애들과 함께 채색 종이를 오리고 자르고 붙이는 과정에서 나는 그만 부주의로 가위에 왼손 식지가 찔리웠다. 깊게 난 상처는 아니지만 새빨간 피가 방울방울 솟아나왔다. 애들은 울상이 되여서 “선생님, 괜찮습니까? 빨...
  • 2022-03-29
  • 3월 8일 오전, 료양현 흥륭진 홍광조선족촌은 촌사무실 앞마당에서 ‘3.8’부녀절 경축행사를 가졌다.     “오늘 우리 ‘시골’ 동네에서도 ‘3.8’절 경축행사를 가졌수다” 문정숙 촌서기 겸 촌주임의 가득 들뜬 말이다.      현재 홍광조선족촌...
  • 2022-03-10
  • [수기] 집 찾아 돌아온 오리 김순옥 몇년전 나는 그림 같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새 아빠트에 입주했다.  아빠트단지에 들어서면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 오리 조각상이 있다.  매번 오리 조각상을 볼 때마다 지나간 추억이 새록새록...
  • 2022-02-25
  • [수기] 부러움 없이 보냈던 동년시절의 설 김춘선 나의 동년시절은 남진골, 차창에서 보냈다. 남진골은 화룡현 덕화향의 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페허로 되였다. 남진골에서 출생한 내가 세상 물정을 알게 되였을 때는 아마도 대여섯살부터인 것 같다.   1958년 7월 화룡 차창에서 형제들과 함께 기념...
  • 2022-02-24
  • [생활수기] 코바늘에 깃든 이야기 - 최범수 갓 결혼하고 첫 딸애를 본 나는 마냥  즐거워 늘 행복 속에 잠겨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출근했다. 금방 걸음마를 탈가말가하는 딸애는 그렇게도 귀엽기만 했다...
  • 2022-02-24
  • [생활수기] 손자에게서 배우는 재미 - 리삼민 ‘강산이 일곱번 바뀌’는 사이, 뜻밖의 사연으로 얼굴이 뜨거워질 때가 많았지만 외손자가 나에게 준 교훈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외손자의 이름은 김...
  • 2022-02-17
  •  [수기] 행복을 찾아가는 길 김영실(연길시건공소학교) 전 지구촌을 휩쓰는 코로나19 때문에 정상적인 교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하며 복새판을 부리다 보니 어느새 한해가 다 지나갔다. 지나온 한해를 돌이켜 보노라니 분명히 어려운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행복했던 순간들...
  • 2022-02-17
  • 장백산 아래 어느 로부부가 들려준 ‘길’에 담긴 이야기     장백산 아래에 사는 김은호, 남영자 로부부가 고향에 들어선 고속철역 앞에서.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길부터 먼저 닦으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12월 24일 장백산고속철이 개통식을 가진던 날, 안도현 현성과 200여리 떨어진 ...
  • 2022-02-10
  • 수기ㅣ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정영수 나에게는 늘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 며칠전 친구모임을 가졌는데 설전에 단동 친구네 별장에 가기로 약속했다. 지정한 날자에 심양에서 승용차 두대에 몸을 싣고 출...
  • 2022-02-07
  • 과거에는 많은 친척들이 모여 함께 설을 맞이하고 음식을 나눠 먹던 풍경과 달리 코로나19 사태로 직계가족만 모여 조용하게 명절을 보내는 추세가 반영되면서 장을 봐서 일일이 조리해야 하는 음식보다는 간편하고 간단하게 료리할 수 있는 반성품,간편식이 인기이다. 1월 31일, 3년째 반성품  ‘땅추(当厨)&rs...
  • 2022-02-07
  • 연변가정연구소 문화봉사자팀은 지난 1월 16일 그들의 전문 교육장인 연길태원호텔에서 제2기평생교육강좌 수료식을 ‘마지막 수업’으로 15년간 이어온 평생교육강좌를 마쳤다. ‘문화봉사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온 15년의 성장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문화봉사자팀 일동은 우선 “20여년간 하루...
  • 2022-02-03
  • 바로 지금이다. 그대 곧 시작하라!   김훈       며칠전 한국에 있는 지인이 전화로 문안을 전하면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보람찬"일거리"를 찾았다고 했다.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예술무대에서 유명세를 탔던 별호가 “수러우”인 리옥희 배우다.. 지인이 찾은 보...
  • 2022-01-28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