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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는 나의 집, 회원들은 나의 형제자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3월27일 00시00분    조회: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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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김신숙 회장의 협회 사랑 이야기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회장 김신숙(81세)은 연설을 할라 치면 발언고도 없이 청산류수로 쏟아내는가 하면 그 목청 또한 힘있고 쩌렁쩌렁하다. 게다가 훤칠한 체격에 걸음걸이도 젊은이들 못지 않게 날파람 있고 사유와 반응도 무척 민첩하다.

2016년에 협회 60돐 생일을 맞으며 자체로 출간한 화보는 김신숙 회장이 애지중지 아끼는 보물이다. 협회의 전신인 장춘 ‘7마로(七马路)조선족로인독보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협회가 걸어온 력사가 한장 한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독보조에서 군중사업을 접하여

1977년 로인독보조를 인솔하여 《모택동선집》을 학습

룡정 태생인 김신숙은 장춘에 시집 오면서 장춘시조선족유치원에 취직했다가 1969년에 관성구 신발가두(新发街道)로 전근하였다. 출근한 지 얼마 안되여 구정부 책임자는 가두 왕서기와 김신숙을 불러놓고 “관성구는 조선족이 집중된 곳이니 앞으로 민족단결사업과 로인사업을 중시하고 틀어쥐여야 한다.”고 사업중점을 제시하였다. 김신숙은 그 말을 마음속깊이 새기였다.

가두에서 외근사업에 몸 담근 김신숙은 우선 200여세대, 890명의 조선족이 모여살고 있는 7마로 일대에 시조선족문화관, 시조선족유치원, 관성구조선족소학교, 시민족병원, 시조선족백화점, 시조선족서점 등 여러 국영단위 이외에 조선족부식품상점, 랭면집 등 개체호 4집을 포함해 조선족과 관련한 상황부터 소상히 료해하였다. 그 과정에서 김신숙은 조선족로인들에게 독보조에 참가하라고 적극 격려하는 한편 시민족사무위원회의 사업을 협조하여 독보조에 민족정책을 전달하고 솔선하여 가풍을 중시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어수선해진 민심을 바로잡는 데 일조했다.

가장 인상적인 두가지 일

김신숙은 독보조사업에 관여하는 동안에 있은 수많은 일들 중에서 두가지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1973년 3.8국제부녀절에 있은 일이다. 영화 《꽃 파는 처녀》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신숙은 가두판사처 왕서기를 찾아가 독보조의 로인들에게 드릴 영화표 35장을 구해들고 독보조로 달려갔다. 가두에서 어르신들께 영화표를 드린다는 소식에 로인들은 감격한 나머지 표를 받을념은 않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모주석초상을 향해 경례를 하는 것이였다.

다른 한번은 거리에서 누군가 “김선생” 하고 부르기에 뒤돌아보니 조선족서점의 리용순 주임이였다. 그녀는 다짜고짜 김신숙의 손을 잡고 “김선생님, 실로 좋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 시어머니가 변했습니다. 덕분에 이제 저도 밥상에서 밥을 먹게 되였습니다.”라고 하며 시어머니가 독보조를 다니면서 많이 달라졌다고 못내 고마워하였다.

김신숙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독보조활동의 중요성을 심심히 느끼게 되였다.

길림성 ‘민족단결모범’ 으로

1976년 공연무대에 올라 회가 〈우리는 자랑스런 로인독보조〉를 지휘하며

그 후부터 김신숙은 어떻게 하면 독보조사업을 잘할 수 있을지 더욱 골몰하게 되였다. 그녀의 창의로 독보조는 마침내 자체의 회가 〈우리는 자랑스런 로인독보조〉를 갖게 되였다.

김신숙은 독보조를 이끌고 공원, 사거리 등 곳으로 찾아가 자신이 지휘를 맡고 독보조 회가를 부르면서 선전사업을 벌였다.

군중사업에 몸을 사리지 않은 김신숙은 관성구정부와 신발가두의 지시에 따라 문화대혁명 후 첫 국경절을 맞이하여 남편(전철범)과 나란히 단장, 부단장을 맡고 조선족 간부들과 군중들을 위한 ‘국경절의 밤 찬가를 부르다’는 등불야회공연을 조직하였는가 하면 로인들에게 《모택동선집》 학습, 새 헌법과 〈민족구역자치법〉 학습 등을 통해 당과 국가의 방침, 정책을 널리 선전하였다. 이처럼 정부와 군중을 이어주는 사업일선에 뛰여들어 군중들 속에서 배우고 동고동락한 로고를 인정받아 김신숙은 1985년에 길림성 ‘민족단결모범’ 칭호를 수여받았다.

페업된 가두공장을 되살리다

1985년, 신발가두공회 부주임으로 부임한 김신숙은 이듬해 가두공장인 복장목기공장당지부 서기로 임명되였다. 그녀에게는 생산을 회복시켜야 하는 임무가 떨어졌다. 그 때 공장은 원 공장장이 탐오죄로 수감되고 생산이 정지되는 바람에 30여명의 로동자들이 로임을 받지 못하여 정상생활을 이어가기도 힘든 상황이였다.

무거운 짐을 떠멘 김신숙은 시장조사를 거쳐 장춘 시장에서 공백인 채색비닐봉지를 생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녀는 갖은 방법을 다하여 은행에서 5만원을 대출받고 공정사들을 초빙하고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채색비닐봉지 생산설비를 제조하는 강소성의 한 공장을 찾아가 한달을 기다려도 못 산다는 생산설비 두대를 사고 일주일 만에 장춘에 돌아왔다.

그 해 공장은 빚을 다 물고도 크게 리윤을 보았다. 하여 년말총결 때 가두에서는 김신숙에게 상금 4,600원을 주기로 결정하였다. 당시로서는 두칸짜리 아빠트를 살 수 있는 목돈이였다. 그래도 김신숙은 극구 사절하였다.

김신숙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 일이 자신의 인생에 남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중의 하나라고 명상에 잠기였다. 그 해 김신숙은 ‘장춘시종업원빈곤부축사업 우수간부’로 표창받았다.

‘전국민족단결선진개인’ 으로

1987년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설립 1주년 기념대회에서 사회를 하며

지난 세기 80년대에 관성구는 조선족인구가 불어나면서 독보조의 형식과 내용으로는 더는 광범위한 조선족로인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1986년, 관성구정부와 신발가두 그리고 시민족사무위원회의 지도하에 독보조를 바탕으로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를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협회 창시자의 한 사람인 김신숙은 협회 부회장 겸 비서장을 맡고 초기에 가교역할을 차질없이 담당하였으며 제1기부터 제5기에 이르기까지 협회의 주요 책임자의 한 사람으로서 협회와 군중 사업을 강도 있게 이끌어나갔다.

그 무렵 김신숙은 협회 회원들을 이끌고 로산전선에서 장춘으로 개선한 전사들을 위로하여 찰떡 등 조선족전통음식을 장만하여 부대에 찾아가 환영활동을 벌였는가 하면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한 가두의 주민 김봉산이 제대군인대우를 받지 못하고 일자리마저 변변치 못해 생활이 쪼들리는 사정을 알고는 구와 시, 성 민정국을 돌아다니며 끝끝내 마땅한 대우를 받게 해주는 등 사회와 군중을 위해 의의 있는 일들을 수두룩이 해나갔다. 1990년에 김신숙은 ‘전국민족단결선진개인’ 칭호를 받았다.

이에 김신숙은 더없이 뿌듯했다. 민족의 단결과 진보 사업, 로인사업을 잘하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락으로 삼은 그녀에게는 당원으로서, 조선족녀성으로서 당과 민족 앞에 부끄럼없이 살아온 지난날을 인정받은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그깟 종이 한장이 뭐라구.” 하면서 시큰둥해할 때 그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큰 재산”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40여쌍의 남녀를 배필로 무어준 오작교

공익사업을 일생의 신조로 여기고 열심히 사업하여 사회적인 신망을 얻은 김신숙에게는 그의 성품과 인품, 책임감을 믿고 혼인소개를 부탁하는 조선족가정들도 점차 많아졌다. 그리하여 그 동안 무려 40여쌍의 남녀들을 배필로 맺어주었다. 그중에는 부모에 이어 아들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중매를 서준 사례도 들어있다. 어떤 가정은 수년간 수십차례의 노력 끝에 무어주기도 했다. 물론 이런 중매는 전부 무보수였다. 김신숙은 산재지구의 조선족들에게 중매를 서서 혼인을 맺어주는 것도 자신의 의무의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능력을 알고 함께 혼인소개소를 꾸려 돈을 벌자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모두 뿌리쳤다.

다시 협회의 중임을 떠메고

2014년 7월, 협회는 가두 관할구내 아빠트단지에서 음식축제를 열었다

김신숙은 입원치료를 받는 남편을 간병하고 또 끝내 사별한 남편의 제사를 챙기는 등으로 몇년간 집에서 지냈다.

2012년, 로인협회 회원들과 일군들이 김신숙을 찾아와 협회를 맡아달라고 간곡히 청들었다. 다시 협회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흥겹고 활기차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해 6월 10일에 회장으로 당선된 김신숙은 협회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7.1 당의 생일을 맞아 노래자랑잔치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회원이든 아니든 무릇 참가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선물을 준다.”고 사회에 널리 알리고는 자신의 지갑을 열어 700원을 내놓고 협회 고문 김려준이 내놓은 300원을 보태여 상품과 기념품을 샀다. 협회에서는 또 시조선족군중예술관의 전문가들과 구정부 간부, 과외가수 한명을 심사위원으로 초청하였다.

큰 인기를 누린 이번 노래자랑잔치 덕분으로 협회에 가입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30여명이나 되였다. 그 후 회원수는 일약 90여명으로 늘어났다.

다시 생기를 찾은 협회는 시조선족로인협회의 지도하에 ‘웃으며 살자’는 주제로 된 공익사업 등 각종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며 회원들의 헌신정신을 격려했다.

이듬해 7.1절을 맞으며 협회에서는 당원마다 50원씩 내놓아 사회구역의 곤난한 군중들에게 쌀, 콩기름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벌리였다.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맞이하여 광장무를 배우고 공연하였다. 그리고 매주 활동일을 통해 건강상식을 학습하고 문예종목을 배우고 련습하는 것을 일상화하였다.

그러자 마작을 놀고 술을 마시는 현상이 대폭 줄어들고 공익사업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2014년 7월, 협회에서는 가두 관할구내 아빠트단지에서 음식축제를 열었다. 회원들이 저마다 집에서 한두가지 료리를 만들어와 도합 100여가지의 료리를 30여메터 되는 긴 밥상 우에 차려놓고 오가는 주민들에게 대접했다.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동네라 타민족 주민들도 지나가다 걸상에 들어앉아 음식을 맛보고는 “조선족 음식들이 참으로 다양하고 맛있네!”라고 연신 감탄했다. 그중 한 한족남성은 그 자리로 집에 돌아가 김이 물물 오르는 물만두를 한소래 삶아들고 돌아와 “이것도 맛보세요. 다음엔 나도 꼭 참가하겠습니다.”라고 하여 행사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김신숙이 코기러기가 되면서부터 협회에서는 해마다 정부, 학교와의 공익사업, 회원 가정과 곤난한 군중과의 공익사업들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멀리로는 사천의 지진재해구와 서장의 빈곤한 지구에, 가까이로는 룡정의 노래비 건설, 개산툰 홍수재해구, 수재를 입은 영길현조선족중소학교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난 겨울 가두관할구에 있는 판자집에서 사는 세가구에 불이 났을 때에도 회원들은 2시간도 안되여 이불, 옷, 그릇 등 구제물품을 300여점 모아 지원하였다.

협회는 조직이 짜이고 회원들 사이에도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여 모두 한가족처럼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천성적으로 사람을 반기고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협회를 위해 일하면서 “협회는 내 집 같고 회원들은 형제자매 같다. 협회 일이라면 싫증나지 않고 회원들 일이라면 아까울 게 없다.”고 말하며, 회원은 물론 그들의 자손들의 성장에도 따뜻한 관심을 몰붓는 김신숙의 코기러기 역할과 갈라놓을 수 없다.

참으로 김신숙이야말로 이 시대에 초심을 잃지 않고 사명을 아로새기고 민족단결사업과 군중사업을 위하여 일생동안 꾸준히 분투해온 로당원, 로간부로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다.

60년의 력사를 화보에 담아

2016년 여름, 협회 설립 60돐 기념 화첩을 내면서 간부들과 함께(중간 김신숙 회장)

김신숙은 독보조 시기부터 오늘의 로인협회에 이르기까지의 협회와 관련된 기념사진들을 소중하게 보관해왔다. 지난해 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녀는 이런 사진들을 모아 화보를 만들기로 했다. 이 작업을 위해 그녀는 낮에는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더 수집하는 한편 사진의 내용, 년도,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기 위해 구정부로, 가두로, 회원들의 집으로 부지런히 찾아다니였고 밤이면 침대며 탁자 우에 스캔한 수백장의 사진들을 펴놓고 분류하군 하였다.

그런데 한번도 책자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화보를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데다 출판비용도 만만치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렵에 심장병으로 세번이나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다. 그동안 쌓인 피로에 조급한 마음과 불면증이 겹친 것이 화근이였다. 그 사이 김신숙은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병세가 위중한 적도 있었다. 코와 몸 여기저기에 의료용 도관을 달고 병상에 꼼짝 못하고 누워있으면서도 김신숙은 베개 밑에 의사 몰래 넣어둔 사진자료뭉치가 마음에 걸렸다.

병세가 좀 호전되자 김신숙은 주치의사 몰래 살며시 병실을 빠져나와 광고디자인부에 달려가 화보의 판면설계의 진행정황을 알아보고는 다시 부랴부랴 병실에 돌아오군 했다. 이렇게 아픈 몸으로 장춘시의 여러 단위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지도를 받은 끝에 화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출판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체면을 무릅쓰고 성민족사무위원회 사회단체 관련 부서를 찾아가 화보를 보이면서 사정하였더니 “민족과 로인협회 사업을 위하여 이렇게 열심히 일해온 줄 몰랐습니다. 이는 장춘시 민족사업과 로인사업에 대한 한차례 총화입니다.” 하며 적극 지지해주었고 시민족사무위원회 민족처 간부도 “민족사업을 위해 유익한 사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 민족사업에 대해 많이 의논합시다.”라고 하며 격려해주었다.

행복한 가정

《로년세계》잡지에서/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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