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121]가난했지만 풍요로왔던 시절의 추억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월10일 09시34분    조회:118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9)

▩윤미란(장춘)

어린 시절 필자(오른쪽 뒤)가 형제, 사촌들과 함께.

지난 세기 80년대에 태여난 우리를 80후라고 부른다.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중국의 40년을 거쳐 이룬 성과를 몸과 마음으로 감수하면서 성장한 우리 세대이다. 이렇게 40년 가까이 품어왔던 많고 많은 추억들속에서 평생 안고 가고픈 추억만 꺼내여 독자들과 공유하고저 한다. 그것은 바로 물질세계는 가난했지만 정신세계는 풍요로왔던 유년시절의 추억들이다. 나 또한 지금도 심심하면 아들놈에게 옛이야기처럼 들려주곤 하는 그 시절 기억의 쪼각들이다.

내가 태여난 곳은 지난 세기 80년대의 어느 조그마한 촌 동네였다.“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노래가사처럼 전통적인 조선족 동네가 아니라 내 고향은 주위에 한족이 대부분이고 조선족은 적은, 연변 집거지구와 비교되는 산재지역이였다. 그래서 소학교도 전문 조선족소학교가 아닌, 한족학교의 교실을 빌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개 학급씩만 꾸려나가는 식이였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환경에서도 우리 민족 언어를 배울 수 있게끔 조건을 마련해준 정부의 민족교육정책에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덕분에 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언어로 능숙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 중 하나라면 아마도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던 추억이 아닐가 싶다. 그 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 TV, 컴퓨터 등 전자제품이 없던 때라 놀 수 있는 거라곤 친구들과 술래잡기, 딱지치기, 유리구슬치기, 공기놀이, 고무줄뛰기 이런 것 뿐이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어린 시절을 화려하게 장식해주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한번씩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여남을 느낄 수가 있다.

어릴 때는 지금처럼 교통수단도 풍부하지 않아서 집에서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교통도구가 자전거인 걸로 기억된다. 그것도 앞에 가름대가 있는 큰 자전거 말이다. 아버지는 종종 나랑 남동생을 태우고 퇴근하시곤 했는데 그 때면 동생은 앞 가름대에 걸터앉고 나는 뒤쪽에 앉아서 룰루랄라 집으로 향했다. 하교길에 어쩌다 황소가 끄는 수레가 지나가면 애들은 얼싸 좋다고 우르르 몰려들어 너도나도 거기에 앉아서 가려고 서로 밀치고닥치고 했다. 그래도 인심 좋은 소몰이 아저씨를 만나면 본척만척 내버려뒀지만 고약한 아저씨라면 채찍으로 애들을 내쫓기도 했다. 저급학년 어린이들은 담임선생님이 줄을 딱 세워서 손잡고 하교하면서 집집마다 데려다준 것으로 기억된다.

어릴 때 간식이라곤 퉁퉁 부은 빵, 손가락과자, 말똥과자만이 기억난다. 그마저도 평소에는 입에 못 대여보고 모내기철이나 가을걷이철에 부모님들이 참으로 준비해간다고 조금씩 사는 것에서 뜯어먹어본 것 같다. 제일 많이 먹은 간식이라면 아마 누룽지일 것이다. 가마솥에서 금방 지은 밥을 퍼내고 누룽지를 동그랗게 오무려서 등교길에 엄마가 항상 쥐여줬던 것 같다. 그 때는 하도 먹어 질려서 몇입 떼여먹고는 가다가 던져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지금도 그 때 추억이 떠올라 한번 먹어보려고 해도 구하기 귀한 음식으로 되여버렸다.

겨울철이 되면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그 때 반찬이래야 제일 흔한 것이 김치와 계란볶음이였다. 오전 3교시가 끝날 무렵 선생님이 화로불 우에 애들의 도시락통을 올려놓고 밥을 덥히기 시작하는데 그 때부터 교실 안에는 김치가 들들 익어가는 냄새로 가득찬다. 그 때 도시락통이라면 일본말로‘벤또'라고 하는 것인데 알루미늄 재질로 된 거라 열전달이 빠른 대신 겉면이 아주 뜨거워서 많이 데여봤을 것이라 믿는다. 점심에는 애들 끼리 희희락락거리면서 도시락 반찬을 서로 나눠먹기도 하고. 지금은 학교에서 반찬을 몇가지씩 주는 데도 맛없다고 투정하는 아들을 보면서 그 때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아무래도 리해를 못하는 눈치다.

홍색근거지에서 혁명전통 되새기기 체험활동에 참가한 필자

어린 시절 집안에서 놀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보니 우리는 대자연을 만긱할 수 있었다. 봄이면 친구랑 같이 민들레, 달래, 냉이를 캐러 들로 부지런히 다녔다. 그 날 점심은 어김없이 엄마가 큰 양푼에다 캐온 민들레, 달래에 고추장 듬뿍 얹어 맛갈스럽게 비빔밥을 만들어주었다.

여름에는 동네 강물이 우리의 천연놀이터가 되였다. 아낙네들은 거기로 가서 방망이질하면서 수다도 떨고 우리 어린 것들은 풍덩풍덩 물속에 뛰여들어 미역을 감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어른들은 누구도 자녀가 강물에서 미역을 감다가 사고나지 않을가 하는 걱정을 안했던 것 같다.

여름철에 가장 기대되는 소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학교에서 원족 간다는 소식이였다. 며칠 전부터 원족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밤잠까지 설친 걸로 기억된다. 또한 원족 가는 날 아침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 하는 일이 창밖의 날씨를 살피는 것이였다. 비가 오거나 하면 원족은 취소되는 것이였으니까. 원족 가는 날만은 엄마가 사과며 과자며 삶은 계란이며 바리바리 많이 싸주었던 것 같다. 요즘은 많이들 김밥을 싸서 소풍 간다고 하는데 그 때는 중한수교 전이라 김밥이 뭔지도 몰랐다.

가을철에는 겨우내 학급에서 피워야 할 화로불 땔감을 준비해야 했기에 일요일이면 남자애들 같이‘벤또'를 싸들고 솔방울 주으러 산으로 갔다. 남자애들이 소나무 우에 올라가서 흔들면 솔방울들이 후둑후둑 떨어지는데 녀자애들은 그걸 부지런히 주어담았다. 가득 주어담은 솔방울 마대를 이고 지고 집으로 오는 것도 아이들이였고 학교에 이고 간 것도 아이들, 겨울철 불을 지피는 것도 아이들 몫이였다. 지금처럼 학부모들이 학교에 유리창까지 닦으러 가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겨울철 눈이 오면 대자연은 우리의 최고의 놀이터가 되였다.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 하고 눈을 퍼서 화로불 우에 얹어서 서서히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살피고 하여튼 놀거리가 너무도 많았다. 또한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이 막히면 어른들 아이들 할것없이 길가로 나와 눈을 치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방학은 우리에게 얼어붙은 강얼음판에 가서 팽이를 치게 해주었고 산비탈 경사진 면에 자연이 만들어준 미끄럼대에서 실컷 미끄럼질도 하였다. 종일 미끄럼질 하고 나면 바지 엉덩이가 마모되여 구멍이 펑 뚫려서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도 생생하다.

명절 때가 되면 친척 식구들 다 같이 모여서 함께 지낸 걸로 기억된다. 사촌형제들 같이 놀면서 싸움도 많이 했건만 그래도 그것이 진정한 유년시절이였다. 지금은 집집마다 하나씩 키울뿐더러 친척들도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살아서 일년 가도록 한번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여버렸다. 가끔 핸드폰 영상통화로 건네는 안부전화가 전부가 된 지금, 나의 자식에게 참말로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들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안해도 된다. 아이들도 자기들이 하고만 싶다면 뭐든 시켜줄 수 있는 부모가 되여버렸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어린 시절 친구들과 지냈던 추억이 그리운지 모르겠다. 맛있는 것 많이 못 먹고 이쁜 옷 많이 못 입고 보고 싶은 책 많이 못 봤지만. 그 때 친구들과 보낸 일상이 지금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추억의 재부로 남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유년시절을 회억해보라 하면 어떤 기억을 들춰낼 수 있을가? 너무 안타깝다.

또한 그 때는 한가지 일을 전념하여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요즘의 시대는 너무도 많은 정보와 물질세계가 우리의 정신세계에 꽉 들어차서 내가 정녕 얻고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목표가 무엇인지를 잃고 방황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져버렸다. 부모가 된 우리로서 아이들에게 정녕 무엇을 가르쳐주고 어떤 면으로 인도해야 할지 정말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자고, 그리고 많은 물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추려내는 재간을 가르쳐주어 그 속에서 자기가 정녕 원하는 것을 확정하고 그 길로 노력할 수 있게끔 인도해주자고 모든 부모님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더 이상 수많은 학습반을 늘여놓지 말고 아이가 원하는 것 하나만 선택하고 나머지 시간을 할애하여 친구들과 함께 더 많이 뛰여놀게 하자고.

내 어린시절 추억을 더듬어보다가 깨닫게 된 점을 여러분과 공유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누구나 대련시감정자구조선족로인협회에 가게 되면 장장 15년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장모를 시중하고 있는 남영걸(73세)의 미담을 들을 수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 남영걸은 2007년 3월, 부인 김태순이 한국으로 가면서부터 장모 한화자(94세)를 모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쌀과 채소를 사들이고 방을 청소...
  • 2022-01-13
  • 글 김성옥  · 방송 구서림         우리 엄마 기쁘게 한번 웃으면 구름속의 해님도 방긋 웃고요, 우리 엄마 즐겁게 한번 웃으면 아름다운 꽃들도 피여납니다. 고생속에 살아 오신 우리 어머니 웃으시면 온 집 안에 꽃이 핍니다.     바로 이 노래 가사처럼...
  • 2022-01-12
  • 도문시에 살고 있는 2급 지체장애인인 최원(崔源)선생의 가정이 전국부녀련합회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가정’(最美家庭)의 한가족으로 된 것은 3년 전인 2018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경 최원선생이 《휠체어의 노래》(2014년 출판)라는 자서전을 펴낸 뒤로 이어진 삶의 이야기였다. 최원의 자서전 《...
  • 2022-01-06
  • “우리 왕자님,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들었지?” 나는 하학하고 우리 반 교실로 들어오는 아들을 안아주며 습관적으로 물었다. “아니, 오늘은 우리 선생님이 우리 말을 잘 들었어.” 필자 아들애의 홍두깨같은 말에 나는 웬 일인가고 다그쳐 물었다. 아들은 오늘 바줄당기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체육...
  • 2022-01-04
  •  ‘사랑의 단비’갈망하는 후진생 김봉금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후진생의 전변에는 무엇보다 사랑의 손길이 수요된다. 낳아준 부모조차 어쩔 수 없는 후진생을 쓰다듬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은 밀어버릴 수 없는 우리 교원들의 사명이다. 심혈과 정성을 가장 많이 기울이 건만 좀처럼 눈에 띠게 효과를...
  • 2021-12-21
  • 항주의 삼돈진 자금서원(紫金西苑)아파트단지는 절강대학의 인재유치우대주택으로 주민들 모두가  절강대학의 엘리트 교직원들이다.    지난 11월 말,  코로나 방역통제원인으로 절강대학 자금항 캠프스도 페쇄관리를 실시해 자금서원 아파트단지의 많은 주민들이 캠프스에 체류하게 되면서 자의반 타...
  • 2021-12-09
  • - 11월 리뷰 11월을 떠나 보내고 12월을 시작하며 문득, 2021년도 이젠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년초에 세웠던 여러분의 일년 계획은 잘 추진되고 있는지요? 사랑 전파로 따뜻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저 《길림신문》에서 지난 5월달에 정식 론칭한 계렬 공익행사 ‘사랑+ 릴레이’도 독자 여...
  • 2021-12-07
  • 아버지와 소의 이야기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우리 집은 오도구라고 부르는 산골 마을이였는데 훈춘에서 150여리 북으로 들어가 네 면이 산으로 둘러있는 그리 작지 않는 골안이였다. 동쪽 산밑으로 훈춘강이 흘러 남으로 흐르고 북으로는 작은 강물이 흘러 훈춘강과 합수하였다. 필자 서쪽 산밑으로는 도랑물이 흘러 동쪽으...
  • 2021-12-03
  • 50년전 오늘. 25세, 23세의 아릿다운 처녀총각이 부부인연을 맸었습니다. 서툴기만했던 새내기 부부는 어느덧  50 년이란 세월이 흘러 머리에 흰서리가 소복이 내린 할머니(정미자), 할아버지(허문봉)가 되였습니다. 어머니(정미자), 아버지(허문봉)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을 뿐만아니라  인생맨토...
  • 2021-11-29
  • 김홍봉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김꺽다리’라고 부른다. 그는 자기가 하는 라이브 방송 닉네임도‘김꺽다리’라고 지었다. 그의 신장은 저그만치 2.04메터, 조선족으로서는 가능하게 제일 키가 큰 사람일 수도 있다. ‘거인, 구척장신’의 김홍봉의 키가 하도 크기에 거리에 나서거나 쇼...
  • 2021-11-26
  • 편집자의 말       저출산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우리 주위에 있는 다자녀 가정을 찾아 여러 명의 자녀를 육아 하는 과정에서의 희로애락에 대해 알아봤다.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과정이 행복합니다” 황화 부부의 넘치는 자식사랑       “...
  • 2021-11-12
  • [수기] 위대한 10월 김승원 (상해) 한기가 짙어가는 11월에 들어서면서 갓 지나간 10월이 몹시 그리워난다. 그 리유라면 10월은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단풍계절인 것도 있겠지만 특히 10월엔 중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자욱이 력력히 찍혀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10월이란 말 만 들어도 가슴...
  • 2021-11-12
  • 州中重度残疾人托养中心开展“落实消防责任,防范安全风险”消防安全知识讲座及应急疏散演练   2021年11月9日是一年一度的“119”消防日,为进一步加强州中重度残疾人托养中心的工作人员和托养人员消防安全知识覆盖面,防范化解安全隐患,增强自我保护能力,提升对突发火灾等事故的应变、逃生能力...
  • 2021-11-05
  •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6년이란 세월을 석자 교단을 누비며 살아온 나는 사업 수요로 소학교 교원으로부터 학교의 유치원 대반 담임을 맡게 되였다. 금방 소학교를 졸업한 6학년 애들을 갓 노란 꽃잎을 펼친 해바라기라고 비유하면 유치원 아이들은 연푸른 ‘새싹’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바라기 꽃들이 열매를 ...
  • 2021-10-27
  •   金秋十月正当时,正是各种瓜果成熟的季节。为了丰富托养中心托养人员的精神文化生活,让托养人员走出家门,在亲近自然中感受丰收的喜悦、体验采摘时幸福激动的心情,帮助他们通过劳动得到锻炼从而收获自信心,提升社会适应能力,同时托养人员尽己所能回报社会,助力乡村振兴,体现托养人员自尊、自强、自立、顽强拼...
  • 2021-10-26
  •   10월 16일, 신주13호유인우주선 발사가 원만히 성공됐다. 우주비행사 왕아평은 딸에게 하늘의 별을 따다 주마 하고 약속하고 떠났다.         한편 15일 저녁, 적기강, 왕아평, 엽광부 3명 우주비행사들이 출정을 기다릴때 왕아평의 딸은 현장에 와서 엄마를 응원했다.   신화사/길림신문
  • 2021-10-18
  • 우리 학년은 여섯개 학급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 학급이 제일 우수합니다. 공부도 잘하고 규률도 잘 지켜서 늘 모범학급으로 칭찬 받는답니다. 이는 우리 담임이신 채선생님의 덕분이지요. 독서도 무척 즐겨요 채선생님은 커다란 키, 하얀 피부에 항상 웃음을 담고 있는 크고 까만 눈이 돋보여서 정말 아름답습니다. 채...
  • 2021-10-14
  • [수기] 졸업증에 깃든 사연 최준봉 나의 책장 서랍에는 장장 30여년 고이 간직한 길림성당교에서 발급한 전문 대학 졸업증서가 있다. 너무 오래 되여 증서가위가 색바래지고 보풀이 일었지만 이 졸업증에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깃들어있다. 1953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과 더불어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였다는 기...
  • 2021-09-07
  •   힘든 액화가스 배달로 생활의 어려움 이겨낸 김은자   화룡시 붉은태양 광장에서 흥겹게 춤추고 있는 김은자(왼쪽) 화룡시 문화가 문성사회구역에 가보면 흥겨운 춤노래로 만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는 사회구역 민간예술단의 로인들을 볼수 있다. 이라는 무용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름다운 민족복장차림...
  • 2021-08-31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