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내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자리 (박미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6월19일 08시50분    조회:218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내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자리 

박미자(
연길시제2중학교 교원)

2020년 5월 4일 태암촌의 진달래는 유난히도 화사하게 봄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덤무덤의 묘지를 지나 푸른 초원마냥 길게 뻗은 들판을 지나 흐드러지게 피여난 진달래는 파아란 하늘과 어우러져 연분홍빛 꽃바다를 뽐내고 있었다.
 
대자연의 정취에 도취된 나에게 자연은 장난과도 같이 싱그러움에 아픔을 선사했다.
 
“선생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욱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끝내... 끝내 갔구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에선 더는 아픔이 없기를...”
 
“욱이가 못 다한 삶을 너희들이 더 잘 살아주기를...”
 
학급의 위챗그룹은 아픔으로 도배가 되였고 모멘트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로 이어졌다. 20대의 문턱에 서서 애들은 3년을 함께 했던 친구를 잃는 생과 사의 리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 병마의 시달림 속에서 아픔이 많았던 삶에 대한 회의와 함께...
 
아픈 손가락, 고중때 반주임이였던 나에게 욱이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교에 진학하여 꿈을 이루는가 싶더니 청춘의 랑만이 넘치는 대학교 교정에서 반년 만에 병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옮겨진 채, 일년의 투병생활 끝에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의 마음에 아픔 하나와 이름 하나를 남겨둔 채...
 
21세의 짧은 삶, 너무나 아픔이 많았던 애였다. 2015년, 그렇게 름름하고 후더분한 모습으로 그애는 나의 앞에 나타났었다. 약간은 한족말투가 섞인 조선말을 구사하는 한족애였는데 조선글을 배운다고 조선족 학교를 선택했단다. 우리 민족의 언어가 좋단다. 한가지 언어를 더 장악하여 사회에 진출하여 이중언어를 잘 활용하면서 살아보겠다는 야심찬 꿈을 가진 애였다.
 
하늘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첫 신체검사에서 나타난 백혈병, 청천벽력이였다. 아직도 당황한 모습이 력력했던 교의가 전해온 확진이 필요하다는 진단과 순간의 전률이 생생하다. 온 집은 울음바다가 되였고 학급 친구들도 나도 학부모 주임도 서먹서먹함을 뒤로한채 무서움과 안타까움에 떨었다. 너무나 어린 나이라 차오르는 눈물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골수를 뽑아 진단을 다시 받고 곧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다행히 유전인소가 없기에 만성백혈병이라는 진단과 함께 한주일만 항암치료를 받고 항암약을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치료방안이 내려졌다. 감기에 걸리면 병이 급성으로 되여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 감기를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제발 졸업할 때까지만 살아다오!’
 
병상에 누워있는 16세의 소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생의 극한을 달리는 항암치료를 받는 애를 두고 드는 인간의 교활함과 요사함이란...교육생애, 학생을 잃기는 싫었던 나한테 드는 한심한 자사자리였다.
 
아픈 몸을 안고 그애는 3년의 고중생활을 시작했다. 한달에 한번씩 재검사를 받고 약량을 조절해나갔다. 어떤 날은 약량이 맞지 않아 온 몸에 부작용이 나타난다. 얼굴이 새까맣게 피부색이 죽어가고 힘들어 어쩔바를 모른다. 병원에 가서 다시 약량을 조절 받아야 한다. 몸에서도 약 냄새인지 이상한 냄새가 풍긴다. 그렇게 건강함이 넘쳐야 할 청춘의 몸은 발볌발볌 병마의 침식을 받아 야위여가고 있었고 생명은 갉아먹히우고 있었다.
 
그 애의 생애, 어린 나이에 안고 가야 했던 아픔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0대의 삶에 지워진 아픔, 태여난 지 얼마 안되는 한살에 첫 아픔을 겪었다. 부모의 리혼이였다. 정극을 향해 치닫는 부부의 싸움 끝에 엄마를 포기해야만 했다. 식당에서 허드레일을 하는 아빠와 할머니와의 생활, 엄마의 사랑을 만끽하면서 살아도 모자랄 판에 아린 리별과 함께 엄마라는 존재를 송두리채 뽑히우고 가난에, 배신에 선택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고중 1학년 후학기, 또 하나의 생과 사의 리별, 할머니가 아픈 손자를 둔 채 저세상으로 갔다. 손주에 대한 아픈 사랑을 하셨던 가정의 주요 경제래원이였던 할머니의 부재로 순식간에 온 마음을 다하여 아프게 사랑해줄 수 있는 존재를 잃었고 병치료에 쓸 돈마저 겨우 마련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일년,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병원비에 눌리워 사회의 후원을 받아야만 했다. 사회 곳곳에서 내밀어준 따뜻한 손길 덕분에 마지막 일년, 겨우 스러져가는 생명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투병생활의 아프고 짧은 일년의 삶을 선사받았다.
 
며칠씩 의식을 잃었다 찾았다를 반복하고 면역력이 바닥을 쳐서 평범한 병문안조차 애의 몸을 위협하는 상황이여서 자제를 당했다. 약간 정신이 돌아온 사이, 학급애들과 나의 방문에 생명의 끈질긴 힘을 다하여 애써 환한 웃음을 지으려 안깐힘을 쓰던 그 모습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여 상과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타서 찾아온 생생한 청춘들 속에서 아픈 웃음을 명랑하게 웃던 그 모습이 아직도 시리게 아프다.
 
어려움 속에서도 아픔 속에서도 애는 잘 견디면서 살아주었다. 수시로 터질 시한폭탄 같은 시한부 인생을 청춘의 정열로 잘 안고 나갔다. 학업에 대한 포기는 없었고 따뜻함에 대한 포기도 없었다. 동학을 도와주기를 즐기고 눈치기 운동에도 마스크를 꽁꽁 착용하고 나간다고 열성이다. 힘든 고3도 잘 견디여주었다. 병이 도질 때면 병원으로 집으로, 병세가 통제가 되였을 때에는 여전한 견강함과 씩씩함으로 꿈에 대한 도전과 삶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애는 무슨 생각을 했을가? 방관자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 언젠가는 잊혀져갈 순간의 아픔과 달리 한줌 삶에 대한 발악이나 했을가, 아니면 스러져가는 생명의 끈을 잡을 맥도 없이 서서히 서서히 사람냄새가 가득한 이 세상과 멀어져갔을가…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열정적인 사랑도 받아보지도 못한 채 21세의 삶은 그렇게 초연하게 꿈틀거리며 스러져갔다.
 
아픈 손가락, 십여년의 학급담임 생애 아픈 손가락 같은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어릴 때 당한 사고로 다른 애들과는 다른 두 팔의 절반이 뭉텅 잘려나간 모습으로, 얼굴에 입으로부터 귀까지 커다란 상처자국을 지닌 채 옷소매를 팔락이며 나의 앞에 나타나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들었던 련련이, 경제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애를 키울 수 없다는 리유로 남의 집 문앞에 버려진 채 양부모 밑에서 커갔던, 낳은 정 키운 정을 알아가면서 살아갔던 향실이, 갓 태여난 자식을 두고 떠난 채 얼굴도 사진으로 익혀야 했던 엄마라는 그 얼굴, 가득 찬 분노로 친인절날 집에 돌아가서 엄마는 왜 나를 낳았는가 통곡을 했다는 엄마에 대한 아픔을 간직한 향옥이, 고중 1학년,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순식간에 너무나 사랑했던 엄마를, 아빠를 끔찍하게 잃어야만 했던 연연이와 영철이, 방황과 아픔을 억누르면서 살아가는 사이 간간히 억눌렀던 아픔을 오열로 터뜨리며 동학들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스러진 생명 속에서 21년의 삶은 무엇을 남기고 갔을가? 어느날 느닷없이 삶에 가해진 감당하기 힘든 무게-고통과 불행이라는 불청객을 어떻게 짊어지고 나아갔을가? 어린 나이에 겪는 아픔을 두고 10대의 끝자락에 선 청춘들을 대신하여 부모에게 책임이라는 것을 물을 수는 있을가?
 
이겨나가는 삶이였는지 살아지는 삶 속에 영위해나가는 삶이였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른이 되여버린 오늘, 우리는 쌓아지는 년륜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나가는 법을 터득해 나아가고 있다. 평범한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추구와 모색을 거듭하고 있다.
 
날씨가 아무리 화창해도 언제나 하늘에는 구름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아픔 앞에서 10대의 청춘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웠던 삶의 무게들, 평범한 삶 속에서 애들은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헤쳐나갔다. 불행에 대처하는 법도 모른 채, 아픔을 이겨나가는 해탈의 법도 모른 채, 닥쳐진 삶에서 허둥허둥 걸어나갔던 것 같다. 청춘들이기에 가능했던, 아픔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천진함과 패기 속에서 정해지지 않은 꿈을 향한 동경을 지니고 힘차게 울다가 웃으면서 걸어나갔던 것 같다. 아픔이 할퀴고 간 자리를 메워가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더 단단해진 날개로 억센 날개짓을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아픈 자식의 자리에 부모의 책임은 어느 만큼이여야만 할가? 그 책임을 도덕적인 자대로만은 재일 수 없다. 내 삶에 찾아온 자식에 대한 사랑은 아무런 리유도 없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책임이고 의무이며 헌신이고 인간의 본능이여야만 한다. 그늘이 필요한 삶의 자리에 부모라는 이름으로 된 그늘이 절절하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누군가 힘들 땐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고 했다. 죽을 만큼 힘든 삶의 구석에도 아름다움을 만발하는 생의 순간은 찾아온다. 생명이 스러지지 않는 한은…
 
나의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삶의 자리, 아픔만은 아니였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기획 [한국친구 길림체험]— 쌀의 이야기 (2) 구태편(하) 전통 쇠가마에 성공한 쌀밥, 실패한 누룽지 안내원이 전람관 2층에서 리모콘을 누르자 건물의 북쪽 창문에 걷혀져있던 커튼이 한번에 량쪽으로 쫙 젖혀지더니 초대형 유리 창문 밖으로 일망무제한 황금물결이 한눈에 안겨왔다. 일행은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 2021-08-27
  •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 등장한 연변가정연구소 문화봉사자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의 막바지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는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 제239기 촬영이 한창이였다. 그 현장에 연변가정연구소 문화봉사자들이 주역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연변조선족자치주자선총회와 함...
  • 2021-08-11
  • --퇴직 후에도 꾸준히 사회봉사를 이어가고 있는‘뢰봉식’부부 박철원,김봉선의 이야기 박철원, 김봉선부부는 퇴직 후 ‘연길시 뢰봉학습 10대 선진'으로 표창받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락으로 삼고 퇴직 후에도 꾸준히 사회봉사를 이어가면서 여생을 불태...
  • 2021-08-06
  • 한 평범한 공산당원 최청숙선생의 고백 봉사와 헌신으로 공산당원의 본색을 지켜온 나날들이 행복하기만 하다는 최청숙선생 지난 2020년에 들어서면서 코로나 역정이 제일 엄중할 때 어김없이 월급을 받아 안게 된 퇴직교원 최청숙선생은 가슴이 뭉클해냈다. “아니, 이토록 어려운 처지에서도 당과 정부에...
  • 2021-08-04
  • 쓰레기 더미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재활용품을 수집하면서 생활하던 80대 로인이 쾌적한 생활환경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됐다.   최근 왕청현 천교령 삼림공안국 청송파출소에서는 ‘애민사랑 실천 방문 활동’을 전개한 가운데 관할구역 내 아파트 단지 주민들로부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악취가 나 주민들...
  • 2021-07-13
  • 4월 15일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 날만 되면 그 때 당했던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나는 인생의 일대 전변을 가져왔다. 운명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나는 훈춘 태생이다. 7살 되던 해 우리 집은 도문 월청으로 이사갔다. 고중을...
  • 2021-07-01
  • 《길림신문》은 ‘사랑+릴레이’라는 타이틀로 매달 부동한 주제로 계렬 공익행사 진행, 행사에 참여한 분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하며 사랑 릴레이를 이어가려 합니다. 지난달 ‘사랑+릴레이’-‘고마움 전하기’ 주제로 진행된 행사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가운데 기타 따뜻한 사연...
  • 2021-06-22
  • 머리글: 중국조선족은 중국공산당이 백여년전부터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준 호칭이며 혜택이다.중국조선족은 신민주주의 혁명시기로 부터 항일전쟁,해방전쟁시기에 이르기까지,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시기로부터 개혁개방,사회주의현대화 건설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전국의 여러 민족 인민...
  • 2021-06-10
  • ‘6.1' 국제아동절을 맞으며 길림 백산방대그룹에서는 백산시조선족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을 위문하고 명절의 축복과 함께 장학금과 도서 등을 전달했다. 백산방대그룹 녕봉련(왼쪽)리사장이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5월 26일, 백산방대그릅 당위서기이며 리사장 녕봉련과 이 그룹의 10여명 당원, 청년지원자들은 민족단결...
  • 2021-05-31
  • 수박할머니 (西瓜奶奶),연변의 1세대 ‘왕훙’이라 칭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이시다.   모멘트와 미니블로그(微博)가 성행하던 시절, 지금의 ‘왕훙’들만큼 얼굴이 많이 알려진 수박할머니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결코 SNS덕분이 아니였다. 바로 연변축구였기에 가능했다.   ...
  • 2021-05-29
  • 5월 21일, 심양시 황고구 명북사회구역 ‘당창건 100주년 경축’ 계렬활동 일환으로 명렴로조선족로인협회는 당사학습과 더불어 ‘자신의 사상인식 이야기하기’ 활동을 진행했다. 89세 리의숙 로인은 자신의 입당이야기 등을 통해 초심을 수호하는 중국공산당원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리의숙 ...
  • 2021-05-25
  • 30여년의 교직생활을 하면서 나는 수많은 제자들을 졸업시켰다. 제자들과 떨어진 후 련락이 있든 없든 때로는 기억의 편린들이 떠올라 그들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나의 이런 부질없는 로파심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문뜩문뜩 제자들이 나의 위챗을 노크한다.   며칠전 늦은 저녁, 딩동- 메세지가 도착했다. 상해에 ...
  • 2021-04-20
  • [수기72]교장선생님이 들려준 추억의 홍색교양이야기 기억이란 어제 있었던 일도 가물가물 잊혀질 때도 있지만 몇십년이 흘러도 색바래지 않게 생생히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한해다. 요즘 우리 당 력사를 학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떠오르는 한가지 추억, 그것은 40여...
  • 2021-04-19
  • 항미원조 전쟁터에서 로획한 미군의 숟가락을 오늘까지 70년 넘게 사용해오고 있는 로전사(90세)가 있다. 포성이 천지를 진감하던 그 가렬처절한 전쟁년대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전우들이 그리워 오늘도 하루 세끼 식사를 이 숟가락으로 해야만 마음이 편하다는 로전사, 그분이 바로 장춘시 정월고신기술개발구에서 만년을...
  • 2021-04-14
  • [수기] 그 시절 그 동네 그리고 정 많은 사람들 김순희 추운 겨울이 지나고 완연한 봄날을 맞이한 이 때 나는 가끔 창가에 기대여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손에 손군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에 손군들의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장면을 내려다본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근 60년전의 천진란만했던 그...
  • 2021-04-07
  •     우리에게 설은 최대 명절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고향을 찾아가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리고 함께 모여 도란도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아쉬움이 많은 명절입니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영상으로 안부를 묻고 설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코로나시대를 겪으면서 우리에...
  • 2021-02-19
  • [연변애심어머니협회]“청소년 꿈터” 설맞이행사   음력설을 앞둔 2월 8일, 연변애심어머니협회(회장 방선화) 사무실은 명절분위기로 북쩍거렸다. 아침부터 각자 집부엌에서 애심표양념에 어머니손맛을 더해 달달 지지고 볶아 만든 맛갈스런 반찬들을 량손 가득 걸머쥔 협회 회장들과 부장들이 륙속 사무실...
  • 2021-02-09
  • [수기 ]‘주소 없는 편지’ 허동철 지난 한가위 추석을 앞두고 조카 허매화(연변전업국 고급 회계사)한테서 삼촌께 드릴 말씀이 있다며 연집강뚝 부산돌솥밥집에서 만나뵙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는 약정한 시간에 똑 같이 도착했습니다. 점심 밥상을 마주하고 조카는 썩 오래전부터 별렀다면서 만나고저 한 ...
  • 2021-02-07
  • 글/ 일본 김미란   김미란: 遼東大学 생물학부 졸업, 도문시 제1고급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현재 일본 金澤企画国際株式会社에 재직중   애들 학교 때문에 도쿄로 이사해 오던 때가 이른 봄이었는데 벌써 늦가을에 들어서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세월이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하지만...
  • 2021-01-29
  • 12월 24일 한국 KBS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프로그램에서 우수상 수상-   1952년 12월 중국 화룡시 출생, 현재 천안시 두정동 거주.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나는  60대 후반에 들어선 할미꽃입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흥취가 있어서 소학교에 입학...
  • 2021-01-29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