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백성이야기127] 연변의 사과고향 대소과수농장의 토박이가족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0월13일 09시22분    조회:9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부모님 산을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빈 박금석 형제분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고향을 찾아 조상들의 무덤 앞에 술을 붓고 제를 지내며 고인들의 공적을 기리는 박금석(76세), 박금룡(65세) 형제는 대소과수농장마을을 굽어보며 감회가 깊었다. 최근 들어 빈곤부축사업이 초요건설사업의 주요과제로 떠오르면서 80년대이전까지 연변의 유일한 사과농장이였던 대소과수농장건설을 두고 매체에서 론의가 오가는 가운데 일부 잘못된 력사기록 때문에 두형제는 “잘못 된 력사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나섰던 것이다.

원조 사과나무 임자는 외할아버지 리도원

“대소과수농장의 원조사과나무를 두고 일부 력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허씨 성을 가진 지주가 서울에서 가져왔다고 말하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박금석씨는 대소마을에 원조 사과나무를 심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외할아버지 리도원(李桃源)이라고 확실하게 밝혔다.

12살 때부터 물동이로 두만강물을 길어 원조사과나무를 키웠던 어머니 리순금.

“1936년에 외할아버지가 고향인 조선 길주에 갔다가 일본에서 들여온 사과묘목을 가져다 1.5헥타르 되는 밭에 심었습니다. 사과묘목을 직접 심은 것이 아니라 북방의 겨울날씨에 단련이 된 야산의 알구배(山定子)나무그루에 사과묘목을 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과종류로는 국광(国光苹果), 황원수(黄元帅), 홍원수(红元帅) 외에 또 한가지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이름은 모르고 있고 사과나무 외에도 조선 회령에서 들여온 복숭아나무, 살구나무도 있었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네가 두만강을 건너온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이주초기 지금의 대소마을 북쪽 ‘금박골’이라는 깊은 골짜기에 땅막을 짓고 땅을 뚜져 감자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감자농사를 지어서는 겨울에 감분국수를 눌렀고 강판이 얼면 국수를 등에 지고 20리 산길을 넘어 탄광마을에 가져다 팔아서는 돈을 만들군 했다고 한다.

그렇게 10여년을 아글타글 모은 돈으로 대소마을 평지의 비옥한 땅을 사들였는데 사과묘목을 들여오던 그 해에 외할아버지께서는 그 좋은 평지 밭과 산밑의 ‘도투구렁덩'이라는 형편없는 돌밭을 맞바꾸었다고 한다. 그때는 외할아버지의 그 ‘타산'을 누구도 알 수 없는지라 사람마다 입을 딱 벌렸지만 먼 후날 알고 보니 그 산밑 돌밭은 대소마을에서도 기온이 가장 높은 곳이였다고 한다.

외가집 원조사과이야기를 들려주는 박금석(왼쪽), 박금룡(오른쪽) 형제분들.

그렇게 돌밭을 차지한 외할아버지는 밤낮이 따로 없이 아들을 데리고 밭의 돌을 주어내며 제전을 만들었고 하루에 팔토시 하나씩 닳아떨어져 나가면서 밭을 가꾸고 또 가꾸었던 것이다. 그맘 때 1925년생으로 대소마을에서 태여난 열두살 나는 어머니 리순금마저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은 물동이로 두만강물을 길어서는 사과묘목에 물을 주며 정성껏 사과나무를 키웠다고 했다. 그렇게 봄가을로 물을 길어올린 세월이 몇년을 흘렀는지 모른다.

박금석씨는 외가집에서 그토록 애써 가꾸어낸 ‘도투구렁덩'이란 과수원이 지금은‘로과수원'이라고 여전히 불려지고 있지만 “원조사과나무를 한그루도 살려 내지 못한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안타까와 한다. 한평생 과수를 해온 ‘전문가'로서 사과나무의 수명이 일반적으로 50년좌우인데 그때 사과나무를 지금까지 살려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외할아버지네가 야산의 알구배나무그루에 사과묘목을 접했던 방법만큼은 사과나무의 과동과 수명을 연장하는데 가장 리상적인 방법이였다고 한다.

대소과수농장의 첫 선견대 대장

“60년대초에 주덕해 주장께서 우리 마을에 오실 때에는 삼합쪽으로 짚차를 타고 오셨어요. 그쪽 길은 1958년 대약진시기에 이미 개통이 되였는데 개통식이 있던 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처음으로 해방패자동자가 마을에 들어오는 걸 경축했지요. 그런데 그때 서쪽으로 대소마을과 백금사이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명동, 백금 두지역 농민들이 3년간 닦은 백금도로.

“그 곳은 깊은 강물과 높은 산이 맞닿인 곳이라 사람이 어떻게 닿을 수 없는 지형이였는데 그 산우의 펑퍼짐한 곳에 마침 로과수원이 위치하여 있어 주덕해 주장께서는 마을의 리하린 서기의 안내를 받으며 얼어붙은 강판으로부터 가파른 산을 톺아 로과수원을 둘러보기도 하였지요.”.

당시 주덕해주장께서는 로과수원을 지키던 농민집에서 김치독에 보관해두었던 사과를 직접 맛보고 대소마을을 국영과수농장으로 건설하여 연변인민들이 사과맛을 볼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기까지 외가집 로과수원의 사과는 너무나 맛과 향이 좋았다고 했다.

주덕해 주장께서는 늘 자치주 농업처 권필주 처장과 함께 대소마을로 다녀가시군 하였다고 한다. 그분들이 다녀가시면서 1963년부터 산바위에 대남포질을 하여 대소와 백금사이의 길을 개통하였고 이듬해에는 대소과수농장을 세웠으며 1965년도에는 또 마을에 전기를 끌어들였다고 한다.

1964년 4월 19일, 대소국영과수농장이 세워지면서 주덕해 주장께서는 한해에 열번도 넘게 대소마을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또 료녕성의 과수전문가 관치승을 기술원으로 배치해주셨고 권필주 처장은 나중에 아예 대소과수농장의 농장장으로 되여 친히 농장건설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던 것이다.

1965년 대소과수농장 단지부간부로 활약했던 박금석(뒤줄 오른쪽 첫사람).

대소과수농장을 설립한 첫해에 마을에서는 7명의 선견대를 선출하였는데 그때 박금석씨는 선견대 대장을 맡았다. 그는 당시 관치승기술원과 함께 과수재배기술을 연찬하던 정경을 떠올렸다. “관치승기술원은 북방의 기온에 맞게 사과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알구배나무뿌리에 해탕나무를 먼저 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탕나무가 가지를 뻗으면 또 그 가지에 사과나무를 접했지요. 그렇게 3층으로 접한 고접묘(高接苗)사과나무는 동해를 적게 받고 열매를 빨리 맺었습니다.”

이렇게 사과재배기술관을 넘고 대련, 심양, 집안 등지에서 여러 가지 사과묘목을 들여다가 3년사이에 700헥타르되는 과수원을 건설하였다. 당시 대소과수농장의 간부와 군중들은 한결같이 뭉쳤고 그 생산열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애목을 심어서 3년, 4년간은 봄이면 봄마다 가을이면 가을마다 농장인들은 줄을 지어 물동이를 이고 지게를 지고 두만강물을 퍼날라 매 사과나무마다에 물을 주며 가물을 방지하였다. 그 노력이 10년이 되면서 대소과수농장은 대흥성기를 맞아 로씨야로, 동북 각지로 사과판로가 열리면서 대소과수농장은 말그대로 하나의‘무릉도원'으로,‘북방의 강남'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지난해 겨울 1964년 대소과수농장이 설립된 첫해에 알구배나무뿌리에 사과묘목을 접해 키운 사과나무 두그루를 발견한 박금석과 그의 딸.

“그때는 대소골에 들어서기만 하면 마을과 2리쯤 떨어진 곳에서도 사과향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고향마을은 정말 풍성하고 흥성한 곳이였지요. 소학교로부터 중학교, 고중반까지 300여명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연변 각지에서 청년들이 농업로동자로 모집되여 왔고 현문공단 못지 않은 선전대도 꾸렸으며 단독 영화방영대도 갖추고 풍부한 문화생활을 누렸습니다.” 대소과수농장 문화선전분야의 주력일군으로 활약하였던 박금룡씨는 그제날의 대소마을의 풍경을, 그리고 주덕해 주장과 권필주 농장장을 비롯한 대소농장건설에 청춘을 바친 많은 간부와 군중들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고향을 찾은 걸음에 룡정시화룡대소사과전업농장유한회사의 사과고추장 생산흐름선을 참관하는 가족들

1980년까지 이 농장마을의 주력군으로 대소과수농장에서 맹활약을 하던 박금석씨는 연변농학원 과수학부 기술원으로 초빙되여 갔다. 박금룡씨 역시 연길시정부로 전근하게 되면서 그들은 고향마을을 떠나게 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고 또 자신들이 태를 묻고 자란 고향마을을 그들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대소농장 사람들이 외가집 사과나무덕분에 시골마을 농민들이 국영농장 로동자로 운명을 바꿨고 평생 퇴직금까지 받고 산다며 기념선물을 마련해주던 일도 잊지 않고 있었다. 1996년에 어머니 리순금씨가 세상뜨자 그들 형제들은 이듬해에 부모님의 무덤앞에‘사과고향의 어머니'라는 묘비를 세우고 해마다 청명과 추석이면 때를 어길세라 어머니산, 고향산에 오르고 있었다.

/길림신문 김청수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누구나 대련시감정자구조선족로인협회에 가게 되면 장장 15년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장모를 시중하고 있는 남영걸(73세)의 미담을 들을 수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 남영걸은 2007년 3월, 부인 김태순이 한국으로 가면서부터 장모 한화자(94세)를 모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쌀과 채소를 사들이고 방을 청소...
  • 2022-01-13
  • 글 김성옥  · 방송 구서림         우리 엄마 기쁘게 한번 웃으면 구름속의 해님도 방긋 웃고요, 우리 엄마 즐겁게 한번 웃으면 아름다운 꽃들도 피여납니다. 고생속에 살아 오신 우리 어머니 웃으시면 온 집 안에 꽃이 핍니다.     바로 이 노래 가사처럼...
  • 2022-01-12
  • 도문시에 살고 있는 2급 지체장애인인 최원(崔源)선생의 가정이 전국부녀련합회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가정’(最美家庭)의 한가족으로 된 것은 3년 전인 2018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경 최원선생이 《휠체어의 노래》(2014년 출판)라는 자서전을 펴낸 뒤로 이어진 삶의 이야기였다. 최원의 자서전 《...
  • 2022-01-06
  • “우리 왕자님,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들었지?” 나는 하학하고 우리 반 교실로 들어오는 아들을 안아주며 습관적으로 물었다. “아니, 오늘은 우리 선생님이 우리 말을 잘 들었어.” 필자 아들애의 홍두깨같은 말에 나는 웬 일인가고 다그쳐 물었다. 아들은 오늘 바줄당기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체육...
  • 2022-01-04
  •  ‘사랑의 단비’갈망하는 후진생 김봉금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후진생의 전변에는 무엇보다 사랑의 손길이 수요된다. 낳아준 부모조차 어쩔 수 없는 후진생을 쓰다듬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은 밀어버릴 수 없는 우리 교원들의 사명이다. 심혈과 정성을 가장 많이 기울이 건만 좀처럼 눈에 띠게 효과를...
  • 2021-12-21
  • 항주의 삼돈진 자금서원(紫金西苑)아파트단지는 절강대학의 인재유치우대주택으로 주민들 모두가  절강대학의 엘리트 교직원들이다.    지난 11월 말,  코로나 방역통제원인으로 절강대학 자금항 캠프스도 페쇄관리를 실시해 자금서원 아파트단지의 많은 주민들이 캠프스에 체류하게 되면서 자의반 타...
  • 2021-12-09
  • - 11월 리뷰 11월을 떠나 보내고 12월을 시작하며 문득, 2021년도 이젠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년초에 세웠던 여러분의 일년 계획은 잘 추진되고 있는지요? 사랑 전파로 따뜻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저 《길림신문》에서 지난 5월달에 정식 론칭한 계렬 공익행사 ‘사랑+ 릴레이’도 독자 여...
  • 2021-12-07
  • 아버지와 소의 이야기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우리 집은 오도구라고 부르는 산골 마을이였는데 훈춘에서 150여리 북으로 들어가 네 면이 산으로 둘러있는 그리 작지 않는 골안이였다. 동쪽 산밑으로 훈춘강이 흘러 남으로 흐르고 북으로는 작은 강물이 흘러 훈춘강과 합수하였다. 필자 서쪽 산밑으로는 도랑물이 흘러 동쪽으...
  • 2021-12-03
  • 50년전 오늘. 25세, 23세의 아릿다운 처녀총각이 부부인연을 맸었습니다. 서툴기만했던 새내기 부부는 어느덧  50 년이란 세월이 흘러 머리에 흰서리가 소복이 내린 할머니(정미자), 할아버지(허문봉)가 되였습니다. 어머니(정미자), 아버지(허문봉)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을 뿐만아니라  인생맨토...
  • 2021-11-29
  • 김홍봉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김꺽다리’라고 부른다. 그는 자기가 하는 라이브 방송 닉네임도‘김꺽다리’라고 지었다. 그의 신장은 저그만치 2.04메터, 조선족으로서는 가능하게 제일 키가 큰 사람일 수도 있다. ‘거인, 구척장신’의 김홍봉의 키가 하도 크기에 거리에 나서거나 쇼...
  • 2021-11-26
  • 편집자의 말       저출산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우리 주위에 있는 다자녀 가정을 찾아 여러 명의 자녀를 육아 하는 과정에서의 희로애락에 대해 알아봤다.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과정이 행복합니다” 황화 부부의 넘치는 자식사랑       “...
  • 2021-11-12
  • [수기] 위대한 10월 김승원 (상해) 한기가 짙어가는 11월에 들어서면서 갓 지나간 10월이 몹시 그리워난다. 그 리유라면 10월은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단풍계절인 것도 있겠지만 특히 10월엔 중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자욱이 력력히 찍혀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10월이란 말 만 들어도 가슴...
  • 2021-11-12
  • 州中重度残疾人托养中心开展“落实消防责任,防范安全风险”消防安全知识讲座及应急疏散演练   2021年11月9日是一年一度的“119”消防日,为进一步加强州中重度残疾人托养中心的工作人员和托养人员消防安全知识覆盖面,防范化解安全隐患,增强自我保护能力,提升对突发火灾等事故的应变、逃生能力...
  • 2021-11-05
  •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6년이란 세월을 석자 교단을 누비며 살아온 나는 사업 수요로 소학교 교원으로부터 학교의 유치원 대반 담임을 맡게 되였다. 금방 소학교를 졸업한 6학년 애들을 갓 노란 꽃잎을 펼친 해바라기라고 비유하면 유치원 아이들은 연푸른 ‘새싹’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바라기 꽃들이 열매를 ...
  • 2021-10-27
  •   金秋十月正当时,正是各种瓜果成熟的季节。为了丰富托养中心托养人员的精神文化生活,让托养人员走出家门,在亲近自然中感受丰收的喜悦、体验采摘时幸福激动的心情,帮助他们通过劳动得到锻炼从而收获自信心,提升社会适应能力,同时托养人员尽己所能回报社会,助力乡村振兴,体现托养人员自尊、自强、自立、顽强拼...
  • 2021-10-26
  •   10월 16일, 신주13호유인우주선 발사가 원만히 성공됐다. 우주비행사 왕아평은 딸에게 하늘의 별을 따다 주마 하고 약속하고 떠났다.         한편 15일 저녁, 적기강, 왕아평, 엽광부 3명 우주비행사들이 출정을 기다릴때 왕아평의 딸은 현장에 와서 엄마를 응원했다.   신화사/길림신문
  • 2021-10-18
  • 우리 학년은 여섯개 학급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 학급이 제일 우수합니다. 공부도 잘하고 규률도 잘 지켜서 늘 모범학급으로 칭찬 받는답니다. 이는 우리 담임이신 채선생님의 덕분이지요. 독서도 무척 즐겨요 채선생님은 커다란 키, 하얀 피부에 항상 웃음을 담고 있는 크고 까만 눈이 돋보여서 정말 아름답습니다. 채...
  • 2021-10-14
  • [수기] 졸업증에 깃든 사연 최준봉 나의 책장 서랍에는 장장 30여년 고이 간직한 길림성당교에서 발급한 전문 대학 졸업증서가 있다. 너무 오래 되여 증서가위가 색바래지고 보풀이 일었지만 이 졸업증에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깃들어있다. 1953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과 더불어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였다는 기...
  • 2021-09-07
  •   힘든 액화가스 배달로 생활의 어려움 이겨낸 김은자   화룡시 붉은태양 광장에서 흥겹게 춤추고 있는 김은자(왼쪽) 화룡시 문화가 문성사회구역에 가보면 흥겨운 춤노래로 만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는 사회구역 민간예술단의 로인들을 볼수 있다. 이라는 무용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름다운 민족복장차림...
  • 2021-08-31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