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수기 109] 신문사 통신원으로 가슴벅차던 그 시절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5월25일 21시17분    조회:122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80고개에 들어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화려하고 가슴이 부풀며 랑만적으로 보낸 시절이 아마도 지난 세기 60년대 농촌에서 농업 생산로동에 참가하면서 《연변일보》 통신원으로 있을 때인 것 같다.

나는 소학교 3학년 때부터 맏형님이 사다주는 《조선아동》문학잡지를 열독하면서 글쓰기를 좋아했다.

 
《연변일보》농촌부 편집이였던 남민옥 선생과 함께 기념 사진, 필자(오른쪽) 김삼철

1956년 여름의 어느 날, 초중을 졸업하고 농촌에 되돌아간 내가 조밭 김을 매는데 난데없이 중평툰에 있는 김희남선생이 손에는 바이올린 통을 쥐고 어깨에는 휴대용 접이식 간이 흑판을 메고 밭머리에 서있었다.

내가 막 달려가서 물어보니 김선생은 “휴식 시간을 리용하여 혁명가곡을 배워주려 한다”고 했다. 당시 김희남선생은 촌 공청단 조직을 찾아 청년들에게 노래를 배워주어 환영 받았다.

그날 김희남선생은 밭머리에서 간이 흑판을 세워놓고 〈농민의 노래〉를 배워주었다. 당시 우리 마을은 초급사를 갓 세우고 집체로 일할 때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했다. 김희남선생은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를 배워주었고 사원들은 모두 좋아하며 열정적으로 배웠다. 천청송 작사 류광준 작곡으로 된 이 노래를 30분 휴식 시간에 기본 상 다 배웠다. 흑판에 가사를 써놓았기 에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이 사실을 가지고 〈밭머리에서 혁명가곡을 배워주는 김희남선생님〉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이튿날 신문 배달원한테 보냈다. 처음에는 몰라서 우표를 사서 붙였는데 기실 봉투 귀퉁이를 베여내고 원고라는 글자를 쓰면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원고가 신문사에 배달되였다. 처음 쓴 원고가 발표될지 말지 근심하던중 며칠 안 지나 내가 쓴 첫 기사가 《연변일보》에 실렸다.

김희남선생은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곧바로 나를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했고 더욱 열정스레 밭머리에서 노래를 배워주었다.

1958년봄 나는 촌당지부의 추천을 받고 연변 수리 훈련반에 가서 1년간 학습했다. 그 후에도 상급 학교에 가 공부하는 바람에 몇년간은 농촌을 떠나있었다. 1962년 내가 다시 농촌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 집은 이미 룡정 시교의 광신대대로 이사했다.

광신대대에 있으면서 나는 다시 원고 쓰기에 나섰고 저녁이면 마을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수집했다. 우리 집은 룡정—연길 국도 바로 곁에 있었기에 교통이 매우 편리했다. 한시간에 한번씩 연길—룡정 뻐스가 통했는데 당시 연변에서 사통팔달 교통이 제일 잘 통한 농촌 마을이였을 것이다.

나는 낮에는 사원들과 같이 농업 생산로동에 참가하고 하루 일이 끝나면 호미자루를 쥐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산대 대장들과 공청단 소조장들을 찾아 보도 재료를 수집하고 취재 대상을 물색했는데 한밤중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밤을 새며 원고를 써서는 이튿날 바로 신문 배달원한테 보냈다.

어떤 때는 원고를 다 쓰고 나면 동녁 하늘이 밝아올 때도 있었다. 그래도 피곤한 줄을 몰랐고 원고를 쓰고 난 후의 성취감에 마음이 뿌듯했다. 1963년부터 나는 광신대대 공청단지부 서기로 있었는데 각 생산대 공청단 소조장들을 모두 신문사 통신원으로 양성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소식통이기 때문이다. 시기성이 강하고 시간성이 있는 원고는 내가 직접 쓴 후 뻐스를 타고 《연변일보》 농촌부를 찾아갔다.

처음 원고를 쓸 때에는 원고료가 있는 줄도 모르고 글을 썼다. 파란색 글자가 박힌 돈봉투가 신문 배달원을 통해 전달되였는데 원고료가 적어서 2원이였다. 당시 2원이란 큰 돈이였다. 식당에서 정식을 먹는데 15전 가량이였고 랭면 한그릇에 20전, 리발 20전, 영화 관람권 20전, 술 한근에 60, 70전 했다. 20대인 나에게는 이 2원이 큰 재력이였다.

나는 원고료를 받아서는 몽땅 명작과 같은 서적을 사는데 썼다. 5년간 받은 원고료로 1,000여권의 서적을 샀으니 말이다. 웃방 벽 한면을 몽땅 채워넣었다.

부지런히 원고를 써서 보냈더니 나를 찾아오는 《연변일보》 기자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중에는 당시 룡정시 주재기자로 있은 김승길선생이 있었고 홍춘식, 남민옥 선생도 있었다.

그때 신문사에서는 농촌 통신원 대오 건설에 각별한 중시를 돌렸다. 글쓰기 특강도 조직하였는데 통신원들은 특강을 듣고 나서 “눈앞이 밝아온다”며 좋아했고 글쓰기 수준이 높아졌다. 1962년부터 《연변일보》 정식 통신원이 된 나는 신문사에서 보내는 《통신원》이란 내부 간물을 통해 업무 수준이 크게 향상되였다.

1964년 연변일보사와 연변방송국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통신원대표대회가 있었다. 그 대회에서 통신원들을 표창했는데 그중에 나도 있었다.

당시 《연변일보》 의 인기 특별란은 ‘우리 마을 젊은이들’이였다. 이 특별란은 농촌의 우수한 청년들을 표창하는 란이였는데 우리 광신대대에서만 〈소 사육관리를 잘하는 청년〉, 〈소한테 찰떡을 쳐먹인 젊은이들〉, 〈부모를 잘 모시는 청년》, 〈착실한 며느리〉, 〈생산대의 살림군〉, 〈뢰봉식 청년〉 등 내용의 기사가 수십개나 실려 많은 청년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켰다.

문화대혁명전까지 내가 쓴 기사 100여편이 《연변일보》에 발표되였는데 농민들에게 당중앙의 농촌 정책을 알리고 농민들이 상급의 지시를 관철, 집행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청춘을 뽐내며 열정을 쏟던 그때 그 시절이 아마 나의 인생에서 가장 뜻 깊고 가장 가슴이 벅차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 하겠다.

그리고 《연변일보》 통신원으로 있으면서 닦은 기량을 토대로 그 후 여러 쟝르의 문학작품이 신문잡지에 발표되였는데 긍지를 느꼈다. 지금도 나는 글 쓰기로 석양의 길을 장식하고 있다.

/ 김삼철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흩날리는 오동잎은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고 못가의 련꽃들이 활짝 피면서 여름과 가을이 교차되는 이 시각 길림시 송화강반에 우뚝 서있는 길림육문중학교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다보니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쉼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이 무정한 세월의 흐름도 지워버릴 ...
  • 2020-08-26
  • (원제목) 애심이 깃든 티셔츠 입고 새학기 힘찬 출발을 해요 8월 24일,길림성 화룡시신동소학교 어린이들은 사회 각계의 사랑과 관심을 담은 따스한 개학식으로 새학기의 힘찬 스타트를 멋지게 출발했다. 오전 8시,알롱달롱 고운 민족복장을 한 신입생 꼬마들이 가족의 손을 잡고 호기심 어린 눈을 누비며, 순수한 동...
  • 2020-08-25
  • [수기] 자식들이 펼친 낡은 물건 ‘소탕전’ 김삼철 ‘소탕전’이라하면 모두들 전쟁 마당에서 적을 짓부시는 장면을 련상할 지 모르겠으나 지난해 추석 기간 우리 집에서는 시집 간 딸들과 사위들이 오랜만에 놀러와서 난데 없는 낡은 물건을 숙청하는 ‘소탕전’을 벌려 온 집안이 며칠간...
  • 2020-08-14
  • 할머니와 ‘선생님’ 박순자 어느 날인가 뜬금없이 누군가로부터 할머니라 불리우는 바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적이 있다. 아마 47살 나던 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 호칭이 무척이나 낯설고 귀에 거슬리긴 했어도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였다. 시력이 1.5로 유난히 밝...
  • 2020-08-09
  • 족보의 종착역은 어디? 첨서    나는 어릴 적 큰아버지가 왜 족보란 물건을 보배인양 숨겨놓고 우리한테 보이지 않았는지 지금껏 알지 못하고 있다. 하긴 큰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도 어느덧 25년이 지났고 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도 23년 철을 잡으니 어데 가서 물을 데도 없다. 간혹 있다 해도 아리숭한 추측이거...
  • 2020-08-07
  • 한국 간병업계에 떠오른 새별 한국 “간병정보”회사 황설자 회장에 대한 이야기 한국 “간병정보”회사 황설자 회장 캄캄한 밤 하늘에 유난히 밝게 비쳐오는 작은 별 하나가 있다. 거기에 또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 2020-08-04
  • 이불 30채, 손소독크림 60개, 현금 3천원을 30명 학생들과 장애인녀성들에게 전달   연변애심어머니협회 상무리사이며 연길시해금포민족이불유한회사 리사장 최경심의 사랑나눔 미담이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삼복더위 열기를 타고 널리 전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기업이 직격탄을 맞아 직원들을 먹여살리기도...
  • 2020-07-31
  • 민낯   주소: https://mp.weixin.qq.com/s/iEXOQSZMrSSFfY4JNRKq0Q   아침에 일찍 나오면 드물게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른 시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표정이 살아서 걸어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원래는 이게 정상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얼굴표정을 볼 수 있는 길거리가 이...
  • 2020-07-24
  • '박방본초 전매점”의 려순희 사장의 헌신 이야기   15살 소녀가 발 하나를 잃게 된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동상을 입은 발이 썩어들어가 잘라야 한다는 던. 발이 100일간의 치료끝에 완쾌됐으니 전설같지 아니한가.   사실은 이러했다.   올해 2월, 왕청에 살고 있는 한...
  • 2020-07-16
  • 김매화(왼쪽)씨가 에도가와구 시바다 야스히로 총무부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지난 7월 8일,재일조선족 김매화씨가 도꾜 에도가와구(江戸川区)에 마스크 2만장을 기부하였다.   류학생시절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일본사회복지의 덕택을 받았던 김매화씨는 현재 도꾜 에도가와구에서 주식회사 ...
  • 2020-07-14
  • 엄마 집은  5층으로 된 아빠트인데 내가 엄마 집에 간다고 하면 엄마는 아래층에서 날 기다리실 때가 많다. 엄마가 이렇게 내려오신 것은 내 다리가 걱정되였기 때문이다. 번마다 함께 올라갈 때면 엄마가 내 앞에 등을 내밀면서 말씀하신다. “너 그 다리로 오르기 힘들 텐데 어서 내 등에 업혀.” 그럴 때...
  • 2020-06-29
  •  내가 만난 남편 (박영옥편 7) 2012년도 가을의 어느날, 나는 이외의 사고로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가서 사진 찍었더니 골절되였다면서 석달이 지나야 회복된단다. 정말 약한 다리에 침질한 격으로 부실한 다리가 골절되였던 것이다. 나는 아픔을 견디며 석달 후란 그 날자에 초점을 맞추고는 매일...
  • 2020-06-29
  •  고마왔던 은사님 박영옥편 6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공부하는 동안 제일 고마운 은사는 이미 고인이 되신 박창호선생님이다. 졸업 후 20년이 넘은 후에도 내가 문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에게 여러가지 서적과 속담책도 사다주셨고 발표된 글을 보러 일부러 우리 집에 오시기도 했던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내가 장...
  • 2020-06-24
  • 내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자리  박미자(연길시제2중학교 교원) 2020년 5월 4일 태암촌의 진달래는 유난히도 화사하게 봄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덤무덤의 묘지를 지나 푸른 초원마냥 길게 뻗은 들판을 지나 흐드러지게 피여난 진달래는 파아란 하늘과 어우러져 연분홍빛 꽃바다를 뽐내고 있었다. &nb...
  • 2020-06-19
  • 인생에서 지기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나는 행운아였다. 나에게는 나의 분신 같은 친구 둘이 있다. 소꿉친구이자 동창생(화룡현신동소학교 1966년급 동창생)이며 부대의 전우이자 지기인 허문선과 방창화다. 이들 둘은 평생을 부대에서 청춘과 정열을 다 바쳐 근무하다가 퇴직한 전업 군인이다. 허문선은 원 길림...
  • 2020-04-12
  • ▲사진설명: 최창성 의사 부인인 채경숙씨가 정성드려 준비한 청국장   2020년 4월 1일 수요일 어제는 잊을 수 없는 날! 우리 낭군님께서 우한 의료 제일선으로부터 칭다오로 돌아오셔서 한시름 놓게 되었습니다.  50일간 집밥을 못 드시고 고추장, 된장을 못드셨으니 얼마나 허전하셨겠습니까?   우한에서...
  • 2020-04-03
  • “나이가 들다 보니 큰 도움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이나마 저의 성의를 표달하려고 합니다.” 3월 5일, 71세의 로당원 신순자는 들고 간 현금 만원을 신립사회구역당지부 서기인 정립화의 손에 쥐여주면서 전염병 예방통제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일군들과 환자들에게 전해달라고 ...
  • 2020-03-11
  •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술공장 리성모 공장장은 설기간에 본사 주재기자와 함께 당지에서 제일 장수로인으로 불리우는 박동수(107세)로인을 방문했다. 장백술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박로인(우) 박동수로인은 1913년 10월 11일에 조선 단천에서 출생했다. 1.60메터의 작은 키에 백근 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로인은&n...
  • 2020-02-12
  •       조선기업인 천진청송화약(青松华药)의약회사에서 최근 천진시인민정부에 3만장의 한국 의료용 마스크를 기증했다.   신종코로나가 발생후 1선 방역에 필요한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 회사 심재관 리사장과 직원들이 설 휴식도 마다하고 여러경로를 통해 해외공급상과 연락했다. 드디여...
  • 2020-02-05
  • 나는 꿈을 꾼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해빛이 창문에 따갑게 비추던 어느 하루, 여섯살 난 나는 집에서 이야기책을 보고 있었고 어디선가 뿡뿡하는 기분 나쁜 승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친다. “엄마는 어디 갔니?” 이젠 “아빠는 어디 갔냐”도 생략이다. 얼어붙...
  • 2020-02-01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1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