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엄마의 등(박영옥편8)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6월29일 08시05분    조회:154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엄마 집은  5층으로 된 아빠트인데 내가 엄마 집에 간다고 하면 엄마는 아래층에서 날 기다리실 때가 많다.

엄마가 이렇게 내려오신 것은 내 다리가 걱정되였기 때문이다. 번마다 함께 올라갈 때면 엄마가 내 앞에 등을 내밀면서 말씀하신다.

“너 그 다리로 오르기 힘들 텐데 어서 내 등에 업혀.”

그럴 때면 나는 코마루가 쩡해난다.

 

두만강변에서 엄마와 함께.

인제는 88세의 고령인 엄마는 지난해 봄에 심장병이 도져 열흘 동안 입원치료를 받으신 후부터 매일 약을 달고 있는 상황이다.

젊은 사람도 5층 계단을 오를 때면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데 고령이고 심장병이 있는 엄마가 숨이 찬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

엄마 자신도 계단을 오르시기 무척 숨이 찬 데 번마다 날 업으려는 엄마를 볼 때면 나는 목구멍에서 그 무엇이 울컥하고 올리밀면서 인차 눈시울이 젖어난다.

내가 여직껏 엄마 등에 얼마나 업혔댔는 데…그렇게 많이 업어주시고도 싫증이 나지 않아서 륙십이 넘은 이 딸을 아직도 업고 싶어하시는 엄마!

뒤에서 엄마 뒤를 따라 수걱수걱 올라가는 나는 휘여든 엄마 등을 바라보면서 아리송한 꿈 한자락이 살푸시 눈 감고 내 마음에 자리함을 느끼군 한다.

소학교 다닐 때의 어느 비오는 날, 엄마의 등에 업혀 엄마의 등에 얼굴을 파묻으면 엄마의 등에서 은은한 향이 풍겨나왔다.

찬바람 몰아치는 어느 겨울날, 엄마의 등에 얼굴을 파묻으면 대뜸 따스해났다. 엄마의 등은 정말 난로였고 바람막이였고 나의 큰 보호산이였다.

엄마의 등에는 또한 힘든 인생살이가 적혀있다. 자식 여섯을 등으로 업어키우셨고 봄이면 산에 가서 산나물을 등에 지고 돌아오셨고 여름이면 자식을 업고 강에서 빨래하셨고 가을이면 이삭주이, 산열매들을 등에 지고 집에 오셨다.

엄마 등에 업히워 우리 집에까지 오게 된 감자이삭, 벼이삭, 옥수수이삭으로해서 살림에 큰 보탬이 되였다.

번마다 음식을 맛 나게 먹는 우리를 보시며 엄마는 가을해볕에 그을려 가무잡잡해진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 때 철부지였던 우리들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겠다고 등으로 그 무거운 이삭들과 산열매들을 지고 다니시던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가하는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한번은 감자이삭을 주으러 뒤산으로 가신 엄마가 세시간 넘어서야 돌아오셨는데 마당에 들어서기 바쁘게 등에 진 감자이삭 주머니를 마당에 확 메치고는 저쪽에 가서 나지막이 우시는 것이였다. 자식들에게 눈물 안보이려고 구석진 곳에서 삶의 설음을 토해내셨다.

동생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맏딸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날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이삭주머니를 등에 업긴했지만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한번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내려놓은 이삭주머니를 다시 등에 멜 수 없기 때문에 엄마는 허리를 마구 내리 누르는 무게로 해서 아픔을 감내시면서 집까지 겨우 오셨을 것이다.

그 날 저녁 자식들이 그 감자를 삶아서 맛 나게 먹는 걸 보시는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실 줄 몰랐다. 언제 봐도 불평의 목록 쏟지 않고 감사의 일람표만 공개하시는 엄마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좀 힘들긴 했지만 그러나 너희들 잘 먹어주고 잘 커줘서 감사해!”

자식들의 기쁨을 등으로 바꿔온 엄마의 그 모성애는 오늘도 잊혀지지 않는 눈물겨운 이야기다. 엄마의 표정은 언제나 기쁨으로 군불을 지핀듯 얼굴색이 화사한 봄날이였다.

그 때 엄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모든 걸 견뎌내는 그 속에서 무럭무럭 커가는 자식들로 해서 심령이 세척되셨을 것이다.

가난했고 힘들었던 삶의 무게는 엄마의 등을 무던히도 짓눌렀고 엄마에게 쉴 틈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어려움이 가슴에 말라붙을 지경이였지만 아침이슬 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희망으로 어두운 가슴에 화사한 정원을 가꾸셨다. 엄마는 등으로 일년 내내 우리 집의 곤혹을 무마해주셨고 온 집안에 웃음꽃을 피우셨고 희망의 노래를 엮으셨고 가난을 한뜸한뜸씩 기워내셨다.

엄마의 등에서 나는 동심의 향기를 찾아냈고 엄마의 등에서 동심의 꿈을 디자인했고 세상을 알기도 했다. 기실 엄마의 등에서 도란도란 오가는 이야기는 하나의 아롱진 무지개 꿈이였다. 뿐만 아니라 때론 장애란 설음을 엄마의 등에 엎디여 토해냈고 얼룩진 운명을 적어놓기도 했다. 엄마의 등은 이렇게 한권의 내 인생의 책이였고 나만의 작은 세상이기도 했다.

차차 나이들면서 엄마의 등과 멀리하게 되였지만 그러나 엄마의 등은 조금씩조금씩 휘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그 휘여든 등마저 쉴 틈을 주지 못했다.

스무네살 먹던 해 중병에 걸린 내가 향진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효과가 없어서 연변병원에 갈 때 나는 엄마 등에 업히워 진찰부에 갔고 서른 여덟살 때 다리 교정수술을 하느라 엄마 등에 업히워 병원의 계단을 오르내렸고 마흔두살 때 임신중절수술을 할 때에도 난 엄마 등에 업히워 수술실에 들어갔다.

어디 이뿐이랴, 내가 서른네살 때의 어느 한번 점심시간에 엄마 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난데없는 바람이 훅 불면서 창고지붕의 널판자가 날리더니 기와장 한장이 창고 안에 떨어졌다. 바로 내 머리 우로 내려오는 걸 어느 새 보아낸 엄마가 나를 확 밀쳐냈다. 난 무사했지만 그 기와장이 엄마의 등에 떨어졌다. 그 후로 엄마는 며칠간 허리를 잘 쓰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날 보실 때면 얼굴에 웃음을 짓군 했다.

아, 난 이렇게도 엄마의 등을 무던히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나를 그냥 업으시려하시는 엄마! 휘여든 엄마의 등을 볼 때면 내가 엄마의 등을 휘여놓은 것 같다. 엄마의 등에는 엄마가 나에게 기울이신 사랑이야기가 몽땅 기록되여있다. 엄마는 그토록 힘들어도 삶 속에서 무지개를 찾기 위해 먼저 비를 맞으면서 견디는 련습을 많이 했으리라.

엄마는 어느 순간이라도 날 내려놓으려하지 않는다. 인제는 힘이 없으니 마음의 등으로 업으려하신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동네에 나서면 늘 날 자랑하신다고 한다.

그것은 자식자랑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장애자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줄이기 위한 모지름이 아닐가 싶다. 장애자 딸을 둔 엄마는 늘 남들의 눈치를 보시군 한다. 그 누가 날 얕잡아보지나 않을가?

홀로 사는 엄마는 재작년까지 물통을 등에 업고 사흘에 한번씩 샘터로 다니셨다.

구부정한 허리로 물통을 업고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내가 달마다 물값을 대여드릴테니까 물을 사면 되는 데 괜히 자식이 팔릴 짓이라고 책망한 적이 한두번 아니였 건만 엄마는 엄마로서의 쟁쟁한 대답이 있었다. 뭐, 운동삼아 물을 긷는다고. 늙었다고 성쌓고 남은 돌이 아니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란다. 비록 보기는 안쓰러웠지만 그러나 고령에 물통을 메고 다니시는 정도라 우리 여섯형제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식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이며 자식한테 부담이 안되 게 살아가시려는 엄마가 참 감사했다.

한손으로 층계 란간을 잡으시면서 한걸음한걸음 올라가시는 엄마의 등을 바라볼 때면 세월은 엄마 등을 왜소하게 만들었지만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엄마 등은 영원히 따스하고 포근할 것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흩날리는 오동잎은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고 못가의 련꽃들이 활짝 피면서 여름과 가을이 교차되는 이 시각 길림시 송화강반에 우뚝 서있는 길림육문중학교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다보니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쉼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이 무정한 세월의 흐름도 지워버릴 ...
  • 2020-08-26
  • (원제목) 애심이 깃든 티셔츠 입고 새학기 힘찬 출발을 해요 8월 24일,길림성 화룡시신동소학교 어린이들은 사회 각계의 사랑과 관심을 담은 따스한 개학식으로 새학기의 힘찬 스타트를 멋지게 출발했다. 오전 8시,알롱달롱 고운 민족복장을 한 신입생 꼬마들이 가족의 손을 잡고 호기심 어린 눈을 누비며, 순수한 동...
  • 2020-08-25
  • [수기] 자식들이 펼친 낡은 물건 ‘소탕전’ 김삼철 ‘소탕전’이라하면 모두들 전쟁 마당에서 적을 짓부시는 장면을 련상할 지 모르겠으나 지난해 추석 기간 우리 집에서는 시집 간 딸들과 사위들이 오랜만에 놀러와서 난데 없는 낡은 물건을 숙청하는 ‘소탕전’을 벌려 온 집안이 며칠간...
  • 2020-08-14
  • 할머니와 ‘선생님’ 박순자 어느 날인가 뜬금없이 누군가로부터 할머니라 불리우는 바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적이 있다. 아마 47살 나던 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 호칭이 무척이나 낯설고 귀에 거슬리긴 했어도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였다. 시력이 1.5로 유난히 밝...
  • 2020-08-09
  • 족보의 종착역은 어디? 첨서    나는 어릴 적 큰아버지가 왜 족보란 물건을 보배인양 숨겨놓고 우리한테 보이지 않았는지 지금껏 알지 못하고 있다. 하긴 큰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도 어느덧 25년이 지났고 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도 23년 철을 잡으니 어데 가서 물을 데도 없다. 간혹 있다 해도 아리숭한 추측이거...
  • 2020-08-07
  • 한국 간병업계에 떠오른 새별 한국 “간병정보”회사 황설자 회장에 대한 이야기 한국 “간병정보”회사 황설자 회장 캄캄한 밤 하늘에 유난히 밝게 비쳐오는 작은 별 하나가 있다. 거기에 또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 2020-08-04
  • 이불 30채, 손소독크림 60개, 현금 3천원을 30명 학생들과 장애인녀성들에게 전달   연변애심어머니협회 상무리사이며 연길시해금포민족이불유한회사 리사장 최경심의 사랑나눔 미담이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삼복더위 열기를 타고 널리 전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기업이 직격탄을 맞아 직원들을 먹여살리기도...
  • 2020-07-31
  • 민낯   주소: https://mp.weixin.qq.com/s/iEXOQSZMrSSFfY4JNRKq0Q   아침에 일찍 나오면 드물게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른 시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표정이 살아서 걸어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원래는 이게 정상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얼굴표정을 볼 수 있는 길거리가 이...
  • 2020-07-24
  • '박방본초 전매점”의 려순희 사장의 헌신 이야기   15살 소녀가 발 하나를 잃게 된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동상을 입은 발이 썩어들어가 잘라야 한다는 던. 발이 100일간의 치료끝에 완쾌됐으니 전설같지 아니한가.   사실은 이러했다.   올해 2월, 왕청에 살고 있는 한...
  • 2020-07-16
  • 김매화(왼쪽)씨가 에도가와구 시바다 야스히로 총무부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지난 7월 8일,재일조선족 김매화씨가 도꾜 에도가와구(江戸川区)에 마스크 2만장을 기부하였다.   류학생시절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일본사회복지의 덕택을 받았던 김매화씨는 현재 도꾜 에도가와구에서 주식회사 ...
  • 2020-07-14
  • 엄마 집은  5층으로 된 아빠트인데 내가 엄마 집에 간다고 하면 엄마는 아래층에서 날 기다리실 때가 많다. 엄마가 이렇게 내려오신 것은 내 다리가 걱정되였기 때문이다. 번마다 함께 올라갈 때면 엄마가 내 앞에 등을 내밀면서 말씀하신다. “너 그 다리로 오르기 힘들 텐데 어서 내 등에 업혀.” 그럴 때...
  • 2020-06-29
  •  내가 만난 남편 (박영옥편 7) 2012년도 가을의 어느날, 나는 이외의 사고로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가서 사진 찍었더니 골절되였다면서 석달이 지나야 회복된단다. 정말 약한 다리에 침질한 격으로 부실한 다리가 골절되였던 것이다. 나는 아픔을 견디며 석달 후란 그 날자에 초점을 맞추고는 매일...
  • 2020-06-29
  •  고마왔던 은사님 박영옥편 6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공부하는 동안 제일 고마운 은사는 이미 고인이 되신 박창호선생님이다. 졸업 후 20년이 넘은 후에도 내가 문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에게 여러가지 서적과 속담책도 사다주셨고 발표된 글을 보러 일부러 우리 집에 오시기도 했던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내가 장...
  • 2020-06-24
  • 내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자리  박미자(연길시제2중학교 교원) 2020년 5월 4일 태암촌의 진달래는 유난히도 화사하게 봄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덤무덤의 묘지를 지나 푸른 초원마냥 길게 뻗은 들판을 지나 흐드러지게 피여난 진달래는 파아란 하늘과 어우러져 연분홍빛 꽃바다를 뽐내고 있었다. &nb...
  • 2020-06-19
  • 인생에서 지기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나는 행운아였다. 나에게는 나의 분신 같은 친구 둘이 있다. 소꿉친구이자 동창생(화룡현신동소학교 1966년급 동창생)이며 부대의 전우이자 지기인 허문선과 방창화다. 이들 둘은 평생을 부대에서 청춘과 정열을 다 바쳐 근무하다가 퇴직한 전업 군인이다. 허문선은 원 길림...
  • 2020-04-12
  • ▲사진설명: 최창성 의사 부인인 채경숙씨가 정성드려 준비한 청국장   2020년 4월 1일 수요일 어제는 잊을 수 없는 날! 우리 낭군님께서 우한 의료 제일선으로부터 칭다오로 돌아오셔서 한시름 놓게 되었습니다.  50일간 집밥을 못 드시고 고추장, 된장을 못드셨으니 얼마나 허전하셨겠습니까?   우한에서...
  • 2020-04-03
  • “나이가 들다 보니 큰 도움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이나마 저의 성의를 표달하려고 합니다.” 3월 5일, 71세의 로당원 신순자는 들고 간 현금 만원을 신립사회구역당지부 서기인 정립화의 손에 쥐여주면서 전염병 예방통제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일군들과 환자들에게 전해달라고 ...
  • 2020-03-11
  •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술공장 리성모 공장장은 설기간에 본사 주재기자와 함께 당지에서 제일 장수로인으로 불리우는 박동수(107세)로인을 방문했다. 장백술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박로인(우) 박동수로인은 1913년 10월 11일에 조선 단천에서 출생했다. 1.60메터의 작은 키에 백근 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로인은&n...
  • 2020-02-12
  •       조선기업인 천진청송화약(青松华药)의약회사에서 최근 천진시인민정부에 3만장의 한국 의료용 마스크를 기증했다.   신종코로나가 발생후 1선 방역에 필요한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 회사 심재관 리사장과 직원들이 설 휴식도 마다하고 여러경로를 통해 해외공급상과 연락했다. 드디여...
  • 2020-02-05
  • 나는 꿈을 꾼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해빛이 창문에 따갑게 비추던 어느 하루, 여섯살 난 나는 집에서 이야기책을 보고 있었고 어디선가 뿡뿡하는 기분 나쁜 승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친다. “엄마는 어디 갔니?” 이젠 “아빠는 어디 갔냐”도 생략이다. 얼어붙...
  • 2020-02-01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1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