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한국생활 체험기 (김영순)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5월26일 11시43분    조회:159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한국생활 체험기

 
동북지역의 편벽한 조선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해온지 28년이 된다. 90년대초부터 한국열이 불면서 나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컸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전문 한국드라마, 뉴스를 시청하였다. 한국인 못지않게 드라마내용도 줄줄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취업비자 h-2를 따낸지 3년이 되였지만 소학교 다니는 아들 때문에 못가게 되였다. 2014년 아들이 소학교  졸업시험을 마친 후 여름방학을 잡아서 한국행을 하게 되였다. 나에게 너무도 큰 유혹중의 나라였던 한국은 처음 타보는 비행기만큼이나 신비롭고 낯선 나라였다. 공항에 내려서도 중국글과 한글로 된 길 안내표시가 잘되여서 쉽게 짐을 찾고 공항을 나섰다. 다행히 언니가 공항마중을 나와서 인차 버스를 타고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반지하방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문을 열자 습기가 찬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아니, 이런데서 살고 있었단 말인가? 
 
밤이 되여가니 하나, 둘 한국에 와있던 식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중국에서보담 훨씬 피곤한 모습들이였다. “언니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편하게 벌어 먹다가 이제 식당일을 어떻게 할란가 몰라?...”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고 날씬해보였던 내가 은근히 걱정되는 눈치들이였다. 실은 방학시간을 타서 식당일을 하면서 생활체험도 할겸 돈을 벌려는 심사로 한국으로 왔던 것이다.
 
엄청 더운 한국의 한여름 날씨를 실감하며 비좁은 단칸방에서 후덥지근한 더운 바람만 싣고 오는 선풍기 날개에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식혀가며 한국에서의 내 ‘첫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튿날, 파출부를 통해 식당일을 찾게 되였다. 파출부 사장님이 적어주는 주소대로 버스를 갈아타고 행인들에게 물어보면서 겨우 식당집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문화파출부에서 보낸 서빙입니다.” 식당 사장님과 인사를 끝내고 앞치마를 둘렀다. 이렇게 나는 한국에서의 첫 출근을 시작하였는데 2층으로 된 식당은 가정집 분위기의 뷔풰집이였다. 사장은 서글서글한 60대 초반의 경상도 아저씨였고 사모님은 별반 식당하고는 상관없어 보이는 듯한 무표정한 얼굴의 화장을 찐하게 한 50대 초반의 서울아줌마였다. 식당에서 같이 일해야 하는 언니벌 되여보이는 녀자 한명이 있었는데 고향이 부산이라서 그런지 “사장님예, 이랬어예”하는 귀여운 경상도사투리를 많이 썼다.
 
일을 시작한 첫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뭐 좀 시키면 그대로 좇아 할건데 웬일인지 다들 니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그러고 있으니 나로서는 참 미치는 일이였다. 점심시간이 다 되여오자 손님들이 우르르 밀려들고 여기저기서 주문을 해대는데 하나를 기억하면 또 하나가 잊어지고 음식은 나왔는데 누가 시켰는지 몰라서 눈치만 보고 있고 멍청하니 같이 일하는 언니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갑갑해 미치겠다는 눈길들과 마주치게 되였다. 나는 중국에서 조선어문교사를 해온지라 한국에 가서도 말을 주고받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장담했는데 말투가 이상한지 뭐라고 물어보면 그거 알아들을 시간이면 이거나 갖다 주라는 식으로 언니는 등을 떠민다. 손님상에 음식그릇을 갖다놓는 손길이 부들부들 떨리고 바보같이 당황해하는 나를 손님들은 걱정스럽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하찮게 여겼던 식당일도 대담성과 요령이 필요함을 그때에야 깨닫게 되였다. 전쟁 치르듯이 한바탕 법석이던 손님들이 하나, 둘 식사 자리에서 물러나고 음식그릇을 주방으로 날라가는데... 사모님이 주방으로 들어오란다. 물이 가득 담겨진 싱크대에 세제를 부어놓고는 그릇을 씻으라는 것이다.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덤벙거리며 그릇을 씻어대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깨끗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그릇을 쳐들고 보는 사이에 옆으로 어마어마하게 그릇들이 쌓여지고 있었다. “예얘, 뭐하니? 좀 빨리빨리 해야지.” 사모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나는 또 속이 한줌이 돼서 손놀림을 다그치다가 쨍그랑하고 접시 하나를 손이 미끄러워 주방바닥에 떨궈 깨버리고 말았다. 
 
오후 3시가 되여갈 때에야 점심을 먹기 시작했는데 밥값만큼도 일을 못한 것 같아서 밥먹는 것도 눈치보였다. 그래서 “일 못해서 죄송해요.”하고 가까스로 뱉은 한마디에 “첨엔 다 그래, 이제 하다보면 요령이 생길거야.”하며 그렇게 너그럽게 받아넘기는 사모님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중국에서 말로만 들었던 야박한 한국주인들 모습하곤 너무나 차이가 큰 것 같았다. 도량이 넓다고 해야 하나? 역시 선진국 사람들이라서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헌데 좋은 날은 며칠 못가고 나에게는 스트레스만 잔뜩 쌓여 갔다. 중국의 모든 것에 익숙해졌던 나의 사고방식과 한국 사람들에데 대한 리해부족의 차이에서 오는 모순도 컸다. 중국에서 상급이 지시하면 차근차근 받아하던 굳어진 사고 때문에 누군가 나한테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쳐주면 참 잘 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런 방식이 안통했다. 스스로 눈치껏 일을 배워야 했고 요령을 장악해 나가야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순진한 듯 쫓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따지고 묻고 그런 내가 참 많이 바보스러웠던 것 같다. 
 
그때 정말 힘들었던 것은 1, 2층 사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무거운 쟁반을 나르는 것뿐만이 아니였다. 세집을 따로 맡지 못한 상황에서 식당의 한쪽 방구석에 주숙하고 있으려니 같이 일하는 언니가 열시가 되여 칼같이 퇴근해 버리고 나면 나머지는 다 내몫이였다. 너무 피곤해서 부랴부랴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다섯시가 못돼서 식당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시시 깨여 일어나보니 사장 부부가 그 시간에 가락시장에 물건 구입을 다녀온 것이였다. 잠이 덜 깬 상황에서 무우며 배 박스를 낑낑거리고 주방에 날라가고나니 온몸이 해나른해져서 정말 그대로 자버리고 싶었다. 사모님은 잠도 없는 그길로 열무를 손질한다면서 법석이고 있었다. 나보고 그대로 올라가서 자라고 했지만 그냥 또 혼자 올라가긴 뭐하고 해서 “괜찮아요”를 반복하면서 또 한번 착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그만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받아주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였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사모님에게 더욱 이쁨받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오산이였다. 시간이야 어찌됐든 나는 그날의 일들을 계속해야 했다. 사모님은 점심 끝나고 나서 아무 때까지나 한숨 자면 되였고 그래서 피곤한건 나뿐이였다. 점차 나는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며칠후 다른 한 언니가 식당에 들어왔고 그로부터 나는 사모님의 미움을 받게 되였다. 새로 나타난 언니는 손님한테 애교스럽게 서빙도 참 잘했고 일도 잽싸게 해제꼈다. 무뚝뚝하고 어정쩡한 나하고 비교할 때 내가 주인 립장이였더라도 뻔한 비교였다. 그러면 차라리 속편히 나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하면 될 것인데 사모님은 한사코 내 결점들만 꼬집어 놓는다. 홀에서 뛰여다녀도 바쁜데 살살 걸어다닌다는 둥, 뭐라하면 네, 네 대답 한번 시원하게 들어본적 없다는 둥... 주인립장이라 할 말도 많았겠지만 죽어라고 일하는데 잘 안되던 그때는 참으로 억울했었다. 결국은 어느날 아침인가 이어지는 스트레스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나는 20일 일하던 그 식당을 나오게 되였다. 
 
식당에서의 탈출이 어쩌면 한국생활에 있어서 경험과 면역력으로 뒤받침되여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일당으로 식당에 들어서면 제법 재치있게 일을 찾아하군 하여서 사장님들의 잔소리도 덜 듣는다. 방학간의 한국생활체험으로부터 현지인이 아님으로서의 부족함을 스스로 채워가야 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다. 
 
 
흑룡강성 라북현조선족학교 김영순
흑룡강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2016년 5월 13일, 장장 13시간 하늘을 날아 우리 일행은 마침내 상해로부터 프랑스 빠리에 도착했다. 지친 몸을 가눌새도, 구겨진 옷을 갈아 입을 새도 없이 부랴부랴 관광버스에 올라 유럽려행 첫 코스 개선문을 향한 마음은 흥분에 들떴다. 빠리의 거리는 상해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상해 륙가주(...
  • 2022-05-17
  • 최선 다해 삶을 살아가는 녀강자 고향이 흑룡강성 가목사인 정계화(1967년생)는 부모형제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정계화는 아버지가 장기환자인,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3남매 중 맏이로 태여났다. 호도거리를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대부금을 내주며 ‘전문호’로 될...
  • 2022-05-17
  • 올해 봄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본지방을 마음대로 리탈하지 못하는 방역지침을 따라야 하기에 진달래꽃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타지방으로 가지 못하고 가까운 일광산, 후안산 진달래꽃 구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요즘은 그 진달래꽃도 어지러이 락화하는지라 어디로 구경갈 데도 마뜩잖던 차에 등산애호가인 윤선생이 4월 30일...
  • 2022-05-10
  • 봄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어느 휴일, 나는 강변을 거닐다가 우연히 연 띄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였다. 연이 자유로이 날아오르기도 전에 연줄을 너무 세게 잡아당겨 조금 날다가 휙 돌아치며 땅에 곤두박질하는 ‘물고기 연’이 있는가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보일락 말락 까만 점으로 되자 급히 연줄을 ...
  • 2022-05-10
  •   [료녕신문 최수향 기자] 5월 8일, 대련아리랑예술단 전체 단원 31명은 80세 이상 장수로인 5명을 모시고 뜻깊은 어머니날 경축모임을 가졌다.   이날 대련아리랑예술단 성원들은 예술단의 장수로인 리복록, ...
  • 2022-05-10
  • 빈곤퇴치 난관공략 촌주재사업팀 일군에서 전염병퇴치 ‘따바이(大白)’가 되기까지 연변주청소년사업발전쎈터 부주임 김명길은 그야말로 ‘전문역행자’이다. 이 동북 조선족 ‘90후’는 “어디에서 나를 필요로 하면 나는 어디에 간다.”고 말했다.   3월초, 연변 훈춘에서...
  • 2022-05-07
  • 김향자 촬영작품 《고향•넋》 전시 포스터 4월 16일, 연변녀성촬영가 10인 초청작품전의 첫 행사로 김향자(61세)의 《고향•넋》작품전시가 연길백화청사(8층) 하건나(哈根娜)커피청에서 정식 개막되였다. 녀성의 달 3월을 겨냥하여 준비한 작품전이건만 코로나사태로 미뤄진 행사라 모처럼 이루어진 모임에서 주...
  • 2022-04-22
  • [수기 103]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4-15 20:40:27 ] 클릭: [ ] 인생은 홀로서기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강인한 힘으로 인생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이겠다. 손에 손 잡고 가자는 말도 있다. 이는 함께 살아가는 동조의 뜻이다. ...
  • 2022-04-17
  • [수기] 마음의 가책 김영숙 (룡정시북안소학교) “앗…” 종합 실천활동 시간에 애들과 함께 채색 종이를 오리고 자르고 붙이는 과정에서 나는 그만 부주의로 가위에 왼손 식지가 찔리웠다. 깊게 난 상처는 아니지만 새빨간 피가 방울방울 솟아나왔다. 애들은 울상이 되여서 “선생님, 괜찮습니까? 빨...
  • 2022-03-29
  • 3월 8일 오전, 료양현 흥륭진 홍광조선족촌은 촌사무실 앞마당에서 ‘3.8’부녀절 경축행사를 가졌다.     “오늘 우리 ‘시골’ 동네에서도 ‘3.8’절 경축행사를 가졌수다” 문정숙 촌서기 겸 촌주임의 가득 들뜬 말이다.      현재 홍광조선족촌...
  • 2022-03-10
  • [수기] 집 찾아 돌아온 오리 김순옥 몇년전 나는 그림 같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새 아빠트에 입주했다.  아빠트단지에 들어서면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 오리 조각상이 있다.  매번 오리 조각상을 볼 때마다 지나간 추억이 새록새록...
  • 2022-02-25
  • [수기] 부러움 없이 보냈던 동년시절의 설 김춘선 나의 동년시절은 남진골, 차창에서 보냈다. 남진골은 화룡현 덕화향의 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페허로 되였다. 남진골에서 출생한 내가 세상 물정을 알게 되였을 때는 아마도 대여섯살부터인 것 같다.   1958년 7월 화룡 차창에서 형제들과 함께 기념...
  • 2022-02-24
  • [생활수기] 코바늘에 깃든 이야기 - 최범수 갓 결혼하고 첫 딸애를 본 나는 마냥  즐거워 늘 행복 속에 잠겨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출근했다. 금방 걸음마를 탈가말가하는 딸애는 그렇게도 귀엽기만 했다...
  • 2022-02-24
  • [생활수기] 손자에게서 배우는 재미 - 리삼민 ‘강산이 일곱번 바뀌’는 사이, 뜻밖의 사연으로 얼굴이 뜨거워질 때가 많았지만 외손자가 나에게 준 교훈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외손자의 이름은 김...
  • 2022-02-17
  •  [수기] 행복을 찾아가는 길 김영실(연길시건공소학교) 전 지구촌을 휩쓰는 코로나19 때문에 정상적인 교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하며 복새판을 부리다 보니 어느새 한해가 다 지나갔다. 지나온 한해를 돌이켜 보노라니 분명히 어려운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행복했던 순간들...
  • 2022-02-17
  • 장백산 아래 어느 로부부가 들려준 ‘길’에 담긴 이야기     장백산 아래에 사는 김은호, 남영자 로부부가 고향에 들어선 고속철역 앞에서.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길부터 먼저 닦으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12월 24일 장백산고속철이 개통식을 가진던 날, 안도현 현성과 200여리 떨어진 ...
  • 2022-02-10
  • 수기ㅣ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정영수 나에게는 늘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 며칠전 친구모임을 가졌는데 설전에 단동 친구네 별장에 가기로 약속했다. 지정한 날자에 심양에서 승용차 두대에 몸을 싣고 출...
  • 2022-02-07
  • 과거에는 많은 친척들이 모여 함께 설을 맞이하고 음식을 나눠 먹던 풍경과 달리 코로나19 사태로 직계가족만 모여 조용하게 명절을 보내는 추세가 반영되면서 장을 봐서 일일이 조리해야 하는 음식보다는 간편하고 간단하게 료리할 수 있는 반성품,간편식이 인기이다. 1월 31일, 3년째 반성품  ‘땅추(当厨)&rs...
  • 2022-02-07
  • 연변가정연구소 문화봉사자팀은 지난 1월 16일 그들의 전문 교육장인 연길태원호텔에서 제2기평생교육강좌 수료식을 ‘마지막 수업’으로 15년간 이어온 평생교육강좌를 마쳤다. ‘문화봉사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온 15년의 성장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문화봉사자팀 일동은 우선 “20여년간 하루...
  • 2022-02-03
  • 바로 지금이다. 그대 곧 시작하라!   김훈       며칠전 한국에 있는 지인이 전화로 문안을 전하면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보람찬"일거리"를 찾았다고 했다.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예술무대에서 유명세를 탔던 별호가 “수러우”인 리옥희 배우다.. 지인이 찾은 보...
  • 2022-01-28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