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미당의 뽀뽀, 육영수의 울음…옛 문단 풍경 되살리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0월5일 10시05분    조회:14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이호철 유작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

1950, 60년대 문단 풍경 정겹게 되살려

대표작 ‘판문점’ 취재 뒷이야기도






소설가 이호철(1932~2016)이 등단작 ‘탈향’을 처음 쓴 것은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였다. 최초의 제목은 ‘어둠 속에서’였고 200자 원고지 45장 분량이었다. 그 뒤 250장으로 늘리고 제목도 ‘암야’로 고쳤다가 1955년 다시 65장 길이에 ‘탈향’이란 제목으로 바꾸었으되, 첫 문장만은 내내 변함이 없었다. “그 무렵 나와 광석이와 두찬이와 하원이는 부두노동을 하고 있었다.”

사실주의 소설의 전범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시작이었지만, 작가 스스로는 불만이 많았다. 잡지에 원고를 보내 놓고도 첫 문장에 대한 고민을 떨치지 못하던 어느 날,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찻집에 갔다가 김동리와 마주쳤다. 동리는 이호철의 그 소설을 읽어보았노라며, “꽤나 재미는 있던데, 그 문장의 서술체가 조금 마음에 걸린다. 묘사체로 바꿨으면 싶은데…”라는 조언을 떨구었다. 그렇게 동리를 만난 저녁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하룻밤 신세를 진 화차 칸은 이튿날 곧잘 어디론가 없어지곤 했다.” ‘탈향’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산을 좋아했던 이호철이 1976년 5월 문단 동료들과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뒷줄 왼쪽부터 리영희·송기숙·이문구·이호철. 앞줄 왼쪽은 김주영이다. 자유문고 제공

이호철의 육필원고. 자유문고 제공

이호철의 유작 산문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에 나오는 삽화다. 그가 숨지기 전인 2015~6년 <월간 문학>에 연재했던 글에다, 같은 성격을 지닌 다른 원고들을 곁들인 책이다. 작가 자신의 직접 경험을 중심으로 주로 1950~60년대 문단 사람들과 사건들을 더듬었다. 월남하기 전 원산고등학교 3학년 시절 문학서클 책임자였던 이호철이 같은 학교 1학년 최인훈을 스카웃하고자 교실로 찾아갔던 기억, 집 떠날 때 아버지가 준 소 한 마리 값 돈을 고서점의 체호프 희곡집 네 권과 맞바꾼 결단, 미당 서정주 앞에서 그의 시 ‘산중문답’ ‘문둥이’ 등을 줄줄이 외워 보이자 미당이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혀가 들어오는 뽀뽀를 퍼부었던 일화, 전혜린이 숨지기 전날 저녁 전혜린과 그의 동생, 소설가 김승옥 등과 역시 명동에서 술을 마셨던 추억 등이 살뜰하게 수습됐다.

이호철의 대표작인 단편 ‘판문점’은 1960년 9월과 이듬해 5월 남북 회담 취재기자단에 껴묻어 판문점에 다녀온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다. 이호철은 소설에 나오는 대로 북쪽 젊은 여성 기자와 토론을 벌였으나 소나기가 퍼붓는 가운데 지프 안에서 벌어졌던 상황은 순전히 허구라고.


1970년 소설가 이문구(왼쪽)·남정현(오른쪽)과 포즈를 취한 이호철. 자유문고 제공
박정희 유신 당시 반정부 단체 ‘민주수호국민협의회’의 운영위원이던 그에게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영부인 육영수가 전라도 나주의 한센인촌을 방문하는데 그가 동행했으면 한다는 것. 차마 거절은 못하고 헬리콥터 편으로 다녀왔지만, 온화하고 우아한 영부인과 같이 사진 찍힐 기회만은 “교묘하게 피했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 청와대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그가 덕담 삼아 ‘오늘 여행이 따뜻한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하자 일이 터졌다.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은 육영수가 “저는 그저 이런 재미로나 살죠 뭐”라 말하며 헉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 그 말과 울음의 속뜻은 무엇이었을까.

이호철 자신의 경험 말고 전해 들은 이야기 중에도 재미난 것들이 많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시절 천관우가 사장실에서 내려보낸 이승만의 한시(노산 이은상 번역) 게재 청탁에 사직서 제출로 맞섰던 기개는 호방하다. ‘굳세어라 금순아’가 십팔번이던 시인 박재삼이 중환으로 집에서 요양 중이던 1997년 어느 날 자정 무렵, 소설가 홍성유가 글을 쓰다가 그 노래의 정확한 가사를 알고자 박재삼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박재삼은 병환중이라 어눌한 발음으로도 노래를 들려주었다고.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몇번씩이나. 지켜보고 있던 박재삼의 식구들이 놀라 기함한 것은 당연지사.

원산고교 후배이기도 한 소설가 최인훈(왼쪽)과 작품 심사 중인 이호철. 자유문고 제공“이호철은 도무지 어떤 잣대로 잴 수 없는 호인 풍이라 그에게는 적이 없다. 분단문학사에서 이호철만큼 연령, 신분, 이념, 지연, 학연, 신앙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문학 동네 구석구석을 넘나들며 교유관계가 원만했던 작가는 드물다.”

생전에 그와 친했던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쓴 대로 문단의 마당발이었던 이호철이 보고 겪고 기록한 문단 이야기는 가난하지만 낭만적이었던 문인들의 한 시절을 손에 잡힐 듯 정겹게 되살려낸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2
  • 인간 2명 중 1명은 ‘불륜 유전자’를 보유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는 신간 ‘바람난 유전자’에서 끊임없이 불륜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뇌 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저자는 "인류의 뇌 구조는 일부일처제와는 맞지 않아 앞으로 인류 사회에 불륜이 사라지는 세상은 오...
  • 2019-06-28
  • [서울경제] ‘너무 잘난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놀지 마, 희경씨.’ ‘책 많이 읽어, 희경씨.’ ‘버스나 전철 타면서 많은 사람들을 봐, 희경씨.’ ‘재래시장에 많이 가, 희경씨. 그곳에서 야채 파는 아줌마들을, 할머니들 손을, 주름을 봐봐, 희경씨. 그게 예쁜 거야, ...
  • 2019-05-15
  • '프랑스인 중국 고전문학 존경…한국은 번역조차 안 돼 박지원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스페판 브와 홍익대 교수. "조선이 지금과는 다른 굉장히 먼 세계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나는 오히려 오늘의 한국사회와 근접한 것으로 생각했다. 계층·계급이 오늘날도 여...
  • 2018-11-05
  • "나는 흔들리며 흔들리며 다시 너에게로 간다" 곽효환 시인[본인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로 독자를 늘린 중견 시인 곽효환(51)이 신작 시집을 냈다. 시집 제목은 명료한 두 글자 '너는'(문학과지성사 펴냄). 지난 4년여...
  • 2018-10-28
  • 이호철 유작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 1950, 60년대 문단 풍경 정겹게 되살려 대표작 ‘판문점’ 취재 뒷이야기도 소설가 이호철(1932~2016)이 등단작 ‘탈향’을 처음 쓴 것은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였다. 최초의 제목은 ‘어둠 속에서’였고 200자 원고지 45장 분량이었다. 그...
  • 2018-10-05
  • “진정한 권력은 공포다(Real power is fear).” 한비자(韓非子)나 마키아벨리가 했을 법한 이 말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과의 인터뷰에서 했다. 정확히는 “진정한 권력은, 나는 이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공포다”이다...
  • 2018-09-07
  •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재일동포다. 재일동포라는 사실이 그를 규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 과정에서 두 형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둘째 형 서승과 셋째 형 서준식은 한국에 유학 중이던 1971년 ‘재일동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체포돼 각각 19년, 17년을 옥중에서 보냈다. 서경식은 청년 시절...
  • 2018-07-18
  • [여름 휴가지에 가져갈 한 권의 책] [1] 논픽션   여름의 한복판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날 때 책을 꼭 챙겨 넣는다는 '북 마니아'에게 물었다. 이번 휴가 때 가지고 갈 책 한 권은 무엇입니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영국인 칼럼니스트 팀 알퍼, 소설가 편혜영, 경제학자 우석훈이 추천했다.   선글라스는...
  • 2018-07-15
  • 추천인: 김해영(연변대학 교육학과 부교수) 추천도서: 매튜스의 《아동철학 3부곡》 추천대상: 부모, 교원 및 교육에 관심 있는 자 매튜스(马修斯)의 《아동철학 3부곡》은 아이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대한 어른들의 고민, 아이들을 ‘경청, 사유,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주고 싶어하는 교원과 부모님들의 ...
  • 2018-07-03
  • [서평] 20년 경력 의사가 말하는 [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의사는 냉정하고 감정이 무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필자만의 선입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겪은 최소한의 경험만으로 볼 때, 의사는 분명 여느 사람들보다는 차갑고 감정이 무딘 부류의 사람들이라 생각됩니다.   엄마가 돌아가시...
  • 2018-06-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