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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민족애 소유자 −변철호선생을 그리며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5월11일 19시09분    조회: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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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5년부터 장춘 조선족로인협회 활동에 참가하면서부터 처음으로 변철호선생을 알게되였다. 그때 장춘시로인협회 채규억(고) 회장이 변선생을 나에게 소개하면서 "그분이 대퇴골절로 인한 후유증으로 바깥출입이 어려운 형편이니 좀 도와 드렸으면" 하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때로부터 나는 변선생의 자택을 드나들면서 내능력으로 가능한 촬영, 대외통신 등 일상을 도와드리기 시작했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난 10년 그이를 도와드린것은 별로 없지만 그이로부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인생철리를 배우게 되였고 또 후더운 그의 사랑을 받아왔기에 오늘 그이를 기리는 마음이 더더욱 절절하다.

 

고 변철호선생

변철호 선생은 1928년 조선 자강도 강계군 중장이라는 곳에서 유복자로 태여나 품팔이와 야학을 가르치며 근근득생하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외롭게 동년을 보냈다. 그가 13세 되던해에 어머니는 그를 앞세우고 살길을 찾아 중국 림강으로 건너왔는데 매달마다 내는 30전 월사금(학비)조차 내지 못하여 부득불 소학교 고등과도 끝마치지 못하고 일본인이 꾸리는 림강목재회사 로동자로 고용되였다. 그가 일하는 곳은 림강시에서도 백여리 떨어진 림산작업소였는데 그가 16세 되던 그해 겨울에 어머니는 아들 면회를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그만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사망되여 변철호선생은 혈혈단신으로 이 세상에 남게 되였다.

일제의 잔혹한 통치하에 가슴에 울분이 넘쳐났던 그는 "8. 15" 해방을 맞자  조선의용군 리홍광지대를 찾아가 총을 메고 장개석 10만 대군이 남만혁명근거지를 진공할때 6도강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뒤이어 "남만민맹" 성원 신분으로 해룡현 토지개혁운동에 참가하여 19세에 입당하였다. 토지개혁 운동후 료서성 회덕현에 분배되여 민족사업을 주관하게 되였는데 그의 뛰여난 사업성과로 1950년 길림성위 조직부로 발탁하게 되였다.

이때 배후에서 그를 질투하는 몇몇 사람들의 무함으로 회덕현 민족사업에서 이룩한 성과들이 불과 며칠사이에 모두 죄로 전도되여 변철호선생은 억울하게 투쟁받고 당적도 해제 당하고 형사처분까지 받았다. 그렇게 장장 32년이라는 세월을 억울함속에서 보냈다. 당시 엄혹한 정치형세에서 정치생명은 암담했지만 당에 대한 그의 견정한 신념은 추호의 동요도 없었다. 비관과 실망을 모르고 불타는 정열로 사업하면서 자기에 대한 억울한 처분이 시정될 그날이 꼭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었다.

드디여 그날이 돌아왔다. 1982년 그는 32년만에 당적이 회복되고 일체 형사처분을 시정하였다. 그는 날아갈듯 기뻤다. 그때는 이미 머리에 흰서리 내리고 60고개를 바라보는 황혼기였지만 그의 전신은 청춘의 정열로 불타올랐다. 그는 그 잃어버린 아까운 32년을 되찾으려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었다. 북경 팔달령에 힘차게 올라가 멀리 아득히 뻗어나간 만리장성을 바라보며 모주석의 시사 《루산관》을 격정높이 욾었다

"… 험요한 루산관 철벽같다 말라/ 오늘은 다시 대활보로 넘노라..."

 이는 그의 제2인생의 새 출발의 선언이였다. 그는 정책락실 생활보상비로 내려온 1000여원도 고스란히 당비로 바쳤다. 또 로쇠한 몸에 여러가지 질병으로 치료받고 휴식해야 할 형편이지만 《중국조선족발자취》총서 제5집 부주필 책임을 맡고 침식을 잊어가며 편집사업에 몰두하였다. 또 총서발행이 자금난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자식이 치료비에 보태라고 보내온 2000딸라를 서슴없이 기부하여 리희일 총주필을 비롯한 전체 편집일군들을 크게 고무하였다. 그후 《로인세계》잡지 전신인 《로인문고》라는 조선문 로인잡지를 꾸릴 때 경제원천이 없어 적자가 생겼을때도 채규억, 김수영, 변철호 세분이 일전한푼 보수도 없이 고생하고도 종당에는 자기 호주머니를 터는데 서슴치 않았다. 이와같이 그는 당과 민족사업이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았다.

변철호 선생은 확실히 대공무사한 공산당원이였고 강철의지를 소유한 우리 민족의 "오쓰뜨롭쓰끼"와 같았다. 1997년 대퇴골절로 종신잔페로 되였지만 림종때까지 장장 19년 동안 쉼없이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추진했다. 걷는것도 힘들어지고 시력조차 최저로 떨어져 필을 들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막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사유가 정상이고 두 귀와 입이 정상이다"고 하면서 계획했던 일들을 병석에서 하나하나 힘들게 추진해갔다. 변선생은 종전대로 우리말 신문과 방송부문에 건의도 제기하고 전국인대 정부사업보고를 귀담아 청취하고는 가슴속의 격정을 대필로 적어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후대들에 대한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에 깊은 중시를 돌렸다. 2007년 매하구에서 통화지구 여러 조선족로인협회에서 공동으로 "리홍광혁명전통교육회" 를 조직할때 병환으로 걸을수없는 형편임에도 주최측의 요청에 호응해 매하구의 김응삼, 무순의 최강 두 의용군 로병사를 동원하여 회의에 참석시켜 지도하게 하였으며 대회에 현금 1000원을 기부하였다.

문화혁명후 한시기 황페했던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이 오늘처럼 탈바꿈하게 된데도 변선생의 남모르는 로고가 슴배여있다. 조선족 소화영웅 허학진렬사 동상이 오늘날 그의 고향 룡정시에 정중하게 일떠서게 된데도 변선생의 심혈이 깃들어 있다. 1985년 료녕성 반금 (盘锦)특대홍수때 1등공을 세운 조선족전사 최동춘의 남모르는 영웅사적을 발굴하기 시작한것도 변철호선생이였다.

그는 또 모든 일에서 항상 이신작칙하면서 남보다 자기에 대한 요구가 더 엄하였으며 자기를 해부할줄 아는 명지한 분이기도 하다.  

내가 변선생과 10년 왕래하면서 느낀점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그의 고상한 만족정신이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였다. 그는 노상 말씀하시기를 "자기 민족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자기 조국을 사랑할수있는가" 하시면서 실제사업중에서 자기 민족을 자기 살점처럼 아끼고 관심하였다.

1948년 회덕현에서 농촌하향을 했을 때이다. 논 다루는 조선족 농민들이 식량난으로 입쌀 한근에 수수쌀 한근한냥과 교역하는것을 보고 매우 가슴아파했다. "이른 봄부터 찬물에 들어서서 어떻게 지은 농사인데..." 그는 논농사를 하는 농민들과 상의하고 여러가지 난관을 뚫으며 전 성에서 제일 처음으로 "수전농민합작사"를 꾸렸다. 집체로 벼농사를 지으며 은행 대부금으로 자동차를 사고 정미소까지 세웠다. 앉은 자리에서 쌀가공까지 하니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입쌀 한근에 수수쌀 한근 넉냥까지 교환할수있어 수전농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였다. 뒤이어 조선족중학교를 세우고 민교관(문화관)까지 꾸려 조선족들의 큰 근심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변선생은 항상 "자기 민족력사를 모르는 민족은 전도없는 민족"이라 하시면서 중국조선족력사에 대해 중시하고 깊이 연구하였으며 애국주의와 혁명전통교육을 후대교육의 주요내용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항일 녀전사 리재덕, 항일 로간부이며 남만민주련맹 부주임이였던 리강 등 여러 중국조선족 항일투사들의 사적을 발굴하기도 했다.

출판, 발행을 기다리는 《장춘조선족》 도 변선생이 주관하고 집필한 것이다. 그이는 비록 사학가는 아니지만 중국조선족력사에 대해 깊은 연구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사학가로 인정하고 있다. 하여 남영전 시인은 변선생 생전에 그를 "살아있는 장춘의 민족력사"라고 찬양하였다.

새로운 력사시기 전반 중국사회에서 두각을 내밀고있는 조선족영재들을 국내외에 홍보하는데 필목을 아끼지 않았다. 핵자기공명 분야의 전문가 배봉규 연구원, 길림대학 경제관리학원 조봉빈 박사생 지도교수 등 10여명을 신문지상을 통해 널리 알려주어 조선족사회의 지명도를 더 한층 높여주었다.

변선생의 이와같은 뜨거운 민족애는 협애한 민족주의나 민족지상주의와는 완전히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애국주의를 핵심으로하는 고상한 맑스주의적 민족관에 립각한 민족애였다. 변선생은 늘 "세계 여러나라에 흩어져사는 우리민족중에서 우리처럼 행복하게 사는게 어데 있소!" 라고 하시며 우리당의 현명한 민족정책에 고마운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이와같이 당에 대한 깊은 감정이 하냥 가슴속에 넘쳐났기에 2001년 당창건 80돐 때 중병도 마다하고 장춘조선족 여러 사회단체 명의로 개최한 당창건80돐사진도편전람을 주도했다. 자료수집부터 사진촬영, 순회전람에 이르기까지 관건일들을 모두 그이가 앞장서 추진했다.

변선생은 생명의 최후순간까지도 라지오에서 귀를 떼지않고 나라의 대사를 관심하며 어떻게하면 조선족 외국로무자들이 귀향창업으로 고향건설에 집념할수 있겠는가를 고민하였다.

오늘날 전당 전국인민이 "두가지 백년" 분투목표와 중화부흥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현실에서 볼때 변철호선생의 범상치않는 한평생을 기리는것은 아주 적시적인것으로 교육적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윤 영 학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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