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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양묵동지의 령전에 드림
2014년11월19일 06시20분    조회:2507    추천:3    작성자: 리태근
 고 황양묵동지의 령전에 드림

북두칠성

리태근




연변문화예술계의 큰별이 떨어졌다. <어떻게 요렇게> 김응 리정숙이 부른 남녀대창은 강력한 음악선률로 연변 나아가서 전국 조선족들에게 찬란한 음악별로 빛발친다. 누가 지은 노래인가?농민작가 황양묵이 지은 명곡이다. 사람은 갔어도 노래는 북두찰송마냥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뿌리라.

2014년9월14인은 화룡시군중예술문화관 나아가서 화룡시 군중과 연변인미들의 력사에서 가장슬픈 하루였다. 뒤늦게 비보를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화장터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인의 령전앞에서 고개를 숙이노라니 찬란한 별자취가 력력하게 떠 오른다.

1943년 10월 6일 화룡시룡수신광촌에서 신동이 태여났다. 소학교때부터 예술에 남다른 악착을 가지고 음악공부에 전력하였다. 별빛이 반짝이는 평강벌에 손풍금소리 울려퍼진다. 음악창작이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가마니짜서 손풍금을 마련한 부모님들의 정성이 연변의 북두칠성으로 빛날 큰별을 키울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황양묵선배님을 1984년에 화룡시문화관에서 만났다. 겉보기에도 소탈하고 인자한 분이였다. 나보다 다섯살 선배인데 어쩐지 친구같고 허물없은 지기이였다. 아무때던지 만나면 헐멀이 끝이럾다. 병성에서 오락가락 하면서도  내손을 꼭 잡고 술을 마시자말라고 백번 당부하던 형님이였다. 오랜 세월속에 나의 문학창작을 눈여겨 보면서 작품만 발표되면 전화하던 고마운 분였다. 매번 작품발표화를 할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주던 존경하는 선배였다.

70고령에 연변문화발전추진회 악단을 조직한다고 동분서주하는게 리해 되지않았다. 화룡시문화사업에 거창한 공훈을 세웠으면 편안하게 쉴게지 왜 고생을 사서하는가 악단이 경제난에 봉착해서 무산되게 되자 잘아는 시위서기를 찾아서 찬조금 20만원을 얻어다가 추진회에 몽땅 바쳤단다.. 날마다 헝암역을 한줌씩 삼키며 음악단을 한국에 내보내는게 정말 리해되지않았다. 음악단을 떠나 보내던 날 웬일인지 함께가지못하고 눈물이 글썽해서 돌아서는게 더더욱 이상했다.

왜 그톡록 가고싶던 한국을 포기할가? 또다시 약봉다리를 한줌씩 삼키는게 이상해서 빼앗았다. 멀쩡  항암약이 아닌가 왜 무슨암인데? 곁에 섰던 원 화룡시 김흘빈 문화국장님이 손수건으로 눈믈 훔치며 위암말기란다. 아! 나는 그만 어이 없어서 그 자리에 풀석 물앉았다.

자신이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앗다는 걸 알고서 마지막 빛을 내뿜은북두찰성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죽음의 사경에서 헤매면서도 20만원 찬조금을 일전 한푼 다치지않고 문화사업에 바친 황선생의 가슴속에는 전국우수문화관장 화룡시 선진공상당원의 숨결이 맥박치고 있었다. 창공에 나래치는 비행기를 손저어 바래는 화양묵의 가슴속에는 초 인간적이 의지가 빛발치고 있었다. 문뜩 거인같은 황관장 앞에서 내가 여지없이 작아진다.

오늘도 화룡의 산과 들에 고인이 발자국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황관장은 1981년 "희망의노래"로 길림성문화부의 2등상, 1989년 "얄미운각시"1990년 "어떻게 요렇게 "로 연변방송국2등상 ,중화인민공화국 2등상을 받으면서 자신의 작곡생애에서 히트를 쳤다. 황관장의 400여수의 주옥같은 곡들은 착상이 빛발치고 남들에게서 찾아볼수 없는 농후한 농민감정이 맥박치고 있기에 생명력이 강한게 아닐가? 문화예술사업이란 아무나 하는게 아닌다. 독특한 예술기질이 없으면 성과를 따낼수 없다.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났고 기층문화소에서 잔뼈를 굳혀온 풍부한 경험은 화룡시문화사업을 전국의 모범으로 자리를 굳혔다. 어죽햇으면 화룡시 문화관 일군들은 황관장을 "꼬리없는 황소"라고 불렀을가

황관장은 한평생 <제노릇>못하는 위인이였다. ,골배집. 신세를 면치못하다가 한국에서 돈벌수 있는 기회가 차레졌다. 건설현장에서 악을쓰고 세며트를 메여 나르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급성먕장인데 당장 수술하란다. 황관장은 수술비가 아까워서 그자리로 동아왔다. <내집꿈>은 . 이렇게 무산되였다.

범은 죽으면 가죽은 남기지만 고인은 한줌의 재밖에 남지않았다. 비록 이세상에 작은비석 하나남기지 ah못했지만 <어떻게 요렇게> 등 400여수의 주옥같은 아름다운 선률들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빛발치는 북두칠성마냥 찬란하게 빛나리라 굳게 믿는다.

고 황영문 선배님 인제는 만사시름놓고 하늘나라에서 맘 편히 잠드시소

2014년 10월 18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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