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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펄령감
2015년2월20일 05시05분    조회:1673    추천:0    작성자: 리태근
쇼펄령감


리태근
 
    내고향 사람들은 지금도 쑈펄령감을 못잊고 자주 외운다. 못살던 세월에  사람들의 명줄을 쥐고 흔들어서 잊지 못하는가?  삼척동자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도수높은 안경을 코등에 걸 고서 수판알 튕길 때면 늙은 대학생 같았다.  헤벌헤벌하고 웃는 재간은 타고났는지 례단받은 벙어  리처럼  빙그레 웃을 때면  보는 사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당 문전에도  못갔다는 쑈펄렬감이 어쩌면  퉁방울같은 수판알을 그렇게도 잘 다룰가? 량손으로 수판알을 튕길때면 번개불에 콩 닦아내듯이 속도가 빨라  《쌍수판》이라고 불렀다. 달깍달깍 재치있게 수판알을 다룰때면 감탄이 절로 난다. 생산대마다 일년종결 계산을 할때면 무조건  쑈펄령감을 모셨다. 쇼펄령감의 머리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한번도 실수할  때가 없었다. 언젠가 잘못 계산해서  거스름돈을 더 받으면 아무때든지 잊지 않고 도로 받아내는 귀신이였다. 그럴때면  거스름 돈 대신 개눈깔사탕을 얹혀주었다. 도대체 그놈이 개눈깔사탕 한개에 얼마씩 하는지?  한번도 따지지도 묻지도 않아서  사원들이 얼마나 믿졌는지  모른다.
 
  쑈펄은 풍년인데 왜서 술안주는 훙년일가? 언제보나 냄새가  비비한  멸치와 미역쪼각뿐이였다. 그것도 없으면 굵은 왕소금알을 쥐처럼 녹여먹으면서 카~ 하고 손끝을 빨던 선술군들 얼굴이 잊혀지지않는다. 사람들은 쑈펄령감을 깍쟁이 고리오 그랑데 령감라고 쌍욕하다가도 바쁜 일만 나지면 두손 싹싹 빌며  찾아들었다.  아버지의 끝없는 술심부름을 하다보니 깍쟁이 쑈펄령감의 비밀을 알게 되였다. 기름은 늦게 뜨고 술은 빨리 뜨라고 했는데 쑈펄령감은 사람을 골라가며 엇박자를 치는 게 아닌가?  술심부름 할때마다  깍쟁이령감의 휘여잡은  주룽재(술뜨는 주걱)를 지켜보느라고 난로에 손을 덴적이 얼마인지 모른다.  술을 뜰때마다 쓸데없는  말을 시키는데  그럴때면 주룽재가 한쪽으로 기울려지는것 같았다.  게으른 술군들도 의심하다 못해  눈금 표시있는 링게르병을 얻어서  술병을 만들었다.
 
쑈펄령감은 개천에서 솟아난  룡이였다. 남들은 한여름 잔등을 지지는 땡볕을 이고  땅을 파먹는데 쑈펄령감은 비오나 눈이 오나 근심없이 집안에서 노다지장사를 하였다. 쑈펄집 앞마당은 세상만사를 평가하는 한가로운 장마당이였다. 사람들은 툭하면 쑈펄집 앞바당에  둘레둘레 모여 앉는다. 타래쑥 모기불을 피워놓고 범이 담배피우던 이야기부터 임신한 처녀가 잔치상을 받던 이야기들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이야기들이 끝났는데도 모두들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마른입만 쩝쩝 다신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고 벌써부터 술충이 올라온단다. 외상술에 녹아난 쑈펄령감은 보고도 못본체 끄떡없다. 이렇게 개평(믿진 일)당한 술이 얼마인지 모른단다. 흑판에  적어놓은 외상술값은  해마다 늘어만갔다. 해마다 지우지 못하고 걸어 놓았다가 주인이 덜커덕 죽어버려면 수염을 쓱 씻고 말았다. 이렇게 메꿔버린 술명세가 얼마인지 모른단다. 
 
   그래도 행운은 쑈펄집에서 흘러 나오는것 같았다. 그 모진 세월에 군일들은 어째서 그렇게 많았는지? 온동네 잔치, 회갑, 생일, 생산대 종결 등 군일날이면  누구보다 제일 먼저 쑈펄령감에게 알려야 했다. 한공에 8전 우표 한장값도 안되던 모진 세월에 집집마다 돈 쓸일이  나지면 쑈펄령감을 찾았다. 갑자기 큰병이 나져도 쑈펄령감이요,  처녀가 임신해도  쑈펄령감이요, 상사가 나도 쑈펄령감이요 , 생산대에서 볍씨를 불리고 한잔, 모내기를 하고 한잔, 목재판을 가도 한잔, 어느집 녀인네가 해산해도 한잔, 그 세월에 쑈펄집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가? 쑈펄령감은 시골 사람들이 희노애락을 공감하는 성황당같은 존재였다.
 
   고향에 갈때마다 쑈펄령감이 생각난다. 고향은 변했다. 쑈펄집 터전도 주인이 바뀌였다.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지어놓고 활개치며 장사를 하는 한족들이 부럽다. 한평생 솜옷을 벗지 못하고 썩두부를 먹으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단히 부유하게 살아나가는 한족들의 끈질긴 정신을 따라 배워야 한다. 명절때마다 초롱불 내걸고  붉은 주련을 나란히 붙혀놓은 쑈펄집 대문을 바라보노라니  번들이마를 썩썩 긁으면서 웃음띤 얼굴로 달깍달깍 수판알 틩기던 쑈펄령감이 또렷히 안겨온다...
 
2014,3,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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