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두만강
껌은 왜 씹는지? 껌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몇해전에 고향으로 갔다가 두메산골 아이들이 놀랍게도 한국껌을 흔하게 씹는것을 발견하였다. 가난한 농촌사람들이 돈 주고 살수는 없겠는데?...
백두산 관광코스 길어구에 있는 내 고향은 날마다 관광뻐스가 실북나들듯 했다. 뻐스가 경비소에서 잠시 머무는 기회를 타서 마을 사람들이 삶은 옥수수며 오이, 개암, 잣과 산머루를 들고 나서서 관광객들과 장사를 하군했다. 관광객들은 쓰러져 가는 초가집을 배경으로 때가 얼룩진 옷을 입은 아이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사진찍느라고 분주하단다. 부지런히 샤타를 눌러대다가도 헐벗은 애들의 모습이 너무 안돼 보였는지 선심을 베풀면서 껌을 나눠 준단다. 한국에서는 6~70 년대에나 볼수있었던 농촌 살풍경을 찾아보다가 앞못보는 한족로인을 발견하고 마치도 흙속에서 진주나 발견한듯 소똥을 발라놓은 외양간벽에 세워놓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단다. 사진을 찍고 나서는 한국껌을 모델수고료로 주더라는 것이다.
성이 왕씨인 쫑발로인은 산동에서 살다가 먹을 것이 없어서 궈테 (옥수수 떡)를 들고 마을에 찾아온 유일한 한족이였다. 개혁개방 바람에 석회가 묻혀있던 뒤동산이 통채로 팔리웠다. 천지개벽을 알리는 남포소리에 사원들이 거의다 이주가고 유일하게 남은 고향의 한족할머니였다. 앞을 잘 못보는 왕로인은 나를 만나자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고 하면서 나의 손을 잡고 하는 말이 한국관광객들이 나를 세워놓고 수십번 사진 찍어갔단다. 사진 찍을 때마다 요청해 준다고 했는데 왜서 삼년이 넘어도 소식이 없느냐? 한국으로 가게 되면 꼭 물어봐 달란다. 아! 나는 울컥 솟구치는 울분을 억지로 참으며 왕로인의 갈라 터진 손을 꽉 잡았다.
뭐라고 해석할가? 내가 눈시울을 적시는데 "한족이래서 요청이 안 되는줄 안다”고 하면서 자기 대신 “장가못간 총각들을 초청하면 안되느냐?" 자기는 치아가 없어서 껌을 씹지 못한다고 사양하는데 그냥 한줌씩 안겨주어서 아이들이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단다. 개방하더니 앉은 자리에서 외국사람을 만나보고 못난 얼굴이 외국화보에 난다니 죽어도 원이 없단다. 오늘도 후둘후둘 떨리는 지팽이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면서 눈먼 관광뻐스를 애타게 기다리는 왕로인의 처연한 모습이 나를 울린다. ..
향정부에서는 외국관광객들에게 초라한 농촌모습을 보여주는게 나라 망신이라고 되거리 장사군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단다. 장사군들이 절대로 관광뻐스곁에 다가서지 말라고 그렇게 엄포를 놓았지만 삶을 향한 구원의 손길을 누가 막으랴? 거스름 돈도 받지 않고 껌을 통채로 주는 한국관광객들의 호기심은 매마른 산골에 명절분위기를 안겨 주었다. 벌거벗은 애들이 맨발바람에 정신없이 쫓아가면 차창밖으로 뿌려주는 천원짜리 지페와 껌이 꽃보라처럼 날린다. 먼지가 뽀얀 길에서 뒹구는 애들의 모습을 바라 볼때마다 로인들은 마치도 해방되던 날 쏘련홍군들이 뿌려주는 개눈깔사탕을 줏던 정경과 똑같다고 혀를 끌끌 찼다.
한국사람들은 레절도 밝았다. 중국사람만 만나면 껌을 주는게 문명고국의 레의범절인가? 발달할수록 문명해진다고 감탄했는데 알고보니 중국사람만 만나면 무턱대고 껌을 주는데는 내놓고 말못할 비밀이 있었다. 어느날 취한 김에 한국사장에게 캐여 물었다. 놀랍게도 중국 사람들은 목욕도 제때에 하지 않고 치솔질도 잘 하지 않아서 입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였다. 아! 그래서 중국사람만 만나면 껌을 주는구나... 해방전에 일본놈들이 공원에다 《중국사람과 개는 공원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패쪽을 써붙혔던 일이 생각났다. 한국사람들은 미국사람, 일본사람, 연변사람을 도대체 몇등급으로 보고 있을가?
겉과 속이 다른 한국사장은 껌은 이빨을 든든하게 만들고 입냄새를 제거하고 위를 자극하는데 《만병통치약》이라고 설명했다. 금방 중국에서 목욕하고 새옷을 갈아입고 왔다는데도 무조건 목욕부터 하라고 떠민다. 생각해 보니 자주 목욕하는건 좋은 생활습관이 틀림없다. 위생을 지켜는 것은 발달한 나라들의 공동한 통일인가?. 사람보다 몸이 깨끗해야 한다는게 그들의 살뜰한 《인간대접》리유였다. 연변사람들은 한국으로 갈 때마다 한평생 만져보지도 못하는 비싼 록용이요, 웅담이요, 사향까지 듬뿍 선물하지만 한국사장들은 기껏해야 녀자들이나 좋아할 크림이면 분에 넘친 선물이였다.
나에게도 껌을 즐겨 씹었던 즐거운 동년시절이 있었다. 풀뿌리를 캐먹던 세월에 토끼먹거리 세투리의 하얀 즙을 긁어 모아서 씹으면 쫄깃쫄깃한 껌이 된다. 녀자애들은 껌을 버리기 아까워서 오래오래 씹다가 혀끝으로 동그란 풍선을 만들고 탁 터치면 모두들 와 하고 손벽친다. 껌도 송진껌, 살구나무껌, 세투리껌 여러가지 껌이 있었다. 송진껌은 질기고 향기롭다. 그때는 멋으로 자랑거리로 심심해서 껌을 씹은게 아니라 배고파 씹어 먹었다. 해빛에 줄줄이 녹아내리는 송진을 손톱으로 긁어서 포개고 열심히 이기면 송진껌이 된다. 학교에 갈때는 질근질근 씹다가도 책상모서리에 붙혀 놓는다. 하학하고 돌아올 때면 또다시 뜯어서 씹는다. 배고프면 정신없이 솔밭으로 달려가군했다.
한국에서 생전 보지 못하던 커피색, 완두색 여러가지 껌을 선물받을 때마다 우리 나라도 언제면 껌을 맘대로 씹을수 있겠는가? 은근히 부러웠다. 잘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언제 구강청소를 생각하며 입에다 향수를 뿌릴 생각을 했으랴? 몇세기를 살면서 중국남자들은 크림 한번 발라보지 못했다. 분치장은 녀자들의 필수품이요, 남자들이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향수를 뿌린다는 것은 자본주의 영화에서나 볼수있는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향수만 뿌리면 자산계급 사탕폭탄에 녹아난다고 투쟁하던 세월에 감히 화장품을 만질 엄두도 못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게 실말인것 같다. 연변사람들의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날가? ...
언젠가 조선으로 드나드는 상인들이 껌을 두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아직 발달중에 있는 조선사람들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껌을 선물했단다. 중국껌이 하도 맛있다고 하면서 씹지도 않고 그대로 넘기는데 미처 공급하지 못하겠더란다. 나는 그만 울컥하고 피가 꺼구로 솟구치는 감을 느꼈다. 당장 귀쌈이라도 한대 부쳐주고 싶었다. 당신도 한국사장 행세를 하는가? 그들이 배고파서 껌을 삼키는데 그게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비웃는가!? 나라가 못산다고 사람까지 비웃지 말라!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잊으면 안된다...
껌에는 이렇게 기막힌 인정세태가 깔려있다. 껌은 왜서 씹는지? 껌을 씹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끝내 초청장을 못 만져보고 저승에 간 눈먼 왕로인이 생각난다... 껌을 만질때면 차창밖으로 뿌려주는 껌을 줏겟다고 목숨걸고 관광뻐스뒤를 쫓아가던 가난하고 불쌍한 내 고향 아이들이 생각난다.
2008년 9월 15일 연길에서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