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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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단편소설] 《아부지―》 댓글:  조회:3004  추천:0  2016-01-06
한여름, 남산언덕배기에 올라서면 시원한 송림이 맞아주고 그 한쪽 끝자락에 있는 남새밭도 보인다. 깔끔하게 꾸며진 남새밭이다. 파랗게 쪽쪽 줄을 선것은 부추요, 곱슬곱슬 퍼진것은 상추요, 넝쿨사이로 빨갛고 파란것은 도마도요… 가시나무가지들을 엮어서 빙 둘러 바자까지 쳤고 북쪽에는 이깔나무로 원두막도 지었다. 아들덕에 도시에 들어온 박령감이 아들네를 위해 꾸민 남새밭이였다. 지금 아들은 한창 잘 나가고있다. 말단정부인 향에서 현으로, 또 현에서 지구급 시정부로… 한창 떠오르는 아침 해님이였다. 박령감이 자부심을 가질수 있는 기둥감이다. (자식농사도 농사여!) 세상만사가 농사짓는 도리를 벗어날수 없다는게 그의 철학이다. 자식의 출세도 그렇고… 남새밭에 재미를 붙인 박령감은 땀을 흘릴수록 더 성수났다. 도시에 들어가면 밥 먹고 무슨 노릇을 해야 할가 하던 근심도 툭툭 털어버렸다. 저녁에 돌아올 때면 이것저것 뜯어서 배낭에 지고 온다. 《할배― 할배―》 집안에 들어서면 손자 손녀가 쫑드르 달려와 배낭부터 받아 들춘다. 도마도가 맛있다고 냠냠거리는 손자, 오이가 시원하다고 아삭아삭 씹는 모양 하는 손녀… 남새 한 배낭이면 집안엔 웃음꽃이 차넘친다. 로친도 새물새물, 그보다도 해바라기처럼 활짝 피여나는것은 며느리다. 아들을 따라 향정부에서 시정부로 올라온 며느리는 어느 은밀한 부문의 자그마한 과장노릇을 한다. 《야, 모두 생생한것들이네. 아버님, 전번에 그 애호박 말이죠, 호박장이 너무 구수하다고 직장 동료들이 야단이얘요.》 《거 푼푼히 따왔으니까 먹을만큼 남기구 다 갖다 나눠주게. 그리구 그 사돈네에게두…》 《예, 아버님, 고마와요…》 삼복철에 들어서 남새들이 우썩우썩 재미 있게 잘 자라서 박령감은 더 흥이 났다. 그날도 박령감은 일찌감치 남새밭에 이르렀다. 《아니, 이런 이런… 누가?》 울바자의 삽짝문이 빠끔히 열려졌다. 저녁에 돌아갈 때면 자물쇠를 꽁꽁 잠그고 갔는데… 혹시? 바짝 긴장해진 박령감은 굵직한 나무가지를 쥐여잡고 살금살금 남새밭에 들어섰다. 저쪽켠에서 웬 사람이 괭이로 미처 손을 대지 못했던 묵밭을 뚜지고있었다. 뒤잔등만 보아도 그처럼 눈에 익은 모습이다. 아들이였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옛날 괭이보다 더 작은 녀석이 괭이를 휘두르며 《아부지, 나 여기에다 도마도랑 맛있는것만 심을래!》 하고 웨치던 그 챙챙한 목소리가 방불히 들리는것만 같았다. 《그만하구 좀 쉬여라!》 《아부지―》 아들이 빙그레 웃으며 그의 곁에 와서 털썩 주저앉는다. 인젠 관직도 꽤나 높아진 아들이지만 부모앞에서는 언제나 틀거지가 없다. 《아부지, 제가 바쁘다는 핑게로 한번도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뭐가 죄송스러워? 옛날처럼 밥벌이로 하는것도 아니고 운동삼아 심심풀이로 하는건데 뭐!》 《허허, 그렇죠. 건강이 첫째입니다.》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고마울뿐이다. 아들을 정겹게 바라보던 박령감은 홀연 아들의 앞이마가 예전보다 훌렁 더 벗어진것과 희끗희끗 얼비치는 새치도 보았다. 저으기 가슴 한쪽이 아릿해났다. 《너도 힘들지?》 《전 괜찮습니다. 늘 시간에 매워서 좀 자유가 없을뿐이지… 저 회의시간이 다돼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거 차를 조심해 몰거라!》 아들은 일어나서 엉뎅이의 흙먼지를 툭툭 털며 몇발자국 떼더니 다시 돌아섰다. 《아부지, 제가 원두막 북쪽기둥밑에다 뭘 비닐주머니에 싸서 묻어놓았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누구든 다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세요.》 《그래라!》 박령감은 아들이 쓰던 괭이를 집어들고 원두막뒤로 돌아가서 구부정한 소나무앞에 세운 북쪽기둥을 찾아 그밑을 살펴보았다. 필경 아침에 파묻었을건데 어찌나 묘하게 묻었는지 흔적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꽤 중요한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부터 구질구질 내리던 비가 점차 억수로 퍼붓는 폭우로 변했다. 다음날 비가 즘즘해지고 서쪽하늘끝이 슬쩍 들리자 박령감은 부랴부랴 남새밭으로 달려갔다. 헌데 이런이런… 골짜기로 싯누런 골물이 사품쳤고 남새밭도 원두막도 온데간데 없었다. 문뜩 아들이 파묻은걸 잘 지켜달라던 부탁이 떠올라 원두막 북쪽기둥뒤에 있던 그 구부정한 소나무를 찾았다. 골물이 터지면서 소나무앞에는 낭떠러지가 깎아지른듯했다. 골물에 할퀴운 그 낭떠러지 웃부분에 노란 끈으로 꽁꽁 싸맨 비닐뭉치의 한쪽끝이 허옇게 내보였다. 위치로 가늠하나 땅이 패인 깊이를 보아도 틀림없이 아들이 파묻은것이 분명했다. 그는 허겁지겁 낭떠러지 끝머리에 이르렀다. 변두리의 땅이 쭉쭉 갈라지며 풀뿌리를 안은 흙덩이들이 부실부실 떨어져나갔다. 등골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박령감인지라 옷을 벗어 땅에 펴놓고 거기에 엎드려서 포복전진했다. 낭떠러지 끝머리에 이르러 상반신을 반쯤 내밀고 오른팔을 길게 뻗쳐 그 비닐뭉치의 한쪽끝을 꽉 잡고 천천히 힘을 주며 잡아당겼다. 밑으로는 골물이 거품을 물고 소용돌이쳤다. 마침내 비닐뭉치가 흙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찡찡 저린 오른팔에 힘을 주며 간신히 그 비닐뭉치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상반신을 일으키며 그 비닐뭉치를 안고 일어서려고 엉기적거렸다. 《와― 저기 사람이 있다. 죽자고 저런데까지…》 소나무사이로 달려오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안겨왔다. 박령감이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쩍쩍 갈라졌다. 몸이 저절로 휘청거렸다. 뭐 어쩔 새도 없었다. 박령감은 최후의 안깐힘을 다해서 비닐뭉치를 필사적으로 내던졌다. 그 비닐뭉치는 빙글빙글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더니 소나무곁에 가 뚝 떨어졌다. 《그걸 내 아들한테…》 순간, 큼직한 흙덩어리가 박령감을 태우고 와그르르 무너져내리더니 철썩― 하는 파도에 삼켜졌다… 사흘후에야 박령감은 병원에서 눈을 떴다. 아들도 보이지 않았고 로친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꺼먼 양복을 입은 사람 셋이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정신이 드셨군요. 로인 존함 박찬혁 맞죠?》 《그런데…》 생각밖에 박령감의 입에서 새여나온 말이 아주 똑똑하게 들리자 세 사람의 거동이 달라졌다. 그중 둘은 병상에 다가섰고 한 사람은 걸상을 끌어다가 탁자앞에 앉더니 노트를 펼치고 볼펜을 꺼내들었다. 《아들 이름 박장덕 맞죠?》 《그런데는…》 그들은 까근하게 캐고들며 아들이 그 비닐뭉치를 언제 어디에다 어떻게 파묻었고 무슨 말을 했는가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그들 셋이 나간후 간호원이 들어와 점적주사병을 갈아주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별다른 예감이 들었다. 며칠후에 박령감은 퇴원했다. 집안에 들어서니 널직한 실내에 괴괴한 정적이 흘러 사람이 사는 집 같지 않았다. 침실에 들어서니 원래 홀쪽하던 얼굴이 더구나 주름이 꽉 잡혀서 귀신처럼 강말라빠진 로친이 베개를 내던지며 넉두리를 했다. 《죽지 않고 돌아오긴 왜 돌아와? 제 새끼를 잡아먹는 이 두상짝아! 아이고 원쑤야, 원쑤!》 그날 밤, 박령감은 엽초 한주머니를 다 태웠다. 이튿날 아침에 그는 휘청거리며 사돈네 집으로 향했다. 마침 사돈네 내외간이 외손자와 외손녀를 학교로 보내느라고 택시를 잡고있었다. 《룡이야— 순이야—》 목갈린 그 부름소리에 차에 오르려던 두 아이가 뚝 멈춰서서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배—할배—》 하며 달려오려니 했던 두 아이가 그 자리에 오똑 멈춰서서 야멸차게 한마디씩 내뱉는다. 《할배, 나빠!》 《할배, 미워!》 엉거주춤 멈춰선 박령감의 눈앞이 흐려졌다. 드디여 자제할수 없는 눈물이 꺼실꺼실한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돈네 내외간도 폴싹 늙은것 같았다. 평소 살갑게 대하던 안사돈은 입을 삐죽거리며 홱 돌아서 들어갔고 무던한 바깥사돈이 그래도 손을 잡아주었다. 《어이구, 늘그막에 이게 무슨 꼬락서니우…》 바깥사돈의 말에 의하면 그 비닐뭉치가 기실 《비밀장부》였는데 그것이 발각되여 아들과 며느리까지 여섯이나 불리워갔단다. 그룹적인 직권람용으로 인한 공금횡령죄에 걸렸다는것이다. 아직 금액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그 액수에 따라 극형이 떨어질수도 있고 몇년 내지 몇십년 동안 감옥밥을 먹을수도 있단다… 박령감은 가슴을 치며 돌아섰다. 스스로 자기의 아들을 감옥에다 처넣었다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제야 로친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때 자기가 그걸 안고 물에 빠져죽었더라면 오늘 이런 변이 생기지 않았을거고… 아들 며느리를 감옥에다 처넣고 무슨 면목으로 산단 말인가? 박령감은 서서히 비장한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슈퍼에 들려 소주 한병에 월병 두개를 산 다음 다시 종합자료상점에서 농약 한병을 샀다. 그제날 뒤집 철구 에미가 마셨던 그 농약병과 똑같이 하얀 병이였다. 휘청거리며 남산에 올라 남새밭자리를 찾아 풀썩 주저앉은 박령감은 소주병과 월병, 농약병을 꺼내놓았다. 동그라미를 먹으면 가는 사람의 저승길도 무난해지고 이승에 남은 사람들의 일도 둥글둥글 잘 풀린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소주 한모금 마시고는 동그란 월병을 덥썩 깨물어 우물우물 씹었다. (지금쯤 그 녀석 이 애비를 원망하고있을테지…) 명치끝이 쨍— 해나며 주기가 서서히 올리퍼졌다… 문뜩 산너머 저 멀리, 파아란 논밭 저쪽으로부터 꼴단을 멘 아들녀석이 머리칼을 흩날리며 달려오고있다. 《아부지―》 아침이슬에 폭 젖어 얼음판같은 논뚝길이였지만 용하게 넘어지지 않고 달려온다. 어릴 때부터 정이 많았던 녀석이였다. 걸음마를 타기 시작해서부터 아버지만 보면 《아부지―》를 부르며 엎치며 덮치던 녀석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는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매일 식전에 나가 소꼴 한단씩 꼭꼭 메왔다. 가끔 등교시간때문에 더운 밥을 찬물에 훌훌 말아 후르륵 넘기고는 책가방을 둘러메고 달려가는 그 모습에 애 에미는 가슴이 아파 앙앙거렸다. 《그 꼴 한단이 없어 소가 굶어죽겠수? 래일아침부터 싹싹 걷어치워유!》 나도 가슴이 아파 강권하지 않았지만 그냥 새벽에 기어이 눈을 비비며 나가 꼴을 베왔던 녀석이다… 박령감은 다시 소주병을 들고 꿀꺽꿀꺽 연신 몇모금 마셨다. 술이 반병쯤 남았을 때 그는 농약병의 병마개를 따고 술병아구리에 맞춰서 쏟아넣었다. 삽시간에 하얀 술이 짙은 주황색으로 변했다. 어느땐가 아들이 희한하게 생긴 술병을 들고 와서 한잔 꼴똑 부었다. 그 술이 주황색이였다. 록용주인가 했더니 빠리에 갔다온 손님이 선물한 외국제양주라고 했다. 별맛일거라고 마셔보려는데 한병에 몇천원씩 한다는 말에 도로 잔을 내려놓았다. 아버지께서 반가와하신다면 몇천원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마라도 그냥 대접할수 있다고 아들이 장담했다. 그때는 그 말이 대견스러워서 그 잔을 다시 들고 굽을 쭉― 냈었다. 오늘날 그때와 색갈이 똑같은 술이 놓여있다. 그때의 그 주황색 술은 즐겁게 장수하라는 술이였고 지금의 이 주황색 술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그때 그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깟녀석이 월급을 얼마나 탄다고 그 비싼 술을 숭늉 마시듯했을가! 그때 벌써 잘못된거여. 왜 그 낌새를 채지 못했을가? 농사군이여서? 오로지 일만이 사람같은 사람을 만든다는 철학관이 깨지는 순간이였다. 그 비닐뭉치가 발각된것이 아들을 해친것이 아니라 그 주황색 외국제양주를 마신것이 아들을 구렁텅이에 밀어넣은것이라고 뒤늦게 뼈아픈 반성을 했다… 박령감은 또다시 소주병을 들고 그 주황색 술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는 그 하얀 농약병을 들고 나머지 농약을 다 소주병에 쏟아넣었다. 술은 주황색으로부터 검스레한 진홍색으로 변했다. 시골에 있을 때 뒤집 아들 철구가 지나가던 아줌마의 가방을 잡아채다가 아줌마가 반항하니 칼로 찍어서 살인사건을 빚어냈다. 그 가방안에는 잔돈 28원밖에 없었다. 그 28원때문에 철구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 철구 에미가 하얀 병에 들어있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그 집에서는 어려서부터 아이가 하자는대로 귀엽게 키웠고 커서도 일을 시키지 않았기에 늘 빈둥빈둥 돌아다녔다. 《아이는 그렇게 키우는게 아니여. 무슨 잔일이라도 시켜!》 박령감이 늘 철구 에미를 보고 타일렀었는데… 그런 박령감은 아들한테 너무나도 많은 일을 시켰었다. 녀석은 소시적부터 일욕은 많았으나 물욕은 꼬물만큼도 없어서 오히려 제 노릇도 못할가봐 근심했었는데… 그러던 녀석이 오늘날 왜 돈에 환장했을가? 먹고 입을 걱정도 없고 생활도 그만하면 천당이나 다름없는데… 옛날 세월에는 일로 사람을 만들었는데 지금 세월에는 뭘로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 리치를 터득하지 못한 자신이 한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더구나 앞이 캄캄해났다… 박령감은 마지막으로 소주병을 들고 그 진홍색으로 변한 술을 꿀꺽꿀꺽 마셨다. 끝끝내 굽을 내고야말았다. 뒤이어 밸이 뒤탈리는듯 통증이 침습해왔다. 마지막 순간이 각일각 닥쳐오고있음을 느꼈다. 이 세상을 다시 한번 보고 가려고 눈을 크게 떴다. 모든것이 노랗게 변해가고있었다. 소나무도, 저 멀리 산너머 하늘도… 노오란 구름을 타고 철구 에미가 머리수건을 풀어쥐고 내흔든다. 《오지 맙소, 아즈버님, 뭘 잘못했다구 아즈버님이 여길 오자구 그램둥? 오지를랑 맙소.” 노오란 구름을 타고 머리를 풀어헤친 며느리가 두팔을 허우적거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아버님이 가시면 안돼요. 룡이와 순이가 있잖아요. 그 애들을 봐서라도…” 노오란 구름을 타고 로친이 휘우뚱 굽어지는 상체를 지팽이에 싣고 손가질하고있다. 《저 량심없는 두상짝같으니라구, 나를 버리고 혼자만 갈라나… 아이고 원쑤야, 원쑤.》 노오란 구름을 타고 고개를 뚝 떨군 아들이 다가오고있다. 《아부지, 이 불효자식이 마지막으로 빕니다. 제발 가지 마십시오. 제가 이제 깨끗하게 싹 씻고 나가서 다시 그 옛날 꼴단 메던 아들로 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부지―》 아들이 구름을 헤치며 막 달려온다. 샛노란 구름이 짓노랗게 변해간다… 박령감은 두눈을 더 크게 흡떴다. 눈동자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흰자위만 서리발 치듯 번뜩인다. 미구에 눈까풀이 서서히 내리처지며 그걸 깔아덮었다… 길림신문 2016.1.6
2    “토장국냄새” 그냥 나는건가! 댓글:  조회:1450  추천:0  2014-11-21
그 옛날, 짧은 겨울해가 더욱 짧아지는 시골의 저녁무렵,짙어가는 골짜기의 어스름속에서 눈갈기를 날리며 짓쳐 미끄러져내리는 나무발구와 한참씩 얼크러져 씨름질하며 간신히 산굽이까지 내려오면 온몸이 해나른해진다. 산에서 먹는 음식이 잘 꺼지는 법이라 넘어가는 저녁해를 따라 배도 촐촐해난다. 바로 그때면 저 멀리 산자락밑굽이에 곰보딱지처럼 알곰알곰 들어앉은 마을에서 집집의 성냥개비 같은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정경이 색조 진한 서양화마냥 검스레 안겨온다. 그러면 또다시 온몸에 힘이 부쩍 솟구친다. 집집마다 저녁밥을 짓느라 아줌마들이 뽀얀 밥김속에서 얼굴이 홍시가 되여 가분가분 돌아치고 있을 때다. 밥 타는 구수한 냄새에 펄펄 끓어번지는 장국냄새에… 한달음에 달려가 문을 콱 떼고 들어가고픈 내 집 그 부엌간, 로할매때부터 토장국냄새에 푹 절어있는 그 부엌간, 배고플 때마다 달려가고싶은 곳이다. 한창 바람이 나서 촌티 지르르한 멋을 피울 총각시절에는 그 부엌간에 들어서면 퀴퀴한 촌집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몸에서 장국냄새가 난다고 그 부엌간에 들어서기조차 싫어했었다. 헌데 머나먼 타향의 대도시에 가서 일년도 배기지 못하고 돌아온적이 있었다. 끼니를 에울 때마다 그 토장국냄새가 너무도 그리워났던것이다. 장국을 먹고 자란 놈들 장국을 떠나서는 별수가 없는가부다. 고기도 없고 단백질이 결핍했던 시절부터 토장국이 우리의 몸을 단단한 근육질로 다져냈던것이다. 정말 고마운 토장국이다. 우리 민족의 건강을 세세대대 지켜준 토장국이다. 한겨울 한가할 때에 동네마실을 나서서 집집의 부엌문을 떼고 들어서면 집집의 장국냄새가 다 다르다. 퀴퀴한 냄새도 있고 시큼한 냄새도 있고 그 무어라고 할가 이루 언어문자로서는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들이 많다. 어떤 장국냄새가 나는 집에 인심이 후하고 어떤 장국냄새가 나는 집에 인심이 박하다고 서로들간에 뒤로 내숭을 떠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랬거나 말거나 아무튼 토장국이 우리의 식생활을 지켜주었을뿐만아니라 전반 우리의 생활에 단백질로 되여주었고 그 생활에서 다듬어져 나오는 문화의 꽃을 피워주는 밑거름이 되여주었다. 그래서 문예작품에 민족색채가 좀 짙어지면 토장국냄새가 난다고 한다. 토장국냄새가 바로 우리 고향의 냄새이고 전반 우리 민족의 냄새인것이다. 전번에 습근평주석의 사회하에 진행된 중앙문예사업좌담회에서 해방군문예대표인 염숙히 부대에서 창작된 문예작품에 군인이라는 멋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병영생활의 냄새와 전투적인 화약냄새가 제대로 풍기지 못하는 현상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하였을 때 동감을 표시하면서 군대의 멋과 병영생활의 전투적인 냄새를 풍기지 못한다면 그건 부대작품이라 할수 없고 그런걸 창작해낸 사람들은 군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고 비평하였다. 역시 우리의 문예작품에 우리 민족의 토장국냄새가 풍기지 않는다면 그런걸 최저한 좋은 작품이라고 할수 없다. 도시생활을 반영한다고 민족의 얼도 없는 작품을 창작한다면 그건 외형만 우리의것이고 혼은 “귀신”한테 빼앗기는 허수아비로 되고마는것이다. 외국생활을 반영한다고 토장국냄새도 나지 않는 작품을 창작해낸다면 그건 외국옷을 걸치고 외국인흉내를 내는데 불과할뿐이다. 물론 농촌생활만 반영한 작품이래야 토장국냄새가 난다고 하는것은 아니다. 도시화발전이 추진됨에 따라 더욱 많은 우리 민족이 도시인으로 될것이고 글로벌경제에 뛰여들어 외국으로 나가게 될것이다. 때문에 도시생활도 반영해야 하고 외국생활도 반영해야 한다. 그런 생활을 반영한 작품에는 반드시 토장국을 먹고 자라난 우리의 도시 “토배기” 인물들과 외국의 “고향인”들의 생활, 사상, 추구, 성격기질, 그들의 내면세계가 그려져야 한다. 상징성을 띤 예술작품이래도 토장국냄새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왜서? 우리 민족의 작품이기때문에! 우리 민족문화발전사를 쫙 펴놓고 보시면 이 문제가 일목료연하게 안겨올것이다. 진정  군중들이 긍정해주는 우수 작품이라고 하면 그건 기필코 토장국냄새가 진한 작품이였고 토장국냄새가 진한 작품이면 그건 에누리없이 우수작품인것이였다. 토장국냄새가 진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을 때면 문단이 흥성했고 그런 작품들이 나오지 못할 때에는 문단분위기가 좀 서늘해지군 했었다. 토장국냄새를 풍긴다고 천편일률로 똑같은 냄새만 피워도 안된다. 고향마을 집집의 장국냄새가 다르듯 작품마다 자기의 개성이 있어야 한다. 개성은 예술의 생명이다. 또한 예술성이 강한 작품이래야 토장국냄새를 제대로 낼수 있는것이다. 시골집 토장도 누구나 다 제대로 빚어내는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우리의 문단에서 토장국냄새를 많이도 피웠었고 지금도 피우고있다. 그런데 지금 토장국에는 “조미료”가 점점 더 많이 들어가고있다. 앞으로는 좀 작작 치고 원맛을 내기에 힘써야 할것 같다. 이왕지사가 그러했고 향후 앞으로도 역시 우리의 문예작품은 토장국냄새가 풍겨야 하고 더욱 더 진하게 풍겨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금전자극이 심해질수록 토장국냄새는 더욱 진하게 풍겨야 한다. 전국적인 문단으로 세계적인 문단으로 진출하겠다고 하면 무얼 준비해가지고 나가겠는가? 우리에게는 토장국밖에 내밀게 없다. 그걸 가지고 전국문단에다 냄새를 피우고 세계문단에다 냄새를 피워야 후각이 점점 민감해지는 현대독자들의 인정을 받을것이다. 연변일보
1    숫눈길(홍천룡) 댓글:  조회:3594  추천:0  2011-08-02
단편소설           숫눈길                                                    홍천룡   벽촌마을의 아침나절은 호젓했다. 애숙이는 소수레를 몰고 동구밖으로 나섰다. 물이 난 작업복에 하얀 수건을 착 두른 그의 모양은 숫스러우면서도 산뜻했다. 줄달아 내뿜기는 입김에 눈섭이며 앞머리엔 하얀 서리가 꽃발처럼 서리였다. 갈개치던 그의 마음도 저으기 누그러졌다 “이랴!” 애숙이의 챙챙한 목소리는 잠풍한 아침대기를 깨뜨리며 상공에 울려퍼졌다 .별로 큰일이라도 해낼것만 같은 호기였다. 날씨도 푸근한데 소방울소리가 왈랑절랑 즐겁게 울렸다. 우걱뿔황소는 느릿느릿 걷다가도 성칼스레 대가리를 내저으며 퉁방울눈을 휘번득거렸다. 황소란 놈은 나긋한 숫처녀라고 애숙이를 떠보자는것 같았다. 오히려 그것이 우습강스러웠다. 그 모양을 말끄러미 보노라니 자연히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새벽에 애숙이는 일어나자마자 손을 불며 뒤울안에 가보았다. 나무가리가 밑굽까지 거덜이 났다. 어머니가 몸져누운 다음부턴 땔나무가 제일 걱정거리였다. 초겨울에 들어서면서 앞집 금쇠아저씨가 한번 해다준 나무를 여태껏 아끼며 때왔던것이다. 그런데 남의 신세를 진다는것은 거북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였다. 금년봄에 애숙이는 모상판에 밑거름을 얼마나 폈으면 좋을지 몰라 춘자아버지에게 물었더니 그는 코웃음부터 쳤다. “다 큰 계집애가 그것도 몰라? 애빌 닮아 책만 책이라 하지 말고 농사일도 배워라. 인젠 네 에미도 진이 빠져 시들시들 하지. 게다가 집안에 남자일군도 없지…” 그때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해난다. 그후부터 누구한테 궁한 사정을 하기도 죄스러웠다… 애숙이가 망연히 서있을 때 삽작문이 삐꺽 열리며 뒤집 흥수가 토박토박 빠갠 장작을 한아름 안고 들어섰다. 애숙이는 대뜸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건말건 흥수는 눈이 부숭부숭해서 나무를 문가에 가져다 콱 쏟아놓았다. “또 땔나무가 떨어졌다면서? 에참, 어마이가 어찌 가져가라고 성화를 부리는지…” 흥수는 어머니가 시키는 일이여서 할수 없다는듯 씩씩거리며 가버렸다. 애숙이는 수삽해났다. 감사한 일인지,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작년부터 애숙이는 딱한 사정이 있어도 흥수네 집에 가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원래 애숙이는 어리무던한 흥수와 무람없이 지냈다. 이에 주책없는 흥수의 어머니가 주제넘게 생각하고 아들을 꼬드겼었다. 그래서 흥수는 애숙이네 집 일이라면 간이라도 빼줄 지경이 되였다. 나어린 애숙이는 그 낌새를 채지 못하고 고맙게만 생각했다. 헌데 앞뒤를 재일줄 모르는 흥수가 궤도를 벗어나도록 덤벼치는바람에 둘사이는 오히려 어색하게 버성기여졌다. 그래도 흥수는 남자꼬부래라고 언제나 틀거지를 부렸다. 금방 나무를 안아다 내치고 간 일도 그렇다. 마치 거러지의 궁상이 보기 싫어 은전을 뿌려주는 신사처럼 곁에서 시끄러워 못 보겠는 뜻이 아니고  뭔가! 애숙이는 또 괴로운 자비심에 마음을 절궈냈다… 수레가 돌부리를 넘어서며 몹시도 덜컥거렸다. 오불꼬불 올리뻗은 달구지길은 돌너들길이여서 수레몰기가 여간 말째였다. 까칠령까지 올라가자고 해도 아득한 일이였다. 그래도 화목을 해오자면 까칠령을 넘어야 했다. 가깝다면 몇리요 멀다면 십여리다. 십여년전만 해도 야수들이 욱실거려 나무군들은 호신용무기를 휴대하고 다녔었다. 작년에도 메돼지를 보고 놀라 뛰다가 소를 잊어먹은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침에 애숙이가 나무하러 가겠다고  뻗댈 때 한사코 반대해나섰다. 그러나 애숙이도 인젠 애어린 소녀가 아닌지라 한번 먹은 마음을 꺾지 않았다. 한번 자기손으로 나무를 해다가 마음껏 때보고싶었다. 후끈후끈한 집안에서 앓는 어머니도 거뿐하게 땀을 내고 체약한 동생 애자도 흐뭇해지게 말이다. 산굽이를 에돌아 골짜기에 들어서니 기분이 달라졌다. 산비탈의 거밋한 다북솔들이 수시로 뒤채이며 우수수 떨었다. 어쩐지 누가 뒤따르는 것만 같은 경계심이 들었다. 도래굽이를 빠져나올 때 얼컹바위뒤에서 웬 그림자가 언뜰거리는것이 얼핏 눈을 때렸다. 미구에 길섶으로부터 작달막한 녀자애가 뒤똥거리며 나타났다. 빨간수건으로 머리를 꽁꽁 싸고 헌저고리를 고양이 우산쓰듯 걸친 그 애는 다름아닌 애자였다. 애숙이는 삽시에 푸르르 해났다. 따라오겠다고 앙살을 부리는것을 겨우 떼놓고 왔더니 끝내 뒤를 밟아왔다. 애자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오똑 멈춰섰다. “너 왜 왔니 ? 돌아 안 가겐?” 애자는 눈이 올롱해서 까딱 움직이지도 않았다. 애숙이는 기가 돋아 씽 달려가 애자를 붙들고 막 죽달질해놓았다. 그러자 애자는 몸부림치면서 앙고집을 부렸다. 애숙이는 밸이 볼똑해난 김에 동생의 애리애리한 뺨을 찰싹 후려쳤다. 발그레 얼었던 애자의 얼굴에 손자욱이 파랗게 났다. 애자는 오돌차게 입술을 깨물며 눈을 꼭 감았다. 구슬같은 눈물이 찔끔 솟았지만 울음은 터뜨리지 않았다. 얼마나 암팍진 앤가! 애숙이는 가슴이 오주주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요, 괘씸한것이…” 그는 애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화끈해나는 동생의 뺨을 어루만지며 끝내는 쿨쩍거리고야말았다. 다른 집 같으면 응석둥이고 귀하게 자랄 동생이다. 하지만 궁한 집 아이 셈이 빨리 든다고 저녁마다 새끼를 꼰다, 벼짚을 추린다 하며 언니의 가마니짜기에 손을 돕느라 눈가물 치다가 곤드라지는 애자다. 이어 애자도 “언니야—”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애자야 언니말 들어. 네까지 나오면 어머니가 어떻게 혼자 계시니? 근심에 겨워 또 식사도 안하실거야.” 애숙이는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며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혼자 가다가 메돼지랑 만나면 어쩔래 ? ” “일없어, 언닌 인젠 어른이 다 됐단다. 너  광수할머니의 옛말을 못 들었니? 짐승들이란 아이들만 보면 막 덮쳐들지만 어른들과는 어찌지 못한다구…” “그건 거짓부리구. 정말 만나면 어쩔래?” “그래도 언니에겐 방법이 있어. 빨리 돌아가봐. 어머니가 더 하시면 누가 시중들래?” 그래도 애자는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머뭇거리기만 했다. “정말 말 안 들으면 언니가 또 성내겠다.” 애숙이는 짐짓 성내는체 하며 발을 탕 굴렀다. 애자는 울먹울먹해서 돌아섰다가는 다시 몸을 돌리군 했다. “언니야,  메돼지랑 보면 꽁꽁 숨어!” 애숙이는 목이 꽉 메여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홱 돌아섰다. 눈물이 저도 몰래 앞을 가리웠다. 그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소궁둥이를 철썩 쳤다. 수레는 울퉁불퉁한 길로 덜컥거리며 달렸다. 눈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까칠령을 에돌 때는 함박눈이 제법 펑펑 쏟아졌다. 하늘땅을 분간할수 없이 대지가 눈발속에서 핑글핑글 타래치는것만 같았다. 산봉우리도, 골짜기도, 나무숲도 모두 희뿌연 대기속에 잠겼다. 늘차게 올리뻗은 달구지길도 끝이 있을상 싶지 않았다. 애숙이는 믿도 끝도 없는 심연속으로 빠져들어가는것만 같아 속이 허전해났다. 아까 영자네 울안에서 수레를 빌려가지고 나올 때 영자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애숙아, 가지 말아. 너 혼자 갈데가 아니야. 나도 오늘 일이 있어서…” 그때 애숙이는 믿던 기둥이 무너지듯 속이 허전해났었다. 애숙이는 그래도 영자가 따라나서기를 은근히 바랐었다. 영자는 애숙이보다 두살 우이지만 애숙이와 동기동창이였다. 학교때 애숙이는 한과목이라도 90점 아래를 맞으면 선생님앞에서 고개도 못 쳐들었지만 영자는 그렇지 않았다. 락제점수를 맞고도 히히닥닥거리며 사내애들처럼 법석을 놓군 했다. 그렇던 영자는 마을로 돌아오면서부터 상상외로 발전이 빨랐다. 사원들도 벌벌거리는 그를 좋아했다. 우선 일이 사랑이라고 무슨 일이든 남자들처럼 씨억씨억 잘 해제꼈으며 남의 손도 돕기를 즐겼다. 그래서 마을의 들뜬 총각들이 꽃같이 나긋한 애숙이를 탐낸다면 아낙네들은 거무트럼한 영자를 눈독들였다. 둘도 없는 맏며느리감이라고말이다. 애숙이도 막막한 집살림을 걸머지게 된 다음부턴 점차 영자를 돋보게 되였다. 오늘 영자네 소수레를 빌자는데는 자기도 인젠 약자가 아니라는 것을 시위하고싶었던것이다. 영자는 오늘 애숙이가 혼자 나무하러 간다니 웬간히 놀랐다. 그도 나무를 해봤지만 혼자 해본적은 없었다. 그는 애숙이를 유심히 살펴보기까지 했다. 어쩐지 그전 애숙이 같질 않았다. “애숙아, 래일 나와 같이 가자꾸나. 래일엔 나도 꼭….” “오늘 같이 가면 안되니?” 애숙이는 허전한 김에 유감을 감추지 못했다. “야, 오늘 그 동무네 집에서 사돈보긴지 넉돈보긴지 온단다.” “벌써?!” 그 동무란 한달전에 영자와 약혼한 웃마을 총각이다. 그제야 애숙이는 영자가 오늘 별스레 분세수도 하고 눈섭까지 그렸다는것을 발견했다. 애숙이는 영자를 난감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의젓한 신랑감을 얻은 영자가 부러웠고 또한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심정이여서… 까칠령을 넘어 노루골에 이르렀을 때는 눈도 멎고 하늘도 한귀 건뜩 들린 뒤였다. 거대한 화폭으로 펼쳐진 심산의 설경은 애숙의 눈을 황홀케 했다. 웅위롭게 솟은 산봉우리들, 수림의 운치를 돋구며 일매지게 들어선 나무들, 그 나무가지마다 피여나는 눈꽃들… “야÷” 아름다운 설경에 취한 감탄인지 아니면 끝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희열인지 애숙의 얼굴은 홍도화같이 피여났다. 애숙이는 좋아서 눈갈기를 일구며 퐁퐁 뛰였다. 뛰고보니 누가 보는것만 같아 쑥스러운감이 들었다. 그는 양지바른 바람막이에 수레를 세워놓고 나무를 찍기 시작했다. 웬간한것은 얼었는지라 툭툭 잘도 나갔다. 매번 조막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눈사태인양 나무에서 눈가루가 와시시 흩날렸다. 애숙이는 그 멋이 좋았다.시름이고 뭐고 다 그속에서 사라지는것 같았다. 산속의 주인이나 된듯 툭실한 나무도 해보고싶었다. 그는 팔뚝만한 마른 가둑나무 한그루를 골라잡았다. 눈을 찔끔 감고 찍었더니 도끼날이 밑둥뿌리에 푹 박혔다. 뽑자니 움쩍도 안했다. 그는 제법 총각들처럼 아예 장갑을 벗어내치고 덤벼들어 “옛쌰!” 하며 와락 잡아당겼다. 도끼날이 뽑히는 바람에 그는 허망 나가 눈우에 뒹굴었다. 그래도 애숙이는 즐거워 깔깔 웃어댔다. 나무는 종시 꺼꾸러지지 않았다. 팔목이 시큼해났다. 그는 도끼날이 빗나가며 발끝에 가 푹 박혔다. 띠금 할뿐 별다른 감각이 없었다. 그는 도끼를 뿍 뽑아들고 다시 달려들었다. 끝내 찍어넘기고야말았다. 애숙이는 눈우에 풀썩 몸을 던지고 숨을 돌렸다. 저 멀리 하늘가에서 감돌아치는 구름과 더불어 그의 가슴은 부풀어올랐다. 아츠랗게 치솟은 나무아지들도 하늘하늘 춤추는듯 했다. 꿈이라도 꾸고싶은 심정이여서 그는 눈을 사르르 감아보았다… 흰구름 감도는 산비탈의 파아란 잔디풀, 끝없이 설레이는 소나무숲, 웃음소리, 노래소리로 넘쳐나는 즐거운 “6·1”절 산보놀이… 애숙이는 노래부르기에도 알아맞추기에도 모두 엄지손가락을 꼽는 학교의 총아였다. 영자는 “보배” 한장 주어서 사이다 두병이나 선사받았다고 해뜩거렸고 게사니처럼 외마디곡을 꿱꿱 넘겨 사람들을 웃긴 흥수도 사탕한봉지를 받아안았다고 우쭐렁거렸다. 애숙이는 그것이 눈꼴사나왔다. 자기한테 아무것도 선사하지 않은 부모들이 오히려 고마왔다. 나어린 심령에도 먹는것보다 영예가 더 좋았던겄이다. 애숙이는 또 사생들앞에서 자기가 쓴 시를 격조높이 읊조렸다.   아, 푸른 리상 키워가는 우리들의 가슴에도…   어머니는 눈굽을 찍었고 아버지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애숙의 마음도 둥둥 떴다. 갈매기마냥 깃을 펴고 날것만 같아서…. 눈을 감고 추억속에서 꽃구름을 쫓던 애숙이는 발끝이 찡찡 저려나 눈을 떴다. 소슬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나무우에서 은가루를 채질하듯 눈가루가 뽀얗게 흩날렸다. 그는 속눈섭이 간지러워 미간을 쪼프리고 아픈 발을 쳐들었다. 아까 빗나간 도끼에 찍히운 발이였다. 솜신을 벗고보니 온통 피범벅이였다. 그는 속이 섬찍했다. 발가락사이가 째졌는데 피에 버물린 흰살이 비죽이 번져져있었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 어디서 이런 장면을 목격했던가! 옳지, 몇년전 학교목공실에서… 교장사업을 맡아보시던 아버지가 학교목공실에서 로동개조를 할 때였다. 애숙이는 날마다 밥을 날랐다. 그땐 애숙의 푸른 꿈도 깨진 뒤였다. 눈가에 언제나 눈물을 가랑가랑 달고다녔다. 어느날 목공실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전기톱에 끼인 통나무를 빼느라 애를 쓰고있었다. 험상궂게 수척해진 아버지가 가긍하여 그는 또 눈물이 글썽해졌다. “아버지!” 그가 아버지를 불렀을 때였다. 고개를 돌리던 아버지가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앗차!” 하며 오른손을 쥐고 펄쩍 뛰였다. 달려가보니 손바닥이 오늘 자기의 발처럼 살이 비죽이 나와 흐들흐들거렸던것이다. “허허, ‘고리내 나는 아홉째’들의 약점이 바로 이런데서 보이는구나. 단련하긴 단련해야겠다. 애숙아, 저 상자우의 헝겊으로 이걸 꾹 싸매다구.” 그때 아버지는 어설프게 쓴웃음을 지었다. 애숙이는 손이 떨려 바로 싸매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시 이를 악물고 통나무를 끌어 안더니 헹헹 하며 땀을 흘렸었다… 광대뼈 툭 불거진 면상에 피줄이 꿈틀거리던 아버지의 그때 형상이 눈에 선히 떠올랐다. 비장한 감이 북받쳤다. 애숙이는 허리에서 밥보자기를 풀어 한쪽 끝자락을 쫙 찢어가지고 상처를 꽁꽁 싸맸다. 벌떡 일어서니 전기에라도 붙은듯 하신에 줄이 쭉 올리 뻗쳤다. 그는 입술을 감쳐물고 한발, 두발 걸음을 뗐다. 여라문 발자국 떼고나가니 진통이 멎은듯 했다. 애숙이는 또 도끼를 휘둘러댔다. 바람이 일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해놓은 나무들을 단을 묶어 무져놓으니 꽤나 되였다. 자기손으로 해놓은 나무라고 생각하니 보람찬 자호감이 들었다. 배가 촐촐해났다. 그는 소여물을 주고 나서 밥보자기를 풀고 주먹밥을 꺼내 먹었다. 별미였다. 게눈 감추듯 주먹밥 두개를 제꺽 재껴치웠다. 간에 기별도 간것 같지 않았다. 그는 눈을 한웅큼 다져쥐고 어석어석 씹었다. 여름에 오이랭국 마시기보다 더 시원했다. 나무를 싣고나니 골짜기를 메우려는듯 눈보라가 터졌다. 점심땐지 저녁땐지 분간키 어려웠다. 애숙이는 급히 서둘렀다. 둥글황소는 심술스레 무작정 앞으로 내달렸다. 길도 잘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짐바를 제대로 매지 못해 나무단들이 씰그러졌다. 수레는 마치도 파도에 시달리는 일엽편주와도 같았다. 애숙이는 비지땀에 시루떡이 되였다. 상한 발도 욱신욱신 아파났다. 얼마 못달리고 수레는 끝내 번져졌다. 나무를 몽땅 부리우고 다시 한번씩 실었다. 싣고나니 짧은 겨울해가 사라지고 사위는 어둑어둑해졌다. 어디선가 눈보라 포효하는 소린지 짐승소린지 무서운 괴음이 이따금씩 들려왔다. 애숙이는 속이 바질바질 탔다. 그는 소고삐를 거머쥐고 앞에서 당기기만 했다. 미물인 둥글소는 엇서기라도 하듯 앞다리를 떡 뻗친채 눈만 휘번득거렸다. 애숙이는 애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눈보라는 더 기승을 부린다. 앞산 소나무숲도 넘늘거리며 쑤우쑤우 하고 태질하며 아우성쳤다. 애숙이는 결이 나서 소대가리를 막 치려다가 문득 자기네 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다칠가봐 우려되였다. 그는 뒤에 가서 소궁둥이를 냅다 후려쳤다. 소란 놈은 이때라고 와락 앞으로 뛰여나갔다. 미처 어쩔새 없었다. 쫙— 옷이 찢기며 애숙이는 푹 꼬꾸라졌다. 언 뺨도 몆군데 볼품없이 긁히웠다. 그바람에 애숙이는 수건이 벗겨진줄도 몰랐다. 그는 수레가 다시 번져질가봐 벌떡 일어나 소를 쫓아갔다. 노루골어귀를 벗어나니 숨이 활 나갔다. 수레바퀴가 눈을 다지며 가증스레 빠드득거렸다. 까칠령중턱까지 내려오니 날씨는 더욱 어두워졌다. 바람이 휙 불어칠 때마다 애숙이는 머리가 쭈뼛이 일어섰다. 이 구간은 까칠령 치고 지세가 제일 험악했고 옛날부터 야수도 많았다고 한다. 왼켠에 우뚝 솟은 매부리코바위의 검은 음영이 비껴 아래 골짜기는 밑창없는 함정과도 같이 무시무시했다. 애숙이는 악마굴을 지나는듯 속이 조마조마해났다. 악몽을 꾸는것이 아닌가 싶었다. 까칠령에는 전설도 많다. 무슨 척병장수가 은설공주를 위해 까칠령어귀를 지켜섰다가 나중엔 바위로 변했다는 이야기며 은설공주가 피를 토하는 로파요귀를 보고 기혼했다는 이야기들이 지금도 애숙의 기억엔 또렷하다. 그것이 소시적에 들은 믿기 어려운 옛말이였지만 어쩐지 이 시각 애숙의 눈앞엔 피를 문 요귀가 자꾸만 떠올랐다. 소름이 끼쳐 감히 주의를 살펴보기도 무서웠다. 마침내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좌우를 살피다가 피끗 뒤를 돌아보았다. 찰나, “앗!” 애숙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수리채를 부둥켜안았다. 분명 어둑시그레한 야광속에 새하얀 괴물이 흐느적거리고있었다. 똑마치 옛말에서 나오는 로파요귀가 바람결을 타고 은설공주를 쫓듯이 말이다. 애숙이는 혼이 절반 나갔다. 그는 정신없이 소궁둥이만 두드려댔다. 소는 골을 내저으며 뛰였다. 수레바퀴가 마사지려는듯 덜커덩거렸다. 애숙이는 달음박질하다가도 휙 돌아다보군 했다. 백색괴물은 의연히 뒤를 바싹 따랐다. 소가 굼뜬것이 한스러웠다. 정말이지 수레고 나무고 다 팽개치고싶었다… 너럭바위굽까지 오니 돌너들길이여서 수레가 몹시 뒤채이였다. 소도 굼떠졌다. 애숙이는 숨이 턱에 닿아 할딱거렸다. 소도 인젠 못 참겠다는듯 헝헝 용을 썼다. 수레가 용수철마냥 들썩거리며 기우뚱거렸다. 삐죽이 내민 돌뿌리를 하나 넘어서며 덜컥하더니 수레는 길섶으로 쭉 미끄러져나가며 덜렁 나가 번져졌다. 애숙이도 나무에 걸린채 수레밑에 쓰러졌다. 인젠 영낙없이 죽었구나! 어쩐지 삶의 마지막 한순간인듯 싶어서 눈물이 저절로 솟구쳤다. 어머니의 가긍한 모습도 어렴풋이 떠올랐고 애자의 애련한 얼굴도 스쳐지났다. 그는 고통스레 눈을 꼭 감았다. 이윽토록 아무런 자취도 없었다. 가슴이 푸지여지는듯 숨이 활 내려갔다. 죽음을 각오하니 공포심도 없어졌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하얀 괴물은 여전히 수레에 붙어 흐느적거리고있었다. 그는 종주먹을 쥐고 한걸음한걸음 다가섰다. 이상했다. 괴물은 덮치지도 않고 그냥 률동적인 동작만 반복했다. 그는 더욱 담대해졌다. 가까이에 가서 와락 덮쳐들려던 애숙이는 그만 억이 막혀 그 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그 “괴물”은 다름아닌 자기의 하얀 수건이였다. 불현듯 그는 하하 하고 남자들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앙천대소했다. 어처구니없이 한바탕 웃고나니 사지가 나른해져졌다. 바람이 휙 불어치자 전신이 선뜩했다. 그제야 만져보니 온몸이 물자루가 되여있었던것이다. 이발이 떡떡 맞쪼아지며 오한이 났다. 게다가 번져진 수레까지 보니 막연해났다. 또다시 실어야 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사맥이 탁 풀리며 아무데고 척 드러눕고만 싶었다. 산중의 야밤은 깊어만 갔다. 설음이 왈칵 치밀어 애숙이는 저도 몰래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왜 자기의 앞길엔 늘 막막한 일만 가로 놓이는가?… 애숙의 어린 시절은 좋았지만 청춘시절은 랭혹했다. 그가 한창 대학에 갈 꿈을 꾸고있을 때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드러눕게 되였다. 애숙이는 더는 책 볼 경황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노염을 사군 했다. 간부위가 아파날 때면 아버지의 이마전엔 콩알같은 땀방울이 내돋혔다. 그래도 아버지는 언제 한번 미간을 찌프린적 없이 하냥 쾌활했다. 대학시험을 칠 림박에 아버지의 병은 더 위중해졌다. 애숙이는 아버지가 노여워하실가봐 매일저녁 강의 들으러 다녔다. 위생소의 장의사가 왔다간날 저녁에 애숙이는 근심때문에 강의를 들을수 없었다. 오후에 아버지가 식은땀만 흘리며 헐떡거리시던 정경이 자꾸 떠올랐다. 그는 첫시간만 듣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울안에 들어서니 집안으로부터 페부를 긁어내는듯한 아버지의 통곡소리가 터져나왔다. 애숙이는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처음 듣는다. 처음 듣는 울움소리여서인지 그처럼 비감하게 들렸다. “야, 이거 애숙이 대학 가는걸 보고 죽자던 노릇이… 헉헉” “여보, 정신 나갔어요. 래일 당장…후—” “그만두오, 시내병원에 간다고 살수 있겠소. 저 애숙이와 애자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살고싶지만 인젠 다 글러먹었소.” “그러면 전…” “저 애들이나 잘 길러주오. 애들이 아직 어리니 당신이 너무 상심하면…” “여보—” 이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통곡소리가 사품치며 흘러나왔다. 그날 저녁 애숙이는 늦게야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허허, 오늘저녁엔 우리 애숙이가 터득되지 않는 문제에 부딪친 모양이구나.” “……” 아버지의 소탈한 웃음소리에 애숙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동싯한 턱도 바들바들 떨렸다. “애숙아, 오늘저녁엔 일찌감치 자거라. 학습이란 무리하게 해서도 안되는 법이다. 금년에 못 붙으면 또 명년이 있지 않니, 아버지도 명년엔—” “아버지—” 애숙이는 끝내 참지 못하고 아버지의 품에 쓰러졌다… 며칠후,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애숙이도 시험을 제대로 치지 못했다. 나어린 처녀는 절망속에서 허덕이였다. 어머니는 딸의 시험공부를 위해 집살림을 혼자 도맡고 아글타글했다. 그것이 애숙이를 더욱 불안케 했다. 그는 이태나 시험을 쳤지만 붙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지쳐눕게 되였다. 희망이고 뭐고 그는 삶의 의의조차 상실해버렸다. 몇번이고 내동하가에 나가 배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애어린 동생의 앞날이 근심되였고 가련한 어머니가 불쌍했다. 애숙이는 아예 책에서 손을 놓고 집살림이나 잘 꾸려나가려 했다. 허나 그것도 오늘일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일이 배배 탈릴 때면 애자도 숙제책을 놓고 도와나서군 했다. 기특한 일이였지만 애숙의 가슴은 아팠다. “누가 널 손대래? 공부나 해라!” “언니야, 난 집일을 도우면서도 얼마든지 대학으로 갈수 있어. 우리 반 선생님도 고생을 많이 해야 성공한다고 했어.” 그럴 때마다 애숙이의 눈엔 눈물이 핑그르르 돌군 했다… 애숙이는 울음을 그치며 눈물을 닦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레에 매달려 나무단을 다시 부리웠다. 이젠 바람도 멎고 수림도 깊은 잠에 취한듯 잠풍해졌다. 별로 잠기가 오는듯 혼곤해지며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불현듯 저 아래 산기슭에서 몇가닥의 불빛이 귀신불처럼 번쩍거렸다. 애숙이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미구에 산울림같은 웨침소리가 아츠랗게 메아리쳐왔다. 귀를 강구니 분명 자기를 부르는 소리였다. 화답하려고 목을 빼들었으나 목안이 꽉 메는듯 했고 전신이 개개 풀리는듯 녹신해졌다. 불빛도 가까와지고 웨침소리도 똑똑해졌다. 애숙이는 눈앞이 아물아물해나 몸을 휘뚱거렸다… “애숙아!” “애숙아—” 애숙이는 어렴풋한가운테서 누가 자기를 흔들며 부르고있음을 감각했다. 눈을 가슴츠레 뜨고보니 영자와 흥수였다. 애숙이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애숙아, 일어나봐, 우리 아버지랑 경철이랑 광수누나랑 모두 떨쳐나섰어!” 영자가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산아래를 내려다보니 사처에서 전지불이 어둠을 가르며 번쩍거렸다. 애숙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애숙이네 일행이 마을어귀에 들어서니 동네사람들이 욱 몰려들었다. 흥수는 개선장군마냥 앞에서 수레를 몰며 우쭐렁거렸다. “길을 썩썩 내며 환영합소!” 아낙네들이 애숙이를 에워싸고 발이 얼지 않았나 손이 얼지 않았나 하며 뜨겁게 어루만져주었다. 남정네들은 대견해서 혀를 끌끌 찼다. 애숙이는 가슴이 후더워났다. 언젠가 애숙이는 꿈을 꾸었댔다. 꿈에 마을 사람들이 지금처럼 자기를 에워싸고 동구박까지 바래며 축하해주었다. 대학으로 간다고… 그런데 오늘은… 애숙이는 로동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머금었다. 집에 이르니 애자가 어머니를 부축하여 문밖에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애숙이는 어머니를 부르며 달려가다가 그만 몸을 가누지 못했다. 영자가 그를 안고 들어가 싸늘해진 가마목에 눕혔다. 밖에선 흥수가 마을청년들을 데리고 나무를 부리운다 팬다 하며 북적거렸다. 애자가 패놓은 나무를 안아들여다 불을 지폈다. 잠시간에 가마가 잘잘 끌어넘쳤다. “언니야, 언니가 해온 나무로 불을 지폈어. 이렇게 툭실한것도 밀어넣구…” 애자는 좋아서 손시늉까지 해가며 조잘댔다. 애숙의 얼굴엔 자랑찬 미소가 어렸다. “애자, 순자네 야간상점에 가 술이나 떠오렴.” “술은 왜?” “저봐라, 밖에서 모두들 수고하고있잤니.” “피—” 애자는 할기죽거리며 술병을 쥐고 나갔다. 애숙이는 영자를 보고 청들었다. “너도 좀 수고해달라. 가마도 가시고…” “응, 그러마. 헌데 이담엔 제발 이러지 말아. 한마디면 곁에서 어련히 해줄것을….” 애숙이는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니야 영자, 난 오늘 대학에 붙은것만 같애.” 그의 눈은 새별처럼 빛났다. 영자도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미구에 집안에 훈훈한 뜬김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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