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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山あり谷あ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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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두자춘(일한번역문) 댓글:  조회:3435  추천:0  2015-07-09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번역:김정웅(연변대학 일어계)   一   어느 봄날의 저녘 무렵이였다. 당나라의 수도 낙약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서 멍하니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두자춘이라고 하며 원래는 부자집의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재산을 탕진하고 그날그날  살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가련한 처지가 되였다. 여하튼 그 때 즈음 낙양이라고 하면 천하에 어깨를 겨룰만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번창한 수도였기에 사람과 차들이 끊임없이 다녔다. 노인이 쓴 비단모자라든가 토이기 여성의 금귀걸이 그리고 백마에 장식한 색실로 만든 말고삐들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모습은 마치도 한 폭의 그림 마냥 아름답다. 하지만 두자춘은 여전히 성문 옆의 성벽에 몸을 맞긴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이미 가는 달이 나부끼는 운무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마치도 손톱 자욱처럼 어렴풋이 하얗게 떠있다. 《날은 저물어 가고 있고 배는 고프고 게다가 이젠 어디를 가더라도 재워줄 곳은 없을 것 같고……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살 바엔 차라리 강에라도 몸을 던져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두자춘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이렇게 목숨까지 버릴가하는 가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때 어디에서 왔는지 갑자기 그의 앞에 외눈박이 작은 눈을 한 노인이 발걸음을 멈춘고 서있었다. 그 노인은 석양 빛을 받아서  큰 그림자를 성문에 드리우면서 지그시 두자춘의 얼굴을 보더니 《너는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하고 건방지게 말을 걸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오늘밤 잘 곳이 없어서 어쩌면 좋을가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노인이 갑작스런 질문에 두자춘은 눈을 내리 깔고 생각없이 정직한 대답을 해버렸다. 《그런가. 가엽기도 하구나》 노인은 잠간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길가는 사람들을 빛추고 있는 석양 빛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럼 내가 좋은 생각을 하나 가르쳐 주리라. 지금 이 석약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면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반드시 한 수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황금이 묻혀있을 것이다.》 《정말이십니까?》 두자춘은 경악해서 내리 깔았던 눈을 올리 떻다. 그런데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그 노인이 어디를 갔는지 이미 근처에는 그와 비슷한 그림자도 형태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창공에 걸린 달빛은 방금 전보다도 더욱 밝아지고, 쉴줄모르고 오가는 행인들의 위에는 이미 성급한 박쥐 두 세 마리가 펄펄 춤추고 있었다.   二   두자촌은 하루 사이에 낙양성에서도 제일로 가는 부자로 되였다. 그 노인의 말과 같이 석양에 그림자들 비추고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밤중에 살그머니 파보았더니, 큰 수레에도 다 못 실을 정도의 황금이 한가득이 나온것이다. 큰 부자가 된 두자춘은 인츰 훌륭한 집 한 채를 사서 현종황제도 부럽지 않을 정도의 사치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란릉의 술과 계주의 용안을 사들이고 정원에는 하루에도 네 번씩 색갈을 바꾼다는 목란을 심고 백공작새 몇마리를 풀어놓고 사육했다. 그리고 옥을 모으고 비단 옷을 짓고 향목으로 된 마차을 만들고 상아된 걸상을 사들이는 등 그 사치함을 하나하나 쓸려면 언제까지나 이 이야기가 끝이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자 이러한 소문들을 듣고, 지금까지 길에서 만나도 인사조차도 하지 않던 친구들이 조석으로 물려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날이 지나면서 그 수는 불어나서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에는  이름 있고 재능 있는 남자와 미녀들이 많다고 하는 낙양성에서 두자춘의 집에 오지 않은 것은 한사람도 없을 정도로 되여버렸다. 두자춘은 손님들을 상대로 매일과 같이 주연을 베풀었다. 그 주연의 성대함은 이루다 입으로는 말할 수가 없다. 극히 일부분만 말하더라도, 두자촌이 금술잔에 서양에서 가져온 와인을 부어마이고 인도태생의 마법사가 칼을 삼키는 쇼를 열심히 보고 있으면 그 주위에는 20여명의 여자들중 10명은 비취로 만든 연꽃을, 또 10명은 마노로 된 목란꽃을 머리에 장식하고 피리와 거문고를 재미있게 연주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부자라 할지라도 돈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므로, 그 대단한 부자인 두자촌도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는 사이에 점점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라는 것은 박정한 물건이므로 어제까지 매일과 같이 오던 친구들도 오늘에는 문앞을 지나도 인사하로 조차도 오지 않는다. 끝내 3년째의 봄, 두자촌은 또 다시 이전과 같이 땡전 한 푼 없는 알거지가 되고보니, 넓은 낙양성내에서도 그에게 잠자리를 빌려주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아니 잠자리를 내여주기는 커녕 지금은 물 한 사발도 베풀어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저녘무렵, 또 한 번 그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로 가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하고 서있었다. 그러자 역시 옛날 처럼 외눈박이 노인이 나타나서 《너는 뭘 생각하고 있냐?》라고 말을 거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자춘은 노인의 얼굴을 보자 부끄러운듯이 눌길을 아래로 향한채로 잠간동안은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날도 친절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기에 이쪽도 전과 같이 《나는 잘곳 조차도 없기에 어떻게 된 판인가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고 주뼛주뼛 대답했다. 《그런가. 그것은 참말로 불쌍한 일이로구나. 그럼 내가 좋은 일을 하나 그르쳐 주리라. 지금 이 석양빛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거던 그 가슴에 해당하는 부분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틀림 없이 한 수레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황금이 묻혀 있을 것이다》 노인은 이런 말은 남기고는 이번에도 인파 속으로 깜쪽같이 숨어버렸다. 두자춘은 그 이튿날부터 즉시로 천하 제일의 대부자로 되돌아 갔다. 부자가 된 동시에 그는 변함없이 마음껏 사치한 생활을 시작했다. 정원에 피어있는 목란꽃, 그 속에서 잠자고 있는 백공작새, 그리고 칼을 삼키는 인도에서 온 마법사, 모든 것이 여전 그대로인 것이다. 때문에 한 수레 가득했던 그 엄청난 황금도, 또 3년이 지나는 사이에 깨끗이 없어져버렸다.   三    《너는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외눈박이 노인은 세전째로 두자춘의 앞에 와서 같은 말을 물어왔다. 물론 그는 그때도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서 갸날프고 연약한 모양새로 운무를 비집고 나오는 초승달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서있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오늘 밤 잘 곳도 없어서 어떻게 할것인가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가. 그것은 가엽은 일이로구나. 그럼 내가 좋은 일을 하나 가르쳐주리라. 지금 이 석양빛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거던 그 배에 해당하는 부분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틀림 없이 한 수레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노인이 여기까지 말하자 두자춘은 급히 손을 들어 그 말을 가로챘다.  《아니, 돈은 이젠 필요없는 것입니다》  《돈이 이젠 필요 없다고? 음…… 그럼 사치를 누리는 것에도 끝내는 실증이 났다는 말이네》  로인은 의심스러운듯한 눈길을 하면서 지그시 두자촌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사치에 실증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것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 것입니다 》고 두자춘은 불평 가득한 얼굴로 돌견빈(突慳貪)에게 말했다.  《그것 재미있네. 왜서 또 인간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것인가?》   《인간은 모두 박정합니다.내가 큰 부자로 되였을 때는 간살부리며 빌붙지만은, 일단 가난해지면 보세요 상냥한 얼굴 조차도 보여줄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것들을 생각하면, 만약 또 한번 대부자가 되더라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노인은 두자춘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히쭉히쭉 웃기 시작했다. 《그런가. 아니 넌 젊은 놈 답지 않게 기특하게 사리를 아는 사내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가난하게 살지라도 안온히 살 작정인가》 두자춘은 조금 망설이였습니다. 하지만 인츰 단념한 듯이 눈을 올리뜨고 호소라도 하듯이 노인의 얼굴을 보면서 《그것도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제자로 되여 선술을 수행할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니 숨겨서는 않됩니다. 당신은 덕행이 높으신 신선입니다. 신선이 아니라면 하루 밤 사이에 나를 천하의 대부자로 만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부디 나의 선생이 되여 불가사의한 선술을 가르쳐 주세요》 노인은 양미간을 찌푸린 채로 잠간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무슨 일인가 생각하고 있는듯 하더니 이윽고 썽긋 웃으면서 《어찌 됐든 나는 아미산에 살고 있는 철관자(鉄冠子)라고 하는 신선이다. 처음 너의 얼굴을 보았을 때, 어딘가 빨리 깨닫을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두 번이나 대부자로 되게했지만 그 정도로 신선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나의 제자로 받아 들이기로 하리라》고 흔쾌히 응낙해 주었다. 두자춘은 기쁘기 그지 없었다. 노인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땅에 이마를 붙이고 몇번이나 철관자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니, 그렇게 례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나의 제자로 되였다 할지라도, 훌륭한 선인이 될수 있는가 없는가는 너한테 달려 있는 것이므로. 하지만 하여튼간에 우선 나와 함께 아미산 산중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 다행히 여기에 대나무 지팡이가 하나 떨어져 있네. 그럼 서둘러 여기에 타게나, 단숨에 하늘을 날아보세》 철관자는 거기에 있던 푸른 대나무 한대를 주어 올리고서는 입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두자춘과 함께 그 대나무 가지에 말이라도 타듯이 두 다리를 벌리고 올라탔다. 그러자 불가사의하게도 죽장은 금세 룡이나 된듯이 기세 사납게 창공으로 날아올라서 맑게 개인 봄날의 밤하늘을 아미산의 방향을 향하여 날아서 갔다. 두자춘은 감담이 서늘하여 겁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아래에는 단지 푸른 산들이 저녘 어스름 속에 보일 뿐으로서 그 낙양성의 서쪽 성문은(운무에 가려진 탓에) 어디를 찾아도 보여지지를  않았다. 그 사이 철관자는 허연 턱수염을 바람에 나붓기면서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침엔 북해서 놀고 해질녘에는 창오 소매의 안감은 청사로되 성질 또한 조잡하구나 세 번이나 악양에 들어갔건만 사람조차 모르고 시 읊조리며 동정호를 날아지난다      四   두 사람을 태운 청죽은 어느 틈에 아미산에 날아내렸다. 거기에는 깊은 계곡에 인접한 폭이 넓은 하나의 큰 암석의 위였다. 너무나도 높은 곳이여서 창공에 드리워져 있는 북두칠성이 사발 만큼씩한 크키로 빛을 내고 있었다. 원래부터 인적이 끊긴 산인지라 주의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겨우 귀에 들어오는 것은 절벽에서 자라고 있는 구불구불한 한 그루의 솔나무가 밤바람에 내는 소리 뿐이다. 둘이 이 바위의 우에 오자 철관자는 두자춘에게 절벽의 아래에 앉힌다. 《나는 지금부터 하늘에 가서 서왕모를 뵙고 올테니 너는 그 사이 여기에 앉아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도리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 내가 없어진 사이 여러가지 마성이 나타나서 너를 속이려고 할것인데 예를 들어 어떠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결코 소리를 내여서는 않된다. 만약 한 소리라도 내면 너는 절대 선인이 될수 없다는 것을 각오하라. 알아들었어. 천지가 찢어지더라도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거야》라고 말했다. 《괞찮아요. 결코 소리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목숨이 잃더라도 소리를 내지 않고 참을 것입니다》 《그런가 그말을 듣고 나도 안심했다. 그럼 나는 다녀오겠으니》 노인은 두자춘에게 이별을 고하고 또 그 죽장을 타고서 밤 어둠에 자취를 감춘 산들을 떠나 하늘로 깜쪽 같이 없어져 버렸다. 두자춘은 단지 혼자서 바위 위에 앉은 채로 조용히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이럭저럭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심산의 차건운 밤 기운이 엷은 옷을 스며들 즈음에 갑자기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있는 자는 누구냐?》라고 욕설을 퍼붓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두자춘은 선인의 가르침대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또 잠간 지나니 역시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장 목숨이 끊길 것을 각오하라》고 위엄있게 위협하는 것이였다. 두자춘은 물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어디에서 왔는지 반짝반짝 눈빛을 번뜩이는 호랑이 한 마리가 공연히 바위 위에 뛰여올라서 두자춘을 노려보면서 큰 소리로 사납게 날뛰였다.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머리 위의 솔나무 가지가 격심하게 와삭와삭 흔들린다고 생각할 찰나, 뒷켠의 절벽의 꼭대기로부터는 큰 나무통 정도 굵기의 뱀 한 마리가 불길 같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순식간에 가까이에 내려오는 것이였다. 하지만 두자춘은 태연히 눈썹 하나 찌프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범과 뱀은 하나의 먹이를 겨낭하고 서로 틈만 노리고 있는가 싶더니,잠간 서로 노리다가 이윽고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것 없이 거의 동시에 두자춘에게 덤벼들었다.하지만 범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리우는가 아니면 뱀에게 삼키우는가. 두자춘의 목숨이 순식간에 없어지리라고 생각할때 범과 뱀은 미치 안개 처럼 밤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오직 절벽의 솔나무만이 방금 전과 같이 스륵스륵 나무가지들이 소리만은 내고 있는 것이였다. 두자춘은 안도의 숨을 몰아 쉬면서 이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것인가를 마음 속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자 한 가닥의 바람이 불어치고 먹장과 같은 검은 구름이 일면을 뒤덮으면서 연한 자주색의 번개가 어둠을 두 가닥으로 째면서 굉장한 천둥이 울었다. 아니 우뢰 뿐만 아니였다. 그것과 함께 폭포와 같은 장대비가 갑자기 죽죽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자춘은 이 천변의 속에서 무서움도 없이 앉아있었다. 바람 소리와 장대비 그리고 끊임 없는 번개 빛, 잠간 사이에 그 유명한 아미산도 전복되는가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사이 귀청을 찢는 듯한 큰 번개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던 검은 구름 속으로 부터 시뻘건  한 줄기의 불기둥이 두자춘의 머리 위에 떨어져내렸다. 두자춘은 무심결에 귀를 막고 바위 위에 엎드렸다. 하지만 인츰 눈을 뜨고 보니 하늘은 여나 다름 없이 맑게 개이고 저켠에 치솟은 산의 위에도 사발 만큼한 북두칠성이 변함없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볼라니 방금전의 대폭풍우도 저 범과 하얀 뱀도 모두다 철관자가 없는 틈을 타서 마성의 못된 장난질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춘은 끝내 안심하고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또 한번 바위 위에서 자세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그 한숨 소리가 멎기도 전에 이번에는 그가 앉아 있는 앞에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신장이 3장이나 될것 같은 엄숙한 신장(神将)이 나타났다. 신장은 손에 세 가닥이 달린 극(戟)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극의 끝은 두자춘의 가슴에 대면서 눈을 부릅뜨고 욕하는 것을 들으니, 《이놈아, 너는 도대체 누구냐? 이 아미산이란 산은 천지개벽한 이래 옛날부터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그것도 꺼리낌없이 단지 혼자서 거기에 들어오리라고는. 설마 보통 인간은 아닐 것이다. 자! 목숨이 아까우면 한시라도 빨리 다답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자춘은 노인의 말대로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답을 않하는가? 않하네. 좋다. 하기싫으면 말던지 마음대로 하라. 그 대신 나의 권속들이 너를 갈기갈기 베여버릴 것이다.》 신장은 극을 높이 들고 저쪽 켠 산 위의 하늘을 불러왔다. 그 찰나에 어둠이 슬쩍 갈라지면서 놀랍게도 무수한 신병이 구름과도 같이 하늘을 채웠는데, 모두들 손에는 창검을 번뜩이면서 당장이라도 여기에 눈사태 처럼 공격해올것 같은 태세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두자춘은 엉겹결에 ‘앗!’아고 소리를 지를뻔했지만, 인츰 철관자의 말씀을 생각하고선 노력을 다해 참고 있었다. 신장은 그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선 화가 칠밀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강심장을 가진 놈아! 아무리 하여도 대답하지 않으면 약속대로 목숨은 가져갈테야 》신장은 이렇게 큰소리로 웨치면서 세 가닥의 극을 번뜩이여 한 칼에 두자춘을 죽였다.  신장은 아미산에 울펴퍼질 정도로 높은 소리로 껄껄 웃으면서 어딘가에 없어졌다. 물론 이때에는 무수한 신병도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와 함께 꿈과 같이 사라진 뒤였다. 북두칠성은 또 다시 차겁게 바위 위를 비추기 시작하였다. 절벽의 솔나무도 여나 다름 없이 스륵스륵 나무가지들이 부닥치는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두자춘은 숨이 끊어져 엎드린 채로 그곳에 누워있었다.   五    두자춘의 몸은 바위 위에 뒤집힌 채로 넘어져 있었지만, 두자춘의 혼은 몸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지옥의 밑바다으로 떨어져내려 갔다. 이 세상과 지옥과의 사이에는 암혈도(闇穴道)가 있어서 거기에는 일년내내 어두운 하늘에 얼음처럼 차거운 바람이 휙휙 불어대고 잇는 것이다. 두자춘은 그 바람에 휘말려 잠간사이에 나무잎 처럼 하늘을 떠돌아다니다가 얼마 안 있어 심라전(森羅殿)이라는 편액이 걸린 훌륭한 대궐 앞에 이르렀다.   대궐 앞에 있던 많은 귀신들은 두자춘의 모습을 보자마자 인츰 그 주위를 둘러싸고 섬돌 계단 앞에 끌고 갔다. 계단의 위에는 한 왕이 시꺼먼 의복에 금으로 된 관을 쓰고 위엄있게 주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문으로 들은 염라대왕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춘은 어찌 될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품고 그 곳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봐라. 네놈은 왜서 아미산 위에 앉아 있었는가?》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뇌성과 같이 계단 위에서 부터 울러퍼졌다. 두자춘은 인츰 그 물음에 대답할려고 했지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절대 입을 열지 말라》는 철과자의 훈계였다. 그래서 오직 머리를 수그린 채로 벙어리 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손에 쥐고 있던 철로된 홀(笏)을 들고서 얼굴의 수염을 곤두세우면서   《네 놈은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빨리 대답을 하면 좋다. 그렇지 못할 경우 곧 지옥의 가책을 받게 될것이다》고 기고만장해서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두자춘은 여전히 입술 조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염라대왕은 인츰 마귀 무리들 쪽을 향하여 거칠게 뭔가를 명령하니 마귀들은 황공해하면서 즉시로 도자춘을 억지로 끌고 가서 심라전 위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옥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칼산과 피못 외에도 초열지옥과 같은 화염협곡이거나 극한지옥라고 하는 얼음바다가 시꺼먼 하늘 아래에 늘어서 있다. 귀신들은 그런 지옥 속에 번갈아 가며 도자춘을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도자춘은 무참히도 검에 가슴이 관통되고, 화염에 얼굴이 타고, 혀를 빼우고, 겁질을 벗기우고, 철절구에 찧기우고, 기름가마에 튀기우고, 독사에 뇌수를 빨기우고, 뿔매에게 눈알을 먹히우는 등 그 고통을 수를 세자면 도저히 끝이 없을 정도로 모든 질고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도자춘은 인내력 있게 꾹 입을 다문 채로 한 마디도 입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 그 대단한 귀신들 조차도 질리고 말았던 것이다. 또 한번 칡흙 같이 어두운 하늘을 날아서 심라전 앞에 돌아오니, 방금 전과 같이 두자춘을 계단 아래에 끌러내면서 대궐 위에 앉아 있는 염라대왕에게   《이 죄인은 아무리 하여도 말할 기색이 없습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을 올렸다. 염라대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간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이윽고 뭔가 생각난듯 보였다.   《이 사내의 부모는 축생도에 전락하여 있을 것이므로 어서 여기에 끌고 오너라》고 한 놈의 귀신에게 명령했다.   귀신은 곧 바람을 타고서 지옥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별이 흐르듯이 두 놈의 귀신이 짐승을 강제로 끌고와서 날렵하게 심라전 앞에 내려왔다. 그 짐승을 본 두자춘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마리 모두가 형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여윈 말이였지만, 얼굴은 꿈에도 있을 수가 없는 죽은 부모와 똑 같았다.   《여봐라 네놈은 왜서 아미산 위에 앉아있었는가? 똑바로 자백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네놈의 부모에게 고통을 안겨주리라》   두자촌은 이런 위헙을 받아도 여나 다름없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불효자 놈아. 네놈은 부모가 고통스러워도 네놈만 좋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염라대왕은 심라전이 무너질 정도로 무서운 소리를 질렀다.   《때리라. 귀신들이여. 그 두 마리의 짐승을 피골이 상접하도록 때려 부수라!》   귀신들은 일제히 《예》하고 대답하면서 철채찍을 쥐고 일어나서 사면팔방에서 두 마리의 말을 미련없이 때려눕혔다. 채찍은 윙윙 바람을 가르면서 분별없이 말의 가죽과 살을 쳐부셨던 것이다. 말-짐승으로 변한 부모는 고통스러운 몸을 몸부림치면서 눈에는 피눈물을 머금은 채로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어떻냐. 아직도 네놈은 자백하지 않을터인가?》   염라대왕은 귀신들에게 잠간 채찍질을 그만하게 하고 다시 한번 두자춘에게 대답을 촉박했다. 이미 그때는 두 말의 말도 살이 찢기우고 뼈가 부수러져 숨도 끊일학 말락한 상태로 계단 앞에 엎어진채로 넘어져 있었던 것이다.   두자촌은 필사적으로 철관자의 말을 생각하면서 굳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그의 귀에는 거의 소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정도의 미약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근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어떻게 되더라도 너만 행복해진다면 그것 보다 더욱 좋은 것은 없으므로. 천왕이 뭐라고 말씀하더라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참고 있으라》   그것은 틀림 없는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촌은 생각없이 눈을 떻다. 그리고 한 필의 말이 맥없이 땅에 넘어진 채로 서럽게 그의 얼굴을 꼼짝 않고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이런 고통 속에서도 아들의 마음을 배려하여 귀신들의 채찍에 맞은 것을 원망하는 기색 조차도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대부자가 되면 아양을 떨고 거지가 되면 말도 걸지 않는 세상의 인간들과 비하면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런가. 얼마나 건전한 결심이런가. 두자춘은 노인의 훈계를 잊고 굴러가듯이 그 곁에 달려가서 양손으로 반죽음이 된 말의 목을 끌어안고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하고 소리쳐 불렀다.   六     그 소리에 정신이 들어 보니, 두자춘은 여나 다름 없이 석양 빛 속에서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 멍하니 서있었다. 희미한 하늘 그리고 하얀 초생달, 끊임 없이 이어지는 인파와 차량-모두가 아직 아미산에 가기 전과 똑 같은 것이였다. 《어떤가. 나의 제자로 되긴 했지만, 아무리 해도 선인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외눈박이 노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될 수가 없습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되지 못한 것을 도리여 기쁘다는 감이 듭니다》 두자춘은 아직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엉겁결에 노인의 손을 잡았다. 《아무리 선인이 되였다 할지라도 나는 그 지옥의 심라전 앞에서 채찍을 맞고 있는 부모를 보고는 침묵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만약 네놈이 말하지 않고 있었더라면……》라고 철관자는 갑자기 엄숙한 얼굴로 꼼짝 않고 두자춘을 응시했다. 《만약 네놈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더라면 나는 즉시로 너놈의 목숨을 끊을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은 이미 선인이 되고싶다는 욕망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고 큰 부자가 되고저 하는 것은 원래부터 정나미가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럼 네놈은 지금부터 무었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느냐?》 《무었이 되더라도 인간 다운 정직한 생활을 할 작정입니다》 두자춘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후련함이 슴배여 있었다. 《그 말을 잊지 말라. 그럼 나는 오늘을 끝으로 두번 다시 네놈과는 만나지 않을테니》 철관자는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이미 걷기 시작하였지만, 급히 걸음을 멈추고선 두자춘을 뒤볼아보면서 《아아, 다행이도 지금 생각났지만 나는 태산의 남쪽 기슭에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 그 집을 밭 채로 네놈한테 줄테니, 서둘러 가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 쯤은 마침 집 주위의 복숭아꽃들이 온통 피여있을 것이다》고 아주 유쾌한 듯이 덧붙여 말했다. 2015년6월23일 번역  
194    杜子春(芥川龍之介) 댓글:  조회:2365  추천:0  2015-06-23
               一  或春の日暮です。  唐の都洛陽(らくやう)の西の門の下に、ぼんやり空を仰いでゐる、一人の若者がありました。  若者は名は杜子春(とししゆん)といつて、元は金持の息子でしたが、今は財産を費(つか)ひ尽(つく)して、その日の暮しにも困る位、憐(あはれ)な身分になつてゐるのです。  何しろその頃洛陽といへば、天下に並ぶもののない、繁昌を極めた都ですから、往来(わうらい)にはまだしつきりなく、人や車が通つてゐました。門一ぱいに当つてゐる、油のやうな夕日の光の中に、老人のかぶつた紗(しや)の帽子や、土耳古(トルコ)の女の金の耳環や、白馬に飾つた色糸の手綱(たづな)が、絶えず流れて行く容子(ようす)は、まるで画のやうな美しさです。  しかし杜子春は相変らず、門の壁に身を凭(もた)せて、ぼんやり空ばかり眺めてゐました。空には、もう細い月が、うらうらと靡(なび)いた霞の中に、まるで爪の痕(あと)かと思ふ程、かすかに白く浮んでゐるのです。 「日は暮れるし、腹は減るし、その上もうどこへ行つても、泊めてくれる所はなささうだし――こんな思ひをして生きてゐる位なら、一そ川へでも身を投げて、死んでしまつた方がましかも知れない。」  杜子春はひとりさつきから、こんな取りとめもないことを思ひめぐらしてゐたのです。  するとどこからやつて来たか、突然彼の前へ足を止めた、片目眇(すがめ)の老人があります。それが夕日の光を浴びて、大きな影を門へ落すと、ぢつと杜子春の顔を見ながら、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と、横柄(わうへい)に言葉をかけました。 「私ですか。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たものかと考へてゐるのです。」  老人の尋ね方が急でしたから、杜子春はさすがに眼を伏せて、思はず正直な答をしました。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  老人は暫(しばら)く何事か考へてゐるやうでしたが、やがて、往来にさしてゐる夕日の光を指さしながら、 「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一つ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に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頭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黄金が埋まつてゐる筈だから。」 「ほんたうですか。」  杜子春は驚いて、伏せてゐた眼を挙げました。所が更に不思議なことには、あの老人はどこへ行つたか、もうあたりにはそれらしい、影も形も見当りません。その代り空の月の色は前よりも猶(なほ)白くなつて、休みない往来の人通りの上には、もう気の早い蝙蝠(かうもり)が二三匹ひらひら舞つてゐました。        二  杜子春(とししゆん)は一日の内に、洛陽の都でも唯一人といふ大金持になりました。あの老人の言葉通り、夕日に影を映して見て、その頭に当る所を、夜中にそつと掘つて見たら、大きな車にも余る位、黄金が一山出て来たのです。  大金持になつた杜子春は、すぐに立派な家を買つて、玄宗(げんそう)皇帝にも負けない位、贅沢(ぜいたく)な暮しをし始めました。蘭陵(らんりよう)の酒を買はせるやら、桂州の竜眼肉(りゆうがんにく)をとりよせるやら、日に四度色の変る牡丹(ぼたん)を庭に植ゑさせるやら、白孔雀(しろくじやく)を何羽も放し飼ひにするやら、玉を集めるやら、錦を縫はせるやら、香木(かうぼく)の車を造らせるやら、象牙の椅子を誂(あつら)へるやら、その贅沢を一々書いてゐては、いつになつてもこの話がおしまひにならない位です。  するとかういふ噂(うはさ)を聞いて、今までは路で行き合つても、挨拶さへしなかつた友だちなどが、朝夕遊びにやつて来ました。それも一日毎に数が増して、半年ばかり経つ内には、洛陽の都に名を知られた才子や美人が多い中で、杜子春の家へ来ないものは、一人もない位になつてしまつたのです。杜子春はこの御客たちを相手に、毎日酒盛りを開きました。その酒盛りの又盛なことは、中々口には尽されません。極(ごく)かいつまんだだけをお話しても、杜子春が金の杯に西洋から来た葡萄酒を汲んで、天竺(てんぢく)生れの魔法使が刀を呑んで見せる芸に見とれてゐると、そのまはりには二十人の女たちが、十人は翡翠(ひすゐ)の蓮の花を、十人は瑪瑙(めなう)の牡丹の花を、いづれも髪に飾りながら、笛や琴を節面白く奏してゐるといふ景色なのです。  しかしいくら大金持でも、御金には際限がありますから、さすがに贅沢家(ぜいたくや)の杜子春も、一年二年と経つ内には、だんだん貧乏になり出しました。さうすると人間は薄情なもので、昨日までは毎日来た友だちも、今日は門の前を通つてさへ、挨拶一つして行きません。ましてとうとう三年目の春、又杜子春が以前の通り、一文無しになつて見ると、広い洛陽の都の中にも、彼に宿を貸さうといふ家は、一軒もなくなつてしまひました。いや、宿を貸す所か、今では椀に一杯の水も、恵んでくれるものはないのです。  そこで彼は或日の夕方、もう一度あの洛陽の西の門の下へ行つて、ぼんやり空を眺めながら、途方に暮れて立つてゐました。するとやはり昔のやうに、片目眇(すがめ)の老人が、どこからか姿を現して、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と、声をかけるではありませんか。  杜子春は老人の顔を見ると、恥しさうに下を向いた儘(まま)、暫(しばら)くは返事もしませんでした。が、老人はその日も親切さうに、同じ言葉を繰返しますから、こちらも前と同じやうに、 「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たものかと考へてゐるのです。」と、恐る恐る返事をしました。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一つ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へ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胸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黄金が埋まつてゐる筈だから。」   老人はかう言つたと思ふと、今度も亦(また)人ごみの中へ、掻き消すやうに隠れてしまひました。  杜子春はその翌日から、忽(たちま)ち天下第一の大金持に返りました。と同時に相変らず、仕放題(しはうだい)な贅沢をし始めました。庭に咲いてゐる牡丹の花、その中に眠つてゐる白孔雀、それから刀を呑んで見せる、天竺から来た魔法使――すべてが昔の通りなのです。  ですから車に一ぱいあつた、あの夥(おびただ)しい黄金も、又三年ばかり経(た)つ内には、すつかりなくなつてしまひました。        三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  片目眇の老人は、三度杜子春の前へ来て、同じことを問ひかけました。勿論彼はその時も、洛陽の西の門の下に、ほそぼそと霞を破つてゐる三日月の光を眺めながら、ぼんやり佇(たたず)んでゐたのです。 「私ですか。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ようかと思つてゐるのです。」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へ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腹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  老人がここまで言ひかけると、杜子春は急に手を挙げて、その言葉を遮(さへぎ)りました。 「いや、お金はもう入らないのです。」 「金はもう入らない? ははあ、では贅沢をするにはとうとう飽きてしまつたと見えるな。」  老人は審(いぶか)しさうな眼つきをしながら、ぢつと杜子春の顔を見つめました。 「何、贅沢に飽きたのぢやありません。人間といふものに愛想がつきたのです。」  杜子春は不平さうな顔をしながら、突慳貪(つつけんどん)にかう言ひました。 「それは面白いな。どうして又人間に愛想が尽きたのだ?」 「人間は皆薄情です。私が大金持になつた時には、世辞も追従(つゐしよう)もしますけれど、一旦貧乏になつて御覧なさい。柔(やさ)しい顔さへもして見せはしません。そんなことを考へると、たとひもう一度大金持になつた所が、何にもならないやうな気がするのです。」  老人は杜子春の言葉を聞くと、急ににやにや笑ひ出しました。 「さうか。いや、お前は若い者に似合はず、感心に物のわかる男だ。ではこれからは貧乏をしても、安らかに暮して行くつもりか。」  杜子春はちよいとためらひました。が、すぐに思ひ切つた眼を挙げると、訴へるやうに老人の顔を見ながら、 「それも今の私には出来ません。ですから私はあなたの弟子になつて、仙術の修業をしたいと思ふのです。いいえ、隠し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は道徳の高い仙人でせう。仙人でなければ、一夜の内に私を天下第一の大金持にすることは出来ない筈です。どうか私の先生になつて、不思議な仙術を教へて下さい。」  老人は眉をひそめた儘、暫くは黙つて、何事か考へてゐるやうでしたが、やがて又につこり笑ひながら、 「いかにもおれは峨眉山(がびさん)に棲(す)んでゐる、鉄冠子(てつくわんし)といふ仙人だ。始めお前の顔を見た時、どこか物わかりが好ささうだつたから、二度まで大金持にしてやつたのだが、それ程仙人になりたければ、おれの弟子にとり立ててやらう。」と、快く願を容(い)れてくれました。  杜子春は喜んだの、喜ば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老人の言葉がまだ終らない内に、彼は大地に額をつけて、何度も鉄冠子に御時宜(おじぎ)をしました。 「いや、さう御礼などは言つて貰ふまい。いくらおれの弟子にした所で、立派な仙人になれるかなれないかは、お前次第できまることだからな。――が、兎も角もまづおれと一しよに、峨眉山の奥へ来て見るが好い。おお、幸(さいはひ)、ここに竹杖が一本落ちてゐる。では早速これへ乗つて、一飛びに空を渡るとしよう。」  鉄冠子はそこにあつた青竹を一本拾ひ上げると、口の中に呪文(じゆもん)を唱へながら、杜子春と一しよにその竹へ、馬にでも乗るやうに跨(またが)りました。すると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か。竹杖は忽(たちま)ち竜のやうに、勢よく大空へ舞ひ上つて、晴れ渡つた春の夕空を峨眉山の方角へ飛んで行きました。  杜子春は胆(きも)をつぶしながら、恐る恐る下を見下しました。が、下には唯青い山々が夕明りの底に見えるばかりで、あの洛陽の都の西の門は、(とうに霞に紛(まぎ)れたのでせう。)どこを探しても見当りません。その内に鉄冠子は、白い鬢(びん)の毛を風に吹かせて、高らかに歌を唱ひ出しました。 朝(あした)に北海に遊び、暮には蒼梧(さうご)。 袖裏(しうり)の青蛇(せいだ)、胆気(たんき)粗(そ)なり。 三たび嶽陽(がくやう)に入れども、人識らず。 朗吟して、飛過(ひくわ)す洞庭湖。        四  二人を乗せた青竹は、間もなく峨眉山へ舞ひ下りました。  そこは深い谷に臨んだ、幅の広い一枚岩の上でしたが、よくよく高い所だと見えて、中空に垂れた北斗の星が、茶碗程の大きさに光つてゐました。元より人跡の絶えた山ですから、あたりはしんと静まり返つて、やつと耳にはひるものは、後の絶壁に生えてゐる、曲りくねつた一株の松が、こうこうと夜風に鳴る音だけです。  二人がこの岩の上に来ると、鉄冠子は杜子春を絶壁の下に坐らせて、 「おれはこれから天上へ行つて、西王母(せいわうぼ)に御眼にかかつて来るから、お前はその間ここに坐つて、おれの帰るのを待つてゐるが好い。多分おれがゐなくなると、いろいろな魔性(ましやう)が現れて、お前をたぶらかさうとするだらうが、たとひどんなことが起らうとも、決して声を出すのではないぞ。もし一言でも口を利いたら、お前は到底仙人にはなれないものだと覚悟をしろ。好いか。天地が裂けても、黙つてゐるのだぞ。」と言ひました。 「大丈夫です。決して声なぞは出しはしません。命がなくなつても、黙つてゐます。」 「さうか。それを聞いて、おれも安心した。ではおれは行つて来るから。」  老人は杜子春に別れを告げると、又あの竹杖に跨(またが)つて、夜目にも削つたやうな山々の空へ、一文字に消えてしまひました。  杜子春はたつた一人、岩の上に坐つた儘、静に星を眺めてゐました。すると彼是(かれこれ)半時ばかり経つて、深山の夜気が肌寒く薄い着物に透(とほ)り出した頃、突然空中に声があつて、 「そこにゐるのは何者だ。」と叱りつけるではありませんか。  しかし杜子春は仙人の教通り、何とも返事をしずにゐました。  所が又暫くすると、やはり同じ声が響いて、 「返事をしないと立ち所に、命はないものと覚悟しろ。」と、いかめしく嚇(おど)しつけるのです。  杜子春は勿論黙つてゐました。  と、どこから登つて来たか、爛々(らんらん)と眼を光らせた虎が一匹、忽然(こつぜん)と岩の上に躍り上つて、杜子春の姿を睨みながら、一声高く哮(たけ)りました。のみならずそれと同時に、頭の上の松の枝が、烈しくざわざわ揺れたと思ふと、後の絶壁の頂からは、四斗樽程の白蛇(はくだ)が一匹、炎のやうな舌を吐いて、見る見る近くへ下りて来るのです。  杜子春はしかし平然と、眉毛も動かさずに坐つてゐました。  虎と蛇とは、一つ餌食を狙つて、互に隙でも窺(うかが)ふのか、暫くは睨合ひの体でしたが、やがてどちらが先ともなく、一時に杜子春に飛びかかりました。が、虎の牙に噛まれるか、蛇の舌に呑まれるか、杜子春の命は瞬(またた)く内に、なくなつてしまふと思つた時、虎と蛇とは霧の如く、夜風と共に消え失せて、後には唯、絶壁の松が、さつきの通りこうこうと枝を鳴らしてゐるばかりなのです。杜子春はほつと一息しながら、今度はどんなことが起るかと、心待ちに待つてゐました。  すると一陣の風が吹き起つて、墨のやうな黒雲が一面にあたりをとざすや否や、うす紫の稲妻がやにはに闇を二つに裂いて、凄じく雷(らい)が鳴り出しました。いや、雷ばかりではありません。それと一しよに瀑(たき)のやうな雨も、いきなりどうどうと降り出したのです。杜子春はこの天変の中に、恐れ気もなく坐つてゐました。風の音、雨のしぶき、それから絶え間ない稲妻の光、――暫くはさすがの峨眉山(がびさん)も、覆(くつがへ)るかと思ふ位でしたが、その内に耳をもつんざく程、大きな雷鳴が轟(とどろ)いたと思ふと、空に渦巻いた黒雲の中から、まつ赤な一本の火柱が、杜子春の頭へ落ちかかりました。  杜子春は思はず耳を抑へて、一枚岩の上へひれ伏しました。が、すぐに眼を開いて見ると、空は以前の通り晴れ渡つて、向うに聳(そび)えた山山の上にも、茶碗程の北斗の星が、やはりきらきら輝いてゐます。して見れば今の大あらしも、あの虎や白蛇と同じやうに、鉄冠子(てつくわんし)の留守をつけこんだ、魔性の悪戯(いたづら)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漸(やうや)く安心して、額の冷汗を拭ひながら、又岩の上に坐り直しました。  が、そのため息がまだ消えない内に、今度は彼の坐つてゐる前へ、金の鎧(よろひ)を着下(きくだ)した、身の丈三丈もあらうといふ、厳かな神将が現れました。神将は手に三叉(みつまた)の戟(ほこ)を持つてゐましたが、いきなりその戟の切先を杜子春の胸もとへ向けながら、眼を嗔(いか)らせて叱りつけるのを聞けば、 「こら、その方は一体何物だ。この峨眉山といふ山は、天地開闢(かいびやく)の昔から、おれが住居(すまひ)をしてゐる所だぞ。それも憚(はばか)らずたつた一人、ここへ足を踏み入れるとは、よもや唯の人間ではあるまい。さあ命が惜しかつたら、一刻も早く返答しろ。」と言ふのです。  しかし杜子春は老人の言葉通り、黙然(もくねん)と口を噤(つぐ)んでゐました。 「返事をしないか。――しないな。好し。しなければ、しないで勝手にしろ。その代りおれの眷属(けんぞく)たちが、その方をずたずたに斬つてしまふぞ。」  神将は戟(ほこ)を高く挙げて、向うの山の空を招きました。その途端に闇がさつと裂けると、驚いたことには無数の神兵が、雲の如く空に充満(みちみ)ちて、それが皆槍や刀をきらめかせながら、今にもここへ一なだれに攻め寄せようとしてゐるのです。  この景色を見た杜子春は、思はずあつと叫びさうにしましたが、すぐに又鉄冠子の言葉を思ひ出して、一生懸命に黙つてゐました。神将は彼が恐れないのを見ると、怒つたの怒ら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 「この剛情者め。どうしても返事をしなければ、約束通り命はとつてやるぞ。」  神将はかう喚(わめ)くが早いか、三叉(みつまた)の戟(ほこ)を閃(ひらめ)かせて、一突きに杜子春を突き殺しました。さうして峨眉山もどよむ程、からからと高く笑ひながら、どこともなく消えてしまひました。勿論この時はもう無数の神兵も、吹き渡る夜風の音と一しよに、夢のやうに消え失せた後だつたのです。  北斗の星は又寒さうに、一枚岩の上を照らし始めました。絶壁の松も前に変らず、こうこうと枝を鳴らせてゐます。が、杜子春はとうに息が絶えて、仰向(あふむ)けにそこへ倒れてゐました。        五  杜子春の体は岩の上へ、仰向けに倒れてゐましたが、杜子春の魂は、静に体から抜け出して、地獄の底へ下りて行きました。  この世と地獄との間には、闇穴道(あんけつだう)といふ道があつて、そこは年中暗い空に、氷のやうな冷たい風がぴゆうぴゆう吹き荒(すさ)んでゐるのです。杜子春はその風に吹かれながら、暫くは唯(ただ)木の葉のやうに、空を漂つて行きましたが、やがて森羅殿(しんらでん)といふ額の懸つた立派な御殿の前へ出ました。  御殿の前にゐた大勢の鬼は、杜子春の姿を見るや否や、すぐにそのまはりを取り捲いて、階(きざはし)の前へ引き据ゑました。階の上には一人の王様が、まつ黒な袍(きもの)に金の冠(かんむり)をかぶつて、いかめしくあたりを睨んでゐます。これは兼ねて噂(うはさ)に聞いた、閻魔(えんま)大王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どうなることかと思ひながら、恐る恐るそこへ跪(ひざまづ)いてゐました。 「こら、その方は何の為に、峨眉山の上へ坐つてゐた?」  閻魔大王の声は雷のやうに、階の上から響きました。杜子春は早速その問に答へようとしましたが、ふと又思ひ出したのは、「決して口を利くな。」といふ鉄冠子の戒めの言葉です。そこで唯頭を垂れた儘、唖(おし)のやうに黙つてゐました。すると閻魔大王は、持つてゐた鉄の笏(しやく)を挙げて、顔中の鬚(ひげ)を逆立てながら、 「その方はここをどこだと思ふ? 速(すみやか)に返答をすれば好し、さもなければ時を移さず、地獄の呵責(かしやく)に遇(あ)はせてくれるぞ。」と、威丈高(ゐたけだか)に罵(ののし)りました。  が、杜子春は相変らず唇(くちびる)一つ動かしません。それを見た閻魔大王は、すぐに鬼どもの方を向いて、荒々しく何か言ひつけると、鬼どもは一度に畏(かしこま)つて、忽ち杜子春を引き立てながら、森羅殿の空へ舞ひ上りました。  地獄には誰でも知つてゐる通り、剣(つるぎ)の山や血の池の外にも、焦熱(せうねつ)地獄といふ焔の谷や極寒(ごくかん)地獄といふ氷の海が、真暗な空の下に並んでゐます。鬼どもはさういふ地獄の中へ、代る代る杜子春を抛(はふ)りこみました。ですから杜子春は無残にも、剣に胸を貫かれるやら、焔に顔を焼かれるやら、舌を抜かれるやら、皮を剥がれるやら、鉄の杵(きね)に撞(つ)かれるやら、油の鍋に煮られるやら、毒蛇に脳味噌を吸はれるやら、熊鷹に眼を食はれるやら、――その苦しみを数へ立ててゐては、到底際限がない位、あらゆる責苦(せめく)に遇はされたのです。それでも杜子春は我慢強く、ぢつと歯を食ひしばつた儘、一言も口を利きませんでした。  これにはさすがの鬼どもも、呆れ返つてしまつたのでせう。もう一度夜のやうな空を飛んで、森羅殿の前へ帰つて来ると、さつきの通り杜子春を階(きざはし)の下に引き据ゑながら、御殿の上の閻魔大王に、 「この罪人はどうしても、ものを言ふ気色(けしき)がございません。」と、口を揃へて言上(ごんじやう)しました。  閻魔大王は眉をひそめて、暫く思案に暮れてゐましたが、やがて何か思ひついたと見えて、 「この男の父母(ちちはは)は、畜生道に落ちてゐる筈だから、早速ここへ引き立てて来い。」と、一匹の鬼に云ひつけました。  鬼は忽ち風に乗つて、地獄の空へ舞ひ上りました。と思ふと、又星が流れるやうに、二匹の獣を駆り立てながら、さつと森羅殿の前へ下りて来ました。その獣を見た杜子春は、驚いたの驚か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なぜかといへばそれは二匹とも、形は見すぼらしい痩せ馬でしたが、顔は夢にも忘れない、死んだ父母の通りでしたから。 「こら、その方は何のために、峨眉山の上に坐つてゐたか、まつすぐに白状しなければ、今度はその方の父母に痛い思ひをさせてやるぞ。」  杜子春はかう嚇(おど)されても、やはり返答をしずにゐました。 「この不孝者めが。その方は父母が苦しんでも、その方さへ都合が好ければ、好いと思つてゐるのだな。」  閻魔大王は森羅殿も崩れる程、凄じい声で喚きました。 「打て。鬼ども。その二匹の畜生を、肉も骨も打ち砕いてしまへ。」  鬼どもは一斉に「はつ」と答へながら、鉄の鞭(むち)をとつて立ち上ると、四方八方から二匹の馬を、未練未釈(みれんみしやく)なく打ちのめしました。鞭はりうりうと風を切つて、所嫌はず雨のやうに、馬の皮肉を打ち破るのです。馬は、――畜生になつた父母は、苦しさうに身を悶(もだ)えて、眼には血の涙を浮べた儘、見てもゐられない程嘶(いなな)き立てました。 「どうだ。まだその方は白状しないか。」  閻魔大王は鬼どもに、暫く鞭の手をやめさせて、もう一度杜子春の答を促しました。もうその時には二匹の馬も、肉は裂け骨は砕けて、息も絶え絶えに階(きざはし)の前へ、倒れ伏してゐたのです。  杜子春は必死になつて、鉄冠子の言葉を思ひ出しながら、緊(かた)く眼をつぶつてゐました。するとその時彼の耳には、殆(ほとんど)声とはいへない位、かすかな声が伝はつて来ました。 「心配をおしでない。私たちはどうなつても、お前さへ仕合せになれるのなら、それより結構なことはないのだからね。大王が何と仰(おつしや)つても、言ひたくないことは黙つて御出(おい)で。」  それは確に懐しい、母親の声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思はず、眼をあきました。さうして馬の一匹が、力なく地上に倒れた儘、悲しさうに彼の顔へ、ぢつと眼をやつてゐるのを見ました。母親はこんな苦しみの中にも、息子の心を思ひやつて、鬼どもの鞭に打たれたことを、怨む気色(けしき)さへも見せないのです。大金持になれば御世辞を言ひ、貧乏人になれば口も利かない世間の人たちに比べると、何といふ有難い志でせう。何といふ健気な決心でせう。杜子春は老人の戒めも忘れて、転(まろ)ぶやうにその側へ走りよると、両手に半死の馬の頸を抱いて、はらはらと涙を落しながら、「お母さん。」と一声を叫びました。……        六  その声に気がついて見ると、杜子春はやはり夕日を浴びて、洛陽の西の門の下に、ぼんやり佇んでゐるのでした。霞んだ空、白い三日月、絶え間ない人や車の波、――すべてがまだ峨眉山へ、行かない前と同じことです。 「どうだな。おれの弟子になつた所が、とても仙人にはなれはすまい。」 片目眇(すがめ)の老人は微笑を含みながら言ひました。 「なれません。なれませんが、しかし私はなれなかつたことも、反(かへ)つて嬉しい気がするのです。」  杜子春はまだ眼に涙を浮べた儘、思はず老人の手を握りました。 「いくら仙人になれた所が、私はあの地獄の森羅殿の前に、鞭を受けてゐる父母を見ては、黙つてゐる訳には行きません。」 「もしお前が黙つてゐたら――」と鉄冠子は急に厳(おごそか)な顔になつて、ぢつと杜子春を見つめました。 「もしお前が黙つてゐたら、おれは即座にお前の命を絶つてしまはうと思つてゐたのだ。――お前はもう仙人になりたいといふ望も持つてゐまい。大金持になることは、元より愛想がつきた筈だ。ではお前はこれから後、何になつたら好いと思ふな。」 「何になつても、人間らしい、正直な暮しをするつもりです。」  杜子春の声には今までにない晴れ晴れした調子が罩(こも)つてゐました。 「その言葉を忘れるなよ。ではおれは今日限り、二度とお前には遇はないから。」  鉄冠子はかう言ふ内に、もう歩き出してゐましたが、急に又足を止めて、杜子春の方を振り返ると、 「おお、幸(さいはひ)、今思ひ出したが、おれは泰山の南の麓(ふもと)に一軒の家を持つてゐる。その家を畑ごとお前にやるから、早速行つて住まふが好い。今頃は丁度家のまはりに、桃の花が一面に咲いてゐるだらう。」と、さも愉快さうにつけ加へました。 (大正九年六月)   底本:「現代日本文学大系 43 芥川龍之介集」筑摩書房    1968(昭和43)年8月25日初版第1刷発行 入力:j.utiyama 校正:野口英司 1998年5月20日公開 2004年3月12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杜子春 芥川龍之介        一  或春の日暮です。  唐の都洛陽(らくやう)の西の門の下に、ぼんやり空を仰いでゐる、一人の若者がありました。  若者は名は杜子春(とししゆん)といつて、元は金持の息子でしたが、今は財産を費(つか)ひ尽(つく)して、その日の暮しにも困る位、憐(あはれ)な身分になつてゐるのです。  何しろその頃洛陽といへば、天下に並ぶもののない、繁昌を極めた都ですから、往来(わうらい)にはまだしつきりなく、人や車が通つてゐました。門一ぱいに当つてゐる、油のやうな夕日の光の中に、老人のかぶつた紗(しや)の帽子や、土耳古(トルコ)の女の金の耳環や、白馬に飾つた色糸の手綱(たづな)が、絶えず流れて行く容子(ようす)は、まるで画のやうな美しさです。  しかし杜子春は相変らず、門の壁に身を凭(もた)せて、ぼんやり空ばかり眺めてゐました。空には、もう細い月が、うらうらと靡(なび)いた霞の中に、まるで爪の痕(あと)かと思ふ程、かすかに白く浮んでゐるのです。 「日は暮れるし、腹は減るし、その上もうどこへ行つても、泊めてくれる所はなささうだし――こんな思ひをして生きてゐる位なら、一そ川へでも身を投げて、死んでしまつた方がましかも知れない。」  杜子春はひとりさつきから、こんな取りとめもないことを思ひめぐらしてゐたのです。  するとどこからやつて来たか、突然彼の前へ足を止めた、片目眇(すがめ)の老人があります。それが夕日の光を浴びて、大きな影を門へ落すと、ぢつと杜子春の顔を見ながら、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と、横柄(わうへい)に言葉をかけました。 「私ですか。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たものかと考へてゐるのです。」  老人の尋ね方が急でしたから、杜子春はさすがに眼を伏せて、思はず正直な答をしました。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  老人は暫(しばら)く何事か考へてゐるやうでしたが、やがて、往来にさしてゐる夕日の光を指さしながら、 「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一つ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に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頭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黄金が埋まつてゐる筈だから。」 「ほんたうですか。」  杜子春は驚いて、伏せてゐた眼を挙げました。所が更に不思議なことには、あの老人はどこへ行つたか、もうあたりにはそれらしい、影も形も見当りません。その代り空の月の色は前よりも猶(なほ)白くなつて、休みない往来の人通りの上には、もう気の早い蝙蝠(かうもり)が二三匹ひらひら舞つてゐました。        二  杜子春(とししゆん)は一日の内に、洛陽の都でも唯一人といふ大金持になりました。あの老人の言葉通り、夕日に影を映して見て、その頭に当る所を、夜中にそつと掘つて見たら、大きな車にも余る位、黄金が一山出て来たのです。  大金持になつた杜子春は、すぐに立派な家を買つて、玄宗(げんそう)皇帝にも負けない位、贅沢(ぜいたく)な暮しをし始めました。蘭陵(らんりよう)の酒を買はせるやら、桂州の竜眼肉(りゆうがんにく)をとりよせるやら、日に四度色の変る牡丹(ぼたん)を庭に植ゑさせるやら、白孔雀(しろくじやく)を何羽も放し飼ひにするやら、玉を集めるやら、錦を縫はせるやら、香木(かうぼく)の車を造らせるやら、象牙の椅子を誂(あつら)へるやら、その贅沢を一々書いてゐては、いつになつてもこの話がおしまひにならない位です。  するとかういふ噂(うはさ)を聞いて、今までは路で行き合つても、挨拶さへしなかつた友だちなどが、朝夕遊びにやつて来ました。それも一日毎に数が増して、半年ばかり経つ内には、洛陽の都に名を知られた才子や美人が多い中で、杜子春の家へ来ないものは、一人もない位になつてしまつたのです。杜子春はこの御客たちを相手に、毎日酒盛りを開きました。その酒盛りの又盛なことは、中々口には尽されません。極(ごく)かいつまんだだけをお話しても、杜子春が金の杯に西洋から来た葡萄酒を汲んで、天竺(てんぢく)生れの魔法使が刀を呑んで見せる芸に見とれてゐると、そのまはりには二十人の女たちが、十人は翡翠(ひすゐ)の蓮の花を、十人は瑪瑙(めなう)の牡丹の花を、いづれも髪に飾りながら、笛や琴を節面白く奏してゐるといふ景色なのです。  しかしいくら大金持でも、御金には際限がありますから、さすがに贅沢家(ぜいたくや)の杜子春も、一年二年と経つ内には、だんだん貧乏になり出しました。さうすると人間は薄情なもので、昨日までは毎日来た友だちも、今日は門の前を通つてさへ、挨拶一つして行きません。ましてとうとう三年目の春、又杜子春が以前の通り、一文無しになつて見ると、広い洛陽の都の中にも、彼に宿を貸さうといふ家は、一軒もなくなつてしまひました。いや、宿を貸す所か、今では椀に一杯の水も、恵んでくれるものはないのです。  そこで彼は或日の夕方、もう一度あの洛陽の西の門の下へ行つて、ぼんやり空を眺めながら、途方に暮れて立つてゐました。するとやはり昔のやうに、片目眇(すがめ)の老人が、どこからか姿を現して、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と、声をかけるではありませんか。  杜子春は老人の顔を見ると、恥しさうに下を向いた儘(まま)、暫(しばら)くは返事もしませんでした。が、老人はその日も親切さうに、同じ言葉を繰返しますから、こちらも前と同じやうに、 「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たものかと考へてゐるのです。」と、恐る恐る返事をしました。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一つ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へ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胸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黄金が埋まつてゐる筈だから。」   老人はかう言つたと思ふと、今度も亦(また)人ごみの中へ、掻き消すやうに隠れてしまひました。  杜子春はその翌日から、忽(たちま)ち天下第一の大金持に返りました。と同時に相変らず、仕放題(しはうだい)な贅沢をし始めました。庭に咲いてゐる牡丹の花、その中に眠つてゐる白孔雀、それから刀を呑んで見せる、天竺から来た魔法使――すべてが昔の通りなのです。  ですから車に一ぱいあつた、あの夥(おびただ)しい黄金も、又三年ばかり経(た)つ内には、すつかりなくなつてしまひました。        三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  片目眇の老人は、三度杜子春の前へ来て、同じことを問ひかけました。勿論彼はその時も、洛陽の西の門の下に、ほそぼそと霞を破つてゐる三日月の光を眺めながら、ぼんやり佇(たたず)んでゐたのです。 「私ですか。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ようかと思つてゐるのです。」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へ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腹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  老人がここまで言ひかけると、杜子春は急に手を挙げて、その言葉を遮(さへぎ)りました。 「いや、お金はもう入らないのです。」 「金はもう入らない? ははあ、では贅沢をするにはとうとう飽きてしまつたと見えるな。」  老人は審(いぶか)しさうな眼つきをしながら、ぢつと杜子春の顔を見つめました。 「何、贅沢に飽きたのぢやありません。人間といふものに愛想がつきたのです。」  杜子春は不平さうな顔をしながら、突慳貪(つつけんどん)にかう言ひました。 「それは面白いな。どうして又人間に愛想が尽きたのだ?」 「人間は皆薄情です。私が大金持になつた時には、世辞も追従(つゐしよう)もしますけれど、一旦貧乏になつて御覧なさい。柔(やさ)しい顔さへもして見せはしません。そんなことを考へると、たとひもう一度大金持になつた所が、何にもならないやうな気がするのです。」  老人は杜子春の言葉を聞くと、急ににやにや笑ひ出しました。 「さうか。いや、お前は若い者に似合はず、感心に物のわかる男だ。ではこれからは貧乏をしても、安らかに暮して行くつもりか。」  杜子春はちよいとためらひました。が、すぐに思ひ切つた眼を挙げると、訴へるやうに老人の顔を見ながら、 「それも今の私には出来ません。ですから私はあなたの弟子になつて、仙術の修業をしたいと思ふのです。いいえ、隠し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は道徳の高い仙人でせう。仙人でなければ、一夜の内に私を天下第一の大金持にすることは出来ない筈です。どうか私の先生になつて、不思議な仙術を教へて下さい。」  老人は眉をひそめた儘、暫くは黙つて、何事か考へてゐるやうでしたが、やがて又につこり笑ひながら、 「いかにもおれは峨眉山(がびさん)に棲(す)んでゐる、鉄冠子(てつくわんし)といふ仙人だ。始めお前の顔を見た時、どこか物わかりが好ささうだつたから、二度まで大金持にしてやつたのだが、それ程仙人になりたければ、おれの弟子にとり立ててやらう。」と、快く願を容(い)れてくれました。  杜子春は喜んだの、喜ば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老人の言葉がまだ終らない内に、彼は大地に額をつけて、何度も鉄冠子に御時宜(おじぎ)をしました。 「いや、さう御礼などは言つて貰ふまい。いくらおれの弟子にした所で、立派な仙人になれるかなれないかは、お前次第できまることだからな。――が、兎も角もまづおれと一しよに、峨眉山の奥へ来て見るが好い。おお、幸(さいはひ)、ここに竹杖が一本落ちてゐる。では早速これへ乗つて、一飛びに空を渡るとしよう。」  鉄冠子はそこにあつた青竹を一本拾ひ上げると、口の中に呪文(じゆもん)を唱へながら、杜子春と一しよにその竹へ、馬にでも乗るやうに跨(またが)りました。すると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か。竹杖は忽(たちま)ち竜のやうに、勢よく大空へ舞ひ上つて、晴れ渡つた春の夕空を峨眉山の方角へ飛んで行きました。  杜子春は胆(きも)をつぶしながら、恐る恐る下を見下しました。が、下には唯青い山々が夕明りの底に見えるばかりで、あの洛陽の都の西の門は、(とうに霞に紛(まぎ)れたのでせう。)どこを探しても見当りません。その内に鉄冠子は、白い鬢(びん)の毛を風に吹かせて、高らかに歌を唱ひ出しました。 朝(あした)に北海に遊び、暮には蒼梧(さうご)。 袖裏(しうり)の青蛇(せいだ)、胆気(たんき)粗(そ)なり。 三たび嶽陽(がくやう)に入れども、人識らず。 朗吟して、飛過(ひくわ)す洞庭湖。        四  二人を乗せた青竹は、間もなく峨眉山へ舞ひ下りました。  そこは深い谷に臨んだ、幅の広い一枚岩の上でしたが、よくよく高い所だと見えて、中空に垂れた北斗の星が、茶碗程の大きさに光つてゐました。元より人跡の絶えた山ですから、あたりはしんと静まり返つて、やつと耳にはひるものは、後の絶壁に生えてゐる、曲りくねつた一株の松が、こうこうと夜風に鳴る音だけです。  二人がこの岩の上に来ると、鉄冠子は杜子春を絶壁の下に坐らせて、 「おれはこれから天上へ行つて、西王母(せいわうぼ)に御眼にかかつて来るから、お前はその間ここに坐つて、おれの帰るのを待つてゐるが好い。多分おれがゐなくなると、いろいろな魔性(ましやう)が現れて、お前をたぶらかさうとするだらうが、たとひどんなことが起らうとも、決して声を出すのではないぞ。もし一言でも口を利いたら、お前は到底仙人にはなれないものだと覚悟をしろ。好いか。天地が裂けても、黙つてゐるのだぞ。」と言ひました。 「大丈夫です。決して声なぞは出しはしません。命がなくなつても、黙つてゐます。」 「さうか。それを聞いて、おれも安心した。ではおれは行つて来るから。」  老人は杜子春に別れを告げると、又あの竹杖に跨(またが)つて、夜目にも削つたやうな山々の空へ、一文字に消えてしまひました。  杜子春はたつた一人、岩の上に坐つた儘、静に星を眺めてゐました。すると彼是(かれこれ)半時ばかり経つて、深山の夜気が肌寒く薄い着物に透(とほ)り出した頃、突然空中に声があつて、 「そこにゐるのは何者だ。」と叱りつけるではありませんか。  しかし杜子春は仙人の教通り、何とも返事をしずにゐました。  所が又暫くすると、やはり同じ声が響いて、 「返事をしないと立ち所に、命はないものと覚悟しろ。」と、いかめしく嚇(おど)しつけるのです。  杜子春は勿論黙つてゐました。  と、どこから登つて来たか、爛々(らんらん)と眼を光らせた虎が一匹、忽然(こつぜん)と岩の上に躍り上つて、杜子春の姿を睨みながら、一声高く哮(たけ)りました。のみならずそれと同時に、頭の上の松の枝が、烈しくざわざわ揺れたと思ふと、後の絶壁の頂からは、四斗樽程の白蛇(はくだ)が一匹、炎のやうな舌を吐いて、見る見る近くへ下りて来るのです。  杜子春はしかし平然と、眉毛も動かさずに坐つてゐました。  虎と蛇とは、一つ餌食を狙つて、互に隙でも窺(うかが)ふのか、暫くは睨合ひの体でしたが、やがてどちらが先ともなく、一時に杜子春に飛びかかりました。が、虎の牙に噛まれるか、蛇の舌に呑まれるか、杜子春の命は瞬(またた)く内に、なくなつてしまふと思つた時、虎と蛇とは霧の如く、夜風と共に消え失せて、後には唯、絶壁の松が、さつきの通りこうこうと枝を鳴らしてゐるばかりなのです。杜子春はほつと一息しながら、今度はどんなことが起るかと、心待ちに待つてゐました。  すると一陣の風が吹き起つて、墨のやうな黒雲が一面にあたりをとざすや否や、うす紫の稲妻がやにはに闇を二つに裂いて、凄じく雷(らい)が鳴り出しました。いや、雷ばかりではありません。それと一しよに瀑(たき)のやうな雨も、いきなりどうどうと降り出したのです。杜子春はこの天変の中に、恐れ気もなく坐つてゐました。風の音、雨のしぶき、それから絶え間ない稲妻の光、――暫くはさすがの峨眉山(がびさん)も、覆(くつがへ)るかと思ふ位でしたが、その内に耳をもつんざく程、大きな雷鳴が轟(とどろ)いたと思ふと、空に渦巻いた黒雲の中から、まつ赤な一本の火柱が、杜子春の頭へ落ちかかりました。  杜子春は思はず耳を抑へて、一枚岩の上へひれ伏しました。が、すぐに眼を開いて見ると、空は以前の通り晴れ渡つて、向うに聳(そび)えた山山の上にも、茶碗程の北斗の星が、やはりきらきら輝いてゐます。して見れば今の大あらしも、あの虎や白蛇と同じやうに、鉄冠子(てつくわんし)の留守をつけこんだ、魔性の悪戯(いたづら)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漸(やうや)く安心して、額の冷汗を拭ひながら、又岩の上に坐り直しました。  が、そのため息がまだ消えない内に、今度は彼の坐つてゐる前へ、金の鎧(よろひ)を着下(きくだ)した、身の丈三丈もあらうといふ、厳かな神将が現れました。神将は手に三叉(みつまた)の戟(ほこ)を持つてゐましたが、いきなりその戟の切先を杜子春の胸もとへ向けながら、眼を嗔(いか)らせて叱りつけるのを聞けば、 「こら、その方は一体何物だ。この峨眉山といふ山は、天地開闢(かいびやく)の昔から、おれが住居(すまひ)をしてゐる所だぞ。それも憚(はばか)らずたつた一人、ここへ足を踏み入れるとは、よもや唯の人間ではあるまい。さあ命が惜しかつたら、一刻も早く返答しろ。」と言ふのです。  しかし杜子春は老人の言葉通り、黙然(もくねん)と口を噤(つぐ)んでゐました。 「返事をしないか。――しないな。好し。しなければ、しないで勝手にしろ。その代りおれの眷属(けんぞく)たちが、その方をずたずたに斬つてしまふぞ。」  神将は戟(ほこ)を高く挙げて、向うの山の空を招きました。その途端に闇がさつと裂けると、驚いたことには無数の神兵が、雲の如く空に充満(みちみ)ちて、それが皆槍や刀をきらめかせながら、今にもここへ一なだれに攻め寄せようとしてゐるのです。  この景色を見た杜子春は、思はずあつと叫びさうにしましたが、すぐに又鉄冠子の言葉を思ひ出して、一生懸命に黙つてゐました。神将は彼が恐れないのを見ると、怒つたの怒ら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 「この剛情者め。どうしても返事をしなければ、約束通り命はとつてやるぞ。」  神将はかう喚(わめ)くが早いか、三叉(みつまた)の戟(ほこ)を閃(ひらめ)かせて、一突きに杜子春を突き殺しました。さうして峨眉山もどよむ程、からからと高く笑ひながら、どこともなく消えてしまひました。勿論この時はもう無数の神兵も、吹き渡る夜風の音と一しよに、夢のやうに消え失せた後だつたのです。  北斗の星は又寒さうに、一枚岩の上を照らし始めました。絶壁の松も前に変らず、こうこうと枝を鳴らせてゐます。が、杜子春はとうに息が絶えて、仰向(あふむ)けにそこへ倒れてゐました。        五  杜子春の体は岩の上へ、仰向けに倒れてゐましたが、杜子春の魂は、静に体から抜け出して、地獄の底へ下りて行きました。  この世と地獄との間には、闇穴道(あんけつだう)といふ道があつて、そこは年中暗い空に、氷のやうな冷たい風がぴゆうぴゆう吹き荒(すさ)んでゐるのです。杜子春はその風に吹かれながら、暫くは唯(ただ)木の葉のやうに、空を漂つて行きましたが、やがて森羅殿(しんらでん)といふ額の懸つた立派な御殿の前へ出ました。  御殿の前にゐた大勢の鬼は、杜子春の姿を見るや否や、すぐにそのまはりを取り捲いて、階(きざはし)の前へ引き据ゑました。階の上には一人の王様が、まつ黒な袍(きもの)に金の冠(かんむり)をかぶつて、いかめしくあたりを睨んでゐます。これは兼ねて噂(うはさ)に聞いた、閻魔(えんま)大王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どうなることかと思ひながら、恐る恐るそこへ跪(ひざまづ)いてゐました。 「こら、その方は何の為に、峨眉山の上へ坐つてゐた?」  閻魔大王の声は雷のやうに、階の上から響きました。杜子春は早速その問に答へようとしましたが、ふと又思ひ出したのは、「決して口を利くな。」といふ鉄冠子の戒めの言葉です。そこで唯頭を垂れた儘、唖(おし)のやうに黙つてゐました。すると閻魔大王は、持つてゐた鉄の笏(しやく)を挙げて、顔中の鬚(ひげ)を逆立てながら、 「その方はここをどこだと思ふ? 速(すみやか)に返答をすれば好し、さもなければ時を移さず、地獄の呵責(かしやく)に遇(あ)はせてくれるぞ。」と、威丈高(ゐたけだか)に罵(ののし)りました。  が、杜子春は相変らず唇(くちびる)一つ動かしません。それを見た閻魔大王は、すぐに鬼どもの方を向いて、荒々しく何か言ひつけると、鬼どもは一度に畏(かしこま)つて、忽ち杜子春を引き立てながら、森羅殿の空へ舞ひ上りました。  地獄には誰でも知つてゐる通り、剣(つるぎ)の山や血の池の外にも、焦熱(せうねつ)地獄といふ焔の谷や極寒(ごくかん)地獄といふ氷の海が、真暗な空の下に並んでゐます。鬼どもはさういふ地獄の中へ、代る代る杜子春を抛(はふ)りこみました。ですから杜子春は無残にも、剣に胸を貫かれるやら、焔に顔を焼かれるやら、舌を抜かれるやら、皮を剥がれるやら、鉄の杵(きね)に撞(つ)かれるやら、油の鍋に煮られるやら、毒蛇に脳味噌を吸はれるやら、熊鷹に眼を食はれるやら、――その苦しみを数へ立ててゐては、到底際限がない位、あらゆる責苦(せめく)に遇はされたのです。それでも杜子春は我慢強く、ぢつと歯を食ひしばつた儘、一言も口を利きませんでした。  これにはさすがの鬼どもも、呆れ返つてしまつたのでせう。もう一度夜のやうな空を飛んで、森羅殿の前へ帰つて来ると、さつきの通り杜子春を階(きざはし)の下に引き据ゑながら、御殿の上の閻魔大王に、 「この罪人はどうしても、ものを言ふ気色(けしき)がございません。」と、口を揃へて言上(ごんじやう)しました。  閻魔大王は眉をひそめて、暫く思案に暮れてゐましたが、やがて何か思ひついたと見えて、 「この男の父母(ちちはは)は、畜生道に落ちてゐる筈だから、早速ここへ引き立てて来い。」と、一匹の鬼に云ひつけました。  鬼は忽ち風に乗つて、地獄の空へ舞ひ上りました。と思ふと、又星が流れるやうに、二匹の獣を駆り立てながら、さつと森羅殿の前へ下りて来ました。その獣を見た杜子春は、驚いたの驚か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なぜかといへばそれは二匹とも、形は見すぼらしい痩せ馬でしたが、顔は夢にも忘れない、死んだ父母の通りでしたから。 「こら、その方は何のために、峨眉山の上に坐つてゐたか、まつすぐに白状しなければ、今度はその方の父母に痛い思ひをさせてやるぞ。」  杜子春はかう嚇(おど)されても、やはり返答をしずにゐました。 「この不孝者めが。その方は父母が苦しんでも、その方さへ都合が好ければ、好いと思つてゐるのだな。」  閻魔大王は森羅殿も崩れる程、凄じい声で喚きました。 「打て。鬼ども。その二匹の畜生を、肉も骨も打ち砕いてしまへ。」  鬼どもは一斉に「はつ」と答へながら、鉄の鞭(むち)をとつて立ち上ると、四方八方から二匹の馬を、未練未釈(みれんみしやく)なく打ちのめしました。鞭はりうりうと風を切つて、所嫌はず雨のやうに、馬の皮肉を打ち破るのです。馬は、――畜生になつた父母は、苦しさうに身を悶(もだ)えて、眼には血の涙を浮べた儘、見てもゐられない程嘶(いなな)き立てました。 「どうだ。まだその方は白状しないか。」  閻魔大王は鬼どもに、暫く鞭の手をやめさせて、もう一度杜子春の答を促しました。もうその時には二匹の馬も、肉は裂け骨は砕けて、息も絶え絶えに階(きざはし)の前へ、倒れ伏してゐたのです。  杜子春は必死になつて、鉄冠子の言葉を思ひ出しながら、緊(かた)く眼をつぶつてゐました。するとその時彼の耳には、殆(ほとんど)声とはいへない位、かすかな声が伝はつて来ました。 「心配をおしでない。私たちはどうなつても、お前さへ仕合せになれるのなら、それより結構なことはないのだからね。大王が何と仰(おつしや)つても、言ひたくないことは黙つて御出(おい)で。」  それは確に懐しい、母親の声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思はず、眼をあきました。さうして馬の一匹が、力なく地上に倒れた儘、悲しさうに彼の顔へ、ぢつと眼をやつてゐるのを見ました。母親はこんな苦しみの中にも、息子の心を思ひやつて、鬼どもの鞭に打たれたことを、怨む気色(けしき)さへも見せないのです。大金持になれば御世辞を言ひ、貧乏人になれば口も利かない世間の人たちに比べると、何といふ有難い志でせう。何といふ健気な決心でせう。杜子春は老人の戒めも忘れて、転(まろ)ぶやうにその側へ走りよると、両手に半死の馬の頸を抱いて、はらはらと涙を落しながら、「お母さん。」と一声を叫びました。……        六  その声に気がついて見ると、杜子春はやはり夕日を浴びて、洛陽の西の門の下に、ぼんやり佇んでゐるのでした。霞んだ空、白い三日月、絶え間ない人や車の波、――すべてがまだ峨眉山へ、行かない前と同じことです。 「どうだな。おれの弟子になつた所が、とても仙人にはなれはすまい。」 片目眇(すがめ)の老人は微笑を含みながら言ひました。 「なれません。なれませんが、しかし私はなれなかつたことも、反(かへ)つて嬉しい気がするのです。」  杜子春はまだ眼に涙を浮べた儘、思はず老人の手を握りました。 「いくら仙人になれた所が、私はあの地獄の森羅殿の前に、鞭を受けてゐる父母を見ては、黙つてゐる訳には行きません。」 「もしお前が黙つてゐたら――」と鉄冠子は急に厳(おごそか)な顔になつて、ぢつと杜子春を見つめました。 「もしお前が黙つてゐたら、おれは即座にお前の命を絶つてしまはうと思つてゐたのだ。――お前はもう仙人になりたいといふ望も持つてゐまい。大金持になることは、元より愛想がつきた筈だ。ではお前はこれから後、何になつたら好いと思ふな。」 「何になつても、人間らしい、正直な暮しをするつもりです。」  杜子春の声には今までにない晴れ晴れした調子が罩(こも)つてゐました。 「その言葉を忘れるなよ。ではおれは今日限り、二度とお前には遇はないから。」  鉄冠子はかう言ふ内に、もう歩き出してゐましたが、急に又足を止めて、杜子春の方を振り返ると、 「おお、幸(さいはひ)、今思ひ出したが、おれは泰山の南の麓(ふもと)に一軒の家を持つてゐる。その家を畑ごとお前にやるから、早速行つて住まふが好い。今頃は丁度家のまはりに、桃の花が一面に咲いてゐるだらう。」と、さも愉快さうにつけ加へました。 (大正九年六月)   底本:「現代日本文学大系 43 芥川龍之介集」筑摩書房    1968(昭和43)年8月25日初版第1刷発行 入力:j.utiyama 校正:野口英司 1998年5月20日公開 2004年3月12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193    天馬 댓글:  조회:2515  추천:0  2013-06-29
天馬 金史良   一  ある重苦しい雲の垂れこめた日の朝、京城での有名な廓(くるわ)、新町裏小路のとある娼家から、みすぼらしい風采の小説家玄竜がごみごみした路地へ、投げ出されるように出て来た。如何にも彼は弱ったというふうに暫く門前に佇(たたず)んで、一体どこから本町通りへ抜け出たものかと思案していたが、いきなりつかつかと前の方の小路へはいって行った。けれど界隈が界隈だけに、地に這うような軒並のいがみ合っている入りくんだ小路の、どこをどう通れば抜け出られるか皆目見当がつかない。右に折れるかと思えば又左の方へはいって行く。やっと左から出て行くと又路地は二つに岐(わか)れて立ん坊になるといった工合である。何か深い物思いに沈んで彼はてくてく歩き続けたが、袋小路などに突き当って、はっと思い、辺りを見廻したりした。前といわず、横といわず、大門に赤や青のペンキを塗りたくった、いずれも土壁が今にも崩れ出しそうな家ばかりである。こうして又、黙々と折り返し方々縫い歩く中に、とうとう彼は迷い込んでしまったのだ。そう早くもない時刻だが、どの小路もひっそりとして、時々朝帰りの客が、きまり悪そうに肩をすぼめてふらふらと通り過ぎる。どことも知らず迷い込んだ塩売り爺さんは、やけに、 「塩やーい、塩やい!」  と叫び廻っていた。玄竜はようやく三叉に岐れたところまで出て来ると、ゆっくり「みどり」を一本取り出して咥(くわ)え、辺りを見廻しつつ不機嫌そうに何かをぶつくさ呟いた。どうも気に食わぬ女を抱いたものだと思ったら、帰り途にさえこんなに手古摺(てこず)るわいと彼は愚痴(ぐち)るのだった。だが、それよりも先程から彼の心の一隅にはどうしても払いのけることの出来ない黒い雲のわだかまりがあるのだ。時々それは強く胸をしめつけるようでさえある。実に彼はあるのっぴきならぬ事情から、この二日の中に頭髪を剃りお寺へ修行に参らねばならぬ身の上だった。それ故娑婆(しゃば)の悦びもこれでおしまいかと思えば興奮のあまり、昨夜敵娼(あいかた)の頬をメロンだメロンだと叫んでかぶりついたのであるが、女はこういう天外な芸術家を理解しようとはせずにびっくりして飛び出したのである。彼はそんな不快なことを思い出して畜生、忌々(いまいま)しいと再び呟きつつ、兎に角一応小高い所まで出て見ねばなるまいと考えをきめ、いくらか坂になっている小路をさして又とぼとぼ歩き出した。やはり突き当ったり、くねりくねり曲ったりしつつ、ようやく坂の上、陽春館というそれも青ペンキ塗りの大門の前まで辿り着いた。辺り一面、数百千と坂をなして密集している朝鮮人の娼家の屋根が、右にも左にも上にも下にも波打っている。生温かい初夏の風に吹かれつつ誰かの詩にあるような、われ今山上に立つといった恰好で暫し突立っていると、ひたひたと寄せて来るやるせない淋しさをどうすることも出来なかった。男達が右往左往し娼女達の嬌声が高らかに響き返っていた昨夜の娼家界隈とも思われない程、辺りは森閑(しんかん)としている。だがこの満ちあふれる家々の中に何千という若い女が洗いざらしの藷(いも)のようにごろごろしているのに、自分は二日もすれば薄暗い妙光寺の中で寝起きせねばならないのか。玄竜はそこで二本目の煙草を取り出して火を附け、ふーと煙を吹き上げた。ぼうっと陽炎(かげろう)に霞んで程遠く西の彼方に天主教会堂の高く聳(そび)え立った鐘楼が見え、そこら辺りに高層建築が氷山のように群立っている。正に彼の行こうとする目標だ。それにしてもさて何処から下りて行ったものだろうかと頭(こうべ)をめぐらしたと思うと、彼はわれ知らずくすりと笑った。朝鮮家の屋根屋根を越えて南の麓の方を眺めた時、本町五丁目と思われる辺りに、黒い変圧器を幾つものせた異様な電信柱がふと目に附いたのだ。それはいつだったか、泌尿病院を捜して徨(さま)い歩いた時、そこにさる所の広告がぶら下っていたことを急に思い出したからである。そうだ、あれを目印にして下りて行けばいいと彼は自分に云った。――  本町通りと云えば京城では一番繁華な内地人町(日本人町)で、それは蜿蜒(えんえん)と東西に細長く連なっている。ようやく廓の出口を捜し当て、そこから本町五丁目へ玄竜がのっそり現われ出たのはもう十時すぎ、通りには人影も多く割り方賑やかだった。彼は文人でも官吏でも、誰か親しい人に会いたいものだと思いながら、眼尻を下げやや俯向(うつむ)き加減で通りの真中をがに股で歩き出した。或は彼自身が云っているように、本当に柔道初段以上のために広過ぎる程の肩が凹み込んでいるのかは知らないが、がに股はあの妙な電信柱を知るようになって以来のことだった。殊に救いのないような孤独と深い憂悶の中に捉われている今の彼である。けれどとうとう明治製菓の近くに来るまで、ついぞ誰一人にも会うことが出来なかった。その時ふとこの明菓で開かれた昨夜の会合のことが思い出される。「貴様こそ朝鮮文化の怖ろしいだにだ!」と叫んで、皿を投げて来た評論家李明植の鋭い顔がすうっと閃(ひらめ)いて見える。彼は思い深げにその入口の前に立ち止ると、へん、青くさい野郎奴、今こそ豚箱で……とにやり薄笑いを浮べた。それからどれ、一つはいってやるかなという気になったらしく、急に胸を張り肩を怒らして慌しげに扉を押してはいって行った。ホールの中はがらんどうで、隅っこに僅か二人の外交員風の男が向い合って、ひそひそ何かを話し合っているきりである。玄竜はその真中の方へ徐(おもむ)ろに進んで行きどっかり坐り込むと、給仕の女の子を手招き寄せ暫くじいっと顔を見上げていたが、女の子が気味悪げに赧(あか)らむのを見るなり突然叫んだ。 「コーヒー」  女の子はびっくりして飛んで行った。で、彼はすっかり満足してにたっと笑いを浮べお尻を上げると、今度はどういうつもりか調理場の方へ狗(いぬ)のようにはいって行くや、 「ひー済みませんね」と相好をくずし、手をぴょこんと差し出した。「おしぼりを一つ……」  こういった馴れ馴れしさからみるに、調理人達はとうに自分を知っているに違いないと思っている訳であろう。成程彼等は昨夜二階で起った不祥事件を知っているので玄竜を覚えていた。丁度朝鮮文人達の会合があって何かを皆が熱心に討論し合っているところへ、片隅で突然玄竜がけらけら笑い立てたかと思うと、彼は一人の若い男から突然皿を投げ附けられ、頭を打たれて倒れたが、仰向けになったまま尚も不貞腐(ふてくさ)れたようにけらけらと笑うのを止めなかった。その場で李明植というその若い男は傷害のかどで臨席の警官に連行されて行った。調理人達はその席上の玄竜のふてぶてしさに随分驚かされたが、又こういう調理場のような変なところへ彼が現われてみると、いよいよ面喰らって怪訝(けげん)そうにお互い顔を見合わせた。誰とて笑う者もなく、ただ一人が驚いたように首を振っておしぼりはないという仕草をした。と、彼は一度でれりと横目で皆を睨み附け、いきなり鼠のように水道の方へ飛んで行ってざあざあ水をぶっ放したかと思うと、頭を突き出してふーふー水を浴びながら顔を洗うのだった。皆はてんから呆気(あっけ)にとられたが、彼がへへへと照れ臭そうに笑いつつ出て行った時、 「気違いじゃろか」と先の一人は首をひねったのである。 「いや、玄竜だ、玄竜だよ」 「そうだ、あれに違いない」 「小説家の玄竜だよ」  等と、皆は口々に囁き合いながら、食器の出し口に寄り集って覗き出した。見れば玄竜はもう自分の席に帰って、丁度傍においてあった朝刊を鷲掴(わしづか)みにして顔や首筋をふいているのだった。彼はちらっと流眄(ながしめ)で調理人達が詰め寄り自分の方に目を注いでいるのを見やると、すっかりいい気になって、真黒く濡れて皺くちゃになった新聞紙をぽんと鷹揚(おうよう)に卓の上へ投げた。そこで何気なしにそれに目をやったところ、紙の一つの襞(ひだ)の方を大きな一匹の南京虫がのそのそ這い廻っているのを見て目を瞠(みは)った。思わず彼はにこりと笑いを浮べ、心持ち体を乗り出したのである。南京虫はあまりに血を貪(むさぼ)り啜(すす)ったのであろうか、急に逃げ腰になってはいるが、赤く膨れ上り過ぎて足が云うことをきかぬらしく体を持てあましている形だった。時々辷(すべ)って転げ落ちそうになるが、指先を持って行けば又慌てて逃げ出すのだった。もともと彼は南京虫が好きである。地べたにひっついて這い歩く様子が、自分の態(ざま)によく似ているとでも考えているのだろうか。或はその図太さや狡さが好ましく思われ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それにおやこれは今まで自分の首筋を這い廻っていたのに違いない、さてはあのメロン頬の女から背負わせられた奴かなと思うと、何故かしらくすぐったいような腹立たしさを感ずるのだった。彼はいきなり肩をうねらせてひひひと笑った。が、おやっと思ってみるといつの間にやら、南京虫はすごすご急いで今度は襞の裏の方へ逃げ隠れようとしている。彼は素早くその一端をつまみ上げてそうっと裏返し、いかにも面白そうに飽(あ)くまでその行方を見守った。ところがものの二三分もせぬ中に突然彼は目をむいて仰山(ぎょうさん)に驚き上った。南京虫は丁度ある一つの見出しの上を通りながら、一字一字を彼へそれとなく読ませたのだ。実に何ということか。瞬間、これは天祐ともいうべきいいチャンスだぞと彼は思ってしまった。キリストの復活だとも考えた。たとえ学芸欄の一隅の小さな活字とはいえ、彼とはそれこそ本当に並々ならぬ親交のある、東京文壇の作家田中が、満洲へ行くついでに京城へ立ち寄って朝鮮ホテルに投宿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それは知らしていたのだ。 「行かねばならん」  玄竜はぶるっと身をふるわせて立ち上ると、一旦重々しく肩をすくめ出口に向って南京虫のように動き出した。彼には固く念ずるところがあったのである。丁度行きしなにコーヒーを運んで来る女の子とぶっつかりそうになると、ひったくるように茶碗を捉え上げて熱いのも構わずぐいぐい飲み干し、呆然となっている女の子や調理人達を尻目にあたふたと出て行くのだった。  本町通りはいくら午前中でも明菓あたりから通り出口の方にかけては、人々の群でいつも氾濫する程に雑沓する。そそっかしく下駄を鳴らして歩く内地人(日本人、以下同じ)や、口をぽかんとあけて店先を眺める白衣のお上(のぼ)りさんや、陳列窓に出した目玉の動く人形にびっくりし合う老婆達や、買物に出掛ける内地婦人、ベルの音もけたたましく駆けて行く自転車乗りの小僧に、僅か十銭ばかりの運賃で荷物の奪い合いをする支械(チゲ)軍などで。玄竜はこういう人々の波をくぐるように急ぎ足で通り抜け、鮮銀(朝鮮銀行)前の広場に出て立ち止った。電車が繁く往き交い自動車が群をなしてロータリーを走り廻っている。彼は慌てふためきつつ広場を突き渡って、向い側の静かな長谷川町の方へはいって行った。暫く歩いて行くと右側に高い昔風の塀が続いて、古色蒼然とした宏壮な大門が立ち現われる。それをくぐってはいれば広い庭園の中に、韓国時代どこかの国の公使館であったとかいう立派な洋館があった。玄竜はそこまで殆んど無我夢中に辿り着くと、胸を躍らせつつ廻転扉を押して追い込まれるようにはいって行った。 「田中君に取り次いで下さい」と彼は帳場の前に立ち現われるなり、十二分に威厳をつくろって口を切った。「僕、玄竜と申します」  髪を綺麗に梳(す)いて分けたボーイは野郎又来やがったなといった調子で、彼の方を上から下へとじろじろ眺めてから、 「お出掛けですが……」 「出掛けた?」玄竜は如何にも意外らしげに、しかも自分はそれを充分意外に思ってもいい人だというふうに、「一体誰と?」 「はあ」ボーイはいささかけおされて恐縮した。「そのう何でも雑誌社の方でしょうか」 「雑誌社の方?」  はたと悪い予感に襲われてから慌しく問い返す玄竜の顔には、明らかに狼狽したような焦だたしい不安な影がかすめ通った。それはきっと大村に違いない。大村だとすればこれは大変だと思ったのである。それでせき込んで質(たず)ねた。 「U誌の大村君じゃないんですか?」 「それは、分りませんよ」と今度は横合いの方から他の中年のボーイが恰(まる)で怒ったように叫んだ。実際内地(日本、以下同じ)の芸術界から誰か知名の人でも来ると、ぐうたらな文学くずれ達がいかにも朝鮮の文人を代表するような面で押し掛けて来るので、ボーイ達はうんざりするのだった。今も田中が大村やある専門学校教授とに伴われ、後には朝鮮人のそういった文学くずれを四五人ぞろぞろ随えて出て行った後である。玄竜は殊にこういう訪問の癖がひどくて毎日のようにお客を訪ねて来るので、ボーイ達でさえよほど彼を持て余している訳だった。「一々それまで覚えておれませんからね」 「へ、成程これはどうも、へへへそうでしょうな」  と、玄竜は云いつつ頭に手をやって卑屈そうに笑うのだった。けれどどうしてもそのことが気にかかってならないので、「……多分大村君じゃないでしょうね、そうですよ、きっとそうですよ」と何度も独りで強く肯いてみせた。  それから急に首を突き出し、手では奥のロビーの方を指しながら、 「一寸ソファーを借りますぜ」  と云うとくるり背を向けた。そしてロビーは人を待つのに役立つことを、自分はこんなによく知っているぞといわぬばかりの様子で、肩を揺りつつゆっくりとロビーの方へ向って進んだ。そう云えば彼の小説にはいつも、ホテルやロビーとか、ダンスホール、サロン、貴族夫人、黒ん坊運転手といったようなものがどっさり登場していた。ところで彼は何を思い出したのか、つと立ち止ったと思うと、振り返ってから叫んだのである。 「田中君が帰ったら一つ頼みますぜ。へ、僕は眠いんですよ」           二  広々としたロビーのソファーに横になって鼾(いびき)の音も高く、優に四五時間も心ゆくままに眠りをとった玄竜は、洋服の埃(ほこり)を打ち払いつつぼそぼそ起き上った。ロビーの中はもう薄暗くがらんどうである。両手を拡げてゆっくりと伸びをしながら何度もあくびをやった。すると急に彼は空腹を感ずるばかりでなく、中々田中が帰りそうもないので、一応出て行こうと思って寝呆けた顔を突き出し帳場の方を窺ってみた。ところが丁度もっけの幸いに帳場には誰もいなかったので、彼は素早く脱兎のように抜けて外気の中へ飛び出したのである。もはや午後の日差しがうっすら淋しく大道にかげり、空風(からっかぜ)があちらこちらに埃を吹き上げている。どこかで安い食事を取って、それから一先ず田中達が行っておりそうな所を方々捜し廻らねばならないと彼は考えた。けれど自分にもどういう訳かははっきり分らないが、彼は再び歩き出しつつ怪しからんと憤(いきどお)ろしげに呟いた。恐らく田中が自分に朝鮮へ来るからという知らせの葉書一枚もくれなかったことをいうのであろう。確かに彼は自分が朝鮮に帰って今は歴とした大家になっているなどと、あられもないことを何度も云ってやった筈だのに。  わが京城は黄金通りを境界線として、その以北が純然たる朝鮮人街である。長谷川町から黄金通りへ出、茶房リラの前へ通りかかった時、玄竜は一寸覗くだけにしようと首を突き入れ一亘(わた)り紫煙の中を見渡したが、そのとたんにわれ知らずにこりと笑った。一杯人々のとぐろを巻いているさ中に、目もさめるばかり真白く着飾った女流詩人文素玉が、百合のように楚々(そそ)と坐っていたのだ。彼は急に幸福な気持になって転ぶようにその中へはいって行った。有名な玄竜が現われたので人々はお互い突つき合ったり、ぷっと吹き出したり、わざと蔑(さげす)むようにそっぽを向いたりしていた。女流詩人は丁度若い大学生の恋人を待っていたところだが、こういう注視の的(まと)の小説家が自分の方へやって来る嬉しさに、つい何もかも忘れてしまい、やや大きいめの脣を歪めて含み笑いながら彼を迎えたのだ。 「あらまあ、玄さん、珍しいですこと」 「へへえ、これは又至極(しごく)面白いところで……」  と近附くや、玄竜は彼女の向い側の方にどっかりと坐り込んだ。皆の好奇の目は一斉にこの二人の方へ注がれた。尤(もっと)も彼等は皆とっくからもう退屈していた。だが、退屈といえば毎日のように退屈な連中ばかりである。所謂(いわゆる)茶房の彼等も亦現在の朝鮮の社会が生んだ特別な種族の一つであろう。少しばかり学問はあるが職は与えられず、何もなすことがないので髪でもクラーク・ゲーブル式に分けてみようといった手合とか、或はどこかに製作費を出すような莫迦(ばか)息子はいないものかと、首をひねり合うちょび髭を生やした映画不良やら、何かこそこそと隅っこで企(たくら)み合う金山ブローカー達、原稿用紙の束を片手に持って歩かねば芸術家でないと思い込んでいる低級な文学青年、そういった連中ばかりだが、さすがに彼等も二三時間以上も頑張っておれば、話題は尽き頭も疲れていた折なので、突然玄竜が現われ美しい女流詩人と向い合うようになったことは、確かに興味深いことに相違なかった。京城の文化社会で誰一人知らぬものはない二人が偶然そろいもそろって対坐した訳である。それに文素玉は玄竜にとっては単なる女流詩人ではないということも、彼等はよく知っていたのである。 「今日は又どうなさいまして」  彼女はわざと恥らうように口元へハンケチをあてがった。 「実は――ヘーノイエ・シュタット(新町)に行って来たんですよ」と云って、玄竜はいかにも好奇心をそそるようににやにやと笑いを浮べた。むろん女流詩人はそのドイツ語の意味を知るよしもなかったので、 「え?」  と目を丸くするや、彼はいよいよ得意げに腹の皮をよじらせつつ笑うのだった。そして又思い出したようにふふふと笑った。頽廃のかげりを宿した彼女の頬には紅潮がほんのりとさし現われ、ちぢれた前垂れの髪はゆらぐかの如く見えた。玄竜は急に痙攣でも起したように強ばって、ぐっと食い入る目附で彼女の顔を凝視した。  軽薄な女流詩人文素玉は玄竜をこの上もなく尊敬しているのだった。彼はいみじい詩の言葉、ラテン語やフランス語を知っているばかりか、彼女の好きなランボウやボードレールともただ国籍を異にしているだけに過ぎないと彼女は固く信じている。玄竜は又自分でもそう嘯(うそぶ)き廻っていた。何しろ彼女は詩人としてもランボウの詩を幾つかもじってみた位のところであるが、それを玄竜が二三流の雑誌に担ぎ上げて彼女の美貌と共にその前途を謳(うた)ったのだ。彼女がすっかり詩人になった気取りで、人の出版記念会とやらにはどういうことがあっても出席するようになったのも、それ以来のことである。彼女が目もまがうようなあでやかな姿で会場に現われると、玄竜は何時もぶるっと立ち上ってこっちへ、こっちへいらっしゃいと自分の傍へ連れて来るのだった。彼女も所詮は現代の朝鮮が生み出した不幸な女性の一人であるとも云えようか。口を開けば合言葉である封建打破という若々しい熱情から、女学校を出るなり結婚問題さえふりきって東京にまで留学に旅立った彼女。だが内地で専門学校を出ると同時に、曾つては自分が打破せねばならぬと云い且つ又闘ったつもりの封建性の復讎を、真先に彼女自身受けねばならなかった。当時は結婚しようにも早婚のため妻を持たぬ青年はどこにも見附からなかったのだ。あたら青春の血潮を如何ともすることが出来ず、こうしてだんだん男達と接触する中に乱倫の道に陥ち込んだ。だが彼女は己こそ真向から旧制度に反抗し新しい自由恋愛の道を切り拓く先駆者だと思い込み、次々と自分の方から男を作って行くのだった。玄竜も他ならぬその相手の一人である。ただ違うとすれば、それは玄竜とだけは、二人同志がお互いの狂痴に馴れ合いすっかり満足し合っていることと云わねばなるまい。 「昨夜U誌の大村君が又僕んところへ来たんですよ、いいですか、大村君がウイスキーを持って来たんですよ」と玄竜は続け出した。「今夜中に書いてくれなければどうしても帰らんといったような訳でしてね、それにはさすがに僕も弱りましたよ。丁度東京への原稿を書いていたところなんですから。一寸素晴しいもんですぜ。Dという一流雑誌に三月も前からせびられている奴なんですよ」 「期待しますわ」女流詩人はこの上もなく感動して小さな目を輝かした。 「僕はもう朝鮮語の創作にはこりました。朝鮮語なんか糞喰らえです。だってそれは滅亡の呪符ですからね」そこで昨夜の会合のことを思い浮べながら、出鱈目(でたらめ)な見得を切ってみせた。 「僕は東京文壇へ返り咲くつもりです。東京の友人達も皆それを一生懸命にすすめているんです」  けれどその実文素玉のような女は、昨夜明菓で本当に朝鮮の文学を守りたてているような真摯な文人達の間に会合があったことを知っている訳がない。玄竜だってどこかでこの文人達の集りのことをかぎつけて、殆んど会も終る頃のっそりと現われたのだ。が、そこには彼を朝鮮文化の怖ろしいだにとして憎悪擯斥(ひんせき)している男女ばかりがずらりと並んで、面々に興奮と緊張の色をみなぎらせて朝鮮文化の一般問題だとか、朝鮮語による述作問題の是非について熱心に討論し合っていた。彼はへーと笑いつつきまり悪そうに片隅へ離れてちょこなんと腰をかけた。やはり彼等は自分達自身の手で朝鮮の文化を打ち樹てそしてその独自性を伸長させるべきで、そのことは又結局は全日本文化への寄与でもあり、又ひいては東洋文化のため世界文化のためでもある等と語っていた。玄竜は一人一人の顔をじろりじろりと眺め廻しつつ、恰(まる)で人を食ったようににたにた嗤(わら)ってばかりいたものだ。一瞬間若い血気盛りの評論家李明植の鋭い視線とかち合ったことを覚えている。彼は思わずその時ぎくりとした。何だか李はぶるぶる神経の一つ一つをふるわせているようである。突然李は興奮のあまりに、喉元をごくごくさせつつ、 「それは自明なことだ」と叫ぶのだった。「朝鮮語でなくては文学が出来ぬという訳ではない。僕は言語の芸術性のためにのみこのことを云っているのではない。何百年という長い間固陋(ころう)な漢学の重圧のもとで文化の光を拝むことが出来なかったわれわれが、曲りなりにでもだんだんとわれ等の貴い文字文化に目覚めて来た今日ではないか。李朝五百年来の悪政の陰に埋れた文化の宝玉を発掘し、それによって過去の伝統を受け継ぐために、過去三十年間われ等はどれ程血みどろな努力を払ってこれ位の朝鮮文学でも打ち樹てたのであろうか。この文学の光、文化の芽をどういう理由で僕達の手で又葬るべきだと云うのか。だが僕はこれのために又徒(いたず)らに感傷的になって云うのでもない。実に重大な問題は朝鮮人の八割が文盲であり、しかも字を解する者の九〇%が朝鮮文字しか読めないという事実なんだ!」  その時玄竜は突然きききと嗤い声をたてた。 「黙れ!」 「黙れ!」  と云う声が嵐のように起った。 「まあ、いい」と李は目をつぶって気を押し静めようと努めながら呻くようにふるえを帯びた声で論を進めた。「朝鮮語での述作がこの人達に文化の光を与える為にも、はた又彼等を愉(たの)しませるためにも、絶対的に必要なのは論を俟(ま)たぬことではないか。今も厳として朝鮮文字の三大新聞は文化の役割を立派に果しているし、朝鮮文字の雑誌や刊行物も民衆の心を豊かにさせている。朝鮮語は明らかに九州の方言や東北の方言の類(たぐい)とは違う。もちろん僕は又内地語で書くことを反対しているのでもない。少くとも言語のショービニストではないのだ。書ける人はわれらの生活や心や芸術を広く伝えるために大いに働いて貰わなければならない。そして内地語で書くことを慊(あきた)らずとする者、又は実際に書けぬ者の芸術のためには、理解ある内地の文化人の支持と後援のもとに、どしどしいい翻訳機関でも拵(こしら)えて紹介するように努めるがいい。内地語か然らずんば筆を折るべしという一派の言説の如きは余りにも言語道断である」そこで急に卓を叩いて立ち上った。 「それでだ! 玄竜、君はこの問題をどう考えるんだ?」  玄竜を睨み附ける目からは火が出るようだった。彼は瞬間すくみ上ったことである。その実玄竜は体(てい)よく愛国主義の美名のもとに隠れて、朝鮮語での述作はおろか言語そのものの存在さえも政治的な無言の反逆だと讒誣(ざんぶ)をして廻る者の一人なのだ。それでなくてもこういう純粋な文化的な述作行動も、朝鮮という特殊な事情から、その本来的な芸術精神さえがややもすれば政治的な色彩を帯びているものとして、当局の誤解を招き易いと云えば云える。殊に事変以後その危惧は一層甚しかるべきである。玄竜はそれにつけ込んで愛国主義をふりかざし人々を売りつけながらのさばり廻っているのだった。それでどれ程多くの無実な人々が不安と焦躁、苦悶の深淵に突き落されたことだろうか。実際この会合は玄竜一派の言説に対する批判会だったのである。玄竜はその時体を反らしていかにも莫迦(ばか)にしたように、 「朝鮮語か」  と一言あしらってせせらわらった。ここにおいてついに李明植は心燃え上り皿を取り上げてぶち投げた。皆はどっと騒ぎ出した。だが彼は頭を打たれて仰向けに倒れてからも不貞腐(ふてくさ)れたように尚けらけらと笑い続け、李明植は傷害のかどで検挙されたことは既に御承知である。後から彼は会場を出て一人で新町の廓の中へ浮れ込んで行って、どこか安い銘酒屋でウイスキーを何杯もひっかけるなり、その足で娼家の門をくぐったものである。彼はそれを思い出すと何となく気恥しくもあり又おかしくもなってくすりと笑ってしまった。それからまぎらわせるように慌てて立ち上りかけた。 「何時頃でしょうか」 「まあいいじゃありませんの、本当にせっかちですこと」と云いながら、文素玉はちらっと腕時計を覗いた。「まだ六時前ですのよ。そらおコーヒーを早く持って来てよ」 「じゃついでにトーストも貰いましょうかね」と云って、釣り込まれるように再び玄竜は腰を下ろした。 「……それでです。何しろ社長の大村君がじきじきやって来られたんじゃね、とうとう僕も参って書いてやったんですよ。すると奴さんすっかり悦びやがって僕を引っぱり出してね、ぐでんぐでんに酔っぱらわせてあのノイエ・シュタットに連れ込んだんですよ。ところが、それがね、メロンのように頬の黄色い女でしたよ……」  それからこのメロンのようにという言葉がとても肉感的に思われて自分ながらすっかり気に入ったらしく、もう一度繰り返して強調した。 「メロンのようにね」  さすがの女流詩人も彼が臆面もなく行って来たというその意味がやっと分ったとみえわれ知らず顔を火照(ほて)らしたが、それでも自分の気づまりな様子をみせては安っぽく見られるに違いないと思い返して、いかにもそれはもうとっくによく知っているけれどといった調子でこう応じたのだ。 「よかったんですわね、……素敵ね。それでも玄さんをお寺へ入れるというお方が、よくまあそんな所へ連れて行きましたのね」 「だからですよ」と小説家は顔の筋肉をひきつらせて慌てたように叫んだ。「それだから官僚たちの気はどうも分らんというのですよ。一種の気紛れなんですね。要するに大村君は僕という人間がまだ分っていないんです。つまり尋常でない芸術家が分らんのです」 「そうね」女流詩人は愁然として肯いてみせ、それから不意におほほほと笑い出した。 「いや笑うことではないのです。ランボウやボードレールが一般の俗人達にどんなに非難されたかを少しでも憶い出してごらんなさい」玄竜はいよいよ雄弁になって手を振り上げた。「朝鮮の芸術家、それは何という不幸な存在でしよう。自然は荒廃し民衆は無知であり、インテリは又芸術の高貴さを知らない。僕はここでゴーゴリがペテルブルグの画家を慨(なげ)いたことを思い出します。凡てが鈍重で悦びもなく又誰一人にも朝鮮の芸術家は大事にされないのです。捨てられた芥(あくた)の中でもがき合っているだけなんだ。僕もつまり芥の中に掃き出された一人の犠牲者なんですよ。成程僕は誰よりも大村君とは親しいしどんなことでも相談し合って来た。だが、今になっては彼はこの僕に向ってお寺へ行って坐禅をくめと云うのです。彼のそう云う気持は分るけれど、それは芸術家には自殺を意味しますよ。坊主になるなんて。だがまあ宜しいと僕は思う所あって云ったのです。ボードレールも詩の言葉で、おー静謐(せいひつ)よ静謐よと憬れました」  けれどそう結びつつ口元に笑いを浮べた彼の顔は、妙に痙攣を起したようにふるえた。 「一種の保護観察なんですのね、思想犯じゃないけど……」 「そうなんですよ」と彼は泣面をかきながらおろおろ声をしぼった。「僕は明後日までには坊主になってお寺へ行かねばならんのです」そこで彼はぶるっとふるえ上り膝を乗り出した。「ところがですね、実に素晴しいことには、東京の作家で僕の親友でもある田中君が京城へ来ているんです。是非会いたいということで先程朝鮮ホテルへ行ったけれど、とても遅かったので奴さんはしびれを切らして、大村君あたりと一緒に出掛けたらしいのです、あまり気の毒なんで僕はこれから捜しに行こうとするところです。何なら紹介して上げましょうか、朝鮮のジョルジュ・サンドとして又僕のリーベとして……」 「…………」詩人は目をつぶって嫣然(えんぜん)と笑った。彼女はいよいよ若い大学生と待ち合わせていることをすっかり忘れてしまった。「え有難う、紹介して戴きますわ」 「そうしたら」玄竜はじいっと彼女の笑顔を見つめていたが瞬間、そうだ今晩は久し振りにこの女を連れて帰るんだとひとり肚(はら)で定め込み、 「これを聞くと田中君の妹が妬きましょうぜ、へへへ」 「あら、そうでしたの、東京の恋人ってその方のお妹さん? おほほこれは面白いわね」 「そうなんですよ、そうなんですよ」と彼は我意を得たりとばかりいかにも愉快そうに叫んだ。「僕が東京を引き上げる時彼女が追いかけて来ると云って大変だったのです。兎に角田中君も今じゃ大いに芽が出て、もう中堅の作家ですよ。どうでしょう、彼を囲んで僕達が一度集ったら、その時も是非来て下さいね」 「え、それはむろん行きますわ」 「ところで、実はですね、田中君は大村君とは大学の同窓でとても親しい仲なんですよ」と後にぐっと身を反らして急に真剣な表情を作った。が、それには惨めとまでいえるようなほのかな明るい影が浮び上った。「そこで僕は田中君に大村君を口説いて貰おうという訳なんです。つまり芸術家を理解させるんですよ。そうです、これは確かにパリ娘のアンナに会ったこと以上に重大なことです。そしたらきっと僕はお寺へ行かないで済むと思うのです」 「そうですわね、それがいいですわ、それがいいですわ」女流詩人は肩をゆすぶりつつ息もせわしく心からの悦びを現わした。 「ほんとうにそうなればいいですわね」  事実小説家玄竜にしてもそう悪い人間ではなく、性根は至って弱い臆病者で、文学の才能にもいささかは恵まれていた。ただ長い間のどうすることも出来ない窮乏や孤独や絶望が、彼の頭を攪乱(かくらん)してしまった。それに今は朝鮮という特殊な社会が彼を益々混迷にぶち込んだのである。一種の性格破綻から父や兄には勘当され、学業は成らず生活費のあてとてなかった。東京での十五年間の生活というものは、それこそ正しく哀れな野良犬同様だった。殊に悪いことには自分が朝鮮人であることをどう隠そうにも、彼の骨組や面貌がまぎれもなく朝鮮人に出来ているので、下宿へ宿ろうとしても第一が顔、それにぼろぼろのズボンと来ているから、てもなく断られるのである。で、彼はふと神の啓示でも受けたように苦肉の一策として、急に自分は朝鮮貴族の息子でしかも文学的な天才であるばかりか朝鮮文壇では第一流の作家だとふれ廻ることにした。彼はそれで、朝鮮人であるがためにより余計に受けねばならない蔑視や気拙いことをも多少は緩和させ、いくらか暮しの上でも融通をきかせようとする心算である。ところが奇蹟的なことにはその方法が全く功を奏して次々と二三人の女に飼われることが出来た。こうしてとやかく一二年する中にすっかり彼は自分が本当の朝鮮貴族であり又文学の天才であると錯覚を起してしまった。だが文学の道だけはどうにもままならずで悶々としていたが、或る年、女を斬りつけた罪で送還を余儀なくされ、ついに破れかぶれの気持で朝鮮へ引き上げたのである。それからは朝鮮語で奇を衒(てら)うような、或は淫靡(いんび)を極めたような文章を綴って低俗な雑誌へ方々売り込みに歩いた。信玄袋にはいつも原稿を入れて担いで廻り、バーやカフェーを荒しては巡査に捕えられ職を訊かれると、得意になって文士の玄竜だと云い放った。招ばれもしない会に現われては口を開けば、フランス語やドイツ語ラテン語のうろ覚えているだけの単語を出鱈目(でたらめ)に喋りちらし、人の前では自分は柔道初段以上だからと胸を張ってみせる。そしていつも東京文壇で自分が如何にも大活躍していたようにだらだら自慢話を並べ立てた。それが恰(あたか)も今の朝鮮での自分の存在を高めるとでも思っているかのように。万事がこういう調子なので、だんだん世間の人は彼を気違いとして取り合わぬようになったが、そうなればなるほど彼は願ったり叶ったりでいよいよ有頂天になって、真実の天才なればこそ俗人達には容れられぬものだと嘯(うそぶ)いた。だが、彼の素質がおいおいと露見するにつれて、とうとう卑俗なジャーナリズムでさえ彼の文章を受けつけなくなり、文化人達は相結束して彼を文化圏内から放逐することにした。こうして身動きが出来なくなったその時から、彼は酒を飲めば柔道のことはもう一切口に出さず、いつの間にか誰に向ってでも貴様こそ監獄にほうり込まれてえのかと、こけおどかしに叫ぶようになったのだ。同時に彼はどんなことでもしおおせる男として皆から怖れられ出した。こういう男にでさえ、苟(いやしく)も時局的な言葉で迫って来る限りびくびくせねばならぬとは、朝鮮の文化人のために何という悲しむべき事であろうか。それにつれて玄竜の心も益々やけに荒(すさ)び、街で一層暴行や恐喝に猥雑な行為を働き廻るようになったが、今度は巡査にとがめたてられても、けらけらと嗤い僕のことなら大村君に聞けと呶鳴り附けるのだった。  彼がこういうふうに人の前でいつも君附けに呼ぶ大村というのは、実は朝鮮民衆の愛国思想を深めるために編輯される時局雑誌Uの責任者である。内地から渡って来たばかりの元官吏でまだ朝鮮やその文化の事情に疎(うと)い彼は、最初に近寄って来た玄竜こそ、彼の言葉の通りに朝鮮文壇を実際に担(にな)う小説家であり、又その性格破綻に近いところなどは、いよいよ彼が非凡な芸術家である所以(ゆえん)だと頑(かたく)なに信じ込んだ。こうして絶望の玄竜はわけもなく大村に取り入り重用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だ。ところが、好事魔多しとかでそれから間もなく、玄竜は或る至って奇妙な事情からスパイの嫌疑を受け憲兵隊に挙げられたのである。丁度或る麗かな日の午後のこと、彼はいつもの本町通りで一人の年若い妖艶なフランスのアンナと称する女を見かけたのだった。彼は勇躍してボナミとかマドモアゼル、ウイメルシイとか片言を並べつつ近附いて行った。青い瞳の女も中々心得たものでたどたどしい日本語ながら、自分は漫遊に来ていて間誤(まご)ついていると云ってやんわり笑った。彼は益々いい気になって方々彼女を連れて歩きながら、道行く人々に聞えよがしに、ボンジュール、トレビアン、ボウギャルソン、ススワルとか知っているだけのフランス語を全部叫んだ。そして態々(わざわざ)古本屋へ引張ってはいり、自分のプロフイルの出ている三流雑誌を捜し出してグラビヤの頁を開き、誰であるかを知っているかと得意気に自分の写真を指差した。おーと彼女は驚いたふうをする。そこで彼は悦に入っていきなり人の目を盗んでその写真をちぎり取り、無理矢理に彼女のハンドバッグへ押し込んだ。その後アンナは豆満江国境でスパイとして検挙され、彼は件(くだん)の写真が彼女の手元から出て来たために、同じく嫌疑を受けて留置された。こうして大変なことになるところを、大村が官庁の力でいろいろと釈明奔走して身柄を貰い下げてくれたので、彼は大村には一世一代の恩義を感ずるようになった訳である。でなくても朝鮮の一般の人々に野良犬同様に見放された現在の彼は、大村にまで捨てられては野垂死(のたれじに)するより致し方がなかった。が、今はもう朝鮮にも愛国熱は漸次高まって所期の目的は殆んど達せられつつあるのに、愛国主義をふりかざして社会の公安を妨げ到るところで悪事を働く玄竜を、そのまま用いることは大村の威信にも関ることと云わねばならぬ。その実又玄竜に関する限り、司直当局に対する非難攻撃が甚しく警察でもそろそろ内査を始めたのだった。それで大村は警察に渡すには忍びない気持と持前の信心深さから、お寺へ赴(おもむ)き坐禅修行をして早く謹慎の状でも見せろと命じたのである。事態がこうなってみると、玄竜はその命令に背(そむ)く訳には行かなくなったのだ。いよいよこの二日の中に出掛けねばならなかった。それ故この際東京の作家であり又大村と同窓でもある田中が来城したことに一切の望みをかけ、自分が自由に足を伸ばし得るように、いろいろと大村を彼から口説いて貰おうとする訳である。だからパリ娘のアンナに会った以上に重大であることはむろんだった。 「僕はこれから田中君を捜しに鐘路裏へ行くのです。さあ一つ出掛けましょうか」  と、玄竜は急に元気になってトーストを一度に二片も口に突っ込みながら尻を上げた。 「あたしも行きますわ、……あ、それいいわよ」  と云って、女流詩人は彼の手から勘定書をもぎ取って立ち上ったが、どうしたのか急に表情が強ばって石のように固くなった。間もなく彼女は少しばかりおずおずし出した。おやっと思って玄竜が振り返って見れば、入口のところに角帽を目深く被った背のひょろっとして高い大学生が蒼くひきつった顔をして突立っていた。そしてじろりと玄竜を睨んだ。その時急に悩しげなスペイン民謡のレコードは止り、人々の視線は一斉にこの三人の方へと向けられていた。文素玉はいきなりそそくさと身をかわして入口の方へ行き、ドアを開け若い大学生を引張るようにして外へ出て行った。玄竜は打ち砕かれたように茫然と立ち尽してそれを眺めた。後の方では皆がきききと笑い合う声が聞える。ところが又三四分もしない中に、彼女は慌しく彼の方へ飛び込んで来て、「あたしの従弟ですの」とせき込みつつ小さく叫んだ。「芝居へ行こうと約束していたのをすっかり忘れていたんですの」  そしてはっと思う間に、 「明日の朝行くわ」  と耳元に囁いて再び飛んで出て行ったのである。 「待て、待て!」  と、後から急に狼狽したように叫びつつ彼は手を振りながら飛び出した。だがもう外は暗い夜で二人の影はどこへ行ったのやら、既に杳(よう)として消え失せていた。           三 「くそ忌々しい、畜生! 覚えとけ」  等と、小説家玄竜は肩をすくめたまま何度もぶつぶつ呟きつつ、朝鮮人街で一等賑やかな鐘路通りをさしていかにも浮れたような足取りで歩いて行った。あの女郎奴までこの俺を莫迦にしている、少々ふざけているぞと彼は自分に云った。何だか大事な手中の玉を奪われたような気がしてならなかった。するといつものように彼女の不調和にも長い胴の下に続くいびつに大きなお尻が目の前にちらついて見え、それに向って温かい血潮の擾乱がどくどくと流れる切ない快感を覚えるのだ。彼はひとりでに気がむせんで来てごくりと音を立てて固唾(かたず)をのんだ。その時ふとどうしたことか、彼は自分の耳元に彼女の囁き声が聞えたように思われたので、はっと驚いて振り向いてみた。けれどむろんそこに文素玉の影もあろう筈がなく、ただ道行く人が一人胡散臭(うさんくさ)そうに立ち止って彼の姿を眺めていた。くそ忌々しいと彼は再び口に出して呟いた。  白堊建の大きな朝鮮人経営の銀行前を通って、いつの間にか鐘路四辻の方へ近附いて来た。急に辺りは騒々しくなり、人力車は走り自動車は流れ電車はもどかしげに警笛を鳴らしている。百貨店和信と韓青ビルの高層建築を起点として、東大門の方へ向って大通りを挟み立派な建物が海峡のように連なっていた。丁度四つ角に立っている旧世紀遺物の鐘閣の前へ出ると跼(せぐくま)っていたおいぼれの乞食達は手をさし伸べ、きたならしい乞食の子供達はどこからともなく稲虫のように群がって来た。今年はめっきり乞食がふえている。彼は物々しく手を振り上げて子供達を追い散らした。韓青ビルの前あたりからは歩道にも夜店が出張っていて人々の流れで雑沓し、売子達の掛声が喧しく響き返っている。丁度その夜店並びの入口のところでは、物見高い連中に囲まれて白い頭巾をくるんだ百姓男が酔いつぶれたらしく手を振りつつ、何かを喉につまった声でしきりに喚いている。一体どうしたのだろうと首を出して覗いてみれば、男の傍には支械(チゲ)が立てられ、そこには大きな桃の花の一杯ついた枝々がのっかっていた。それで支械は花束に埋れた形で、首をうな垂れている花々はいかにもいたいけである。 「わっしあ嬶(かか)を貰った年に二人でこの桃の木を植えたんでがす。その嬶が死にやがっただ。その嬶がよ」と百姓は叫んだ。「白米の重湯が食べてえちゅうので地主さんところへ借りに行った間に死にやがっただ。さあ、わっしあ桃の枝をぶった切って担いで来たんでがすぞ、買って下せい、一枝二十銭、多くはいらねえ、二十銭でええ」  山をなす人々は面白そうに顔を見合わせながらげらげらと笑い合った。玄竜は懐手をしたまま人垣を押して中の方へぬっと現われ出た。そこで暫くの間目尻を下げて、いかにも感慨無量といった様子でしげしげ桃の枝を打ち眺めた。何故かしら惻々(そくそく)と胸の中を伝わって来る悲しみを覚える。彼は何かに取り憑かれたようにつかつかと支械の傍へ進んで一枝を取り上げじいっと思いをこめて見上げた。今を満開に咲き誇っている薄紅色の花が二十程もつづらなりに枝をおおうている。 「さあ、旦那買って下せい。わっしあこれをたたき売って酒を飲んで斃(くたば)ってみせまさあ、え、皆どうして笑うんでがす、買って下せい。笑うでねえ、買って下せい。……へ、これは有難え、有難え」  片方の手でばら銭を捜していた玄竜が白銅貨を二つ三つ掴み出してぽんと投げ出したのだ。百姓は狂喜して頭を地につけ拝んだ。それを尻目に玄竜は黙ったまま桃の枝を肩にかけると人々をかき分けるようにして再び人混みの中へ出て来た。その時彼は自分の恰好からか不意にそれといった脈絡もなしに十字架を負えるキリストを憶い出し、自分にもその殉教者的な悲痛な運命を感じようとした。自分こそ或る意味では朝鮮人の苦悶や悲哀を一上身に背負って立ったような気がせぬでもなかった。成程朝鮮という現実であればこそ、彼のような人間も生れ出、且つ社会の中をのさばり廻ることが許され得たからである。混沌とした朝鮮が僕のような人物を必要として生み出し、そして今になっては役目が尽きると十字架を負わせようとするのだ、彼はそういう自覚に立ち至ると益々悲しみが胸をつき上げて来て、どうっと慟哭したい位だった。けれどそういうことも束の間、歩道一杯の人々が驚いたように皆自分の異様な恰好を眺めているのに気が附くと、寧(むし)ろ今度はけろりとしていささか得意にさえなったのである。へっぽこ詩人の女郎奴、貴様がついて来たら本当にこの僕の天外な像が分っただろうに、莫迦な女郎奴と彼は心の中で文素玉を憎々しげに罵った。夜店の前は押すな押すなの込み合いである。先からの乞食の子供達は面白そうに五六名後をついて行った。その中に突然前の方で喧嘩が始まったとみえ騒ぎ出したので、彼は避けるようにして少しばかり戻って来ると、イエス書館の横から折れて薄暗い小路をはいって行った。乞食の子供達はこの時とばかりもう一度彼の傍へまつわりついて来て手を出しながら、 「旦那、恵んで頂戴」 「恵んで頂戴」  と哀れっぽい声を絞った。彼はつい気が滅入ったようになって銅貨をばらばらと五六枚投げ与えた。子供達は奇声を上げ暗がりの中で頭をお互いぶっつけ合いながらもがき出した。玄竜はそれを振り返ってひひひと嗤いかけたが、ふっと涙がこみ上げて慌てて腕を上げてふいた。  裏小路に出ればそこは所謂(いわゆる)鐘路裏で、カフェー、バー、立飲屋(ソンスルチビ)、おでん屋、麻雀屋、周旋屋、飲食店、旅館等が、目をぴかぴか光らせたり、口を開けたり、尻ごみしたり、地べたにひっつくように蹲(しゃが)んだりしている。ぎーぎーとレコードが騒々しく辺り一面で唸り立て、洋服や白い着物がうろつき廻っている。景気のいい商人や、総督府あたりの朝鮮人雇員、無職で金のある青年、モダンボーイ、そしてカフェー音楽家、バーマルキスト等が、夜はよくこの界隈で気焔を上げるのだった。中には大枚をばらまきに来た金山男もいる。いよいよ目的地へ来たぞと玄竜は考えた。たとえ田中が大村に案内されていないとしても、誰かに連れられてきっとこの界隈へ朝鮮色を満喫するために来ているに違いなかった。成るべくは大村君と一緒でないようにと……彼はこう念願しつつ一つ一つ飲み場へ首を突き入れて調べてみることにした。その後をやはり子供達はにやにや笑いながらついて来る。彼はたとえ自分を尊敬する人がいてどんなに引張ろうとも決して道草は食うまいと固く決心した。それ故カフェー鐘路会館の扉を開けるや誰かがよう玄さんと叫んだ時も、彼はへへへと笑ったまま踵(きびす)を返し、バー新羅の中を窓を開けて覗いたとき、おい気違い、乞食野郎! と皆から罵声を浴びせられた時も、彼はただ自分が柔道初段以上もあることを思い起すだけでへらへらと笑い去った。或るところはうっかり飛び込んで、朝鮮服に洋装とりどりの女からお花頂戴頂戴と襲われたが、それでも彼は女共のお尻一つ叩かず花を二つ三つ投げてやりながらほうほうの態で逃げ出しただけであるが、このようにその界隈を西から東へと殆んど虱潰(しらみつぶ)しに捜し廻ったけれど、どうしても田中の一行は見当らない。彼はいよいよ焦だたしい気持に追いたてられ、あてどのない憎々しさと憤りをどうすることも出来なかった。  玄竜は再びどこといった目当てもなしに、がに股の足を重そうに引きずりつつ捜し廻った。今度はところどころへ首を突き入れて女達に質ねさえしてみた。が、かれこれ二時間あまりも歩き廻ったけれど一向に埒(らち)が明かず、激しく疲れが出、空腹を感ずるばかりだった。とうとう優美館裏あたりの大分淋しいところまでやって来た時は寸歩も足を運ぶことが出来ないまでにくたくたに疲れ、一先ずそこらのとあるきたならしい立飲屋へ潜(もぐ)り込んだのである。埃っぽい明るみの中では、みすぼらしい人々が各々二三人ずつ一団をなして相寄りかたまってがやがや騒ぎ立てつつ盃をかわしていた。玄竜は桃の枝を担いだまま皆の驚きの視線を浴びながら、中央正面の方へのっそり進み出た。前の方に長い板で酒台が据え附けられていて、その向うの方に顔の小綺麗な女がちょこなんと坐っていた。彼は台の上に出してくれる大きな盃を取って、女から薄黄色っぽい薬酒をついで貰うなり一杯ぐっと飲み干した。それは妙にすっぱい味だった。顔を上げて辺りをじろっと一度眺め廻したが誰一人とて知る者はいない。他の人達は彼と視線がかち会うとびっくりしたようにぐっと口を噤(つぐ)んでそっぽを向いた。玄竜はそのため一層不機嫌になり、もそっと動いて行って、傍の方に据えてある網張り棚の中から豚の足を取り出して来るとむしゃむしゃ噛み始めた。それは朝鮮特有の安直な酒場で、茶碗程もある盃一杯に肴までついて唯の五銭で飲めるのだった。彼はあの好きな明けすけの淫らな冗談さえ一言も云う遑(いとま)もあらばこそ立て続けに何杯もひっかけた。外の方から暖簾(のれん)の中へひょこひょこ首を出して、彼の出て来る気配をさぐっていた乞食の子供達も、ついにあきらめていつの間にかどこかへ消え失せてしまった。  彼はこんなに飲み始めると耳鳴りがし足が動けなくなるまでぐでんぐでんに酔わねば収まらない性分である。でも彼が泥酔するまでにはこの薬酒なら六十杯は少くとも必要とせねばならなかった。こうして一杯又一杯と盃を重ねる中に、酔いがけだるく全身に廻って来て、次第に胸をしめつけるような悲しみが襲うて来た。今夜中にはどうしても田中を掴まえねばならないのだ。そうだ、ここからすっかり酔いつぶれて出てもう一度朝鮮ホテルへ押し掛けて行くんだ。そして田中に助けを求めれば凡ては巧く運ぶに違いない。そう思うと何だか自分がお寺へ預けられるということが、急に哀れな喜劇のようにさえ思われてならなかった。自分もあの瓢(パカチ)のようなぐりぐり坊主になって袈裟(けさ)を身にまとい、鼻汁をよく啜り上げる正覚禿坊主の前で、毎日毎晩数珠(じゅず)を首にかけて神妙に禅をくまねばならぬとは。彼はこの悲痛さを打消すように妙に喉にからんだ甲高い声を出して一人でに笑ってみた。だが彼は自分の笑い声にびっくりして慌てて肩にかけていた桃の枝を胸に抱きしめじっと息をころした。暫くそうしていると気はしずしずととおのいて行き体じゅうがとろけ込むようで、ふっと幽かな光芒を帯びていろいろな女の幻影がとりとめもなくちらちら動いて見える。×××××(五字欠)メロン頬の女。その陰で女流詩人がにっと笑っている。口を心持ちすぼめて明日の朝行くわと囁くのさえ聞えるようである。そうだ、今夜はどうしてもあのじめじめした下宿の穴部屋へ戻って彼女を待たねば……。すると彼女の水で洗ったような××××××××(八字欠)が空間に浮び上り、それがだんだんと腕をひろげて熱いむせるような息を吹きかけつつ自分の体をおそうて来るような錯覚が起きた。それにしても田中は一体どこにいるのであろう。彼はこのように現実と夢幻の間を右往左往している中に、今度は又何とはなしに田中の妹の明子のことを思い起した。田中もその頃は一介の文学青年として苦労していたが、一緒にいる妹の方は女子大に通っている美しい娘さんだった。当時彼はありったけの熱情を傾けて彼女を愛しているつもりだったが、田中にしろ彼女にしろ自分にいい感情を持っていないばかりか軽蔑さえしていたのだ。よく彼は一里もある明子の所まで歩いて行っては、いろいろと大胆さの限りを尽してみたが、彼女は彼の図々しい程異常な情熱を莫迦にするだけだった。朝鮮の貴族で天才だということも彼女にはちっとも効目がなかった。こういうふうに毎日彼女に素気なくされて帰る道すがら、前々から知り合いの女給の宿へ行っては泊っていた。彼がこの女給を斬りつけたのは、いよいよ意を決し田中のいない中を見計って明子を襲うたのがしくじったその晩の帰りのことだった。そのために内地から追放されて朝鮮に帰り、どうやら渡りをつけて娯楽雑誌などに筆を取るようになったが、彼は空想を逞しゅうしてこの若い恋の経験を神秘化し、明子という美貌の純粋な娘に熱烈な恋を寄せられたというふうなことを、バルカンの志士インサローフとロシヤの乙女エレーナとの恋物語(ツルゲーネフの作品『その前夜』より)まがいにいつも方々へ書き連ねたものである。それで人々もこれだけはまさか嘘ではあるまいと信じ、自分もそれを幾度も書いている中に、ほんとうのことのように思い違いさえして今は美しい思い出となった。あーあの明子は今どうしているのだろう。早く田中に会って訊いてみたい。凡てが今になっては自分を悲しませる種ばかりではないか。  頭が急にくらくらして来て、何か突飛なことでもしおおせ兼ねない気持である。不意に又先程の百姓の絶望的な喚き声が聞えて来るようである。自分こそあの百姓のように救いのない絶望のどん底へ突き落されてもがいている人間に違いない。淫乱な言葉もとうに書き尽し、法螺(ほら)ももう誰一人とて信用しはしない。僅かばかり知っているドイツ語の単語も既に何度となく繰り返して書いたし、十三箇のうろ覚えのラテン語も十三回以上に喋ったし、フランス語は尚更のこと、文章の終りには必ずFINという字をつけたのに、もう今は文章の註文も来なくなったのでそれもおさらばになった。柔道初段以上というおどかしもどうやら効目がなく二段や三段はおろか物騒な拳闘選手までうようよしている。家もない、妻もない、子もない、金もない。最後に彼が拠りどころとして思い附いたのは、愛国主義者という美名のもとに隠れて凡てに向って復讎を計るばかりか、勢威のある大村にかばわれることだったのだ。だが朝鮮の文人達の間にも澎湃(ほうはい)として時局認識運動が高まり、鮮かに水煙りを飛ばして彼等が自分を追い越し去ったのだ。それを思えば他の連中が歯ぎしりする程憎くてならない。今では貴様を監獄にぶち込むぞという恫喝(どうかつ)も出来なくなってしまった。彼に残されているものは方々ゆすり歩いて文なしでも酒の飲める口だけである。それが怪しからんというので、大村はこの僕に寺へ行けと命じているではないか。もう大村にまで見捨てられたからにはどこへも行き所のない人間なのだ。彼は使うだけ使って今になり事新しく自分にお寺へ行けと命ずる大村が憎くてさえならなかった。だがもうほとほと気力もつきてごとりと桃の枝を床の上に落し、彼は目頭に涙さえ浮べながら更に沈んで盃を重ね始めた。           四  凡そ十時頃にでもなったのであろうか、玄竜はへべれけに酔い潰れてしまった。お客は始終入れかわり立ちかわり騒々しかったが、ふと彼の後の方から又新しい客のはいってくる気配がして、歯切れのいい内地語が聞えた。 「至極悠長な朝鮮人にしては一寸面白いせかせかした所ですよ」  おや聞いた様な声だぞと思って、玄竜はじっと聞き耳をたてた。 「まあ内地で云えば大きくした焼鳥屋とでも云いますかな。あのくだらない鮮人(ヨボ)連中から解放されたすがすがしい気持で、一つ朝鮮の酒でも嘗めてみませんか。全く大変でしたね」  新しくはいって来た男達二人は玄竜の傍へ立ち並んだ。こう云われている男は今まで彼等の後をぞろぞろとついて廻りながら、田中に先生先生とぺこぺこしていた朝鮮人の事大的な文学くずれ達のことに違いなかった。玄竜は警戒するように首をちぢかめた。 「それでもまあ面白いじゃないですか。あんな人達と会って話してみるのも……実際大陸の気分が出ましてね」  確かにこの勿体振(もったいぶ)っただみ声は田中に違いないぞと、玄竜ははっと耳を欹(そばだ)てた。 「おや、あなたはそれを本気で云うんですか」  と、案内役の男は大分不服らしげに叫んだ。「あなたは妙なところに又感心したもんですな」 「いや、それ程でもないんですけれど……だが実際にあの人達は自分で云っているように、文壇や劇壇等で相当活躍しているんでしょうかね」 「そうですよ、あの連中が一流どころですよ」と、せっかちになって先の男は事実を誣(いつわ)るのだった。「今度鮮人(ヨボ)連中の作品が内地語で翻訳されたのを読んで私は先ず安心しましたね。すっかり安心しましたよ。それ位なら私のような素人でも書けますよ。朝鮮の地方的な文化もやはりここへ来ているわれわれの手で築き上げるべきもんですな。ところでさあ、一つどうです」  と盃を取り上げた。  やっとその時になって玄竜は横合いの方から臆病そうに首を突き出し、慌てたように朦朧(もうろう)とした目をこすって見据え、口をばっくりと開けた。実にそれはまぎれもなく東京の田中が、ある官立専門学校教授の角井に案内されていたのである。盃を口に持って行っていた彼等二人も、玄竜に気が附いてびっくりした。 「やあ田中、田中!」と玄竜は叫びつつ大手を拡げて、すぐ傍のひょろひょろした体へ抱き附いてしまった。他の客や女はみな驚いて目を瞠(みは)りこの異様な光景に魂消(たまげ)た。内地人をそんなふうにして果していいのだろうかと気味悪くさえ思うのである。田中は一目でそれが先程大村や角井と三人で噂し合った玄竜であることを知ったが、あまりにも意外な場所での邂逅と突拍子もない抱擁に面喰らってしまった。何よりも息がつまりそうで苦しかった。玄竜は彼を抱いたまま狂気のようにぐるぐる廻るのである。 「怪しからん、怪しからん、僕は恨んだぞ、大いに恨んだよ。黙って来るってそんな法があるかよ」 「済まん、済まん」  と、田中は救いを求めるようにかすかな声で呻いた。 「さあ、そこで一杯やろう、盃を取ってくれ!」玄竜は素早く飛びのき盃を取り上げた。 「おう田中君、僕は君が朝鮮に寄ってくれたので感謝しているぞ、本当に嬉しいぞ!」田中が大村と一緒でないことが尚のことうれしいに違いなかった。彼は再び殆んど抱き附くばかりの恰好で、「やっぱり君はやって来たな。ようくこの新しい朝鮮を観察してくれよ。頼んだぞう! さあ、一杯ぐっとやってくれ!」  そしてついはめを外したあまり、 「さあ、角井さん、あんたも大いに飲んで下さい!」  と、彼の背中さえ痛い程叩いた。角井は玄竜とはU誌の会で一二度会ったきりで、そうこんな男に馴れ馴れしくされては自分の沽券(こけん)に関ると考えるのだった。もともと彼は大学の法科を出ると共に朝鮮くんだりへ来て真直ぐ教授にもなれたのだが、此頃は芸術分野の会にまでのさばり出るなど内地人の玄竜ともいうべき存在だった。朝鮮に出稼ぎ根性で渡って来た一部の学者輩の通弊の如く、彼も亦口では内鮮同仁(日本帝国主義の植民地政策の一つで、朝鮮民族を日本人に同化させるためのスローガン)を唱えながらも、自分は撰ばれた者として民族的に生活的に人一倍下司(げす)っぽい優越感を持っている。だがただ一つ芸術分野の会合等に出ると、自分が朝鮮の文人達のように芸術的な仕事を何もし得ないことにひけ目を感じ、弾(は)ね返っては彼等を憎々しくさえ思っているのだ。それで特に朝鮮の文人達を莫迦にしようとこれ努め、内地から誰か芸術家でも来ると玄竜にひけをとらぬ程の熱情で授業さえ休んで出掛け、加俸の分だけを惜しいともせずに方々引張って酒を飲ませながら、事毎(ことごと)につけて朝鮮人の悪口を学問的な言葉で並べたて、口癖のように、あ、あれを見て安心した等と呟く。今夜は殊にこういう最も卑しむべき文人の玄竜に会ったので、いよいよ彼の自尊心は増長したのである。それでいかにも物々しく肩を聳(そびや)かしてくんと吠えながら背を向けてしまった。だが玄竜もさる者それには振り向きもしないで、依然田中を掴まえたまま喚きたてていた。 「おう田中、僕はな君を捜し廻ってすっかり草臥(くたび)れ、さんざん恨みながら飲んでいた所なんだぞ。よう会えたな。全く六年振りじゃねえか、そうだ、妹の明子さんは元気か? 僕は今も明子さんのことを忘れていやしないぞ」  気の弱い田中は彼の口まかせに喋りたてる言葉にいい加減うんうんと肯きつつ、口を窄(すぼ)めて薬酒を少しばかり嘗めるふりをした。  角井もひとりで丁度二度目の盃を口に持って行くところだったが、明子の話が出て来たので吹き出してしまった。そしてそれだけでは足りないと思ったのかはははと声を出して哄笑をした。先程玄竜の噂をしている中に、彼は田中からこの男が彼の妹に無茶をして困ったということを聞かされたからである。玄竜はいつも田中のいない頃を見計って彼女を訪ねて来ては、田中のどてらに着替えいかにも主人顔で机に頑張っていて、当の彼が帰れば恰(まる)でお客でも迎えるような調子でこれは珍しいね等と云っていたという話だった。それも或る日の夕方のこと、田中は街のなかでひょっこり玄竜に会い、大変なことがあるからと持金をすっかりまき上げられた。そして後から帰ってみれば、玄竜は林檎やシュークリームをどっさり買って来て妹に無理矢理に食べさせながら、きききと悦んでいたのだ。角井はそれを思い出したのである。――だが今や玄竜は田中に会えたことを思うともう凡ての悲しみも苦しみも霧散し、ひとりでに嬉しくなっていよいよ多弁になっていた。殊に傍には角井もおり、今まで筆を取る度に威張り散らした手前もあるので、思い切って大きく出て来た。 「帰ったらS先生にも宜しく云ってくれ、奴は朝鮮に帰ってからも中々やりおりますとね」  或は、 「T先生は元気かね」  それから、 「R君はどうしている?」 「D君の奥さんは?」  けれど生憎(あいにく)、田中はSやTとも親しくしているような小説家ではなかったので、しどろもどろにばつを合わせた。何しろ彼は此頃スランプの中にいて書けないので、流行の満洲にでも行ってうろついて来れば違ったレッテルもついて新分野の仕事が出来るかも知れないと出掛けたまでだった。それでも発つ時に或る雑誌から朝鮮の知識階級に関する文章を求められているため、彼は今先まで自分に先生先生と馴れ馴れしくついて廻っていた低級な文学青年達を興味深く観察し、彼等と別れると大村や角井からいろいろ参考意見を聞いた所だった。殊に角井の至って人間学的な説明に依れば、朝鮮の青年というものは悉(ことごと)く臆病でひがみ根性があり、おまけに図々しくしかも党派心の強い種属ということである。丁度そのいい標本が田中も東京から知っている玄竜だと述べていた。それ故東京の或る知名な作家尾形が京城へ立ち寄った際、大村の肝煎(きもい)りで朝鮮の幾人かの文人達と一席を設けたところ、その席上で三十分もせぬ中に彼が玄竜の中に朝鮮人全部を見てとったのは、さすがに鋭い芸術家の烱眼(けいがん)だと讃嘆して附け加えた。尾形がここに朝鮮人ありと叫びながら玄竜を指差した時、実のこと、朝鮮の文人達は全く唖然とせざるを得なかった。が、当の玄竜はいかにも得意そうににたにたと悦に入っていたのである。田中は僅か一両日の滞在でしかも酒にばかり追い廻されて観察どころではないが、尾形に負けない程辛辣独特な観方をして書き送らねばならないと決心していた矢先なので、寧ろ代表的な朝鮮人と角井から太鼓判を捺された玄竜にひょっくり再び会ったことを幾らかは悦んだ。彼は角井の悪意に満ちた言葉に些(いささ)かも疑いを挟まなかった。いよいよ自分の直観の鋭さを示す時が来たと躍起(やっき)になって、彼は今度は朝鮮民族を検分するかのような物腰で自分から先に口を切った。 「君は帰ってからは朝鮮語で小説を書いていたんだってね」 「そうだよ、そうなんだよ」と玄竜は待っていたとばかり有頂天になって叫んだ。「僕は朝鮮に帰るなり素晴しい作品を矢継早(やつぎばや)に出したんだ。始めは野郎たち朝鮮にも天才のランボウが現われたと云って、目を丸くしやがった。だがだんだんと僕の読者がふえ地位も高まって来ると、文壇の奴等は嫉妬して葬ろうとさえしたんだ。大体君も見れば分る通り朝鮮人ちゅうのは仕様がねえんだ。いいか。狡くてそれに臆病なんだから党派を作って人が偉くなろうとすると突き落すんだ」その時角井はそれごらんと云わぬばかりに田中に向って顔をしゃくってみせた。田中は肯いた。 「奴等は僕が東京文壇で皆の注目をひいて活躍していたことさえ知らないんだよ」そしてちらっと角井の方を偸(ぬす)み見て、「無知だよ、全く無知だよ!」  内地人と向い合った時には一種の卑屈さから朝鮮人の悪口をだらだらと述べずにはおれない、そうして始めて又自分も内地人と同等に物が云えるのだと信じ切っている彼である。いよいよ玄竜は火のような熱情に燃えて激しい息づかいをしながら叫んだ。 「僕はこういう度し難い民族性を考えると悲しくてならないんだ、田中、おう君、僕の気持を分ってくれるか!」  彼は声を出してよっぽど泣こうかと思ったが、ただ手で顔をおおうてしゃくり上げただけである。田中はすっかり感動して、 「分るとも、分るとも」  と共に泣く気持になり、やはり朝鮮にも来てよかったと思うのだった。内地にくすぶっていては島国文学しか出来ないと云うのは全くだ。ここに大陸の人々の苦しむ姿がある。箸にも棒にもかからないような男だった玄竜でさえ、もっと大きな本質的なもののために全身をゆすぶって悩んでいるではないか。そうだ、これこそ朝鮮の知識階級の自己反省として内地に報らせよう。尾形に俺の目が負けてはなるものかと力みつつ沁々(しみじみ)歓びを感じた。支那人は分らんと云う連中は愚の骨頂だ。朝鮮人を僅か二日で分ったこの調子でなら、俺は四日位で充分分ってみせるぞ、とも心の中で叫んだ。兎も角それのためにはいきおい玄竜を朝鮮の代表的なインテリにして書かねばなるまいとまで、頭でちゃんと構想をねっていた。が、角井にしては玄竜のことが滑稽でならないので、とうとう凱歌を上げたい気持になって意味ありげに彼の方をじろりと見やってから、 「莫迦に大村君は遅いですな、一人で帰ったのでしょうかな」  と田中に向って云った。彼は玄竜が大村を雷のように怖れ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からである。 「え、大村君?」果して玄竜は一時に酔いがさめたように目を大きくしてぐっと体を起した。「大村君、大村君と一緒だったんですか?」 「うん、そこらで何か買物をすると云っていたがね」  怪訝(けげん)そうな顔をしてから答える田中の話を聞いて、あ、これはいけないと慌てて、 「そうなんだ」と訳の分らぬことを叫んだ。「だから大村君と力を合わせて、朝鮮民族を改良するために努力しているんだ。問題は簡単なんだ。朝鮮人悉(ことごと)くが今までのような固陋(ころう)な思想からぬけ出て、東亜の新事態を確認し、そしてひとえに大和魂の洗礼を受けることなんだ。それがため僕は人から気違いとまで云われながらも、大村君のU誌にいつもセンセイショナルな論文を書き立てたんだ」そこで急に声をひそめて首を突き出し、 「大村君は僕のことを何とも云わなかったのかい?」と訊いた。 「いや別に……」  と田中はお茶をにごしたが、玄竜は又急にもとのような調子にかわって、 「大村君は実に当代稀にみる立派な奴だよ。だから僕など民間にいながら率先して全力を尽し助けているんだ。だが惜しいかな、好漢大村君も芸術家が分っていないんだよ、真の芸術家というのが……だから田中、君のような作家が大いに啓蒙してやるべきだと思うんだよ。ハムレットでもあるまいに、僕にお寺へ行けと無茶を云うんだから愉快なんだよ。それがね、尼寺へならともかく禿坊主のところへなんだよ。ねえ、僕がオフェリヤかよ? 僕はこう見えても憚(はばか)り様ながら頭はしっかりしているんだ!」  角井はいかにも憐れむように田中に嗤ってみせつつ、すっぽらかして出て行こうというふうに、その洋服の裾を引張った。ところが玄竜が妙に喉にからんだ声を張り上げて強がりを云っている時、当の大村が悠然と入口の方からはいって来た。見るからに四十がらみの堂々とした立派な紳士である。玄竜はすっかりうろたえて、へーと笑いながら首筋に手をやるとぺこんと頭を下げた。角井は傍で意地悪い声を出してけけけと突然嗤うのだった。大村はここに玄竜がいるのを見て急に不機嫌になって呶鳴った。 「どうしたんだ、君は又こんな所へ来てくだをまいているのか」 「へー大村さん、へ、どうも」と玄竜は纏(まつ)わりつきながら腰をかがめた。「……実はそのう、田中君を一日中捜し廻ったんですよ。それで腹ぺこになったもんですから……つい、へ」 「おい、どうしたんだ、お寺には? ぐずぐずしないで一日も早く行くんだ!」 「はあ」と畏(かしこま)って玄竜はばつ悪そうにもじもじするのだ。「それはもうよく分っているんです」  大村は角井や田中ににやりと目配せをしてみせ、それから遠来の客もあることなので自分が朝鮮にいて如何に朝鮮人のためを思っているかを身をもって示さねばならぬと考えた。 「早く謹慎の状をみせるんだ! 警察の手に君を渡すに忍びない気持があるからこそ、立派な和尚さんの所へ行って頭を直して来いと云うのじゃ。要するに君のような人間たちの魂を引き上げるためなんじゃ。煩悩を断つんだぞ、煩悩を」 「はあ、だから僕も……」 「分ったか、宜しい」そこで得意げに一度肩を張った。客達は皆目をきょとんとさせてこの光景を眺めていたが、さすがに田中は感慨無量そうに目をつぶったまま聞いていた。 「今はどういう時局だと思う。はっきり時局を認識しなくてはいかん。酒場を飲み倒したり、女を強奪したり、人を恐喝するなどもっての外じゃ。君は内鮮一体内鮮一体と気違いのように叫び廻るけれど、朝鮮人は誰一人君を相手にしないそうじゃないか。もう少し反省するんだ。まともな人間に帰れと云うのじゃ。分ったか、わしが君を応援することにつけ込んで、人の好意を利用するなんて絶対に許されん。莫迦奴! そんなに恩知らずだとはわしは始めて分った!」それから自分の語調に感動しついには興奮してしまった。「全く恩知らずの悪い奴め! まだ君の悪いことが分らんのか。内鮮一体ちゅうのは君のような人間の魂まで引上げて内地人同様にしてやることなんだぞ」 「それはそうです、だから僕は人に気違いとまで云われる程の熱情でそれを主張して来たんです。そうですとも、実際男分の日本が女分の朝鮮に手を伸して仲よく結婚しようと云うのにその手に唾をひっかける理由はないですからね。一つの体になることによって始めて朝鮮民族も救われるんです。僕は感激しているあまり朝鮮人に誤解さえ受けているのです。朝鮮人ちゅうのは一体に猜疑深い劣等民族ですから」 「それは待った」と大村は手を上げて思い深げに差し止めた。「朝鮮人の君達はあまりに自虐性にかかっている。わしの周囲にいる朝鮮人は皆自分の民族の悪口ばかり云って来るがそれが先ず第一いかんことじゃ。分ったか。もちろん反省し自分達の悪い点をなおすことは肝腎じゃ。だが自分を大事にしなくちゃいかん。大事に。それが出来ないのが、他の民族に劣る点じゃ。内地人を御覧! 内地人は決してそんなことはない」 「そうですよ、だってそうじゃないですか」と玄竜は慌てふためきつつ何の前後脈絡もないことを叫び始めた。彼は自分が何時か書いたことのある、至って学術的な文句を先から思い出してそれで頭が一杯だったのである。「少くとも地理的にみても、考古学的にみても、それから人類学的にみても、即ちアントロポロジー的にみても、生物学的にみても……」  こうしきりに並べたてる時、角井ははたと学者的な良心に突き当ったので、 「それは君、アントロポロジーじゃなくてアントロポロギーだよ」と訂正した。 「そうですよ、そのアントロポロギー的にみても、又フィロロギー的にみても日本と朝鮮は男と女の相違しかないんです……」  大村は彼のこのペダンチックな慌て方がおかしくてひとりでにやにや嗤っていたが、ふとそれを見た玄竜はもう大村が自分の熱情に気をよくし直したのに違いないと考えたので、いきなり全身をぐっと前に乗り出して、 「ところが大村さん」と叫んだ。「田中君とは僕はかけがえのない親友なんですよ」  だが大村は云うだけ云ったというような調子で、くるりと田中や角井の方へ向き直って云った。 「さあ、もうそろそろ引上げましょうかな。大抵どんなものか見当がついたでしょうな」 「ああ大村さん、もうお帰りになるんですか」  と玄竜はびっくりして、急にばね仕掛けにでも弾(はじ)かれたように大村の腕へ獅噛附(しがみつ)くように飛び出した。が、そのとたんに落ちていた桃の枝に足元がひっかかったので、彼は咄嗟(とっさ)にそれをすくい上げて抱え込みながら喘いだ。 「大村さん、大村さん!」 「どうしたんだね、それは又」と大村は不審そうに体を反らしてじっと見つめたかと思うと、「そんな様をして又歩いているのか、君のことはもうわしは知らん!」 「大村さん、大村さん」玄竜は急にへなへなに腰がくだけて悲しげに叫んだ。「あまりに花がいたいけないので街で百姓から買って来たまでなんです」その時自分の飲み代まで角井が払いをすましている様子なのを見て、彼はきまり悪くなったのか、慌しく田中の方へ廻って来て袖を引張りつつせき込みながら、 「田中君、田中君、実は君に折り入っての話があるんだよ」  と哀願するように呻いた。 「もっとつき合ってくれな、もっと」 「ほう、これはいい花だね」  と、田中はまぎらわせる様にしどろもどろに呟いた。そこで玄竜は急に勝ち誇った様に元気を出して桃の枝を肩に担ぎあげるや、 「そうだろう、いい花だろう、桃の花だよう、桃の花なんだ」と、声高に銅鑼(どら)声を上げつつ、恰(まる)で兵隊ごっこをする子供のように先頭を切って出て行った。やはり自分もこの偉方達にくっついて一緒に歩き廻りたくもあったのである。大村や角井と田中は後から仕方なさそうに嗤いながらぞろぞろと出て来た。蒼然とした月がぼっかり空にかかっているけれど、小路は相も変らず薄暗かった。彼は少しくおどけて桃の枝を担いだまま体を揺りながら二間程進軍して行ったが、突然立ち止って胸を張り空を見上げ不意に桃の枝を股の下に引きずり込んで乗っかるようになったかと思うと、天に合図するかの如く手を振り上げて一度けらけら笑った。他の三人は知らぬ振りをして彼の横をすごすごと過ぎて行く。彼は慌てて声高らかに叫んで曰くに、 「僕は天に上るんだ、天に上るんだ、玄竜が桃の花に乗って天に上るんだ!」  そこで恰も木馬に乗った勇士のようにすっすっと彼等の傍を突き進んで行った。意想天外なこの神秘主義者を見てくれといわぬばかりに。花々が無慙に首を折られ花びらをよごして所々に落ち散らばった。が、ふと思い出したように振り返って見ると、田中が一人暗がりの芥溜に小便を垂らしている。それで玄竜はこの時だとばかりその傍へ飛んで戻るや息をはあはあ切らしつつ、「田中君」と喉に詰った声で囁いた。「大村君に僕のことを頼んだぜ。お寺へ行かぬようにしてくれ、お寺へ」  その声があまりにも絶望的な悲しみにうちふるえていたので、驚いて田中は玄竜の顔を見つめた。ぞっとするようにひきつって見える形相が急に崩れて、気味悪い笑顔が浮んだ。それから彼の片方の手が自分の肩を卑屈そうに打って来た。 「あれはどうも官僚だからへいへい云わないと悦ばんのだよ。芸術家というのも分っていないんだよ……明日ホテルに行くぜ」  と云い捨てると、再びこれ見よがしに桃の枝に跨がって引きずりつつ天を仰いで喚き始めた。 「玄竜が天に上るんだ、天に上るんだ!」  その際に大村と角井は田中を横小路の方へ引張って大通りに出ると、自動車を止めるために手を挙げた。小路では益々いい気になった玄竜の喚き声が続いていた。           五  とうとう天には上れなかったのだ。翌朝彼はやはりいつものように穴部屋の中で、苦しそうに悲鳴を上げると共に目を覚した。誰かに縄で首をしめられる悪夢にとりつかれたのである。体は汗びっしょりだった。何しろ体を動かすのが怖ろしいようで、再び目をつぶり息ばかり激しく喘いだ。本当に首の方は大丈夫なのだろうかとわくわくふるえつつさわってみようとして、手を持って行こうとしたとたんに、何かごついものに手先がふれたのでびっくりした。本当だなと思い、目をつぶったままじっと息をころした。全く祈るような気持になって、今度は憚るようにそうっと反対の方の手を出して用心深そうに首筋の方へ近づけようとした。おや、そうでもないらしいぞと思う矢先に何かが又指先にふれてぎょっとし、そのまま仏像のように固くなった。ものの二三分もしたであろうか、やっとこさ心を落着けて、それは一体何だろうかともう一度つついてみようとした。気のせいか今度は触れたものが少しばかり揺れたようである。何だかおかしいぞと思って二つの指で挟んでみて、おやおやと引きずられるままにそれをまさぐっていたかと思うと、 「なあんだ!」とあきれ返ったように叫びながら、彼は首筋の所へおいかぶさっているものを慌てて払いのけるのと同時にはね起きた。それはがさがさと物音をたてて吹っ飛び温突(オンドル)の上で揺れている。他ならぬ、泥まみれになった桃の枝だったのだ。彼はふーと大きく息を吐き出し手で首筋の汗をふいていたが、急に気でもふれたようにけらけらと笑った。が、瀬戸物でもこわれたような自分の声までちっとも変っていないので、彼はいよいよもう大丈夫だと胸を撫で下した。  むさくるしい部屋の中が尚薄暗いところからすれば、まだ朝は早いようである。一日中これっぽっちも陽の当らない穴ぐらのような所ではあるが、でも彼には紙張障子の明るさ加減が時計のかわりになっていた。裏の方に続いた台所の土間では、老婆が今日も亭主と喧嘩をしているらしく何かを突慳貧(つっけんどん)に喚きたてながら焚口に火をくべていた。土間に一杯たちこめた煙が温突紙のやぶけたところや、障子の穴、壁の割れ目等からもやもやと侵入して来る。彼は息がむせるようで二三度苦しそうに咳をして、相貌を険しく歪めたまま不機嫌らしげにじいっと桃の枝を見つめた。もう花はすっかりなくなり枝々の先も折れ、見るかげもなく泥によごれている。触(さわ)らぬ神に崇(たた)りなしとどんな男からも怖れられた玄竜が、それしきの夢にこれは又何ごとだと思えば急に忌々しくもなって来た。惨めな残骸を曝(さら)している桃の枝が今の自分の姿とも思われるのだ。すると昨夜の花売り百姓の哀れな像が大写しで現われ、それが両手を振りながら絶望的に喚いている声が聞えて来る。 「どうして皆笑うんでがす、笑うでねえ、わっしあ斃(くたば)っちまうんだ。笑うでねえ!」  部屋の中は恰(まる)で煙幕をはられたようである。玄竜はこういう絶望的な声からのがれようとして、急に腕の間に頭を抱えて耳をふさいだ。そしてごろっとその場に倒れ身悶えした。そうだ、僕こそいよいよ斃ってやるぞ! 鐘路四辻の真中で自動車と電車の間に挟まって爆弾のようにはね散って死んでやるぞ! 事実彼は昨夜から自分の死ばかりを考えているのだった。死ぬには交通自殺に限る。大通りの真中でむごたらしく死んでやってこそ、最上最後の復讎が出来ると思っているのだ。それで僕も以って瞑するぞ。するとその時部屋の中は真暗くなり、天井といわず壁といわず温突の底といわず方々から、自分の残骸を嘲笑(あざわら)う群衆の嗤い声がわっははと湧き上った。彼はたえかねて追い散らすようにはね起きて、 「僕は死にやしない、死にやしないぞ」と悪魔のように叫んだ。激しく格闘でもするかの如く両手をめちゃくちゃに振り廻しつつ慌てふためいた。もう煙で目はくらみ息さえ苦しい。彼はついに正気の沙汰ではなくぐるぐると温突の上を這い廻り出したが、膝頭ががたがたふるえる。わっはは、わっははという声々は行手を塞ぎ、又方々から赤い焔がめらめらと燃え上って迫り来る。幻影に襲われたのだ。いよいよ彼は恐怖につきぬかれて何かを叫び叫びつつ出口を求めてあがき廻った。老婆はこの気違い男は又どうしたのだろうかと戸口の方へやって来てぶるぶるふるえ出す。だが、丁度うまく彼の逃げ惑う体が障子戸にのしかかったので、いきなり明るみの地べたへ投げ出された。老婆はきゃっと叫んで飛びのいた。少しは息使いも苦しくなくなり、暫く倒れている中に怖ろしい幻覚も収まって、彼はただ放心状態に大きな目だけをぐりぐりさせている。空には激しく雲が流れていた。その時約束通りに女流詩人文素玉が爽(さわや)かないでたちで現われたのである。彼女はその光景を見て驚いて立ち止ったが、直ぐ、大げさに手を拍ち腰をゆすぶってきゃあきゃあと笑いこけてから、 「おやおや、どうなさいましたの」  と駆け寄って来た。が、玄竜は気でもふれたようにただじろじろと彼女を物珍しそうに見上げただけである。老婆は魂消(たまげ)たと云わぬばかりにぶつくさ呟きつつ台所の方へ消え失せた。文素玉はひとりで当惑してしまったが、やっと気を立て直し渾身(こんしん)の力をふりしぼって彼を抱き起した。彼は昨夜酔いつぶれて帰ったなり寝床へ俯伏せになっておーおーと泣く中に寝附いていたので、洋服着のままであった。詩人は彼の洋服についた埃をはたいてやりながら、「一体どうしたというんですの」と云った。「ええ、玄竜さん、今日は又何かの霊感でも得たようね。早く行きましょうよ、もう直ぐ時間になりますのよ」  玄竜は痴者(しれもの)のように坐って気味悪げににたにた笑ってばかりいたが、その時ほんの少しの意識のかけらでも閃いたのであろうか、怪訝そうに首を長くして質ねた。 「何が?」 「おやまあ」彼女は玄竜の顔附にびっくりして後ずさってもじもじした。「……今日は祭日じゃありませんの、神社へ行きますのよ」 「神社?」  彼は何か六カ敷いことでも思い出すように問い返した。 「……そうよ」  すると玄竜は急にどうしたことかけっけっと笑い出した。神社という言葉が彼には突然忌々しく思われたのだ。神社の神は内地人の神であると誰も拝みに行かなかった頃、率先して内地人の群に投じ社頭にぬかずいた当初の彼は真に重大な人物で後光さえさしいろいろな役目もあった。けれど今はもうそうではないのである。寧ろ有象無象(うぞうむぞう)神社へ神社へと雲のように押しかけて行く朝鮮人達が憎くてならない位だった。文素玉は身の毛もよだつようにぞっとして身をすくめたと思うと、 「行って来ますわ」  とかすかに一言云い捨ててほうほうの態で逃げ出した。それを見て玄竜は気味よげにけらけらと嗤ったが、つと驚いたように立ち上った。空は益々鬱陶(うっとう)しくなり雲が北の方へ北の方へと押し寄せて行く。咄嗟に彼は文素玉の温かくしめっぽい肢体に対する慾情にかられ、これは今こそ掴まえねばならぬぞと考えたのだ。その足で彼は慌てて崩れかかりそうなくぐり門を抜けて庭を飛び出した。じめじめした路地に家々は芥箱のようにいがみ合い、下水には灰やきたないものを捨てたり流したりしているので、悪臭がむんむんとむれ上り、激しい風に灰や埃が吹き飛んでいた。小路を抜けて遠くの方へ蒼惶(そうこう)と逃げて行く女流詩人の姿がひらひらと靡(なび)いて見える。玄竜はけらけら笑いながらがに股を懸命に泳がせて意地悪く追いかけ始めた。逃げ足だっている彼女は一度振り返って見たとたんに、両手を振り振りやって来る玄竜に一層魂消て悲鳴を上げんばかりになりつつ走って行った。彼はだんだんと追いつくようになるにつれ、益々面白くなって何かを叫んだり喚いたりさえした。土壁の傍で土遊びをしていた二三の子供達が手を叩きながらはやしたてた。が、やっとのことで転げるように文素玉は路地をぬけて黄金大通りへ逃げ出した。丁度その時だった。玄竜が最後の路地を曲ろうとした瞬間に、突然大通りの方から喇叭(らっぱ)の音が嚠喨(りゅうりょう)と響いて来た。玄竜はぎくりとして立ち止ったかと思うと、急にどうしたことかぶるぶると体をふるわせ始めたのだ。次の瞬間自分の方から逃げ隠れるように傍の家の煙突の後ろにぴったりと体をすりつけて、息をころし目を爛々(らんらん)と光らして大通りの方を睨んだ。楽隊を先頭に立てた長い行列が神社の方へ向って行進している。何だかそれが自分を包囲し迫って来そうに思われるのだった。ゲートルを巻き附けた中学生や専門学校の生徒達が行けども行けども続き、後の方には国防服を着けた先生やその他新聞雑誌の人や顔見知りの文人達がぞろぞろとついて行く。  行列が通り過ぎてしまうと彼は又急に慌てて出口まで飛び出した。物陰に息をひそめてどんよりとした目で眺めれば、それはもうひっそりとして遠くに消えかかっている。もはやどこか行列の中へでもまぎれ込んだらしく姿を消した女流詩人のことは忘れ去って、玄竜は行列の進んで行った方向とは反対の方へ、誰かかに追われてでもいるかのように逃げて行った。頭の中が砂を一杯ぶち込まれたようにくらくらと混乱しているのだ。時々ホテル、お寺という想念が雲母(うんも)の如くぎらぎらと光を帯びて正面に塞がるけれど、立ち所に又激しい砂風におおいまくられてしまう。何だか薄寒い日である。今に月でも出そうな朝であると、彼の心の一隅に別な人間がいて思うようだった。だが月どころか小雨がしょぼしょぼと降り始めた。路行く人々の足が目立って急がしくなってゆく。玄竜は電車路の真中を狂犬のようにあてどもなく進んで行った。もうぼうぼうの頭が雨に濡れて渦を巻き、肩は雨で重そうに垂れていた。自動車が傍を掠(かす)めて走り電車は後ろの方で激しく警笛を鳴らす。その音がようやく耳にはいると彼は黙ったまま静かによけるのだった。時にはよけると共に振り返って拳を振り上げて、「野郎僕を殺す気か」と狂人のように叫んだ。  けれど半時間あまりも歩いて師範学校前辺りまでやって来たかと思うと、ふと何かに取り憑かれたように右に折れて暗い小路の方へはいって行った。泥が靴にはねつき靴は水を蹴る。その中に雨は本降りになり出した。路地をばたばた走っていた人々は驚いて立ち止り、振り返って見て首を振った。彼はどこまでもどこまでも小路の続く限り、無我夢中に左へ曲ったり右へ抜けたりしつつ縫い歩いて行くのだ。今自分は寺を捜して行くんだと、ちりぢりにほぐされた神経の一つが遠い所でのように囁く。その小路をしまいまで登りつめれば妙光寺になると思われているのだった。再びあの新町裏小路の蜘蛛の巣のような迷路にはいっていたのである。玄竜の幻覚においては、それはポプラの亭々(ていてい)として立つ広い並木路のように見える。泥だらけの下水は綺麗に水の澄んだ小川の流れのように思われる。そこでは盛んに蛙が口をそろえてぐわっぐわっと鳴き騒いでいるような耳を聾するばかりの幻聴を聞いた。その上風がひゅうひゅうと吹き荒んでポプラの枝がへし折れそうに見える。もはや彼の足は躓(つまず)いたりのめったり、水溜りにあやまって落ち込んだりしていた。でも彼は夢中になって這い上る。その時に突然足元の方で蛙共が、 「鮮人(ヨボ)!」 「鮮人(ヨボ)!」  と騒ぎ出したように聞えたのである。彼は怯えたようにいきなり耳を塞いで逃げ出しながら叫んだ。 「鮮人(ヨボ)じゃねえ!」 「鮮人(ヨボ)じゃねえ!」  彼は朝鮮人であるがための今日の悲劇から胴ぶるいしてでも逃れたかったのであろう。ところが突然彼の鼓膜が轟音を立てて爆発したように思われたが、不思議にも先の蛙共の音は消え失せ、何かしら急に辺り一面から不思議な音が聞え出した。それがだんだんと複雑に大きくはっきりと聞えて来る。いつの間にかもう何千何万の人々が唱え合ってでもいるような、南無妙法蓮華経、南無妙法蓮華経という念仏が、太鼓や木魚の音にのって海のように彼の周囲に拡がってしまった。彼はその中を恰も泳ぎもがきながら救いを求めるように慌てふためきつつ徨(さまよ)い廻った。だが迷路は思いのままにぐるぐると筋を引いているので、どんなに歩けど歩けど果しがない。混乱の中ではあるとはいえ、玄竜は極度の焦躁に追いたてられて、あー坊主共のお経や念仏が一斉に僕を呪って追い廻しやがるぞと叫びつつめちゃめちゃに走った。それで躓(つまず)いてどさりと倒れることもある。のそのそと又這い上る。こうして彼は目だけを赤々と燃えたぎらせ狂った泥牛のように怖ろしい恰好になった。だがその実今度こそお経や念仏のただよう海風にあおられて、ふわりふわり天上へ上って行きそうな気になった。ところがそうではない。彼の心の真底(しんそこ)ではちゃんと自分が娼家界隈へはいっ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のである。本当は自分の泊ったことのある家々をあがきつつ捜し廻っている訳なのだ。けれどどこにもかしこにも同じような赤や青のペンキを塗りたくった家ばかりで、折からざあっと土砂降りになった雨の水煙りにけぶって見えなくなる。彼は腕を振り上げて何かを二言三言声高に叫んだ。それから突然又殺気だった断末魔の闘牛のように怖ろしい勢で駆け出し、一つ一つの家の大門を叩き廻り始めたのである。 「この内地人を救ってくれ、救ってくれ!」  彼は息をぜいぜいさせながら喚くのだった。そして又他の家へ飛んで行き大門を叩きつける。 「開けてくれ、この内地人を入れてくれ!」  又駆け出す。大門を叩く。 「もう僕は鮮人(ヨボ)じゃねえ! 玄の上竜之介だ、竜之介だ! 竜之介を入れてくれ!」  どこかで雷がごろごろと唸っていた。   底本:「光の中に 金史良作品集」講談社文芸文庫、講談社    1999(平成11)年4月10日第1刷発行 底本の親本:「金史良全集 1[#「1」はローマ数字、1-13-21]」河出書房新社    1973(昭和48)年2月 初出:「文芸春秋」    1940(昭和15)年6月号 入力:kompass 校正:土屋隆 2010年1月26日作成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表記について このファイルは W3C 勧告 XHTML1.1 にそった形式で作成されています。 [#…]は、入力者による注を表す記号です。 傍点や圏点、傍線の付いた文字は、強調表示にしました。
192    故郷を想う 댓글:  조회:2220  추천:0  2013-06-20
故郷を想う 金史良  内地へ来て以来かれこれ十年近くなるけれど、殆(ほと)んど毎年二三度は帰っている。高校から大学へと続く学生生活の時分は、休暇の始まる最初の日の中に大抵蒼惶(そうこう)として帰って行った。われながらおかしいと思う程、試験を終えると飛んで宿に帰り、急いで荷物を整えてはあたふたと駅へ向った。それも間に合う一番早い時間の汽車で帰ろうとするのである。  故郷はそれ程までにいいものだろうかと、時々不思議になることがある。成程郷里の平壌には愛する老母が殆んど独りきりで侘(わび)住居している。母はむろん、方々へ嫁いだ心美しい姉達や妹達、それから親族の人々も私の帰りを非常に悦んでくれる。庭は広くないが百坪程の前庭と裏庭がある。それが又老母の心遣いから、帰る度に新しい粧(よそおい)をして私を驚きの中に迎えるのだ。昨年の夏帰った時には、庭一杯に色とりどりの花が咲き乱れ、塀のぐるりには母の植えたという林檎の苗木や山葡萄(モルグ)の蔓(つる)がひとしお可憐だった。それに玄関際の壁という壁にはこれから背伸びしようとするつたが這い廻っていた。秋に入りかけ花盛りが過ぎ出した頃、コスモスをもう少し咲かせればよかったのに、それが気付かなかったのだと、母や妹は済まなそうに云っていた。私がそれ程の花好きというのでもないのに。母ももう年を取ったものだと思う。そして帰る度毎に、気力や精神が衰えているように思われて悲しい。六十をこえると老い方も一層早いのだろうか。  殊に昨年はコスモスの咲き出す頃、すぐ上の姉特実(トクシリ)が亡くなった。三十という若い身空で、子供を三人も残してはどうしても死にきれないと云いながら、基督教聯合病院の静かな部屋で息を引取った。その死は今思うだに悲痛なものに感じられてならない。それを書くには今尚私の心の痛みがたえられそうもない気がする。彼女は私のはらからの中では一等器量がよくて、心も細やかであり明朗でもあった。父が母と違って絶壁のように保守的で頑固なために、幾度母に責め諫(いさ)められながらもついにあの姉を小学校にさえ出さなかった。女に新教育は許せないというのである。いくら泣き喚いても、それは無駄であった。でも彼女は無智の中にあきらめていようとはしないで、七八の頃から千字文で一通り漢字を習い、朝鮮仮名はもう既に自在に読み書きが出来、小学校へ上ったばかりの私を先生としてそれ以来ずっと諸学科の知識をかじり、それから雑誌を取り寄せ新聞を読むなどして、その識見や思慮は私が中学にはいった頃はもう尊敬すべき程だった。  こういうところからして、私と彼女の間に於る姉弟の情にも又特別なものがあったと云える。私が帰る頃を聞き知って真先に母の許へやって来て待ってくれたのもこの姉だった。そして私が林檎好きだと彼女は勝手にきめて、いつも国光に紅玉など水々しくて色のよい甘そうなのを一抱えずつ買って来てくれた。彼女の死が老母に与えた精神的な打撃というものは余りにひどい。正にその次は自分位であろうとひとりよがりに考えて、少しでも余計に悲しもうとする私である。その姉が今度帰ればもういないのだと思うと、丈夫な歯が抜けたように心の一隅が空ろである。  それでもやはり故郷への帰心は抑え難くはげしい。これは一体どうしたものだろうか。左程に故郷を恋しく思わない友人達を見る度に、私はむしろ羨しくなり又自分をはかなく思うのである。此頃も私の家では母と京城の専門学校から戻って来たばかりの妹が二人きりで侘しく暮していることであろう。先日の妹の手紙には、私の帰って来るという四月は平壌の花植時だからその時揃って庭いじりをしましょうと書いてあった。私は丁度その先便で母や妹宛に、今度帰って行くことにしたから、裏庭にはあきれる程までにトマトを植え、井戸の上には藤棚をしつらえ、私のささやかな書斎の前にはヘチマを上げるように、そして前庭には絵屏風となるまでに朝鮮朝顔をと書いて送ったのだ。私は悲しみに打ち沈んでいる老母を、そんな仕事からでも気をまぎらわせたかったからである。それで妹の返事を見て重ねて手紙を出したところ、つい五六日前の手紙には母が着々用意を整え、トマトの方もあきれる程までに沢山註文したし方々から花種も取寄せているということだった。その上この文を草している今日は又奇しくも母が愈々(いよいよ)掘り返しをはじめましたと云って来た。それがどれ位の出来栄えか、今度帰ったら殊更(ことさら)私も仰々しくそれをほめそやさねばなるまいと考えたりする。  とはいうものの故郷に帰りたいという思いは、ひとえに母や姉や妹、それから親族の人々に会いたいという気持からだけではない。やはり私は自分を育んでくれた朝鮮が一等好きであり、そして憂欝そうでありながら仲々にユーモラスで心のびやかな朝鮮の人達が好きでたまらないのだ。東京でいつもせせこましい窮屈な思いで暮している私は、故郷に帰れば人が変わったように困る程冗談を云う。友達にはむろん先輩にさえ、気がどうかしていると思われる位に実のない冗談を持ちかける。もともと人一倍そういったところが好きで、深刻そうに真面目ぶるのが苦手の性分でもあるが。だから帰れば家でも毎日を冗談と笑い話で暮しているようなものである。そういえば又思い出すが死んだ姉などは殊に私とは調子が合って、何事にも声を出して笑い、笑ってはついに腰が折れるまでに笑いこけたものだ。だが時々急にこの地で致し方ない程の郷愁にかられると、大概は神田の朝鮮食堂にでも行って元気な学生達の顔を嬉しそうに眺めたり、朝鮮歌謡の夕だとか野談や踊りの催しなどをさがしては出掛ける。それも今は少くなったが。――そこで移住同胞達の笑顔を見たりはしゃぐ声を聞いたりすると、時には思わず微笑ましくなり、又涙ぐましくも悦に入ったりするのだ。あの朝鮮語のふざけた弥次(やじ)を聞くのが又大好きと来ている。思わず吹き出してしまう。これはどうにか一種のセンチメンタリズムと云えたものかも知れない。  朝鮮の空は世界のどこにもないと云われる程、青くからりと澄んでいる。早くその下を歩きたいと此頃思い出したので、どうにもしようがなくなって来た。こうして私はいつも朝鮮と内地の間を渡鳥のように行ったり来たりすることになろう。何しろ母も年が年なので、あの澄み渡った青空の下、どこか好きな大同江の流れでも見下ろされる丘の上に住みたいものと心では考えている。   底本:「光の中に 金史良作品集」講談社文芸文庫、講談社    1999(平成11)年4月10日第1刷発行 底本の親本:「金史良全集 4[#「4」はローマ数字、1-13-24]」河出書房新社    1973(昭和48)年4月30日 ※初出:「知性」    1941(昭和16)年5月号 ※底本にあった割り注および注は、編者もしくは編集者が付けたものと判断し、削除した。 ※本文中の「内地」とは、当時日本の統治下にあった朝鮮などの地域との対比の上での日本を指す。 入力:大野晋 校正:大野裕 2001年1月1日公開 2005年12月16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表記について このファイルは W3C 勧告 XHTML1.1 にそった形式で作成されています。 [#…]は、入力者による注を表す記号です。 傍点や圏点、傍線の付いた文字は、強調表示にしました。
191    玄海灘密航 댓글:  조회:1756  추천:0  2013-06-20
玄海灘密航 金史良  荒潮の渦巻く玄海灘を中心にして、南朝鮮、済州、対馬、北九州等の間には、昔から伝説にもあるように住民の漂流がしばしばあったと云われている。或は最初の文化的な交流というものは、概してこういう漂流民を通じてなされたのであろう。――だが面白いことには文明の今日においてさえ、漂流という形を借りたものが又想像以上にあるのである。それが密航である。  けれど密航と云っても、そうロマンチックなものではなく、それを思いたつまでには余程の勇気と度胸が要ることだろうと思う。玄海灘を挟んでの密航と云えば、旅行券のない朝鮮の百姓達が絶望的になって、お伽話のように景気のいいところと信じている内地へ渡ろうと、危かしい木船や蒸気船にも構わず乗り込むことを云うのだから、度胸云々どころではなく、全く命がけ以上の或は虚脱と云ったところであろう。何れにしても、この密航に関して私にははかない思い出が一つある。この間も朝鮮人の密航船が玄海灘で難破して、一行二三十名が藻屑(もくず)となったという報道を読んで、転(うた)た感深いものがあった。  その実私も釜山から一度密航を試みようとしたことがある。それは十八の時の十二月のことであるが、或る事情で堂々と連絡船には乗り込めないので、毎日のように埠頭に出て寒い海風に吹かれながら、どうしたらばこの海を渡って行けるだろうかとばかり思い焦っていた。何しろ若い年先であり、それに丁度中学からも追い出されたばかりなので、ゆっくりと形勢を見るとか智慧をめぐらすとかいうようなことは出来なかった。玄海灘の彼方というのは、私にはその幾日間かは全く天国のようにさえ思われていたのであろうか。  或る日も私は埠頭で、帆船や小汽船が波頭ににょきにょきと揺れている様を見ながら、じっと立っていた。それはみぞれの降る日だった。その時黒い縁の眼鏡をかけた内地人の男が、通りがかりに独言のように、海を渡りたければ明朝三時に××山の麓に来たらいいと云うのである。私は驚いて振り返って見た。だが男は吹き荒ぶみぞれの中に、どこかへ消え失せてしまった。さすがに私はその晩いろいろと苦しみ悶えたものである。丁度二三日前から、宿屋のボーイにも三十円程出せば密航させるからとしきりに誘われていた訳なので、よっぽど思い切ってやってみようかと考えた。だが何故となくおっかなかった。隣りの部屋に一人の客がやって来たが、言葉がどうも郷里の北朝鮮系である。私はその夜中に客の寝ている部屋へはいって行った。そして密航に対して意見を求めた。すると客はしげしげと私の顔を眺めてから、 「よしなせえ」と一言のもとに反対した。今も思い出すことが出来るが、彼は小さな口の上に黒い鼻髭のある三十男で、目をしょっちゅうしばたたいていた。その目をしばたたきながら、彼は一晩中密航に関していろいろな話をしてくれた。彼も内地へ行っていたが、渡る時はやはり旅行券がなくて密航をしたというのである。船は小さくて怒濤に呑まれんばかりに揺れるし、犬や豚のように船底に積み重ねられた男女三十余名の密航団は、船員達に踏んづけられ虫の息である。喰わず飲まず吐瀉(としゃ)や呻きの中で三日を過ぎ、真暗な夜中に荷物のように投げ出されたのが、又北九州沿岸の方角も名も知らない山際だったそうである。船の奴等は結局どこへでも船を着けて卸(おろ)してから、見付からぬ中に逃げればいい訳である。だから時には奴等は内地へ来たぞと云って、南朝鮮多島海の離れ小島にぞろぞろと卸して影をくらますことさえあるそうである。兎に角内地へ渡って来たのは来たが、皆はひどい船酔いと餓えに殆んど半死の有様で、夜が明けるまでぶっ倒れていた。彼だけはしきりに気を立て直して、行先をさぐった。そして灯のまだらについている小さな町の方をさして、這うように山を越え逃げ込んだのだった。ぼろぼろでも洋服を着ていたからよかった。だが他の連中は白い着物を着たまま群をなして徨(さまよ)い歩く中に見付かって、再び送還されたのに違いない。私はとうとう密航を思い切らねばならなかった。 「じゃが今は内地も不景気でがして、屑屋も駄目じゃけん、内地さ行くなああきらめるがええ」と、彼は結んだ。  翌日の朝彼は郷里へ帰るといって、やはりぼろぼろの洋服で小さな包みを一つ抱え、釜山鎮という駅から発って行った。私は余りの心寂しさに、彼を親でも送るような気持で、遠くから手を振って見送ったが、この小さな鼻髭を持ったおじさんは今どこで何をしているのだろう。  その後私は北九州の或る高校に籍をおくようになったが、この地方の新聞には毎日のように朝鮮人密航団が発見されて挙(あが)ったという記事がのる。それを読んでいく時は、何とも云えない複雑な感情に捉われた。沿岸の住民がとても訓練を得て監視するために、稀の場合でなければ成功しないのである。あっちは命がけの冒険上陸とも云えるが、こちらは又こちらで必死になって上陸させまいと目を光らせている。僅か八つの小学生が学校へ行く途中、密航団を見付けて駐在所に告発したので表彰されたというでかでかした記事も稀ではなかった。それを読んでいると私は、自分までが来れない所へやって来て監視されているような、いやな気持になることがままあった。そのためでもなかろうが、私は九州時代有明海にしても、鹿児島海岸にしても、別府の太平洋にしても随分親しんだものだが、目と鼻の先の玄海灘の海辺には余り遊びに出掛けなかった。  それにしても卒業の年の初秋だったと思う、一度だけ郷里の或る学友と唐津へは行ったことがある。波の静かな夕暮で、海辺には破船だけが一つ二つ汀(みぎわ)に打ち上げられていたが、海の中へ遠く乗り出している松林には潮風がからんで爽やかに揺れていた。その時ふと私達の目には白い着物を着た婦(おんな)達が四五人、遠く砂浜を歩いて来るのが見えた。丁度夕焼頃となり、それが迚(とて)も美しく映えて見えるのだった。私はぎくりとして、さてはちりぢりになった密航団のかたわれではなかろうかと思った。ところが彼女達が近くやって来た所を見ると、近所の海辺に住んでる移住民の奥さん達のようだった。若い婦達が下駄を手に持って、時々腰を屈(かが)めて沙場の貝殻を拾っている様は美しい。その頃の高校の歌に、 「夕日や燃ゆれ、吉井浜、天の乙女がゆあみする」という句節があった。  私は滅多(めった)に歌など歌ったことがないが、その時はちょっとそういう文句を思い浮べた。   底本:「光の中に 金史良作品集」講談社文芸文庫、講談社    1999(平成11)年4月10日第1刷発行 底本の親本:「金史良全集 4[#「4」はローマ数字、1-13-24]」河出書房新社    1973(昭和48)年4月30日 ※初出:「文芸首都」    1940(昭和15)年8月号 ※底本にあった割り注および注は、編者もしくは編集者が付けたものと判断し、削除した。 ※本文中の「内地」とは、当時日本の統治下にあった朝鮮などの地域との対比の上での日本を指す。 入力:大野晋 校正:大野裕 2001年1月1日公開 2005年12月14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表記について このファイルは W3C 勧告 XHTML1.1 にそった形式で作成されています。 [#…]は、入力者による注を表す記号です。
190    光の中に 댓글:  조회:2593  추천:1  2013-06-19
光の中に 金史良   一  私の語ろうとする山田春雄は実に不思議な子供であった。彼は他の子供たちの仲間にはいろうとはしないで、いつもその傍を臆病そうにうろつき廻っていた。始終いじめられているが、自分でも陰では女の子や小さな子供たちを邪魔してみる。又誰かが転んだりすれば待ち構えたようにやんやと騒ぎ立てた。彼は愛しようともしないし又愛されることもなかった。見るから薄髪の方で耳が大きく、目が心持ち白味がかって少々気味が悪い。そして彼はこの界隈のどの子供よりも、身装(みなり)がよごれていて、もう秋も深いというのにまだ灰色のぼろぼろになった霜降(しもふ)りをつけていた。そのためかも知れないが、彼のまなざしは一層陰鬱で懐疑的に見える。だが妙なことに彼は自分の居所を決して教えようとはしなかった。私は大学からS協会への帰りみちなど、押上駅の前で二三回彼に遇ったことがある。彼の歩いて来る方向からすれば、どうやら彼は駅裏の沼地あたりに住んでいるようだった。それでいつか私はこう質(たず)ねたものである。 「駅の裏に住んでいるの?」  すると慌てて頭(かぶり)をふった。 「違うやい。僕の家は協会のすぐ傍だよ」  勿論途方もない嘘である。彼は学校からの帰りに、わざわざここへ遠廻りして遊びに来ると、夜の部がひけるまでは決して帰ろうとはしなかった。聞けば婆やの部屋で飯を貰って食べたことも一度ならずあったようである。私ははじめそんなに彼に注意を向けてはいなかった。だが或る晩彼が薄暗い婆やの部屋で飯をかき込んでいる様を見た時は、はっと驚いて立ち止ったのである。「へんだな」と私は自分に云った。だが私はどういう意味でそう云ったのか、はっきりはしなかった。そしてもう一度「へんだな」と呟いた。その恰好がどうも私には曰(いわ)くがありそうでなかなか思い出せなかった。ちぢかんだ丸背にしろ、顔にしろ、口の恰好にしろ、箸の使いわけまでも。しまいには私は息苦しくなって黙ったまま彼の傍を離れて行った。だがその後というもの、私は彼のことをあまり気にしなくなった。その中に彼と私の間にはまことに奇妙な事件が一つ起ったのである。――  その頃私はこのS大学協会のレジデント(寄宿人)だった。ただ私の仕事といえば、そこの市民教育部で夜の二時間程英語を教えていればよかった。それでも場所が江東近くの工場街で、習いに来る人々が勤労者であるだけに、二時間の授業といっても骨が折れた。昼間へとへとに仕事で疲れている彼等であってみれば、余程こちらが緊張してかからない限り、みなはうつらうつらまどろんでしまうからである。  夜の部で元気なのはやはり子供部である。私たちの教室のすぐ下がその教場になっていて、いつもわあっと彼等の騒ぎ立てる音が聞えて来た。私の生徒たちはその音に驚いて腰を掛けなおすといった工合である。古いピアノがきんきん鳴り始めると、子供達は一斉に「われらはすこやかに、いざ育とう」という歌を、屋根でも飛んでしまいそうな元気な勢で張り上げた。 (もう時間だな)と思うが早いか、今度は豆でも挽き立てるような騒ぎが湧き上る。子供たちは階段をわれ先にと駆け上って来るのだ。授業を終えて教室を出ようとした私は、すぐに子供たちにつかまって、全(まる)で鳩飼いじいさんのようになるのだった。甲は肩にのり、乙は腕にすがりつき、丙はしきりに私の前を小躍りしながらはね上る。幾人かは私の洋服や手を引張り、或は後から声を立てて押しやって私の部屋まで来る。そこで戸を開けようとすると、もはや先からはいって待ち伏せていた子供たちが、一生懸命になって開けさせまいとしている。こちらでも子供たちが蟻のようにたかってしきりに開けようとする。こういう時にきまって山田春雄ははたから邪魔をするのだった。 「ほっときなよ。ほっときなよ。あーあーあー」  と叫びながら、私の鼻先の前で気味よさそうにひょうきんな踊りをしてみせた。とうとうこちらが凱歌を上げてなだれ込んで行くと、室内では先から待ち構えていた六七人の少女がきゃあきゃあしながら悦び立てた。 「南(みなみ)先生! 南先生!」 「あたいも抱っこして」 「あたいも」 「あたいも」  そう云えば私はこの協会の中では、いつの間にか南(みなみ)先生で通っていた。私の苗字は御存じのように南(なん)と読むべきであるが、いろいろな理由で日本名風に呼ばれていた。私の同僚たちが先ずそういう風に私を呼んでくれた。私ははじめはそんな呼び方が非常に気にかかった。だが後から私はやはりこういう無邪気な子供たちと遊ぶためには、却ってその方がいいかも知れないと考えた。それ故に私は偽善をはる訳でもなく又卑屈である所以(ゆえん)でもないと自分に何度も云い聞かせて来た。そして云うまでもなくこの子供部の中に朝鮮の子供でもいたならば、私は強いてでも自分を南(なん)と呼ぶように主張したであろうと自ら弁明もしていた。それは朝鮮の子供にも又内地の子供にも感情的に悪い影響を与えるに違いないからだと。  ところが、或る晩のこと子供たちと騒いでいる所へ、私の生徒の一人が真蒼(まっさお)にひきつったような顔をしてはいって来た。それは自動車の助手をしながら夜になると英語や数学を習いに来る李という元気な若者であった。彼は戸を閉めると挑(いど)みかかるような調子で私の前に立ちはだかった。 「先生」それは朝鮮語だった。  私ははっと思った。子供たちもどういう意味かは知らないが何か嶮しい空気にけおされて、彼と私の顔をかわるがわる見守っていた。 「さあ、又後で遊ぶんだ。これから先生は用事があるんだから」と私は落着きをつくろいながら口元に微笑みさえ浮べた。  子供たちはすごすごと出て行った。だが山田春雄のまなざしばかりは異様な光を点(とも)して、さぐるようにじっと私を見つめていた。私は今だにその薄光りしていた目を忘れることは出来ない。彼は蟹のように横歩きで方々へぶち当りながらぬけ出るのだった。 「まあお掛けなさい」私は二人きりになった時静かに朝鮮語で話しかけた。「ついお互い話し合うような機会もありませんでしたね」 「そうです」李は立ったまま叫んだ。「私は実際あなたにどちらの言葉で話しかけていいか分りませんでした」彼の言葉の中には若者らしい憤りがのたうっていた。 「勿論私は朝鮮人です」という自分の答は心なしかいささかふるえを帯びていた。恐らく彼に対しては少くとも苗字のことが気にかかっていたのであろう。或は平気な気持でいられなかったのも、その点自分の身の中に卑屈なものをつけていた証拠に違いなかった。そこで私は寧(むし)ろ少しばかりうろたえながら、こう質ねてしまった。「何かお気にさわるようなことでもあったでしょうか」 「あります」彼は昂然と云った。「どうして先生のような人でさえ苗字を隠そうとするのです」  私は咄嗟(とっさ)で言葉につまった。 「まあ落着いて坐ろうじゃありませんか」 「どうしてか、私はそれが訊きたいのです。私は先生の眼や顴骨(かんこつ)や鼻立から、きっと朝鮮人であるのに違いないと思いました。だがあなたはそんな素振り一つしなかったようです。私は自動車の助手をしています。寧ろ私のような職場の人々に苗字のことでいろいろ気拙(きまず)いことが多い筈です。だが」彼は波打つ激情の余り吃(ども)り出した。どうして彼はこんなにまで興奮しているのであろうか。「だが私はそんな必要を認めないのです。私はひがみたくもなければ、又卑屈な真似もしたくないのです」 「全くです」私はかすかに呻(うめ)くように云った。「私も君の云うことと同感です。だが私としては子供達と愉快にやってゆきたかっただけのことです」廊下では相も変らず先の子供たちが騒ぎ合いながら、時々戸を開けては洟(はな)たれ顔で覗いたり、目をつぶって舌を出してみせたりした。「例(たと)えば私が朝鮮の人だとすれば、ああいう子供たちの私に対する気持の中には、愛情というものの外に悪い意味での好奇心といっていいか、とにかく一種別なものが先に立って来ると思うのです。それは先生として先ず淋しいことです。いや寧ろ怖ろしいことに違いない。だからと云って私は自分が朝鮮人だということを隠そうとするのではない。ただ皆さんがそういう風に私を呼んでくれた。又私もそうことさらに自分は朝鮮人だとしゃべり廻る必要も認めなかっただけなんです。だが君にそういう印象を少しでも与えたならば、私は何とも弁解のしようもないのです……」  と云った時、戸を開けて覗き込んでいた子供の中、突然大きな声で喚いたものがある。 「そうれ、先生は朝鮮人だぞう!」  山田春雄だった。瞬間廊下はしんとなった。私も一寸ばかり面喰わ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そこで努めて気を落着けるようにしてこう云った。 「いずれ又会ってゆっくり話しましょう」  李はわなわな手をふるわせながら出て行った。山田をはじめ二三の子供たちが逃げ出すようだった。私は呆然と立ち尽していた。一瞬間電光のように俺こそ偽善者ではないかという考えが閃(ひらめ)いたのである。階下の方ではがんがんと鐘の音が聞えていた。子供たちは騒ぎたてながら雲のように下りて行く、その音が恰(あたか)も遠い所からのように響いて来た。すると戸がそっと開いて忍び足でやって来た山田が、背をちぢかめて隙間から部屋の中を覗き込むのだった。それから、 「やい朝鮮人!」と云って舌をぺろりと出して見せると、追われるように再び逃げて行った。  これ以来、益々山田春雄は意地悪くなって私につきまとって来た。私が彼に一層の注意をむけるようになったのはそれ以後のことである。  成程そう考えてみれば、ずっと以前から彼は私を疑りの目で監視しながらつきまとっていたようであった。時々私が言葉尻などにひっかかって舌が廻らないような場合にも、よくそれを真似て殊更(ことさら)にわらい立てたりするのは彼だった。彼は最初から私を朝鮮出身だとにらんでいたのに違いない。でありながらも彼はいつも私につきまとい、私の部屋に来てはよくいたずらをした。それというのも彼は一種の愛情に似たものを私に対して感じていたためであろうか。ところがそのこと以来は、私を極度に敬遠しているとみえ、なかなか近寄っては来ないで、私のぐるりを一層うろうろとつきまとうだけだった。今に私がへまでもしたら一隅で意地悪く悦び立てようと身構えでもしているように。だが私は恐らく誰よりも愛情深い態度でいつも彼に臨んだ。私はむしろ彼を宥(ゆる)したかったのである。そして出来るだけ彼を研究し徐々に指導して行こうと決心した。私は先ずこういう風に考えたのだった。貧しい彼の一家は今まで朝鮮に移住生活を続けていた。その時に彼も外地へ渡った一般の子供のようにつむじ曲りの優越感を持たされて帰ったのであろう。だが私は或る日とうとう見兼て真赤に怒ってしまった。その時も私は教場に下りて子供達と遊んでいたが、二三度私の方をわざとらしく気遣ってから、急に何でもないことに怒って、傍の小さな女の子を実に残忍な程までに腕をふり廻して打ったのである。女の子は泣きながら逃げて行った。彼は逃げて行くのを追いかけながら、 「朝鮮人ザバレ、ザバレ――」と喚き立てた。  ザバレと云うのは捕えろという意味の朝鮮語で、朝鮮移住の内地人がよく使う言葉だった。勿論女の子は朝鮮人ではない。私に対して見よがしに言ってみるのであろう。私は飛んで行って山田の襟首をつかまえると、前後見さかいなしに頬打ちを喰わした。 「何んということをする奴だ!」  山田は声をひそめて何も云わなかった。ただそれは木偶(でく)のように私のするがままになっていた。泣きもしなかった。そして荒々しい息づかいをしながら、下の方からじっと私の顔を見上げた。殊更に目が白かった。子供達は私の廻りを囲んでつばを呑んでいる。彼の目にはふと一粒の涙がにじみ出したように見えた。だが彼はしずかに涙をおしこらえたような声で叫んだのである。 「朝鮮人の莫迦(ばか)!」 二  元来S協会は帝大学生が中心となっている一つの隣保事業の団体で、そこには托児部や子供部をはじめとして市民教育部、購買組合、無料医療部等もあって、この貧民地帯では親しみ深い存在となっていた。赤ちゃんや、子供のためには勿論、日常の細々した生活にまで、それはもう切りはなされないような緊密な連りをもっていた。そしてここへ通う子供達の母の間には「母の会」もあって、お互いに精神的な交渉や親睦を計るために、彼女たちは月二三度ずつ集まるのだった。だが今までついぞ一度も山田春雄の母は顔を出したことがなかった。自分の子供が夜遅くまでここへ来て遊んでいることを知っていようものなら、たとえ他の母達のように関係大学生達への温かい感謝の念からではないにしろ、時には親として自分の子供に対する心配からでもやって来ようというものではないか。――私はこの異常な子供に関心を持つとともに、こういう彼の家庭からして知らねばならないと考えたのである。  間もなく週末の三日続きの休みを利用して、子供達がどこかの高原へキャンプ生活に出掛けるようになった時、私は山田を自分の部屋に呼んで来た。山田は今までこんな機会にはいつも参加出来なかったことを私は知っている。 「どうだね、君も行くかい」  少年は頑(かたく)なに黙っていた。彼はこういう場合はこちらがどんなにやさしく持ちかけてもいつも疑り深くなるのだった。 「今度は君も行こうね」 「…………」 「どうしたんだね、君もお母さんを連れて来たらいいよ。父ちゃんでも構わない、どなたか父兄の方が来て承諾すればいいことになっているからね」 「…………」 「連れて来る気かい」  山田は首を振った。 「じゃ行かないの?」 「…………」 「費用は先生が出してやる」  彼は空々しい目で私を見上げた。 「そうしようね」 「…………」 「そんなら君のうちに先生が一緒に行って話してやろうか」  彼は慌てたように又首を振った。 「でも三日もとまって来るんだから、父ちゃんや母ちゃんの許しを受けないわけにはゆかないだろう?」 「先生も山に行くの?」その時になってやっと少年はずるそうに訊ねた。「行かない?」 「うん、先生は駄目だ、今度は留守番をすることになったんだ」 「じゃ僕も行かないや」  彼はひそやかな微笑を唇の上に浮べた。 「どうしてだね?」  すると彼はいーと歯をむいて白痴のように顎を突き出してみせた。  こういう風にして私はかねがね彼の家を一度訪問してみようと思いながら、とうとう果すことが出来なかった。彼はどうしたのかその隙を与えてくれないのである。  いよいよ土曜日が来て、S協会子供部の百余名は悦びざわめきながら上野駅へ列をなして出掛けたが、やはりその時間になるまで山田は見えなかった。だが後から屋上に用を思い出して上って行った私は驚いてしまった。物干台の柱にもたれて山田春雄が遠く並んで行く子供たちの行列をじっと眺めている。私は何とはなしに目頭が熱くなるのを感じた。物音に気附いて振り向いた彼はひどくまごついたようである。私は強いて笑いを作りながら彼の肩を後からそっと抱いてやった。 「そうら、あすこにアドバルンが上っているだろう」 「うん」彼は消え入りそうな声で云った。煤(すす)けた煙突や黒々した建物を越えて遠くの上野公園あたりに、二つ三つそれが尾をひいて浮んでいる。私はふと彼を温かくいたわってやりたいような気持になった。 「なあ春雄、これから先生は暇だから一緒に上野へでも行こうかい」  少年は見上げながらにっと笑った。 「じゃ行こう。先生は学校にも用事があるから丁度いい」  学校に用事があると云ったのは勿論嘘だった。そんなにも心にもないことを云う程、私は内心山田をはばかって遠慮しているのだろうか。 「へえ」彼は目をみはった。「先生も帝大なの?」彼はほんとに驚いたのに違いなかった。 「朝鮮人も入れてくれるかい?」 「そりゃ誰だって入れてくれるさ、試験さえうかれば……」 「嘘云ってらい。僕の学校の先生はちゃんと云ったんだぞ、この朝鮮人しょうがねえ、小学校へ入れてくれたのも有難いと思えって」 「ほう、そんなことを云う先生もいるのかい。それで生徒は泣いたのかい」 「うん泣くもんか、泣きやしねえよ」 「そうか、何という子供だい。一度先生の所へ連れて来てごらん」 「いやだい」彼はせき込んだ。「いないんだよ、いないんだよ」 「おかしなことを云うね」 「誰にも云わないんだよ、云わないんだよ」  彼はむきになって取り消した。全くへんな子供だなあと私は思った。丁度それと殆んど同じ瞬間だった。もしや彼がその朝鮮の子供ではないかという考が不意に浮んで来たのは。私は驚いたように彼の顔をじっと見つめた。彼は顔をこわばらせ警戒するように後ずさりした。そして急に一目散に階段をかけ下りながら叫ぶのだった。 「うん、僕、帽子をかぶって来るよ」  私は静かに首をふりながら階段を下りて行った。  だが私は玄関口から近い階段まで下りかけた時に、下の方で並々ならぬことがもち上っているのを知った。息をひそめてもみ合いながら、医療部の医師や看護婦や購買組合の男たちが、玄関口に横着けにされた自動車から一人のみすぼらしい恰好をした婦(おんな)を運び込んでいる。その後から助手の李がひどく興奮しているとみえ、肩で呼吸をきらしながらはいって来るのが見えた。婦の頭は血まみれになって後へぐんなりと垂れている。春雄がその傍をぶるぶるふるえながら二三歩ついて来たが、私を見附けるとぎょっとして立ち竦(すく)んだ。私はすぐに李の方へ近附いて行って、心配そうにどうしたことだと質ねた。すると彼は歯ぎしりしながら叫んだ。 「亭主に刃物で頭をやられたんです」医療部の戸口でがやがやしていた人々は皆驚いて彼の方へ振り向いた。「あの婦は朝鮮の人です。亭主は内地人の、これはひどい悪党なんだ」それからハンケチで首筋をふこうとしたとたんに、傍の方でうろたえている山田春雄を見附けると、彼は恐ろしい勢で少年の方へ飛びかかった。 「丁度こいつだ。こいつのおやじなんだ」彼は山田の手首をねじ曲げながら恰も犯人でも挙げたように「こいつの、こいつの」と口に泡をふくんで叫ぶのだった。その声はもはや興奮のあまり泣声にかわっていた。  山田はひどく苦しそうに悲鳴を上げながら、 「違うんだよ、違うよ」と喚いた。「朝鮮人なんか僕の母じゃないよ、違うんだよ、違うんだよ」  男達が中にはいってようやく二人をひき放した。私は殆んど茫然としていたのである。李君はいきりたって再び襲いかかり山田の背中を勢にまかせて蹴りつけたので、春雄はよろめきながら私の方へ抱きついて来た。そしてわーっと泣き出した。 「僕は朝鮮人でないよ、僕は、朝鮮人でないんだようー、なあ先生」  私は彼の体をしっかりと抱いてやった。私の目頭には熱いものがじーんとこみ上げて来るのを感じた。あの李のやけのような取り乱し方にしろ、又この少年のいたましい叫び声にしろ、私はどちらも責められないような気持だった。その場へぐったりとして倒れそうであった。婆やが一先ず山田を連れ出したので、やっとその場が収拾のついたようなものである。李君は激しく罵るように皆の前で云った。 「あいつのおやじは博徒(ばくと)の人でなしなんだ。つい先日監獄から帰って来たんだ。その間あの気の毒な婦は飲まず食わずにどんなに苦しんだか知れないや。その間中僕のうちへ、近処でなつかしいもんだから、やって来ては御飯を貰って行ったんだ。だのにあの悪党野郎は監獄から出ると、僕の所へ自分の嬶(かか)がゆききをしていたというので、ひどいやきを入れちゃったんだ。助かりやしねえ、もう助かりやしねえんだ」  彼はひーんと洟をかんだ。医療室から人が出て来て静かにしてくれるように云った。私は李を少しばかり離れた所へ連れて行きながら質ねた。 「君は山田春雄の家を知っているんですね」 「知っているもいないもないです」彼は忌々(いまいま)しそうに云った。「奴も駅裏の沼地に住んでいるんです」 「そうですか、随分ひどいもんだね。どうして君の家へゆききしたというのでいじめたのでしょう?」  彼は歯を食いしばった。 「そ、それは僕のお袋が朝鮮服を着ているからなんです。それで朝鮮人のところへ行くなってんです。へん、ふざけてらあ、莫迦(ばか)野郎奴が、あの前科者奴は何だと思うんです。たかがあいのこじゃねえか」そして目の前に相手をおいたとでも云うように叫び声を上げた。 「野郎、覚えておくがええぞ、一度でも出会(でくわ)したなら、貴様の首ねっこはもうねえと思うんだぞ、やい、この半兵衛野郎!」 「え、半兵衛?」私は驚いて問い返した。 「そうです」彼は息を切らしながら云った。「ひどい悪党です、残忍な奴なんです、へん、だがな、今度こそ僕が承知しねえからな、野郎! 嬶の殺人罪をきせてやるからな」 「半兵衛」私は再び呟いてみた。どう考えてもそれは確かに私には耳なれの名前である。 「半兵衛、半兵衛」私は何度も口ずさんでみたが、記憶の中を空廻りするだけでどうしても思い起せなかった。  その時に医師の矢部君が出て来たので、私たちは彼の方へ駆け寄って経過をきいた。彼の話では生命には別状もないだろうが、何しろひどい刺傷でどうしても一カ月の入院治療は要するから、今に意識を返すのを待って、どこかほかの病院へ移さねばならないとのことだった。李はその話を聞くと真蒼になって声をふるわせ、亭主が何しろ半兵衛で鐚銭(びたせん)一文持たないごろつきであるから、入院などとても覚束(おぼつか)ない、助けると思ってここに治るまで寝かせてくれとすがり附いて頼んだ。 「先生、お願いです、僕の方でお粥だのそんなのは持ちますから、先生……」  だが実際のところここは医療部といっても、有志医学士が二三人昼間やって来て簡易治療にたずさわるという程度で、重傷患者を入院させるという程の所ではなかった。それで矢部君も暗然として首をひねりながら、私にどうしたものだろうと訊ねるのだった。私はすぐ近処の相生病院の尹医師を思い出したので、その方へ電話でお願いすることにした。それは貧民救済医院といったもので、資金が朝鮮の労働者たちのか細い懐から出ているだけに、朝鮮人にはいろいろ特典があった。丁度空いているベッドがあったために工合よく話がまとまった。それで再び彼女は担ぎ出された。もはや頭や顔には白い繃帯が何重にも厚ぼったく巻かれていた。それは丁度羽根のとれたとんぼのようにみじめだった。彼女は私たちに護られながら小路をぬけた所にある古ぼけた相生病院に運ばれた。手術台にのせられた時にもほんの少ししか意識がないようだった。彼女は二言三言呻いたようだったが、はっきりと聞きと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体の小さい、弱々しそうな女だった。指先は蝋のように真蒼で血の気も通っていないようだった。その傍で尹医師は矢部君の話に耳を傾けながら、いろいろな医具の準備をととのえていた。私は彼等が再び彼女の繃帯をほどこうとするのを見て静かにその部屋から出て来た。  外はだんだん険しい空模様になっていた。風が出て来た。藤棚の葉っぱが激しく揺れていた。  病院には半兵衛も春雄も現われなかった。 三  日の暮れる頃はもうどしゃ降りになっていた。ますます風もひどくなり、雨は桶を流したような威勢で降り出した。窓ががたがたふるえ電灯が明滅していた。子供は一人も来ていなかった。ただ二階で数学の授業がひっそりと行われているだけだった。  私は食堂の方で二三の同僚たちや婆やと山へ行った子供部のことを心配し合っていた。だが私の脳裡には先程起った事件のショックがやきついてどうしても離れなかった。と云っても私はその事をどうしたのか、まともに考えてみようとはしないのだった。私自身その怖ろしさにけおされていたのかも知れない。私はただ目を蔽いたかった。  その時に凄じい風が吹き附けて唸りを上げ、どーんと勝手口の扉が吹き飛ぶような音が無気味に響いた。一同はびくっとして息を殺した。近寄って行った婆やはあっと悲鳴を上げてたじろいだ。駆けて行って見れば、扉は倒れ雨と風の中に山田春雄が竦然(しょうぜん)として立っていた。折も折、稲光りがぴかぴか光ってそれは幽霊のようにおののいて見えた。 「どうしたんだ、春雄」私は彼を抱え込んではいって来た。そしてそのまま二階の自分の部屋へ上って行った。何とも云えない気持だった。ずぶ濡れになった着物を脱がし、タオルで体をふいて寝床へ横にさせた。彼の体はわなわなふるえていた。熱いお茶をやると何杯もがぶがぶ飲んだ。そこで漸く元気を取り戻して、悲しそうに私を見上げるのだった。私は何となく胸の中も打ち解けるような、ほかほか温かいしんみりとしたものを感じた。この少年は又どんなことがあって、こういう嵐の夜中をやって来たのであろう。 「病院へ行って来たのかい?」  彼は口をひくひくさせたかと思うと急にいーと引張るように泣き出した。 「莫迦だな、泣いたりして」 「違うんだよ。病院へ行きやしないよ。行きやしないよう」 「まあ、いいよ」私の声はかすれていた。「まあいいんだよ」 「うん」  彼はすぐに安心したように肯いた。そこでぽかぽか暖かそうに蒲団の中に足をのばして首をすぼめて見せた。私にはそれがこよなくいじらしいものに見えた。彼の目はきらめき、口元はにっこりと微笑を浮べたのである。すっかり私に心を許したというものであろう。私は彼の心の世界にもこういう美しいものがひそんでいるに違いないと考えた。本能的な母親に対する愛情にしろ、どうしてこの少年にだけ欠けていると考えていいのだろうか。それはただ歪められたのに過ぎないのだ。私は近所の人々からいためつけられ擯斥(ひんせき)されている一人の同族の婦を想像した。そして内地人の血と朝鮮人の血を享けた一人の少年の中における、調和されない二元的なものの分裂の悲劇を考えた。「父のもの」に対する無条件的な献身と「母のもの」に対する盲目的な背拒、その二つがいつも相剋しているのであろう。殊に身を貧苦の巷に埋めている彼であって見れば、素直に母の愛情の世界へひたり込むことをさし止められたのに違いない。彼はおおっぴらに母に抱き附くことが出来ない。だが「母のもの」に対する盲目的な背拒においても、やはり母に対する温かい息吹はひしめいていたのであろう。彼が朝鮮人を見れば殆んど衝動的に大きな声で朝鮮人朝鮮人と云わずにはおれなかった気持を、私はおぼろながらに理解出来ないでもない。だが彼は私を見た最初の瞬間から朝鮮人ではあるまいかと疑いの念を抱きながらも、始終私につきまとっていたではないか。それは確かに私への愛情であろう。「母のもの」に対する無意識ながらの懐かしさであろう。そしてそれは私を通しての母への愛の一つの歪められた表現に違いない。その実彼は母の病院へ訪ねて行くかわりに私の所へやって来たのかも知れないのだ。母を訪ねる気持と何が違うのであろう。こう考えて来ると私はたとえようもない悲しい気持になって、彼のいが栗頭を撫でてやりながら、強いて笑顔をつくり、 「母ちゃんの病院へ行こうかい?」と質ねてみた。  彼は悲しそうに首を振った。 「どうして?」  彼は答えなかった。  だんだん嵐もしずまりかけたのであろう。小雨が時々思い出したように軒をふりたたいている。私は窓を開けてそろそろ晴れ渡りそうな空を眺めた。遠い北の方の空にはちぎれ雲の合間から、二つ三つ星さえ光り出していた。 「もう晴れそうだよ、ねえ、君、これから一緒に見舞に行ってみる?」  答えがない。見れば彼は蒲団をすっぽりと被っていた。 「父ちゃんは行ったのかい」 「行くもんか」後は蒲団の中でやや反抗的に云った。 「おかしな父ちゃんだね。母ちゃんが気の毒じゃないか」 「…………」 「それなら父ちゃんの所へは帰るつもりだね。父ちゃんだってきっとうちで心配しているよ」 「…………」彼は顔を出してすねたような目附をした。「僕はここでいいよ」 「うん、そりゃ……」私はしどろもどろ仕方なさそうに云った。「ここでもいいけれど……」  丁度数学の授業がひけたとみえて、廊下がどやどやざわめき出した。暫くするとドアにノックがして李が悄然と現われたが、山田の寝ているのを見るとはっと顔をこわばらせた。私はいささかあわて気味に、外へ出て話しましょうと彼を廊下へ連れ出した。 「先生は朝鮮人呼ばわりされるのに困って」と彼は罵るように叫んだ。「あいつをいよいよ抱き込もうと云う訳ですね」 「失礼なことを云うな」私はどうしたことか、かっとなって呶鳴(どな)った。確かに私は彼の出現に戸惑いしたのであろう。 「山田はこのひどい雨の中にやって来たんです。そして帰るに帰る所がないんだ」 「誰が帰る所もないと云うのです? あの気の毒な婦人こそそうです。今の餓鬼は自分のおやじの所へ行けばいいんだ。ああ呪われろ、悪党奴!」それから急に彼はへなへなになって哀願するように啜り泣いた。「どうして先生はあの気の毒な婦に対して同情しないんです。あの可哀そうな婦のことを考えないのです……」 「どうか止めてくれ」私は頼むように云った。私の言葉はふるえていた。どうしていいのか頭がくらくらして分らなかった。 「先生……」 「止めてくれんのか!」私は突然断末魔のような叫び声を上げた。気まで狂いそうだった。  彼はよろよろと立ち去った。私は激しい格闘でもした人のようにぐったりとなって壁によりかかった。  勿論私は純情な李を理解することが出来るのだと自分に云った。過去において私自身もそういう時期をとおって来たからである。だが私はその次の瞬間、自分が現在は南(みなみ)と呼ばれていることがじーんと電鈴のように五官の中へ鳴り響いて来るのを感じた。それで私は驚いたようにいつもの様々な云いわけの理由を考え出そうとした。だがもはや駄目だった。 「偽善者奴、お前は又偽善をはろうと云うのだな」私の傍で一つの声が聞えた。「お前も今は根気が続かなくて卑屈になって来ているじゃないか」  私はびっくりし、それからさげすむように云い返した。 「卑屈になるまい、なるまいとどうして僕はいつもいきまい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んだ。それが却って卑屈の泥沼に足をつっ込み始めた証拠ではないか……」  だが私はしまいまでを云い切る勇気がなかった。今まで私は自分がすっかり大人になっていると思い込んでいた。子供のようにひがんでもいなければ、若者のように狂的に××してもいないのだと。だがやはり私はお安く卑劣を背負い込んだまま寝そべっていたのだろうか。それで今度は自分に詰め寄った。お前はあの無垢な子供たちと少しも距たりをもちたくないためだと云った。だが結局、自分をしきりに隠そうとするおでん屋に来た朝鮮人とお前は何が違うと云うのだ! そこで私は抗弁のためとでもいうように李のことをやりこめようとした。それなら一時の感傷にせよ激情にせよ「俺は朝鮮人だ、朝鮮人だ」と喚いているおでん屋の男と、貴様は一体何が違うと云うのだ。それは又自分は朝鮮人ではないと喚き立てる山田春雄の場合と本質的な所、何の相違もないではないか。私は毛色の違うトルコ人の子供でさえこちらの子供と角力をとりながら無邪気に戯れているのを見る。だがどうして朝鮮人の血を享けた春雄だけはそれが出来ないのだ? 私はその訳を余りにもよく知っている。だから私はこの地で朝鮮人であることを意識する時は、いつも武装してい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そうだ、確かに私は今自分一人の泥芝居に疲れている。  私は暫くの間そのまま茫然としていた。もう李はそこにはいなかった。私はよろめくようにして自分の部屋へ帰って来た。  部屋は薄暗かった。私は春雄の寝床の傍へ近寄って行った。その時私ははっと驚いて目を瞠(みは)った。えびのように体をちぢかめて自分の右腕を枕にし目を半ば開いたまま寝ついている山田春雄の寝姿。私は思わず口に手をあてて声をかみ殺した。 「あっ、半兵衛の子だ!」とうとう私は思い出したのだった。今まで目の前にちらつきながらどうしても思い起せなかった、半兵衛。「半兵衛の子だ!」  私は顛倒せんばかりに驚いた。あ――これは又何ということであろう。私はこういう恰好をして寝ている半兵衛をどれ程長い間見て来たのか知れない。だらしなげにぽかんとしている口や、大きな目に老人のような隈がふちをえがいている様までも、父に丸うつしではないか。その子が又そっくり同じ様子をして私の傍に寝ているのだ。実に私はその半兵衛とは二カ月余りも同じ留置場に寝起きしていた。彼のことを思うだけでも背筋には冷っこいものが走るのを感じた。それは私が一層春雄を愛しているからである。私の脳裡には一瞬間、この変質的な春雄がしまいには父のような人間になりはせぬかという怖ろしい予感が走ってぞっと身慄いした。  思えば先年の十一月のことである、私がM署の留置場で半兵衛に会ったのは。その時彼はにやにやしながら私の方へ寄りかかって来た。皺(しな)びた馬面(うまづら)に大きな目がでれりとして薄気味悪い男だった。だがおや朝鮮人だなと私は思った。 「おう! お前のシャツ貸せ!」彼は私の洋服のボタンをはずしかけた。私は幾らか興奮していたので、無造作に振りきって隅の方へ腰を下ろした。他の連中は皆何かを気味悪く期待するような目附で、私たちをかわるがわる見守った。 「野郎やりやがったな」彼は如何にも切り口上で出た。「この朝鮮人野郎、おれを見損いやがったな」  彼は腕をまくし上げた。その時廊下を歩いていた看守が格子窓から覗き込んで、 「山田、坐っておれ!」と呶鳴ったので、それを聞いて私は彼が内地人であることをはじめて知った。  彼はにたっと歯をむき出して笑うと、大人しく自分の席へもどった。そこで用もなしに上服(うわぎ)をとって外から見えないように壁にかけるとけろりとしていた。弁当の箸を折ってそれを釘のようにさし込んでいた訳である。私は思わず吹き出しそうなのをやっとこらえた。その時に彼のすぐ傍で居眠りをしている鬚(ひげ)もじゃな小男が頭を彼の方へもたせかけたと見るや、いきなり彼は荒くれた拳骨(げんこつ)を男の頭上へごつんと打ち下ろした。そしていかにも凄い権幕でにらみつける。その夕彼は私には弁当を渡さなかった。自分でがつがつかき込んで貪(むさぼ)り食べていた。私にはその瞬間の彼の様子が今にも見えるような気がする。それでいつだったか、春雄が食事をしている所を見てふと半兵衛のことを思い出しそうにさえなった程である。  彼は一人の卑怯な暴君だった。みなに恐れられながらも陰では非常に憎まれていた。彼は必要以上に看守の目を恐れているが、そのかわり新入者や弱い者に対してはひどい乱暴をしていた。中でも物凄い権幕で啖呵(たんか)を切ることは、彼の最も得意とする所に属するらしかった。「こちとらはな、これでも江戸八百八町を股にかけて歩いて来た男なんだ。余りふざけるねえ、手前のようなこそ泥とはちと訳が違おうぜ……」  留置場の様子から見れば、彼の他に相棒と思われるのも都合六七人はいた。彼の啖呵に従うとすれば、彼等は浅草を縄張りとしている高田組で、有名な俳優連を恐喝して大金をせしめたのだった。その中で自分はいかにも最猛者(もさ)のように云いふらした。だがどうやらその連中の中でも「足らず者」という意味で、半兵衛と呼び捨てにされているらしいのはすぐに分った。私は今だに彼の本名を知らない。その中に私は彼にも馴れて来たし彼の素性もほぼ理解することが出来た。それと共に私の席もだんだん彼に近づいて行った。というのは監房内では古い者程格子扉の傍へ近附くようになるからである。ついに私は半兵衛と向い合って坐るようになり、寝る時は丁度隣り合うようになった。彼は私に対してはもはや温順しくなったが、しかし一緒に寝るのは私にはひどい苦痛だった。彼の口臭も我慢ならない程臭いけれど、何より一晩中股ぐらをごしごしかいて明かすのである。自分でも梅毒だと云った。私はもうそれが頭にまで来ているのだろうと考えた。いつかの夜半彼は妙にしんみりとなって私に質ねたものである。 「君は朝鮮のどこだい?」 「北朝鮮だ」 「おらは南朝鮮で生れたぜ」彼はずるそうに私の気色を覗(うかが)うのだった。そしてひーんと打ち消すように鼻で笑ってみせた。だが私は強いて驚くような気色を見せまいとした。 「そうか」  すると彼は歯をむき出した。 「ほんとうだよ」  勿論こういう話は二人でこそこそと云いかわすのだ。 「おらあの女房も朝鮮の女だぜ」 「ほう……」私は思わず目を丸くした。  彼はいかにも小気味よさそうににやにやした。私は彼に何か訳合があるに違いないと考えた。 「朝鮮に行って貰ったのかい」 「おかしくって、面倒臭せえや。じかに洲崎の朝鮮料理屋に親方とかけ合いに行ってさ、この女をおらあの手に渡せ、でねえとこっちが承知しねえぞ、障子に火を附けてやらあとおどかしたんだ。すると野郎たち蒼くなってくれやがった訳さ」  彼はじろりと横目で私を見た。折しもさし込んで来た夜明けの月の光にその目は一層凄惨な影を宿していた。  だが翌朝はけろりとして、いつ自分がそんなことを云ったんだろうというような調子である。やはりいつものように弱い者をいじめ、新入者の弁当は取り上げた。だが私はその晩以来ますます彼のことを不審におもうようになった。それでも彼が警察の中で山田と呼ばれているからには、内地人であるに違いなかった。それでは彼の母が朝鮮人であるかも知れないと考えたが、ついぞ確かめることが出来ずに私は起訴猶予となって出て来たのである。――  そして私は今ようやく彼のことを思い出したのだった。私は何という迂闊(うかつ)さであろう。苗字の符合からしてもそれ位はとうに感附いていそうなものではないか。最初に山田春雄を見た瞬間から、私の眼の前には半兵衛の映像がかすかながらの光芒をもってちらついていた筈だった。だが私はそれが半兵衛であることに気附くことが出来なかった。或は春雄に対する愛情からして、ひそかにそれが半兵衛であることを私は怖れていたのかも知れない。 「半兵衛」私はもう一度静かに呟いた。  だが春雄はすやすやと心よい眠りにおちている。私の網膜には、 「おらあの女房も朝鮮の女だぜ」と云っていた半兵衛の卑屈な笑い顔が幾重にも浮び上って来た。するとそれがいつの間にか今度は春雄の寝姿の上にのりうつってしまった。その時かすかに春雄は呻き声を出したようである。彼は顔をひくひく痙攣させたと思うと、うーうーうなされながら寝返りをうって驚いたように目を瞠った。 「どうしたんだ、夢でもみたのかい」  私は汗だくになっている彼の首筋をふきながら訊いた。  彼は再び目をとじると譫言(うわごと)のように呟いた。 「父ちゃんが今度は僕を片附けるんだって」 四  私も一晩中うつらうつらとしてとりとめのない夢ばかりみていた。朝、目をさましてみたらもはやそこには春雄はいなかった。私は驚いたように相生病院へ行ってみればいいのだと自分に云った。その日は日曜日で春雄にも学校がない筈である。いつの間にか私はそこの玄関に立って呼鈴を鳴らしていた。丁度よく尹医師が出て来て、私を春雄の母親の病室へ連れて行きながら云った。 「何でも山田貞順という名前になっているよ。朝鮮の人じゃないんだね。言葉の調子や貞順という字づらがおかしいと思って、負傷した瞬間の模様を朝鮮語で訊いてみたが口を噤(つぐ)んで答えないんだよ。ただ倒れたのだと日本語で云うんだ」 「ううん、そうか」私はしどろもどろで云った。「傷は大丈夫かい」 「まあ、大丈夫だよ。だがどうしても顔面に刀傷の痕はつくんだろうね。全く気の毒な程ひどい傷がこめかみの所に出来るんだよ。そうれ、あそこなんだ、……山田さん、お子さんの協会の先生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よ」  春雄はいなかった。十二畳位の部屋に寝台が五つ程交互に並んでいて、いずれにも病者が沈み込んでいた。その隅の方に彼女が横たわっていた。白い繃帯でぐるぐる巻かれた顔の中に口と鼻の所だけが少しばかり明いてみえる。彼女はじっとしたまま何も答えない。尹医師は回診のために席をはずしてくれた。私は彼女にどういうふうに話しかけたものだろうかと一寸ばかり当惑した。 「どんなにかお痛みのことでしょう。春雄君も随分心配していたようです」とつい言葉のはずみで山田のことをひっぱり出した。「実は私、春雄君の通っている協会の先生だもんだから……私、南(なん)と申します」  彼女は心なしか少しばかり体を動かしたように思われた。きっと彼女は私が朝鮮の苗字をしているので驚いたのに違いないと考えた。 「あ、あ」彼女は指先を小刻みにふるわせながら呻いた。 「春雄……春雄がほんとうに妾のことを……」 「…………」私は答えるに言葉がなかった。 「あは」彼女は感動の余り嗚咽(おえつ)した。「妾の春雄が、ほんとうに……妾を心(すん)配すると……云ったでしょうか……」  私もほろ苦い気持になった。だがいきおい春雄のことで彼女を慰めねばならなくなった。 「私は毎日春雄君と遊んでいるのです。時にはいろいろ気を落しなさるようなこともあるでしょう。だがまだほんの子供だし、その中にはきっとお母さんとしても自慢の出来るような春雄になると思うのです」私は実際にもそう考えていた。彼に今日の性格を与えたいろいろなものに思いを馳(は)せて、温かい手をさしのべ指導して行くならば、必ずや彼はだんだん深い自分の人間性に目覚めるであろうと信じた。  だが彼女は答えなかった。息を殺して私の云うことに注意を向けているばかり。私は続けた。 「始めはやはりあなたが春雄を連れて朝鮮へ帰るよりほかはないと考えました」  彼女はびくっとした。 「あなたのためにも又春雄の将来のためにもそれが一番いいと思ったのです。だが、あなたにはやはり今も半兵衛さんを大事にするような気持があるのでしょうね」 「アイゴ……何も訊かないで下さい」彼女は小さな声で哀れ深く云った。「私の主(す)人ですもの……」 「何も隠しへだてなさることはないと思います。私はかねがね半兵衛さんのこともよく知っているのです」 「あ」と彼女はさすがに驚いて声を呑んだ。彼女は全く沈没したように呻いた。「……でもあの人、妾を自由な身にしてくれました。……そして妾、朝鮮の女です……」しまいはもう咽(むせ)び声になっていた。  彼女は今もやはりこういう奴隷のような感謝の念をたよりにして生きているのだろうか、私は無道な半兵衛のことを思い出してたとえようもない愁然とした気持になった。いつか洲崎の朝鮮料理屋をおどかして連れて帰ったというのは丁度この女である筈だった。卑怯で残忍な半兵衛にしてみれば、この寄るべない朝鮮の女にいかにも目を附けて貰い受けそうな話ではないか。彼女は始めから彼のいけにえとして択(えら)ばれたのに過ぎない。あの怖ろしい薄莫迦の半兵衛に比べればこれは又何といういたいたしい婦であろう。私には彼女等夫婦の日常の生活さえ想像することが出来そうに思えた。彼女は毎日いじめられるのであろう。すってんてんに転びながら合掌して拝むのに違いない。そういう所から春雄のような異質的な子供も出来た筈であった。妾は朝鮮人でありますと彼女はいかにも悲しく云っていた。彼女の方では又もしかすれば自分が内地人と結婚していることを一種の誇りと思って、この逆境に生きてゆくせめてもの慰めとし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私は寧ろあの半兵衛に向って彼女が激しい憎悪をもっていることを期待し、そして同じ郷国から出て来た者として義憤の悦びに酔いたかった。だが私は見事に肩すかしを食わされたではないか。 「先生」 「え」 「妾、お願(ねか)いすることがあります」 「お話して下さい」 「お願(ねか)い……します。どうか妾の春雄の……相手をしないで……下さいませ」 「…………」私は黙ったままじっと彼女を見守った。彼女は今にも泣き出さんばかりの声であった。 「……春雄は……一人でもよく遊びます……」だが傷がひどくうずいて痛み出したのであろう、彼女は再び死者のようになった。だが又かすかに呻き声を出しながら「一人で……幾人の子供の……声も……真似て……にぎやかに……遊ぶのです……踊りがうまいのです。妾悲しゅうございました。どこかで見て来ては……一人で一生懸命踊ります……そして自分でも泣いています……」 「やはり朝鮮人だと云って外でいじめられるからでしょうか?」 「だが今は泣きません」彼女は力をこめて強く打消した。 「春雄は内地人テす……春雄はそう思っています……あの子は妾の子ではありません……それを……先生が邪魔するのは……妾悪いと思います……」 「私は半兵衛さんも南朝鮮で生れたというふうに聞いているのですが……」 「え……そうです……母が私のように朝鮮人でした。……だが今は……朝鮮といえば言葉だけでも……あの人はオコリます……」 「だけど春雄君は朝鮮人の私に非常になついて来ました。実は昨夜あの子は私の部屋で泊って行ったのです」 「…………」 「その中にあの子供のあなたに対する態度もだんだん変って行くだろうと思うのです」それから励ますように云い張った。「きっと近い中に春雄はあなたに対する愛情をよび返すでしょう。春雄が私になついて来たことはあながち私に対する愛情からだけではなく、実はあなたに対する愛の一つの違った表わし方だと思うのです。きっと春雄は愛情というものに餓えているのに違いありません。あなたに素直な愛情をよせることも出来なく、又あなたの愛情を純真に受けいれることの出来ない春雄でした。だがそれはだんだんとなおって行くことと思いますが……」 「そうでしょうか」彼女は寧ろ絶望的に深く溜息をついた。 「……あの子が……」  その時に戸口から一人の朝鮮服を着た老婆が転ぶようにはいって来た。私はそれとなしに、彼女が李の母であることが一目見て分った。それで私は少しばかりベッドの傍を離れて立った。老婆は貞順の無慙な姿を見附けるなり、ふーと息を吐き出して朝鮮語で慨(なげ)いた。 「何ちゅうむごい事だよ。きっとあの悪党に天罰がおちるだよ。なあ、春雄の母ちゃん。わしを分るのけえ、李チャンの母だよ。李チャンの。しっかり気をもって早く治すのでっせ、分ったけえ」  貞順は指先をふるわせて辺りをまさぐった。老婆はその手をとった。 「傷でも治ったら今度こそ見附からねえように郷里へ逃げて帰るのでっせ。いつかみてえに又戻って来るでねえだよ。何もええことああるもんでねえだろ」  貞順は呻いた。老婆は急に何か思い出したとみえ急いで風呂敷包をほどくと、夏蜜柑を二つばかり取り出した。 「夏蜜柑だよ。食べると喉の乾きが少しはなおるかも知れねえよ」そこで彼女は一生懸命になって皮をむきはじめた。 「李チャンがおばさんにやってくれと買って来たんだよ。あれも今日から免許状が下りて一人前になったちゅうて喜んでな」 「どうぞお大事にして下さい」やはり私はその場を外した方がいいと考えたので、そう云うと戸口の方へ進んで行った。その時何か春雄の母の息苦しそうな、ほそぼそした朝鮮語が聞えたので私ははっと立ち止った。彼女は老婆に向って朝鮮語で哀願するように云うのだった。 「おばさん。……妾、やはり帰りませんわ……それに妾の顔にひどい傷が出来るそうですの……そうなれば……あの人……妾を売り飛ばそうとも云えませんし……誰もこんな妾なんか買いはしませんもの……」それから痙攣でも起したように急に起き上ろうとした。 「あ!」 「お前さん、どうしたんだよ」老婆は慌てて彼女を抱えて寝床の中へ落着かせた。 「……何か……音がしたの」彼女は気でもふれたように息を切らした。「おばさん……春雄が来るのです。そうれ妾を訪ねて来るのです……」それから急に金切り声で叫び出した。 「おばさん出て行って下さい。……隠れて下さい!」 「誰も来やしねえだよ、誰も見えやしねえじゃねえか」老婆は悲しそうに泣き声をしぼった。  私は忍び足で戸口を出て来たがどうしたのか汗がびっしょりだった。その時私は誰かの小さな影が廊下のかどを慌てて横ぎったように思った。誰かははっきりと見分けがつかなかったが、おや、ほんとうに春雄ではなかったのかという考えがさっとひらめいた。私は急いでその曲り角まで行くと不審そうに辺りをながめた。果して私の推測は間違いではなかった。二階へ上る階段の裏側の薄暗い隅の方に、山田春雄が射すくめられたように身を隠したまま目を光らしていたのである。 「どうしたんだね」私は近寄って行った。  慌てて彼は首を振った。そしておびえたようにますます隅の方へ尻ごみした。何か隠し物でもあるのか、右の手を後の方へぎゅっと廻して放さなかった。今に悲鳴でも出しそうだった。 「母ちゃんの見舞に来たんだね」私は喉元が熱くなるのを感じながら云った。非常に感動したのだった。「母ちゃんは今も君が見たいと云っていたよ」  彼は一層強く首を振った。私は不満な気持になって彼の体を引き寄せた。彼は後手を放さなかった。それは何か白い小さな紙包を握りつぶして一生懸命に隠そうとしている。瞬間春雄は母のために何か持って来たのだなと私は思った。自分の母を見舞いに来ていながら人の前を憚(はばか)ったり、知られまいとしたりせねばならないのは、何と悲しいことであろう。私は寧ろ少年のそういう姿が何とも云えない程いじらしいものに思えた。私は云った。 「きっと母ちゃんが喜ぶよ」  その時突然彼は私の体に頭を埋めながら啜り泣きをはじめた。 「莫迦だな」  彼はますます激しく泣いた。その時どうしたはずみか白いもみくしゃになった小さな紙包がずり落ちた。私はそれを見て少からず異様な気持になった。きざみ煙草の紙包である。それは私が今朝起きた時に、机の上や抽斗(ひきだし)の中を随分さがしたがとうとう見附からなかった「はぎ」の古い包である。 「なあんだ、それで先生をこわがっているのか。ただ先生にそうことわって持って来ればよかったんだよ。さあ、これからそんなことは気を附ければいいんだ。それ、それ、母ちゃんが待っているよ、持って行っておやり、左側の三番目の部屋だよ」それから彼を元気附けるように肩をたたいてやった。「何だ、山田らしくもない。これからな、先生は協会へ帰って待っているよ。君が来たら昨日約束したように二人で上野へ遊びに行こうね」  彼はわーと泣き出した。私の心もゆらいでいた。だが病院の中にいるのは彼をますます窮屈にさせるだろうと思ったので、彼に病室を教えてから私は急いでそこから出て来た。そして何故彼が私の所から煙草を持って来たのだろうかといろいろと考えをめぐらしてみた。彼の母が吸うのだろうとしか想像がつかなかった。何という思わぬだしぬけたことをする少年であろう、私にはその時にも半兵衛が監房の中で上服を壁にかけてにたにたしていたことが思い出された。 五  一時間ばかりして山田春雄は再び私の前に姿を現わした。だが彼は指を口に咥(くわ)えたまま足元ばかり眺めていた。何だかすっきりした安堵もあるのだろうか。口元が今にも綻(ほころ)びそうにさえ思われた。何か素敵な事をした子供が大人の前でてれているようでもある。今まで彼の面上にこれ程素直な子供らしい影が現われたことがあろうか。彼はもうすっかり私を信じているのに違いなかった。だが私もひそやかに微笑を浮べるだけで何も訊かなかった。「さあ、出掛けようか」と帽子をとり乍(なが)ら一言云っただけである。  前夜の嵐の後をうけてうすら寒い位の午後だった。広小路で市電を下りた時は丁度日曜で押し合いへし合いの雑沓ぶりである。いつの間にか呑まれるように松坂屋の入口まで来たので、私は別に用事はないものの彼の手を引いてはいって行った。中も非常に込んでいた。春雄がエスカレーターに乗ろうというので二人で並んで乗った時は、さすがに彼は幸福そうで晴々としていた。私もみちあふれるような歓びを全身に感じた。少年春雄は今凡(すべ)ての人々の中にいるんだという考えが、私にはどうしても不思議な程に嬉しくてならなかった。彼は春雄であると同時に今は私の傍に立ち又人々の中にもいるのだ。二人は相並んで三階まで運んでもらった。そこでも人込みの間を縫いながら私達は五階か六階かの所まで上って行くと、食堂の一隅に向い合って腰を掛けたのである。だがその実二人は必要以上の言葉はいくらも交さなかった。彼はアイスクリームとカレライスをとり私はソーダ水を飲んだ。 「うまいかい」 「うん」彼は皿の上に顔をつけたまま私を上目で見た。「デパートのカレライスはうまいんだなあ」  そこからエレベーターで下りて来ると、一階の特売場で彼のアンダーシャツを一円で買った。彼はにこにこしながら包の紐を長くぶら下げて出て来た。  公園も珍しい人出であった。私達は石段を上って大通りに出た。こんもりとした木立は午後の淡い光をうけてものうそうに静かにゆらいでいた。空はどんよりと濁り風は折々高い木の梢に雨のような響きをたてている。だだっ広い大通りにはお上りさん風情の婦や男たちがぞろぞろと歩いていた。少年はいつの間にか新しいアンダーシャツに着替えて、ぼろぼろの上服を脇にかかえたまま、時々口笛などを吹き鳴らした。私は何とも云えない程彼がしおらしくなって来た。だが私はあまり彼に言葉をかけ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突然彼が私の袖を引きながら云った。 「先生云うのかい」 「何をだい」  見ると彼の目はいつものように猜疑と反逆の光をともしていた。私ははっと気がついた。煙草の一件を云うのだった。 「云うもんか、誰にも云いやしないよ、可哀そうな母ちゃんのために持って行ったんだもの、今日は実に君が善い行いをしたと先生は思っている位だ。母ちゃんは煙草が好きなんだろう?」 「好いていやしないよ」と彼は妙にしょげて渋々(しぶしぶ)呟いた。「母ちゃんは血が出たら……いつもきざみ煙草を傷にはっていたんだもの、僕ちゃんと知っていたんだもの」  成程と私は思わず息をのんだが、どうしたことか驚きの色さえ顔にあらわすことは出来なかった。私の目先が急にぼうと霞んで来たような気持だった。×××××××××血を流しては、彼女はいたましくもきざみ煙草をつばで練っては、幾つも幾つも傷口にはりつけていたのに違いなかった。丁度彼女の郷里の百姓達がそんな風にして傷を治そうとするように。 「そうか」  私たちはいつの間にか交番に近い所まで来ていた。その傍に頑丈そうな体重計がおいてあった。私はそれを見ると、とりつくろうように振り向いて淋しく笑いかけながら計ってみないかと質ねた。すると彼は悦んで飛びのった。余りに激しい力を一時に受けたので針がてんてこ舞いをし始めた。案外重いようだった。その時春雄は何かに驚いたとみえ、私の方へ飛びかかりながら小さく指で大通りをさしてみせた。何だろうと思って彼のさしている方を振り向いてみると、丁度一台の自動車が私たちの傍へすうっと横着けになるのだった。 「おや」と思ってみると運転手台で李が新しい帽子の庇(ひさし)に一寸ばかり指を上げてにこっと挨拶をしてみせた。私も嬉しくなって彼の方へ近寄って行った。 「お目出度う、先程病院で君のお母さんが云ってましたよ。うまくいったそうですね」  春雄は別に悪びれずに私の傍へよりそうて来た。それを見て李は工合悪そうに目を逸(そ)らした。 「え、今先私も病院へ行って来たんですよ」それなら彼はそこで春雄にも会った筈だった。黒い美しい目をしばたたきながら、さすがに彼は悦びをつつみ隠せずに珍しくはしゃいだ。 「僕もやっと一人前ですよ、随分これはいい車でしょう。三七年型だけれどわりに新しいし、エンジンもしっかりしていますよ」  そこで鷹揚にセルモーターを踏んだ。私の目にはありきたりのフォード型でそれ程いいようにも思われなかったが、「成程いい車ですね」と答えた。「今日はこの春雄君と一緒に遊びに来たんですよ」そして少年を引き立てるように続けた。「今も僕は気が附かなかったが春雄君が教えてくれたんでね」 「どうです、ひとつ乗ってみませんか。動物園にでも行くんでしょう」彼は戸を開けてしきりにすすめ出した。  二人は仕方なしに手をとって乗り込んだ。動物園の入口まではいくらもなかった。 「どうですか乗り心地がいいでしょう」彼は私たちを下ろしながら云った。この純真な若者には今日という日がたのしくてならないのであろう。「ほかのお客さんもみんなそう云ってくれましたよ」 「そう、新しくて気持がいいですね」私は正直に云った。  そこで彼は満足して見事にハンドルを操り切り返しをやると、先刻のように指を一寸立てて別れを告げ、ぶーぶー警笛を鳴らして人を散らしながら河豚(ふぐ)のように走って行った。春雄はじっと立ったまま羨望に満ちたまなざしで車を見送っていた。私は何という恵まれたうれしい日だろうと考えた。 「李君は立派な運転手になったね。君は大きくなったら何になる積りだい」私は春雄を顧みながら楽しそうに質ねた。 「僕、舞踊家になるんだよ」彼はいきなり明るい声で叫んだ。 「ほう」私は驚いて彼を見つめた。一時に彼の体が光彩を放ち出した様に思われた。「舞踊家になるのか」ふとこれは実に素晴しい舞踊家になれるかも知れないぞと考えた。 「そうか」 「うん、僕、踊るのが好きだよ。だけど明るいところでは駄目だよ。舞踊は電気を消して暗い所でやるもんさ。先生は嫌いかい?」 「ううん、それはきっと素晴しいことだろうな。そう見れば君は体も実にいいぜ」私は夢想するように云った。 「先生も踊りがとても好きなんだ……」  私の目の前には、この異常な生れをもつ、傷めつけられ歪められて来た一人の少年が、舞台の上で脚を張り腕をのばして、渡り合う赤や青の様々な光を追いながら、光の中に踊りまくる像がちらついて見えた。私の全身は瑞々(みずみず)しい歓びと感激にあふれて来るのを感じた。彼も満足そうに微笑を浮べながら私を見守った。 「先生だって踊りを作ったことがある位だよ。先生も暗い所で踊るのが好きなんだ。そうだ。これからは先生と一緒に踊りを稽古しよう。うまくなったらもっと偉い先生の所へ連れて行こうな」私は何も作りごとを並べているのではなかった。私も一時は舞踊家になろうと思って創作舞踊を試みた覚えさえあった。 「うん」彼の目は青い星のように輝いていた。 (そうだ、近い中に協会の傍のアパートにでも移って行こう。そこで一先ず二人きりになるんだ)と私は自分に云い聞かせるのだった。彼がどうこれから豹変(ひょうへん)するかは知らない。寧ろ又私を立ち所に裏切るには違いない。だが頑なにこちこちといじけ固っていた気持を、ほんの少しでもほぐしかけて来たこの機会を、私は逃してはならないと思ったのだ。  どうしたものかその時二人は浮かれ浮かれて老木の間をぬけて弁天様の傍を通っていた。そこにもここにも昨夜の嵐の跡が残って、折れた枝が落ちかかったり雨に洗われた地面に所々わくら葉が落ちたりしていた。鳩の群が弁天様の屋根や五重の塔のまわりをにぎやかに飛び交っていた。灯籠の傍に出ると下の方に茂みの合間を通して不忍池が見渡される。それは鏡をのべたように夕陽に照り返り時々ぎらぎらと金色に光ってみえた。五つ六つボートが浮んでいた。池に渡した石橋のてすりには多勢の人々がもたれて水面をながめている。何んだか軽い霧が立ちこめはじめているように思われた。もうだんだんと夕暮になって来るのであろう。ゆるやかにそれが池をつたわってこちらの方へ次第にひろがって来るように感ぜられる。それにつれて二人の心はますます清澄なものにしずまって行くのであった。 「動物園というのがここまで来てしまったね」 「だけど僕、ボートに乗りたいな」彼ははにかみながら云った。 「そうか、じゃ下りて行こう」  そこからは長い段々が続いていた。私と春雄はそれを一つ一つ下りて行った。彼は一段下の方を歩いて、恰も老人でも連れているように用心深そうに私の手を引きずって行くのだった。だが彼は中段まで下りて来ると急に立ち止って、私の体にぴったりよりついて私を見上げながら甘えるようにこう云った。 「先生、僕は先生の名前を知っているよう」 「そうか」私はてれかくしに笑って見せた。「云ってごらん」 「南(なん)先生でしょう?」そう云ったかと思うと彼は私の手に自分の脇にかかえていた上服を投げ附けて、嬉々としながら石段をひとり駆け下りて行くのだった。  私もほっと救われたような軽い足取りで倒れそうになりながら、たたたっと彼の後を追うて下りて行った。   底本:「光の中に 金史良作品集」講談社文芸文庫、講談社    1999(平成11)年4月10日第1刷発行 底本の親本:「金史良全集 」河出書房新社    1973(昭和48)年2月28日 初出:「文芸首都」    1939(昭和14)年10月号 ※底本の注によれば、9文字欠落した「×××××××××血を流しては、」は、初出では「半兵衛に打たれて血を流しては、」となっています。 入力:大野晋 校正:大野裕 2001年1月1日公開 2012年12月7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189    간도 빨찌산의 노래 댓글:  조회:2021  추천:0  2013-03-20
         간도 빨찌산의 노래                                              [일본] 마끼무라 고(槙村 浩)   추억은 나를 고향으로 이끄노라 백두의 령을 넘어 이깔나무 숲을 지나 갈대뿌리 시꺼멓게 얼어붙은 소택지를 지나 저 멀리로 불그스름한 땅우에 거뭇거뭇한 오두막들이 이어지는 곳 고려꿩이 골짜기들에서 우는 함경의 마을이여   눈 녹은 오솔길을 따라서 지게를 지고 가랑잎 모으러 누나와 올랐던 뒷동산의 참나무 숲이여 산지기에게 쫓겨 돌들이 울퉁불퉁한 비탈길 내리닫는 둘의 어깨엔 짐바가 조여들어  얼마나 아팠던가 갈라터진 둘의 발뒤축에 슴배인 피는 찬 바람에 얼어붙는구나.   구름이 남쪽으로 산산이 흩어지고 열풍이 논뚝으로 흐르는데 산에서 산으로 기우제를 지내려 가는 마을 사람들속에 아버지가 멘 가래를 바라보면서 현기증 이는 허기진 배를 달래며 누나와 손잡고 넘어 갔던 그 아득한 고개길이여.   실버들가지가 휘늘어진 서당 뒤에 결핵병을 앓으면서 서울서 돌아온 젊은이의 이야기에 우리들 소년들에게 얼마나 즐거웠던지 젊은이는 열기를 띠자마자 금세 심한 기침을 하면서 암흑한 짜리 로씨야의 이야기를 들려줬어라. 크레물리궁에 피여오르는 폭탄연기와 안개 서린 네바강에 흐르는 피와 눈길 밟으며 씨비리로 정배가는 수인들의 무리와 그리고 시월의 새벽에 터져나온 노도와 같은 민중의 웨침소리에 짜리의 검은 독수리 산산이 부서지고 모스크바 하늘 높이 낫과 망치가 새겨진 붉은 깃발 날리던 그 날을 이야기했더라. 때론 말을 멈추고 기침을 깇는 그의 볼은 삽시에 붉어지고 각혈이 저고리의 소매를 새빨갛게 물들였던 최선생이라 부르는 그 젊은이는 그 우렁찬 함성이 조선을 진감하던 봄날도 보지 못한채 잿빛 하늘에 희망만 던지고 고향의 서당에서 숨졌어라. 하지만 자유의 나라 로씨야의 이야기는 얼마나 큰 동경과 함께, 내 가슴속에 스며들었던가 나는 북녘하늘가에 울린 장엄한 건설의 수레바퀴 소리에 고국 잃은 숨막힌 나의 식민지에서의 삶을 그려봤노라.   오, 짓밟혀 만신창이 된 민족의 자존심과, 침묵속에 끝없는 고뇌를 품은 고국땅이여! 그대의 땅을 두고 기아에 시달리는 그대의 아들딸들 쓰라린 굴욕과 울분을 삼킬 때- 그대의 따스한 품속을 잃고 떠나야만 했던 아들딸들 머리를 떨구고  묵묵히 국경선 넘을 때- 너의 땅 밑바닥에서 2천만의 민중을 뒤흔들 분노의 용암을 생각하라!   오오, 3월1일! 민족의 끓는 피 가슴에서 솟구치는 우리들중의 어느 누구인들 무한한 증오를 한 순간에 내동댕이친 우리들중의 어느 누구인들 1919년3월1일을 잊을 수 있으랴! 그 날 “대한독립만세!”소리 전 국토를 뒤흔들었고 짓밟혀진 일장기 대신 모국의 깃발은 집집의 대문가마다 나붓겼어라.   정녕, 가슴에 솟구치는 뜨거운 눈물로 우린 그날을 떠올리노라. 반항의 우렁찬 함성은 고향의 마을에까지 전해졌고 자유의 노래는 함경의 봉우리 봉우리에 메아리쳤노라. 아아! 령마다 골짜기 마다 넘쳐났던 학대 받은 자들의 무수한 행렬이여! 앞장서 기발 들고 나아가는 젊은이들, 가슴 뻗치고 마음껏 만세 부르는 늙은이를, 눈물속에 옛 노래가락을 뽑아내는  녀성들을, 풀뿌리 씹으며 목청 다해 환호성 올리는 소년들을, 붉은 흙 무너지는 언덕우에서 목이 쉬도록 웨치는 부모형제들의 눈물을 보면서 나도 몰래 흘렸던 그 눈물을, 내 어이 잊을소냐!   오오, 우리들의 자유의 기쁨은 너무나도 짧았어라! 나는 보았노라, 저녘 무렵 나는 지평선 너머로 뽀얀 먼지속에 덮쳐드는 검은 무리를, 악마처럼 불을 던져 마을마다 불사르며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일본기병대를! 그러나 부락마다 집집을 불태워도 언덕마다에서 들리는 자지러진 총소리도, 우리는 두렵지 않았어라! 우리는 함경의 아들딸 착취자에 대한 반항의 력사를 쓰던 이 고향의 이름을 걸고 온 나라에 봉화를 지핀 몇 번의 봉기에 피를 적신 이 고향 땅을 내 걸고 진지를 고스란히 원쑤앞에 넘길소냐!   기발 내던지고 땅에 엎드린자 그 누구냐? 목숨 아껴 원쑤의 발톱아래 고향을 내던진 자 어느 놈이냐? 좋다, 세찬 불길 우리를 휩싸도 좋다, 총검 들고 야수같이 기마대 덮쳐도 떳떳이 머리 쳐든 우리 떳떳이 가슴으로 내밀고 나서서 노도 같은 기세로 령을 뒤흔드는 만세를 부르자! 진지 지켜선 우리의 함성이 울려퍼지는 곳에, “폭압의 검은 구름 햇빛 가리운” 조선의 심장 속에 우리의 고국은 살아 우리 겨레의 핏방울 높뛰거니 우리는 함경의 아들딸!   아, 피의 3월!-그 날을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누님에게 나는 영영 헤여졌어라. 포탄에 흩어진 모래알 속에 헤여진 세 사람의 그림자 하얀 옷을 피로 물들이고 들녘에 쓰러진 마을사람들 속으로 홍송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시체들 사이로 총검과 기병대를 피해가면서 밤낮없이 찾아다녔노라.   서러운 고국이여! 차마 못보겠더라, 악취 풍기는 그대의 땅은! 총검으로 벌집 쑤시듯이 하여 산채로 불에 던져지는 남정네들! 강간끝에 ××도려내고 간 빼운 녀성들! 작은 손에 고국기발 쥔채 쓰러진 아이들! 오, 1만5천의 동지들은 조국해방을 위하여 싸우다 쓰러졌노라. 무덤에도 못 묻히고 관도 없이 갈가마귀들에게 뜯긴 시체 우에, 페허로 된 마을 우에, 망망한 잣나무 밀림 속에 몸 숨긴 화전민의 머리 우에, 북조선 광야의 무성한 들풀의 향기를 가득 싣고 불어라! 봄바람이여!  캄캄한 밤 깨우며 산에는 불길이 훨훨 솟는데 화전민들의 두레마을 상공에서 새들이 어지러이 날은다. 아침이다 나는 동트는 새벽에 원무를 추는듯  북녘의 창공에서 날아예는 두루미를 보았노라. 덩굴나무 숲을 헤가르고 울창한 림해를 넘어 무성한 숲을 날아 국경에로- 불처럼 붉은 구름을 헤치면서 곧추 날아가는 것을! 고국에 돌아가는 그 흰 대렬 속에 우리 열두 소년의 가슴도 높뛰였어라. 열이 올라 각혈하면서 최선생이 들려주었던 자유의 나라에로- 봄바람에 나래 퍼덕이며, 환호성 멀리멀리 울리며, 이제야 즐거이 나그네길에 오른 두루미떼! 나는 뜨거운 눈시울 비비며 손 저어 두루미에게 화답하였노라, 그 13년전의 감격 어제런듯 눈앞에 삼삼이 그려보며.   이른 봄 성에장 흘러 내리는 두만강 건너 국경을 넘어선지 어언 열세해 고난으로 가득찬 투쟁과 시련의 고비고비를 넘으면서 나는 장백의 광야에서 보냈노라. 운명은 나를 로씨야로부터 머나먼 엄혹한 간도땅에 몸을 두게 했거니 그러나 로씨야를 다는 몰라도 나는 살아생전에 그 땅에 가보지 못한 것 후회하지 않노라, 지금 내가 사는 고장이 바로 제2의 로씨야, 민족의 장벽을 허문 쏘베트가 아니냐! 들으라! 손에 총 들고, 깊은 밤 얼음판 건느며 해란의 여울물소리를, 함성소리 밀림에 메아리치는 왕청의 나무 그루마다에 깃든 피어린 고난과 건설의 이야기를!   바람이여, 분노 안고 백두의 눈사태 타고 불어오라! 물결이여, 격분의 물보라 두만강에 일게 하라! 오, 일장기 펄럭이는 강도놈들아! 부모와 누나와 동지들의 피 스민 땅, 고국 땅에서 나를 몰아내고 지금 또 칼 차고 간도에 기어드는 왜놈병사들아! 오, 네놈들 앞에 또 우리가 굴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껄이느냐? 뻔뻔스런 강도들을 대접할 줄 모를 우리들인 줄을 모른단 말이냐?   봄은 소리치면서 여울가에 흐르고 바람 따라 싸리나무 향기 짙게 풍기는데 이슬 젖은 잔디 우에 둘러 앉아 우리는 방금 전해온 희한한 삐라를 읽노라. 그것은 국경 너머 해방 위해 싸우는 동지들의 목소리, 그것은 총 겨누고 태연히 계급의 붉은기 높이 든 프로레타리아의 웨침소리, “재만일본혁명병사위원회”의 격문!   삐라를 주머니에 넣고 우리들은 또다시 총 잡고 몰래 걸어가노라. 눈석이 흘러내리는 계곡의 여울소리 우리의 진군을 축복하고 정든 수림은 반가이 우릴 맞아 주리니! 놈들아! 흔들리는 정권의 그늘밑에서 환성을 올릴 테면 올려보라 너덜거리는 신문의 호외소식으로 거짓 승전보 알릴테면 알려보라 우리는 불사조이다! 우리들은 몇 번인가 실패를 했고 총검과 말발굽은 우리들을 짓밟기도 했어라. 하지만 밀림에 숨은 열사람 백사람이 되여 일떠섰노라! 10리 물러선 우리들은 이번엔 20리를 전진했노라! “살아있는 한 해방 위해 몸바쳐 붉은기 아래에서 기꺼이 죽으리라!” “동방혁명군” 군기에 볼 비비며 한 그 맹세 내 어이 잊을소냐. 우린 간도빨찌산, 목숨바쳐 쏘베트 지키는 무쇠팔뚝, 생사를 붉은기와 함께하는 결사대! 오늘도 장백의 령을 넘고넘어 혁명의 진군가 온 누리에 울리거니 -바다도 우리 전진 막지 못하리, -자, 싸우자! 떨쳐 일어나자! -아, 인터나쑈날은 우리들의 것이여라!...   1932년3월13일 일본 《프로레타리아문학》림시증간
188    일본의 마키무라고에 비추어본 우리의 “저항시” 댓글:  조회:2750  추천:0  2013-03-05
세계문학의 거울에 비춰본 우리 문학(3)   김정웅(연변대학교 일본어학과)   《간도빨치산의 노래》의 내용 및 간도에서의 전파와 수용     1932년3월13일 마키무라가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프롤레타리아문학》 임시증간호에 발표할 무렵 그의 나이는 겨우 19살이었다. 이 시는 전체가 15연 182행으로 구성된 서정서사시이다. 시의 내용에 따라 이 시를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시의 첫 부분은 1연에서 3연까지 도합 19행이다. 이 부분은 시의 공간적 배경과 시적 화자의 가족에 대한 추억의 묘사로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4연에서 6연까지의40행이다. 이 부분은 프롤레타리아의 사상적 축을 이루고 있는 러시아혁명과 조선의 “3・1”만세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7연에서 11에 이르는 71행이다. 이 부분은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사실적으로 고발하고 있으며 또 일제의 이런 만행에 굴하지 말고 떨쳐 일어나 항쟁해야 함을 쓰고 있다. 시의 네 번째 부분은 12연에서 15연까지의 52행이다. 이 부분에서는 간도빨치산이 항일을 하면서 실패와 좌절도 있었지만 불사조마냥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일제를 타도하기 위하여서는 사회주의 운동의 국제적인 공조를 희망하는 내용도 쓰고 있다.  《간도빨치산의 노래》 첫 시작은 빨치산 대원인 서정시의 주인공이 고향-함경도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추억은 나를 고향으로 이끄노라 백두의 령을 넘어 이깔나무 숲을 지나 갈대뿌리 시꺼멓게 얼어붙은 소택지를 지나 저 멀리로 불그스름한 땅우에 거뭇거뭇한 오두막들이 이어지는 곳 고려꿩이 골짜기들에서 우는 함경의 마을이여   눈 녹은 오솔길을 따라서 지게를 지고 가랑잎 모으러 누나와 올랐던 뒷동산의 참나무 숲이여 산지기에게 쫓겨 돌들이 울퉁불퉁한 비탈길 내리닫는 둘의 어깨엔 짐바가 조여들어  얼마나 아팠던가 갈라터진 둘의 발뒤축에 슴배인 피는 찬 바람에 얼어붙는구나.   (思い出はおれを故郷へ運ぶ 白頭の嶺を越え、落葉(から)松の林を越え 蘆の根の黒く凍る沼のかなた 赭ちゃけた地肌に黝(くろ)ずんだ小舎の続くところ 高麗雉子が谷に啼く咸鏡の村よ 雪溶けの小径を踏んで チゲを負ひ、枯葉を集めに 姉と登った裏山の楢林よ 山番に追はれて石ころ道を駆け下りるふたりの肩に 背負(しょい)縄はいかにきびしく食い入ったか ひゞわれたふたりの足に 吹く風はいかに血ごりを凍らせたか)   우의 시문을 보면 마키무라가 함경도에 어떤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어떤 대표적인 동물들이 있는가 그리고 기후 등에 대해서도 아주 깊은 료해를 하고 이 시를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미키무라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인 고치시는 일본의 시코쿠도(四国島) 동해안의 태평양에 면하여 있는 해변도시로서 연평균기온이 17℃이며 제일 추운 1월의 최저기온일지라도 영하까지는 내려가지 않는 곳이다. 중국의 동북의 열악한 겨울을 경험하지 못한 19살 일본청년이 어떻게 마치 눈으로 보는 듯이 조선의 함경도와 중국 동북의 상황을 그렸을까? 그리고 간도빨치산에 대한 정보는 어떤 도경으로 입수했을가, 이는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하나의 의혹으로 남을 것이다.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항일의 봉화가 훨훨 타오르던 1932년에 정의감 있는 일본 프롤레타리아시인에 의하여 씌어진 서정서사시이다. 9.18사변 이후 열화처럼 일어나는 항일무장투쟁은 일제의 가슴을 서늘케 하였는바 그들의 어용신문들은 날마다 항일빨치산을 모독하는 각종 신문보도를 냈다. 이를테면 1930일6월2일 고치에서 출판되는 《도요신문(土陽新聞) 》은 “간도 불법 조선인 봉기, 학교를 불태우고 전선을 절단, 폭탄을 각 곳에 던져 방화, 그들의 전시 초토화계획 폭로” 등의 제목으로 간도지역에서 일어난 인민들의 항일무장투쟁상황을 왜곡하는 소식들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처럼 간도지역의 빨치산들을 “강도”,”살인범”이라 모독하고 있지만, 마키무라를 비롯한 일본의 진보적 청년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이런 왜곡된 보도를 통하여 간도빨치산의 영웅적 투쟁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932년1월 일본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입한 열혈청년 마키무라는 간도빨치산투쟁의 진실한 상황을 일본독자들에게 알려주며 또 간도빨치산들에게 보내는 자기의 경의의 뜻을 보여주기 위하여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쓰기로 작정하였다.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제일 큰 특성은 문학의 사회성과 사실주의 성격에 있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인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는 언제나 커다란 사회적 문제를 작품화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대표작인 〈게잡이 공선(蟹工船) 〉은 치치부마루(秩父丸)조난사건과 하쿠아이마루(博愛丸)학대사건 같은 실제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하여 3년간이나 북빙양어업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고 한다.   일본의 프로문학계에는 “북쪽에는 고바야시 다키지가 있고 남쪽에는 마키무라 고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마키무라 역시 “9・18”사변 이후 일본의 파시즘의 대두가 제일 큰 사회 및 국제적 문제로 되고 있을 때 〈살아있는 총칼〉과 〈간도빨치산의 노래〉 라는 반전시를 통하여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작품화하였다. 마키무라는 이 시를 쓰기 위하여서는 우선 간도빨치산투쟁의 진실한 정황과 그곳의 지리환경들을 료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매일 같이 부근 도서관에 다니면서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였으며 당시 고치에 체류 중인 조선인 유학생과 조선인 로동자들을 방문하여 조선사람들의 생활습관들을 료해하였다고 한다.   마키무라의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1932년2월 《대중의 벗(大衆の友) 》의 창간호에 발표된 〈살아있는 총갈〉에 이어서 동년 4월 《프롤레타리아문학》 임시증간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간도빨치산의 노래〉가 발표된  그 달의 4월21일 마키무라는 고치시에서 검거되어 경찰에 체포된다. 일본에 있어서의 파시즘의 확대와 더불어 일본의 대외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간도빨치산의 노래〉에 대한 출판금지령이 내려져 이 시가 “일자일구(一字一句)”까지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번 검거에서 마키무라는 실형판결을 받고 투옥되어 3년 후인 1935년6월6일에 고치형무소를 출옥하게 된다. 출옥 후 마키무라는 자신의 시집을 내기 위하여 원고를 가지고 1935년12월에 동경으로 간다. 그는 동경에서 《문학안내(文学案内) 》를 경영하고 있는 다카시 산지(貴司山治)를 찾아가 출판을 부탁하지만, 치안유지법에 의하여 작가동맹도 해체되고 전향이 유행되며 모든 것이 파시즘에 의하여 탄압되는 상황 속에서 반전과 혁명을 소리높이 찬양하는 프로문학가의 시집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은 일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세월이 되어버린 때였다. 하지만 다카시는 마키무라의 시집원고를 받아서 단지에 넣은 다음 자택의 뜰 안에 깊숙이 감추어두고 출판될 수 있을 그날을 기다렸다.   마키무라의 시를 일본에서 다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1945년8월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하여서부터 얼마간 지나서부터였다. 전시하 천황제국가권력에 의하여 압제되어 있던 문화와 문학에 자유가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조류 속에서 발행금지되었던 작품을 끝내 공공연히 읽을 수 있게 되였다. 이 무렵 많은 시집이 나오게 되었다. 1946년8월20일 고치에서 소책자 《본모습(素貌) 》이 창간되는데 여기에 마키무라의 〈간도빨치산의 노래〉가 재록된다. 모리 다케오(毛利孟夫)가 소지하고 있던 《프롤레타리아문학》(1932년4월 림시증간호 )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1964년10월 다카시 산지(貴司山治)의 피타는 노력과 신일본출판사(新日本出版社)에 의하여 발행된 시집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마키무라가 자신의 시집 발행계획을 세워서부터 30년 가까이 지나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시집이었다. 그 후 마키무라의 시집은 타이틀을 바꾸어가며 여러 출판사에 의하여 다수 출판된다.   프롤레타리아문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혁명적 고양을 촉진시킬 수 있는 문학을 어떻게 대중들에게 보급하고 이해시킬 것인가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간도빨치산의 노래》가 전쟁 당시 간도땅에 전해졌는가의 여부는 당시 목숨을 내걸고 이 시를 썼고 또 지금은 저 하늘나라에서 조용히 잠들고 있을 마키쿠라에게도 자못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마키무라가 쓴 《간도빨치산의 노래》의 연변지역에 있어서의 발자취를 끈질기게 쫓고 있는 사람으로 한국 서울에 있는 도다 이쿠코(戸田郁子)라는 일본인 여성작가를 들 수 있다. 그는 연변에서 5년간 체류한 경험도 있으며 연변에서의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조선족으로 살아가다(中国朝鮮族を生きる) 》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 속에 “고치에서 간도를 노래한 시인(高知から間島を詠った詩人)”이란 타이틀로 전시《간도빨치산의 노래》가 간도지역에 전하여졌다는 내용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연변대학교 력사학부에서 오래 교수로 임직했던박창욱(1927~2011)교수는 소학시절 력사선생이 수업시간에 마키무라의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조선어로  읊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박창욱선생이 소학교 4학년 첫 학기 때의 수업시간이었다고 한다. 박선생의 나이로 추정해 볼 때 아마 1938년 좌우일 것이다.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시인 마키무라가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발표한 것이 1932년4월에 발간된 《프롤레타리아문학》 전시증간호이다. 그리고 이 잡지는 발표되자마자 발매금지처분을 받았다. 이런 시가 어떻게 간도 시골의 조선인소학교에서 읽혀졌을까?! 그때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간도빨치산의 노래』를 읊어준 선생은 이선생이란 역사교원으로서 일본유학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소학교는 연길현 조양천에 있는 교동소학교(4년제)이다. 이 소학교는 조선총독부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교장은 일본인이고 수업은 조선어로 하였다고 한다.   1938년이나 1939년에 간도의 시골소학교에서 《간도빨치산의 노래》』의 번역문이 읽혀지고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일본어 원문이 간도에 전하여진 것은 그보다 이른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관할 하의 소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일본정부에 의하여 발매금지를 당한 반전시를 낭송하여 준 이선생은 애국애족적인 사람일 것이다. 당시 이선생이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학생들 앞에서 읊은 다음 “일본제국주의와 일본인민을 나누어 생각합시다”, “일본에도 이 전쟁을 반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 이선생의 이러한 가르침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각인되어 있다고 박창욱교수는 술회한 적있다.   조선족의 력사대가로서 알려져 있는 박창욱교수라고 하지만 소학교 4학년생인 당시에는 “빨치산”이라든가 “유격대”라든가 하는 것은 처음 듣는 단어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를 읽어준 이 선생으로부터 “우리의 곁에는 독립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적이 놀랐다고 한다. 이 선생은 정확히 4개월 정도 그 학교에 있었고 그 후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목숨을 내걸고 쓴 일본프로문학가의 반전시 《간도빨치산의 노래》가 전쟁 당시 간도에 전해져 읽혀졌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독립을 기원하는 간도 조선인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를 통하여 선량한 일본인과 침략을 일삼는 일본제국주의를 구분하여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30년대에 나온 일본무산계급시가문학으로서는 상당한 예술수준에 도달한 작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술한 서사적 성분이 있는가 하면 시인자신의 혁명격정을 토로하는 서정이 있으며 고향산천과 백두산밀림에 대한 절절한 서경묘사가 있는가 하면 일본침략자의 야수적 만행에 대한 분노의 성토도 있다. 시인 마키무라 고는 비록 이 시를 중국 “간도”땅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 고치에서 쓰고 있지만 조선북부 함경지방과 연변산천에 대산 서경묘사는 마치 그가 이곳에 와 실제 생활체험을 겪은 일이 있지 않았는가 하고 의심할 수 있을 정도로 진실하다.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50여년 전에 불과 20세밖에 되지 않는 한 일본의 진보적인 청년에 의해 씌어진 것이지만 우리의 선렬들이 민족의 존엄과 생존을 위하여 싸운 빛나는 과거를 다시금 생생하게 우리 앞에 펼쳐주고 있다.     보다시피 정판룡 선생은 마키무라 고의 《간도빨치산의 노래》에 대하여 절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문학 작품으로서의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파시즘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으며 식민지인들의 반일운동에 대한 열정적인 성원의 마음이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서의 시인의 혁명적 사상으로 충만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사회성만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예술성도 뛰어나다. 하기에 마키무라 의 26년이란 짧은 생애에 남긴 26편의 시 가운데서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그의 대표작으로 되고 있다.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특히는 1985년 정판룡선생이 〈마키무라 고와 그의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라는 문학평론을 발표 후, 중국과 주변의 환경은 크게 변한다. 1991년에는 세계의 첫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붕괴됨과 아울러 동서냉전이 완전히 해소되며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 간의 대립은 이데올로기가 대립의 초점이던 것이 점차 문화적 갈등이 대립이 초점으로 되여 가고 있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화가 진척됨에 따라 지역과 지역간, 국가와 국가 간의 교류가 빈번해지고 더구나 정보산업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만 있으면 손쉽게 지구의 반대편의 사람들과 화상을 보면서 채팅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여 버렸고 외국의 영화와 소설들을 볼 수가 있다.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정보량이 방대하게 불어남에 따라 사람들은 부단히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 머리 속에서 낡고 오래된 정보는 이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없어진다. 냉전체제의 해소 중국의 시장경제와 문호개방을 계기로 대량의 외국의 것들이 중국에 들어와서 중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가치관념을 형성시키고 부단히 새로운 흥취가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80여년 전의 프롤레타리아문학은 잊혀진 한 구석으로 되어버렸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노르웨이의 삼림(ノルウェイの森)》이란 연애소설은 흥미롭게 보는 사람이 있어도 프로작가들의 작품은 그다지 읽는 사람이 없는 것이 중국 그리고 연변의 젊은 독자층의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일본의 상황은 중국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일본경제의 불황 속에서 일본에서는 전쟁전의 프롤레타리아문학 붐이 일고 있어, 일본프롤레타리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의 소설 〈게 잡이 공선(蟹工船)〉가 2008년 1년간 사이에만 각 출판사의 책과 만화 등으로 루계 80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베스터셀러로 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련애소설인 《노르웨이의 삼림》은 흥미 진지하게 보는 사람이 있어도 일본의 프롤레타리아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눈길을 돌리는 젊은 세대들은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마키무라의 고향인 고치현 고치시에는 평화자료관・쿠사노야(平和資料館・草の家)라는 것이 있으며 그 산하에 마키무라 고협회라는 것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마키무라의 시 낭송대회라든가 연구회를 연다고 한다. 올해 6월2일 마카무라 고협회가 주최하는 “마키무라 고의 탄생 100주년 기념 이벤트”가 있었는데 도다이쿠코(戸田郁子)가 〈마키무라 고가 그린 간도, 고치와 이어지는 연변(槙村浩が描いた間島、高知とつながる延辺) 〉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200명 좌우의 청중들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이벤트가 끝났다고 한다.   올해 9월1일에는 마키무라 고협회 회원 40여명이 연길에 와서 연변대학 외국어학원등과 교류를 하고 또 《간도빨치산의 노래》의 배경으로 되는 연변지역에 대한 관광을 한다고 한다. 중국 10대 명산 중의 하나인 백두산, 그리고 해란강의 여울소리와 왕청의 빨치산 근거지, 시속의 주인공의 고향인 함경도를 강 건너에서 바라다볼 수 있는 도문강, 이 모든 것들이 9월 달에 오는 마키무라 고협회 회원들에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연변의 조선족들은 항일전쟁시기 민족의 해방과 국가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간도빨치산에 경의와 성원을 보내준 일본의 프로시인 마키무라 고를 영원히 존경할 것이며 또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이러한 시인을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추모하고 그리는 고치시의 마키무라 고협회의 회원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연변과 고치현, 연길과 고치시, 원래 아무런 인연이 없을 정도로 바다를 사이 두고 멀리 떨어진 일본과 중국의 두 편벽한 지역이 80년 전의 일본프롤레타리아 시인이 목숨을 내걸고 쓴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에 의하여 아름다운 연줄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인연을 귀중히 여기면서 앞으로 고치현과 연변의 더 많은 우호 교류와 왕래가 이어질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2.《간도빨치산의 노래》에 비추어본 우리의 프로시나 저항시     마키무라 고의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한 간도빨치산 대원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30년대 일제와 싸운 우리 연변조선족인민의 영웅적군상을 창조하였다. 물론 서정적 주인공은 함경도 출신 또는 조선반도 출신의 사람이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수도 있다. 연변은 조선족인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며 반수 이상이 조선북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당시 간도의 항일운동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망라된다. 말하자면 북측 출신의 빨치산성원 뿐만 아니라 남측 계통의 사람들도 있었고 양정우를 사령으로 하는 중국공산당계통의 항일유격대도 있었다. 하지만 마키무라 고가 쓰고 있는 빨치산유격대가 어느 유격대인가 하는 것은 구태어 제기할 필요가 없다. 시인 자신도 이 시에서 간도빨치산 전사들은 “동방혁명군” 군기에 볼을 비비며 선서를 하였다고 쓰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이 시에서 말하는 “간도빨치산”은 국가와  민족의 계선을 초월한 오직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를 반대하여 싸우는 항일무장대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마키무라 고의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무산계급국제주의와 혁명정신으로 충만되고 있다.   마키무라 고의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갈망하는 일본의 식민지인에게 있어서는 용기와 희망, 그리고 성원을 얻을 수 있는 우렁찬 노래였고 비정의적인 대동아 전쟁을 통하여 주변국가에 아픔과 고통을 안겨준 일제에게 있어서는 한 자루의 비수 같은 것이었다. 하기에 일본당국은 1932년부터 시작하여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강행하였고 마키무라 고는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투옥되며 옥중고문으로 당하여 결국 26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조선반도 남북의 문학사와 중국조선문학사를 통괄하여 보아도 마키무라 고의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는 비교적 큰 편폭으로 연변지역의 조선족인민들의 항일투쟁을 전폭적으로 지지, 성원하고 긍정적인 반일혁명투사의 시적형상을 부각한 작품은 없다. 이를테면 조선반도 이북에서는 일제가 패망한 뒤인 광복 이후에야 비로소 조기천의 《백두산》같은 서사시가 나타났다. 이런 각도에서 볼때 마키무라 고의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은 동아세아 무산계급문학에서 반드시 대서특필하여야 할 작품임이 틀림없다.   이상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서정서사시《간도빨치산의 노래》를 비롯한 마키무라 고의 일련의 반전시들은 아주 공개적으로, 또 아주 직설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면서 그에 항거해 나서 싸우는 간도 빨치산을 정면적 서정서사적인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부각하였다. 공산주의사상중의 무산계급국제주의에 철저히 립각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민족과 국가를 배반하고 목숨을 걸고 식민지인민들의 반일투쟁을 구가하고 일제의 대외침략전쟁을 비판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키무라 고의《간도빨치산의 노래》등 일련의 시작들에서 보여준 저항정신은 아주 대단하다고 평가해야 할것이다. 마키무라 고의《간도빨치산의 노래》는 우리 중국조선족문학 나아가서는 전반 조선반도 식민지시대 문학에서의 저항시를 비추어 보는 하나의 선명한 거울로 될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저항시 전반이 아니라 해방전 중국조선족문학의 가장 중요한 저항시인이라고 할수 있는 윤동주를 마키무라 고라는 이 거울에 비추어 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간도지방에서 1930년대 초반부터 항일대오내서 불려졌던 민중들의 〈적기가〉,〈반일전가〉등 수많은 항일가요나〈혈해지창〉같은 항일연극 같은데서는 반일정서, 사상, 주장 등이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표출되였다. 그러나 일제의 엄혹한 언론, 문자검열 제도하에서 공개적인 언론매체를 통한 반일정서, 사상, 주장 등이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표출한 가능성이 없는 상황하에서 시를 포함한 거의 절대 부분의 메타포나 상징이나 해 암시적으로 표현되었을 따름이였다. 이를테면 한룡운의 〈님의 침묵〉(1926)같은 데서는 그의 조국애와 불굴의 반일독립정신이 불교적인 명상의 상징적수법을 통해 암묵적으로 표현되였다. 그리고 저항시인이라고 평가를 받 받기도 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중의 많은 작품도 많은 경우에 식민지시대의 한 지식청년의 고독하고 우울한 정서를 암묵적으로 표현하였을 따름이다. 마키무라 고의《간도빨치산의 노래》에서 표현된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정항정신과는 궤를 달리한다. 윤동주의 전반 시에서는 저항이라기보다는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력사감각을 지닌 독특한 자아성찰의 시정신을 보여주었다.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이 명렬하는 바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보여주려고 하였다고 평가를 할수 있다. 이는 마키무라 고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윤동주의 시집은《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중의 많은 시작들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잠재창작의 형태를 취한 작품이다. 말하자면 공개출판을 전제로 하지 않은 시작들이다. 이런 시작들에도 윤동주는 반일의 정서, 사상, 주장 같은 것을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시대라는 특정한 상황속에서의 윤동주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인간의 항구적인 문제들에 관련 지음으로써 인간들의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건드려 놓았다. 이런 의미에서 윤동주의 시들은 마키무라 고의《간도빨치산의 노래》에서와 같은 치렬한 저항정신에는 닿지 못했으나 미적인 완성도를 보다 높혔다는 점에서 역시 높이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3.일본공산당원 이타 스케오를 통해 본 공산주의의 매력     국제주의 전사이며 일본공산당원 마키무라 고가 《간도 빨치산의 노래》같은 문학작품을 통해 필로 일제와 싸우고 간도의 항일무장투쟁을 지지, 성원했다면 다른 한 일본의 국제주의전사이며 일본공산당원인 이타 스케오(伊田助男)는 전쟁터에서 직접 총탄으로  싸우는 간도빨치산을 돕다가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마키무라 고우가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발표한지 1년 뒤인 1933년 3월, 일본침략군은 대량의 병력을 동원하여 소왕청 반일유격근거지를 미친듯이 진공하였다. 왕청유격대와 항일구국군은 서로 배합하여 첨자산과 마반산 일대에서 일본을 매복습격하여 소왕청항일근거지를 건립한 뒤 첫 승전고를 울렸다. 이 전투에서 왕청의 항일군민들은 국제주의전사이며 일본공산당원인 이타 스케오(伊田助男)의 지원을 받았다. 항일유격대 전사들이 전장터에서 전리품들을 수습하다가 일본군대의 군용차 한대를 발견하였는데, 이 차에서 멀지않은 강변에서 일본 병사의 시체와 유서를 찾아냈다. 이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있었다.   친애하는 중국 유격대 동지들:   나는 당신이 산골짜기에 뿌린 삐라와 선전품들을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당신들은 공산당의 유격대임을 알게 되였습니다. 당신들은 애국주의자들이며 동시에 국제주의전사들입니다. 나는 몹시 당신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당신들과 손잡고 공동의 적을 쳐부수고 십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파쇼놈들에게 포위되였습니다. 더는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나는 자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내가 운송해온 10만발의 탄알을 귀군에 넘겨줍니다. 이 탄약들은 북쪽의 송림속에 숨겨 놓았습니다. 이 탄알을 가지고 파쑈놈들을 조준하여 사격하십시오. 나의 몸은 비록 죽지만 혁명정신은 영원히 살아있을 겁니다. 신성한 공산주의사업이 하루빨리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관동군 간도 일본 차중대               일본공산당원 이타스케오                1933년 3월 30일      1933년 4월, 이 국제주의전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소왕청 항일근거지에서는 이 마촌의 학교를 “이전(伊田)학교”라고 이름을 고쳤다.국제주의전사이며 일본공산당원인 이타 스케오가 희생된 유적지는 지금 왕청현 동광진 동립촌 동남쪽으로 약 4리 떨어진 동림하 남안의 평지이다. 그리고 “이전(伊田)학교” 유적징의 지리적위치는 지금의 왕청현 동광진 동림촌 동남쪽으로부터 약 4리 떨어진 판석산 동쪽의 밭 복판에 있다. 1994년 6월 14일 왕청현 동림소학교를 다시 “이전소학교”라고 개칭하게 되였다. 2004년 저수지를 수축하게 되면서 이 “이전소학교”가 왕청현 동광진중심소학교에 편입되여 들어가게 되면서 동광진중심소학교는 “이전소학교”라고 개칭하게 되였다.   4. 나가는 말          마키무라 고와 이타 스케오 같이 자신이 속해 있는 민족과 국가를 배반하고 목숨을 걸고 식민지인민들의 반일투쟁을 구가하고 일제의 대외침략전쟁을 비판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인들 속에도 마키무라 고와 이타 스케오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하여 할 것이며 미상불 앞으로 이들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난세기 30년대 마키무라 고와 이타 스케오 같은 일본공산당원들의 고매한 국제주의 정신을 리상과 신념이라는 이 령혼의 혼불이 경제와 돈이라는 이 강풍 앞에서 꺼질듯 말듯하는 위태로은 지경에 놓여있는 오늘날의 현실속에서 한번 쯤은 뒤돌아 보고 한번 쯤은 곱씹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2013년 1월 10일 연길에서 김정웅(연변대학교 일본어학과)      
187    일본의 마키무라 고와 그의《간도빨치산의 노래》 댓글:  조회:5217  추천:0  2013-03-05
세계문학의 거울에 비춰본 우리 문학(2)                                                                                                                                                             김정웅(연변대학교 일본어학과) 들어가면서   올해는 중일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저명한 프롤레타리아 시인 마키무라 고(槙村 浩, 1912.6.1)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마키무라는 일본의 고치현(高知县) 고치시(高知市) 출신으로서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 시인으로서 활발한 반전운동을 벌림과 동시에 많지는 않지만 주옥 같은 반전시들을 남긴 프롤레타리아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930년대에 중국의 간도(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조선인 간도 빨치산부대를 격조 높이 노래한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間島パルチザンの歌) 》가 있다. 《간도빨치산의 노래(間島パルチザンの歌) 》는 마키무라의 대표작으로서 전체가 15연 182행으로 구성된 서정서사시이며 1932년4월 일본프롤레타리아 작가동맹기관지인 《프롤레타리아문학》(림시증간)에 발표된 작품이다. 마키무라는 26세의 짧은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중국광산당이 령도하였던 간도빨치산을 공개적으로 지지, 성원하면서 일본군국주의 대외침략전쟁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비판한 프롤레타리아작가이다. 중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지 이미 40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최근의 중일관계를 볼 때 한마디로 ‘정냉경열(政冷经热)’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중일국교정상화 40주년이란 뜻 깊은 한 해를 맞이하는 이때에 중일간에는 축복의 무드는 찾아 볼수가 없고 조어도령토분쟁을 둘러싼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기에 전쟁이란 비상사태 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본파쑈의 대동아전쟁을 규탄하고 침략을 받고 있는 나라들에 따뜻한 성원을 보낸 일본의 프롤레타리아시인에 관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자못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 고치시의 지역신문인 《고치신문》과 일본 프롤레타리아 관련 신문인 《아카하다(赤旗)》에는 마키무라의 《간도빨치산의 노래》와 더불어 일본국민들에게는 생소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연길시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올해 9월1~7일에는 고치시의 마카무라를 그리는 협회회원 40여명이 《간도빨치산의 노래》의 무대로 설정된 연변지역을 답사하고 연변대학의 사생들과 더불어 따뜻한 지역 간의 교류를 하였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중국의 변방지역인 연변과 일본의 고치현이 일본의 한 프롤레타리아 시인이 80년 전에 쓴 시로 하여 한 가닥의 뉴대로 이어지고 있다.   마키무라고의 생애   마키무라 고(槙村浩)는 필명으로서 본명은 요시다 도요미치(吉田丰道)이다. 그는 1912년6월1일 일본의 고치현 고치시(高知县高知市)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간호부인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랐다. 때문에 마키무라의 성장에 있어서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컸을 것이다. 마키무라의 어머니 우시에(丑惠)의 아버지인 노무라 다바네(野村束稻)는 일본에서도 꽤 유명한 자유민권운동가였다. 마키무라는 이러한 자유민권운동가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란 어머니로부터 자유민권사상, 즉 자유의 정신을 습득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마키무라가 처음으로 소학교에 입학한 곳은 고치시(高知市) 제2소학교였다. 부친의 사망으로 하여 규슈(九州)에 있는 숙부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지만, 거기도 있기가 불편했던지 1920년에 고치시에  돌아와 제6소학교에 들어간다. 제6소학교에서 마키무라는 신동으로 불린다. 그는 두 살 때부터 글을 읽었고 세 살 때는 병원에서 의학잡지를 읽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는 기억력이 비상하여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하는데 그 뒤 그가 한 일들을 돌이켜보면 천성적으로 비상한 총기와 재능을 가졌던 것 같다. 소학교 4학년 때부터 그는 당시 일본의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을 두루 읽었으며 일부 서양의 고전문학도 읽기 시작했다. 그가 소학교를 다닐 때 쓴 동요, 동화들에서 그런 흔적을 다분히 볼 수 있다. 마카무라는 소학교에서 4년간 공부를 한 다음 두 학년을 뛰어넘어 도사중학교(土佐中学校)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신동인 마키무라의 도사중학교에서의 학습성적은 그다지 우수하지 못하였다. 그는 학교생활을 전폐하고 도서관에만 들어박혀서 중국 당송시기의 시들을 탐독하였으며 마르크스주의 고전들을 일기 시작하였다. 마키무라 고의 사상적 변화는 도사중학교 때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후 마키무라 고는 도사중학교를 그만두고 같은 시에 있는 현립난카이중학교(南海中学校) 3학년에 편입한다. 하지만 이 난카이중학교는 군인양성을 위한 학교였기에 자유민권사상에 물 젖어 있은 마키무라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는 이때부터 철저하게 천황제도를 반대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 난카이중학교 정문에는 천황초상이 걸려 있었으며 등교하는 학생들은 반드시 천황초상화 앞에서 경례를 해야만 교문을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키무라는 그것이 싫어서 학교 뒤문으로 살그머니 학교를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천황이리고 부르지 않고 “히로히토”라는 천황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으로 천황에 대한 불경스러운 마음을 드러내면서 철저하게 일본의 천황제도에 저항하였다. 당시 일본의 남자중학교에서는 현역군관들이 와서 학생들의 군사훈련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마키무라는 다른 일부 혁명적인 학생들과 함께 이를 반대하다가 퇴학처분을 받았다. 그는 일본중학교들에서 강행하는 파쑈교육에 대하여 염오를 느끼고 퇴학당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곡한 권고와 그의 재간을 아끼는 선생들의 알선으로 고향을 떠나 오카야마시(岡山市)의 사립간사이(関西)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1931년3월 마키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오카야마중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는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인민혁명투쟁의 물결은 고치현(高知県)에까지 미치게 되였다. 1927년부터 고치현에서는 선후로 일본공상당과 일본공산주의청년회, 노동조합 등의 고치지방위원회가 성립되었으며 1931년에는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동맹, 작가동맹의 고치지방조직까지 나오게 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돌아온 마키무라는 글을 쓰거나 번역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엄중한 경제위기에 처한 일본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1931년7월 그는 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에 가입하여 이 동맹의 고치지부 성립준비사업에 적극 참가하였다. 그리고 그는 작가동맹에 가입한 때로부터 자기의 필명을 마키무라 고라고 하였으며 1932년 2월 《대중의 벗(大衆の友)》잡지의 창간호에 마키무라 고라는 이름으로 〈숨 쉬는 총칼—만주주둔군 병사들에게(生ける銃架-満州駐屯軍兵士達へ) 〉란 서정서사시를 발표한다. 이 무렵 마키무라는 문학활동 뿐만 아니라 지하당이 영도하는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의 활동에도 참가하였다. 그리하여 1931년12월 하순에는 일본공산주의청년동맹의 지도성원의 한 사람으로 되었으며 고치현지방위원회의 선전교육 면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마키무라는 소학교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문학간행물에 정식으로 실린 것은 1932년2월에 쓴 〈숨 쉬는 총칼-만주주둔군 병사들에게〉이다. 이 시는 일제가 이른바 “9.18”사변이라는 명의 하에 중국에 대한 공공연한 침략전쟁을 발동하자 불과 몇 달 사이에 중국의 혁명적 노동자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을 반대하여 싸운 영웅적인 모습을 그리면서 일본군병사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숨 쉬는 총칼”로 될 것이 아니라 총부리를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돌려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그 이듬해인 1932년 초 원래 고치현에 주둔했던 일본군 보병 제44연대 병사들에게 반전사상을 선전할 목적으로 많은 선전삐라를 찍어 나누어주었다. 한번은 마키무라를 비롯한   공청고치지구위원회 성원들이 경계가 삼엄한 고치시 아사쿠라(朝倉) 보병 44연대 숙사내에 들어가 상해출병을 반대하는 “병사들이여 적이 누군가를 똑바로 보라!( 兵士よ敵をまちがえるな)”라는 선전삐라를 뿌렸다고 하는데 이로 하여 그들은 상급 당조직의 표창을 받았다. 이 삐라는 마키무라가 집필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이런 노력으로 하여 보병 제44연대의 일부 일본병사들은 상해전선에서 중국의 제19로군 애국전사들과 싸울 것을 거절하였다고 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마키무라는 즉시 〈출정(出征) 〉, 〈1932.2.26—백색테러에  넘어진 44연대 혁명적 병사들에게〉 라는 두 수의 시를 써서 중국과 싸울 것을 거절한 일부 일본병사들의 반항투쟁을 찬양하였다. 1932년3월13일 마키무라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열화처럼 타오르는 항일유격전의 소식을 듣고 그것을 찬양하는 서정서사시 〈간도빨치산의 노래〉를 지었다. 이 시에는 마키무라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특징의 하나인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사상이 충분히 표현되었으며 또 그는 이 시로 하여 일본의 우수한 혁명적 시인이라는 영예를 지니게 되었다. 1932년4월초 마키무라는 일본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마키무라는 당에 가입한 후에도 여전히 공청조직과 작가동맹에서 일하였다. 1932년4월21일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좌익문화인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일본군경들은 전국적인 범위에서 이른바 제3차 총검거를 감행하였다. 이로 하여 고치현의 당원, 공청원, 협동조합 성원, 프로문화동맹 성원들 대부분이 이날 저녁에 일본군경에게 체포되었다. 마키무라도 그 이튿날 새벽 고치시 자택에서 체포되어 다카오카쵸(高丘町)경찰서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게 되었다. 마키무라는 일본군경의 혹독한 고문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혁명가로서의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함께 체포된 적지 않은 “동지”들은 일본군경의 고문에 못이겨 이른바 사상전향성명에 서명하였지만 마키무라를 비롯한 몇몇 진정한 공산당원들은 죽을지언정 자기의 주의를 바꿀 수 없다고 거듭 언명하였다. 혹독한 고문으로 하여 한때는 식사도 입으로 하지 못하였으며 후에는 정신분열증까지 걸렸다. 그러나 그의 혁명정신은 추호의 동요도 없었다. 1933년4월28일 마키무라는  비법적인 좌익문화조직의 책임자이며 글로 “일본제국을 모독한 죄”를 저질렀다고 하여 3년 유기도형을 받게 된다. 마키무라는 옥중에서도 시 창작에 정진하였다. 사상전향성명을 접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여 그에게만은 종이나 연필 같은 것을 일체 주지 않았다. 그는 머리 속에 시를 구상한 뒤 그것을 몇 번이고 읽어 외우군 하였다. 그리하여 1935년6월 출옥한 뒤에 그것을 다시 종이에 올려 세상에 내놓았다. 옥중에서 쓴 시에는 헌시(獻詩) 〈청춘(青春) 〉, 따따르해협 이남인 북해도감옥에 갇히운 동지를 그리면서 쓴 시 〈따따르해협(ダッタン海峡) 〉, 옥중에서 국외 노동계급의 혁명활동을 성원한 시 〈옥중에서 독일동지를 생각하여 부는 노래(獄内にてドイツの同志を思う歌) 〉,〈중국의 시인들에게(異郷なる中国の詩人たちに)〉, 〈옥중에서 꼼뮨전사들을 생각하노라(獄中のコンミューンの戦士の詩を憶つて)〉 등이다. 제목 자체가 분명히 보여주듯이 옥중에서 쓴 그의 시들은 모두 프롤레탈리아 국제주의, 동지애, 적의 그 어떤 강압적인 수단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절개를 지키려는 그의 굳센 형명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옥중에서 소위 정치범들을 감화시키기 위하여 감방마다에 배치해놓은 불교경전과 유교경전들을 모조리 읽었다고 한다. 출옥 후 그는 이것을 토대로 하여 《아세아적생산에 기초한 정치, 경제, 문화비판》이라는 저작 한 권을 써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불교경전과 중국고전의 인용문들은 모두 감옥 안에서 기억한 것을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1935년6월 감옥에서 나온 마키무라는 주로 집에서 요양하면서 주로 시를 쓰거나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 당시 고치현에서는 진압당한 혁명조직을 재건하는 사업이 맹렬히 진행되고 있었으며 또 새로운 인민전선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은 때였다. 그러나 동지들은 마카무라의 건강을 고려하여 위험한 지하활동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1936년12월5일 마키무라는 “인민전선사건” 때문에 검거되어 또 다시 투옥되지만, 이듬해 1월16일 중병으로 하여 석방되어 고치시내에 있는 도사뇌병원(土佐脳病院)에 입원한다. 하지만 마키무라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1938년9월3일 일본의 불요불굴의 혁명가이며 시인이었던 미키무라고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도사뇌병원에서 자기의 전투적인 일생을 끝마쳤다.   마키무라 고우의 반전시 산생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콘텍스트   일본에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문학이란 1920~30년대에 관동대지진과 경제공황 등 사회적 불안을 배경으로 나타나 사회혁명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추구했던 일련의 문학운동을 말한다. 1923년9월1일 일본시간으로 11시58분에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사가미(相模)만의 서북쪽에서 80㎞ 떨어진 해역을 진원으로 하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였다. 매그니튜드(magnitude) 7.9인 이 대지진은 가나가와현을 중심으로 치바현(千葉県)・이바라기현(茨城県)으로부터 시작하여 시즈오카현(静岡県)에 이르는 내륙과 연안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이는 일본의 자연재해역사상 최대급의 피해였다. 이 대지진으로 하여 19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고 10만5천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10만9천 세대의 가옥이 파손되고 21만2000세대의 가옥이 불에 탔다. 특히 일본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동경의 피해는 더욱 막심했다. 동경시내의 건축물 피해 상황을 본다면, 동경의 아사쿠사(浅草)에 있는 12층짜리 탑인 능운각(凌雲鶴)이 무너지고 건설 중에 있던 마루노우치(丸の内)의 내외빌딩이 붕괴되어 노동자 300여명이 깔려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또 대장성, 문부성, 내무성, 외무성, 경시청 등 관공청사의 건물과 제국극장, 미츠코시니혼바시본점(三越日本橋本店) 등 많은 문화와 상업시설들이 불에 탔다. 그 외에도 동경제국대학 도서관과 마츠네야분코(松廼舎文庫)와 같은 장서시설이 소각되어 많은 귀중한 서적들이 소실되었다. 자연재해로 인한 일본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의 불안정 속에서 이러한 사회적 불안정 요소들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재일조선인들에게 없는 죄명을 들씌워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과 불화들을 다른데 전가시킬 필요가 생겨났다. 따라 일본사회에서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재일조선인들이 “폭도”로 되여 “우물에 독약을 넣고 또 불을 지르고 돌아다니고 있다”는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매스컴도 여기에 동참하여 9월2일부터 9월6일에 이르는 사이에 오사카 《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 》, 《동경일일신문(東京日日新聞) 》, 《하북신문(河北新聞) 》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도하였다. 오오사카신문에서는 9월3일 조간(朝刊)에서 “어떤 빈민들이 흉기를 들고 폭행, 요코하마 하치오지(八王子)에서 소동이 일어났다는 정보가 있음」 라는 타이틀로 “요코하마 지역에서 이런 기회를 엿보는 불순한 조선인들에 대하여 경계를 높여야 한다는 엄중한 정보가 왔다”고 보도하였으며 3일(날자는 4일로 되어 있음) 석간(夕刊)에서는 “각지에서 경계를 하라고 경보국에서 각 곳에 무전을 치다” 라는 타이틀로 “믿을 수 없는 조선인 무리들이 아무 곳에서나 봉기를 일으킬 조짐이 있음…」라는 경보국에 의한 전보내용을 실었다. 그리고 또 3일 호외(號外)신문에서는 동경 아사히신문사의 직원 고후(甲府)의 특전으로 “조선인 폭도들이 요코하마와 가나가와를 지나 하치오지를 향하면서 불을 질러대는 것을 보았다”는 기자의 목격정보를 기재하였다. 일본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와 매스컴의 근거 없는 보도로 하여 많은 일본사람들이 조선인들에게 적대감과 분노를 가지고 길거리에서 조선인을 보는 족족 때려죽이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반인류적인 만행이 자행되었다.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어 단어의 어두에 있는 탁음이 잘 발음되지 않는 점을 이용하여 길가는 행인에게 “쥬고엔고쥿센(十五円五十銭)”이거나 “가기구게고(ガギグゲゴ)”와 같은 것을 발음시켜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조선인으로 판정하고 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조선인인가 아닌가를 판별하기 위하여 일본국가를 부르게 하기도 하였다. 이때 무고하게 살해된 조선인에 대한 인수는 복수의 기록과 보고서가 있지만 연구자들 사이에 의론이 다르다. 당시 정부의 조사로서는 233명으로 되어 있고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의 조사에 의하면 2613명으로 되어 있으며 최고로는 사망자가 6661명이 될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 하여 곤경에 빠진 상태에 관동대지진까지 겹쳐 일본사회는 더욱더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많은 기업이 파괴됨으로 하여 실업자가 급증하고 더욱이 지진에 의한 피해로 하여 결재곤난(決裁困難)에 빠지는 약속어음이 막대한 액수로 불러났다. 이러한 금융상태의 불온한 현상은 쇼와금융공황(昭和金融恐慌)을 일으키게 된다. 1920년대로부터 1930년대 중반에 이르는 사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조선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전례 없이 전파되었으며 여러 분야에 걸쳐 사회주의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당시 아시아에 있어서의 사회주의운동의 활발한 전개는 다음과 같은 국내외의 사회적 배경과 갈라놓을 수 없다. 우선 국외적으로는 1917년10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하여 지구상에 첫 사회주의국가인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 탄생하였다. 러시아에 있어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은 동유럽과 아시아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리하여 사회주의 혁명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다음으로 1929년 아메리카의 월가(Wall Street)로부터 시작된 경제공황이 세계적인 규모로 확산하고 일본도 이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본 국내에는 세계공황의 영향으로 쌀값 폭등과 같은 물가상승과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보통선거와 사회보장 등의 실시를 주장하는 국민들의 요구 때문에 혼란상태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1920년대는 일본 당국의 사상적 통제가 완화되던 이른바 “다이쇼데모구라시(大正デモクラシー)”시대였기에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운동이 활발해지던 시기였다. 1921년7월 중국 상해에서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의 주도하에 진독수, 이대소, 모택동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을 창건했고 그 이듬해 7월에는 일본공산당이 창건되었다. 1925년에는 일제통치하의 서울에서 조선공상당이 결성된다. 일본에 있어서의 공산주의 사상이 고조되고 공산단체의 결성과 함께 일본에서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이 성행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문학이란 1920년대로부터 1930년대 전반기에 이르러 유행한 문학으로서 개인주의적 문학을 부정하고 사회주의사상과 공산주의사상과 연관된 문학이다.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선두적인 존재는 191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된 다이쇼(大正)인데 이 운동 중에서 노동현장체험을 가진 일군의 작가들이 출현한다. 그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는 미야지마 모토오(宮島資夫)의 《갱부(坑夫) 》와 미야지 가로쿠(宮地嘉六)의 《방랑자 도미조(放浪者富蔵) 》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 후 프롤레타리아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일정한 교육을 받은 지식계층의 사람들도 노동자들의 상황을 문학에서 표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고마키 오우미(小牧近江)와 가네코 히로후미(金子洋文) 등은 잡지 《씨 뿌리는 사람(種蒔く人)》을 발간하여 사회에 대한 개혁과 연관된 문학을 시도한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전주곡 속에서 1924년에 잡지 《문예전선》이 창간된다. 이것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중심적인 잡지로 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일파와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일파 간의 갈등과 대립이 정치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문학진영 내에서도 발생하여 1927년에는 로농예술가련맹, 일본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日本プロレタリア芸術連盟), 전위예술가동맹(前衛芸術家同盟)이란 세 단체로 분립하는 상태에 이른다. 1928년 구라하라(蔵原)는 이러한 사태를 타개하려고 기존의 조직을 그대로 두는 상태에서 연합체의 결성을 호소한다. 이러한 호소에 노농예술가연맹이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3월13일에 일본좌익문예가총연합(日本左翼文芸家総連合)이 결성된다. 1928년3월 일본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과 전위예술가동맹은 조직적으로 통합되어 새로운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Nippona Artista Proleta Federacio, NAPF,약칭 낫프)을 결성하고 《전기(戦旗) 》를 기관지로 한다. 낫프의 권위 있는 신진작가인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는 《1928년3월15일(一九二八年三月十五日) 》과 《게 잡이 공선(蟹工船) 》라는 중편소설을 연이어 발표하고 도쿠나가 스나오(徳永直)는 장편소설 『태양이 없는 거리(太陽のない街)』를 연재함으로써 《전기(戦旗) 》를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적인 잡지로 만든다. 1931년11월 소련의 영향하에 문학조직을 대중화하려고 하는 구라하라(蔵原) 등의 노력으로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연맹(Federacio de Proletaj Kultur Organizoj Japanaj, KOPF, 약칭 곳프)이 결성된다. 일본식민치하의 조선반도에 있어서 일본은 서양의 근대적인 문명을 수용하는 통로였고 중국과 만주는 일본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을 하는 통로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일한합병 이후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유학을 하였고 이러한 유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일본프롤레타리아문학에 동참하였다. 특히 김증생은 일본 프로문학의 개막을 알리는 잡지인 《씨 뿌리는 사람》의 창간호부터 시작하여 〈무산자와 유산자〉(1921년2월), 〈제3인터네셔날에의 투쟁〉(1921년4월) 등 평론을 투고하여 재일조선인으로서는 일본의 프로문학 잡지에 가장 먼저 등장한 사람이다. 그 후 정연규도 일본프로문학에 등장하여 생활고와 사회현실에 번민하는 젊은이의 갈등을 그린 일본어 장편소설 《정처없는 하늘가(さそらいの空) 》(1923년2월)와 《생의 번민(生の悶) 》(1923년6월) 등을 발표하여 조선의 소설가로 인정을 받고 일본의 프로작가들과 친교를 맺게 된다. 이 후에도 많은 조선인 작가들이 일본의 프로문학과 인연을 맺고 적지 않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1925년에는 조선에서 공산당이 결성되자 일월회와 재동경조선노동회 등의 단체가 설립되고 일본 사상단체와 연대하는 사회주의 운동이 성행하게 되였다. 1930년대 초기에 들어서 일본의 파시즘의 대두와 더불어 치안유지법과 특별고등경찰에 의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사상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 시작된다. 1932년에 노농예술가연맹이 해산을 하고 이어서 1934년2월에는 곳프에 속한 프로문학조직이었던 일본 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낫프)이 해산을 표명한다. 그리고 1933년2월20일 일본프롤레타리아문학의 핵심 성원인 고바야시 다키지가 경찰서에서 옥사를 하고 공산당원들이 연이어 전향을 하는 가운데 프롤레타리아문학도 서서히 쇠퇴되어 갔던 것이다.  
186    살아있는 총갈 댓글:  조회:1777  추천:0  2013-01-23
                                                                                                                                                                                             마키무라 고(일본)                                                                                                                                                      번역:김정웅(연변대학) 수수밭을 가르면서 총칼의 그림자가 줄줄이 이어진다 총갈이여 너는 나의 심장에 이상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피와 같은 저녘노을에 물들어 너희가 묵묵히 전진할 때 너의 그림자는 인간의 형태를 잃고 너의 모습은 배낭에 가려져 너는 사상이 없는 단지 살아있는 총칼일 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전진하고 있는 총칼을 보았다 대렬의 선두에 선 일장기, 득의 양양하여 말 탄 장군들, 창백한 얼굴에 피곤에 쌓인 병사들의 무리- 아, 이 집단이 모습을 나타내는 곳엔, 중국과 일본의 압제자들이 손을 잡고, 희생의 선혈은 수물두개성의 땅을 물들였다 (하지만 경험은 중국의 민중을 일깨워주었다!) 보라, 미련한 군기에 대하여 주먹을 흔드는 어린이들을, 얼굴을 돌리고 욕하는 여자들을, 말없이 반항의 시선을 불태우는 남다들을! 대렬은 지금 봉천의 성문을 통과한다 -들으라, 자본가의 리권을 대표하는 한 무리들의 환성을, 군악대가 연주하는 승리의 곡을! 이놈들, 자본가와 장군은 획실히 이겼다! –하지만 우리들은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로동자 농민에게 있어서 그것이 무슨 승리이겠는가 우리들의 입술은 환호의 소리를 지르기에는 너무나도 말라있다 우리들의 가슴은 개선가를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힘들다 그 놈들이 이기던지 지전지, 중국과 일본의 형제들 머리우에는 탄압의 채찍이 한층 더 높게 울리고 폭력과 학대는 더욱 광란한다   나는 생각한다, 총검이 차갑게 번뜩이는 밤거리에 반전의 전단지를 붙이며 돌아다니는 로동자를 광고패 뒤에 몸을 감추고 지붕과 담장을 가만히 넘어 대담하게 적의 눈을 피하여 그 남자는 작업을 계속한다 그가 마지막 한 장을 남겼을 때, 보초병의 날카로운 고함이 그의 귀청을 찧는다 그는 서둘러 삐라를 붙이고 재빠르게 옆 골목에 몸을 날린다 그때 그는 배후에서 가까워지는 구둣발 소리를 듣고 앞에서 번뜩이는 총검을 보았다 그는 땅 우에 넘어져 연이어 찔러대는 총검의 밑에서, 썰물이 빠지는 것 같이 전신에서 빠져나가는 힘을 느꼈다 놀란 눈길을 보초병이 든 燈에 던지고 갈기갈기 찢어서 던져 버려진 흙투성이가 된 전단을 바라모며 손을 간신히 올려 입술을 훔치며 잃어져 가고 있는 감각과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끝까지 지켜낸 당의 이름을 뛰염뛰염 웨쳤다 중, 국, 공, 산, 당, 만…… -가을에 봉천의 거리에서는 총칼이 한 동지를 빼앗아 갔다 그러나 다음날 저녘 무렵, 나는 돌아가는 로동자들 모두의 손에 쥐여져 있는 삐라의 한쪽 끝을 보았다. 전선주에 창고 옆에 바람에 펄럭이는 전단을 보았다. 동지여 안심하라, 그대가 목숨 걸고 붙인 삐라의 흔적은 지금도 생생하다. 남겨진 동지들은 그 우에 또다시 계속하여 전단을 붙일 것이다 자작나무와 적양(赤楊)의 혼합림이 무성한 수풀 속에 총칼의 그림자는 오늘도 계속하여 간다 너의 력사는 류혈로 물들여져 있다. 여전에 가메도(亀戸)의 수림에 스미타(隅田)의 해안에 또 조선에 대만에 만주에 너는 동지의 목을 찌르고 심장을 도려내 쌓이여 있는 시체 위를 피에 취하여 돌진했다 살아있는 총칼, 아 집을 떠나서 들판에서 잠든 사이, 바람은 고향소식을 너에게 전하지 않는 것인가 사랑하는 너의 아버지, 너의 어머니, 너의 아내, 너의 자식, 그리고 많은 너의 형제자매들이, 토지에서 쫓겨나고 직장을 거절당하고, 기아에 시들려,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먼 북쪽 하늘에 던지는 저주의 눈빛은, 조금도 너희들의 꿈에는 나타나지 않는가 태워서 던져 버려지는 출입금지라는 패쪽, 해고에 대한 대중들의 항의, 온 시가지를 흔드는 대파업의 웨침. 몰락을 가속화하는 데모. 휘몰아치는 탄압의 폭풍 속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너희들, 우리들의 선봉대, 아, 일본공산당! -그것도 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살아있는 총칼, 너는 목적도 모르고 리유도 없이 너와 같은 타국의 살아있는 총칼을 살상하고 너희가 죽음으로서 지키지 않으면 않될 선봉대의 가슴에, 너의 총검을 찌를 때 배후에서 울려 퍼지는 비웃음소리가 귓전에 들리지 않는가   갑자기 연회색의 지평에 둔직한 소리가 작렬한다. 모래는 무너져 내리고 그림자는 비뚤어져가고 총갈은 피를 토하면서 땅 우에 쓰러진다. 지금 한 사람의 “충성스러운 신민”이 여기에서 미련한 생애를 마쳤다 하지만 우리들은 기대한다, 다른 많은 너의 친구들이 이윽고 총부리를 뒤에 겨누고, 검을 뒤로 향하여 자신들의 해방에 정확한 길을 선택하여, 살아있는 총칼을 하는 것을 그만둘 것이다.   일어나라 만주의 농민과 로동자들이여 그대들의 분노를 몽고의 폭풍에 단련하고 안산의 용광로에 녹이라! 아, 닥쳐오는 혁명의 노도 저 멀리 아무르강 강뚝을 치는 파도의 울림은 흥안령을 넘고, 송화강을 지나, 할빈의 사원을 흔들고, 간도의 마을마다에 전하여, 널리 료녕의 공사를 흔들어놓고, 일본주둔군의 진영에 쳐들어간다   아, 국경을 넘어 팔을 걸고서 혁명적 요새를 구축할 그날은 언제. 2013년1월23일 번역 1932년2월「대중의 벗」에서 발취                                                          生ける銃架 高粱(こうりゃん)の畠を分けて銃架の影はきょうも続いて行く 銃架よ、お前はおれの心臓に異様な戦慄を与える――血のような夕日を浴びてお前が黙々  と進むとき お前の影は人間の形を失い、お前の姿は背嚢に隠れ お前は思想を持たぬただ一個の生ける銃架だ きのうもきょうもおれは進んで行く銃架を見た 列の先頭に立つ日章旗、揚々として肥馬に跨る将軍たち、色蒼ざめ疲れ果てた兵士の群― おおこの集団が姿を現わすところ、中国と日本の圧制者が手を握り、犠牲の鮮血は二十二  省の土を染めた (だが経験は中国の民衆を教えた!) 見よ、愚劣な軍旗に対して拳を振る子どもたちを、顔をそむけて罵る女たちを、無言のまま  反抗の視線を灼きつける男たちを! 列はいま奉天の城門をくぐる ――聞け、資本家の利権屋の一隊のあげる歓呼の声を、軍楽隊の吹奏する勝利の曲を! やつら、資本家と将軍は確かに勝った! ――だがおれたち、どん底に喘ぐ労働者農民に  とってそれが何の勝利であろう おれたちの唇は歓呼の声を叫ぶにはあまりにも干乾びている おれたちの胸は凱歌を挙げるには苦し過ぎる やつらが勝とうと負けようと、中国と日本の兄弟の上に弾圧の鞭は層一層高く鳴り 暴虐の軛(くびき)は烈しく喰い入るのだ おれは思い出す、銃剣の冷たく光る夜の街に 反戦の伝単を貼り廻して行った労働者を 招牌(しょうへい)の蔭に身を潜め 軒下を忍び塀を攀じ 大胆に敵の目を掠めてその男は作業を続けた 彼が最後の一枚に取り掛かった時、 歩哨の鋭い叫びが彼の耳を衝いた 彼は大急ぎでビラを貼り 素早く横手の小路に身を躍らせた その時彼は背後にせまる靴音を聞き ゆくてにきらめく銃剣を見た 彼は地上に倒れ、次々に突き刺される銃剣の下に、潮の退くように全身から脱けて行く力  を感じ おとろえた眼を歩哨の掲げた燈に投げ 裂き捨てられた泥に吸われた伝単を見詰め 手をかすかに挙げ、唇を慄わし 失われゆく感覚と懸命に闘いながら、死に至るまで、守り通した党の名をとぎれとぎれに  呼んだ 中、国、共、産、党、万…… ――秋。奉天の街上で銃架はひとりの同志を奪い去った。 しかし次の日の暮れ方、おれは帰りゆく労働者のすべての拳の中に握りしめられたビラの  端を見た、電柱の前に、倉庫の横に、風にはためく伝単を見た。同志よ安んぜよ、君が  死を以て貼りつけたビラの跡はまだ生々しい。 残された同志はその上へ次々の伝単を貼りめぐらすであろう 白樺と赤楊の重なり合う森のしげみに銃架の影はきょうも続いて行く お前の歴史は流血に彩られて来た。 かつて亀戸の森に隅田の岸に、また朝鮮に台湾に満州に お前は同志の咽を突き胸をえぐり 堆い死屍の上を血に酔い痴れて突き進んだ 生ける銃架 おお、家を離れて野に結ぶ眠りの裡に、風は故郷のたよりをお前に伝えないのか 愛するお前の父、お前の母、お前の妻、お前の子、そして多くのお前の兄妹たちが、土地  を逐われ職場を拒まれ、飢えにやつれ、歯を喰い縛り、拳を握って、遠く北の空に投げる  憎しみの眼は、かすかにもお前の夢には通わぬのか 焼きすてられる立禁の札、馘首に対する大衆抗議、全市を揺がすゼネストの叫び。 雪崩れを打つ反戦のデモ。吹きまく弾圧の嵐の中に生命を賭して闘うお前たち、おれたち  の前衛、ああ日本共産党! ――それもお前の眼には映らぬのか! 生ける銃架、お前が目的を知らず理由を問わず お前と同じ他の国の生ける銃架を射殺し お前が死を以て衛らねばならぬ前衛の胸に、お前の銃剣を突き刺す時 背後にひびく哄笑がお前の耳を打たないのか 突如鉛色の地平に鈍い音が炸裂する。 砂は崩れ、影は歪み、銃架は血を噴いて地上に倒れる。 今ひとりの「忠良な臣民」が、ここに愚劣な生涯を終えた だがおれは期待する、他の多くのお前の仲間は、やがて銃を後ろに狙い、剣を後ろに構え 自らの解放に正しい途を撰び、生ける銃架けたる事を止めるであろう 起て満州の農民労働者 お前の怒りを蒙古の嵐に鍛え、鞍山の溶鉱炉に溶かし込め! おお、迫りくる革命の怒濤 遠くアムールの岸をかむ波の響きは、興安嶺を越え、松花江を渡り、ハルピンの寺院を揺  すり、間島(かんとう)の村々に伝わり、あまねく遼寧の公司を揺るがし、日本駐屯軍の陣  営に迫る おお、国境を越えて腕を結び、革命の防塞を築くその日はいつ。 1932年2月「大衆の友」  
185    南京大学前での学生三人の記念撮影 댓글:  조회:2227  추천:0  2012-12-04
去年は、学生三人を連れて南京大学主催の笹川杯日本知識コンテストに参加し、いい思い出を作った。 今年は、北京の中国人民大学主催はずのコンテストが反日デモで中止となった。
184    洛陽外国語学院主催の日本国情知識コンテスト参加者 댓글:  조회:1958  추천:1  2012-11-08
これは、洛陽外国語学院が主催した第一回目の日本国情知識コンテスト全国大会である。 延辺大学からは二人が参加している。
183    南京大学主催の笹川杯日本知識コンテスト 댓글:  조회:2115  추천:1  2012-11-08
182    中日交流之窗成功举办第七回“日本事情”系列讲演会 댓글:  조회:2069  추천:2  2012-10-15
2011年10月20日晚6点,由延边中日交流之窗、延边大学外国语学院主办的第七回 “日本事情”系列讲演会在综合楼101教室隆重举行。日本研究所李东哲所长、外国语学院日语系孙雪梅主任、日语系金永洙书记等领导老师莅临会场,与各年级学生共同聆听了讲演会。 本次主讲人为日语系有多年留日经验的金正雄老师,主讲题目为“日本での私の就労談”(我在日本时的就业故事)。演讲主要分为两大部分。首先,介绍了在日本的外国人的劳动环境和政策。讲述了关于人文知识国际业务签证的必要知识及申请时的注意点,去年留学生在日企的就业状况以及外国留学生就职面试时经常被问到的问题。其次,介绍了在电子制造王国——日本的就业故事。老师讲到初到日本时,由于日本的高物价、高学费,高房费所受到的困惑。金老师用幽默诙谐的言语,讲述了在日本打工时的艰辛及乐趣,引起了场上阵阵掌声和笑声。演讲结束后,老师详细解答解答现场同学们的提问。最后,金老师讲到机会面前人人平等,只有有梦想,肯付出汗水,一定能够做到。同学们,加油! 通过这次演讲会,同学们都开拓了视野,受益匪浅。延边中日交流之窗自2008年成立以来,定期举办“日本事情”系列讲演会等活动,推动中日文化交流,加深广大学生对日本国情的认识和了解,进一步促进中日两国人民之间的友好交流关系。    
181    槙村浩と彼の抒情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 댓글:  조회:2612  추천:1  2012-09-30
槙村浩と彼の抒情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   故 鄭判龍(元延辺大学の副学長) 翻訳:金正雄 延辺大学 外国語学院   1      何年か前に我が延辺大学を訪問した日本のある学者は私に槙村浩について話しながら「…おそらく、彼は東満一帯で活動した抗日パルチザンに関する詩を一番最初に書いている方でしょう」と話をした。  日本侵略者が東北地方を侵略した後、我々の東北地域、特にわれらが住んでいる延辺の地では日本侵略者に反対する抗日闘争が継続的に行われてきていたし、また、このような闘争を反映する文学作品も少なくない。ところが、当時の抗日闘争は極めて困難に満ちた条件の下で行われたし、また、いろいろな歴史的な原因により、その時創作された作品が今日までに保存されているのは極めて少ない。それ故に、その時の状況のほとんどは、歌謡或いは革命物語、それにその当時抗日パルチザンに参加してた抗日闘士達の回想に頼るしかないのが現状である。  それで、私は抗日パルチザン運動が展開されていた当時に、それもまた一般の人ではなく日本人の詩人が簡単な歌謡とか物語ではない叙情叙事詩を書いたことに対して非常に大きい興味を持っていた。その後、私は槙村浩の叙情叙事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原文を手に入れようといろいろな工夫をしたが全部だめだった。  ところが、昨年の冬に偶然なチャンスで日本高知県解放運動旧友会にて編集出版した『槙村浩文集』一冊をようやく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た。私はこの本を通じて槙村浩は26歳の若さでこの世去ってしまった若き日本革命家であり、「間島パルチザンの歌」は彼が1932年3月13日に書いたもので日本プロレタリア作家同盟機関紙である「プロレタリア文学」(臨時増刊)に初めて発表された一編の叙情叙事詩であること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た。  高知県解放運動旧友会の代表である岡本正光先生は『槙村浩文集』の前書きの中で「1983年9月3日は土佐が生み出した反帝反戦詩人として広く知られている槙村浩の逝去45周年の日である。この日を目の前にして、我々は26歳の若き年で世を去ったこの同志の革命的戦闘的な文学と彼の人生を再び回想すること」でこの文集を編集するようになったと書いている。  彼の話の通りに槙村浩は日本の優秀な革命詩人の一人であり、我が中国東北地方と延辺地域で抗日パルチザン闘争が高潮に入った30年代に抗日パルチザン戦士達を声高く歌った日本の唯一の革命詩人である。  槙村浩の本名は吉田豊道という。彼は1912年6月1日高知市の清貧な家庭で生まれた。彼は6歳の時に父親を失い、看護婦だった母親の手の下で育てられた。幼い時から彼の非凡な記憶力は周りの人を驚かせたというが、その後彼がしたことを振り返ってみれば生れ付き非凡な才能を持っていた一人であることには間違いなさそうだ。小学校4年生の時からその当時日本の有名な詩人たちの作品を読んでおり、一部、西洋の古典文学作品も読み始めたようだ。彼が小学校時代に書いた童謡と童話からそのような痕跡を少なからず見ることができる。彼は中学校に通っているときから中国の唐宋時期の古文詩を愛読し、またマルクス主義の古典を研究し始めた。  当時、日本の男子高校では現役の士官が来て学生たちの軍事訓練を担当していたが、槙村浩は他の一部革命的な学生たちと一緒にこれに反対する運動をして退学処分を受けるようになる。彼は日本の中学校においてのファシズム教育に嫌悪感を感じて、むしろ退学させられたことに対して幸いだと思っていたが、母親の切実な頼みと彼の才能を惜しむ先生方々の斡旋で岡山に行って学業を続けるようになった。1931年3月に槙村浩は優秀な成績で岡山中学校を卒業して故郷に戻ってきた。  この時、日本軍国主義を反対する荒波は高知県にも影響を及ぼしていた。1927年から高知県では日本共産党と日本共産主義青年会それに労働組合などの高知地方委員会が成立され、1931年には日本プロレタリア文化同盟・作家同盟の高知地方組織まで設立されるようになった。  中学校を卒業して家に戻ってきた槙村浩は、文章を書いたり翻訳のような仕事に就こうと思っていた。しかし、当時厳しい経済危機におかれていた日本で安定した仕事を手にすることはなかなか難しいことであった。1931年7月、彼はプロレタリア作家同盟に加入し、この同盟の高知支部設立ための準備事業に積極的に参加した。それに、彼は作家同盟に参加したその時から自分のペンネームを槙村浩とし、同年の11月に「大衆の友」の創刊号に槙村浩という名前で詩―「生ける銃架―満州駐屯軍兵士達へー」を発表した。 槙村浩はこの当時、文学活動だけではなく、日本共産党の地下組織が指導する日本労働組合全国協議協会の活動にも積極的に参加した。そうして、1931年12月下旬には日本共産主義青年同盟の指導メンバーの一人となり、高知県地方委員会の宣伝教育方面の責任者として任命された。  槙村浩は小学校の頃から文章を書き始めたが、文学刊行物に正式に登載されたのは1931年に書いた「生ける銃架」である。この詩は、日本帝国主義がいわゆる「9.18」満州事変という名目の下で中国に対する公然とした侵略戦争を発動してわずか一か月も過ぎてない時点で、日本帝国主義のこのような強盗的な行為を批判するために書いたものである。彼はこの詩の中で、中国の革命的な労働者たちが日本帝国主義の侵略戦争に反対して戦う英雄的な姿を描きながら、日本軍兵士たちは帝国主義たちの生ける銃架にならず、銃口を日本軍国主義者たちにつきつけるべきであると叫んでいる。  その翌年の1932年の初めころ、もと高知に駐屯していた日本軍歩兵第44連隊が上海戦線へ向かうという噂があった。槙村浩は共産主義青年同盟のほかのメンバーと一緒に第44連隊兵士たちに反戦思想を宣伝する目的でたくさんの反戦ビラを作って兵士たちに配った。ある時は、槙村浩などの青年たちは反戦ビラを持って警戒が厳しい連隊の兵営までにはいってビラを配布し、彼らのこのような行為は日本共産党の表彰を受けたという。槙村浩をはじめとする青年たちの努力により、日本歩兵第44連隊の一部日本兵士たちは上海戦線で中国19路軍愛国兵士たちと戦ういことを断ったという。この消息を聞いた槙村浩は、さっそく「出征」、「白色テロに倒された44連隊の革命的な兵士達へ」など二首の詩を書いて、中国と戦うことを断った一部の日本兵士たちの反抗闘争をほめたたえた。  1932年3月13日、槙村浩は中国東北地方で烈火のように燃え上がる抗日パルチザンの消息を聞いて、彼らを褒め称える抒情叙事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を完成した。この詩には槙村浩の一番重要な特色の一つであるプロレタリア(無産階級)国際主義思想が充分に反映されており、また、彼はこの詩によって日本の優秀な革命的詩人という栄誉を貰うようになった。  1932年初、槙村浩は日本共産党に加入した。槙村浩は日本共産党の加入後にも相変わらず共産党青年組織と作家同盟で働いた。1932年4月21日、日本プロレタリア文化同盟を中心とする左翼文化人たちを弾圧するために、日本軍警らは全国的規模でいわゆる第三次総検挙をやり始めた。このために高知県の党員、共産主義青年団、共同組合のメンバー、プロレタリア文化同盟のメンバーの大部分がこの日の夜に日本軍警に逮捕された。槙村浩もその翌日の早朝、高知市内の自宅で逮捕され、高丘町警察署に連行された。  槙村浩は日本軍警の苛酷な拷問にも屈することなく革命家としての意思を曲げることはしなかった。一緒に逮捕された少なくない「同志」は日本軍警の拷問に耐えられず、いわゆる思想「転向」声明書にサインをしたが、槙村浩をはじめとする何人かの真の共産党員たちは「死ぬことがあっても自分の主義は変えることはできない」と再三に言明した。  苛酷な拷問により、槙村浩の健康は深刻に損なわれた。彼は食道狭窄症により一時期食事も口ですることができず、また後期には精神分裂症にもかかったそうだ。しかし、彼の革命精神は少しの動揺もなかった。1933年4月28日、日本政府は槙村浩をいわゆる秘法的な左翼文化組織の責任者であり、文章を持って「日本帝国を冒涜した罪」で三年間の有期判決を下すと宣告した。 槙村浩は獄中生活の中でも作詞に精進した。「思想転向声明」に同意し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彼には鉛筆や紙などを与えかった。槙村浩は詩を考えては出来上がった詩を何回か読むことでその詩を暗唱したという。そうして、1935年6月に出獄後それを原稿用紙に書き直して出版したそうだ。  獄中で書いた詩の中には、献詩ー「青春」、タタル海峡以南である北海道の監獄に監禁されている革命同志を懐かしんで書いた詩ー「タタル海峡」、獄中で国外労働階級の革命活動を声援する詩―「獄中でドイツの革命同志を偲んで歌った歌」、「中国の詩人たちに」、「獄中でコミュンテルン戦士たちを偲ぶ」などがある。タイトル自体が説明しているように、獄中で書いた彼の詩は、全てが無産階級の国際主義と同志愛、それに敵の如何なる強圧にも屈しない革命節義を守ろうとする彼の精神で一貫している。  それに彼は監獄の中で、政治犯達を感化させるために監房ごとに配置された仏教経典と儒教道徳著書をすべて読んだという。出獄後の彼は、これを基にして『アジア的な生産に基づいた政治・経済・文化の批判』いう著作を一編書いたというが、この本の中に出てくる数多い仏教経典と中国古典の引用文は、すべて監獄の中で覚えたものを書き写したものだという。  1935年6月、出獄した槙村浩は主に家の中で療養しながら、詩を書いたり著述活動に従事したという。その当時、高知県では弾圧された革命組織を再建する事業が猛烈に進められており、また新しい人民前線運動が展開されている時期であった。しかし、槙村浩の同志たちは彼の健康を心配して危険な地下活動には彼を参加させなかったという。しかし、槙村浩の健康は日増しに悪化した。1938年9月、不撓不屈の革命家でありプロレタリア詩人であった槙村浩は、26歳の若さにもかかわらず自宅で自分の戦闘的な生涯に終わりを告げた。槙村浩の遺骸は蛭ヶ谷にある彼の父のお墓の傍に埋蔵され、彼の戦友達は彼のお墓の前に「反戦革命的詩人槙村浩之墓」と刻み込まれた石碑を立てた。   2   「間島パルチザンの歌」は、中国東北地方で抗日烽火が激しく燃え上がった1932年に書かれた作品である。「9・18事変」以後、烈火のように燃え上がった抗日武装闘争は日本帝国主義者達に危機感を持たせており、彼らの「御用新聞」は毎日のように抗日パルチザンを冒涜する各種の「新聞報道」を載せた。たとえば、1930年6月2日の高知で出版された『土陽新聞』は、「間島不法朝鮮人蜂起、学校を燃やし電線を切断、爆弾を無差別に投げつけ放火、彼らの戦時焦土化計画を暴露」などのタイトルで間島地区で起こった人民たちの抗日武装闘争状況を歪曲するニュースを報道していた。彼らはこのように間島地区のパルチザンを「強盗」、「殺人犯」だと冒涜しているが、日本の進歩的な青年たちはこれを信じないばかりではなく、むしろこのような歪曲された報道を通じて間島パルチザンの英雄的な闘争を理解するようになった。  1932年1月、日本共産主義青年同盟に参加した熱血青年である槙村浩は、間島パルチザン闘争の真実を日本の国民に伝え、また間島パルチザンに自分の敬意を送るために抒情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を書くことにした。槙村浩がこの詩を書くためには、まず間島パルチザン闘争の真実とそこの地理環境を理解する必要性を感じた。それで、彼は毎日のように近所の図書館に通いながら関連資料を集め、また当時高知滞在中の朝鮮からの留学生と朝鮮人労働者を訪問して朝鮮人たちの生活習慣を把握したという。  「間島パルチザンの歌」は、1932年3月1日に発行された日本プロレタリア作家同盟機関紙である『プロレタリア文学』臨時増刊に発表された。この詩は発表されてすぐ当時日本の進歩的な文芸界と青年たちの歓迎を受け、数多い群衆大会で朗読された。数年後この詩はブルガリア語で翻訳され、ヨーロッパ無産階級にも紹介されたというが、未だこれを証明できるような証拠は見付かっていない。 それに、槙村浩のこの戦闘的な詩が戦っている間島パルチザンの戦士たちに伝わったかどうかはわからない。日本帝国主義者たちの進歩的な文化に対する弾圧が深刻になるにつれ、この詩も禁止されたのは間違いない。  この詩は、30年代初めごろに延辺地域で結成された抗日ゲリラ根拠地を守る一人の戦士の戦闘過程を回想する形で書かれている。詩の主人公は、朝鮮半島北部にある咸鏡道の貧しい家庭で生まれて幼い時から「チゲを負ひ、枯葉を集めに姉と登った裏山の楢林よ」のように苦しい肉体仕事をせざるを得なかった。その後、ソウルから里帰りした崔先生という若者から「10月社会主義革命」に関する物語を聞くことになり、次第に革命的に覚醒するようになる。1919年、朝鮮半島で凄まじい勢いの「3・1」反日民族闘争が勃発すると彼もやはり階級的に覚醒した大衆と一緒に反日闘争の隊伍に加入した。しかし、この闘争は日本軍隊と警察の残虐な弾圧により失敗に終わってしまう。その後、この詩の主人公をはじめとする12人の少年は、やむを得ない状況で頭満江を超えて間島
180    연변과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시인 마키무라 고(槇村 浩) 댓글:  조회:1584  추천:0  2012-06-25
間島パルチザンの歌                                            槙村 浩 思い出はおれを故郷へ運ぶ 白頭の嶺を越え、落葉(から)松の林を越え 蘆の根の黒く凍る沼のかなた 赭ちゃけた地肌に黝(くろ)ずんだ小舎の続くところ 高麗雉子が谷に啼く咸鏡の村よ 雪溶けの小径を踏んで チゲを負ひ、枯葉を集めに 姉と登った裏山の楢林よ 山番に追はれて石ころ道を駆け下りるふたりの肩に 背負(しょい)縄はいかにきびしく食い入ったか ひゞわれたふたりの足に 吹く風はいかに血ごりを凍らせたか 雲は南にちぎれ 熱風は田のくろに流れる 山から山に雨乞ひに行く村びとの中に 父のかついだ鍬先を凝視(みつ)めながら 目暈(めま)ひのする空き腹をこらへて 姉と手をつないで越えて行った あの長い坂路よ えぞ柳の煙る書堂の蔭に 胸を病み、都から帰って来たわかものゝ話は 少年のおれたちにどんなに楽しかったか わかものは熱するとすぐ咳をした はげしく咳入りながら 彼はツァールの暗いロシアを語った クレムリンに燻(くすぶ)った爆弾と ネヴァ河の霧に流れた血のしぶきと 雪を踏んでシベリアに行く囚人の群れと そして十月の朝早く 津波のやうに街に雪崩れた民衆のどよめきを ツァールの黒鷲が引き裂かれ モスコーの空高く鎌と槌(ハンマー)の赤旗が翻ったその日のことを 話し止んで口笛を吹く彼の横顔には痛々しい紅潮が流れ 血が繻衣(チョゴリ)の袖を真赤に染めた 崔先生と呼ばれたそのわかものは あのすさまじいどよめきが朝鮮を揺るがした春も見ずに 灰色の雪空に希望を投げて故郷の書堂に逝った だが、自由の国ロシアの話は いかに深いあこがれと共に、おれの胸に泌み入ったか おれは北の空に響く素晴らしい建設の轍(わだち)の音を聞き 故国を持たぬおれたちの暗い殖民地の生活を思った おゝ 蔑まれ、不具(かたわ)にまで傷づけられた民族の誇りと 声なき無数の苦悩を載せる故国の土地! そのお前の土を 飢えたお前の子らが 苦い屈辱と忿懣(ふんまん)をこめて嚥(の)み下すとき?? お前の暖かい胸から無理強ひにもぎ取られたお前の子らが うなだれ、押し黙って国境を越えて行くとき?? お前の土のどん底から 二千万の民衆を揺り動かす激憤の熔岩を思へ! おゝ三月一日 民族の血潮が胸を搏(う)つおれたちのどのひとりが 無限の憎悪を一瞬にたゝきつけたおれたちのどのひとりが 一九一九年三月一日を忘れようぞ! その日 「大韓独立万歳!」の声は全土をゆるがし 踏み躙られた××(日章)旗に代へて 母国の旗は家々の戸ごとに翻った 胸に迫る熱い涙をもっておれはその日を思ひ出す! 反抗のどよめきは故郷の村にまで伝はり 自由の歌は咸鏡の嶺々に谺(こだま)した おゝ、山から山、谷から谷に溢れ出た虐げられたものらの無数の列よ! 先頭に旗をかざして進む若者と 胸一ぱいに万歳をはるかの屋根に呼び交はす老人と 眼に涙を浮べて古い民衆の謡(うた)をうたふ女らと 草の根を噛りながら、腹の底からの嬉しさに歓呼の声を振りしぼる少年たち! 赭土(あかつち)の崩れる峠の上で 声を涸らして父母と姉弟が叫びながら、こみ上げてくる熱いものに我知らず流した涙を おれは決して忘れない! おゝ おれたちの自由の歓びはあまりにも短かゝった! 夕暮おれは地平の涯に 煙を揚げて突き進んでくる黒い塊を見た 悪魔のやうに炬火を投げ、村々を焔の×に浸しながら、喊(かん)声をあげて突貫する日本騎馬隊を! だが×(焼)け×(崩)れる部落の家々も 丘から丘に炸裂する銃弾の音も、おれたちにとって何であらう おれたちは咸鏡の男と女 搾取者への反抗に歴史を×ったこの故郷の名にかけて 全韓に狼煙を揚げたいくたびかの蜂起に×を滴らせたこの故郷の土にかけて 首うなだれ、おめおめと陣地を敵に渡せようか 旗を捲き、地に伏す者は誰だ? 部署を捨て、敵の鉄蹄(てつてい)に故郷を委せようとするのはどいつだ? よし、焔がおれたちを包まうと よし、銃剣を構へた騎馬隊が野獣のやうにおれたちに襲ひ掛からうと おれたちは高く頭を挙げ 昂然と胸を張って 怒濤のやうに嶺をゆるがす万歳を叫ばう! おれたちが陣地を棄てず、おれたちの歓声が響くところ 「暴圧の雲光を覆ふ」朝鮮の片隅に おれたちの故国は生き おれたちの民族の血は脈々と搏(う)つ! おれたちは咸鏡の男と女! おう血の三月!??その日を限りとして 父母と姉におれは永久に訣(わか)れた 砲弾に崩れた砂の中に見失った三人の姿を 白衣を血に染めて野に倒れた村びとの間に 紅松へ逆さに掛った屍の間に 銃剣と騎馬隊に隠れながら 夜も昼もおれは探し歩いた あはれな故国よ! お前の上に立ちさまよふ屍臭はあまりにも傷々しい 銃剣に蜂の巣のやうに×き×され、生きながら火中に投げ込まれた男たち! 強×され、×を刳(えぐ)られ、臓腑まで引きずり出された女たち! 石ころを手にしたまゝ絞め××(殺さ)れた老人ら! 小さい手に母国の旗を握りしめて俯伏した子供たち! おゝ君ら、先がけて解放の戦さに斃れた一万五千の同志らの 棺(ひつぎ)にも蔵められず、腐屍を兀鷲(はげわし)の餌食に曝す躯(むくろ)の上を 荒れすさんだ村々の上を 茫々たる杉松の密林に身を潜める火田民(かでんみん)の上を 北鮮の曠野に萠える野の草の薫りを籠めて 吹け!春風よ! 夜中、山はぼうぼうと燃え 火田を囲む群落(むら)の上を、鳥は群れを乱して散った 朝 おれは夜明けの空に 渦を描いて北に飛ぶ鶴を見た ツルチェクの林を分け 鬱蒼たる樹海を越えて 国境へ?? 火のやうに紅い雲の波を貫いて、真直ぐに飛んで行くもの! その故国に帰る白い列に おれ、十二の少年の胸は躍った 熱し、咳き込みながら崔先生の語った自由の国へ 春風に翼(はね)を搏(う)たせ 歓びの声をはるかに揚げて いま楽しい旅をゆくもの! おれは頬を火照らし 手をあげて鶴に応へた その十三年前の感激をおれは今なまなましいく想ひ出す 氷塊が河床に砕ける早春の豆満江を渡り 国境を越えてはや十三年 苦い闘争と試練の時期を おれは長白の平原で過ごした 気まぐれな「時」をおれはロシアから隔て 厳しい生活の鎖は間島におれを繋いだ だが かつてロシアを見ず 生まれてロシアの土を踏まなかったことを、おれは決して悔いない いまおれの棲むは第二のロシア 民族の墻(かき)を撤したソヴェート! 聞け!銃を手に 深夜結氷を越えた海蘭(ハイラン)の河瀬の音に 密林の夜襲の声を谺した汪清(ワンシン)の樹々のひとつひとつに ×(血)ぬられた苦難と建設の譚を! 風よ、憤懣の響きを籠めて白頭から雪崩れてこい! 濤よ、激憤の沫(しぶ)きを揚げて豆満江に迸(ほとばし)れ! おゝ、××(日章)旗を飜す強盗ども! 父母と姉と同志の血を地に灑(そそ)ぎ 故国からおれを追ひ いま剣をかざして間島に迫る××(日本)の兵匪! おゝ、お前らの前におれたちがまた屈従せねばならぬと言ふのか 太てぶてしい強盗どもを待遇する途をおれたちが知らぬといふのか 春は音を立てゝ河瀬に流れ 風は木犀の香を伝へてくる 露を帯びた芝草に車座になり おれたちはいま送られた素晴らしいビラを読み上げる それは国境を越えて解放のために闘ふ同志の声 撃鉄を前に、悠然と階級の赤旗を掲げるプロレタリアートの叫び 「在満日本××(革命)兵士委員会」の檄! ビラをポケットに おれたちはまた銃を取って忍んで行かう 雪溶けのせゝらぎはおれたちの進軍を伝へ 見覚えのある合歓(ねむ)の林は喜んでおれたちを迎へるだらう やつら!蒼ざめた執政の蔭に 購はれた歓声を挙げるなら挙げるがいゝ 疲れ切った号外売りに 嘘っぱちの勝利を告げるなら告げさせろ おれたちは不死身だ! おれたちはいくたびか敗けはした 銃剣と馬蹄はおれたちを蹴散らしもした だが 密林に潜んだ十人は百人となって現はれなんだか! 十里退却したおれたちは、今度は二十里の前進をせなんだか! 「生くる日の限り解放のために身を献げ 赤旗のもとに喜んで死なう!」 「東方××(革命)軍」の軍旗に唇を触れ、宣誓したあの言葉をおれが忘れようか おれたちは間島のパルチザン。身をもってソヴェートを護る鉄の腕。生死を赤旗と共にする決死隊 いま長白の嶺を越えて 革命の進軍歌を全世界に響かせる -海 隔てつわれら腕(かいな)結びゆく -いざ戦はんいざ、奮い立ていざ -あゝインターナショナルわれらがもの・・・・・・ 一九三二・三・一三 (原文は『プロレタリア文学』臨時増刊、四・一六、第五回大会紀念号掲載)
179    효성스러운 딸 댓글:  조회:1933  추천:0  2012-02-18
   ―일본니이가타껜의민화―   번역;김정웅   옜날어떤곳에가난한어머니와딸이살고있었다고한다.   딸은아직나이도차지않은소녀이지만몸이허약하신어머님을대신해다른사람의밭의기음을매거나잔신부름을하여삯돈을받아서는약이랑먹을것들을사면서그날그날을살고있었다고한다.  그기특한효성이원근에소문이나서마을의령주님의귀에도들어갔다고한다.   령주는   고하인에게부탁했다고한다.  하인은인츰그마을에가서여러가지방도로살실의여하를물었다고한다.   그랬더니그평판은대단한것으로서누구나할것없이입을모아그여자애를칭찬했다고한다.  하인은자기의일인듯이기뻐서   라고말하면서그모녀가살고있는집에갔다고한다.  그리하여장지문틈사이로슬쩍집안상황을살펴볼라니마침저녘밥을먹고있는중이였다.   잘살펴보니어머니는거무스름한이상한밥을먹고있고딸은어찌된영문인지새하얀이밥을먹고있었다.   라고생각하면서계속하여보고있노라니여자애는밥을먹고난후에식탁도치우지않고어머니가아직국물을마이고있는데뻘써잠자리에들어쿨쿨잠들어버렸다.  하인은이여자아이가평판에짝지는효성스럽지못한아이구나.말이아니구나라고화를내면서고을에돌아갔다고한다.   그리하여군수에게   라고말을올렸다.  고말하였다고한다.   이튿날여자애는고을에불리워왔다고한다. 군수는직접묻기를   라고물었다고한다. 그러자여자애는   고대답했다고한다.               라고말하고서는눈물을흘리셨다고한다.   라고말하면서포상을내렸다고한다.  그상금으로어머니와딸은한평생밥을먹고살수있게끔되였다고한다.   이것으로한시름놓인다. 2010년5월6일
178    3-55『住持(じゅうじ)の夜遊(よあそ)び』 댓글:  조회:5868  추천:0  2011-11-22
3-55『住持(じゅうじ)の夜遊(よあそ)び』   ―島根県―    昔、ある山寺に住持と小僧さんとが住んであったと。  お坊さんは、昔は女房を持つことが出来んかったので、里(さと)に、こっそりと女房をこしらえる人が多かったと。  この住持も里に女房をこしらえていたと。  夜になると住持は里へ下りて行く。すると、山寺には小僧さんひとりっきりだ。小僧さんはたかだか十歳位だったと。  山寺の夜は真っ暗闇につつまれる。そんななかで小僧さんひとりっきり。周囲(まわり)の森が風でざわめくだけで不気味なのに、フクローがホホー、ホホーと啼(な)き、狼の遠吠えがかすかに聞こえてこようものなら、小僧さんは、両耳を手でふさいで布団のなかで縮こまっていたと。  夜があまりにさみしくて恐ろしいものだから、ある夜、小僧さんは硯(すずり)を出して書きものをした。半紙に書いたのは、漢数字の一二三四(し)五六七(しち)八九十だけ。それを住持の文机(ふづくえ)の上に置いたと。    翌朝住持が帰ってきて見つけたと。  「小僧、小僧。夜さりに誰ぞ来たか」  「いいえ、誰れも来やせんです」  「ここに、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と書いたのがあるが」  「はい、そうですか」  「ほんに誰ぞも来んかったか」  「はい」  「では、これはわれ(お前)が書いたのだな」  「いえ、わたしは知りません」  「では、われの知らぬ間(ま)に誰ぞが来て、書いて置いて行ったのだろうなぁ」  「なんて書いて行ったのでしょう」  「さあ、どうも判(はん)じものらしいが、何と判じたらよいのやら。わしにはさっぱり判(わか)らん。近頃、めっぽう賢くなったわれなら読めるかも知れん。ちょいと判じてくれんか」    小僧さん、住持に誉められてうれしくなった。昨夜書いた半紙を受け取り、  「これは、こう読むのです。  ひと(一)りに知れ、ふた(二)りに知れりゃ、さん(三)ざんいう。知(し)れちゃ仕方ない、業(ごう)(五)をわかす。業をわかせばろく(六)なことにならん。質(七)屋の八(八)兵衛さんの娘にほれくさり、苦(九)労すんなよ。この住(十)持のばかたれ」 ととくいげに判じあげた。そのとたん、ピシャリッと頭を叩かれた。  「われに判じ上げられたということは、つまりだ、われが書いた、ちゅうことだろが」 と叱かられたと。住持はすっかりお見透しであった。   けっちりこ。
177    3-54『もんじゃの吉(きち)』 댓글:  조회:4464  추천:0  2011-11-22
3-54『もんじゃの吉(きち)』   ―岩手県(紫波郡)―    昔、あったと。  もんじゃ(茂沢)の吉は長者どのの家で嫁こを探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聞いた。  野っ原の方に歩いて行くと、狐が化けくらべをしているのに出会った。  「やぁ、狐どの、狐どの。お前たちは何をしている」 と声をかけた。狐はびっくりして、  「誰れかと思ったら、吉さんか」 というた。もんじゃの吉は、    「ときに、長者どのでは嫁コをさがしているっちゅうから、お前(め)たちの仲間で化けてくれんか」 と頼んだ。狐たちは、  「油揚(あぶらあ)げと小豆飯(あずきめし)を持ってくればぞうさもねえこった」 というた。  そこで、もんじゃの吉は、長者どのさ行って嫁コを世話する話をまとめたと。口(くち)きき料にたんまりお礼をもらったと。  そして、油揚げと小豆飯を買(こ)うて、狐のところへ行った。  「いついっかに、人数は三十人ばかりと馬ひと手綱(たずな)七頭の嫁取りに化けてけろ」  「あい、わかった」 と約束が出来たと。  いよいよ嫁取りの日。  長者どのではすっかり用意をととのえて待っていたが、時刻になってもなかなか嫁こが見えないので待ちあぐんでいたと。  夜まになって、ようやく野っ原の方に提灯(ちょうちん)が三十ばかりちらちら見えたと。  ほどなくして、仲人の吉が先に立って、化粧馬(けしょううま)だの、箪笥(たんす)長持(ながもち)からいろいろな道具(どうぐ)担(かつ)ぎだの従(した)えて、ざんぐぶんぐと嫁取りの行列が長者どのの屋敷さやってきた。  屋敷門(やしきもん)の前(まえ)で、送りの言葉やら迎えの言葉がかわされ、もんじゃの吉は提灯を一人一人から受け取って、縁側の天井にずらりと釣るした。  祝言がはじまり、大(おお)屋敷では、ご馳走酒盛りだと。呑め歌え踊れと盛り上がって、やがて祝儀事(しゅうぎごと)も終りになり、仲人の吉は帰り、お客人(きゃくじん)たちも帰る者は帰り、泊まる者は泊まったと。  次の朝になって、長者どのが縁側の戸を開けると、天井から頭にぶつかるものがあった。  「痛て」 というて見あげたら、馬の骨が三十もぶら下がっていた。  はてな、と思ってその辺(あた)りを見ると、縁側の板の上に狐の足跡がついている。いよいよけげんに思って家内(いえうち)の者(もの)を起こして調べさせたと。  そしたらなんと、家の中(なか)じゅう狐の足形(あしがた)だらけだ。あわてて座敷に行ってみたら、泊まったはずのお客人も一人も居なくなっていたと。    もしかしたら、と思って、嫁コの床(とこ)を見ると、これまた様子が変だ。夜着(よぎ)をはぐって見たら、なんと、なんと、嫁ではなくて、古狐が床のなかで丸くなって眠っていた。  「こんちくしょう」 というて、若い衆が取り押さえようとしたら、びっくりした古狐がはね起きて、障子をけ破って逃げて行ったと。  長者どのは、ようやく、もんじゃの吉にだまされたと気付いたと。長者は怒りに怒って、  「吉をひっとらえて来い」 というた。  若い衆が吉の家へ行くと、お袋(ふくろ)が一人いて、  「おら方(ほ)の吉は、他所(よそ)さ馬喰(ばくろう)に行って、今日で何日にもなるが、まだ帰って来(き)もさん」 というた。若い衆は、気勢(きせい)をそがれて、もそらもそら帰ったと。  それから四、五日経った頃、長者どのの座敷の前を、やせ馬曳いたもんじゃの吉が通った。唄なんぞ唄って、いい気なもんだ。  長者どのが呼び止めて、嫁とりのことを糺(ただ)すと、もんじゃの吉は、  「このところ俺は、奥(おく)の方(ほう)さ馬喰に行っていた。今帰ってきたばかりだもの、嫁取りだの、狐だの、俺が何で知るや。おおかた、その吉とやらも狐の仕業(しわざ)だろうさ」 と、すぽーんとした顔をして言うたと。   それっきり。どっとはらい。
176    3-53『寝太郎(ねたろう)の聟(むこ)入(い)り』 댓글:  조회:4146  추천:0  2011-11-22
3-53『寝太郎(ねたろう)の聟(むこ)入(い)り』   ―埼玉県―    むかし、あるところに長者の家と貧乏な家とが隣りあってあったと。  長者には一人娘があって、たいした美人だと。  その娘もいよいよ年頃になって、聟さがしをしておった。いい聟もらいたいと思うて、村の鎮守さまに願掛けしたと。毎晩、真夜中になると長者夫婦そろって鎮守さまへ行き、  「ええ聟、授けて下さりませ」 と、祈っていたと。  村の若い男たちも、なんとか聟に選んでもらいたいと思うて、皆々、一所懸命に働いていたと。  長者の隣の貧乏な家では母(かか)と息子が暮らしていた。この息子はちいとも働かないのだと。毎日、毎日、寝てばかりいるものだから、村の人たちは、寝太郎と呼んでおった。  その寝太郎もいっちょ前に、  「何とか長者の娘の聟になるうまい方法はないものか」 と、思案しておったと。働かないで、毎日寝ながら思案しておったと。  ある日、母が、  「今日は市日(いちび)だから、野菜を売りに行く」 というたら、寝太郎は、帰りに鈴をひとつ買(こ)うてきて欲しいと頼んだ。  母は、市の帰りに鈴をひとつ買うてきたと。  寝太郎は、鈴を受けとると、その暮れ方、珍らしく、起きあがり、  「おれ用が出来た」 というて、外出したと。  鎮守の森へ行って、観音堂に巣くっている鳩を一羽つかまえると、その足に鈴をくくりつけ、懐に入れた。  それから、鎮守さまお堂の中で、御神体のうしろに隠れて待った。  やがて、真夜中ごろになったら長者夫婦がやってきた。  その日は、ちょうど二十一日目で願(がん)明(あ)けの夜であったと。長者夫婦は、  「神さま、神さま。今夜でちょうど二十一日だス。なんとか、いい聟を授(さず)けて下され」 というて、幾度も頭を下げたり、手を合わせたりして拝んだ。  寝太郎は頃合いを見計らって、太(ふと)い声で、  「これ、そこな夫婦、毎晩よく通(かよ)ったな。今日は満願の日だ。お前達の願いは叶えてやる。ええ聟を授けてやるから、よおく聞けよ」 というた。長者夫婦は「ははー」って、かしこまったと。寝太郎、  「お前(めえ)たちの家(いえ)の隣に、太郎という若(わけ)え者(もん)がおるな。その太郎を聟にとれば家運繁昌、子孫繁栄は間違いない」 というた。  「あの、もし神さま、太郎って、あの寝太郎だべか」  「わしは隣の太郎というた。お前たちの家の隣に他にも太郎はおるか」  「は、はい、いや、それは・・・しかし寝太郎とは、こ、これ、お前からもお願い申し上げろ」  「そんなこといったって、神さまのいわれることだも。何か深(ふか)えお見通(みとう)しがおありなさるんでねえか」  「そだべか」  「わかんねけども」  「寝太郎・・・なあ」  「これ夫婦、お前たちの願い叶(かな)えたど。こんでわしは帰るぞ」  寝太郎は、懐から鳩をとり出して、東の空に向けて放り飛ばした。鳩は「チリン、チリン」といい音させて、飛んで行った。  それを見た長者夫婦は、東の空に向かって手をついて頭を下げた。  「神さま、いたったな」  「はえ、いい音に包(つつ)まれて帰っていかれた」  「ンだな。どうもえがったス」 というているうちに、寝太郎は、お堂の裏からこっそり抜け出て、家に戻り、寝たと。  長者夫婦は家に帰っても寝るどころでない。  朝を待つのももどかしく、仲介人(なこうど)頼んで、  「観音さまが授けてくれた聟だァ」 とて、急いで寝太郎をもらいに来たと。  寝太郎の母(かか)は、びっくりして、  「おら家の寝太郎なんぞ、とても勤まらねぇべから、駄目だ」 とて、何度もことわったと。  どうしても、どうしても、と何度も頭(あたま)下げられて、とうとう承知したと。  寝太郎は長者の娘と祝言あげてからは、人柄ががらっと変わったようになって、一所懸命働いたと。  長者の家はますます繁昌し、子宝にも恵まれて、福々しく暮らしたと。 どっとは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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