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lianhua-li 블로그홈 | 로그인
정하린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수필

전체 [ 4 ]

4    내가 만난 천사들 댓글:  조회:843  추천:0  2018-09-06
정하린 향수를 좋아하는 나에게 좋다 궂다를 떠나서 “어렸을 때 뭐 냄새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었니?” 하고 벌써 2차원까지 생각해서 묻는 사람이 있다.  2차원은 웬지 불편하고 께름직하다. 단순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나에게 가끔은 “아, 이렇게 심오한 일을 내가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었구나”하고 공연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때문이다.  난 단순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이였다.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느끼고 그렇게 가볍게 살았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나같은 단순한 텀벙이에게 문을 열어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장보러 가면 항상 손 크게 푹푹 얹어주는가싶어서 단골로 다녔던 조선족아줌마는 나중에 우연찮게 알고보니 저울눈을 속이는것으로 내 잔돈들을 가무려먹었고 니가 최고야! 라는 말을 진심으로 생각했던 나의 뒤통수를 보기 좋게 한매 친 선배는 후에 내가 모든 사람들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게 하는 번거로움을 안겨줬다. 세상은 왁자지껄 잘난체하는 사람들, 내가 아무리 가소로워한들 그들의 것이였고 그래서 어느샌가 나도 없는 밑천으로 그들의 흉내를 내고있었다. 그러다가 난 정말이지, 천사라고밖에 형용할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마치 진펄속에 피여난 련꽃처럼 깨끗하고 순수했으며, 세속에 물젖지 않은 단순한 사고방식을 갖고있었다. 대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의 사무실에 들린 교수와 학생, 공교롭게 학생은 방금전 그 교수의 수업을 빼먹은터였다. 방금전까지 멀쩡하던 학생은 갑자기 안 나오는 가짜기침(누가 들어도 그것은 마른기침이였다.)을 쿨럭대며 간간히 말사이에 추임새처럼 넣어가며 감기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난 그 교수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 궁금했다. 학생들의 그런 거짓말을 많이 보아왔기에 나 같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것이였기때문이다. 뜻밖에 그 교수는 진심으로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리해한다고 했다. 더 이상 다른것은 묻지 않았다. 그냥 편히 휴식하라고만 했다. 거짓말에 속은것일가 아니면 더 이상 헤집기 싫어서일가. 그의 주변에 거짓말쟁이가 없어서일가 아니면 거짓말쟁이와 상종하고싶지 않아서였을가. 난 그중 하나일것이라 제멋대로 추측해버렸다. 일이 이쯤에서 끝났다면 난 천사를 운운하지 않았을것이다. 문제는 이튿날 이 교수는 감기약을 사서 그 학생한테 선물했다는것이다. 거짓말을 한 학생을 감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그 교수가 이런 “술수”와는 너무나 먼 바른 성품의 소유자였다. 한번은 우리 대학교의 미국초빙교수들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공항까지 바래다드리게 되였다. 공항에서 대기하고있노라니 곳곳에서 리별을 앞두고 울먹이는 사람들이 눈에 안겨왔다. 인간이 살면 몇해를 산다고 왜 저리 만났다 헤여지면서 애닯게 난리들인지… 갑자기 내가 배웅하는 이 일흔에 가까운 할머니교수들과도 이 생애 다시 만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짠해졌다. 우주속에 인간이란 보잘것 없는 생물들이 참으로 허망하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그들먹이 눈확에 차올랐다. 그런데 내가 자신들과의 리별을 앞두고 슬퍼하는줄로 오해한 교수들도 덩달아 눈굽을 찍으며 내 등을 다독여주었다. 나중에 이메일로 계속 연락하자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되려 나를 위안하는것이였다. 나의 눈물은 그다시 순수했다고 할수 없었지만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또 한번 나를 감동시켰다. 어느날 미국에서 정교하게 포장한 예쁜 선물이 내앞으로 도착했던것이다. 그날 나의 예쁘고 순수한 마음에 감동받았다는 메모와 함께. 중국에 있을 때 그냥 핼로우정도의 가벼운 인사만 주고받던 사이였는데도 나의 작은 마음에 감동받고 또 거기에 감사할줄 아는 고운 심성의 소유자였던것이다. 또 한번은 내가 누군가 나에게 부탁한 일을 새까맣게 까먹어버린적이 있었다. 그가 나의 사무실에 당도했을 때 난 속으로 변명거리부터 찾았다. 딱히 떠오르는건 없고 해서 요새 일본류학을 준비중인데 바빠서 미처 못했으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튿날, 그가 돈 이천원을 들고와서 적지만 일본류학에 보태써라 할줄이야. 너무나 낯 뜨거워지는 순간이였다. 그의 돈을 밀막는 내 몸짓도 그렇게 초라할수가 없었다. 받을수 없다고, 일본류학은 아직 그냥 생각중이라고 했더니 언젠간 일본에 갈 일이 있을거라면서 그때 다시 보태써라는것이였다. 난 일단 그 돈을 받았다. 그의 순수한 마음을 어지럽히고싶지 않아서였다. 그의 진심어린 얼굴을 마주하면서 난 소위 대학교에서 근무한다는 작자가 거짓말만 반지르르하게 한다는 사실을 정말 들키고싶지 않았다. 한순간의 변명거리가 나를 궁지에서 구해낸것이 아니라 결국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나에게 큰 고민거리만 지워준셈이 되였다. 솔직히  난 남들의 눈에 비쳐지는 나를 되도록이면 순수하고 깨끗하게 보일려고 신경쓴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고싶었다. 티없이 맑은 마음으로 명랑하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 리해하고 받아들이며 살고싶었다. 그러나 난 하루에도 여러번 내 주변을 어슬렁대는 거짓말과 가식 그런것들과 씨름질하며 피해의식에 속상해하고 또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시를 세운다. 이젠 무심코 듣는 말 한마디에도 거짓말이 솔솔 새는듯하고 방긋 웃는 얼굴에도 가식이 풍기는듯하다. 그래서 어찌보면 일상이 돼버리고 습관처럼 들러붙은 가식들을 뚫어보기 위해 혈안이 된 나는 오늘도 힘에 부친다. 지친다. 수판알을 튕기기 너무 힘들다. 무엇이나 따지고 캐고 그렇게 힘들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모든걸 털어버리고 마음을 비워도 너무나 잘 굴러가는 너도 나도 천사인 파라다이스에 살고싶다. 조만간 나는 그 천사한테서 받은 돈으로 일본려행을 떠날것이다. 그리고 백설을 떠인 후지산이 예쁘게 박힌 카드 한장을 사서 오래도록 련락하지 않고 살았던 그에게 부쳐줄것이다. 나의 소중한 천사에게, 하고 서두를 뗀 카드를 말이다.     연변일보 해란강부간 2011.4.1
3    맥주 반병과 삶의 무게 댓글:  조회:1475  추천:2  2015-01-15
맥주 반병과 삶의 무게 리련화 붉은 등에 차가 십자거리앞에 멈춰섰다. 꽤 지루하게 기다려야 할것같아서 차창밖을 구경하는데 앞쪽 십자거리에 맥주병 한상자가 산산조각이 나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중 한병은 멀쩡한듯 맥주가 조금 남아있는채로 세워져있었다. 처참한 광경에 여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것일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노란옷의 한 청소공이 비자루를 들고 스적스적 걸어왔다. 나는 숨죽이고 그를 주시했다. 그는 맥주병을 뚫어지라 내려다보더니 급기야 손을 뻗어 그 맥주병을 주어들었다. 맥주병을 한쪽 눈에 대고 그 속을 들여다보더니 이물질이 없음을 확인하자 곧 주저않고 입가에 가져다대고 꿀껄꿀꺽 들이키는것이였다. 다행히 병아구리는 깨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그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나는 당황하여 급히 눈길을 다른데 돌렸다. 술 몇모금이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자 그제야 주변의식을 하는 청소공, 다행히 그의 집요하던 눈길이 내 얼굴에서 떠났고 그는 길가로 피해서서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나는 쉽사리 맥주 반병의 충격에서 헤여나올수가 없었다. 그 충격은 생각밖에 꽤 오래가서 며칠후 노래를 듣다가 “등이 휠것같은 삶의 무게...”라는 가사가 흘러나올때  그만 울컥 하고 눈물을 쏟고 말았다. 길가에 버려진 맥주 한병에 연연하는 사람들을 걱정해줄만큼의 여유는 나에게 없다. 단지 흔연히 길가의 맥주 반병을 마시던 그 청소공과, 그리고 흔연히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나를 사색하게 만드는 멘트였고 그래서 오늘따라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나를 더 생각하게 되는 멘트였기때문이였다. 버려진 맥주를 개의치않고 마시는 그 청소공에게 어쩌면 삶의 무게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맥주 반병의 유혹을 쳐내기엔 그의 갈증이 심했을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찍 내뱉은 침속에 재수없게 걸려든 파리가 죽을둥살둥 퍼덕이지 않는다면 종당엔 침에 묻혀 죽어버리는것처럼, 어쩌면 사람은 죽을때까지 발버둥질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 나이에 삶에 부대낀다고 하면 웃길터지만 그렇게 가까이 다가온 저렴한 유혹에 하나, 둘씩 넘어가다보니 기와 한장 갈기 싫어 대들보를 썩히듯이 꿈따위는 다 개나 줘버리고 게으름이 낳은 자족으로 몸뚱아리만 기름져가는듯싶다. 맥주 반병이 청소공에게 준것은 잠간의 희열이였겠지만 그는 결코 그로 인해 삶의 무게는 덜지 못했을것이다. 연변일보 2015년 1월 14일
2    파라다이스 댓글:  조회:1754  추천:0  2014-12-02
정하린 향수를 좋아하는 나에게 좋다 궂다를 떠나서 “어렸을 때 뭐 냄새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었니?” 하고 벌써 2차원까지 생각해서 묻는 사람이 있다.  2차원은 웬지 불편하고 께름직하다. 단순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나에게 가끔은 “아, 이렇게 심오한 일을 내가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었구나”하고 공연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때문이다.  난 단순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이였다.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느끼고 그렇게 가볍게 살았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나같은 단순한 텀벙이에게 문을 열어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장보러 가면 항상 손 크게 푹푹 얹어주는가싶어서 단골로 다녔던 조선족아줌마는 나중에 우연찮게 알고보니 저울눈을 속이는것으로 내 잔돈들을 가무려먹었고 니가 최고야! 라는 말을 진심으로 생각했던 나의 뒤통수를 보기 좋게 한매 친 선배는 후에 내가 모든 사람들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게 하는 번거로움을 안겨줬다. 세상은 왁자지껄 잘난체하는 사람들, 내가 아무리 가소로워한들 그들의 것이였고 그래서 어느샌가 나도 없는 밑천으로 그들의 흉내를 내고있었다. 그러다가 난 정말이지, 천사라고밖에 형용할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마치 진펄속에 피여난 련꽃처럼 깨끗하고 순수했으며, 세속에 물젖지 않은 단순한 사고방식을 갖고있었다. 대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의 사무실에 들린 교수와 학생, 공교롭게 학생은 방금전 그 교수의 수업을 빼먹은터였다. 방금전까지 멀쩡하던 학생은 갑자기 안 나오는 가짜기침(누가 들어도 그것은 마른기침이였다.)을 쿨럭대며 간간히 말사이에 추임새처럼 넣어가며 감기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난 그 교수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 궁금했다. 학생들의 그런 거짓말을 많이 보아왔기에 나 같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것이였기때문이다. 뜻밖에 그 교수는 진심으로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리해한다고 했다. 더 이상 다른것은 묻지 않았다. 그냥 편히 휴식하라고만 했다. 거짓말에 속은것일가 아니면 더 이상 헤집기 싫어서일가. 그의 주변에 거짓말쟁이가 없어서일가 아니면 거짓말쟁이와 상종하고싶지 않아서였을가. 난 그중 하나일것이라 제멋대로 추측해버렸다. 일이 이쯤에서 끝났다면 난 천사를 운운하지 않았을것이다. 문제는 이튿날 이 교수는 감기약을 사서 그 학생한테 선물했다는것이다. 거짓말을 한 학생을 감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그 교수가 이런 “술수”와는 너무나 먼 바른 성품의 소유자였다. 한번은 우리 대학교의 미국초빙교수들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공항까지 바래다드리게 되였다. 공항에서 대기하고있노라니 곳곳에서 리별을 앞두고 울먹이는 사람들이 눈에 안겨왔다. 인간이 살면 몇해를 산다고 왜 저리 만났다 헤여지면서 창자를 끊고 난리들인지… 갑자기 내가 배웅하는 이 일흔에 가까운 할머니교수들과도 이 생애 다시 만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짠해졌다. 우주속에 인간이란 보잘것 없는 생물들이 참으로 허망하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그들먹이 눈확에 차올랐다. 그런데 내가 자신들과의 리별을 앞두고 슬퍼하는줄로 오해한 교수들도 덩달아 눈굽을 찍으며 내 등을 다독여주었다. 나중에 이메일로 계속 연락하자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되려 나를 위안하는것이였다. 나의 눈물은 그다시 순수했다고 할수 없었지만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또 한번 나를 감동시켰다. 어느날 미국에서 정교하게 포장한 예쁜 선물이 내앞으로 도착했던것이다. 그날 나의 예쁘고 순수한 마음에 감동받았다는 메모와 함께. 중국에 있을 때 그냥 핼로우정도의 가벼운 인사만 주고받던 사이였는데도 나의 작은 마음에 감동받고 또 거기에 감사할줄 아는 고운 심성의 소유자였던것이다. 또 한번은 내가 누군가 나에게 부탁한 일을 새까맣게 까먹어버린적이 있었다. 그가 나의 사무실에 당도했을 때 난 속으로 변명거리부터 찾았다. 딱히 떠오르는건 없고 해서 요새 일본류학을 준비중인데 바빠서 미처 못했으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튿날, 그가 돈 이천원을 들고와서 적지만 일본류학에 보태써라 할줄이야. 너무나 낯 뜨거워지는 순간이였다. 그의 돈을 밀막는 내 몸짓도 그렇게 초라할수가 없었다. 받을수 없다고, 일본류학은 아직 그냥 생각중이라고 했더니 언젠간 일본에 갈 일이 있을거라면서 그때 다시 보태써라는것이였다. 난 일단 그 돈을 받았다. 그의 순수한 마음을 어지럽히고싶지 않아서였다. 그의 진심어린 얼굴을 마주하면서 난 소위 대학교에서 근무한다는 작자가 거짓말만 반지르르하게 한다는 사실을 정말 들키고싶지 않았다. 한순간의 변명거리가 나를 궁지에서 구해낸것이 아니라 결국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나에게 큰 고민거리만 지워준셈이 되였다. 솔직히  난 남들의 눈에 비쳐지는 나를 되도록이면 순수하고 깨끗하게 보일려고 신경쓴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고싶었다. 티없이 맑은 마음으로 명랑하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 리해하고 받아들이며 살고싶었다. 그러나 난 하루에도 여러번 내 주변을 어슬렁대는 거짓말과 가식 그런것들과 씨름질하며 피해의식에 속상해하고 또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시를 세운다. 이젠 무심코 듣는 말 한마디에도 거짓말이 솔솔 새는듯하고 방긋 웃는 얼굴에도 가식이 풍기는듯하다. 그래서 어찌보면 일상이 돼버리고 습관처럼 들러붙은 가식들을 뚫어보기 위해 혈안이 된 나는 오늘도 힘에 부친다. 지친다. 수판알을 튕기기 너무 힘들다. 무엇이나 따지고 캐고 그렇게 힘들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모든걸 털어버리고 마음을 비워도 너무나 잘 굴러가는 너도 나도 천사인 파라다이스에 살고싶다. 조만간 나는 그 천사한테서 받은 돈으로 일본려행을 떠날것이다. 그리고 백설을 떠인 후지산이 예쁘게 박힌 카드 한장을 사서 오래도록 련락하지 않고 살았던 그에게 부쳐줄것이다. 나의 소중한 천사에게, 하고 서두를 뗀 카드를 말이다.     연변일보 해란강부간 2011.4.1 [출처] 파라다이스|작성자 정하린  
1    집으로 향한 길 댓글:  조회:1695  추천:1  2014-12-02
가볍다, 가볍다, 가볍다. 날듯한 이 발걸음은 나의것이였던가, 이렇게 사뿐할수가. 계단을 내려오는 내 몸이 통통거린다. 대추빛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란간이 속살을 드러낸채 고풍스럽다. 그 란간너머 아스라히 멀리 아래로 주차장엔 장난감처럼 보이는 차들이 비뚤비뚤 대렬을 맞추고있다. 그리고 그 위로 해살이 반짝거리며 이슬처럼 구을어다닌다. 건물 북쪽에 붙은 비상계단에는 상쾌한 바람이 분다, 간지럽다, 블라우스가 팔락인다, 침침했던 기분도 덩달아 팔락인다. 아까는 잠깐 망설였었다. 엘리베이터와 건물밖 비상계단으로 갈라지는 복도에서. 그러다가 꼭대기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내가 서있는 층에 미처 도착하기전에 왜 그랬던지 등을 돌려버렸다. 계단으로 통하는 육중한 철문은 누군가가 활짝 열어놓았고 그속으로 맞은켠 건물이 해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빠금히 들여다보고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그쪽으로 다가가는 나에게 해빛이 한뼘한뼘 다가온다.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파아란 하늘이 보인다.  17층에서 땅에 닿기까지 불과 몇분, 이런 기분전환의 타임머신이 우리 회사 건물에 있었던가, 다시 올려다본다. 지그재그로 꺾인 비상계단은 바로 어릴적 읽었던 동화속 어느 신비한 옷장속에 감춰진 또다른 세계로 통하는 비밀문이다. 옷장속 비밀문을 갓 기여나온듯, 내가 매일 지나쳤던 풍경들임에도 오늘따라 새롭다. 나는 걷는다, 날듯이 걷는다. 매일같이 오도카니 서서 기다리던 버스정류소를 지나친다. 돌아보니 일원짜리 지페들이 거기에 줄느런히 서있다, 이제나저제나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이 여유롭지만은 않아보인다. 다시 앞으로 걷는다. 땅을 내려다본다. 굽이 낮은 나의 까만 신발, 동그라니 귀여운 신코에 붙어있는 나비장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풀거린다. 인행도옆 콩크리트로 쌓아올린 반메터 높이의 화단에 이름모를 보라빛 잔꽃들, 그토록 수수하게 생겼음에도 싱그럽다못해 뽐내듯이 보인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들의 바탕색이 되여주는 록음들도 묵묵히 그러나 놀라웁게도 화사한 빛을 뿜고있다. 생명의 싱그러움은 늘 그렇듯 보기가 좋다, 눈길이 간다. 같이 있으면 힘을 느끼고 용기를 가지게 된다. 오늘 이렇게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 그 양켠엔 선물꾸러미들이다. 집으로 향한 길, 여직 그것에 숙명처럼 길들여져왔고 그만큼 무덤덤했다. 오늘 나의 이 작은 아날로그적인 시도가 나에게 이렇게 새로운 발견을 부여했음이 놀라웁다. 우리 회사 건물 북쪽벽에 붙어있는 비상계단처럼, 분명 거기에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이용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다. 오늘부터 걸어서 퇴근하기다! 자근자근 흙을 밟으면서 나의 시야속에 안겨드는 풍경들에 감사해할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것이 사람의 본능이라 하지만 안일한 생활은 권태를 낳기 십상이다. 반복적이고 무조건적인 생활은 가끔씩 일탈을 꿈꾸게도 한다. 그래서 그럴듯해보이는 미래를 핑게대고 어딘가로 떠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 마을을 지나치면 이렇게 아름다운 화원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선물이다. 언제나 잃고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 우리는 참 바보스럽지 아니한가. 이제야 휑뎅그레한 마당에 서서 어렸을적 명절때마다 한구들 넘는 식구들이 오구작작 화토치기를 하던 그때를 하염없이 그리워한다. 앞켠에 무언가 좋은것이 있을줄 알고 달려 온 길 내내 짐보따리 한귀퉁이로 시간이 줄줄 새는것도 모르고, 그래서 짐이 점점 가벼워지는줄로만 알고 멋모르고 좋아했었다. 그러나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보니 손을 뻗어 닿을수 있는 지척마다 진풍경임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양볼도 이제는 발가우리해졌을거다. 약동하는 생명만큼 섹시한것이 또 있을가, 가슴을 펴고 다리에 힘을 준다. 오늘 나도 내게 주어진 아름다운 풍경에 어울리게 싱그러워지고싶다. 나는 안다, 나의 집은 애초에 내가 그토록 원했던것이고 그것은 또 내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지키면서 나는 어쩌면 거미처럼, 연어처럼 추하게 파먹히고 말라가거나 비장한 최후를 맞을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집은 또한 나를 감싸주는 커다란 우산이다. 거기서 나는 비를 피하기도 하고 퍼더버리고 울기도 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쥐여뿌리기도 한다. 그래도 집은 나의 모든것을 품어 달래준다. 세상 모든것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오직 집만 있다면, 그 울타리속에서 나는 아픔을 치유할수 있을것이다. 집은 내 육체와 영혼의 유일한 안식처이다. 미여터질듯 손님을 꽉 박아실은 버스가 나를 앞지르는듯싶더니 신호등에 걸렸다. 그앞을 활개치며 걸어지난다. 나를 따르는 버스속 시선들이 느껴진다. 내가 멀리 나아갈때까지 버스는 나아갔다 멈추기를 반복하지만 신호등앞 차의 대렬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쉽게 버리고, 쉽게 헤여지고, 쉽게 보내고. 그런 쉬운 선택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그렇다, 가족의 무게에 비해 그것을 버린다는것은 너무나 가벼운 선택이다. 오죽하면, 이라고 안위하기에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렸고 무엇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그 패인 자리가 너무 크다. 얼마전 남극의 펭귄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수컷은 암컷으로부터 알을 받아 장장 2개월동안 먹지도 않고 새끼를 부화시키며 암컷을 기다린다. 그리고 먼 바다로 돌아가 식량을 구해온 어미는 수컷이 부화시킨 새끼를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몇달동안 발등에서 정을 붙인 새끼를 차마 암컷에세 내여주지못해 머밋거리는 수컷, 눈물겹고 경이로왔다. 한낱 미물인 펭귄이 준 메시지는 너무나 강렬해서 보는 내내 숙연한 기분이였다. 집은 영원한 파라다이스이다. 가령 집과 그 무엇을 놓고 저울질하게 된다면 최소한 나는 집을 향한 동경, 그 원초적본능을 첫자리에 놓을것이다.  이미 버스는 내 뒤에 처졌고 나는 나의 선택이 옳았음에 안위를 받는다. 어느새 마지막 십자가를 건느고 멀리 조그맣게 나의 보금자리가 보인다. 거기엔 나를 기다리는 나의 집과 사랑스런 가족이 있을것이다. 신발장앞엔 가지런히 끌신이 놓여있을것이고 싱크대옆엔 노란 앞치마가 걸려있을것이며 오늘만큼만 나보다 일찍 집에 도착한 남편이 나를 기다리며 샤워기의 스위치를 켜놓았을것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토끼같은 손녀를 돌봐준 친정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고있을것이다. 아, 이렇게 따뜻하고 평화로운 나의 세상이여, 내 삶의 전부가 새삼스레 소중해짐은 오늘 내가 얻은 그 무엇보다도 큰 깨달음이리라. 그리고 소중한것투성이인 나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늦게나마 나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대견스럽다. 북적이는 도심이 뒤로 멀어진다. 심장박동이 가볍게 느껴지고 발걸음은 의연히 활기차다. 뽀송뽀송 돋아나는 땀도 저녁바람이 지체할세라 다 걷어가버렸다.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집으로 향한 나의 발걸음은 가볍다. 나는 마치 바다에서 먹이를 구해서 교대하러 돌아오는 암펭귄인양 씩씩하고 활기차며 잔뜩 신이 나있다.  집은 영원한 파라다이스이고 집으로 향한 길에는 소박한 바램들이 있다. 나를 따르는 발자국마다에 환희가 송이송이 피여나고 그 싱그러운 내음은 기필코 내 주변에 싱그러운 파문을 일으킬것이다. 집으로 향한 길은 축복이다. 나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음에 감사한다.     《도라지》 2012년 제4기 [출처] 집으로 향한 길|작성자 정하린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