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다, 가볍다, 가볍다.
날듯한 이 발걸음은 나의것이였던가, 이렇게 사뿐할수가. 계단을 내려오는 내 몸이 통통거린다. 대추빛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란간이 속살을 드러낸채 고풍스럽다. 그 란간너머 아스라히 멀리 아래로 주차장엔 장난감처럼 보이는 차들이 비뚤비뚤 대렬을 맞추고있다. 그리고 그 위로 해살이 반짝거리며 이슬처럼 구을어다닌다. 건물 북쪽에 붙은 비상계단에는 상쾌한 바람이 분다, 간지럽다, 블라우스가 팔락인다, 침침했던 기분도 덩달아 팔락인다.
아까는 잠깐 망설였었다. 엘리베이터와 건물밖 비상계단으로 갈라지는 복도에서. 그러다가 꼭대기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내가 서있는 층에 미처 도착하기전에 왜 그랬던지 등을 돌려버렸다. 계단으로 통하는 육중한 철문은 누군가가 활짝 열어놓았고 그속으로 맞은켠 건물이 해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빠금히 들여다보고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그쪽으로 다가가는 나에게 해빛이 한뼘한뼘 다가온다.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파아란 하늘이 보인다.
17층에서 땅에 닿기까지 불과 몇분, 이런 기분전환의 타임머신이 우리 회사 건물에 있었던가, 다시 올려다본다. 지그재그로 꺾인 비상계단은 바로 어릴적 읽었던 동화속 어느 신비한 옷장속에 감춰진 또다른 세계로 통하는 비밀문이다.
옷장속 비밀문을 갓 기여나온듯, 내가 매일 지나쳤던 풍경들임에도 오늘따라 새롭다. 나는 걷는다, 날듯이 걷는다. 매일같이 오도카니 서서 기다리던 버스정류소를 지나친다. 돌아보니 일원짜리 지페들이 거기에 줄느런히 서있다, 이제나저제나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이 여유롭지만은 않아보인다.
다시 앞으로 걷는다. 땅을 내려다본다. 굽이 낮은 나의 까만 신발, 동그라니 귀여운 신코에 붙어있는 나비장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풀거린다. 인행도옆 콩크리트로 쌓아올린 반메터 높이의 화단에 이름모를 보라빛 잔꽃들, 그토록 수수하게 생겼음에도 싱그럽다못해 뽐내듯이 보인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들의 바탕색이 되여주는 록음들도 묵묵히 그러나 놀라웁게도 화사한 빛을 뿜고있다. 생명의 싱그러움은 늘 그렇듯 보기가 좋다, 눈길이 간다. 같이 있으면 힘을 느끼고 용기를 가지게 된다. 오늘 이렇게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 그 양켠엔 선물꾸러미들이다.
집으로 향한 길, 여직 그것에 숙명처럼 길들여져왔고 그만큼 무덤덤했다. 오늘 나의 이 작은 아날로그적인 시도가 나에게 이렇게 새로운 발견을 부여했음이 놀라웁다. 우리 회사 건물 북쪽벽에 붙어있는 비상계단처럼, 분명 거기에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이용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다. 오늘부터 걸어서 퇴근하기다! 자근자근 흙을 밟으면서 나의 시야속에 안겨드는 풍경들에 감사해할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것이 사람의 본능이라 하지만 안일한 생활은 권태를 낳기 십상이다. 반복적이고 무조건적인 생활은 가끔씩 일탈을 꿈꾸게도 한다. 그래서 그럴듯해보이는 미래를 핑게대고 어딘가로 떠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 마을을 지나치면 이렇게 아름다운 화원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선물이다. 언제나 잃고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 우리는 참 바보스럽지 아니한가. 이제야 휑뎅그레한 마당에 서서 어렸을적 명절때마다 한구들 넘는 식구들이 오구작작 화토치기를 하던 그때를 하염없이 그리워한다. 앞켠에 무언가 좋은것이 있을줄 알고 달려 온 길 내내 짐보따리 한귀퉁이로 시간이 줄줄 새는것도 모르고, 그래서 짐이 점점 가벼워지는줄로만 알고 멋모르고 좋아했었다. 그러나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보니 손을 뻗어 닿을수 있는 지척마다 진풍경임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양볼도 이제는 발가우리해졌을거다. 약동하는 생명만큼 섹시한것이 또 있을가, 가슴을 펴고 다리에 힘을 준다. 오늘 나도 내게 주어진 아름다운 풍경에 어울리게 싱그러워지고싶다.
나는 안다, 나의 집은 애초에 내가 그토록 원했던것이고 그것은 또 내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지키면서 나는 어쩌면 거미처럼, 연어처럼 추하게 파먹히고 말라가거나 비장한 최후를 맞을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집은 또한 나를 감싸주는 커다란 우산이다. 거기서 나는 비를 피하기도 하고 퍼더버리고 울기도 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쥐여뿌리기도 한다. 그래도 집은 나의 모든것을 품어 달래준다. 세상 모든것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오직 집만 있다면, 그 울타리속에서 나는 아픔을 치유할수 있을것이다. 집은 내 육체와 영혼의 유일한 안식처이다.
미여터질듯 손님을 꽉 박아실은 버스가 나를 앞지르는듯싶더니 신호등에 걸렸다. 그앞을 활개치며 걸어지난다. 나를 따르는 버스속 시선들이 느껴진다. 내가 멀리 나아갈때까지 버스는 나아갔다 멈추기를 반복하지만 신호등앞 차의 대렬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쉽게 버리고, 쉽게 헤여지고, 쉽게 보내고. 그런 쉬운 선택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그렇다, 가족의 무게에 비해 그것을 버린다는것은 너무나 가벼운 선택이다. 오죽하면, 이라고 안위하기에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렸고 무엇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그 패인 자리가 너무 크다.
얼마전 남극의 펭귄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수컷은 암컷으로부터 알을 받아 장장 2개월동안 먹지도 않고 새끼를 부화시키며 암컷을 기다린다. 그리고 먼 바다로 돌아가 식량을 구해온 어미는 수컷이 부화시킨 새끼를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몇달동안 발등에서 정을 붙인 새끼를 차마 암컷에세 내여주지못해 머밋거리는 수컷, 눈물겹고 경이로왔다. 한낱 미물인 펭귄이 준 메시지는 너무나 강렬해서 보는 내내 숙연한 기분이였다. 집은 영원한 파라다이스이다. 가령 집과 그 무엇을 놓고 저울질하게 된다면 최소한 나는 집을 향한 동경, 그 원초적본능을 첫자리에 놓을것이다.
이미 버스는 내 뒤에 처졌고 나는 나의 선택이 옳았음에 안위를 받는다. 어느새 마지막 십자가를 건느고 멀리 조그맣게 나의 보금자리가 보인다. 거기엔 나를 기다리는 나의 집과 사랑스런 가족이 있을것이다. 신발장앞엔 가지런히 끌신이 놓여있을것이고 싱크대옆엔 노란 앞치마가 걸려있을것이며 오늘만큼만 나보다 일찍 집에 도착한 남편이 나를 기다리며 샤워기의 스위치를 켜놓았을것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토끼같은 손녀를 돌봐준 친정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고있을것이다. 아, 이렇게 따뜻하고 평화로운 나의 세상이여, 내 삶의 전부가 새삼스레 소중해짐은 오늘 내가 얻은 그 무엇보다도 큰 깨달음이리라. 그리고 소중한것투성이인 나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늦게나마 나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대견스럽다.
북적이는 도심이 뒤로 멀어진다. 심장박동이 가볍게 느껴지고 발걸음은 의연히 활기차다. 뽀송뽀송 돋아나는 땀도 저녁바람이 지체할세라 다 걷어가버렸다.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집으로 향한 나의 발걸음은 가볍다. 나는 마치 바다에서 먹이를 구해서 교대하러 돌아오는 암펭귄인양 씩씩하고 활기차며 잔뜩 신이 나있다.
집은 영원한 파라다이스이고 집으로 향한 길에는 소박한 바램들이 있다. 나를 따르는 발자국마다에 환희가 송이송이 피여나고 그 싱그러운 내음은 기필코 내 주변에 싱그러운 파문을 일으킬것이다. 집으로 향한 길은 축복이다. 나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음에 감사한다.
《도라지》 2012년 제4기
[출처] 집으로 향한 길|작성자 정하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