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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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평] 꿈꾸는 지란지교
2019년 07월 14일 09시 04분  조회:28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꿈꾸는 지란지교

최순희

 

수필가 남영도, 그녀가 은퇴를 하고 편집일에서 손을 놓으면 몹시 한가할 줄로 알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빗나가도 한참이나 빗나갔다. 요즘 따라 그녀는 너무 바쁘다. 글을 쓰랴 사회활동을 하랴 가야금을 배우랴 려행을 다니랴. 얼마 전 시간이 한가해서 모처럼 만나 차나 한잔 하자고 윙크했더니 글쎄 원고 때문에 시간이 안된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 마시고 말할 수 있는 친구…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지란지교의 그리운 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그러던 그녀가 작가평을 써줄 수 없겠느냐며 똑똑똑 대화방을 노크해왔다. 편하게 가볍게 써달라는 주문과 함께 문학지 톱을 장식할 수필 세편이 날아왔다. 6월의 무더위에 완성된 세편의 수필은 바로 내 값비싼 데이트 요청을 무산시킨 장본인이였다. 마침 학기말이라 졸업에 평가에 심사에… 내 코가 석자다. 그런데 아주 흔쾌히 수락해버린 나는 지금 야심한 이 시각 아래 자판을 두들겨대고 있다.

꽤 오래동안 이런저런 리유로 수필 한편 못 쓰고 있다가 한 시인의 산문집을 받아 읽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글 쓸 용기를 놓아버린 요즘이다. 이 와중에 무거운 내 붓을 가볍게, 편하게 움직이게 해준 작가평 그리고 수필 세편.

<치타치타>, <마음의 금선을 튕기며>, <독서와 려행이라는 듀엣>을 읽노라면 여느 수필과 마찬가지로 마냥 그녀와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는 느낌이다. 아무런 리유, 목적 없이도 식구처럼 마주할 수 있는 편안함, 만남에 계산기를 두드린다면 얼마나 삭막할가. 옷차림이 편하고 덧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편하고 주고받는 대화가 또 그렇게 편하다.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는 반백의 세월을 훨 넘은 녀인, 우리는 한가하게 옛추억을 들춰내서 젊은 시절을 려행하고 또 나이 만큼씩 늙어가는 것에 즐겁게 웃는다. 두세시간을 함께 있다가도 갈라질 때가 되면 못다한 말은 다음에 하자면서 어이없이 함께 다시 웃는다.

우리의 수다는 수필과의 해후로 더 많이 이루어졌다. 2001년,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어디서 마주앉았던지 내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그녀의 두뇌센터에는 패스트푸드점이라고 입력되였다. 수필 한편을 봐달라며 내놓는데 〈문학과 음악 사이〉였다. 제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이’보다는 ‘흐를 때’가 좋겠다고 제안했다.  〈문학의 곁에 음악이 흐를 때〉, 근사하지 않는가. 당시에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가 있었고 그 ‘-을 때’의 류행에 따라 〈피아노의 하얀 건반이 까만 건반을 만날 때〉라는 나의 패러디도 있던 터라 ‘사이’보다는 ‘흐를 때’가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해왔다. 나중에 작품집 출간을 앞두고 여러 문인들의 제목 추천 공방전에서 나의 ‘흐를 때’는 그 로출과 섹시미를 자랑하는 ‘가슴이 큰 녀자’ 적수를 물리치고 그녀 수필집 제목으로 당당히 한자리를 하게 되였다. 영광이다.

수필집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여기에도 사연은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수십편의 글을 쓰고 상도 받고 책도 나올 법한데 남의 책을 만들기에 여념없이 지내면서 자기 수필집 출간을 먼 후날 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삼지마을문학동호회 회장으로 다양한 문학행사를 조직하느라 분주했던 터라 자기 책은 념두에도 없는듯. 수필을 주제로 47세 늦깎이에 석사학위까지 받은 그녀가 아니던가. 남의 일 같지 않아 해를 넘기기 전에 수필집을 탈고할 것을 권고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아뿔싸, 이러다간 퇴직하기 전에 자기 책은 한권도 못 내겠다며 서두르기 시작했다. 수필집이 나온 지 몇년이 지난 후에도 늘 내 권고가 아니였다면 자기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를 일이라고, 자기가 다 써서 출판하고도 고맙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평을 계기로 이번에 그녀의 수필집을 다시 펼쳐들고 ‘책머리에’를 보았더니 이런, 아무리 두눈 씻고 찾아도 정작 고마운 이들 속에 내 이름은 없는 게 아닌가? 사연 깊은 이 공로가 이토록 비참히 매장되다니… 달콤한 복수의 기회, 드디여 맛있는 음식 한턱 갈취해낼 기회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 없는 성품,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결같기’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여기저기 기웃거린 내 삶과는 완연 다르게 한우물 파기만 고집해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직장에서 원고지와 컴퓨터를 마주하고 32년을 지내오다니, 경건해진다. 32년 편집생애에 그녀가 만든 책 속에는 내 수필집과 어학전공저서도 들어있다. 수필집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예쁜 하드커버로 나와서 주위에서는 한국에서 출판한 줄 알았다고 했다. 

가끔 전화 한통에도 나는 그녀를 편심이 아니라 학자에 더 가깝게 느끼군 한다. 꽉 찬 나이에 학위공부를 하는 그녀를 보며, 졸업론문을 쓰기 앞서 통과해야 할 외국어시험에서 고배를 마시는 그녀를 보며, 만날 때면 오가는 길에서도 외국어 듣기 공부를 부지런히 해오는 그녀를 보며 “참, 좀 일찍 시작하지… 그랬더면 대학교 교수도 하고 남을 텐데…”라는 말이 목구멍을 간지럽히군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번도 입밖에 낸 적은 없다. 그녀에게 있어서 교수가 편심보다 낫다는 도리가 없을 줄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진지한 성품, 그녀는 시간도 약속도 어기는 일이 없다. 원고약속 마감일자가 금요일이라면 나 같은 경우라면 토요일이나 일요일 하루이틀은 쉽게 넘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아니다. 한 미용실을 15년 넘게 다니고 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영양제를 먹어도 같은 회사 걸 10년 넘게 먹는다.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개그로 웃기기도 잘하는 그녀지만 작품에서는 또 그토록 진지하다. 그래서 오히려 어느 작품이나 똑같은 품질보증서를 달고 하나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꽃피는 봄의 도시에서 사는 것은 물론 엄청 좋은 일이지만 사계절 다 그 속에 있다면 가끔은 엄동의 설한도 혹서의 폭염도 한두번 쯤 그리는 게 인지상정일 터… 그래서 따뜻한 감동을 안겨주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유희 같은 재미 비슷한 그것이 살짝 그립기도 하다. 

수필가 그녀는 음악과 백년가약을 맺고 있다. 목청은 어이 그토록 구성지며 프로가수도 아니면서 가슴엔 어이 그렇게 깊은 공명기관을 품고 있는 것일가? 나보다 1년 후배라 학창시절 3년을 함께 같은 학과에 있으면서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도대체 프로를 뺨칠 그 노래실력을 어떻게 어디에 숨긴 것일가. 그녀의 주제곡들을 꿰여서 <사랑의 미로>를 <백만송이 장미>로 수놓은 <선구자>라고 이름했더니 딱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래도 변하지 않고 이 몇곡이다가 나중에 <그리운 금강산>, <워 아이니 쭝궈>가 더해졌을 뿐 역시 <일편단심 민들레야>가 따로 없다.

변함없이 진솔한 그녀는 남에 대한 칭찬에 절대 린색하지 않다. 그러나 절대 진정성을 쏙 빼낸 그런 칭찬을 하지 않는다. 령혼 없는 칭찬은 그냥 자음과 모음, 소리의 조합일 뿐이 아닌가. 따뜻한 칭찬에 인색하지 않으면서도 아니다싶을 때면 또 따끔한 일침을 주저하지 않는다. 애심녀성수필수기공모에서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글들을 다듬고 보듬어주고 저자들을 따뜻하게 격려해주는가 하면 원칙 앞에서는 인정사정을 보지 않는 그녀다.

수필을 사랑하는 모임의 ‘수사모’ 녀인, 우리는 품평회도 함께 가고 민국의 옛날골목도 함께 누비고 보석 전시회도 함께 들린다. 스테이크를 자를 때면 당연히 녀왕처럼, 차를 마실 때에는 은근히 백작부인처럼, ‘처럼’은 ‘것처럼’이 아니고 ‘척’이나 ‘체’와 차원이 다르지만 우아한 척, 품위 있는 척해도 인품이 평가절하되지 않는 만남, 와인 몇잔에 옛사랑이 찰랑거리고 맥주 몇캔에 가슴이 울렁울렁하더라도 흠이 안되는 만남. 이런 인연으로 가까워진 지도 어언 30년이다.

지란지교는 《명심보감》의 교우편에 나온다고 한다. 찾아보니 교우와 관련된 사자성어에는 죽마고우, 관포지교, 막역지우, 수어지교, 문경지교, 백아절현 등등 더 있다. 그런데 다시 봐도 유난히 지란지교가 눈에 들어오는 까닭, 그 리유는 무엇일가? 

가벼운 마음으로 평안한 이 밤 붓을 놓는다.

출처:<장백산> 2018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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