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전까지 우리 작가들은 디아스포라(离散)의 삶을 살아왔다. 그들은 항일투쟁의 전장에서 풍찬로숙(风餐露宿)하기도 했고 차디찬 감방에서 영어(囹圄)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피로 얼룩진 유작들은 혹은 필사본으로 혹은 해방공간의 자그마한 잡지에 실려 읽혀지기도 했으나 그중 많은 작품들이 인멸되여 문학사에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학철선생이 해방공간 서울에서 쓴 단편들도 제목만 알려지고 작품은 볼 수 없는것들이 더러 있었는데 이번에 연변대학교 김순녀선생이 한국의 고명철교수 등 지기들을 통해 일부 입수해 정리했다. 단편소설 《상흔》은 1946년 5월 10일 《월간 상아탑》제6호에 실린 작품인데 가렬한 전투장면을 핍진하게 그려 현장감이 넘칠뿐만아니라 전투속에서 맺어진 우리 전사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고있다. 김학철연구의 좋은 자료라고 인정되여 원문 그대로 싣는바이다.
우리 문학유산 찾기[1]
오오무라마스오
김학철선생님이 필자에게 보내신 편지가 4통 남아있다. 처음 2통은 《중국작가협의회 연변분회 김학철》로 되여있으며 나중 2통은 연길시 총류가(叢柳街) 2-2-4, 개인주소로 되여있다. 이 4통의 편지를 그대로 묻어두는것이 안타까웠던차에 이번 기회를 통해 공개하기로 하였다.
내가 최초로 연변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1985년 4월부터 86년 4월까지의 1년간이였다. 이 기간 김학철선생님댁에 주 1회씩 드나들면서 선생님의 반생을 록음테이프 10개에 록음하였다. 그 일부는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2》(연변인민출판사)에 역재되여있기도 하다.
첫번째 편지는 1986년 봄 귀국한후, 당시 연길에 데리고 갔던 딸 오오무라 미치노(大村三千野)를 념려해주신 내용의 글이다. 짧은 문장속에 미치노에 대한 자애(慈愛)와 필자에 대한 정애(情愛)가 함께 스며있다.(편지1)
두번째 편지는 1988년 12월 26일에 씌여진것으로, 연길에서 투함(投函)한 편지인데, 당시는 《우편사고》로 인해 한국에서 수취가 불가능한 일이 있었던 시대여서, 선생의 편지를 내가 맡아가지고 갔다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냈다. 그랬더니 금방 한국에서 무사히 편지를 받았다는 통지내용이다. 한국에 보내는 편지를 이런 방법으로 대신 보내드렸던 기억들이 있다.
두번째 편지의 후반내용은, 북경의 중앙민족학원(현재의 중앙민족대학)에서 류학생활을 보내고있었던(현재도 북경 거주) 미치노(三千野)에 대한 배려의 내용이다. 선생님께서 《미치노》라는 이름의 유래를 물으신적이 있는데, 그것이 《삼천리》를 자유롭게 달린다는 의미라고 알려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무릎을 치고 기뻐하시면서 미치노를 더할나위없이 귀애해주셨던것이다. (편지 2)
세번째 편지에는 《제2회 KBS해외동포상 수상자 확정》이라는 KBS의 통지서가 동봉되여있었다. 선생은 이 시기에 《특별상》을 받으셨다. 소개문에 《중국. 작가, 항일투사》로 되여있었다.
이 편지는 94년 7월 1일에 씌여진것으로서, 집사람의 요통을 념려하시면서 약 걱정을 해주신 내용이다.
또 선생님께 선물로 드린 《에도(江戶) 풍령(風鈴)》이 최근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시는 내용도 들어있다. 물론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운 분이시긴 하나, 일본 서민의 생활상과 풍물은 좋아하셨다. 언제였던가 《일본 물건중에 뭔가 원하시는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다음번 올 때 가지고 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황성(荒城)의 달(月)》(일본가곡) 의 오르골(자명금:自鳴琴)과 다이후쿠(大福: 팥이 들어간 찰떡)을 말씀하셨던적이 있다. 오르골은, 일본군과 대치하고있었던 때 야간 심리전의 일환으로 《황성의 달》을 확성기로 틀어서, 일본 병사들을 향수에 잠기게 하여 전투의욕을 잃게끔 한 경험이 있었다고 하시는데, 한편으로는 《황성의 달》이 갖고있는 센티멘탈리즘에도 공명되는바가 있으셨던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다이후쿠도 추억을 되새겨보고싶어서 말씀하신것이였을것이다. 선생님은 8.15 해방으로 이사하야(諫早) 형무소를 나오게 되셨는데, 건국준비위원회가 마련한 목조선(철강선은 어뢰때문에 위험)에 승선하시기전에, 하루동안 자유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거리에서 행상 할머니한테 다이후쿠를 사 드신적이 있는데, 그 맛을 잊을수가 없다는것이셨다. 1993년 선생님이 처음 일본에 오셔서 와세다대학에서 강연을 하셨을 때, 숙소인 도쿄 간다(神田) 한국YMCA의 어느 방에서, 딸이 약속한 그 다이후쿠를 가져다드렸더니, 2개까지만 드시고 3개째는 들지 못하셨다.(편지 3)
네번째 편지는 1995년 7월 17일에 씌여진것이다. 이것은 내가 나가사키(長崎)지방재판소 판결문을 발견해서 복사를 해서 드린적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 일로 야단을 맞고말았던 내용이다. 물론 치안유지법으로 신병이 구속되여있는 상황에서의 재판이, 김학철선생님의 의지를 철저하게 무시한것이니, 신뢰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일본 관헌측이 어떻게 보고있었는가 하는 면에서 참고는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참담했던것이다. 선생님께는 선생님 나름의 생각이 있으셨을것이다. 하지만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1》에 번역 게재되여있는바를 보면, 역시 판결문 찾기 작업은 헛된 고생만은 아니였던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편지 4)
----------------------------------------------------------- * 필자 주 : 이하 4편의 편지중 1과 2는 일본어, 3은 한국어, 4는 한국어 및 일본어로 씌여있다. 한국어 편지내용은 부호를 포함하여 최대한 원문 그대로 수록하되, 띄여쓰기는 현대 한국어맞춤법 규정에 따랐고, 원문속의 한자는 해당 음을 ‘( )’ 속에 병기했다. 원문속의 한자가 중국 간체자인 경우는 현대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로 대체했다. 그외의 원고 상태나 특정용어에 대한 보충설명은 ‘[ ]’로 표기했음을 밝혀둔다.
편지 1 [원문:일본어] 미치노 양은 일본을 출발하던 날, 대설(大雪)로 고생하셨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지 2 [원문:일본어] 9월 서울에 보내주신 편지, 감사 드립니다. 틀림없이 받았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너무도 죄송합니다만, 한번 더 다음 편지를 부탁 드립니다. 『天池(천지)』1월호는 이미 도착했을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모님께도 안부 전해 올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학철 88년 12월 26일
미치노 양 북경 생활, 이젠 익숙해졌나요? 겨울방학 때 일본에 돌아가시면, 동봉한 편지와 사진을 아버님께 전해 드려주세요. 편히 지내시길. 김학철 88년 12월 26일
편지 3 [원문: 한국어] 大村 先生(오오무라 선생님) 내외분께 지난해 주신 편지 받는 길로 집사람이 腰痛(요통)에 가장 좋다는 약― 天麻丸(천마환)(有神效 유신효) 한 小包(소포)를 부치려 했으나 우체국에서 받아주지 않아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麝香(사향). 天麻(천마), 云南白藥(운남백약) 등은 다 금수품목(禁輸品目)에 들어 있다는 겁니다. 금년 여름에 오시면 한 보따리 구해드릴 테니 꼭 오십시오. 三千野(미치노)양은 방학이라 귀국했겠지요. 이곳 河南(하남) 거리에 <<삼천야(三千野) 小吃部(소흘부)>>[경식당]라는 간판이 내걸렸습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着想(착상)이 奇拔(기발)한 간판입니다. 惠贈(혜증)하신 <<江戶(에도) 風鈴(풍령)>>을 방문에 매달았더니 문이 여닫길 적마다 玲瓏(영롱)한 소리를 내 仙境(선경)에 사는것 같더니 어떡하다 鈴(령)에 금이 갔는지 요즘은 濁音(탁음)으로 변해 매우 失望的(실망적)입니다. 내외분께서 내내 건강하시기를 빌고 바랍니다.
김학철 94. 7. 1
편지 4 [원문 : 한국어 및 일본어] 大村 先生 (오오무라 선생님) 내외분께 [이하 한국어] 동경에 체류하는 동안, 폐를 너무 많이 끼쳐 드려, 무어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미치노양은 지금 아르바이트로 여념이 없겠지요. 岩波(이와나미)서점의 大塚(오오츠카)씨에게 大村 先生(오오무라 선생님)을 소개했는데, 련계가 제대로 되셨는지요. 刑事判決書(형사판결서)란 의례 거짓말투성이라는것을 알아 두십시오. 被告(피고) 가 以實直告(이실직고)하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다음 "하물며 증거에∼"부터 일본어] 하물며 증거에 입각한 수사(裏付搜査)가 불가능한 경우, 피고의 공술은 신빙성 제로입니다. 때문에 판결서의 문면을 근거로 전기 같은것이 씌어졌다면 대오류요, 대실례올시다.[다음 "지금 中國과∼"부터 마지막 행까지 한국어] 지금 中國(중국)과 韓國(한국)의 出版社(출판사)들에서 저에게 自傳(자전) (回顧錄회고록)을 써달라는 請託(청탁)이 여러 곳 들어와 있습니다. 考慮(고려)하는 중입니다. 아직까지는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습니다.
이번 訪日(방일)에서는, 일본벗들을 많이 사귀였고, 또 배운것도 여간 많지가 않습니다. 秋子(아키코) 녀사께는 신세를 너무 많이 져놔서, 어쨌으면 좋겠는지 모르겠다고, 집사람이 자꾸 뇌고있습니다.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