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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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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단편] 죄수의사 (김학철) 댓글:  조회:680  추천:0  2015-04-11
죄수의사 김학철                1       내과 의사 현덕순이 반혁명 현행범으로 징역 10년의 판결을 받고 감옥이란데를 오고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사단은 이렇게 났었다. 동료 너덧이 모인 술좌석에서 취중진정발(醉中真正发)로.     《하지만 그가 쓴 은 잘못이 없잖은가.》     한마디를 한것이 어느 고자쟁이의 밀고로 무시무시한 어른들 귀에 입문이 된것이다. 그는 젊은 안해와 어린 자식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우고 등을 밀리워 찦차에 오른던 일이 고대 있었던 일처럼 새삼스럽게 생생히 머리속에 떠올랐다.     (내 일생두 인제 끝장이 났구나!)     이런 절망감이―저기압으로 내는 아궁이의 내굴처럼―그를 사정없이 휩쌌다.     사람을 달달 보끈 두달동안의 입감대(入监队)생활이 겨우 끝이 나서 각 중대에 편입들이 되는데 현덕순이 편입된것은 제3중대―로약대(老弱队)였다. 로약대란 로쇠자, 병약자, 불구자들을 따로 모아놓은 중대였다. 로소도 병약도 불구도 다 아닌 현덕순을 로약대에 편입시킨것은 까닭이 있었다. 궐이 나는 중대의사로 배치한것이다. 죄수 150명으로 편성되는 각 중대에는 의사 하나식이 배치되는데 그 의사는 반드시 복역중의 죄수가 담당해야 하므로 중대의사란 곧 죄수의사였다. 죄수의사의 소임은 《범(犯)》자가 찍힌 위생모, 위생복을 쓰고 입고 그리고 구급가방을 메고 작업을 나가는 중대를 따라다니는것이다. (《범》은 죄수라는 뜻이다.) 전임의사가 감옥위생소로 승급되여가는 까닭에 현덕순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판인데 인계인수를 하면서 신구의사는 간단하게 말마디를 주고받았다.     《당신 무얼루 들어왔소?》     《반혁명으루.》     《반혁명? 반혁명은 본래 중대의사를 시키지 않는 법인데…아마 당신은 특별히 잘 보인 모양이구려.》     《글쎄 모르겠소.》     《얼마 먹었소?》     《10년. 당신은?》     《난 7년…녀자문제루…인제 2년이 좀 더 남았소.》     《그래 어떻소 여기 형편이?…》     《애먹소 이놈의 중대! 맨 병다리, 병신들뿐이니…한번 지내보우, 머리가 세잖나!》     《여기…정치범은 없소?》     《왜 없어. 정치범 30명. 형사범 90명…3대 1인데.》     《청진기는?》     《청진기는 내 이걸 물려줘두 좋겠지만 손때가 묻은거니…내 위생소에 가서 다른걸 하나 타주리다.》     현덕순이 뒤에 떨어져서 천천히 중대안을 한번 돌아보니 아름찼다. 한다리를 관속에 들이민 80살이상의 늙다리가 넷이나 있고 그리고 팔병신, 다리병신이 열이 넘었다.     (이런데서…한두해두 아니구…사람이 어떻게 산담!)     현덕순은 자신의 고된 운명이 새삼스레 저주스러웠다.   2       원망스러우리만큼 작은 강낭떡 한개와 안타까우리만큼 적은 배추국 한그릇을 게눈감추듯 재껴치우기가 바쁘게 벌써 밖에서는     《정렬!》     조장녀석의 웨치는 소리가 났다. 이날의 오전작업이 시작되는것이다. 낡은 재빛의 죄수복을 걸친 늙다리, 병신들이 간수를 향하고 석줄로 정렬을 하는데 현덕순도 구급가방을 걸메고 대렬꽁무니에 가 섰다. 거기가 중대의사의 서는 자리였다. 간수가     《번호!》     구령을 내려서     《하나!》, 《둘!》, 《셋!》, 《넷!》…     불러내려가는중에 별안간 뒤줄에서     《이놈아, 어딜 또 끼여들어!》     《썩 물러나지 못해?》     《왜들 이러우? 나두 일을 나가겠다는데!》     《같잖게 일은 다 뭐냐!》     《다리갱일 분질러놓기전에…냉큼 물러나라!》     《왜들 해살이야? 개코같이! 한번 나간다면 나가는줄 알아!》     《간수님, 이자식이 또 끼여들었습니다! 괴물이 또 끼여들었습니다! 조춘생이가 또 끼여들었습니다!》     왁자지껄 소동이 일어났다.     《그따위 교란분자는 당장…삽가래루 쳐내라!》     《괴물!》     《킥킥!…킥킥…》     간수가 곧 률기를 하고     《조춘생!》     《녜!》     대답을 하였다.     《넌 물러가라. 너 할 일은 없다.》     《아닙니다. 간수님, 전 얼마든지 일을 할수 있습니다. 저런 늙다리들보다 몇곱절 더 잘할수 있습니다. 전 꼭 따라갈랍니다.》     현덕순을 속으로 괴이쩍게 여겼다. 강제로동을 교양개조의 주요수단으로 삼는 감옥에서 일을 나가겠다고 아득바득하는 놈을 못하게 밀막다니!     《간수님, 제발 저를 좀 데리구 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녜 간수님!》     간수가 못마땅스레 미간을 찡그리고 혀를 한번 쯧 차더니 뱉듯이 분부하였다.     《조장, 할수없다. 그대루 데리구 가자.》     《녜!》     《봐라, 간수님이 허락하잖나! 괜히들 중뿔나게 나서서!》     《이놈아, 아가리 닥치구 줄이나 바루 서!》     《녜녜.》     현덕순을 그 조춘생이라는 죄수에게 흥미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동안 유심히 살펴보았다. 작업은 겨울나이남새를 저장한 움을 파는것이였다. 조장이     《야 괴물, 넌 저쪽을 파라!》     하고 지휘하면     《어디? 여기? 아 좋소 좋소.》     조춘생이는 군말없이 시키는대로 수굿수굿 일을 잘하였다. 누구나 그를 부를 때는 다들 《괴물》이라고 부르는것을 보니 괴물이 그의 별명인 모양이였다. 나이는 스물네댓살가량, 키는 1.6메터가량, 팔다리가 다 실하기는 하나 기형적으로 몽탁한데 얼굴에는 리성적인 슬기라는것이 전연 보이지를 않았다. 쉴참에 현덕순이 손짓하여 부르니 괴물 조춘생이는     《나?》     하고 손가락으로 제 코끝을 한번 가리켜보인 뒤 곧 쭈르르 달려왔다.     《당신 새루 온 의사가 아니요?》     싱글싱글 웃으며 조춘생이가 물었다.     《그렇다.》     《그럼 나 약 좀 줄라우?》     《약? 무슨 약?》     《먹은게 삭지 않는 약.》     《그런 약이 어디 있어.》     《없소 그런 약이? 넨장할!》     《왜?》     《왜는 무슨 왜야! 먹은게 자꾸 꺼지니까 그러는게지!》     《배가 고프단 말이지?》     《그럼 당신은 안고프우?》     옆에서 누가     《야 괴물, 저리 비켜라, 냄새난다!》     하고 타박주어 쫓으니 괴물도 지지 않고 그 사람에게 눈을 흘기며     《우쭐해서.》     한마디를 뇌까리고 천천히 저쪽으로 가버렸다. 현덕순이 그 괴물을 쫓아버리던 죄수에게     《쟤 무얼루 들어왔소?》     하고 물어보니 그 사람은     《저자식? 괴상망측한걸루 들어왔소. 차차 알게 될게요.》     하고 빙글빙글 웃었다. 그리고 벌렁 나가누우며 혼자말을 지껄였다.     《이런 제기, 담배구경을 못하구 살다니!》     이때 저쪽에서 무슨 우습강스러운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현덕순이 그쪽을 바라보니 고대 자신에게 왔다가 쫓겨간 괴물 조춘생이가 그 기형적으로 몽탁한 팔다리를 쳐들었다놓았다하며 제 노래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있었다. 그 모양이 우스워서 죄수들이 모두 키들키들 웃으니 작업장에서는 십장노릇을 하는 조장이 쫓아와서 괴물의 깃고대를 낚아채였다.     《조신하게 앉았어! 간수님 사설하신다!》     점심시간이 다되여 오전작업이 끝날 때까지 조춘생이는 혼자 빈들거리기만 하고 종내 일손을 다시 잡지 아니하였다. 다른 죄수가 그따위짓을 하였으면 주리대경을 쳐도 단단히 쳤을것인데 조춘생이만은 호외로 치는지 간수도 가랠 생각을 않고 가만 내버려두었다.     점심시간에 강낭떡을 노나주는데 조춘생이가 허둥허둥 앞으로 대들며      《내 두냥, 내 두냥! 나두 일했어! 내 두냥!》     하고 소리치니 조장이 깔보는투로     《옛다 이놈아, 어서 받아 처먹어라.》     뇌까리고 두냥짜리 강낭떡 한개를 훌쩍 던져주었다.     감옥에서는 로동의 경중에 따라 식량의 공급량도 층하가 많았다. 일을 안하는 자에게는 일률적으로 아침―2냥, 낮―3냥, 저녁―4냥이였다. 조춘생이같이 젊고 튼튼한놈이 작은 크림통만한 2냥짜리 강낭떡 한개를 겨우 얻어먹고 점심때까지 기다리자면 허기증이 나서 하늘이 노오래보인다. 그런데다가 또 점심에 3냥짜리 한개를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범 나비 잡아먹듯하고나면 간에 기별도 채 아니가서 저녁때까지 기다리기가 참으로 나감하였다. 그런데 감옥의 규칙이 무릇 아무 일이나 일을 한자에게는 점심에 《가량(加量)》이라고 하여 2냥짜리 강낭떡 한개씩을 더 주게 되여있었다. 조춘생이가 일을 나가겠다고 머리악을 쓰는것은 바로 그때문이라는것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작업에 참가하지 못하게 밀막는것은 그가 처음 얼마동안만 일을 하고 그 나머지는 다 춤추고 노래부르고 빈들거려서 일에 방해만 되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현덕순이 납득이 잘 안가서     《그렇다면 어째서 엄하게 단속을 안하우 감옥당국에서?》     하고 조장에게 물어보니 조장은 말같지 않게 여기는 모양으로     《단속? 미친놈인데…단속을 어떻게 하우?》     하고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들고 웨쳤다.     《걔가 미친놈이요?》     《그런 당신 보기엔 성한놈 같소?》     위생소에 일을 보러 올라갔다가 전임의사를 만나서 현덕순은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여보, 우리 중대의 조춘생이가 그게 정신병자요?》     《괴물 말이지? 응.》     《정신병자라구? 아니 그럼 정신병자를 어떻게 감옥에 가두우?》     《그래두 정식으루 버젓이 10년판결을 받구 왔으니 어떡하우?》     《10년? 한두해두 아니구 10년씩이나!》     《어째, 당신이 걔 대신 불평을 하는거요?》     《우리는 의사가 아니요? 직업적량심이…》     《! 이보, 우리는 죄수요 죄수! 알았소? 프로레타리야독재의 대상이란 말이요 알겠소? 괜히 말 한마디 뻥긋 잘못했다간 가형(加刑)이 가려(加虑)요 가형이 가려야! 하물며 당신은 반혁명인데…더더군다나. 그저 눈 지그시 감구 어물어물 무사주의루 살아나가는게…이 감옥에서의 처세술이란 말이요. 그래 요만것두 당신 아직 모르구있소?》     《그렇지만…》     《그렇지마는 무슨놈의 그렇지만이야!―거기…당신네 중대에…레트겐투시를 할치가 있다지? 이따 오후에 데리구 오우.》     로약대에서는 다른 중대에서처럼 그렇게 로동을 세우지 않았다. 환자나 고령자들은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정도였다. 그래서 자연 죄수들끼리 한담할 기회도 여느 중대보다는 많았다. 여러 입을 통하여―본인의 종작없는 말꼬투리를 통하여―조춘생이의 범죄적사실을 알고 현덕순을 너무도 기가 막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조춘생이는 한족으로서 교하현 농촌사람인데 일을 저지른것은 1971년 그가 21살때의 일이였다.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숙부집에 얹혀사는데 소학교를 한 4년 다녀보아서 그는 쉬운 글자도 좀 알고있었다. 의지가지없는 신세에 인물마저 없다느니보다는 아주 기형적으로 생긴데다가 그는 항심까지 없었다. 들일을 계속 반나절도 채못하고 진력이 나서 혼자 씨벌씨벌 지껄이며 온데로 돌아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러한 그에게 딸을 줄 사람은 물론 이 세상에 하나도 있지 않았다. 하건만 그의 이성에 대한 욕구는 병적으로 왕성하여 도저히 억제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였다. 마침 이웃에 열팔구세 난 처녀 하나가 살고있어서 그는 속으로 은근히 그 처녀를 사모하였다. 하지만 처녀는 그의 그러한 속내를 알리도 없거니와 애당초부터 업신여겨 그를 한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데 불행하게도 그 처녀가 무슨 병으로 이팔청춘 젊은 나이에 툭 죽어버렸다. 부모는 그 딸을 울며불며 뒤산에 갖다 묻었다. 이것을 눈겨겨둔 조춘생이가 혼자 속으로 궁리하였다.     (그 아까운 계집애를 땅속에 묻어두다니?)     (그럴것없니 내가 업어다 데리구 살자…임자두 없는데.)     밤이 되기를 기다려서 조춘생이는 혼자 몰래 괭이 하나를 들고 뒤산으로 올라갔다.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뻐개고 죽은 처녀를 들어내였다. 새신랑이 된 기분으로 시체를 업고 산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대로 업고 집안에 들어갔다가는 성미 꽤 까다로운 작은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을것 같았다. 그래서 업고 온 색시를 당분간 어디다 좀 감추어두기로 하였다. 성한 사람의짓이 아니다. 마땅한 자리가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 림시로 풋나무낟가리밑에다 뉘워두고 일단 집안에 들어와 고단한김에 네활개를 벌리고 한잠을 옳게 잤다. 아침 일찌기 작은어머니가 일어나 밥을 지으려고 마당에 나가서 풋나무단을 끌어들이려니까 그밑에―분명히 죽은걸로 아는―이웃집 처녀아이가 누워있었다. 기절초풍한 작은어머니는 뒤로 벌렁 나자빠져서 다시는 깨여나지를 못하였다. 지병으로 심장병이 있었던 까닭에 너무 놀라는통에 그 충격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켰던것이다. 령감이 아무리 기다려도 마누라가 아침밥을 짓는 동정이 없어서 끙끙거리며 밖에를 나와보니      (엉, 이게 웬 일이냐!)     마당에 송장 둘이 가로세로 누워있지 않는가!     《그래서 저자식은 지금두 자꾸 시부렁시부렁 저의 작은아버지를 원망하지요.》     《작은아버지가 신고를 했던가요?》     《그럼 어떡하우 마누라가 갑작죽음을 했는데? 모르긴 해두 그 령감 아마 대들보가 휘는것 같았을게요.》     《난 정말이지 이런 이야긴 난생처음 들어보우.》     《희한한 이야기지요.》     《분명히 미친놈의 짓인데…》     《누가 아니라우.》     (그렇다면?…)     현덕순은 자신이 난문제에 부딪쳤다는것을 더욱더 강렬히 느꼈다. 그의 마음눈앞에서는 벌서 의사의 직업적량심과 반혁명인지 개나발인지 하는 어마한 마귀가 서로 노리며 맞겨룰 차비를 하고있었다.     3       현덕순은 로약대 150명 사람의 건강을 책임진 자신이 맡겨진 직무에 태만하다는것은 용서할수 없는 죄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신병자를 징역을 살리는것은 국가의 수치라고 생각하였다. 의사가 그것을 알면서도 자기 일신의 안위를 고려하여 모르는체하는것으 범죄나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제길할, 이런 말썽거리가…하필이면…내게 차례질건 뭐람!)     조춘생이가 정신병자라는것이 더는 의심할나위가 없게 되였을 때 현덕순은 위생소로 행정의사를 찾아갔다. 행정의사는 물론 국가의 간부다.     《저희 중대…3중대의 조춘생이를…아무래도 한번 정신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누구를 정신검사를 해봐?》     《저 3중대…로약대의…조춘생이 말입니다. 괴물…》     《어, 그녀석이 징역을 사는지가 벌써 몇해째인가? 한 네댓해 잘되잖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무슨?…》     《아직 확진만 못내렸지…정신병이 대개 틀림없습니다.》     행정의사가 근시안경너머로 주제넘은 죄수의사를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현연하게 불만이 어린 얼굴로 게먹었다.     《다른 의사들은 다 눈이 멀었단 말인가?》     《아니올시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인가?》     《저 단지…》     《저 단지 뭐?…》     《정신병자를 복역을 시킨다면 법적으루 봐서…어떨가 해서 그러는겁니다. 의사의 립장으루…몰랐으면 모르되…일단 안 이상은…》     《시비거리를 장만하려는건가 앙?》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언감생심…》     《돌아가서 다시한번 잘 생각해봐.》     《녜.》     《신분을 잊지 말두룩.》     《녜.》     《인민앞에 지은 죄를 철저히 한번 뉘우쳐보두룩.》     《녜.》     현덕순은 코떼서 주머니에 넣고 물러났다. 죄수의 신분이라는것을 뼈골에 사무치게 느꼈다.     《직업적량심? 여보, 우리는 죄수요 죄수! 프로레타리아독재의 대상이란 말이요! 알았소?》하던 전임의사가     (과시 물계가 환한 대선배였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의기저상한 현덕순의 파김치적상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는 본시 칠전팔기(七顚八起)하는 만만찮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어떡하며 정신검사를 시켜볼수 있을가? 전문의사에게 한번 보이기만 하면 락자없을텐데…)     (내가 이거 부질없는짓을 하는건 아닌가? 괜히 뾰족하게 굴다가…모난 돌이 정 맞는다지?)     (아니아니 그럴수 없어. 끝까지 해봐야 해! 진리는 견지를 하는게 원칙이야!)     현덕순이 이와 같이 내심투쟁을 하고있을즈음 아무것도 모르고 그날그날 배고픈 세월을 보내는 조춘생이가 또 상식에 어긋나는짓을 하여 다른 죄수들의 빈축을 샀다.     감옥은 불야성이다. 죄수들의 탈옥을 경계하여 밤만 되면 어두운 구석이 없도록 사면팔방에 온통 전등불을 밝히기때문이다. 밤사이 그 전등불에 부나비들이 날아들었다가 떨어져죽은것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땅바닥에 즐비하였다. 그 숱한 부나비들을 조춘생이가 뽕나무밭에서 오디를 주어먹듯 허겁스레 싹 다 주어먹은것이다.     《야 괴물아, 맛있디?》     《맛이 아마 육포같았을테지!》     《파리두 좀 잡아먹어보지?》     《영양보퉁이 과도해서 벌서 군턱이 졌구나. 어디 좀 만져보자. 이리 나서라.》     《왜들 이러우? 같잖게! 저리 좀 비켜서우!》     《괴물님 나오신다. 어서 길을 틔워드려라!》     《와하하!》     《킬킬!…킬킬…》     메마른 감옥살이에 진이 난 죄수들에게는 한바탕 심심풀이가 잘되였다.     이 사건이 현덕순의 결심을 더욱 굳혀주었다.     (어떻게 해서라두 해방을 시켜줘야지!)     중대는 중대장과 지도원 그리고 공안계통을 대표하는 간사 하나―이렇게 셋이서 맡고있었다. 그래 우서 중대장에게 반영을 해보기로 하였다.     《뭐라구? 정신검사를 시키자구? 어째 행정의사한테 제의하잖구?》     《거기선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런걸 나한테 또 제의하는건 무슨 뜻이야?》     《무슨 별듯이야 있겠습니까. 그저…》     《조심하라구. 정치범을 죄수의사를 시킨건 특전이란걸 잊지 말라구. 공연히…》     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였다. 현덕순은 또 한번 뒤통수를 긁고 돌아서야 하였다.     (이런 제기!)   4       현덕순이 거듭되는 좌절에 고민을 하고있을즈음 아무것도 모르는 조춘생이는 상식에서 벗어난 우습강스러운짓으로 부단히 사람들을 웃기였다. 오락에 주린 죄수들은 그를 보기만 하면     《야 괴물, 노래 하나 불러라.》     《여 괴물, 춤 한번 더 춰라.》     《인석아, 네 그 업어온 색시가 널 보구 좋다던?》     《인물이 어떻게…곱니?》     이와 같이 부추기고 놀려먹는것으로 락을 삼았다. 전 감옥 일곱게중대 천여명 죄수에 《괴물》을 모른는자는 하나도 없으리만큼 조춘생이는 인기가 있었다. 감옥안에 없지 못할 명물로, 웃음가마리로 되였다.     바깥사회에 있을 때 같으면 글 몇줄 끄적거리면 환자를 정신검사 한번 시키는것쯤은 식은죽먹기였다. 그런데 이 감옥에서는 그것이 하늘의 별따기였다. 안과 밖이 이 정도로 판이할줄을 그는 일찌기 몰랐었다.     두고두고 궁리한끝에 현덕순은 지도원을 찾아서 한번 최후의 호소를 해보기로 하였다.      《무어야? 사회주의적인도주의에 대한 배려라구? 주제넘은 수작! 그래 그렇게 계속 반혁명독기를 뿜을 작정인가? 좋아 그럼…돌아가 기다려!》     제 입으로 벌어서 현덕순은 마침내 《반성》을 하게 되였다. 감옥안에서 반성이란 며칠이고 몇주일이고 꼼짝달싹 못하고 정좌를 하고 앉아서 자기의 저지른 죄를 반성하는것인데 주야로 옆에 감시인이 딱 붙어있는 까닭에 변소를 가는데도 그놈의 딴군녀석을 떼치지 못하고 그대로 달고 다녀야만 하였다. 반성을 하는놈은 죄수중의 또 죄수이므로 의례 보통죄수들의 하대와 업신여김을 받게 마련이였다. 언젠가 꾀병하는놈에게 달라는 약을 주지 않은적이 있었는데 그놈이 잊지 않고 와서 현덕순을 씨까슬렀다.     《의사랍시구 우쭐렁대더니만…잘코사니구먼. 맛이 어때?》     반성하는놈은 주먹을 못놀리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말대꾸 한마디도 못하게 되여있었으므로 절대로 안전하였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를 밖에 서서 막대기로 쑤시는거나 마찬가지였다.     현덕순이 어째서 반성을 하게 되였는지 알턱이 없는 조춘생이도 덩달아 구경을 와가지고     《여보 의사, 당신두 도둑질을 하우? 손버릇이 사납군 그래.》     《이번에 아주 녹장이 나는구먼. 겉보기엔 멀쩡한게…거 참 모를 일이야.》     이따위 소리를 지껄이며 헤식게 히죽히죽 웃는것이였다. 저능인 조춘생이는 감옥안에서 흔히 있듯이 현덕순도 도둑질을 한것이 들통이 나서 반성을 하는줄로 지레짐작을 하고있었던것이다. 감시하는 딴군녀석(《만주국》경찰출신)이     《야 괴물 이놈아, 인제 고만 씨벌거리구 썩 물러가라. 또 이 옮길가봐 무섭다.》     하고 타박을 주니 조춘생이는 입술을 비쭉 내밀며     《내 이는 복이야. 달래두 안주겠다. 체!》     하고 어슬렁어슬렁 저쪽으로 가버렸다.     반성을 하고있는 현덕순은 그 꼴을 보고 한편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화도 좀 났다.     (저런걸 위해 내가 이 단련을 받고있다니!)     2주일의 반성이 끝나기도전에 새 죄수의사가 중대의사로 배치되여와서 현덕순은 원래 자리에서 밀려나 일반죄수로 격하되였다. 그 지긋지긋한 반성이 풀린 뒤애 새로 온 의사와 인사수작을 나누었다.(반성중에는 서로 보고도 말을 못하였다.) 새 의사는 대학시절의 후배로서 녀자문제로 징역 5년의 언도를 받았었다.     《도대체 반성은…무슨 일루 했습니까?》     《미친놈 정신검사 좀 시키자다가.》     《이 중대에…그런게 있는가요?》     《응.》     《답답하구먼요.》     《누가 아니래여.》     그러나 하늘이 아주 무심하지는 않은 모양이였다. 강청이 일파가 권좌에서 나떨어졌다는 소식이 봄철의 우뢰비처럼 감옥의 지붕을 두드리고 높은 담을 두드리고 마당을 두드리고, 그리고 사람들의 굳게 닫혀 녹이 쓸어버린 마음의 쇠문을 두드렸다. 현덕순은 미결수로 4년, 기결수로 3년―모두 7년의 령어생활을 치른 뒤에 무죄석방으로 명예를 회복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무참하게 유린당하였던 인간의 존엄을 되찾았다.     현덕순은 마중온 안해와 아들을 대합실에 앉혀놓고 (안해는 남편없는 7년동안의 고생살이에 주름살과 흰머리카락이 부쩍 늘었고 그리고 아들은 몰라보리만큼 크고 또 로성해졌었다.) 행정의사를 찾아보았다.     《아 이거 현선생, 반갑습니다. 축하합니다.》     손바닥을 뒤집은것 같은 행정의사의 태도에 현덕순을 속으로 쓴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곧     (세상이란 이런거라니.)하고 석연히 초탈하였다.     《저 다른게 아니구…3중대 그 정신병자…조춘생이 문제를 좀 어떻게…》     현덕순이 말을 채 마치기도전에 행정의사는     《아 념려마십시오. 념려마십시오. 그건 내가 책임지구 처리할테니까…현선생은 그런 일에 인제 더 머리를 안쓰셔두 됩니다. 가급적 속히 처리해서…그 결과를 내 알려드리오리다. 워낙 법원에두 문제가 있습지요. 그런걸 글쎄 어떻게…나 참! 현선생두 짐작하시다싶이…여기 이렇게 말단단위에서 일을 하자면…남모르는 고충이 정말이지 적잖습니다. 답답할 때가 많습지요.》     하고 수다스레 발뺌수작을 늘어놓았다.     《그럼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천만에 천만에, 그럼 우리 다시 만나십시다. 안녕히!》     달포가량 지나서 현덕순은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 녜 그렇습니다. 누구시라구요? 아 오래간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녜녜…아 그래서요. 출옥은 했는데…돌아갈 집이 없다구요? 그래서…》     전화는 감옥의 행정의사가 걸어온것인데 조춘생이가 출옥은 하였으나 받아주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할수없이 《취업대》에 취업을 시키기로 결정하였다는것이였다. 취업대란 만기출옥을 한 사람으로 교양개조가 잘되지 못하였거나 또는 갈데가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여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시설이였다.     《그렇지만 정신병자를 그대루 둔다는 법은 없으니까…우선 병부터 고쳐주려구…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를 하셨습니다.》     《천만에 천만에…》     일요일날 현덕순이 과자 한봉지와 사탕 한봉지를 사가지고 정신병원으로 그 말썽많던 감옥친구―조춘생이를 보러 왔다.     《조춘생 면회!》     간호원의 웨침소리와 함께 면회실에 들어서는 조춘생이를 보니 되는대로 걸친 환자옷에는 벌써 만국지도 쉼직하게 얼룩이 져있었다. 혈색은 검붉은데 갓 깎은 상고머리가 눈을 끌었다.     《조춘생, 너 날 알아보겠니?》     《그럼 몰라봐? 당신 의사가 아니요. 도둑질하구 반성하던…》     문어구에 섰던 간호원이 놀라서 현덕순을 새삼스레 훑어보았다. 그 눈에 력연히 씌여있었다―     (알구보니 멀쩡한 도둑놈이였구먼!)     《맞다 맞아!》     하고 현덕순이 하하 웃으니 조춘생이는 좀 미심쩍은 얼굴로     《그래 당신 여긴 왜 왔소?》     하고 물었다.     《너 보러 왔지 왜 왔겠니?》     《나를 보러 와? 무슨 일루?》     《이걸 갖다주려구.》     《그게 뭔데?》     《과자, 사탕.》     조춘생의 두눈에 불이 반짝 켜졌다.     《어서 이리 내우.》     《옛다.》     《히히!…우리 의사가 제일이야.》     조춘생이는 눅진눅진한 진과자를 게걸스레 입안에 쓸어넣고 한동안 꺼귀꺼귀 씹다가 문득 생각난듯이 두눈을 찌긋째긋해가며      《여보 의사, 다음번에 올 때두 또 좀 훔쳐다주우.》     하고 아주 능갈치게 말하는것이였다.     현덕순은 거뜬한 기분으로 병원문을 나섰다.
7    김학철 프로필 댓글:  조회:451  추천:62  2011-04-06
프로필: 1916년 조선 원산 출생. 1930년대 중앙륙군군관학교 졸업. 1950년대에 중앙문학연구소 연구원. 장편소설 《격정시대》, 단편집 《태항산록》, 전기문학 《항전별곡》, 산문집 《나의 길》,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등의 저서가 있음. 2001년 타계
6    추천사 (4월4일~ 4월 11일) 댓글:  조회:524  추천:58  2011-04-06
추 천 사 고 김학철전집 《격정시대》(상, 하)와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김학철은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이자 우리 사회 대표적인 지성인이며 우리 문학의 거장으로 불린다. 한평생 비정과 비리와 싸우면서 진리를 추구했으며 흔들림없는 소신과 신념으로 몇번이나 극한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인간승리의 신화를 창조해냈으며 광풍폭우에도 끄떡없는 철의 신념과 의지가 그의 힘이자 매력이다. 김학철선생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격정적인 문학이 녹아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금 그의 신념과 의지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금주의 문인으로 추천한다   문학닷컴 편집부
5    [장편발취] 20세기의 신화 (김학철) 댓글:  조회:933  추천:25  2011-01-27
20세기의 신화 --장편소설발취  김학철   머리말     《20세기의 신화》는 《문화대혁명》 이전에 쓴것으로서 발표를 하기도전에 작자에게 10년 징역형이 언도되였다는 심상찮은 래력을 갖고있는 문제거리의 소설이다.   10년후에 작자가 만기출옥을 하고 다시 3년후에 무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20세기의 신 화》는 작자에게 돌려지지 않고 계속 법원에 압수된채로 있다가 다시 8년이 지나서야 비로 소 그 임자인 작자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도합 23년만에 《완벽귀조(完璧歸趙)》를 하였 다는 말이 되는것이다.   최근 외국의 출판사들이 크게 흥미를 가지고 《20세기의 신화》를 꼭 출간하겠다고 서 두는것을 작자는 이런 말로 잠시 눌러놓았다.   《국내에서 아직 활자화하지 않은것을 먼저 외국에 내다 발표하는것은 제 신조에 어긋 납니다. 그러니 국내에서 출판이 될 때까지 좀 기다려주십시오. ―얼마나 걸릴것 같은가구 요? 네, 과즉 5년, 더는 안걸릴겝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말만은 귀에 젖게 들어왔어도 실지로 읽어보지는 못한 까닭에 《20세 기의 신화》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건가고 궁금해하시는분들이― 작자가 알고있는 범위 안에만도 적잖다.   그렇지만 아직은 그 전문을 다 발표하기가 곤난한 형편이므로 글가운데의 너무 날카로 운 부분은 에둘러가며 또는 징검다리를 건느듯이 겅정겅정 뛰여넘으며 부드러운 쪽으로만 간략히 한번 피로를 하여 호기심을 갖고계신분들의 궁금증을 다소나마 풀어들이고저 하는 것이 작자의 의도이다.   집필 당시는 작자가 충분한 자료를 입수할수 없는 형편이였으므로 3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진상이 다 드러난 뒤에 보면 겉가량이 다소 맞지 않은것도 더러 있다. 례컨대 작품가 운데서 작자는 《반우파투쟁》을 99프로 잘못된 운동이라고 단언을 하였었는데 기실은 99프 로가 아니고 99.999프로였다는것따위.   《20세기의 신화》의 편폭은 모두 27만자로서 전·후편으로 나뉘였는데 전편은 1964년 9월, 또 후편은 1965년 3월에 각각 탈고되였다. 그런 연후에 작자가 다시 일어로 번역을 하 였는데 전편의 번역이 막 끝났을 때 《반란파》들의 습격을 받아 작자가 이내 감옥살이를 하게 된 까닭에 일어도 번역이 된것은 전편 13만자뿐이다.   전편은 강제로동수용소에서 하루동안에 있었던 일을, 그리고 후편은 강제로동수용소에 서 풀려난 뒤 수년동안의 일을 각각 재현하였는데 주인공은 대학을 나온 젊은 지식인으로서 문학잡지의 편집인. 그의 수난의 기록이 곧 이 소설인것이다.     1989년 4월 ***-----------------***------------------***           전편 1       철조망으로 둘리지 않은 강제로동수용소에 또 봄이 왔다.   부황이 들어서 본래의 얼굴모습을 거의 알아볼수 없게 된 전날의 《아리랑》 편집인 림 일평이가 지금 구유에서 부지런히 골라먹는것은 여물에 섞인 콩깨묵이다. 외양간밖에서는 먼저 먹은 바이올리니스트 채가 두엄을 치는체하며 대거리로 망을 보아주었다.   불시에 채가 헛기침을 하였다. 사람이 온다는 군호다. 곧 뒤미처 《잰내비》라는 별명으 로 불리는 감독원 성가의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이편을 향하고 무엇인가 소리쳐 묻는듯   《녜, 이전 거의다 먹었습니다.》   채의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소먹이를 훔쳐먹던 일평이가 밖에서 오가는 말소리를 듣고 입안에 든것을 얼른 도로 구 유에 뱉아넣었다. 그리고 손에 든 부지깽이로 여물을 휘적거려서 고루 섞어주는체하였다.   《곽오주》라는 이름을 가진 심술쟁이 검정소는 여물탐이 나서 구유에 코를 틀어박고 처먹는데만 정신이 팔렸는데 한쪽 뿔에 퍼런 뼁끼칠을 한 《신진사》라는 이름을 가진 점잖 은 황소는 입덧이 나서 아래턱을 시답잖게 놀리면서   (왜 고만 자시려우?)   하고 묻는것 같은 눈치로 일평이를 쳐다보았다. 겸상해서 밥을 자시던 사돈어른이 별안 간 숟가락을 놓고 물러앉아 딴짓을 한다면 사람들도 의례히 이렇게 쳐다볼것이다.   본래 이 외양간에는 부림소가 모두 일곱짝이 있었는데 그중의 다섯짝은 지난 겨울동안 에 삯짐들을 싣다가 굶고 지쳐서 이미 병들어 죽었고 요행 살아남은 이 두짝의 목숨이 질긴 소도 다 서까래같은 갈비대들이 가죽겉에 환히 드러나보였다.   망을 보던 채가 모가지 부러진 쇠스랑자루를 끌며 어슬렁어슬렁 외양간으로 들어왔다.   《잰내비자식은 또 왜?…》   일평이가 묻는 말에 채는   《빨리 떠나라구 독촉이지 뭐여.》   흥감없이 대답하고 잠시 끊었다가 다시   《다른데루 종종걸음을 쳐갔으니까… 급할건 없소.》   하고 발을 달았다.   채도 역시 얼굴이 퉁퉁 부었는데 어찌나 몹시 부었던지 머리우에 겨우 올려놓다싶이 한 헝겊모자가 흡사 유치원 다니는 아이것을 빼앗아 쓴것 같았다.   두사람이 다 깎지 못한 수염이 텁수룩하고 두사람이 다 몸에 걸친것은 넝마나 다름없는 입성들이로되 찬바람이 스며들지 말라고 새끼오래기로 허리를 동인 까닭에 채의 주제꼴이 더 보기가 사나왔다. 이들을 사회주의나라의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라고 하면 아마 곧 이들을 사람이 별로 없을것이다.   성미 팔팔한 일평이가 손에 들었던 부지깽이를 내던지면서   《그 자식 가만히 자빠져서 낮잠이나 자잖구, 소갈데 말갈데 쏘다니긴 왜 쏘다니노!》   하고 감독원 성가를 욕질하는데 사람의 워낙 물신선이라서 생전 골이란걸 낼줄 모르는 채는 천천히 작두옆에 엎어놓은 나무통에 걸앉으면서   《림형, 엽초부스레기 남은거 좀 없을가?》   하고 일평이를 바라보았다.   채는 강제로동수용소에 들어와서 늦깎이로 담배를 배웠는데 늦바람에 곱새를 벗긴다는 격으로 담배의 인이 박혀도 이만저만 박히지를 않았었다.   일평이가 북두갈고리같이 된 손으로 신진사의 미간을 긁어주면서   《미안하이, 친구. 용서하게.》   하고 콩깨묵 골라먹은것을 롱반 참반으로 사과한뒤 비로소   《담배?》   하고 뒤늦은 대답을 하며 채를 돌아보았다.   일평이가 실그러진 궤통짝에 와 걸앉으며 곧 때국 흐르는 헝겊쌈지를 꺼내였다. 쌈지끈 을 끄르는 동안 채는 자기 일생의 운명이 그 쌈지끈에 달렸기다로 한듯이 불안스러운 눈으 로 일평이의 손끝을 지켜보았다. 쌈지를 톡톡 터니 재빛의 솜먼지가 한절반 섞인 잎담배의 부스레기가 마라초 한대 낙낙히 말아피우리만큼 남아있었다. 그것이 말하자면 전 재산이였 다. 마음 선선한 일평이가 그 전 재산을   《옜소 채형, 마지막으루 한대 큼직하게 말아서 먼저 피우. 난 나중에 한모금 남겨주면 되우.》   하고 쌈지채로 내맡겼다.   채가 미안스레 쌈지를 받아가지고 말끔히 털어서 최후의 마라초 한대를 굵직하게 말았 다. 입에다 물고 부시통을 꺼내였다. 이 고전적인 점화도구― 부시통은 성냥이 배급제가 된 뒤부터 갑자기 류행을 하기 시작하였었다.   일평이가 채의 입을 바라보다가   《마라초가 그렇게 굵은걸 보니까 내 우스운 일 하나가 생각나우.》   하고 웃기부터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의 일인데 먼 촌에 사는 우리 사촌형이란군이 어른들의 담배 피 우는게 어찌나 부럽던지 어른들 몰래 살담배 한봉지를 사가지구 굴뚝뒤로 들어갔더라나. 나 중에 우리 고모란이가 바가지를 들구 재물인가 뭘 뜨러 갔다가 보구 놀라서 고함을 쳐서 식 구들이 달려나와 보니까… 기가 차지. 열네살 먹은 그 사촌형이 정신을 잃구 나가 쓰러진 바루옆에 크기가 거의 나팔만한 마라초 한대가 떨어져서 그저 타구있더라는군. 글쎄 이 무 지한군이 커다란 신문지쪼각에다 살담배 한봉지를 단꺼번에 다 말아가지구 드립다 빨아댔다 지 뭐요. 그러니 제놈의 머리가 휭 돌잖구 어째여.》   채가 이야기를 듣고 시무룩이 웃으면서 반동강 착실히 남은 마라초를 잠자코 담배임자 에게 건네주었다. 일평이가 한번 사양하여 채에게 두어모금 더 빨린 뒤 비로소 받아서 피우 면서   《이제부턴 우리두 대용품을 피우는수밖에 없겠구먼.》   하고 의논조로 말을 하니 채는 허파속에 가둔 마지막 한모금의 담배연기를 놓치지 않으 려고 입을 봉한채   《음.》   대답 안되는 대답을 하였다. 남들이 대용품(풀잎따위를 말린것)을 피우니까 우리도 대용 품을 피워야 대의명분이 선다는 뜻인가?   일평이가 먼저 일어서서 로동화 뒤축으로 꽁초를 밟아뭉개니 채도 쇠스랑자루를 끌어당 겨 짚고 굼닐기 거북스러운듯이 천천히 따라일어났다.       (설명) 나는 일찌기 이 한장(章)의 묘사가 나의 가장 가까운 벗의 목숨을 앗아가는 단 서로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였었다. 재화있는 우리 시인 서헌이 그때문에 목숨을 잃은것이다. 미쳐날뛰는 《반란파》들이 김학철과 합작하여 《20세기의 신화》를 써낸 경과 를 이실직고하라고 그에게 야수적인 고문을 들이대였던것이다.   기실 서헌은 죽을 때까지 《20세기의 신화》란게 대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가 못미더워서가 아니라 그에게 공연한 사상적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내가 알리지를 않았던것이 다. 서헌이 강제로동수용소에서 하도 배가 고파서 소여물에 섞인 콩깨묵을 골라먹다가 들켜 서 투쟁을 맞은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다만 그 사실을 제1장에다 재현을 시킨 것뿐이다. 내가 독단으로 한노릇을 서헌이 알탁이 없잖은가.   서헌이 만일 알았더라면 목숨까지는 잃지 않았을것이다.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것 이 흡사 알면서도 생청을 쓰는것 같았기에 《반란파》 야수들은 《사불회개(死不悔改)》로 인정하고 더욱 기가 나서 뭇매질, 뭇발길질을 들이대였던것이다.   미신의 말로 무슨 살이 끼였던지 아무튼 《20세기의 신화》는 서헌 일가와 우리 일가에 재난을 갖다 안겨주었다.             전편 6       가는 날이 장날로 이날이 마침 장날이여서 장거리에는 장 명색이 섰었다.   58년이래 엄금되였던 이른바 비사회주의적자유매매가 해금이 된지 이제 석달째였다. 암 거래로 포표(면직물구매권)가 메터당 3원씩에 공공연히 매매되고 또 량표(식량구매권)가 킬 로당 2원씩에 공공연히 매매될 때에야 비로소 당국에서는 이런 비사회주의적자유시장의 설 치를 인가하였다. 성을 쌓아서도 이런 비사회주의적상행위를 막을수 없다는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것이다. 인민이란것들이 괘씸스럽게도 그 듣기 좋은 구호만으로는 살려 하지 않는 다는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것이다.   장에 갖고나와 파는 물건들을 볼작시면 비, 키, 조리, 똬리, 다래끼, 삼태기, 매방석, 그 리고 물푸레막대기와 싸리나무… 이따위 시들한것들뿐이였다. 그나마 돈이 바짝 마른 까닭 에 사는 사람보다 구경을 하거나 값을 물어보고 그냥 돌아서는 사람이 더 많은 형편이였다. 닭마리 닭알개도 간혹 보이기는 하나 값을 물어보고는 다들 혀를 홰홰 내둘렀다. 원래 한알 에 7전씩 하던 닭알은 60전― 8배로 뛰여올랐고 또 원래 한마리에 2원각수씩 하던 닭은 17 원― 역시 8배로 뛰여올랐던것이다.   대약진시대가 다르긴 달랐다. 미국따위 쏘련따위는 어림이 없었다. 그래 제따위들이 불 과 1년동안에 물가를 8배로 비약시킬수 있단 말인가? 제국주의자와 현대수정주의자가 그런 재주를 가졌으면 해가 서쪽에서 뜨게. 어림이 없지!   일평이의 월급은 46원이였는데 인민의 적이라는 우파분자가 되는 바람에 그 월급이 취 소되고 명목이 바뀌여서 생활비라는것이 되였다. 생활비는 일률적으로 15원이다. 그러므로 일평이가 지금 가령 한달 생활비로 닭을 산다면 다리 한짝쯤 떼고 한마리를 살수 있을것이 다. 제정시대의 소학교 훈도는 초임급이 30원이였으니까 당시 자유판매로 2전씩 하던 닭알 을 한달 월급으로 1500알가량 살수 있었다. 일평이도 대학을 나온 덕에 3년전까지는 한달 월급만 가지면 닭알을 륙칠백알은 살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 20 몇분의 1인 25알을 겨우 살수 있다.   이날 장에서 단연 이채를 띤것은 칡뿌리를 캐가지고 온 칡뿌리장수도 아니요, 이모저모 로 눈을 도려내서 만신창이 된 감자를 가지고온 감자장수도 아니요, 피나무껍질로 만든 떡 을 함지박에 담아서 이고 나온 피나무껍질떡장수도 아니요 또 활로 쏴잡은 까마귀를 꿩처럼 한쌍씩 짝을 맞춰가지고 팔러 나온 까마귀장수도 아니였다. 단연 이채를 띤것은 콩볶은이를 도시락에다 골막하게 한도시락 담아가지고 나와서 파는 콩볶은이 장수였다. 그는 콩볶은이 를 종지로 되여서 팔지도 않고, 줌으로 쥐여서 팔지도 않고, 저울에 달아서 팔지도 않고 또 봉지에 넣어서 팔지도 않았다. 어떻게 파는가 하면 천지개벽이래 파천황 처음으로 한알씩 한알씩 낱개로 콩알을 세여서 팔았다.   《에, 한알에 1전. 어서 오시오. 볶은 콩 한알에 1전! 에, 한알에 1전!》   이렇게 웨치면서도 량심상 차마 못하겠던지 《싸구려》소리만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 나 어쨌든 가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소똥이 지짐떡이 되여보일 지경으로 걸신이 들린 사나이 하나가 콩볶은이장수앞에 와 서더니 부지런히 호주머니를 뒤졌다. 톡톡 터니 1전짜리 늄돈이 네잎이다. 그 돈을 몽땅 다 콩볶은이장수에게 건네주면서 능청스레 교섭을 하였다.   《다섯알을 채워주우. 그까짓 콩 한알 더 먹으나 덜 먹으나. 그렇지만 네알은 넉사, 넉 사는 죽을사. 방소꺼리는 죽을사가 재미적어서 그러우.》   그러나 공볶은이장수도 호락호락한 적수가 아니였다.   《넉사자가 죽을사자가 돼서 방소를 꺼린다면 당신의 이 돈 4전은 그럼 어떻게 되우? 공연한 소리 말구… 옜소 4알. 어서 받아가우.》   콩볶은이장수가 걸신들린 사나이와의 흥정거래를 일방적으로 끝내고 곧 또 한알에 1전 이라고 목청을 돋우는데 그 꼴이 아마도 콩볶은이 한도시락으로 큰아들 장가들일 밑천을 장 만할 작정인 모양이였다.   걸신들린 사나이는 손바닥에다 우물정자로 놓아준 콩볶은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하릴 없이 그대로 먹었다. 요놈하고 조놈이 어떻게 다른가 맛을 보면서 한알씩 찬찬히 깨물어먹 었다. 사나이는 콩 네알을 다 먹고도 못내 아수해서 차마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나비 잡아 먹은 범의 눈으로 콩볶은이 담긴 도시락을 고집스레 여겨보았다.   이때 나이 여라문살 된 헐벗지 않은 거지같은 아이놈 하나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 어오더니 대뜸 도시락으로 대들어서 까마귀발같은 손으로 콩볶은이를 한웅큼 덥썩 움켰다. 값도 묻지 않고 알수도 세지 않았다. 콩볶은이장수는 큰아들 장가들일 밑천이 아이놈의 딱 벌린 아가리로 들어가는것을 잠시동안 어리뻥해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수습하 고 잽싸게 손을 뻗쳐서 아이놈의 덜미를 짚었다.   사정없는 주먹벼락에 아이놈이 머리를 싸쥐였다. 그래도 아가리에 든 밥만은 토하지 않 았다. 일변 맞아대면서 일변 씹었다. 그 욕심사납게 잔뜩 넣고 우두둑우두둑 씹는 꼴이 마치 《일단 목구멍으로 넘긴것은 도로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신념을 목숨으로 사수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한족사람 하나가 춥지도 않은데 팔짱을 지르고 서서 구경을 하다가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린 아이놈이 복날 개 맞듯하는것을 보고는 콩볶은이장수앞으로 한발자국 썩 나서면서   《여보 이 량반, 콩 한줌 좀 집어먹었기로서니 그다지 그럴것 뭐 있소. 남을 위해 살라 구 모주석께서 말씀하신걸 어느새 잊었소?》   하고 빈정거리는 투로 물은 다음 둘러선 사람들을 돌아보며 참인지 거짓인지 분간 못할 웃음을 빙글빙글 웃었다.   일평이가 소를 몰고 지나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이 실생활의 파노 라마를 바라보노라니까 불현듯   (딴테가 살아있다면 《지옥편》을 쓰잖고 《인민공사편》을 썼을게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평이는 세상이 딱 싫어났다.   일평이가 아이놈의 얻어맞는 꼴을 더 보지 않으려고 외면을 하고 소를 몰았다. 아이놈 대신에 자기가 맞는것이 오히려 나을것 같았다. 등뒤에서 아이놈이 자지러진 소리를 질렀다. 인제 입속에 든 콩을 다 삼킨것이다. 승리적으로 다 삼킨것이다. 여태까지는 그 콩때문에 소 리를 지를수가 없었던것이다.   일평이가 공연히 짜증이 나서 애매한 《곽오주》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촌놈의 소새끼, 뭘 두리번거려!》             후편 3       (설명) 몇해후 강제로동수용소에서 풀려난 림일평이는 이른바 인민의 품속에라는데로 돌아와서 결혼을 하고 그리고 신문사의 접수원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한편 바이올리니 스트 채는 우파분자로 되는통에 부득이 리혼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그의 안해 하씨와 재결 합하여 구차한 새 살림을 꾸린다.   이 단락은 림일평이가 채의 새살림하는 형편을 보고 와서 그 안해 정숙이에게 하는 이 야기의 한부분이다.       《…하씨가 가르쳐준대루 그네들의 사랑의 새 보금자리란걸 찾아가보니까 보금자리가 모두 해서 되박만한 남의 집 웃간 한간인데 그나마 공용수통이 바로 방문앞에 박힌 길가방 이라서 문턱밑에 벼모두 족히 냄직한 수렁입디다. 채씨는 지병(持病)인 간염이 도진데다가 관절염까지 겹쳐서 공사장에 일두 나가지 못하구 쪼각보같은 이불명색을 덮구 혼자 누워있 습디다. 뚱뚱한 사람은 하나 반밖에 더 눕지 못할 좁은 방안엔 헌 고리짝 하나가 구석장이 에 놓였구 그리구 벽에 바이올린이 하나 걸렸을뿐 알뜰한 빈방입디다. 아래웃간의 사이를 막은건 옆방에서 바늘 떨어뜨리는 소리두 다 들릴 장지 한겹뿐인데 그나마 전등 하나를 아 래웃간에서 같이 쓰느라구 우에다 큼직한 구멍을 내놨습디다. 여름에는 그 구멍으루 아래웃 간의 파라떼 모기떼가 자유로이 넘나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정숙이가 입을 막고 호호 웃어서   《왜 웃소?》   일평이가 거짓으로 시비를 차렸다.   《웃을 자유두 없어요?》   《웃는 까닭을 말하란 말이요. 웃는 까닭을.》   《당신의 이야기가 너무 예술적이라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구요.》   《예술적? 본걸 본대루 말하는게 예술적이야?》   《파리떼 모기떼가 자유로이 넘나든다는게 그래 예술적이 아니구 뭐예요. 그리구 또 어 디 그뿐인가요. 벼모를 낸다느니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느니… 모두가 다 예술적이지 요.》   《그러니 더 듣겠다는거요 안듣겠다는거요?》   《누가 안듣는댔어요? 어서 이야기하세요. 인젠 명심하구 웃지두 않을랍니다.》   일평이가 중동 끊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였다…             후편 7       (설명) 이 단락은 일평이가 대단찮은 병으로 집에 누워있다가 겪은 일가운데의 한부분 이다.       일평이가 혼자서 집을 보며 팔자좋게 자리에 누워서 《고요한 돈》을 읽었다. 수용소에 서는 이런 책들을 모두 《잡서》라고 타박하며 읽지 못하게 금하였었다.   책속에 빨려들어가듯 골똘히 읽고있는중에 별안간 누군가가 이웃집의 부엌문을 야단스 레 두드렸다. 얇은 벽 하나를 사이둔지라 자기 집의 부엌문을 와 두드리는거나 별반 다를게 없었다. 두드리는것은 녀자인듯 일변 두드리며 일변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무슨 말인지 언 뜻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일평이가 불이 났다는줄 알고 깜짝 놀라 손에 들었던 책을 떨어뜨리며 곧 일어나서 귀 를 도사렸다.   이웃집 마누라가 부엌문을 펄떡 열어젖뜨리는듯 급한 말로 재쳐 물었다.   《뭐가 왔다구요 금이엄마? 배급소에 수수쌀이 왔다구요?》   일평이가 얼른 일어서서 창문으로 내다보니 호들갑스레 소식을 알려주고 진동한동 달려 가던 녀편네가 뒤돌아보며 큰일이 난듯이 웨쳤다.   《몇마대 안왔대요. 어서 점순이네랑 알려주구… 빨리들 뒤따라 오세요.》   소동이 일어났다. 각집의 아낙네들이 부산하게 문들을 여닫치며 쏟아져나왔다. 서로 부 르면서 서로 알리면서― 자루와 돈과 통장들을 거머쥐고― 풍우같이 몰려갔다.   배급소에서 그동안 줄창 옥수수가루라고 일컫는 각종 원소가 혼합된 정체를 알수 없는 물질만을 공급해왔던 까닭에 잡물이 섞이지 않은 붉은쌀이 얼마나 은혜로운것인가를 모두들 뼈저리게 느꼈었다.   일평이가 그 은혜로움을 느낀게 자기만이 아닌것을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나중 압 제자가 먼저 압제다보다 조금이라도 덜 혹독하면 백성들은 그 좀 덜 혹독한 압제자의 덕을 칭송한다고 한 로신선생의 말이 과시 명언이라고 수긍이 되면서 일평이의 입에서는 《수수 쌀 만세》소리가 금시 튀여나올것만 같았다.   일평이가 수수쌀을 타나놓기로 작정을 하였다. 안해가 저녁에 돌아와보고 좋아할것을 생각하니 무슨 대단한 선물이라도 몰래 장만하는것 같아서 가슴이 다 뛰놀 지경이였다.   일평이가 서둘렀다. 배급통장을 찾아내고 쌀자루를 뒤져내고 또 돈을 마련하였다. 신발 을 신고 문을 잠그고… 곧장 배급소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보기 좋게― 헛다리를 짚었다. 배 급소 일군들이 우리의 경애하는 민족영웅 림일평동지께서 이제 곧 수수쌀배급을 타러 오실 테니 저 따로 떠내놓은 수수쌀 한자루는 아무도 못건드린다고 미리 단속할것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일평이가 타러 갔다가 타지 못한 수수쌀에 짝사랑의 연연한 정을 느끼며 터덜터덜 걸어 서 집으로 돌아왔다. 쌀자루에 둘둘 만 배급통장을 그대로 방바닥에 훌쩍 내던졌다…             후편 8       (설명) 머리말에서, 너무 날카로운 부분은 에둘러가며 또는 징검다리를 건느듯이 겅정겅 정 뛰여넘으며 부드러운 쪽으로만 간략히 피로를 하겠다고 하였는데 막상 일에 달라붙고보 니 처처에 위험물과 금지구역이 착종하여 흡사 지뢰원(地雷原)에 들어선것과도 같아서 발을 한번 옮겨디딜적마다 등골에 땀이 흐르는 형편이다. 그러다나니 자연 련속성 없는 토막굴이 나 토막말이 되는수밖에 없다.       일평이가 채들의 사랑의 보금자리를 또 찾아왔다.   채는 어디로 갔다가 고대 돌아온 모양으로 머리에 때국이 흐르는 남색의 헝겊모자를 쓴 채로 또 발에다는 토색의 로동화를 신은 채로… 맨방바닥에 얼굴을 파묻듯이 하고 너부죽이 엎드려있었다. 죽은것처럼 엎드려있는 채의 로동화에는 진흙이 더덕더덕 말라붙어있었다. 한 손을 옆에 놓인 바이올린케스우에 애무적으로 얹고 또 한손은 방바닥을 거머잡고있는데 아 마도 헌 사기재털이를 집으러 가다가 손이 미치지 않아서 그만둔 모양이였다. 가쁜숨을 쉬 는듯 어깨가 약간씩 들먹였다. 기진맥진해서인지 또는 세상만사가 시들해서인지 방문 열리 는 소리를 듣고도 채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   《이보 채형, 어디가 불편해서 그러우?》   념려스레 물으면서 일평이가 부지런히 신발을 벗고 들어와 앉아서 들여다보니   《음… 아니.》   채는 얼굴을 방바닥에 파묻은채 대답한 뒤 한참만에 비로소   《림형 왔소.》   얼굴만 쳐들고 인사를 하였다.   일평이가 보니 병고에 시달려서 초췌한 얼굴과는 딴판으로 그의 두눈에서는 희열이 소 용도는듯하고 또 행복이 넘쳐나는듯하였다. 일평이가 괴이히 여기며   《대체 웬 일이요?》   하고 물으니 채는 자기곁에 와 엎드리라고 재털이쪽으로 뻗쳤던 팔을 가두어서 자리를 내주었다.   둘이 다 미지근한 방바닥에 배들을 붙이고 엎드렸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였다.   《대체 무슨 일인데?…》   《저 대학뒤 고개너머― 공동묘지 알지? 나 오늘 거길 갔다왔소.》   《공동묘지엘? 아니, 거긴 뭣하러?…》   《이걸 가지구.》   말하며 채가 바이올린케스를 톡톡 두드려보였다.   《아니, 공동묘지에 가서 바이올린연주를 했단 말이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여우한테 홀린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채가 고개를 가로흔들었다.   《아무튼 당신은 천하의 괴짜요.》   《거길 가야만 듣는 사람이 없거든.》   《균천광악(鈞天廣樂)인가? 사람이 들어선 안되게!》   《요즘 신문에 나는거 왜 보지 못했소? 지금 챠이꼽스끼의 을 듣구 감동이 된것은 부르죠아사상이 개조되잖은 표시라구― 음악대학의 학장이 자기비판을 하는판이요. 그리구 모짜르트, 리스트앞에 무릎을 꿇은 반동음악가라구― 멀쩡한 사람들이 날마다 짓두 르려맞는판이요. 이런판에 어디서 함부루 바이올린소리를 낸다우? 뼈두 못추릴라구!》   일평이가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서 탄식을 하였다. 팔을 늘여서 재털이를 끌어당 겼다. 아래방에서 누가 들을가봐 귀전에다 대고 채가 소곤소곤 고백을 하였다.   《일을 못나가구 게딱지같은 방구석에 누워서 천정만 쳐다보구있자니 몸보다두 맘이 더 괴롭구 나보다두 녀편네의 고생이 더 말 아니요.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이게 바이올린이나 한 번 울려봤으면 좋겠는데 숱한 귀가 사면팔방에 레이다망처럼 널려있으니 그나마 어디 맘대 루 되우? 간밤엔 웬 일인지 잠이 벋놓여서 밤새도록 이리저리 돌아눕기만하는데… 나중엔 어디 가서 이나 한번 속시원히 울려봤으면 죽어두 한이 없을것 같은 생 각이 들더란 말이요. 내가 음악대학콩클에서 바이올린독주루 처음 상을 탔던 작품이 바루 이였소. 그리구 녀편네가 당초에 나하구 결혼을 한것두 구기본하면 내 독주에 반해서였소. 가만있자…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묵은 책장을 뒤질가?…》   《공동묘지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던중이요.》   일평이가 마음좋게 웃으면서 일깨워주었다.   《옳지 그렇지. 내 이 정신 좀 봐. 그래 궁리를 하다 못해 거기를 찾아가기루 결심을 하 잖았겠소. 산 사람의 귀가 없는― 공동묘지엘 말이요. 한식전 묘지는 처량하기가 마치 고전 장같습디다. 그 처량한 묘지에서 이 처량한 음악가가 오늘 손가락이 아파나두룩 바이올린을 울렸소. 사랑하는 의 가슴 설레는 선물을 울리구 또 울리구 또 울리 구… 끝이 없이 울렸소. 까마귀는 들어두 뜻을 모를게구 여우는 알아두 밀고를 안할거니 까… 맘놓구 울렸소. 정말이지 림형, 난 인젠 래일 죽는대두 유한이 없을것 같소.》   저녁노을이 서창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채전가 느티나무에 잘새들이 날아들무렵 손에 간장이 골막하게 든 간장병을 들고 또 머리에는 대패밥이 꼴딱 든 마대를 이고 주부 하씨가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날 그녀는 무용가였으나 지금은 가구점의 판매원이였다.   하씨는 일평이가 와있는것을 보고 반기며 웃으며 남편의 말벗을 해주어서 고맙다고 치 사를 하였다. 일평이는 안해가 퇴근해 돌아오면 집에 물 길어주고 불 때줄 사람이 없을것을 생각하고 부지런히 담배쌈지를 말아넣었다.   하씨가 파마머리에 달라붙은 대패밥을 떼여내며 따라나와서   《인제 보니까 세상에 드문 애처가시네요.》   하고 애교있는 웃음을 웃어보였다.             후편 9       5.1절날 오후애 리선생(모자벗은 우파분자)이 일평이 내외를 보러 왔다. 반년이나 지나 서 뒤늦게 신혼을 축하하러 온것이였다. 리선생의 안고 온 화분에서는 공원 온실속에서 따 사로운 겨울을 행복하게 난 울금향이 요염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리선생은 일평이에게만 화학을 가르친게 아니라 신부인 정숙이에게도 역시 화학을 가르 쳤던 까닭에 두 내외와 다 친숙하였다. 학교시절에 일평이와는 문학에 대한 취미의 일치로 사생간의 사이가 남달리 가까왔고 또 정숙이는 정숙이대로 후에 한해동안 화학과의 대표를 맡아보았던 까닭에 사제지간의 접촉이 남달리 잦았었다. 리선생은 화학선생이면서도 문학을 몹시 애호하였었다.   정숙이가 모처럼 찾아주신 은사를 대접할게 아무것도 없어서 인삼양위탕 맞잡이로 귀중 한 흑사탕물을 한고뿌 끓여다 드리면서   《최신식커피차… 선생님 전에두 이런거 구경하신적 있습니까?》   하고 상글거렸다.   이 흑사탕(누렁사탕)은 이번 5.1절을 앞두고 해수로 3년만에 처음 1인당 100그람씩 배급 을 준것인데 배급을 줄 때는 식료품점앞에다 대문짝만한 광고를     호소식!!!       금번 국제로동절을 맞이하여 광범한 인민대중들이 명절을 즐겁게 보내라고 당과 정부의 크낙한 배려로 1인당 2냥씩 사탕가루를 배급하게 되였으니 다들 부식물배급통장과 대금을 준비해가지고 소정된 기한내에 구역별로 와서 질서있게 타가기를 바라는바임!       이와 같이 내붙여서 3년만에 처음 구경시키는 100그람의 흑사탕이 일종의 특전임을 명 백히 표시하였었다.   이러한 래력이 있는 사탕물을 앞에 받아놓고 리선생이 참반 롱반으로   《이런 귀중한 물건을 함부로 먹어없애면 그 살림이 뭐가 될가. 주부가 살림이란걸 통 할줄 모르는구먼. 우리 집에서는 두었다가 약에 쓴다구 꽁꽁 봉해서 어디다 감춰놓구 구경 두 안시키던데.》   하고 정숙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으니   《상관없습니다. 정숙이는 시집올 때 지참금 대신에 큼직한 화수분 하나를 안구왔답니 다.》   하고 안해 대신에 일평이가 대답을 하였다. 리선생이   《참말이요?》   하고 젊은 내외를 아울러보니 이번에는 정숙이가 입을 막고 웃으면서   《네, 그래요.》   하고 대답을 하였다.     (설명) 징검다리를 뛰여넘는 빈도(頻度)가 차차로 더 잦아져서 인젠 그저 장(章)만을 거 르는게 아니라 같은 장안에서도 겅정겅정 뛰여넘어야 할 형편이다.       이날부터 정숙이가 선물로 받은 화분의 울금향을 정성들여서 가꾸어주었다. 때 맞추어 물을 주었다. 볕을 보였다. 생선 씻은 물을 얻어다가 거름까지 주었다.   반년가량 지나서 가로수의 누른잎이 소리없이 떨어지는 시절의 일이다. 어느날 일평이 가 만삭이 된 안해의 일이 념려스러워서 퇴근하는 벨이 울리자마자 부지런히 집에를 돌아와 보니 산전휴가로 집에 있는 안해가 시름없이 턱을 괴고 창가에 앉아서 계절의 변천을 모르 는듯 자태가 초초한― 래년봄이면 또다시 아름답게 향기롭게 꽃이 피여날― 울금향을 바라 보고있었다.   《어떻소 좀?…》   성미 급한 남편이 들어서며 묻는 말을 안해는 풀기없이   《이 화분… 들구나가 강물에다 던지세요. 물이 제일 깊은데다 던지세요.》   하고 딴전으로 대꾸하였다.   《아니, 미쳤소. 갑자기? 그 화분이 뭘 어쨌다구?…》   《글쎄 내다버리구 오세요. 까닭은 나중에 이야기할테니.》   일평이가 만삭이 된 안해의 비위를 거슬려서 배속의 아이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머 리속에 서양낫같은 의문부를 건채 시키는데로 순종을 하였다.   일평이가 화분을 안고 강뚝으로 나와서 물이 어디가 제일 깊은가 살펴보는중에 녀자처 럼 엉뎅이가 퍼진 웬 젊은 사나이가 역시 자그마한 화분 하나를 안고 뚝우로 올라왔다. 그 사나이의 화분에는 한그루의 예쁘장스러운 고무나무가 심겨져있었다. 그 사나이가 역시 화 분을 안고 어정거리는 일평이와 눈길이 마주치자 목을 움츠러뜨리며 싱긋 웃고 곧 일평에게 로 다가오더니 얄팍한 입술을 나불나불하면서   《동무두 그 화분… 버리러 나오셨소?》   하고 친근스레 물었다. 일평이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 사나이는   《나두요. 우리 안사람이 첫아들을 낳은지가 이제 꼭 열흘짼데… 제가 사랑하던 고무나 무라구 아무데나 버리지 말구 화분채루 강물에다 곱게 수장을 지내달라구 해서… 그래서 나 온 길이지요.》   하고 누가 묻지도 않는 말을 수다스레 늘여놓았다.   《아이를 낳는거 하구 화분하구 무슨 상관이 있다구 화분들을 내다버리라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야.》   《아이를 낳는다구 화분을 내다버려요. 누가요?》   《 아, 이제 동무가 그렇게 말하잖았소? 첫아들을 낳아서 화분을 버리러 나 왔다구.》   《내가 언제 그렇게 말합디까?》   《그래두 난 그렇게 들었는데요.》   《이 동무 좀 보게.》   《그럼 그 화분은 어째서 버리러 나오셨소. 거기 무슨 귀신이라두 붙었는가요?》   《지금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그럼 어째 버리시우?》   《나요? 난 우리 녀편네가 내다버리래서 들구 나왔지요.》   《그래 까닭두 모르구 맹탕 들구나왔단 말이요? 별사람 다 보겠네!》   일평이가 게면쩍이 웃는것을 보고 그 사나이는 제가 가장 잘 안다는듯이 자랑스레 설명 을 해드리는것이였다.   《아까 낮에 가두집회에서 세가지 혁명적결의를 했다구요. 혼례식에 관해서, 장사지내는 데 관해서 또 이 화분에 관해서… 이야기 못들으셨소?》   일평이가 못들었다고 고개를 가로흔들었다.   《이제부터 혼례는 다 모주석의 초상밑에서 아무것두 안차려놓구 그냥 지내기루 했다구 요. 함에다두 례단같은걸 넣잖구 한질만 넣어야구요. 그리구 장사를 지내는데 두 이제부턴 상복두 입잖구 전두 지내잖구 그냥들 지내야 한답디다. 뭐나 다 맨입으로 치러 라 그 뜻이겠지요. 그리구 이 놈의 화분이란건 본시 부르죠아지의 노리개였다는구먼요. 우리 같은 백성이야 그런걸 알탁이 있었나요. 그래서 이번에 싹 다 없애치우기루 했답디다. 인제 화분을 어째서들 내다버리는지 알았지요? ―우리 집엔 화분이라구 이거 하나뿐이니까 별일 없지만서두… 우리 이웃집 로인같이 가지각색 화분을 죽 벌여놓구 화초가꾸기를 락으루 삼 던이들은 아마 복통을 할게요. 그렇지만 복통 아니라 무슨 통을 한대두 별수 있나요. 없애치 우라면 없애치워야지요.》   일평이가 부르죠아지의 노리개라는 울금향을 강물 깊숙한 곳에 수장을 지내주고 들어오 면서 미친 사람같이 혼자 자꾸 웃었다.   머리가 온전한 사람이 웃지 않고 어찔것인가!             후편 13       …정숙이가 백화점에 바지감을 뜨러 갔다가 뜨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것을 보니 입 고 갔던 인조견 브라우스의 단추가 깡그리 떨어져 달아나서 하나도 남은게 없는데다가 입은 옷이란건 또 마치 육박전이라도 금시 치르고난 사람의 옷같이 온통 구김살천지였다. 집에 남아서 아이를 보아주던 일평이가 안해의 장관스러운 몰골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서 어찌된 까닭을 물으니   《사람이 어찌나 많이 들이덤비는지… 하마트면 끼워죽을번했다니까요.》   하고 정숙이는 새삼스레 제 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어서 나오는 웃음을 웃 었다. 일평이가   《바지감은》   하고 물으니 정숙이는 고개를 가로흔들고 빈손을 벌려보였다.   《경험이 없어서 그랬다니까요. 다른 녀자들은 미립이 나서 올 때 긴 띠를 한끝씩 갖구 왔지 뭐예요. 그랬다가 탁탁한 천을 판다는 소리만 나면 얼른 그 띠루 웃도리들을 칭칭 감 아서 대포알같이 만든단 말이예요. 그래 가지구 드립다 뚫고들어가는데… 머리가 거치적거 린다구 수영모를 꾹 눌러쓰고 덤비는 녀장(女將)까지 있으니… 기가 차잖구 어째요. 단추쯤 떨어지는건 뭐 아무것두 아니예요. 그저께는 깔려서 병원에 실려간 사람까지 있었대요. 사람 들 틈에 한번 끼이기만하면 몸이 둥둥 떠서 발이 땅에 닿지를 않는걸요 뭐. 한번 쓰러지는 날이 끝장나는 날이예요. 난 어찌나 겁이 나던지 속으루 자꾸 빌었지 뭐예요.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게만 해주십시오. 집에다 젖먹이 아들을 두구 왔습니다. 무턱대구 자꾸 빌었다니까 요.》   《느 엄마 저 꼴 좀 봐라 저거.》   하고 일평이가 아들의 겨드랑이를 껴들고 엄마의 사나운 몰골을 구경시켰다. 구경ㅇ르 시키는중에 이웃집 라지오가 마치 일평이의 비위를 긁어주기라도 하려는것 같이   《…방직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구 식료품가공업과 일용품생산을 혁신한 결과 인민들의 소비품 생산이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시장은 흥성하구 물가는 안정됐습니다…》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기탄없이 뇌까렸다. 일평이는   (거짓말 말아!)   고함이라도 한번 질렀으면 속이 좀 후련해질것 같았다.   이때 국가에서 내주는 포표(면직물구매권)가 전에 비하면 월등 많아졌다는것도 1년치를 모두 합해서 1인당 겹옷 한벌폭이 퍽 못되였다. 홑옷 한벌 지어입고 베개잇 하나 갈고 그러 고 수건 하나 양말 한컬레를 사면 그만이였다. 그나마 육박전을 하지 않고 살수 있는 천이 란것은 가제에다 염색을 한것 같은 외올광목뿐이였다. 그런 외올광목으로 지은 옷은 장난 심한 아이들에게 입히면 그 옷은 한주일이 꼭 한명이였다. 열흘을 입히면 그 옷은 억하심정 으로 남을 두벌죽음을 시키느냐고 매원을 할것이고 또 보름을 입힌다면 그 옷은 살부지수가 아닌바에야 릉지처참으로 각까지 떠죽일건 무어냐고 입힌 사람을 원망할것이다. 그리고 그 럴수는 절대로 없지만서도 만약 한달을 입힌다면 그 옷은 누굴 칼탕을 쳐죽일 작정이냐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생결단을 하러 덤빌것이다.   형편이 이쯤 되다보니 몸에 그물을 걸치고 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탁탁한 천을 판다는 소리만 나면 (너도나도) 매대를 향해 육탄돌격을 감행해야만하였다. 투구쓰고 갑옷 입고 희 생자를 내가면서 육탄돌격을 해야 하였다.   ……   정숙이의 과수댁 숙모가 애지중지 길러낸 무남독녀 외딸이 시집을 가게 되였다. 상대자 는 어느 기관의 당일군이라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람이 여간만 똑똑하지가 않다는것이 였다.   일평이는 처남들이 다 자기를 덜 좋아하는 까닭에 이편에서도 자연 탐탁하지가 않아서 처가집 겨레붙이와는 상종을 그리 하잖았다. 그러므로 이번에 시집을 간다는 처 사촌의 얼 굴이란것도 두어번 보았을가 말았을가한 정도였다. 형편이 그런 까닭에 일평이는 결혼식에 도 참례할 생각을 먹지 않았다. 겉인사성으로 오라고 청하긴 하였지만서도 정숙이도 피차간 에 사이가 서름서름한것을 잘 아는터인지라 굳이 가자고 남편을 끌지는 아니하였다.   정숙이가 잔치를 보러 간 뒤에 혼자 남은 일평이는 베개를 높이 하고 편안히 누워서 고 골리의 《죽은 넋》을 다시한번 읽어보았다. 그러나 눈깔먼 횡액은 나다니지 않고 집안에 가만히 들어앉아있는 사람의 머리우에도 사정없이 떨어져내려왔다. 유착한 대들보모양 치명 적으로 떨어져내렸다.   승석때나 되였을가 잔치집에 갔던 정숙이가 얼굴빛이 새까맣게 죽어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일평이가 손에서 책을 떨어뜨리며 벌떡 일어앉아서   《웬 일이요?》   물으니 정숙이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남편의 얼굴만 마주보았다.   《왜 무슨 일이 생겼소?》   일평이가 성급하게 다우쳐물으니 정숙이는 한참만에 겨우 입이 떨어져서   《신랑이 안온대요.》   대답을 하는데 그 말소리가 흡사 겨우 맺혔던 물방울이 한방울 듣는것과도 같았다.   《신랑이 안오다니?》   《색시를 데리러 오잖는대요.》   《색시를 데리러 오잖아. 어째서?》   정숙이는 대답을 못하고 남편의 눈길을 피하였다. 불길한 추측에 사로잡히면서 일평이 가 의식적으로 부드러워졌다. 말소리를 낮추었다.   《혼인을 그만둔단 말이요?》   《그만둔대요. 뒤늦게… 전갈이 왔어요.》   《전갈이 와? 뭐라구? 어디 좀 자세히 이야기하우.》   《신부의 가족관계를 조사해본 결과… 신부의 사촌형부가 모자벗은 우파분자란걸 알았 대요. 그래서 혼인을 그만둔대요. 가정성분이 나쁘다구.》   그 불행한 신부감의 사촌형부란 곧 자기를 가리키는것임을 안 일평이의 가슴속에서는 무명업화(無名業火)가 폭발을 하였다.   (소나기가 쏟아졌다우! 불비가 쏟아졌다우!)   일평이는 자기가 금고속에 갇히기라도 한것 같아 숨이 콱 막혔다.   (번개가 쳐라! 우뢰가 울어라!)   (가정성분! 가정성분! 가정성분!!!)   《그래 그 집에선 지금 다들 어떻거구 있소?》   《모녀 맞붙들구 통곡을 하고있어요. 지금. 죄스럽구 송구스럽구… 사람이 어디 견딜수 가 있어야죠. 난 내처 얼굴을 못들구있었어요. 견뎌배기다 못해 도망치듯 달아나오는 길이예 요.》   일평이가 말문이 막혀서 어리석은 사람모양 덤덤히 안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설음이 구름낀 안해의 얼굴에서는 소리없는 울음이 금시 터질것만 같았다.   이날부터 정숙이가 노상 시름에 묻혀서 살았다. 자는 아들의 맑은 얼굴에 눈길을 보낼 적마다   《일없을가요?…》   조르듯이 남편에게 물었다.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영향을 입어서 일생을 랭대속에 보내 면 어쩌느냐는 모성적인 우려였다.   하긴 일평이자신도 어린 아들의 일에 들어서만은 락천가가 못되였다. 가슴속에 무시로 그늘이 졌다. 장마철의 움속같이 밤이고 낮이고 곰팡내가 풍기는 그늘이였다. 그렇기는 해 도 안해의 입에서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말이 나올적마다 일평이는   《일없소, 념려마우. 일없다니까.》   하는 말을 가지고 안해의 말을 막았다. 그렇게 하는것이 곧 자기 속에 움직이는 마음을 누르는것으로도 되였기때문이다.   《어떻게 일이 없을가요? 먼 가닥 처사촌이 다 얼을 입는데.》   《그렇게 우렝이속으루 자꾸 파고들어가지만 말구 좀 널리 보우 널리. 쥐구멍에두 볕들 날이 있다잖소. 회오리바람두 하루종일 부는 법은 없단말이요. ―맘 푹 놓으시오, 우리 일등 미인 작은아씨.》   ……             후편 16     (설명) 리선생이 간염이 도지여 두메산골로 전지료양을 떠난 뒤에 시내에서는 채가 또 지병 이 악화되여 마침내 저승객으로 된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우파분자라는 정치모자를 벗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다. 그의 흉보를 리선생에게 전하는 일평이의 편지가운데서 비교적 무난 한 부분만을 골라서 옮겨놓는것이 곧 이 몇줄의 글이다.       …답답한 소식과 불행한 소식외에 전할게 없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슬픈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 우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우리의 채씨가 불귀의 객이 되였습니다. 사망진단서에는 세상에 흔한 병명이 사무적으로 간단히 적혀있습 니다. 그러나 선생님, 우리 바이올리니스트의 목숨을 앗아간것은 병이 아니라 정치입니다!…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바람이 락엽을 굴리며 돌아다니는 묘지는 쓸쓸하기가 마치 달나라 같았습니다. 나무가지에 앉아서 조는 병든 까마귀의 꺼칫한 털이 바람에 거슬리는것을 보니 어쩐지 보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으스스해지는것 같았습니다.   서산마루에 피빛의 락일이 뉘엿뉘엿 가라앉을무렵, 봉분을 겨우 끝내고 술 한잔없이 봉 분제 명색을 지냈습니다. 어떻게 지냈는지 아십니까 선생님? 반동음악가라고 아주 돌려난 고씨가 무덤앞에서 영결의 바이올린연주를 했답니다. 고씨는 채씨 생전에 딱친구였지요. 망 인이 가장 사랑하던 《제고이네르바이젠》을 들려주자는거였습니다. 그가 사랑하던 바로 그 바이올린으로 말입니다.   《찌고이네르바이젠》의 가슴 설레는 선률이 타는듯한 저녁노을 배경으로 하고 어둠이 깃드는 묘지에 울려퍼질 때 저는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했습니다. 심선생(모자벗은 우 파분자 소설가)도 눈구석을 눌렀습니다. 하씨는 흐느끼면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쌌습니다.   고씨는 바이올린을 울리고 또 울리고 울리고 또 울리고… 끝이 없이 울렸습니다. 기진 맥진해서 쓰러질 때까지 계속할 작정이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였습니다. 심선생이 다가가 서 고만하라고 어깨를 쳐서야 바이올린과 활을 량손에 갈라쥐고 돌아서는데 그 눈은 혼이 나간 사람같이 공허하였습니다.   하씨가 바이올린을 임자곁에 묻어주겠다는것을 우리가 밀막았습니다. 봉분앞에서 사르 겠다는것도 못하게 붙들었습니다. 남편의 손때묻은 물건이라고 그것 하나뿐인데 기념으로 남겨두어야 하잖겠느냐니까 하씨는   《그래두 바이올린이 없으면 더 고적해할것 같아서요.》   하고 새삼스레 우는것이였습니다.   ……             후편18     (설명) 이것은 맨마지막 장의 맨끝부분이다.       접수실에서 전화의 벨이 야단스레 사람을 부르고있었다. 일평이가 빈 수지통을 던지듯 이 내려놓고 수화기를 벗겨들었다.   《녜? 양재물을 먹었다구요? 구급차? 아, 여보십시오. 미안하지만 여기 병원이 아닌데 요. 어디냐구요? 여긴 신문사, 신문사의 접수실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아니, 천만에요. 좋습 니다.》   일평이가 수화기를 걸어놓고 의자에 털썩 걸앉으면서 이마에 손을 짚었다. 입속말로 중 얼거렸다.   《자, 이제부터다.》   감방의 식기구(食器口)같은 접수구밖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나무잎과 종이쪼 각들을 깔때기모양으로 감아올리며 돌아가다가 쫓기듯이 주차장쪽으로 옮겨갔다.   철조망으로 둘리지 않은 세계 최대의 강제로동수용소에 또다시 겨울이 닥쳐왔다.     1965년 3월     (설명) 발취라고는 하지만 기실 전문의 10분의 1도 채 못되는 편폭이다. 그러니까 4분의 1세 기만에 겨우 산마루에 이마를 조금 내민 셈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일단락을 짓고 몇해후에 다시 보기로 하자.     1989년 4월     [ 1989년 8호]  
4    [단편] 傷痕 댓글:  조회:840  추천:64  2010-01-31
傷痕김학철1 「홍르 자오벤료 둥빵(紅日照遍了東方)」 쏘프래노의 노래소리는 「즈유즈쓴 자이 충칭 거챵(自由之神在從情歌唱)」 느러드리운 새파란 버들가지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고 정오(正午)가까운 첫여름의 쾌활한 태양이 나려쪼이는 공중에는 제비가 유선형(流線型)의 쾌속(快速)을 마음껏 맛보듯이 유쾌한 줄을 자죽없이 그으며 헤여가고 헤여오고 한다。    「캉르디 퐁훠 란소자이 타이항산상(抗日的烽火燃燒在太行山上)」 위나(威娜)다。 산곬작우니에 흐르는 맑은개울―파란유리병속으로 디려다보는사이다―같이 시원해보이는 물속에 하―얀 두다리를 무릅밑까지 잠그고 돌우에 걸터앉어 빤 머리를 가벼운 바람에 흐터뜨리어 말리면서 부르는 노래。 「디렌 충 나리진궁(敵人從那裡進攻)」 역시 물속에 발을 당그고 앉어서 마주처다보며 노래를 받는것은 양대준(楊大俊)。 「지우요자이 나리 메왕(就要在那裡滅亡)」 대준은 오래간만에 보는 여성(女性)으로서의 그리고 안해로서의 위나의 얼굴에 그 처녀시절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어있는것을 발견하고 새삼스러이 놀랐다。 오늘하로 군복을 벗고 남편의 품속으로 돌아온 여자―조선의용군제×지대 지대장 위나。 「위나 이것 좀 봐」 「네? 그게 뭐예요?」 어디서 조렇게 얌전한 말소리가 나올까? 대준은 심장(心臟)가장자리가 약간 간지러운것을 느꼈다。 대대장(한지대는 세개대대이상으로 편성된다)양대준은 직속(直屬)상사(上司)로서의 그리고 딱딱한 군인으로서의 위나를 대하든 관념이 머리 어느 한구통이에 그저 뽑다만 가시처럼 까칠까칠하게 남어있는것을 깨달았다。 (저건 내 안해다)그는 속으로 이렇게 규정을 나렸다。(내맘대로 할수있는것이다) 그래도 어쩐지 조끔 자신이 없는것 같았다。 「여보오 준(俊) 왜 그렇게 뚫어지게 처다만 보는거요?」 「응? 아니……」 대준은 덤비여 이렇게 말하고 눈을 나려떠서 물속에 잠근 자기발등으로 시선을 옴겼다。 「뭘 그렇게 생각허구 있어요?」 「아니야 아무것두…」 「나헌테 숨기지?」 「숨기긴 뭘?」 「난 싫여」 위나는 한번 상체(上體)를 가볍게 흔들어 몸부림을 치고 실쭉한것처럼 반쯤 돌아앉어 버린다。 「…?…」 대준은 덤비며 일어나 옆으로 가서 그목을 껴안었다。 위나는 팔굽으로 껴안는 사나이의 가슴을 떠다밀며 또한번 몸부림을 첬다。 흐터진 머리에 훌겁게 꽂았든 새안 세루로이드 빗이 하아얀 무릎우에 떨어져 튀어저 들릴락 말락한 물소리를 내며 물밑으로 가라앉어서 은빛 모래바닥에 머리를 조끔 파묻었다。 낮게살같이 날러오던 제비가 두사람의 머리우에까지 와서 팔딱 재주를 넘어서 또 꼿꼿이 보이지않는 금을 그으며 날러갔다。        2 부락(部落)과 숲과 산기슭에 아직 채 걷히지않은 우유빛 안개가 나지막하게 끼여있는 그 우이를 신선(新鮮)한 햇살이 뻗처왔다。 아침―눅눅하게 젖은 길우이를 회색군복의 기―ㄴ 대오(隊伍)가 움직이고 있다。 그 대열(隊列)에서 조곰 떨어저서 기마(騎馬)가 다섯 한곳에 몰켜간다。 위나 지대장 김 참모장 양 대대장 그리고 또 두 대대장。 행군간(行軍間)의 작전회의(作戰會議)다。 「그러니까 어떠한 희생이 있드래도 우리는 반드시 점령해 놓아야만 하오」 이렇게 말하고 위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머―ㄴ 길앞을 응시했다―마치 거기에 목적하는 적(適)의 거ㅅ점(據點)과 흉악한 적병의 얼굴이 뚜렷이 나타나 보이는것같이…。 결심―말없는 다섯간부(幹部)미간(眉間)에 처열(凄烈)한 결심의 빛이 얼어붙었다。 말들도 서로 코를 맞대고 냄새를 맡고 푸루룩거리고 하는것을 그첬다。 굽소리까지도 죽여가며 걷는것이같다。 침묵―결심。 공격(攻擊)을 앞두고 그들은 머릿속에 벌서 그 처절(悽絶)한 전투장면을 선명(鮮明)하게 그리고 있다。 오늘 큰 싸움이 벌어질것이다。 대열은 적의 거ㅅ점을 향하야 끊임없이 움직여 나가고 싸움의 시각은 점점 가까워온다。 「각 대대장은 회대(回隊)。 재차의 명령을 기다리도록」 위나는 이렇게 명령을 나리고 비끗 김 참모장의 옆얼굴을 처다본다。 그는 고개를 이리로 돌리여 눈으로 이의(異議)없는것을 표시했다。 「알었습니다。 그럼 또…」 두 대대장은 거수경례(擧手敬禮)를 하고 한손으로 고삐를 낚어채여 하나는 앞으로 하나는 뒤로 말머리를 돌리여 헤여저 갔다。 양 대대장도 이어서 경례를 붙이고 말을 달리어 대열옆을 타서 앞서간 동료(同僚)의 뒤를 쫓어갔다。 위나는 멀어저가는 남편의 뒷모양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어드리고 고삐안잡은 손으로 복슬복슬한 말갈기를 빗겨 쥐었다―하얗고 가느다란 다섯손가락을 갈퀴처럼 꾸부려서… 「히힝」하고 갑자기 옆에서 참모장의 탄 말이 머리를 번쩍 처들고 크게 울었다。 장마에 부른 장강(長江)의 탁류(濁流)처럼 대열은 적진을 향하야 흐르고 있다―용기와 공포와 호기(好奇)와 전율(戰慄)와 또 기타의 여러 가지 감정은 마치 강물이 실ㅅ고 가는 물거품과 여러가지의 허접쓰레기 같이 실고…。                          3 「왜? 뭣때메。 안돼 안돼」 군용전화의 수화기를 귀에 대고 위나는 「희생이 문제가 않야 희생이―못뺐으면 다 죽지 다 죽어」 흥분해서 떨리는 소리로 이렇게 웨첬다。 일선(一線)에서 우뢰같은 포성이 간단(間斷)없이 들리어 오고 그 사이를 기관총이 급격한 리즘으로 메꾸어 나갔다。 초연(硝煙)이 진한 안개같이 끼인 전장의 석양(夕陽)―피빛의 낙일(落日)이었다。 작전지도부에는 땀으로 호조루두하게 젖은 말들이 거품을 물고 뛰여왔다가는 또 곧 뛰여가고 한다。 정오 조곰 지나서부터 시작된 공격(攻擊)이 지금에 이르러 「엄호사격(掩壕射擊)이 포병대의 엄호사격이 미약해서…」 전화속에서 양대준은 「전멸하겠오. 전멸…」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엄호사격하고 그리고 속히 증원부대(增援部隊)를…」 기침소리가 숨이 넘어가도록 급하게 연겁허 들려왔다。 「좌우양익(左右兩翼)이 다 접선되는데 왜 중앙만이 동무가 맡은 중앙만이…」 위나는 발을 굴렀다。 「적이 중앙에다만 화력(火力)을 집중하니까 그렇지…」 양 대대장은 소리쳤다。 「이제 이십분 더 기다려서도 증원부대가 오지않으면 부득이 부득이 퇴(退)해야겠소. 퇴해야…」 「안돼 안돼 죽어도 안돼」 위나는 불같이 달아서 한손으로 허리의 권총자루를 으서저라고 꽉잡아쥐고 「전멸해도 좋아。 만약 허락없이 퇴하면 그때는 군법으로 처치할테야 군법。 죽어도 퇴하면 안돼。 이것은 상사의 명령 지대장의 명령」 수화기를 덜커덕 놓고 돌아서며 위나는 소리처 불렀다。 「전령(傳令) 전령」 (쿵 우루룽) 가까운곳에 포탄이 날러와 터저서 지진같은 충격(衝擊)을 땅밑으로 전해왔다。 코를 찔으는 초약내음새가 부서진 창문으로 떠들어왔다。 마치 독와사같이. 포성과 기관총성의 반주(伴奏)가운데 처참한 황혼(黃昏)이 전장을 뒤덮었다。                                 4 작전지도앞의 일선(一線)으로 통하는 길에는 전상사를 실은 위생대와 단가(擔架)가 끊임없이 후방으로 후방으로 쓸어나려오고 있다。 어깨와 어깨를 서로 잡고  절름절름 다친 다리를 끌며 오는 경상자(輕傷者)의 무리。 어둠속에서 하―얀붕대만이 눈에 띠웠다。 상처의 아픔을 참지못하여 나오는 신음과 흐득거리는 울음。 위나는 위대(衛隊)와 전령을 데리고 말을 달리어 부상자의 흐름을 거슬러 막 어지려는 일선 중앙으로 쫏어갔다。 하늘의 별도 조각달도 포연에 가리워 흐려지고 미지근한 바람이 초약(硝藥)내음새와 피ㅅ비린내를 안고 무겁게 불어왔다。 「누구야? 거기섯!」 경계선(警戒線)의 보초(步哨)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지대장 위나。 작전지도부」 위대가 위나 앞으로 말을 달리어 나가며 대답하고 이어서 도로 물었다。 「대대부 대대부가 어디야?」 「그긔서 곳곳이 삼백메―타。 독립수(獨立樹)밑에」 보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알었어。 이리로 어서」 하고 위대가 앞서서 달리였다。 위나와 닳아가는 여러필의 말이 그뒤를 이었다。 독립수밑。 양 대대장은 등뒤에 난잡한 말굽소리를 듣고 머리를 돌리었다。 말에서 뛰여나려서 고삐를 수원(隨員)에게 던저주고 이리로 걸어오는 호리호리한 거먼 그림자。 불과 얼마 안되는 곳에 포탄이 날러와 굉장한 작열성(炸裂聲)을 내며 터 다。 말이 놀라서 (히히ㅇ)소리를 지르며 앞발을 번쩍 들고 일어섰다。 양대준은 번쩍하는 화광에 그 거먼 그림자가 위나인것을 알았다。 입을 한일ㅅ자로 꼭 다물고 강모(鋼帽)를 눈섭아래까지 푹 눌러쓴 위나가 그 부하의 눈앞에 와서 똑바로 섰다。 양대대장은 두발을 모으고 경례를 한다。 거기에는 답하지않고 위나는 짤막하게 물었다。 「전항(戰況)은?」 「넷。불 불리(不利)합니다」 대준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좌우우군(左右友軍)과의 연락은?」 「두 두절(杜絶)」 「잔존병력(殘存兵力)?」 「오분지삼(五分之三)」 「탄약은?」 「그럭…」 「그러면…」 「그러면?…」 대대장이 반문했다。 「즉시 돌격(突击)」 「예? 돌격?」 「안들리오? 즉시 돌격」 지대장의 입에서는 거역할수 없는 위압을 갖인 명령이 재차 떨어졌다。 「ㅅ」 그 부하가 이렇게 대답을 하고 이 절망의 최후돌격을 감행하려고 적진을 행하야 돌아섰을 그때였다。 별안간 저편 하늘에서 머― ㄴ 곳에서 들려오는 우뢰소리같은 비행기의 폭음이 전전야(全战野)를 위협하듯이 무겁게 누르며 뒤흔들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가까워 저서 두 날개밑과 꼬리에 단 빩안등과 파란불이 한대 두대 또 한대 천천히 열전(热战)의 전장상공(上空)을 떠들기 시작했다。 적기(敌机)다。                     5 「오! 마구네슘」 「수송기(输送机)다!」 적의 거ㅅ점에서 강렬(强烈)한 마구네슘의 희고도 파란 섬광(闪光)이 번뜩번뜩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순간 주위가 조명탄을 던진것같이 화― ㄴ 해 다。 어둠속에서 혼란한 전야(战野)가 폭로되었다。 철조망과 녹차(鹿砦)와 위장(伪装)된 방어공사가 스크린에 나타난 전쟁영화(映书)와 조금도 다름이없다。 어두운 공중을 모색(摸索)하며 선회(旋回)하던 비행기의 표치등(標幟灯)이 병아리를 발견한 독수리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지상(地上)의 적이 대공신호(对空信号)를 한것이다。 보급선(补给线)이 차단(遮断)된 적이 탄약의 보급을 수송기로 하려는것이 틀림없다。 적의 손에 탄약이 들어가면 공격군이 받는 타격은 막대할것이다。 촌분(寸分)의 치의(致疑)도 있을수 없다。 때는 지금。 공격의 때는 지금 이 순간。 양 대대장이 뛰여갔다。 그는 땅우에 느리운 전선(电线)에 걸리어 넘어 질것같이 비틀비틀하다가 다시 몸을 바로잡어 가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저갔다。 위나는 턱에 건 강모ㅅ줄을 고치고 허리의 권총을 잡아 뽑았다。 공중에서 낙하산(落下伞)에 매달린 탄약상자들이 아주 완만(緩慢)한 속도로 날러 나려오기 시작한다。 화선(火线)에서 우군(友軍)의 총성(铳声)이 뚝 끊 다。 육탄(肉彈)의 돌격이 시작된 징후(徵候)다。 어둠속에서 두눈과 날창만이 번쩍이는 벙어리 육박전(肉薄战)은 적에게 무시무시한 형언할수 없는 공포를 주는것이다。 적의 방어포화(防御砲火)가 비명을 질렀다。 총구(銃口)에서 새빩안 불ㅅ길이 쉴사이없이 날름거린다。 포대(砲队)가 침묵했다。 공격군이 최근거리(最近距离)의 사정(射程)을 벗어나서 바로 눈앞에 박도(迫到)한때문이다。 이어서 백인전(百忍戰)의 서막(序幕)인 수류탄전이 백개의 벼락이 한꺼번에 떨어지는것같은 소리를 내며 열려졌다。 지대장의 권총과 위대의 자동소총(自動小銃)이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뒤로 한발짜국만 물러서면 우군의 탄알에 쓸어지는 운명에 다닥친다。 단 몇분이라도 더 지체하면 적에게 탄약을 공급한다。 최후의 그리고 결사의 돌격이 감행되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자기자신도 예상못한 초인적(超人的)용맹을 발휘하는 것이다。  대대장이 선두에 섰다。  부하들은 더한층 용기가 났다。 녹차를 넘고 철조망을 끊은 공격군이 조수(潮水)같이 몰키어 그 돌파구(突破口)로 쏟아저 들어갔다。 날창과 날창이 부드처서 불꽃이 튄다。 질르고 질리우고。 비명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날창이 불어진 총ㅅ대를 꺼구로 들고 적의 두개골을 후려갈기면 딱딱한 강모에 부드처서 또 불꽃이 튄다。 가슴패기에서 등뒤까지 날창을 꽂아놓고 그것을 뽑지못해서 낑낑거리는것이 있으면 서로 마주질러놓고 서로 뽑지못해서 마치 두개의 꼬챙이를 꽂아논 산적같이 나둥그러지는것도 있다。  이 처절한 수라장(修羅場)에 여기 저기 명주의 날개를 벌린 평화의 여신(女神)이 어두운 하늘에서 소리없이 날러 나려왔다―거ㅅ점의 사활(死活)을 결정하는 엄숙하고도 중대(重大)한 식전(式典)에 지각(遲刻)을 한 군수품(軍需品)상자가…。  적이 동요(動搖)하기 시작했다。 양 대대장은 적의 장교와 단병접전을 한다。 적의 권총탄이 양 대대장의 왼편 뺨을 시뻙엏게 단 화젓가락으로 지지는것같은 아픔을 주며 스처갔다。 그와 동시에 양 대대장의 권총탄은 적장교의 배꼽 조끔 우이를 뚫었다。  양 대대장은 적이 쓸어지는것을 보고 왼손을 들어 피가 흘러나리는 왼뺨을 눌렀다。 그 순간 그는 머리에 어디서 무거운 쇠공이가 날러와 부드치는것같은 맹렬한 충격(衝擊)을 느꼈다。 그는 권총을 떨어트리고 두손의 손ㅅ가락을 갈퀴처럼 꾸부리여 빈 공중을 움켜쥐려고 허비적거리며 그만 적의 시체우에 가 쓸어 다。                       6 붉은 아침해가 떠올랐다。  싸움 끝난 전장에 어제와 그리고 또 그적게와 조금도 다름없는 해ㅅ살이 뻗혀왔다。  파괴된 건축물의 지붕과 처마끝에 어제아침에 와서 째잘거리든 참새떼가 또 날러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임자갈린 장터에 여전히 무의미하고 시끄러운 장을 버렸다。  점령자(占領者)들이 기― ㄴ줄에다 염주(念珠)꾀듯한 부로(俘虜)들을 몰고갔다。 구덩이를 파고 제명(命)에 죽지못한 불운(不運)한 아들과 아버지와 그리고 남편을 묻었다。 그들은 저 바다건너 머― ㄴ고국에서 가슴을 조리며 오늘도 또 오늘도 하고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와 어린 아이들과 그리고 청춘의 안해에게 영원히 씻지못할 눈물의 씨를 그 가슴속 깊이 묻어주었다。  조선의용군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 간부(幹部) 양 대대장은 단가(擔架)에 누어있다。  병신된 적의 대포가 여기 저기 나둥글어저 있는 포병진지 나무그늘에서 지대장 위나는 한무릎을 끈적끈적한 피에 젖은 풀밭우에 꿇고 또 한 무릎을 세우고 그리고 피배인 하―얀붕대에 감겨서 누어있는 남편의 말없는 입술과 뜨지않는 눈의 긴 속눈섭과 그리고 부정확한 호흡을하고 있는 코ㅅ밑을 디려다보고 있다。  지대장의 눈에서 풀닙에 매달린 이슬방울같이 맑은 눈물이 비저나와서 고였다가 두 뺨을 적시며 흘러나려서 잠깐 양쪽 입가장자리에 머물렀다가는 양 대대장의 피묻은 군복 가슴우에 얹어논 하―얀 자기손ㅅ등에 방울방울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한방울 또한방울。  나뭇가지에서 금빛찬란한 거미가 한 마리 가느다란 은실(銀絲)을 해ㅅ볕에 반짝이며 꼿꼿이 수직(垂直)으로 타고나려와서 역시 금빛으로 반짝이는 군복 다섯째 단추우에 머물렀다。  「보고(報告)! 지대장」 「…… ……」 위나는 손ㅅ락끝으로 두 눈구석을 눌렀다。  「총사령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전령이 등뒤에 멀직암치 서서 이렇게 보고했다。 그는 지대장의 얼굴을 보지않으려는 것이다。 눈물에 젖었을 그 얼굴을。  「아 알았어 뒤로 곧 가께」 위나도 역시 돌아보지않고 대답했다。  사랑하는 부하가 다쳤을때 상관이 우는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남편인 경우에 그 안해가 우는것은… 전령은 지대장의 등뒤에다 경례를 하고 발ㅅ자죽소리를 죽여가며 발끝으로 걸어서 급하게 달아나버렸다。  일어서려던 위나는 다시 펄석 주저않았다。 그리고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두 어깨가 격정적(激情的)파도를 쳤다。 억눌렸던 오열(嗚咽)이 터저나온것이다。                       7 서늘한 바람이 욱어진 나무닢을 흔들며 지나갔다。  (따데― 따데 지떼다―) 코코수들이 나팔연습을 하고있다。  (따데―지떼 따데―지떼다―) 여름 한낮 맑게 개인 하늘에 털복숭이 양같은 구름이 한덩어리 남남서(南南西)를 향해서 바뿌지않게 떠 흘으고있다。 하얀 운동복에 밀ㅅ집모자를 비스듬이 쓴 두 사람이 서늘한 나무그늘밑을 거니고 있다。 위나와 그 남편。  「여보오 당신의…」 「아?」 대준이 발을 멈추고 이렇게 물으며 안해의 얼굴을 건너다 보았다。  「그 숭터」 하고 위나는 남편의 익은 사과같이 붉고도 윤택(潤澤)있는 뺨에 가로 비낀 탄알자죽을 가르켰다。  「이거?」 남편은 손바닥으로 왼뺨 숭터 우이를 살그머니 한번 나려문질러 보고 「이거 뭘?」 하고 물었다。  「영예(榮譽)의 상흔(傷痕)」 이렇게 말하고 위나는 그 상흔에 젖은 입술을 갖다 대였다。  머리우에서 나무닢이 속삭이는것같은 소리를 냈다。 하옇고 얇은옷이 등어리에서 마치 순풍(順風)을 가득히 받은 범선(帆船)의 돛같이 불룩해 다。  「그럼 그건?」 하고 대준이 위나의 눈ㅅ가장자리를 가르키며 물었다。  「뭐?」 「그거 그 가느다란 주름ㅅ살」 「아 이거?」 하고 위나는 생끗이 웃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마음의 상흔。  사랑의 상흔」 하고 고개를 푹 숙으렸다。 그 귀ㅅ가에는 밝아스름하게 피ㅅ기가 떠올랐다。  (따데― 지떼따데― 지떼다―) 느러진 나팔소리와 함께 서늘한 바람이 또 불어왔다。   (연변대학교 김순녀 제공)                                                연변문학 2007년 제3호                      
3    [단편] 돌배골의 봉기 (김학철) 댓글:  조회:1668  추천:67  2008-06-13
                                                     돌배골의 봉기                                                     장편《범람》의 일부분김학철1. 안개 낀 야밤짙은 안개가 낀 야밤, 배사공 태명(泰明)은 낚시대를 메고 초롱불을 켜들고 강뚝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오고있었다. 거의 배말뚝앞까지 왔을무렵, 뜻밖에 들려오는 소리에 태명은 깜짝 놀라고말았다. 태명은 주춤 멈추어서서 어둠속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얏?》안개속에는 대답소리는 없고 다만 거친 숨소리만 들려올뿐이였다. 태명이 다시 한번 소리를 쳤으나 대답은 여전히 없다.《대답하지 않으면 대갈통을 까버릴테다!》태명은 초롱불을 땅에 내려놓고 낚시대를 한옆으로 비스듬히 거머쥐였다. 태명은 공격의 자세를 취하면서 버럭 소리는 쳤지만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아, 배사공이구만요!》초롱불빛이 환히 비추고있는 까닭에 저쪽에서는 태명이쪽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안개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는것 같았다. 태명이 물었다.《어찌 할건가?》《아니요. 난 당신을 해치러 온게 아니오. 다만 한가지 자그마한 부탁이 있을뿐이요.》《어쨌든 손은 움직이지 말구 이 초롱불앞으로 나와보시오! 서로 얼굴을 보면서 말을 합시다.》태명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명령을 했다.짙은 안개속에서 웬 사내가 한다리를 질질 끌며 초롱불앞에 나타났다.           《아!》그 사람을 보는 순간 태명은 목구멍으로 나오는 소리를 겨우 삼키며 또 한발 물러섰다.눈앞에 나타난 이 낯선 사나이는 머리카락이 마구 흐트러져있었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있었다. 시퍼렇게 멍이 든 눈두덩과 축 처진 한쪽 팔, 그리고 질질 끌고있는 다리에서는 흥건하게 피가 흐르고있었다.《나는 경찰놈들에게 쫓기는 사람이요. 미안하지만 나를 도와 강을 건널수 있겠소? 나는 절대 강도나 살인범은 아니외다. 감옥문을 부수어버리고 탈주한 사람일뿐이요.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지만 만약 살수만 있다면 이후 꼭 당신의 은혜에 보답할거요. 제발 좀 도와주시오.》 자기의 모습이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사나이는 얼마간 자기의 신분을 밝혔다. 하지만 사나이는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짙은 안개속을 휘둘러보았다. 이제 막 경찰들이 들이닥칠 판이였다.태명은 이 《불청객》의 솔직한 표정을 미루어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수 있었다. 뒤에는 늑대같은 경찰들이 쫓아오고 앞에는 사품을 치며 흐르는 강물이 가로막고있으니 어찌 절망에 빠지지 않을수 있으랴. 그 어떤 결의로 이글거리는 사나이의 눈빛, 마치 명령을 내리는듯한 태도,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면 그 억센 주먹으로 배사공을 때려눕히고 배를 빼앗아가지고 강을 건널것이였다. 하지만 젊은 배사공은 또 한발 물러서면서 분명히 거절을 한다.《당신의 딱한 사정은 동정할만 하지만 어찌됐든 나는 당신을 도울수 없소. 당신을 배에 실어 강을 건너가게 하면 내 모가지가 떨어진단 말이오. 만약에…》《그렇다면 배를 빌려만 주시오!》탈옥자는 급히 태명의 말허리를 끊으면서 청을 드는데 도대체 명령을 하는지, 아니면 사정을 하는지 알수 없었다.《여긴 물살이 아주 급하오. 나는 어릴적부터 노를 저어 밥을 먹어왔지만 한손으로 노를 저어 강을 건너간적은 없소…당신이 외팔로 어떻게?》태명은 가까스로 터지는 코방귀를 참았다.《괜찮소. 그저 배만 빌려주시오!》《아이 참, 이런 소고집이라고야! 외팔로 노를 젓는건 부질없는 짓이요… 물살에 밀려 도로 강기슭으로 되돌아오게 될거요…》잠시 머뭇거리던 태명은 어쩐지 사나이의 처지를 동정하게 되였다. 그래서 근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한다리를 끌고 강을 건넜다 하더라도… 또 산을 톺아올라가야 하지 않겠소?… 혹시 강건너에 숨을 곳이라도 있소?》태명이 살고있는 고장, 락동강(洛東江) 지류의 하나인 이 강은 서쪽은 그야말로 옥야천리이지만 동쪽은 돌배골이 자리잡고있었는데 태백산줄기가 강변까지 뻗어 내려와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루고있었다. 그래서 태명은 다리에 부상을 입은 이 사나이가 어떻게 그 험악한 산발을 타고올라 경찰들의 추격에서 벗어날수 있을런지 적이 근심이 되였다. 그렇다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가 무작정 낯선 촌락에 들어갈수도 없지 않는가!《그건 당신이 근심할바가 아니오.》부상당한 사나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맺고 끊듯이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 나루터 맞은쪽이 돌배골이지요. 내가 잘못 본게 아니겠지요?》하고 물었다. 태명은 고개를 끄덕여보이며《하지만 몸을 숨길만한 곳은 아니지요!》하고 적이 조바심을 쳤다.《강을 건너게만 해준다면 나는 살수 있소. 공연한 근심을랑 말고 빨리요!》사나이는 고집스럽게 같은 말을 곱씹었다.마침내 태명은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좋소! 그럼 건너가 봅시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태명은 낚시대를 메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일분후, 젊은 배사공은 녀동생을 데리고 달려왔다. 스물한두살쯤 되여보이는 날씬한 처녀였다. 《덕실(德實)아, 넌 내 대신 이 어른을 배에 싣고 강건너에 가거라. 강을 건너가면 배는 그곳에 묶어두어라. 그리고 너도 당분간 돌아오지 말기 바란다.》처녀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낯선 사람을 보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날래게 뛰여가 배를 비끄러맨 바줄을 풀고 배에 올라 삿대를 잡았다. 《물론 이 어른을 장손(長孫)형님한테로 데리고가야 하겠지. 다른 곳은 전혀 마음이 놓이지를 않으니까…》태명이 이렇게 녀동생에게 부탁을 하는데 한쪽다리를 막 배에 올려놓던 사나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뭐요? 장손? 장손이라구요? 박장손을 말하는게 아니요?》이번에는 태명이 놀라서 물었다.《옳소! 바로 박장손이요. 아니, 우리 장손형님을 어떻게 알고있소?》사나이는 배에 오르자 손을 흔들면서《빨리, 그 초롱불을 꺼주시오!》하고 말을 잠간 끊었다가 《내가 숨을데가 바로 박장손네 집이요. 그럼 안녕히. 감사하오, 친구!》하고 맥없이 주저앉았다.처녀는 익숙한 솜씨로 삿대를 잡고 배를 저어갔다. 배가 좌우로 흔들거렸지만 그것은 부상당한 사나이에게는 그야말로 요람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얼마후였다. 덕실이가 말없이, 그러나 힘차게 노를 저어 급류를 타고있을 때 두 자매의 즐거운 웃음소리로 넘치던 태명이네 초가집은 마치 아무도 없는듯이 텅 빈것만 같았다. 태명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어렴풋이 잠들었다. 이때 예상했던 추격자들의 거칠고 무리한 《방문》을 받게 되였다.경찰들이 험상궂은 얼굴을 해가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바람에 태명이는 선잠에서 깨여나 한손으로는 바지춤을 추어올리고 한손으로는 두눈을 비볐다. 그는 마치 깊은 잠에서 깨여난것처럼 휘청휘청 문밖으로 걸어나왔다.《배는 어디로 가져갔어?》배사공이 문밖으로 나오자 경찰 한놈이 와락 달려들어 그의 가슴에 총부리를 바싹 갖다대며 잡아먹을듯이 노려본다.《이 사람아, 좀 좋은 말로 물어보지!》서너발치 떨어져있던 경관이 이쪽을 바라보더니 무지막지한 부하를 질책했다. 이어서 경관은 경찰들에게 급급히 무슨 지시를 하는것 같았다.태명은 부하를 훈계하는 경관이 바로 가장 나쁜놈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 경관은 신유성(申維成)라는 자인데 일제통치시기에 고등계(일본경찰서에서 전문 정치범을 다루는 부문) 형사로 있었다. 이놈은 수많은 죄를 저질렀기에《신염라왕》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였다. 이자는《죄인》을 무섭게 다루어 소문이 났기에 이 무렵 이 지역(현급에 상당함-역자) 경찰소 부소장으로 되였다. 신유성은 태명의 이쁜 녀동생에게 눈독을 들이고있었다. 이놈은 태명의 녀동생을 첩으로 들여앉히려고 벌써 두세번이나 찾아와 위협도 하고 유혹도 하였었다. 그래서 태명은 이놈의 목소리에 아주 익숙했다. 헌데 이 개같은 놈이 짐짓 친절을 베푼다. 태명은 불쾌하고 구역질이 났다.《배, 배말이요? …강가에 묶여있겠지요. 강을 건너려고요? 대관절 몇분인데요? …한밤중에 정말 수고가 많으시우!》태명은 천연덕스럽게 대답도 하고 묻기도 했으며 슬쩍 치살려주기도 했다.이때 헛물을 켠 경찰들을 물리치고 신유성이 불쑥 나섰다. 턱 왼편에 험상궂게 칼자국이 나있었다.《8.15》광복되던 해 겨울밤, 이놈이 좁은 골목길에 들었을 때원한을 품은 한 청년이 비수로 내리찍었던것이다. 얼굴에 비수를 맞는 바람에 이놈의 흉악한 몰골은 더더욱 사람들을 무섭고 떨리게 했다.《잘 지냈는가, 덴상(田樣)?(《상》은 일본말로 《군》이라는 뜻을 갖고있는데 이 파렴치한 일제의 주구는 태명을 보고 일본식으로  불렀던것이다 ― 역자) 나 신유성이요, 알겠지요?》신유성은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아이 참! 어서 집으로 드시지요. 이 깊은 밤에 무슨 일로…》태명은 구역질이 나는것을 겨우 참으며 웃음으로 맞았다.《덕실이가 배를 가지고 강을 건넌건 아니겠지요?…안방에는 사람이 없고 나루터에는 배가 없으니 당연히 의심할수밖에 없지만…헤헤… 설마…》놈은 이렇게 말하면서 짐짓 태명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오?》《빨갱이 한놈이 감옥을 뛰쳐나와 경관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망을 쳤답니다.》《그래요? 어이구, 어쩌면 그런 일이…》《그놈은 총알을 맞고 분명히 이쪽으로 도망쳐왔거든요…》《어디로요?》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직이 물었다. 《덕실이는 어디로 갔죠?》《좀 일이 생겨서 어제 아침 일찍 영천(永川)에 있는 큰고모네 집에 갔지라우.》《틀림이 없겠지요?》《그럼요…》《좋소, 좋소. 내 당신 말을 믿을게요… 그렇다면 그놈은 분명 혼자 배를 타고 강을 건넜구만요… 여봐요! 요즘 덕실이가 생각을 많이 했겠지요? 마음을 돌리지 않던가요? 참으로 덕실이의 마음을 알수가 없구만… 하하… 덴상! 아무튼 당신만 믿겠으니 힘 좀 써주시오! 오늘 난 많이 바쁩니다. 다음에 또 오지요. 덕실이가 돌아오면 의중을 좀 떠보시지요. 자, 그럼 잘 부탁할게요!》녀색에 미친자였다. 이놈은 좀 더 선색을 찾을수 있었지만 어쩐지 유야무야 해가지고 돌아갔다. 태명은 한가슴 막혔던 숨을 후  내쉬였다. 하지만 석고상처럼 그자리에 굳어져있었다. 안개속에서 신유성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여봐라! 모두 집합!》일분후, 한참 강을 건널지 모를 배를 향해 추격자들은 한줄로 서서 어지럽게 총을 쏘아댔다.총소리는 고요한 나루터를 찢으며 짙은 안개장막을 헤가르고 멀고 가까운 산골짜기에 각각 다른 울림으로 퍼져나갔다.2. 돌배골나루터에서 쭉 뻗어올라간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따라 약 2리정도 가다가 산코숭이를 에돌아가면 왼편에 돌배골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이 골의 원래 이름은 이렇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돌배골이라고 불렀는지 이 고장 사람들도 잘 모른다. 아무튼 지금은 모두가 돌배골이라 부른다. 아마도 이 골짜기 주변에 돌배나무가 많이 자라고있는 까닭일것이다. 양춘 4월이면 농가집 배나무들은 하얀 구름같이 결백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만 금세 후둑후둑 떨어져 이를 보는 이들에게 처량한 인상을 남겨주었다.다닥다닥 붙어있는 이 마을의 초가지붕들은 마치 사탕과자에 붙어있는 땅콩을 련상케 한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초가집들 사이에 고래등같은 기와집 두채가 서있었다. 그것은 마치 중아세아산(産) 락타의 잔등을 련상케 했다. 바로 이 두채의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둘러싼 그 주변의 초가집들은 세세대대로 조심스럽게 령주의 시중을 들고있는 노예들을 방불케 했다. 이 두채의 기와집은 그 외면적인 위풍에 걸맞게 이 돌배골 수백명 농사군들의 목숨을 틀어쥐고있었다.이 마을을 쥐락펴락하는 두 지주(地主)네 집이였다. 하나는 최진점(崔進點)이라는 지주인데 어찌나 욕심이 사나운지 마을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뒤에서 모두 《최돼지(崔肥猪)》라고 불렀다. 또 하나는 편수달(片守達)이라는 지주인데 그는 편깍쟁이(片剝皮)이라는 별명을 갖고있었다. 그는 경망스럽기 짝이 없는 자인데 이 마을의 툰장을 맡고있었다. 그는 비둥비둥 살이 찐 최돼지에 비해볼 때 왜소하고 바짝 마른편이였다. 이들 두 지주는 동맹자이기도 하지만 또 서로 상대를 거꾸러뜨리려고 안달을 떠는 무서운 경쟁자이기도 했다.최돼지의 상통은 마치 도끼목수가 만든 장롱처럼 투박하게 생겼는데 그는 그 자신의 생김새처럼 사리를 판단하고 일을 처리할 때 좀 거친 점은 있어도 패기와 과단성이 있었다. 편깍쟁이는 최돼지와 달랐다. 편깍쟁이는 속이 좁고 철두철미한  자린고비였다. 그는 족제비처럼 눈치를 잘 보고 꾀가 많았다. 그는 남과 거래할 때 옴니암니 따지기를 좋아하고 천방백계로 리득을 챙겼다.  두 지주에 대한 최돼지네 소작인들의 평판은 이러했다. 만약 최돼지가 지주가 아니라면 꼭 소도둑이 되였을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꼭 흉기를 들고 산속에 숨어 오가는 행인들을 터는 산적(山賊)이 되였을것이다. 최돼지에 비할 때 편수달은 대단히 얌전한 편이라 하겠다. 그는 최돼지처럼 큰소리를 치고 제자랑을 하는것이 아니라 언제나 살살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하고 몸조심, 입조심을 잘했다.  아무리 큰일이 닥쳐도 그는 유태인 상인과 같이 무서운 인내심을 보여주고 꾀를 부려 난국을 타개했던것이다. 돌배골의 이 두 통치자는 일찍 서로 리해관계가 맞지 않아 아옹다옹 싸운 일이 있어 속으로는 서로 미워하고있었지만 겉으로는 이럭저럭 손잡고 사이좋게 지내고있었다. 일제통치시기에 있었던 일이였다.  어느 흉년이 든 가을, 삼남평원(三南平原)의  소작농들이 감조투쟁(減租)의 불길을 지폈다. 이 투쟁의 불길은 돌배골까지 번져왔고 소작농들의 함성은 두채의 기와집 기둥을 뒤흔들어놓았다. 그때 두 지주는 약삭바르게 머리를 굴렸다  뒤주에 있는 량곡이 열석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것을 몽땅 그들의 뒤심이 돼줄 일본인들에게 보내주었다  결국 두 지주는 큰 덕을 보게 되였다. 애초에 무서워 벌벌 떨던 두 지주는 마침내 경찰의 보호를 받게 되였고 그 위세를 등대고 소작농들과 맞설수 있었으며 끝끝내 소작농들을 이길수 있게 된것이다.그러나 그번 폭동을 진압한후 그들 둘의 사이는 다시 예전처럼 버성기게 되였다. 편가네는 최가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보루를 만들었고 최가네도 문을 단단히 닫고 두주먹을 부르쥐고있었다. 서로 기회를 잡아 상대를 삼켜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있었다.그런데 돌배골의 태평세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작농들이 바람 만난 강물처럼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여 서로 얼굴을 돌리고있던 두 지주는 또다시 손을 잡게 되였다. 평소에 지주에 대한 원한을 가슴속에 묻어만 두고 감히 터놓지 못했던 소작인들은 자신들도 투쟁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만약 다른 놈들의 간섭이 없다면 그들은 정말로 두 지주를 엎어놓고 한껏 두들겨주었을것이다. 뭉치면 얼마나 큰 힘을 이루는가! 소작농들이 본때를 보여주자 두 지주는 속으로는 앙앙불락하고 개 벼룩 씹듯 하면서도 이제는 감히 예전처럼 소작농들을 업신여기지 못했다. 두 지주는 터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소작농들이야말로 자기들의 막강한 적수라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느 날 오후, 소작농들이 또 술렁거리는 조짐을 보이자 편깍쟁이는 최돼지를 기다리다 못해 오래만에 최돼지네 집을 찾아가게 되였다. 《8.15》광복후인 1945년 가을부터 소작농들이 덮어놓고 3.7조로 소작료를 낸 이래 편깍쟁이는 처음으로 최돼지네 집을 찾은것이다. 《최주사님, 계신지요?》최돼지는 찾아온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느긋하게《어험!》하고 헛기침을 떼고 문도 열지 않은채 머슴들에게 오만한 어투로 물었다.《누구야?》편수달은 벌컥 화가 동했지만 참을수밖에 없었다. 《나요. 편가라니까.》편수달은 두 음성이나 높은 불쾌한 소리로 대답했다.《아이고, 어…어떻게…어떻게…》삐꺽 소리와 같이 문이 펄쩍 열렸다. 두 지주는 서로 대충 인사를 나눈후 자리에 앉았다. 편깍쟁이가 먼저 찾아온 사연을 자초지종 여쭈었다. 그랬더니 최돼지는 《글쎄 말이우? 이 일때문에 나두 편령감을 찾아가 보려던 참이였소… 참 잘 오셨수!》하고 대꾸했다. 최돼지의 유들유들한 얼굴에는 분명 어두운 그늘이 비꼈다.두 지주는 잠시 묵묵히 앉아있었다. 두 지주의 머리속에는 잊을수 없는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14년전의 일이였다. 경찰은 잡아간 소작농들가운데서 소작쟁의의 주모자인 박을룡을 3년 판결에 언도했다. 후에 박을룡은 탈옥을 하다가 다시 붙잡혀 심판을 받게 되였는데 2년형이 더 추가되여 5년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였다. 그런데 4년 남짓이 옥살이를 하고 이제 일곱달만 지나면 만기석방이 될무렵에 박을룡은 무슨 병때문인지 덜컥 감옥에서 죽고말았다.《이 개같은 자식들아, 내가 너희들을 침대에서 편안히 죽게 할줄 아느냐?》      손에 수갑을 차고 끌려가던 박을룡이 이젠 이겼노라고 뒤짐을 지고 서있는 두 지주를 향해 입술을 깨물고 분노에 찬 눈길을 날리면서 하던 말이다. 그 무서운 장면이 오늘 또 두 지주의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이였다.박을룡의 아들 장손은 그때 겨우 16살밖에 안되는 소년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지역에서 이름난 힘장사로 성장하였다.장손은 그때나 지금이나(아니, 14년간의 비바람을 맞아 더욱 볼품없이 낡아버렸다) 그냥 오두막에 살면서 최돼지의 땅을 맡아 소작하고있었다. 최돼지는 소작농들의 여론과 반항이 두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을룡이가 소작을 맡았던 땅을 여전히 그의 아들 장손이 다루게 하였다. 해마다 단오절이 되면 장손은 군청의 씨름장(우승한자는 황소 한마리를 상으로 받을수 있다―역자)에 나가 황소를 타가지고 돌아와 음식을 장만해 마을사람들을 대접했다. 그러면 배를 곯던 마을사람들은 허리띠를 풀어놓고 먹을수 있었다.그는 호쾌한 성미에 욕심을 부릴줄 몰랐고 언제나 남의 일을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그런 정직한 사내였다. 그래서 장손은 마을사람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있었다. 장손은 최지주와 편지주를 제외한 모든 돌배골 사람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했다. 그 까닭에 마을사람들은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일만 있으면 장손을 찾아가곤 했다. 아버지가 옥사한후 장손은 더욱 과묵해졌다. 그는 아버지의 말만 나오면 아예 철문처럼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기의 원한과 슬픔을 내비치지 않았다.  장손은 묵묵히 농사만 짓고있었지만 그 건장한 모습은 미상불 최돼지와 편깍쟁이에게는 점점 공포의 대상이 되였다. 과거도 지금도 승자(勝者)로 자부하던 최돼지와 편깍쟁이였지만 가끔 그들의 머리속에는 장손의 우람찬 모습이 섬뜩하게 떠올랐던것이다. 두 지주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입을수 있는 상팔자를 타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 불길한 그림자 장손의 형형한 눈동자와 건장한 체구를 떨칠수가 없었다. 14년전, 그 비장한 생사판가름을 할 때 박을룡을 내놓고도 또 한사람이 죽었었다. 전칠성(田七星)이라는 사내였다. 그는 혼자서 쫓아오는 경찰을 넘어뜨리고  칼을 빼앗아 사정없이 찌른후 사품을 치며 흐르는 강물에 뛰여들어 평생의 원한을 풀지 못한채 죽고말았다. 그때로부터 의지가지없는 두 남매 13살 먹은 태명과 어린 덕실이는 나루터에 있는 숙부네 집에 얹혀살게 되였다.이무렵 돌배골의 두 지주는 장보러 가거나 한가하게 나들이를 할 때면 강을 건너곤 했다. 특히 편깍쟁이는 강을 건널 때마다 우람지고 영준하게 생긴 청년―얼굴에 구레나룻이 검실검실한 전태명과 마주치면 어쩐지 어색해져서 슬그머니 딴전을 피우곤 했다. 더우기 물살이 센 강심에 이르면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만약 저 거센 강물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배가 뒤번져진다면…이런 생각이 든 편수달은 후들후들 떨면서 죽기내기로 배전을 틀어잡곤 했다.《허지만 문제는…》편깍쟁이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눈앞에 얼른거리는 젊은 배사공의 그림자를 떨쳐버리려는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문제는?…》최돼지도 번대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무도 가만히 엿듣는 사람이 없건만 편수달은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렸다.《장손이를 매수합시다요… 말하자면 우리 편으로 끌어당겨야죠.》편수달이 오래전부터 생각한 간교한 계책이였다.《장손? 음, 좋긴 좋은데… 말을 들을가? 그눔이…》최돼지는 한편 찬성하면서도 한편 의심쩍은 눈빛을 지었다.《왜 안 듣겠어요?…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지 않습니까?》편수달은 제법 신이 올라  《그놈이 나이는 어리지만 위신은 대단하단 말씀이예요. 또 엄청난 힘장사지요… 만약 장손이란 놈만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다면…아무렴, 돌배골이 그야말로 천년만년 무사태평해지고말고요.》하고 헐값으로 장손을 매수하기로 하고나서 이젠 살았구나 하고 코노래를 불렀다.최진점도 편깍쟁이 말에 얼마간 마음이 동했다.이리하여 박장손을 매수하냐 안하느냐 하는 문제는 손쉽게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실제문제를 놓고는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약아빠진 편수달은 장손이 분명 최돼지의 땅을 부치고있는것만큼 장손을 매수하는데 드는 비용은 반드시 최돼지가 전담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최진점에게 먹혀들리 만무했다. 땅주인은 모든 소작농들의 원쑤로 되는셈이니 너나 할것없이 폭동을 진압할 의무가 있고 여기에 드는 비용은 골고루 분담해야만 한다는것이 최돼지의 주장이였다. 어느덧 땅거미가 들었다. 편깍쟁이는 하는수 없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3대7의 비례로 분담하자는것이다. 하지만 최돼지가 이를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그는 편깍쟁이가 어물어물하는 기회를 틈타 장죽으로 재떨이를 탕 치면서 더욱 맹렬한 반격을 가해왔다.밤이 깊었다… 최돼지가 한사코 버티는 바람에 5대5의 비례로 끝을 본 편수달은 락태한 고양이상을 해가지고 최돼지네 집을 나섰다.3. 부상자박장손네 집뒤에는 두길이나 되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마치 작두로 썩둑 자른것 같은 낭떠러지였다. 그 낭떠러지밑에 돌배나무며 풀이며 벼짚들로 교묘하게 가린 작은 땅굴입구가 있었다.이 땅굴의 비밀을 알고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장손 한사람밖에 없었다. 퍼그나 오래전의 일이지만 소작농들이 소작쟁의를 할 때 타곳에서 파견되여온 지도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저세상으로 간 박을룡과 칠성이 비밀리에 파놓았던것이다. 이 땅굴을 얼마나 귀하게 썼던가. 무릇 경찰의 추격을 받다가 장손의 보호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이 땅굴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숨어있다가 깊은 밤이 되면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지군 했다.이무렵 땅굴안에서 가느다란 등잔불빛이 새여나오고있었는데 웬 사람이 삿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그는 목침을 베고 헌 탄자를 덮고있었다. 깊은 잠이 들었는지 두눈을 꼭 감고있었다. 그 옆에는 물이 담긴 그릇이 놓여있었고 젖은 수건이 얹혀져있었다. 문득 웬 그림자가 조용히 들어온다. 죽을 담은 그릇을 든 덕실이였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꿇어앉아 죽사발을 내려놓고 몸을 약간 앞으로 구부리니 그녀의 머리에 붙어있던 하얀 배꽃이파리가 눈을 감은 사나이의 눈섭에 사풋이 떨어진다. 사나이가 눈을 떴다. 까맣고 반짝반짝 빛나는 덕실이의 눈망울이 보인다. 그는 안깐힘을 써가면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난 김승하(金承夏)라고 합니다.》사나이는 말을 마치고 또 힘없이 눈을 감았다.덕실이는 직접 배를 저어 이 사나이를 실어왔고 또 2리도 넘는 가파른 길을 부축해 땅굴까지 오는동안 어쩐지 이 사나이에게 호감을 갖게 되였다. 그러나 이틀이 지난후 사나이가 돌연히 자기의 이름을 밝히면서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어쩐지 계면쩍은 생각이 들었다. 사나이는 너무나 허약하고 피로해보였다. 상처가 욱신거리고 불덩이같이 열이 올라 가끔 까무러쳤다가는 깨여나곤 했다. 그는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다가는 또 까무러쳤다. 이 며칠동안 순진한 덕실이는 혼자서 사나이의 시중을 들고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이 낯선 사나이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감을 느꼈다. 지어는 이 사나이와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온것처럼 그의 나이나 성격, 그리고 경력까지도 속속들이 알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름할수 없는 따뜻한 감정에 휘말려들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사나이가 마치 천리밖에서 문득 찾아온 낯선 손님처럼 새삼스럽게 인사를 하고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가. 덕실이는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사실 나는 이 사나이와 아무런 관계도 없지 않은가? 아주 먼 곳에서 바람처럼 왔다가 언제든지 가고싶을 때는 또 바람처럼 갈 사람이 아닌가?… 덕실이는 어쩐지 슬퍼지고 우울해졌다. 마음의 샘물에 재가루가 날리는것만 같았다.  덕실이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다가 살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어찌됐든 의원을 불러오는게 좋을것 같아요.》그녀는 근심스러운듯 한숨을 내쉬더니 뜰에 앉아 도끼자루를 손질하는 장손에게 땅굴에 있는 환자의 병세를 두고 의견을 내놓았다.《의원을 모셔온다?…어데 가서 의원을 모셔온단 말이냐? 총상을 입은 상처를 치료해달라면 경찰에 고발하지 않을 의원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장손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밭갈이를 한다거나 씨름장에 나선다거나 하는 일은 더 말할것 없고 이보다 더 큰 일이 있어도 장손은 절대로 남의 신세를 지지 않는 성미였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는데는, 특히 외상(外傷)을 치료하는데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덕실이를 집에 가지 못하게 붙잡아둔것도 그때문이였다.《그럼 어떻게 하죠?》《어떻게 한대요?》《이젠 죽도 넘기지 못하는데…》《……》장손은 대답이 없다. 그는 정말로 다른 방법이 없는지 머리만 긁적거렸다. 슬쩍 고개를 들고보니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돌배나무꽃잎사이에 덕실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눈가에는 맑은 이슬이 맺혀있었다. 장손은 바삐 일어났다. 도끼자루에서 깎은 나무찌끼들이 부스스 몸에서 떨어졌다.   4. 교섭최돼지가 쌀 한자루를 박장손네 집으로 보내왔다. 이런 희한한 일이라고야,  그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였다.장손은 쌀자루를 메고 온 머슴에게 물었다.《쌀은 왜 가져왔지?》《모르지요… 난 가져가라니 메고왔을뿐인걸요.》머슴은 쌀을 보낸 까닭도 모르고있었다.《도로 메고 가시우!… 수고스럽게 가져온걸 돌려보내서 죄송하지만 난 뒤가 켕기는 일을 할수 없단 말이우. 얼른 도로 메고가시우. 》《어이구 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우! 도로 메고가는건 큰일이 아니지만 그 어르신이 노발대발한다면 난 어떡하우?… 괜히 쇤네를 욕보게 하지 말구 어서 받으시우!》장손은 벌벌 떠는 머슴의 상통을 보니 한편 우습고 한편 가련했다. 《그럼 거기 놓게. 흥, 정말 재수가 없군…》장손의 말이 떨어지자 머슴은 벽에 기대놓은 지게에서 제꺽 쌀자루를 내려놓더니《어이구 고마워라. 그럼 조금 있다가 오시우. 쇤네는 먼저 주인집으로 가보겠수다. 군말 없이 받아주더라고 말씀을 드리죠. 그럼 잘 부탁하겠수다. 난 먼저 가오다.》하고 부랴부랴 빈 지게를 지고 자리를 떴다.         장손은 머슴의 구접스러운 몰골을 보니 가련하기도 하고 역겹기도 했다. 하지만 최돼지의 흉물스러운 상통을 떠올리니 그럴법도 하였다. 최돼지가 머슴들을 얼마나 혹독하게 다루고있는가! 순간 장손의 가슴속에서는 최돼지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울뚝 치밀어올랐다.장손은 최돼지가 보내온 쌀자루를 지고 일어섰다. 등에 실린 쌀자루를 가늠해보니 실제로 다섯되쯤 적은것 같았다. 장손이는 최돼지가 편깍쟁이를 속이고 가만히 둘이 합의를 보고 내기로 한 쌀 한자루에서 다섯되를 덜어낸줄은 전혀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쌀자루를 지고 장손은 최돼지네 집으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마을어귀에 이르렀을 때(장손네 집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산기슭에 있었다) 시커먼 초가지붕아래의 주저앉은 흙마루에 웬 아낙이 퍼더버리고 앉아있었다. 등에 업은 애를 달래느라 웅얼거리면서 힘들게 캐온 산나물을 다듬고있었다. 이 집도 겨와 풀뿌리로 겨우 살아가고있음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피기 한점 없는 아낙네의 퉁퉁 부은 얼굴에는 검버섯들이 어지럽게 돋아 보기에도 흉했다. 이 아낙의 집에 있는 쥐들도 달아나지 않는다면 모두 굶어죽을것 같았다. 《장손오빠, 지고 가는게 뭐요?》아낙네는 퍼렇게 풀물이 든 손으로 등에 업은 어린애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장손은 차마 대답을 할수 없었다. 쌀이라고 말한다면 이 아낙에게는 너무나 참혹한 일이 될것이였다. 그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어물해버리는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낙은 장손이 듣지 못했는가 해서 또다시 캐물었다.《지고 있는게 뭐유?…좀 쉬다 가시지?》장손 자신은 툭 털면 먼지밖에 없는 홀아비요, 소작농이 아닌가. 헌데 가을철도 아닌데 백주에 쌀자루를 메고 마을을 지나고있으니 어찌 보는이들이 묻지 않겠는가. 일이 이 지경이 되고보니 장손은 조금은 설명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장손은 지게를 내려놓고 막대기로 받친후 흙마루에 걸터앉으며《쌀이요.》하고 대답을 하고나서 담배쌈지를 꺼내 무릎에 놓고 주머니에서 담배종이를 더듬었다.《쌀?》아낙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더니 옆에 앉은 사람과 지게에 묵직하게 실려있는 쌀자루를 번갈아보았다.순간 아낙의 우묵한 두눈은 이상하게 빛났다. 겨와 풀뿌리로 겨우겨우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쌀은 얼마나 큰 감동을 줄수 있으며 또 얼마나 큰 유혹으로 되는것인가? 사람들은 조상대대로 쌀에 의거해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어찌하여?…이런 생각이 든 장손은 와락와락 쌀자루를 풀고 한바가지 푹 퍼내서 굶주림에 지친 불쌍한 아낙의 치마에 쏟아놓고싶었다. 장손은 온 마을사람들에게 소리치고싶었다. 《여보시오! 모두 오십시오! 여기 쌀이 있으니 모두 와 맘대로 가져가십시오!》      하지만 장손 자신도 언제 쌀알구경을 했던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러나 장손은 불같이 타오르는 욕망을 리성의 찬물로 눌러버릴수밖에 없었다. 장손은 다시 지게를 지고 일어섰다. 내가 바라는건 쌀 한자루가 아니다. 수백수천만자루의 쌀을 얻어 돌배골의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을수 있게 해야 한다. 농사군들의 쌀뒤주마다 쌀이 넘치게 하자면 이따위 쌀 한자루에 발목을 잡혀서는 아니 된다. 장손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달음박질하듯이 마을로 들어갔다. 그는 최돼지네 집 대문을 열고 성큼 들어섰다.너무도 놀란 최돼지는 한달음에 달려나와 마루에서 한쪽 신을 신더니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까닭없이 보내온건 절대로 받을수 없수다… 한톨도 다치지 않고 그대로 지고 왔수다.》장손은 지게를 벗으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저쪽 벼짚무지 뒤쪽에서 한걸음 먼저 온 머슴이 흘깃흘깃 눈치를 보고있었다. 《뭐, 뭐, 뭐라구? 그, 그렇다면 자네가 내 호의를… 》최돼지의 상통은 새빨간 감처럼 달아올랐다가 금시 배추이파리처럼 푸르죽죽해졌다.  최돼지가 길길이 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데 벼짚무지 뒤에 숨어있던 머슴은 자라처럼 모가지를 움츠리고 두손으로 귀를 막고있었다. 최돼지로 놓고말하면 근년에 처음으로 당하는 수치였다.《이 마을에 배를 곯고있는 집이 어찌 우리 집뿐이겠수? 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우. 아직 힘이 있고 눈앞에 닥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할수 있기때문이외다. 이 마을에는 저보다 더 어려운 분들이 많고도 많수다. 모두들 두눈을 멀쩡하게 뜨고 배를 곯고있는 모양은 차마 눈 뜨고 볼수가 없수다. 이런 사실이야 어르신도 잘 알고있지 않수? 아무튼 저 혼자만 배부르게 먹을수는 없수다! 죄송하지만!》장손의 름름한 자태는 그야말로 광풍폭우에도 끄떡없는 큰나무를 방불케 했다. 그는 조금도 꿀림이 없었다. 그는 치솟는 분노를 눅잦히면서 자기의 생각을 또박또박 털어놓았다.《이건 자네를 특별히 생각해서 보낸건데…》최돼지는 큰소리를 쳐도 장손이 움쩍하지 않자 슬쩍 목소리를 낮추어 구슬렸다.《저를 특별히 생각해서라구요? 참으로 소 웃다 꾸러미 터질 일이군요. 왜 저만을 특별히 생각해주시죠?… 아무 까닭없이 받아먹으면 마음이 불편하게 되는 법이지요. 그리구 할 말도 못하게 되구요. 그런게 아닙니까?》《허허…괜한 근심을 하고있군… 아무려면 내가 자네에게 청을 들 일이 있어 그러겠는가? 아니면 내 청을 들어줄 방법이 없어 그러는건가? 천만에, 그런 근심은 말게. 난 그런 각박한 사람이 아닐세.》《저에게 청을 든다고요? 이 사람의 집은 서발막대기 휘둘러야 거칠게 하나 없수다. 그러니 근심걱정이 없수다. 허지만 밤마다 머리맡에 방망이를 놓고 문을 열어놓고 자고있지요. 혹시 도둑놈이 들어온다면 그놈의 주머니를 털려구요. 하하 하…》《그렇다면 무서울게 뭔가? 자넨 공연한 의심을 하고있네…》최진점은 슬쩍 마당에 내려서더니 큰 인심이나 쓰듯이 냉큼 쌀자루를 들어 장손이 지고온 지게에 올려놓으려 했다.《안되우!》장손은 잽싸게 한손으로 지게를 들고 주춤 물러서면서《당당한 사내가 되기 위해 거절하는거웨다… 이젠 가볼테니 안녕히 계시우!》지게를 한쪽 어깨에 비스듬히 멘 장손은 막대기로 다가드는 사나운 개를 쫓아내면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장손의 뒤모습을 뚫어지게 노려보던 최돼지는 분을 이기지 못해 쌀자루를 든채로 씩씩거렸다. 《빌어먹을 자식!》최돼지는 쌀자루를 땅에 내팽개치더니 두눈을 부릅뜨고 코구멍을 벌씬거리면서 윽별렀다.《편깍쟁이야, 너에게 닷되 쌀을 돌려줄것 같으냐?》5. 밤중에 찾아온 사람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돌배골 논밭사이 길에 웬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마치 유령처럼 밭둔덕을 따라 재빠르게 걸어갔다. 그가 지나는 곳마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는 낮아지거나 아예 들리지 않았다… 마치 하늘의 구름이 잠시 전야에 그림자를 던지고 지나듯이 그도 들판에 띄염띄염 이상한 정적을 남기고 지나고있었다. 그는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개들을 따돌리고 요리조리 둔덕길을 에돌아 돌배골 어귀에 들어서더니 잠간 멈추어서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감쪽같이 장손네 집뒤에 나타났다.그는 집안의 동정을 살피는것 같았다. 그는 살그머니 처마밑에 다가가 문창에 귀를 갖다대였다.이때 집뒤 낭떠러지 아래에 웬 사람이 별안간 나타나더니《꼼짝 말엇! 움직이면 대갈통을 박살낼테다!》하고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무서운 경고를 했다. 깜짝 놀라 돌아서보니 뚜벅뚜벅 걸어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집주인 장손이였다.《아니, 장손형님이 아니오?…》그 이상한 남자는 반가운 어조로 알은체를 하면서 태연스럽게 장손한테로 두어걸음 다가섰다.《도대체 누구시우?…》장손은 마치 팽팽한 화살시위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재차 물었다.《아니, 날 모르겠소?》《목소리는 좀 귀에 익은데… 》《혹시 기억하고있을는지요… 심권(沈權)이라는 사람을요…》《심권?》《이 집 땅굴에서 저의 수염을 깎아주었지요…》《아, 알겠소.》《수염을 깎고 나왔다》는 그 한마디 말에 장손은 기억의 쪽문을 열수 있었다.일순간 장손은 한단락 옛일을 떠올리게 되였다.9년전 늦은 가을, 그때도 오늘밤처럼 어두웠다. 장손은 경찰의 추격을 받던 정치범을 며칠동안 남모르게 집뒤에 있는 땅굴에 숨겨주었다. 더부룩하게 얼굴을 덮은 구레나룻을 깎아주니 여나문살이나 더 젊어보이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그때 그 텁석부리는 비록 땅굴에 숨어 며칠밖에 지내지 않았지만 남몰래 장손과 자주 만났다. 그는 농사군에게 땅을 주지 않는 불합리한 현실과 제도에 대한 증오의 씨앗을 이 순박한 소작농의 가슴에 심어주었다. 그런데 바람처럼 떠나간후 그는 전혀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장손의 가슴에 심겨진 증오의 씨앗은 어느 껍질을 터치고나와 건실한 싹으로 자라났다. 장손은 너무도 반가워서 솥뚜껑같은 손으로 심권의 손을 으스러지게 부여잡고 흔들었다.《잘 왔어요. 정말 오기를 잘했어요!》여름내 뼈가 빠지게 일하고도 쌀밥 한번 배불리 먹을수 없는 세월이였다. 돌배골 사람들은 실망에 잠긴채 힘든 모내기를 겨우 끝마쳤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더욱 큰 울분과 피로에 휩싸이게 되였다! 이제는 밀을 거두어들여야 했다. 황금색 밀파도가 출렁이는 계절이지만 욕심꾸러기인 최돼지와 편깍쟁이에게 거두어들인 밀을 모조리 빼앗겨야 했던것이다. 그리고 특무나부랭이들이 마을을 휘젓고 다니면서 마구 곤봉을 휘두를것이였다. 그러면 다 찌그러진 문틈사이에 보이는 농군들의 눈빛에 아물거리던 한가닥 희망은 마치 춘삼월의 봄눈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것이였다. 마치 서리 내린 이른 아침에 소여물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었을 때 더운 김이 확 일듯이 농군들의 집안에 불만과 원한이 괴고있었다. 이렇게 부글부글 끓고있는 불만과 원한의 도가니에 불 달린 성냥가치만 던진다면 돌배골 십리안팎은 단번에 불길이 치솟을것 같았다. 이름 못할 그 어떤 힘이 자라고있었던것이다.바로 이러한 시기에 탁월한 조직력을 가진 지도자 심권이 나타난것이다. 밤중에 온 손님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김승하동지는 그냥 이 마을에 숨어있겠지요?》《네… 그건 어떻게 알고있습니까?》심권은 대답이 없다. 심권은 당에서 파견한 사람이였다. 그는 묵직한 배낭을 벗어 땅에 내려놓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똥 하나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지고있었다.6. 화 합밀을 거두어들이기전인데 일여덟명의 마을청년들은 거의 매일 밤마다 박장손네 집에 모여들어 회의를 했다. 장손, 심권, 그리고 비록 상처는 다 나았지만 여전히 얼굴이 창백한 김승하(심권은 상처를 치료하는 의료도구와 약품을 갖고왔을뿐만 아니라 몸소 김승하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더우기 장손이 극진하게 보살펴주고 덕실이가 정성을 들여 간호해준 덕분에 김승하의 상처는 빨리 나아지게 되였다)도 참가했고 강 건너 마을에 있는 태명이네 남매 둘도 번갈아 참가했다.승하는 피기 없는 얼굴에 홍조를 띠우고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북조선의 새로운 변화들이며 김일성장군에 대한 이야기며 쏘련홍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토지개혁과 번신한 농민들의 기쁨에 대해서도 말했다. 심권은 신문지로 초담배를 말아 입에 물고 구새통처럼 연기를 내뿜고있었는데 그의 눈은 천정만 쳐다보고있었다. 이야기를 듣고있는 장손도 적이 격동되여 주먹을 쥐였다 폈다 하기도 하고 근육이 울뚝불뚝한 팔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덕실이는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저도 모르게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았다. 청년들은 기침소리 하나 없이 모두 숨소리를 죽이고 도정신해서 듣고있었다. 그들은 미지의 세계가 먼 곳도 아닌 이 북녘땅에 존재하고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뿐이였다.깊은 밤이 돌배골에 깃들었다. 돌배나무가지에 앉은 부엉이의 불길한 울음소리가 고즈넉한 마을의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모여앉은 사람들에게 어서들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시오! 하고 경고하는것만 같았다.승하는 선전고동사업을 책임졌고 심권은 조직사업을 책임졌다.승하는 마을사람들의 가슴속에, 허구한 세월 소작농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온 마을사람들의 가슴속에 반항의 불씨를 심어주었고 심권은 그들을 단합시켜 해방의 길로 나가게 하였다. 승하는 불같은 열정으로 마을사람들을 대했고 심권은 강철같은 의지로 마을사람들을 묶어세웠다. 사람은 어머니의 품에서 태여날 때 아무것도 갖고 나오지 않는다. 농사도 하지 않는자들이 어떻게 땅을 가질수 있단말인가? 지주의 땅을 몰수하는건 마구 빼앗는게 아니다. 그건 빼앗겼던것을 되찾아오는것이다. 땅을 가지게 된다는 그러한 새로운 관념은 마치 오랜 가물에 말라버린 땅에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것처럼 돌배골 사람들의 머리속에 젖어들기 시작했다.애초에는《그렇게 될수 있을가?》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두 선구자의 꾸준한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당연한 도리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였다.앞길에 어떤 적수들이 있는가? 그놈들을 무찔러버리자면 또 무엇이 필요한가? …이젠 소작농들도 이러한 물음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명확한 대답을 줄수 있었다. 리승만, 최돼지, 편깍쟁이는 같은 통속이다. 경찰과 암살단도 그놈들과 같은 무리다. 이 개같은 놈들을 타도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굳게 뭉쳐야 한다.쏘련인민들이 파쑈강도들과 투쟁하는 가운데서 불멸의 위력을 과시했고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도 신민주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쏘련을 비롯한 세계의 신민주주의국가와 단결해 멀지 않은 장래에 전쟁과 비애, 착취와 압박이 없고 오직 평화와 행복, 자유와 광명만 있는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그러므로 남조선도 북조선과 같은 로동법령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개혁을 이룩하자면 미제와 그 주구 리승만 매국역적을 타도하고 민주주의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실현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리승만을 반대하는 투쟁과 그 정권을 넘어뜨리는 투쟁에 모두 동참해야 한다.그렇다면 돌배골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봉기에 일떠선 수백수천개의 부락들이 서로 호응해 무기를 잡고 용감히 일어나야 할것이다. 돌배골의 투쟁은 결코 고립된것이 아니다. 돌배골 폭동의 불길은 꺼지지 않을것이다. 리조봉건시기 잔혹한 압박을 받았던 농민들이 일으켰던 폭동과 같이 돌배골의 사람들은 무장으로 무장을 대처해야 한다는 도리를 알게 되고 또 그들에게는 심권의 지도가 있다.돌배골 사람들은 자기의 목표를 잘 알고있었다. 무수한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천만갈래의 시내물은 강을 이루고 다시 넓은 바다로 흘러가는 법이다. 30년전 위대한 쓰딸린이《첫째도 무장, 둘째도 무장, 셋째도 여전히 무장》이라고 말씀했거늘 그이가 가르쳐준대로 용감히 전진하면 되는것이다. 7. 전날밤경찰서 부서장 신위성(申維成)은 두 지주의 요청을 받은데다가 관할구역내에 있는 마을들의 하곡징수(夏穀徵收)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무장한 두개 분대의 경찰을 거느리고 나루터로 왔다. 배에 앉아 떠나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먼빛으로 신유성을 보자 눈을 찡긋거리면서 귀속말로 욕을 했다. 그런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유성은 배사공을 저만치에 있는 버드나무아래로 데리고가서 낄낄 웃으면서 쓸데없는 말을 한바탕 늘어놓았다.《덴상! 한평생 배사공을 하고싶다면 몰라도…하하…》얼핏 들어도 신유성이란 놈이 태명이를 보고 꿍꿍이를 치는것 같았다. 신유성이란 놈에게 있어서 강박과 권유는 같은 목적에 쓰이고있었다. 이를 마을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일단 권유를 하다가 거절을 당하면 에누리없이 지독하게 보복을 했던것이다.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은근히 침묵을 지키면서 자기의 발끝만 내려다보고있는 나젊은 배사공을 동정하고있었다.《범은 뭘 먹고 사는지? 왜 저런 악당을 물어가지 않는지?… 》《뉘가 아니라나, 개같은 자식이지…》《덕실이를 욕심내는거지 뭐겠어…》《흥! 그렇게 쉽지 않을걸…》《쉬! 듣겠어…경찰들이 이쪽으로 오고있어.》두 경찰이 제 마음대로 배사공의 집에 들어가더니 부엌에서 물을 퍼마시고는 손수건을 꺼내 입과 이마빡을 뻑뻑 닦으며 나왔다. 한편 신유성은 젊은 배사공을 보고 다짐을 딴다.《…벌써 점심이 지났군. 아무튼 래일은 생각을 굳혀야 해요. 아니지,  모레 오전에 강을 건너 돌아올터이니… 잘 생각해보시오. 그땐 덕실이를 데려갈수 있게 만들어주시오. 옛날부터 좋은 일은 서두르라고 했거늘…》신유성은 말을 마치고 손목시계를 보더니 량미간을 찌프렸다.태명은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오더니 말뚝에서 바줄을 풀어 배우에 던졌다.그날 밤, 최돼지네 사랑방에서 신유성을 모시고 술상을 차렸다. 하곡징수에 동원된 면의 직원과 청년단원(무고한 농민들을 때리고 공갈과 공포를 일삼는 살인단원)들이 밤늦게까지 큰 사발로 술을 마셔댔다. 그들은 취흥이 도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일본춤을 추어댔다.한편 편깍쟁이는 래일 저녁 자기네 집에서 여기 모인 사람들을 청해야 했다. 그래서 편깍쟁이는 어떻게 하면 최돼지보다 더 잘 차릴수 있을가 생각하느라고 자기에게 차려진 술은 마시는척 할뿐이였다. 그의 눈알은 차려놓은 음식가지수를 헤느라고 뱅글뱅글 돌아갔다. 지주들의 술상을 보면 가랑이 째지게 가난한 소작농들의 밥상과는 달리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건만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배를 곯았다. 하지만 지주들은 기름진 음식을 배가 터지게 먹고있었다.마을사람들은 집집마다 모기불을 피워놓고 마당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피와 땀으로 거둔 량식을 아무 일도 하지 않은자들이 질탕스럽게 먹고 마셔대는 소리를 듣고 앙상하게 야윈 자기들의 얼굴을 매만지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한편 낡은 바지를 오리오리 찢어 짚신을 만들고있던 장손도 최돼지네 집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있었다. 《큰일 났소. 장손형님, 빨리 와보우!》누군가 허둥지둥 달려오면서 소리를 친다. 장손은 깜짝 놀라 일손을 놓았다. 《아이구, 우리 집 선돌이녀석이 최돼지네 집 연회 보러 갔다가 개한테 물려서 죽게 되였소!》《어떻게 된 일이요?》장손은 허리에서 짚신을 만들던 끈을 풀고 벌떡 일어났다.《그놈들이 보지 못하게 애를 쫓았건만…애가 기를 쓰고 숨어서 보다가 발각된 모양인데 청년단놈들이 호랑이같은 개를 풀어 물게 했지우…》《에끼, 이 자식들이!》장손은 번쩍 낫을 쥐려다가 (참아야 한다! 이제 2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하고 가까스로 마음을 눅잦혔으나 낫을 쥐려던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했다. 강뚝을 따라, 태백산맥에서 뻗어내린 산코숭이를 따라 한갈래 오솔길이 있었는데 그리로 승하와 덕실이가 나란히 걸어가고있었다. 바람도 최돼지네 사랑방에서 나는 질탕한 소리를 실어오지 못했다. 승하는 덕실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있었다.《아무튼 그놈은 꼭 구실을 대서 날 붙잡아갈거예요!》《뭐가 무섭소. 그놈이 하자는대로 따르면 될게 아니요?…》《아니?》덕실이는 너무 놀라 반짝 고개를 쳐들고 승하를 노려보았다.《덕실이가 곱게 생기지만 않았던들 그놈이 그렇게 나쁜 마음을 품을수 있겠소. 영광이요, 영광.》승하는 태연스럽게 말했다.《아이 참, 무슨 롱담을 그렇게 하세요?》《무작정 잡혀가기보다야 낫지 않소.》《아니예요. 그냥 롱담을 한다면 난 가겠어요.》《맘대로 하오…허지만 코앞에 닥친 일은 어떻게 하겠소?》《상관하지 말아요…》《상관하지 않아도 될가?》《달아나면 될게 아니예요.》《어디로?》《먼 곳으로요. 》《혼자서?》덕실이는 대답을 못한다.《그럼, 누구와 함께 가겠소?》승하가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서는 달빛이 반짝였다.밤이 깊었다.심권은 승하가 들어오는것을 보고 보던 책장을 접어놓고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소?》《아마도 마지막으로 만난것 같습니다… 아무튼 속마음을 다 털어놓아요…》승하는 목침을 가져오며 대답했다.《허허, 자넨 언제든지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돼있구만… 참 대단하오…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없을것 같소.》《그래도 사람의 일이란…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너무 근심을 마오. 내가 책임을 질터이니까. 자, 이젠 잡시다. 래일 밤은 지새워야 하니까. 빨리 불을 끄오! 모든 일은 래일에…》심권이 들은바로는 두 지주 집에서 진수성찬을 차린다고 했다. 또 래일 아침에는 군청에 사람을 띄워 신유성을 모셔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저녁에 특무들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회의를 소집하였었다. 회의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편깍쟁이가 술상을 차리는 날에 야음을 타서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각기 열집 혹은 스무집씩 책임지고  동원을 해서 폭동을 일으키기로 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의 안해들 가운데서 몇몇 령민한 녀성을 동원해서 대낮의 련락임무를 맡게 하기로 하였다. 태명은 몇몇 청년들과 함께 군청에서 오는 경찰들을 막기로 했고 덕실이는 지도부(땅굴), 나루터, 행동대 사이의 련락을 맡기로 하였다.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심권이 마지막으로 《전체 돌배골 촌민중 가장 성망이 높고 의리적이고 건장하고 용감한 소작농을 선출해 이번 폭동의 총책임자로 모십시다.》하고 옆에 앉은 장손을 돌아다보았다.이리하여 단 한사람의 반대도 없이 장손을 대장으로 선거했다. 모두들 장손을 우러러보고 신뢰했던것이다.  래일의 거사를 앞둔 승하는 여러가지 생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옆에 누운 심권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가볍게 코를 골고있었다. 승하는 이 철도공장 주물공 출신의 선배가 가지고있는 호쾌한 성격과 듬직한 성품에 탄복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덕실이를 잡아가려는 자를 절대로 래일모레까지 살려두지 않을거야.》승하는 덕실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었다. 그러나 만일…바로 이《만일》이 그를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고있었다.《그놈을 놓치지 말라!》옆에서 자고있던 심권이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인다. 두눈을 감은 승하는 긴 한숨을 내쉬며 가까스로 바늘끝처럼 예민해지는 인텔리의 신경발작을 누르고 벽쪽으로 돌아누우며 잠을 청했다.8. 봉 기우울한 태양은 선홍빛 구름사이로 울적한 얼굴을 내밀고있었다. 초가지붕, 마당, 벼짚낟가리에서 참새들이 소란스럽게 우짖었다.장손은 삽작문을 열고 나오면서 마치 활을 당기듯이 쭉 기지개를 켰다. 거사의 시각이 각일각 다가오고있었다.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묵묵한 표정으로 돌배골의 아름다우면서도 처량한 아침정경을 바라보고있었다. 최돼지와 편깍쟁이네 굴뚝에서는 역을 떠나는 기관차처럼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있었다. 그러나 다른 집들은 부뚜막이 썰렁하고 구새통에서는 시허연 연기가 흐느적거리며 올라가다가 맥이 진하였는지 바람에 산산이 흩어지고말았다.장손의 입가에는 한가닥 미소가 흐르고있었다. 그는 그날 회의에서 승하가 힘차게 호소하던 일을 되새겨보았다. 《…두꺼비같은 지주와 함께 살아간다는건 사철 뼈가 빠지게 일하는 성실한 농민들에게는 분통이 터질 일이요! 이젠 지주놈을 위해서 더는 밭을 갈고 김을 매지 맙시다! 지주들의 기와집을 부수어버리고 흉악한 두꺼비들을 잡아냅시다! 시퍼런 호미날로 돼지처럼 살찐 놈들의 등허리를 찍어버립시다!》이날 량곡징수는 전례없이 순리로웠다. 신유성은 자기의 위풍에 소작농들이 압도된 결과라고 생각하였고 군청에서 내려온 직원들은 소작농들의《애국》열정이 높은 결과라고 제멋대로 해석했다.무엇보다 최돼지와 편깍쟁이를 기쁘게 한것은 장손의 일이였다. 그들은 장손이 소작농들과 갈라지고있다고 생각했다. 장손이 비록 쌀을 받지 않았지만 수월하게 가난에서 벗어날수 있는 방법을 깨달을것이고 지주들이 자기를 중요시하고있기에 쉽게 출세할수 있으리라 생각하고있을것이다. 하지만 직접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기는 면구스러워서 먼저 군청에서 내려온 관리들을 도와나서는것이리라. 아무튼 장손이 량곡징수를 도와준다는것은 그가 천천히 지주들쪽으로 쏠리고있다는 간접적인 표현이다. 최저한 두 지주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돌배골 사람들은 장손을 무조건 신뢰했고 그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곧이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손이 한 말이 아니오?…그대로 합시다.》농군들은 떨리는 손으로 감추어두었던 보리쌀자루를 메고와서 군청 직원들 앞에 내놓았다.《이걸 보시우. 내 진작 말씀드리지 않습디까. 이 자식을 매수해야 돌배골이 무사태평해진다고 말입니다.》편깍쟁이가 흥이 나서  최돼지의 허리를 쿡 찌르자 최돼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편령감의 말이 맞았어…흐흐…》하고 두눈이 한일자로 붙어가지고 슬슬 자기의 번대머리를 어루만졌다.오후 일은 원래 생각했던것보다 더 쉽게 풀려나갔다. 그래서 군청에서 내려온 직원들은 점심을 먹을 때 또 술 두어잔씩 마셨다. 그들은 흥이 절로 나서 걸어가면서 코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보리를 징수하던 군청 직원들은 찌그러진 오두막에 와서 그만 거절을 당하게 되였다. 어제 저녁 개한테 물린 선돌이네 집이였다. 선돌이는 구들에 누운채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고있었다.《아이고 원통한지고! 장손이가 언제 이렇게 더러운 자식이 되였지? 애비가 잡혀가 감옥에서 죽은 일도 잊었단 말인가? 흥! 육시할놈 같으니라고… 보리를 내놓으라구? 무엇때문에? 내놓고싶으면 자기것만 내놓으면 되는거지 왜 다른 사람까지 못살게 구는거야?… 난 죽어도 내놓을수 없어! 내 아들놈이 개한테 물려서 다 죽게 됐는데 량곡까지 내놓으라고? 아이고, 난 땅주인의 간을 끄집어내 먹어도 시원치가 않겠어! 시끄러우니까 썩 물러가!…》연거퍼 들이닥친 불행에 절반 정신이 나간 선돌이 엄마는 사립문을 가로막고 앙칼진 목소리로 장손을 꾸짖었다.상세한 내막을 모르는 이 아낙네가 순순히 량곡을 내놓을리 만무했다. 총을 든 경찰도 이 아낙네의 안중에는 없었다. 그러니《변절한》소작농들이 어떻게 이 아낙네의 마당에 들어설수 있겠는가?《정말로 미쳤네!… 왜 이 모양이야? 저리 비켜… 이거 정말 미안하구려. 어서 들어오시우… 아, 임자는 저리 비켜! 자, 어서 들어오시구려!》 한편 놀란 선돌이 아버지는 고추밭에 들어간 밉살스러운 병아리를 쫓아내듯이 자기의 마누라를 밀어붙였다. 그는 부랴부랴 삽작문을 열고 손님들을 집안으로 모셔들였다. 그는 한사코 달려드는 마누라와 함께 보리쌀자루를 군청 직원의 발밑에 내놓았다. 그리고는 연신 팔소매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훔쳤다.장손의 얼굴은 마치 탈을 쓴것처럼 무표정했다. 차마 그 광경을 볼수 없어 잠간 고개를 돌리니 울바자를 타고오른 노란 박꽃에 한마리 수벌이 빨려들어가고있었다. 탕녀에게 빠진 사내를 련상케 했다. 《어이고…이 망할놈의 녀편네가…》사내는 버럭 고함을 질렀고 와당탕 밀어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아이고, 사람 살려요! 》아낙네가 당장 숨이 넘어갈듯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장손은 깜짝 놀라 돌아섰다.주먹을 휘두른 군청 직원은 아낙네에게 뜯긴 손등을 주무르면서 무섭게 눈알을 부라렸다. 선돌이 엄마는 마당에 쓰러져있었는데 코구멍에서는 검붉은 피가 흐르고있었다. 선돌이 엄마에게 뜯긴자는 군청서기였다. 그는 시어머니 역정에 개배때기 찬다고 자루에서 보리쌀 한바가지를 퍼서 쫙 마당에 뿌렸다. 금시 선돌이 아버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입술을 악물고있었는데 두볼은 부르르 경련이 일었다.당장 무서운 일이 벌어질것 같아 장손은 성큼 다가가 선돌이 아버지의 어깨를 잡으면서 눈을 찡긋해보였다. 이어서 장손은 부드러우나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주머니를 데리고 들어가시오! …뒤일은 내가 다 처리하겠소.》선돌이 아버지는 군말없이 입으로 피섞인 침을 내뱉으면서 치를 떨고있는 안해를 일으켜 세우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장손은 천천히 돌아서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 근을 달아보시지요… 이게 몇되나 될가? 헌데 이 집에서 내야 할 량곡은 얼마더라…》낮이 긴 여름인지라 태양도 지쳤는지 서산너머로 뉘엿뉘엿 지고있었다. 소란스럽게 량곡을 저울질하고 자루에 퍼서 담는 일도 기본상 끝났다. 서천자락을 붉게 물들이던 저녁노을도 사그라지고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돌배나무가지에 하얀 달님이 걸리더니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고있었다.편깍쟁이는 어제 저녁 최돼지네 집에서 있었던 연회 못지 않게 풍성한 술상을 차렸다. 박장손도 낮에 수고를 했다고 해서 특별히 초청을 받게 되였는데 그는 말석에 앉게 되였다. 신유성은 짐짓 장손의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요 몇년간 내가 장손씨를 잘못 보았군요. 오늘 보니 장손씨는 출중한 애국자로구만요! 자, 자, 어서 한잔 드시오.》《그렇고말고요. 난 장손이가 자라는걸 옆에서 지켜보았지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장손이는 어릴 때부터 보통이 아니였지유!》최돼지도 흐르는 장단에 맞추어 장손을 한껏 추어올렸다. 하지만 장손은 좌중이 칭찬해주는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저 무뚝뚝하게 앉아있을뿐이였다. 그는 자기에게 건네는 술잔을 받아 입술을 대는체하다가 슬쩍 품속에 쏟아버렸다. 그는 넌지시 술좌석의 분위기를 살폈다.얼마후 모두가 술에 취해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떠들어댔다. 장손은 변소로 가는척하면서 슬쩍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는 헛간뒤에서 술안주를 받쳐들고 나오는 웬 아낙네와 마주쳤다. 《어떻게 됐소?》장손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아낙네는 한손으로 앞치마를 만지면서 뒤를 돌아보더니 소곤거렸다.《준비가 다 됐어요. 빨리 약속한대로 신호를 주세요!》장손은 술좌석에 돌아와 앉자 신유성에게 술잔을 권했다. 장손은 마치 취한것처럼 두눈을 게슴츠레 뜨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청년단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장손은 제법 저가락으로 밥상을 쿵작쿵작 두드려대면서 슬그머니 경찰서장의 허리춤을 넌지시 건너다보았다. 어떻게 하면 저놈의 총을 잽싸게 빼앗을것인가? 어떻게 하면 심권이 가르쳐준대로 방아쇠를 당길것인가? 이처럼 긴박하면서 생소한 두가지 모험을 할 일을 생각하느라고 장손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신유성의 제의로 좌중은 술잔을 들고 트루만대통령의 건강과 리승만박사의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축배가 끝나자 방금 헛간뒤에서 장손과 만났던 아낙네가 술안주를 받쳐들고 들어와 술상에 놓고나서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 다시 쓰더니 살짝 헛기침을 하고 나갔다. 시간은 조용히 흐르고있었다. 장손은 일분간의 시간이 하루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별안간 장손은 손에 잡았던 술병으로 옆에 앉은 부서장(副署長)의 얼굴을 들이쳤다. 술병이 깨졌다. 장손은 깨진 술병을 팽개쳤다. 부서장은 두손으로 피범벅이 된 얼굴을 가리며 악! 소리를 질렀다. 그놈의 허리춤에서 장손은 번개같이 총을 앗아냈다. 장손은 벌떡 일어나 벽에 등을 대고 큰소리로 명령했다.《조용들 해! 움직이면 쏜다!》장손은 천정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땅!》 하는 총소리에 술군들은 귀가 다 멍멍했고 혼비백산을 했다.손에 무기를 들고 편깍쟁이네 집 토성을 둘러싸고 신호만을 기다리고있던 십여명 장정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면서 거센 물결처럼 마당에 뛰여들었다. 총소리, 고함소리, 접시와 사발들이 깨지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비명에 거친 숨소리도 뒤섞였다.  사랑방과 마루에서, 마당과 헛간에서 두 패는 서로 몽둥이를 휘두르고 주먹을 날리고 이발로 물어뜯으면서 무서운 란투를 벌였다. 놀란 개들마저 바줄을 끊고 제멋대로 날치면서 마구 짖어댔다. 경찰과 특무단은 수적으로는 렬세에 처했지만 사력을 다해 맞섰다.  신유성이 피투성이가 돼가지고 뺑소니를 치자 장손이 뒤를 쫓았다. 장손은 총을 다루는 솜씨가 시원치 않았으므로 벌써 총알을 다 쏘아버렸었다. 심권은 외양간에 숨은 편깍쟁이를 붙잡아냈다. 선돌이 아버지는 량곡창고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승하는 예비대 10명을 이끌고 최돼지네 집으로 달려가 창고문을 부수었고 집안에 들어가 장롱들을 들어냈다. 덕실이는 산처럼 쌓아놓은 장롱들을 뒤번지면서 토지문서와 빚문서를 들추어냈다.전투는 장손이 첫 총소리를 울린지 반시간만에 끝났다. 소작농들은 완전히 승리했다. 그러나 경찰들이 쏜 총에 한사람이 희생되고 두 사람이 중상을 입었으며 일여덟명의 농군이 특무단원들의 몽둥이에 맞고 군견에게 물려 상처를 입었다. 그 대가로 당장에서 4명의 특무단원과 2명의 경찰, 3명 군청 직원, 두마리 군견이 맞아죽었다. 편깍쟁이는 농군들의 심판에 맡겨졌다.신유성이란 놈을 놓친것이 아쉬웠다. 놈은 어깨에 총상을 입고도 죽기내기로 도망을 쳤으므로 잡지 못했던것이다. 더욱 이상한것은 최돼지의 행방을 알수 없는것이였다. 그 비대한 몸뚱이를 가지고 어디에 어떻게 숨어있는지 도무지 알길 없었다. 9. 전투의 개시승리한 소작농들은 삼삼오오 지주네 창고에 모였다. 그들은 군청에 실어가려고 가려놓았던 쌀자루를 몽땅 마당으로 메고나와 골고루 나누어가졌다. 사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물건을 도로 찾아가는것이였다.두 지주네 집에서 들추어낸 토지문서와 빚문서 그것은 돌배골의 수백명 농군들의 목을 옥죄던 한스러운 쇠사슬이였다. 농군들은 토지문서와 빚문서를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그러나 그 종이장들이 불길속에서 하나하나 재가루로 되여 날려갈 때 마을사람들은 마치 기도를 하듯이 묵묵히 서있었다. 무거운 침묵속에서 어디선가 가느다란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수십년동안 노예처럼 살아온 지난날이 한스러웠기때문이였다.   편깍쟁이는 소작료의 절반만을 받을터이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 마을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얼마 후 편깍쟁이는 주제넘게도  최돼지네 땅에서 거둔 곡물도 나누어가지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마을사람들은 홍소를 터뜨렸다. 결국 편깍쟁이는 돌배골에 영원히 웃음거리가 될《명언》한마디를 남기고 부들부들 떨면서 단두대에 올랐다.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인즉 이러하다. 《최돼지는 정말 아둔한 사람이지. 돈만 있으면 땅을 샀거든요. 하지만 나는 돈만 있으면 군청에 있는 은행에 저축해뒀단 말이우…》태명과 나루터를 지키고있던 몇몇 장정들은 통쾌하게 싸우지 못한것을 못내 아쉽게 생각했다. 그들은 하는수없이 울뚝불뚝한 팔뚝을 매만지며 씽씽 쌀자루를 메여날랐다. 짧은 여름밤에 칠흑같은 어둠을 몰아내고 승리의 려명을 맞이하게 되였다.심권은 로획한 권총을 허리에 차고 수레채에 쌀자루를 고여만든 연단에 서있었다. 덕실이와 승하가 활짝 웃으면서 어깨나란히 서있었고 그 옆에는 한손에 보총을 잡은 장손이 철탑처럼 서있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태명이도 있었고 키가 장손의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는 선돌이 아버지도 있었다. 선돌이 아버지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마치 말뚝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농군들은 모두 낫, 도리깨, 도끼, 호미와 빼앗은 몽둥이 같은 무기를 들고 서있었다. 밤알처럼 촘촘히 박힌 얼굴들, 익숙한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심권은 사방을 휘둘러보고나서 갓 면도질한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는 연단에 서서 김일성장군의 유격대가 조국에 개선한후 이 땅에 처음으로 생긴 인민의 유격대를 보았다. 또한 그는 아직 탄생하지 않았지만 바야흐로 생겨날 공화국의 싹을 보았으며 아울러 괴뢰집단의 수치스러운 파멸을 보았던것이다. 심권은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바라보면서 이제부터 미제침략자와 그 주구이며 민족의 역적인 리승만도당과의 싸움을 시작한다고 엄숙히 선포했다.끝으로 그는 높은 소리로 웨쳤다.《다 함께 싸우러 갑시다!》조선의《문학예술》에서《인민문학 21》1951년 10월 1일 孫振峽 譯2007년 6월 20일 김순녀 重譯
2    [단편] 지네 댓글:  조회:1366  추천:111  2007-06-26
지네 김학철 《괜찬을까요?》  《문제 없다니까요 하……》 군의는(덩치가 커단친구가 요까짓걸가지구 뭘……)하는드키 웃으면서 근본적으로 상대도 하지 않는다.  《글새요……》  하고 김분대장은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드키 아무케나 찍어 발라준 빨간약이 묻어있는 바른손 새끼손까락 둘재매디를 디려다 보고섰다.  《……확실히 열두매딥 이상이든데요……》  새파랗게 질린근심 스러운 얼굴을 들어 애원하듯 이렇게 말하는것을 막으며《허허 글세 괜찬태두 그러시는군 그건 다 아무 근거두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허는 말이래두그래 열두매딥은커녕 수물네매딥 있는 눔에게 물려두 끄떡 없다니깐……그깟눔의 지네쯤이야……》    하고 군의는 담배불을 재터리에 눌러꺼버리였다. 자기를 공격한 지네의 매딥이열두이상이라는것을 논거로 군의의 관심을 끄러보려든 마지막 게획도 허사였든것을 깨달은 김분대장은 하는수없이 그러나 미련이 가득한 눈초리로 빨간약 바른우로 뚜렸하게 비치는 검푸른 지네의 이빨자국과 사무책상을 향하야 도라앉아버린 군의의 힌머리카락이 섞여있는 뒤통수를 번가라 보고 또 보고 하다가 그만 눈을 딱 감고 결사대에 선발을 지원하는 병사같이 모든것을 단염하여버리고 정중한 걸음으로 밖을 향하야 걸어나갔다.  《닭잡는것만 봐두 외면을하구 다라나는게 전쟁은 어떠컨담!》  《요전에 그밀정눔 총살허는걸 보구와서는 종일 밥을 않먹었다니깐그래 게울꺼 것다구……》  이렇게 동료들이 비평하는것을 들으면서도 김분대장은 대꾸할 말을 찾지못하었다. 그것은 모두가 엄연한 사실이기때문이었다. 이를잡아서도 끔찍해서 찔크러떠리지못허고 집어내던지고 조그만 쐬기에게 쐬여도 밤잠을 못자고 걱정하는 그였기때문이다. 그는 벌서 근 삼년채 두고 이 특수한 병증을 극복하여보려고 온갓 방도와 가진 노력을 다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추호의 효력도 발생하지못하엿다. 그는 작년말에 이르러 드디어 八년이상의 투병경험을 종합검토 함으로써 부득히 이 병증의 발작이 불가항역적 이라는것을 승인하는 동시에 불치의 종생고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되였다.  《헐수없지……천성이 그런걸 어떻건담……》  그는 절망의 나마지 변명비슷이 이렇게 중얼거리고나서 머리를 흔들며 《그래두 최대한도의 노력은 다했으니까……》  하는 자기 변호의 말로서 스스로 위로하고는 하였다.  一九四一년첫겨울. 태항산 속에 항일근거지를 둔 조선의용군은 침략군의 진공을 영격하기 위하야 八로군 부대와 배합하야 각군분구(군分區)로 갈리여 출동하였다.  김분대장이 소속한 제×지대(支隊)는 제×군부로 배치되였다.  석가장에서 서남(西南)으로 떠러지기 三十키로 남어지평원과 산지가 집촉된 그곳이 적아양군의 충돌지대였다. 거기에는 거이 날마다같이 소규모의 전투가 버러졌다. 거기에서는 농작물의 수확이 끝나는 때로부터 눈이 나리기 전까지의 사이를 불러서 전쟁시절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어!김분대장! 조심허우! 밀짚새에 버러지가 있으리다》  설영지(設營地)에서 밀짚을 펴서 자리를만들고있든 김분대장은 주춤하고 무의식적으로 밀짚단을 놓아버렸다.   《……?……》  그는 살몃이 겻눈질을 하여서 이렇게 경고한 동료의 옆얼굴을 훔처보았다.  《쐬기…지네…쥐색기가 들어있을때두 있거든……》  바뿌게 짚을페며 그동료는 이쪽을 보려고도 하지않었다. 그는 그제서야 그것이 비웃는것이 않이라는것을 간취 하고 나서(후―)하고 짧고 가벼운 한숨을 쉬였다. 호의의 경고까지도(혹시나?)하고 의심하지 않으면안되고 마음을 조리지 않으면 않되게 되여있는 지금의 자기를 돌아볼때 그는 탄식하였다.  《망헐눔의 병……》  ×               × 《악……》  숙영지로 정한 부락 농민의집에서 병사들을지휘하며 말에서 부리운 행리(行李)를 넣두려고 거미줄이 얽히고 빗장우에 몬지가 케케앉은 광의 쪼각들을 열다 말고 이렇게 외마디소리를 치고 김분대장은 나자빠졌다.  《쥐!》  오래동안 사람 드나들지않은 광속에서 쥐가 튀여나왔든것이다 그것도 조꼬만 색기쥐가 단한마리……. 둘씩둘씩 상자를 마주들고 뒤따라섰든 병사들은 상관의 연출한 이 돌발사건을 보고 터저나오는 우숨을 억지로 참노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실례가 없도록 하기위하야 빨갛게된 얼굴을 엄숙하게 정색하려고 애를썼다. 김분대장은 벌덕 이러났다. 모아퍼붓는 병사들의 시선이 등뒤에 뜨겁게 감각되었다. (상관의체면)그는 반쯤 열린 광문을 삐…걱하고 열어제쳤다.  《탄약상자는 왼편 군량과 기타것은 바른편 차례로 배열》  명령을 내리고나서 그는 동통을 느끼는 왼손바닥을 살그머니 펴고 디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자빠지는 통에 어디에 걸켜서 찌꼇는지 손톱자국 만큼 피부가 찌껴지고 발가스름하게 피가 배여있다. 이 열상(裂傷)을 발견한 그의 얼굴은 당장에 해쓱하여졌다.  ×                 × 《보고! 김분대장!》  고골불밑에서 전신경을 왼손바닥에 집중하고 앉아있든 김분대장은 놀라서 고개를 도리켜보았다. 거기에는 지대부의 전령병이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지대부에서 지금 곳 오시랍니다》  《지대부에서?》  《네!》  《무슨 일야?》  《모르겟읍니다》  《…?…》  무슨일일까하고 전령의 뒤를 따라 지대부에 간 김분대장은 지대장 부지대장 정치지도원 세간부가 포위하다 남겨논 테―불의 한면에 앉히웠다.  《오늘 낮에 행리를 처분허다가 실수를 했다든데……》  지대장은 웃는 낯으로 그러나 딱하다 는드키 이렇게 입을 열었다.  《비록 큰실수는 않이라지만 그래두 부하를 거느리는 사람이…더군다나 군인이 그래서야 어디…》  부지대장과 정치지도원도 따라서 좀쓴듯이 미소를 띠웠다.  《네!》  김분대장은 머리를 푹 숙으리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뛰여드러가고 싶은듯이 큰몸둥이를 쪼쿠려띠였다.  《머 그다지 그럴건 없어! 해두……》  《네! 면목없읍니다 이후에는 다시……》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자신이 없어보이는 서약의 말이였다.  《이후엔 다시 않그럴테란 말이지? 그렇지만 그런 절대성을 부칠것꺼지는 없구! 가급적 않그러두루 노력을 허는게 좋을듯헌데…》  지대장의 부드러운 융통성 있는 말에 그는 간신히 한줄기 출노를 찾은듯이 《네! 그 그 가급적 노력을 헐 작정입니다》  하고 숨을 돌러었다. 그러나 그는 이급한 경우에도 왼손바닥의 조고만 상처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있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후유―이눔의병!》  이튼날 오후 김분대장이 명령을 받고 ××명의 분대원을 데리고 경비(警備)를 교대하려 간곳은 우군 경비 구역외최 좌익에서 三키로반이나 따루떠러저있는 산마루텍이에 고립한 무인의헌 절이라는것 보다는 조고만 암자였다.  《어째 무시무시허다》  《흠!누가않이래! 오늘밤 잠은 다잤네다 잤어!》  《설마!》  《설마가 머야?그눔의 설마가 사람 죽이지……》  방어 공사를 보강한다음 산중턱에서 솟는 샘치에서 음요수를 리레―식으로 날러 독에 채워놓고나서 한곳에 모여앉은 분대원들은 궁초한개를 돌려가며 피우면서 이렇게 잡담을하였다.  《지뢰는 자신있나?》  《암 그야 문제없지…그저 걸리기만 허문야?》  《흥! 그럼 여 기관총! 또 급헌통에 보고! 고장입니다 않허겠나?》  《안다 이친구 그땐 거 특수사정이야?》  《그럼 이번엔?》  《이번야 가상편반이지…》  《하하……》  《허허……》  우슴이 폭발하였다.  《하여튼 오늘밤 임무는 특히 중허니까……》  하고 김분대장은 우슴이 끝나자 허리의 권총자루를 손바닥으로 잡아 누르며 《복초(複哨)를 스기루해》  하고 이러나 밖으로나가며 반은 혼자말같이 이렇게 말하었다.  《어둡기전에 적당한 위치를 봐둬야지……》  지뢰가 터졌다. 보초가 발사한 총성이 거듭 두방 이어서 산과 곬작이에 부드처서 울림하는 지뢰의 폭성이 몃번이나 거듭해서 우뢰같이 떨리고 울러나갔다.  《적습!》  《전투위치엣!》  기관총이 불을뿜었다. 적이 보내는 탄환이 모진바람에 가루뿌리는 우박같이 벽에 부드처서 흙과 회를 부서트리고 날리고 흐터리고 하였다.  十분 二十분 三十분 한시간 총신이 달아서 잡을수가 없게 되였다.  물통에 물을 담아다 놓고 번차레로 총을 담근다. 단총신이 식누라고 씨―ㄱ소리를 냈다. 통속의 물은 김이 무럭무럭나며 삽시간에 뜨거운물로 변해버렸다.  적의 산병(散兵)은 점점 접근해왔다.  五十메―타 三0메―타― 좌우에서 여전히 전무행위를 게속하고있는 극 소수의 부하를 제외하면 그 대다수가 총상에서오는 고통에 허비적거리며 신음하고있고 그렇지 않으면 말두 동작도 숨소리도없이 누어버린 아직 채 식지않은 시체로 변하여있었다. 수류탄을 마지막 한개까지 다 던지고 나서 권총을 뽑아 난사하든 김분대장은 적의선두가 불과 몇발자욱 않되는 곳에 날창을 번뜩이며 기여 올라오는것을 발견하고 겨누어 한방을놓았다. 맞지않은 적병은 까딱도않고 여전히 기여 올라왔다. 또한방을놓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짤칵 하고 격침(擊針)때리는 소리만나고 탄환은 나가지 않았다. 불발이였다. 탄창을 열어보았다. 탄약이 없다. 적이드리덤비였다. 그는 탄약없는 권총을 적병의 얼굴을 향하야 던졌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려고 주춤하는 사이에 옆에 넘어저었는 부하의 손에서 날창꽃힌총을 집어들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판이었다. 김분대장은 눈앞에 번득하고 날새게 뻗어오는 날창을 기계적으로 뿌리처 버리였다. 중심을 잃은 적병은 앞으로 꺼꾸러 지려하였다. 아무것도 고려할사이없이 그는 찔렀다. 마치 호박이나 질르듯이 푹하고 가숨패기에서 등뒤로 나간 날창은 암만 잡아다려도 빠저나오지 않駭? 하는수없이 그는 끼―ㄱ소리를 지르고있는 군복에 싸인 더운 고기덩어리를 한발로 쿡밟고 두손에 힘을주어 쭈―ㄱ잡아뽑았다. 뒤를이은 적병이 숨돌릴사이도없이 또 달겨들었다. 혼전난투의 백병전이 버러졌다. 뭐가 뭔지 모르고 적인지 우군이지도 분별할새없이 찔르고 질리우고의 수라장이었다.  《아! 어떻게?……》  눈을뜬 김분대장은 반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됐읍니까? 적군은?》  《아…눈 뜨섰읍니까》  몇시간채 꼼작도 않고 옆에 앉어서 디려다보고있든 간호병이 반가운 소리를 지르고 《잠간 기십쇼 얼근가서 보고허구 오겠읍니다》  하고 급하게 뛰여나갔다. 그는 침대우에서 이러나려고 하였으나 꼼작도 할수없었다.  《으응……》  팔 다리 허리 목 할것없이 전신이 짖어지는것같이 아팠다. 그는 그제서야 자기의 왼몸이 붕대에 감겨있는것을 알았다. 군의와 지대장이 간호병과 가치 쫓아드러왔다.  《어! 살아낫군……》  《음! 이제 살았어……》  김분대장은 자기가 의식을 잃게된 원인과 그사이의 경과를 듯고 《제―가요?》  하고 반문하지 않을수없었다. 지대장의 입에서 나온 용전분투니 절대의무훈이니 임무완수니 모범이니 용사니 하는 찬사의 가지가지가 암만하여도 자기와는 관게가 없는 것만같이 생각되였다.  《정말 제가요?》  그는 믿어지지 않는듯키 재차 이렇게 물었다.  후송되여 ×××제×분원에 입원한 김분대장은 ××일보에 실린 자기의 분전(奮戰)기사를 드려다보고 놀사이도 없이 또 八로군 총사령부와 부녀대 대표의 뜨거운 위문을 받게되였다.  《본래 김분대장은……》  하고 기뿜이 넘치는 얼굴로 지대장은 총사령부와 부녀대 대표의 위문사가끝나고 위문품의 전달이 끝난다음 김분대장의 소개를하였다.  《벼룩한마리 파리한마리두 죽이지 못허는 말허자문 아주 극히 온순허다구 헐까 선량허다구 헐까 언뜻보아서는 도무지 그런 용기가 대체 어디 숨었나 허구 의심헐만치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잔데…. 머…머…ㄴ 때를 볼것두없이 이번 전투가 있든 바루 그전날만 해두 숙영지에서 행이처분을 감독허다가…》  지대장이 웃어가며 자랑삼아 하는 이야기가 여기까지 일으렀을때 자기의 침대를 둘러싼 두총사령부대표와 부녀대를 대표한 두 군복의 처녀와 군의와 부관과 세사람이상의 간호병과 지대간부와 또 몃사람의 감격한 얼굴과 시선을 주체못하여서 머리를 숙으리고 눈을 나려뜨고 있던 김분대장은 《아니…지대장 동무…》  하고 전신이 용기를 도꾸어 말을 막았다.  《그 얘기는 잠깐……》  지대장은 이번 공훈을 더한층 효과적으로 칭양하려고 그 역효과를 노리는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김분대장으로서는 부끄러워서 도저히 견딜수없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그후 적극 노력헌 결과루 그 약점은 완전히 극복됐읍니다》  사실상 몃개인지 수도 헤일수없을만치 많은 산 사람의 몸둥이를 질려 넘어트리고 벼락용사가 되여버린 지금의 그는 자신이 있기도하였다. 그래서 《그까짓건―인젠 문제두 않됩니다》  하고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허허 그럼 그얘긴 보류 해두기루 헐까?》  하고 지대장은 좌우를 도라보고 《본인이 발표헐 권리를 주지않습니다 그려 하하……》  《꼭 듣구싶습니다. 비밀은 엄수헐테니……》  《그래두 당사자의 허가가 없는데 어접니까? 다음 막은 요담기회에 미루기루허구 오눌은 이걸루 그만 막을 다치기루 헙니다 하하……》  《하하……》  《하하……》  김분대장도 안심의 한숨을내쉬고 《원 지대장동무두 하하…》  하고 따라서 웃었다.  위문의 임무를 마치고 도라가는 대표일행과 그를 전송하는 ×분원의직원 지대간부들이 병실을 나와서 몃거름 발을 옮겨 놓았을때이었다.  《으악!》  하는 비명과함께 무엇인지 털석하고 탄력있는 물체가 마루바닥에 떠러저 부드치는 소리가났다.  《?………) 사람들은 깜짝놀라서 일제히 발을 멈추었다. 그것은 분명히 지금 딱 나온 김분대장의 병실에서였다.  《어서……》  《어서 들어가봐》  불낳게 문을열고 뛰여드러간 사람들은 거기에 침대에서 떠러저서 위문품꾸레미와 신문지와 약봉지가 흐터저있는 사이에 쭈크러트리고 있는 김분대장의 심상치않은 모양을 발견하였다.  《뭐요?》  《어떻게 됐오?》  《저기 저기……》  김분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고 《지 지 지네……》  하며 붕대에 감긴 손을 들어 침대우를 가르켰다.  《?……》  《지네?》  어찌된 영문을 모르고 김분대장의 가르치는곳을 뚜러지게 바라보든 사람들이 한참후에 겨우 제처진 이불우에 발견한것은 지네있었다. 극히 조꼬만 단한마리의…….                                                         ― 《報告文學 建設》 1945년 12월 9일                 (연변대학 조선-한국학문헌자료센터 김순녀 제공) <<연변문학>>2007년5월호
1    우리 문학유산 찾기[1](오오무라마스오) 댓글:  조회:1094  추천:112  2007-06-26
적어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전까지 우리 작가들은 디아스포라(离散)의 삶을 살아왔다. 그들은 항일투쟁의 전장에서 풍찬로숙(风餐露宿)하기도 했고 차디찬 감방에서 영어(囹圄)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피로 얼룩진 유작들은 혹은 필사본으로 혹은 해방공간의 자그마한 잡지에 실려 읽혀지기도 했으나 그중 많은 작품들이 인멸되여 문학사에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학철선생이 해방공간 서울에서 쓴 단편들도 제목만 알려지고 작품은 볼 수 없는것들이 더러 있었는데 이번에 연변대학교 김순녀선생이 한국의 고명철교수 등 지기들을 통해 일부 입수해 정리했다. 단편소설 《상흔》은 1946년 5월 10일 《월간 상아탑》제6호에 실린 작품인데 가렬한 전투장면을 핍진하게 그려 현장감이 넘칠뿐만아니라 전투속에서 맺어진 우리 전사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고있다. 김학철연구의 좋은 자료라고 인정되여 원문 그대로 싣는바이다.우리 문학유산 찾기[1]오오무라마스오김학철선생님이 필자에게 보내신 편지가 4통 남아있다. 처음 2통은 《중국작가협의회 연변분회 김학철》로 되여있으며 나중 2통은 연길시 총류가(叢柳街) 2-2-4, 개인주소로 되여있다. 이 4통의 편지를 그대로 묻어두는것이 안타까웠던차에 이번 기회를 통해 공개하기로 하였다. 내가 최초로 연변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1985년 4월부터 86년 4월까지의 1년간이였다. 이 기간 김학철선생님댁에 주 1회씩 드나들면서 선생님의 반생을 록음테이프 10개에 록음하였다. 그 일부는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2》(연변인민출판사)에 역재되여있기도 하다. 첫번째 편지는 1986년 봄 귀국한후, 당시 연길에 데리고 갔던 딸 오오무라 미치노(大村三千野)를 념려해주신 내용의 글이다. 짧은 문장속에 미치노에 대한 자애(慈愛)와 필자에 대한 정애(情愛)가 함께 스며있다.(편지1)  두번째 편지는 1988년 12월 26일에 씌여진것으로, 연길에서 투함(投函)한 편지인데, 당시는 《우편사고》로 인해 한국에서 수취가 불가능한 일이 있었던 시대여서, 선생의 편지를 내가 맡아가지고 갔다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냈다. 그랬더니 금방 한국에서 무사히 편지를 받았다는 통지내용이다. 한국에 보내는 편지를 이런 방법으로 대신 보내드렸던 기억들이 있다. 두번째 편지의 후반내용은, 북경의 중앙민족학원(현재의 중앙민족대학)에서 류학생활을 보내고있었던(현재도 북경 거주) 미치노(三千野)에 대한 배려의 내용이다. 선생님께서 《미치노》라는 이름의 유래를 물으신적이 있는데, 그것이 《삼천리》를 자유롭게 달린다는 의미라고 알려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무릎을 치고 기뻐하시면서 미치노를 더할나위없이 귀애해주셨던것이다. (편지 2) 세번째 편지에는 《제2회 KBS해외동포상 수상자 확정》이라는 KBS의 통지서가 동봉되여있었다. 선생은 이 시기에 《특별상》을 받으셨다. 소개문에 《중국. 작가, 항일투사》로 되여있었다. 이 편지는 94년 7월 1일에 씌여진것으로서, 집사람의 요통을 념려하시면서 약 걱정을 해주신 내용이다.  또 선생님께 선물로 드린 《에도(江戶) 풍령(風鈴)》이 최근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시는 내용도 들어있다. 물론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운 분이시긴 하나, 일본 서민의 생활상과 풍물은 좋아하셨다. 언제였던가 《일본 물건중에 뭔가 원하시는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다음번 올 때 가지고 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황성(荒城)의 달(月)》(일본가곡) 의 오르골(자명금:自鳴琴)과 다이후쿠(大福: 팥이 들어간 찰떡)을 말씀하셨던적이 있다. 오르골은, 일본군과 대치하고있었던 때 야간 심리전의 일환으로 《황성의 달》을 확성기로 틀어서, 일본 병사들을 향수에 잠기게 하여 전투의욕을 잃게끔 한 경험이 있었다고 하시는데, 한편으로는 《황성의 달》이 갖고있는 센티멘탈리즘에도 공명되는바가 있으셨던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다이후쿠도 추억을 되새겨보고싶어서 말씀하신것이였을것이다. 선생님은 8.15 해방으로 이사하야(諫早) 형무소를 나오게 되셨는데, 건국준비위원회가 마련한 목조선(철강선은 어뢰때문에 위험)에 승선하시기전에, 하루동안 자유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거리에서 행상 할머니한테 다이후쿠를 사 드신적이 있는데, 그 맛을 잊을수가 없다는것이셨다. 1993년 선생님이 처음 일본에 오셔서 와세다대학에서 강연을 하셨을 때, 숙소인 도쿄 간다(神田) 한국YMCA의 어느 방에서, 딸이 약속한 그 다이후쿠를 가져다드렸더니, 2개까지만 드시고 3개째는 들지 못하셨다.(편지 3) 네번째 편지는 1995년 7월 17일에 씌여진것이다. 이것은 내가 나가사키(長崎)지방재판소 판결문을 발견해서 복사를 해서 드린적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 일로 야단을 맞고말았던 내용이다. 물론 치안유지법으로 신병이 구속되여있는 상황에서의 재판이, 김학철선생님의 의지를 철저하게 무시한것이니, 신뢰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일본 관헌측이 어떻게 보고있었는가 하는 면에서 참고는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참담했던것이다. 선생님께는 선생님 나름의 생각이 있으셨을것이다. 하지만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1》에 번역 게재되여있는바를 보면, 역시 판결문 찾기 작업은 헛된 고생만은 아니였던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편지 4) ----------------------------------------------------------- * 필자 주 : 이하 4편의 편지중 1과 2는 일본어, 3은 한국어, 4는 한국어 및 일본어로 씌여있다. 한국어 편지내용은 부호를 포함하여 최대한 원문 그대로 수록하되, 띄여쓰기는 현대 한국어맞춤법 규정에 따랐고, 원문속의 한자는 해당 음을 ‘(  )’ 속에 병기했다. 원문속의 한자가 중국 간체자인 경우는 현대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로 대체했다. 그외의 원고 상태나 특정용어에 대한 보충설명은 ‘[  ]’로 표기했음을 밝혀둔다. 편지 1 [원문:일본어]  미치노 양은 일본을 출발하던 날, 대설(大雪)로 고생하셨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지 2  [원문:일본어] 9월 서울에 보내주신 편지, 감사 드립니다. 틀림없이 받았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너무도 죄송합니다만, 한번 더 다음 편지를 부탁 드립니다. 『天池(천지)』1월호는 이미 도착했을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모님께도 안부 전해 올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학철 88년 12월 26일 미치노 양 북경 생활, 이젠 익숙해졌나요? 겨울방학 때 일본에 돌아가시면, 동봉한 편지와 사진을 아버님께 전해 드려주세요. 편히 지내시길.                                         김학철                                             88년 12월 26일 편지 3 [원문: 한국어] 大村 先生(오오무라 선생님) 내외분께 지난해 주신 편지 받는 길로 집사람이 腰痛(요통)에 가장 좋다는 약― 天麻丸(천마환)(有神效 유신효) 한 小包(소포)를 부치려 했으나 우체국에서 받아주지 않아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麝香(사향). 天麻(천마), 云南白藥(운남백약) 등은 다 금수품목(禁輸品目)에 들어 있다는 겁니다. 금년 여름에 오시면 한 보따리 구해드릴 테니 꼭 오십시오.  三千野(미치노)양은 방학이라 귀국했겠지요. 이곳 河南(하남) 거리에 <<삼천야(三千野) 小吃部(소흘부)>>[경식당]라는 간판이 내걸렸습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着想(착상)이 奇拔(기발)한 간판입니다. 惠贈(혜증)하신 <<江戶(에도) 風鈴(풍령)>>을 방문에 매달았더니 문이 여닫길 적마다 玲瓏(영롱)한 소리를 내 仙境(선경)에 사는것 같더니 어떡하다 鈴(령)에 금이 갔는지 요즘은 濁音(탁음)으로 변해 매우 失望的(실망적)입니다. 내외분께서 내내 건강하시기를 빌고 바랍니다.                                         김학철                                          94. 7. 1 편지 4 [원문 : 한국어 및 일본어]  大村 先生 (오오무라 선생님) 내외분께 [이하 한국어] 동경에 체류하는 동안, 폐를 너무 많이 끼쳐 드려, 무어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미치노양은 지금 아르바이트로 여념이 없겠지요. 岩波(이와나미)서점의 大塚(오오츠카)씨에게 大村 先生(오오무라 선생님)을 소개했는데, 련계가 제대로 되셨는지요. 刑事判決書(형사판결서)란 의례 거짓말투성이라는것을 알아 두십시오. 被告(피고) 가 以實直告(이실직고)하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다음 "하물며 증거에∼"부터 일본어] 하물며 증거에 입각한 수사(裏付搜査)가 불가능한 경우, 피고의 공술은 신빙성 제로입니다. 때문에 판결서의 문면을 근거로 전기 같은것이 씌어졌다면 대오류요, 대실례올시다.[다음 "지금 中國과∼"부터 마지막 행까지 한국어] 지금 中國(중국)과 韓國(한국)의 出版社(출판사)들에서 저에게 自傳(자전) (回顧錄회고록)을 써달라는 請託(청탁)이 여러 곳 들어와 있습니다. 考慮(고려)하는 중입니다. 아직까지는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습니다. 이번 訪日(방일)에서는, 일본벗들을 많이 사귀였고, 또 배운것도 여간 많지가 않습니다. 秋子(아키코) 녀사께는 신세를 너무 많이 져놔서, 어쨌으면 좋겠는지 모르겠다고, 집사람이 자꾸 뇌고있습니다. 안녕히들 계십시오. <<연변문학>>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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