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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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최고의 선물-김옥희
2019년 07월 17일 10시 37분  조회:390  추천:1  작성자: 문학닷컴
김옥희

최고의 선물
 
 
출근해서 따뜻한 커피잔을 막 들려는 찰나 폰이 울렸다. 매번 내가 꼭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이면 누군가 전화를 걸어온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다. 폰을 열어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프렸다.
‘또 너야? 김해연!’
김해연, 그는 언니가 가슴으로 낳은 귀하디귀한 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큰언니가 여섯번의 류산 끝에 얻은 천금보다 귀한 아이였다. 태여난 순간부터 우리 가문의 보물1호가 돼있었던 특별한 아이, 그 아이가 어느새 서른이 눈앞이니 벌써 30여년전의 일이다.
“웬일이야, 아침부터?”
“웬일은 무슨. 보고 싶어 전화했지롱.”
“우리 며칠전에도 봤잖아!”
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이모,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건 아니지?”
“그게… 헌데 할 말이 없으면 끊어. 나 일해야 돼.”
“잠깐만! 나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라니?”
“전화로 하긴 그렇구요. 우리 만나요.”
“만나긴 뭘 만나. 그냥 해, 지금.”
“진짜 중요한 얘기라서 그래요. 제발 만나주세요. 예?”
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폰을 열어보았다. 이제 막 8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의 하루 일정을 나는 손금 보듯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언니랑 한 아빠트에 산 세월이 저그만치 5년이였다. 이 시간은 밤샘을 한 그가 조찬도 거른 채 실컷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헌데 그는 깨여있고 내게 전화를 걸어왔으니 뭔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였다.
“너한테 진짜 중요한 얘기가 있을리 없잖아? 혹시 취직이 된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그럼 뭐야?! 너한테 지금 취직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다구?!”
나는 진짜 폰을 꺼버리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었다.
“진짜 화를 내는거예요?”
“그래, 나 너한테 화내는거 맞어. 그러니 바쁜 사람 귀찮게 하지 말구 끊어.”
내가 일방적으로 폰을 끄려는 순간.
“이모, 나 남자 생겼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너 방금 뭐랬어?”
“나 남자친구 생겼다구요. 갑자기 결혼을 하고 싶어졌어요.”
“뭐? 갑자기 결혼을 하고 싶어졌어?”
“예. 진심이에요.”
“참, 너 진심이 뭔지나 알어? 진심 좋아하구 있네.”
대놓고 질러대는 내 빈정거림에 폰 저편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는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련애 한번 못해본 애가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니? 이건 참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마른하늘에서 천둥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롱담처럼 해버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방금전 느낌이 그랬다. 목소리가 예전과 달리 진지해서 놀랐다. 그 어떤 커다란 불안감이 스물스멀 가슴을 짓눌러왔다. 가령 해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문득 머리끝에서 화가 치밀어올랐다.
‘어떤 자식인데 순진한 내 조카를 꼬셔서 이렇게 분별력마저 잃게 만든거야. 그 녀석 안 봐도 뻔해.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나쁜 녀석들이 천지간에 어디 한둘인가? 헌데 하필이면 내 조카가 걸려들다니…’
“안돼!”
“왜? 이모는 그 사람 얼굴도 못 봤잖아요. 헌데 왜 반대부터 해요?”
“글쎄 안되는 건 안되는거야.”
“울 엄마보다 이모가 더 무섭네.”
“그래, 그래서 너도 나한테 먼저 고백한거 아니야?”
“와아, 신기해. 심리치료사다워요, 이모.”
“야, 됐구. 우리 만나자. 점심때 전에 만났던 나즈까페서 봐.”
“콜!”
 
점심때 나즈카페에서 만난 해연이는 멀쩡했다. 자기 친구가 요즘 갑자기 결혼 을 하고 싶다고 문자가 와서 그냥 그걸 자기 일처럼 고백해서 내 반응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해연이가 갑자기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정말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었다.
요즘 20~30대처럼 불안한 삶을 사는 세대는 없는 듯했다.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상담받는 게 이 또래들이였다.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는 삶 자체에 끝없이 흔들리고 방황하는 그들이 떠안고 있는 고민을 내 딸 서연이도, 언니의 딸 해연이도 똑같이 겪고 있는 듯했다.
 
그날 오후, 회사에 돌아와서도 나는 한동안 해연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연이를 보고 있으면 자꾸 2년전의 일이 떠올랐다.
2년전, 언니와 형부의 갑작스런 리혼도 우리에겐 쓰나미 같은 엄청난 충격이였다…
진중하고 언니한테 각별했던 형부한테 사랑하는 녀자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다. 그날은 주말이였다. 막 세탁기를 돌리려고 세면실로 향하던 언니는 갑작스런 노크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 헌데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녀자였다. 녀자의 직감으로 그 녀자의 불러있는 배를 보고 의아해하던 그는 문득 층계 저편에서 어정쩡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한 사람을 보았다. 남편이였다. 지금 이 상황이 뭔지 언니는 짐작할 수 없었다.
허나 쏘파에 앉아 남편이 들려주는 얘기는 언니의 예상과 빗나갔다. 남편에게 녀자가 있었다. 그리고 자기보다 열세살이나 어린 그녀가 남산만한 배를 그러안고 자기를 찾아왔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자신은 아무 것도 몰랐다. 이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이 그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벅차고 버거웠다.
그 경황없는 순간에도 남편을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확실했다. 남편의 실수를 용서해주고 싶었다. 모든 재산을 그녀한테 주는 대가를 치뤄서라도 남편을 돌려받고 싶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정리해서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남편이 갑자기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앞에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여보, 당신은 나 없이도 잘살 수 있지만 이 녀잔 나 없인 못살아. 살 수가 없어.”
언니는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며 담담하게 남편을 바라보았다.
“나도… 당신 없인 못살아… 우리에겐… 해연이도 있어. 해연이가… 우리한테 어떤 딸인지… 당신도 알잖아. 나두 해연이두 당신 없인 안돼… 당신… 우리 해연일 버리고… 살 수 있어?”
“내가 당신이랑 해연이한텐 평생 죄인인거 알아. 나두 일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어. 결국 고민 끝에 저 여린 녀자를 버릴 수 없단 걸 알았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언니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살아오는 동안 단 한번도 얼굴을 붉히며 싸운적 없는 부부인데 헤여진다는 게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두쪼각이 난다고 해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당신은 강한 녀자잖아. 우리 해연이두 이젠 대학을 나왔구 성인이야. 내가 아빠의 도리는 다 할게. 우리 딸 시집갈 때 아빠로서 최선을 다할게.”
‘뭐? 최선을 다해? 아빠의 최선이 뭔지 당신이 알아? 우리 딸이 바라는 건 아빠가 자기 옆에 있어주는 거라는 걸 왜 몰라?!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야! 어린 처녀한테 빠져 가족을 버린 아빠를 우리 딸이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애!’
머리속에 떠오른 이런 말들이 목구멍안에서만 맴돌았다. 언니는 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남편을 보낼 순 없었다. 나도 저 녀자처럼 강하지 않다고, 그러니 제발 나랑 우리 해연이를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헌데 쏘파에 앉아있는 것마저 힘들고 위태로워보이는 그녀의 잔뜩 불어난 배에 자꾸 시선이 갔다.
언니는 남편이랑 그녀가 언제 집을 나갔는지 몰랐다. 정신이 들었을 땐 자신이 쏘파에 누워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새 잠이 든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게 꿈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불면증에 잠을 잘 못 자면 안 좋은 꿈이 찾아오군 했는데 이번 꿈도 례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서둘러 폰을 꺼내들었다. 남편의 폰으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꺼져있었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언니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날, 형부의 전화를 받자마자 집으로 달려온 나는 아빠트앞 작은 공원의 그네에 앉아있는 언니를 발견했다. 한방에 무너져버린 터덜터덜한 모습이였다. 남편이 그 녀자의 손을 잡고 나가는 걸 보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 언니의 가슴속 깊은 곳에 머물러있는 큰 슬픔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그 크고 동그란 두 눈에서 눈물이 샘처럼 흘러내렸다.
평소에 덤덤하듯 무심한듯 살아온 언니였다. 그런 언니가 다소 답답했지만 그런대로 진중하고 고지식한 형부를 만나 무탈하게 잘살아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언니는 형부랑 부부로 산 세월이 저그만치 수십년이다. 순한 양처럼 불평 한번 안 부리고 형부만 믿고 의지했던 언니였는데 이런 배신을 당하고 과연 괜찮을가 싶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없고 화가 났다. 이 세상 남자들이 다 바람을 피운다 해도 형부는 아닌 줄 알았다. 너무 착하고 고지식해서 평생 언니 하나만 믿고 사는 형부일 거라는 우리의 예상을, 우리 가족의 절대적인 믿음과 오랜 신뢰를 이렇게 허망하게 송두리채 흔들어놓고 어떡해. 녀자의 마음을 갈대라고 하더니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남자의 마음이였다.
내 마음이 이런데 언니의 마음을 어떨가 싶어서 또 한번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멍 때리고 앉아있는 언니를 가슴에 꼬옥 그러안았다.
“언니, 다 괜찮아질꺼야. 기운 내. 알았지?”
언니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그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해연이, 언니 딸 해연이한텐 아직 비밀로 하자. 응?”
“다… 다 내 탓이야. 내가… 부족해서…”
언니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고 다시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게 왜 언니 탓이야? 언니도 나도 형부에 대해 몰랐던 게 있었어.”
“너… 형부… 뭐라 하지 마…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
“허나 형부는 우릴 속였어. 형부가 주식을 했던 건 알고 있었어?”
나는 뻔한 걸 물었다. 그걸 언니가 알 리 없었다. 언니의 놀란 시선이 그 사실이 금시초문임을 말해주었다.
“나도 얼마전에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형부의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단 말이지.”
언니의 손을 잡고 나는 내가 들은 형부에 관한 이야기를 천천히 언니한테 들려주었다…
형부한텐 주식을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를 통해 그녀랑 알게 됐고 주식이 뭔지 모르던 형부가 그녀의 덕분에 난생처음 꽤 큰돈을 벌었던 게 화근이 됐다. 한번 두번 빠져들면 들수록 점점 손이 커져 나중에 그녀의 돈까지 빌려 주식을 했다가 그마저 망해서 절망에 빠져있을 때 그녀가 제안을 하나 해왔다. 형부가 그녀한테서 빌린 돈이 무려 백만원이였다. 백만원! 그 엄청난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대신 자기랑 결혼하는 걸 전제로 하자고 했다. 형부는 언니를 사랑했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말 힘들게 얻은 소중한 딸 해연이가 그에겐 전부였다. 그녀의 제안에 형부는 어이없어했다. 정말 말이 안되는 제안이라 그저 롱담이라 받아들이는 형부한테 그녀는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고 했다. 형부는 믿기지 않았다. 허나 당장 그 엄청난 돈을 갚을 길도 없어 우왕좌왕했다. 그는 이 엄청난 사고를 전혀 알지 못하는 안해에 대한 미안함, 큰 빚이 짓누르는 위압감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 빚을 떠안고 사느니 차라리 홀로 죄값을 치르는 게 안해나 딸을 위한 길이였다. 고민 끝에 결국 그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한달이 막 지나던 어느 날 그는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청천벽력이였다. 놀라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번 그녀를 품었을 뿐인데 임신이라니? 그녀의 임신은 언젠가는 사랑하는 안해와 딸한테 돌아가려 했던 형부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쪼각냈다. 임신을 빌미로 그녀는 아예 마음을 굳힌 듯했다. 외국에서 일하는 부모한텐 잠시 비밀에 붙이고 형부와의 동거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배가 남산만해졌을 때 그녀는 형부를 앞세우고 언니네 집을 찾아와 언니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나는 단정짓듯 말했다. 형부의 그 빚때문에 같이 산다고 해도 평생 행복할 수 없다고, 리혼이 최선의 선택이고 차라리 잘된거라고. 언니는 고개를 떨구고 한식경이나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축 처진 언니의 어깨를 가만히 그러안았다. 언니는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런 언니의 슬픔이 내게로 전해졌다. 나는 알 것 같았다. 언니가 힘들어하는 건 남편의 배신이 아니라는 걸.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바보같이 아무 것도 몰랐던 자신이 언니는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픈 것이리라.
 
다 지난 얘기지만 나는 언니부부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내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두 사람이였다. 내 눈에는 두 사람만큼 잘 어울리고 금슬 좋은 부부가 이 세상엔 없었다. 허나 그들은 결국 헤여져 남이 되였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리별한 뒤 채 한달도 안되여 형부가 그 녀자랑 결혼식을 올렸다. 뭐가 그리 바빴을가. 어차피 녀자가 임신을 했으니 결혼은 시간문제였겠지. 헌데 왜 그렇게 서둘러서 언니의 가슴에 또 한번 비수를 꽂아야 했을가.
나는 친오빠처럼 믿고 의지했던 든든한 형부가 이제 남이 됐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형부가 그렇게 서둘러 결혼에 올인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형부가 이 정도 형편없고 리기적인 남자였다니?! 세상에 이런 배신은 없다고 생각하니 언니가 너무 가엽고 안스러웠다.
근 한달사이에 갑작스런 리혼과 남편의 결혼을 두루 겪으며 언니가 받아야 했을 슬픔의 무게를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언니가 우울증이라도 걸릴가봐 매일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었다.
다행히도 언니는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그런 대형사고를 당한 당사자인 언니가 너무 태연한 척, 씩씩한 척하는 게 자꾸 신경 쓰이고 불안했다. 허나 한달 쯤 지났을 때, 언니는 정말 아무 일 없는듯 자기의 일상을 되찾아갔다. 다행이였다. 사랑하던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딴 녀자한테 갔는데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가 싶을 정도로 정말 괜찮아보이는 언니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 한가운데로 전률이 느껴지기도 했다. 뭐야? 마음이 독해진거야 아니면 지나치게 무심한거야?
 
언니의 딸 해연이가 갑자기 짜잔! 하고 집에 돌아온 건 바로 그 무렵이였다.
미대를 졸업한 후 상해의 한 대형광고회사에 취직해 잘 나가던 해연이가 예고도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제일 충격받은 건 언니였다. 이렇게 사전에 말 한마디 없이 불쑥 돌아올 만큼 무모한 애가 아니여서 다들 처음엔 휴가를 온거라고 추측했었다. 헌데 그가 돌아온 3일후 그의 물건들이 속속 도착하자 다들 입을 딱 벌렸다.
“딸, 말해봐. 이거 엄마가… 네가 세집 잡았다고 해서… 보내준… 전기밥솥이랑 이불… 침대세트잖아… 이게… 이게 다 뭐야?”
나는 잔뜩 화가 나있는 언니를 의식했다. 살면서 이렇게 화를 내는 언니의 모습을 본 게 언제던가. 말수도 적고 화도 잘 안 내는, 꼭 말을 해야 할 경우에도 꾹꾹 참는 언니를 볼 때면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워낙 말을 조곤조곤 조리 있게 못하는데다 화가 나니 말을 더 버벅거리는 언니. 그는 말이 좀 어눌한 편이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였다. 언니는 해연이를 임신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실어증에 걸려 우리 모두를 얼마나 당황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후 치료를 해서 나았지만 예전처럼 말을 잘 못하고 지금 이 정도 하는 것도 하늘이 내려준 기적이였다.
“엄마, 지금은 내가 돌아온 게 싫은지 모르겠지만, 이제 두고봐. 엄만 내가 너무 고맙고 감사할꺼야. 내가 그렇게 만들꺼야.”
“미… 미쳤어? 너… 너 엄마… 죽는거… 보고 싶어?”
“아니, 그럴 리가. 난 엄마랑 잘 살아보려구 왔어. 진짜 잘 살아볼려구…”
해연이는 담담하게 대꾸하더니 한켠에 못마땅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모, 그런 눈으로 보지 마. 1년 만에 보는건데 내가 반갑지도 않아?”
“그래, 잘 왔어. 이모는 네가 보고 싶었어. 헌데 궁금해. 왜 갑자기 왔어?”
“그냥 오고 싶어서.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순간 나는 언니의 떨리는 시선을 보았다.
“김해연! 너… 엄마 허락 없이 돌아오지 마… 래일… 돌아가, 당장!”
“미안한데 엄마, 나 이제 안 가. 아니, 못 가!”
“해연아? 너… 너까지… 왜 이래?!”
어머, 언니의 목소리가 이렇게 컸어? 나는 억지로 언니를 쏘파에 눌러앉히고 나도 그옆에서 붙어앉았다.
“언니, 제발 진정해. 해연인 언니가 보고 싶어 잠깐 집에 온거야. 이제 집에서 며칠 푹 쉬고 나서 돌아갈거야. 거기에 좋은 직장두 있구 월급도 엄청 많이 받구 잘 나가는데 뭐하러 집에 돌아오겠어? 안 그래?”
“헌데… 이… 이 짐들은…”
“애가 워낙 돈을 많이 버니까 더 좋은 걸로 사놓으려구 집에 갖고 온거겠지. 언니가 사준거니까, 버리긴 아까우니까. 안 그래? 해연아?”
나는 해연이를 넌지시 응시하며 제발 내 뜻에 따라주라고 눈치를 주었다. 
“아닌데요. 이모, 나 진짜 돌아온거예요.”
“해연아, 너까지 왜 이래? 진짜 다들 왜 이러냐?!”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해연은 눈빛 하나만으로 나랑 텔레파시가 통하는 아이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언니다음으로 해연이를 사랑하는 건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린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이모랑 조카였다. 해연이랑 동갑인 내 딸 서연이는 그게 늘 서운하다고 대놓고 내 앞에서 불만을 쏟았다. 엄마가 진짜 내 엄마 맞냐고.
헌데 언니를 바라보는 해연이의 표정은 진지했다.
“엄마, 나 사직했어.”
“뭐? 사직?!”
찰싹! 언니의 손이 해연이의 귀쌈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나도 해연이도 놀라 굳어졌다.
“언니! 지금 뭐하는거야? 미쳤어? 해연이가 언니한테 어떤 딸인데.”
“엄마, 미안해. 미리 말을 못한거 정말 미안해. 헌데 난 결국 돌아오기로 했어. 이건 내 선택이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할 말을 또박또박 다 하는 해연이를 보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게 언니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자 언니 자부심인 해연이란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해연이는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요, 너무 착해서 요즘같이 험한 세상엔 좀 걱정이 되는 스타일이였다.
헌데 대졸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해 산뜻한 출발을 한 그를 보면서 그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았다. 언니 앞에서 내색은 안했지만 나는 그가 내 딸이 아니고 언니 딸인 게 너무 부럽고 아쉽기까지 했다.
아무튼 처음 보는 해연이의 강경한 모습은 너무 낯설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나는 자리에 누웠지만 잠들 수 없었다.
방금전 해연이가 했던 말이 자꾸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엄마, 아빤 엄마를 떠났지만 난 엄마한테 돌아왔어. 이제부터 나만 믿구 나한테 의지해. 나두 엄마만 있으면 돼. 엄마만 있으면…”
해연이는 이참에 아예 집에 눌러앉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허나 내 생각은 언니의 생각이랑 다르지 않았다. 해연이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작은 도시가 아니였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연이를 설득해 되돌려보내리라 작심했다.
‘헌데 언니 부부의 리혼을 아는 사람은 우리 가족외에 거의 없는데 누가 해연이한테 이 사실을 알려줬지? 설마 서연이가?’
 
나는 문득 며칠전 서연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날 아침, 내가 출근을 서두르는데 서연이가 부수수한 얼굴로 자기 방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너, 또 밤샜어?”
“응, 창업이 어디 쉬운가. 엄마, 나 이제 거의다 온 것 같애.”
“저런, 엄마가 그 말 믿으라구?”
“그럼, 믿어야지. 엄마가 제 딸두 못믿으면 너무 가여운거 아냐?”
“터진 입이라구 말은 참 근사하다. 헌데 니가 뭘 안다고 창업씩이나…”
“그렇게 부정적이지만 말구 기왕 이렇게 된거 조금만 더 기다려봐.”
“3년을 기다렸어. 이제 뭘 또 더 기다리라는거야? 참, 나 이젠 너무 창피해서 친구들 만나기도 겁이 나. 내 친구 선미 아들까지 이번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 나만 꼴랑 남거든. 다들 자식들이 척척 취직두 잘하구 돈 벌어 효도한다는데 내 꼴은 이게 뭐야. 나 언제면 백수 딸 엄마라는 소릴 안 들을까. 휴우--”
“딱 1년 만 기다려보라니까. 헌데 엄마, 해연이한테 부모님 리혼한 거 말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뭐? 어른들 일이야. 관심 꺼.”
“그게 왜 어른들 일이야. 해연의 일이기두 하지.”
“천천히 말해줄꺼야. 무슨 좋은 소식이라고.”
나는 할 말을 참지 못하는 서연이가 은근히 걱정되여 한수 더 모를 박았다.
“너 어른들이 말하기 전에 선수 치지마. 알았어?”
서연이는 리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 그렇게 자식 생각한다는 어른들이 할 짓 못할 짓 다 저질러놓구 이제 와서 자식이 상처 입을까봐 걱정하는거, 너무 웃기구 리기적인 거 아니야?”
“야, 넌 말을 해도 꼭 그렇게밖에 못해? 네가 뭘 안다고 어른들 일에 참견이야?!”
“참, 나도 래일 모레 서른이야. 어린애 아니란 말이야. 내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해, 제발.”
“말 같은 말이라야 들어줄꺼잖아. 그래 니 나이 래일 모레면 서른이야. 그러니 이제 그만 속 썩이고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주라. 응? 제발 련애만 하지 말고 시집가란 말이야.”
“어으, 또 그 시집소리. 이제 슬슬 지칠 때두 됐는데 왜 이러시나. 나 평생 시집 안 간다고 몇번이나 말했어. 엄마 진짜 갱년기 심하시다. 엄마, 나랑 병원 가자. 응?”
“야! 다시 말하지만 해연이한텐 아무 소리하지 마. 알았어?!”
“와아, 살벌하다, 살벌해. 엄마 그러다 입이 돌아가시겠어.”
“뭐?”
“거울을 한번 봐봐. 엄마는 친구들이랑 아빠 앞에선 미소천사인데 내 앞에선 완전 악녀로 변해. 엄마를 보면 드라마에 나오는 악녀 캐릭터가 생각나.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이중적일 수가 있지? 내 엄마가 맞는지 의심되니까 우리 유전자검사나 해볼까? 엄마랑 나 전생에 원쑤였나봐…”
“뭐? 너 창업이구 뭐구 얼른 시집이나 가. 내 눈앞에 안 보이는 게 효도하는 거니까!”
“엄마가 그렇게 원하시는데 어떡하지? 나 평생 엄마랑 한집에서 지지고 볶고 그렇게 살껀데.”
“어우, 저 원쑤!”
 
아무리 별 볼일 없고 백수인 딸이지만 그렇게 엄마가 당부를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해연에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누구지? 하긴 이제 와서 그걸 따진들 뭐하랴 싶었다.
마음이 착잡해났다. 해연이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남 다 부러워하는 직장을 훌쩍 팽개치고 돌아온 건 참말로 무모한 짓이라고 따끔하게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3년동안 아무리 애써도 취직도 못하고 맨날 창업타령이나 해대는 딸 서연이를 보면서 그동안 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는 걸 의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에미 된 마음에 너무 속상하고 가슴이 아렸었다. 그래서 해연이의 갑작스런 환향을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었다.
 
허나 해연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란 걸 느끼는데 고작 두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언니는 해연의 옆에서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남편이랑 헤여지고 잠간 우울증 증세를 보였던 그의 얼굴이 예전처럼 밝아지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허나 해연의 어깨는 점점 처져만 갔다. 미대를 나오고 큰 도시의 대형광고사에서 잘 나가던 그가 막상 이 작은 도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월급이나 대우가 낮은 건 그런대로 참을 수 있는데 앞으로의 자기발전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너무 절망적이였다. 평생 엄마 옆을 지키려던 그가 깊은 고민에 빠진 건 그 무렵이였다.
생계를 위해 미대지망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면서 해연이는 이 일이 자기의 직성에 맞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시작한 지 한달도 못돼 접어야 했다. 광고회사에 취직했지만 림시직이고 아무 비전이 없어 그만두었다.
엄마가 걱정할가봐 그는 내색 한번 내지 않고 이런저런 일을 찾아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옷깃에 스며들고 락엽이 우수수 거리에 내릴 때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해연이가 서연의 뒤를 이어 마침내 ‘백수’의 훈장을 꿰찬 것이다. 믿던 기둥이 뿌리채 뽑히는 기막힌 상황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문득 얼마 전에 고인이 된 80대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친정엄마는 생전에 늘 자신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백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그때마다 다들 맞장 구를 치며 그게 당연한거 아니냐며 웃었었다. 그후 서연이가 ‘백수’ 의 계보를 이어갔을 때도 다들 별로 놀라는 기색은 아니였다. 워낙 남들이 다 가는 대학에도 못 갔으니 3년이 아니라 5년을 백수로 지낸다 해도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는 동정어린 시선이 지배적이였다. 헌데 이번에 세번째로 ‘백수’가 나타났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엄청 컸다. 마치 약속이나 하듯 다들 한결같이 선의적이지 않은 시선들이였다. 
제일 초조해하는건 언니였다. 이 모든 게 자기 때문인 것 같아 한사코 딸을 도시로 떠밀어보았지만 허사였다. 해연인 해연이 대로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떠날 념을 안했던 것이다.
“언니, 이젠 포기하고 해연일 받아주라. 응? 같은 백수지만 해연인 우리 서연이랑 달라. 해연인 자기 직성에 맞는 확실한 일을 찾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 언니만큼은 해연일 믿어줘야 해. 언닌 엄마잖아!”
내 말은 진심이였다. 잠간 갈 길 잃은 미아가 돼있지만 해연이는 언니나 가족들을 실망시킬 애가 아니라고 나는 거듭 강조했다. 헌데 언니가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넌 서연이두… 믿어. 해연이처럼.”
“뭐? 나도 그러고 싶지. 헌데 두 아이는 레벌이 달라. 백수라 해도 똑같은 백수가 아니란 걸 아니까 더 속상해.”
“속상한건… 서연이야.”
“그게 뭔 말이야? 서연인 뭔가 생각이란 게 없는 애야. 언니두 참,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알면서 그런 말이 나와?”
“니 딸… 얼마나 애쓰는데… 난… 보이는데… 넌… 안 보여?”
“참, 언니는 그걸 위로라고 해? 난 전혀 위로가 안되는데…”
“야! 니가… 엄마야?!”
나는 뭉클했다. 언니한테 서연이는 친딸이나 다름없었다. 결혼해서 우리 자매는 인차 아이를 갖지 못해 속앓이를 했다. 서로의 간절함을 잘 알기에 아이를 갖기 위해 그 쓰거운 한약을 천첩이나 먹었다. 그 피타는 노력이 하늘에 전해져 해연이와 서연이가 태여난거라고 우린 믿고 있었다. 헌데 모유가 없어 고역을 치르는 나에 비해 언니는 옷이 흥건히 젖어들 정도로 모유가 넘쳐서 서연이가 배를 곯는 일은 없었다. 그런 연유에선지 아주 어릴 때부터 언니는 서연이한테 각별했다.
나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딸이 늘 창피하고 속상했다. 대학에 갈 재목이 아니니 그동안 한푼두푼 아껴두었던 돈을 죄다 꺼내서 디자이너 공부를 시켜놨더니 반년도 못돼서 돌아와버렸다. 평생 하고 싶은 꿈이 아니니 포기했다는 게 리유였다. 그리고 벌써 3년째 백수의 삶을 즐기고 있는 서연이다.
‘언니가 내 마음을 알아?’
 
해연이가 집에 눌러앉은 지 1년이 훌쩍 넘던 어느 날, 갑자기 언니가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우리 애들 동업한대. 이게 말이나 되니?”
나는 속이 꿈틀했다. 한동안 둘은 시간만 나면 붙어다녔다. 서연이가 해연보다 가방 끈도 짧고 별로 머리 좋은 애도 아니라는 내 기준에 쫓아 나는 은근히 둘의 이런 변화와 행보에 그 어떤 기대를 걸고 있었다. 헌데 언니는 자기 딸 해연이가 서연이랑 있는 게 뭔가 탐탁치 않은 게 분명했다. 언니의 그 마음을 알지만 애들을 떼여놓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가 참 리기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건 그만큼 오랜 ‘백수’로 살아가는 딸이 해연이를 만나 뭔가 달라지길 바라는 내 마음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후유-- 언니, 미안해. 언니한텐 미안하지만 그래도 모르잖아. 서로 너무 다른 두 아이가 만나면 그 어떤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갈지. 이게 내 욕심인거 알지만 그래도 우리 애들 한번만 믿어주자. 응?’
나는 언니한테 아직은 모르니 일단 지켜보자는 말로 슬쩍 상황을 종료했다.
헌데 내 예상은 적중했다. 엄마들의 속을 팍팍 썩이며 ‘백수’의 삶을 즐기던 해연이와 서연이의 ‘반란’이 시작된 건 그 무렵이였다. 미대를 나온 우등생 해연이와 그냥 미술학원을 두루 다니며 그림에 어섯눈이나 뜬 서연이, 두 사람 다 좋아하는 일이고 그게 동업으로 이어지기만 한다면 나는 팍팍 밀어줄 생각이 있었다.
내 친구의 애들중에는 엄마가 입이 마르게 칭찬할 만큼 잘 나가는 애들이 여럿 있었다. 요즘은 뭐든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취직이 가능한 시대이다. 박사를 나오고도 좋아하는 직장에 취직을 못하고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어 우울증을 앓는 애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서늘할 때 많았다.
‘바랄 걸 바라자. 이제 그만 내 욕심을 접고 애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선처를 베풀자.’
나는 그걸 굳이 ‘선처’라고 꼬집어서 말하며 딸을 자극하군 했다. 서연이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체 대꾸를 안하고 맨날 창업이요, 체험이요 하면서 팽이처럼 돌아쳤다.
한창 련애할 나이에 근심이 가득하니 련애는커녕 그 흔하디흔한 미팅 한번 못하는 딸의 궁색한 모습을 보면서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도 되삼키군 했다. 그런 딸이 너무 안스럽고 불쌍했으니까.
요즘 녀자 나이 서른 쯤 되면 그럭저럭 적당히 봐줄 만한 좋은 나이이긴 하다. 헌데 늘씬한 키를 빼곤 남자애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만한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닌데다 멋 부리는 것도 사치라 여기며 맨날 똑같은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 서연이를 볼 때면 엄마인 내 걱정도 산그늘만큼이나 커져갔다.
‘저래서 시집은 가겠어?’
 
토요일 저녁, 나는 친구모임에 나가기 위해 서둘렀다. 벌써 5년째 이어져온 정기모임이였다. 남편의 저녁상을 준비해놓고 집을 나서다 말고 나는 아무 생각없이 벽에 달린 큰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속에선 한 낯선 녀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자로서 쉰살이란 나이는 매우 중요한 시점인 것 같았다. 제법 날씬했었던 몸매가 페경 후 눈 뜨이게 펑퍼짐해져 갔다. 이젠 뭘 입어도 옷티가 나지 않아 옷 한벌 사입는 것도 귀찮고 신경쓰였다. 문득 나는 쏘파에 앉아 낚시프로에 빠져있는 남편을 돌아보았다.
밥만 챙겨주면 남편은 아무 의견이 없었다. 안해가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기다리는 법도 없었다. 쉰살을 넘기면서 나는 가끔 내가 평생 이 남자랑 어떻게 부부로 살아왔지를 반문하군 했다. 이런 나의 심경의 변화에 남편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덤덤했다. 같이 늙어가면서 이 정도로 무심해도 되는지 물어도 남편은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같이 서서히 늙어가면서 부부가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알아? 서로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게 내버려두는거야. 그게 최고의 사랑이지… 참, 이 나이에 사랑타령하는거 영 쑥스럽구만 크크…”
하늘이 무너져도 만사태평인 사람이 남편이였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의 취미생활이였다. 이젠 처장이란 자리도 남에게 내주고 별 볼일 없는 자리에서 서서히 있는듯 없는듯 살아가는 삶! 그런 직장에서의 삶을 그는 엄청 만족해했다. 오랜 세월 부부로 살았는데 우리 부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게 신기하고 한심하기까지 했다. 이젠 성 쌓고 남은 돌마저 아닌 상황인데도 남편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다. 서연이가 이런 아빠를 완벽하게 닮아가는 것 같아서 나는 너무 어이없고 속상했다. 그런 나날이 몇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달리는 택시에서 나는 갑자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실 얼마전부터 이 모임에 나가는 게 은근히 싫었다.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다. 오늘도 례외는 아니였다. 허나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대뜸 친구들의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될 게 뻔했다. 그렇게 뒤담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정말 너무 싫었다. 가뜩이나 자식자랑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이 한두명이 아닌데 그런 그들한테 팍 기죽은 내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의 흥미와 재미를 유발시킨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본전도 못 찾는 상황이라 주저앉고 나왔지만 기분이 영 씁쓸했다.
작고 아담한 한식집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식사후 조용한 카페에서 차 한잔 하는 건 의례적인 코스였다. 헌데 식사할 때부터 찔끔찔끔 아파오던 명치끝에서 또다시 이상한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금 기다려봐도 점점 더 자주 오는 통증에 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가려구?”
대여섯명 친구들중에서 잘난 척하기로 소문난 지순애가 눈꼬리를 치켜들고 말을 건넸다. 방금전 밥을 먹는 내내 부동산회사 사장인 아들 자랑에 지나치게 열을 올려서인지 목소리가 영 푸석거렸다.
“속이 좀 더부룩해서…”
“그거 참 이상하네. 똑같이 먹은 우리는 다들 이렇게 멀쩡한데. 너 혹시 아까 내가 니 딸 얘기를 해서 삐친 건 아니지?”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다행이구. 난 그저 니 딸이 백수로 사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해본 소리였어. 내 친구의 딸이면 내 딸이나 마찬가지지. 너무 걱정돼서 한 소리란 걸 알지?”
‘알긴 뭘 알아? 너 여기에 와서도 그 백수 소릴 또 할거야? 그렇게 진심으로 걱정되면 잠자코 있는 게 날 도와주는거야. 지금 누굴 약 올리구 있어.’
지순애의 눈빛이나 말투에선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나는 갑자기 토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확 일어나 가버리고 싶은 걸 애써 진정하는데 옆에 앉았던 선미가 내 팔을 당겼다.
“조금만 앉았다 가자. 나도 오늘은 먼저 일어나야 하니까 우리 같이 가자.”
중학시절 3년 내내 내 ‘짝꿍’이였던 선미가 나의 불편한 심경을 읽은듯 다짜고짜 화제를 바꿔버렸다.
“우리 애들 얘기는 이제 그만해. 우리 자신들 얘기나 하자.”
지순애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와 선미를 번갈아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난 아직 우리 아들 자랑을 채 못했는데…”
제발 그만두라며 다른 친구들까지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순애는 잠간 주춤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손에 들었던 차잔을 갑자기 내려놓았다.
“아참, 너 심리치료사인지 뭔지 한다고 하지 않았어?”
“벌써 몇년째 하고 있는데 왜 그래? 새삼스레…”
선미가 나를 대신해 앞질러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내가 아무 리유없이 지순애한테 여러번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애써 담담한 척 웃어보였지만 이런 상태에 나는 정말 약했고 어쩔 바를 몰라했다. 그런 내 약점을 아는듯 지순애는 오늘따라 더더욱 내게 집착했다.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순애의 얘기에 바짝 긴장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넌 언제나 지적이구 멋있어. 난 너같은 친구가 있다는 게 나쁘지 않아.”
나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아직 그의 의중을 알 순 없지만 태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고마워. 그 말이 진심이라면야…”
“야, 어쩐지 니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다. 난 단 한번도 진심이 아닌 적 없는데. 내 말이 직설적이긴 해. 허나 우리가 남이야? 우린 몇십년 친구잖아. 이 나이에 뭔 말인들 못 받아줘. 안 그래?”
“듣자 듣자 하니, 넌 뭘 또 꼬집고 싶어서 안달이야?”
내 말에 지순애는 손사래를 쳤다.
“오해야 오해. 우리 사이에 오해라니. 정말 말도 안되는거 아니야?”
정말 어이없는 건 나인데 목소리는 지순애가 한수 우였다.
“그나저나 너 심리치료사 맞아? 그렇게 사람 마음을 몰라서야 그걸로 어디 밥 벌어먹겠어? 정말 진심으로 걱정된다니까. 호호호…”
그 말은 치명적이였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내 인내심이 갑자기 터진 골물처럼 폭발했다.
“너 터진 입이라고 할 말을 다하는데, 좋아. 이제 나도 한마디 하자. 난 니가 내 딸 얘기를 꺼낼 때마다 힘들었어. 그래도 좋게 봐주려고 했어. 너의 말처럼 우린 친구니까… 헌데 나중에 네가 자꾸 내 딸 얘기를 반복하는 게 너무 싫었어. 왜? 아무리 듣기 좋은 얘기도 세번 들으면 질리니까! 그렇게 온갖 잘난 척 다 하는 네가 그걸 모를 리 없구. 그럼 뭐야? 왜 그렇게 남의 아픈 가슴을 팍팍 찌르는데? 왜?!”
그 말을 할 때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률이 일었다. 선미가 내 옷깃을 당겼다.
“너까지 왜 이래? 이러다 너희 두 사람 진짜 싸우겠다.”
“그래, 이참에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보지 뭐. 안 그래도 손이 근질거려 죽는 줄 알았는데.”
내 말에 지순애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너, 지금 나랑 싸워보겠다는 거야?!”
“그래 다들 자릴 비켜줄래?!”
“어머, 무섭다. 진짜 단단히 삐쳤구나. 난 진심으로…”
“그만해! 사양할게! 너의 그 진심! 그래, 우리 딸 백수야. 한달도 아닌 몇년씩이나 그렇게 사는 딸을 보면서 엄마 된 내 마음이 어떤지 알어? 마음이 아파! 나 너무 아파서 본의 아니게 내 딸 구박도 많이 해. 허나 참아야 했어. 기다려야 했어!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내 딸 마음은 오죽할가 싶어서… 헌데 니가 뭔데? 니가 대체 뭔데 그런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해?!”
“난 그저…”
“너의 아들 얼마나 잘난 아들인지 알아. 허나 우리 서연이도 내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야!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 우리 이제 얼굴 보지 말자. 우리가 앞으로 엮일 일은 죽어도 없을 거야. 그러니 제발 나나 내 딸한테서 신경 꺼! 알았어?!”
 
그날 이후, 나는 친구들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화김에 한 말이 아니였다. 선미가 여러번 자리를 만들어 화해를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수십년간의 우정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져가는구나 싶어 잠간 기분이 쓸쓸하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였다. 선미랑 다른 친구들에겐 조금 미안했다.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다.
그렇게 모든 게 서서히 잊혀져가는  듯했다. 헌데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생길 줄이야.
 
“엄마, 아빠, 두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주말 아침, 모처럼 셋이 나란히 앉아서 아침을 먹는데 불쑥 서연이가 입을 열었다.
“뭔데 이렇게 표정이 진지해?”
“역시 아빠 눈은 정확해. 사랑해, 아빠.”
“그거 알지? 아빤 영원히 니 편이란거.”
“알지.”
“돈이 필요하면 말해, 언제든지. 아빤 이 집을 팔아서라두 도와줄꺼야.”
“참, 부녀지간에 죽이 척척 맞아서 좋겠네. 헌데 당신은 지금까지 서연이가 말아먹은 돈이 얼만지 알기나 해?”
“정확한건 몰라. 허나 자식이 뭘하겠다면 부모로 생겨서 그 정도 밀어주는 것도 당연한거야. 우리 서연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당신이 더 잘 알잖아. 헌데 왜 제 딸을 그렇게 못 믿어?”
“믿게 해야 믿지.”
“여보?”
“너무 오냐오냐하는 거 서연이한테 전혀 도움이 안되요.”
“그만해. 서연아, 너 할 말이 있다며, 해봐.”
“나중에…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내 말이 너무 심했나? 아니, 그래도 할 말은 하고 따질 건 따져야지.’
결국 조금 망설임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너 요즘 해연이랑 맨날 붙어있더니 고작 생각해낸 게 문신이였어?”
내 말에 서연이는 놀라서 소리쳤다.
“엄마 그걸 어떻게 알았어?”
“문신이라니? 그게 뭔 소리야?”
“여보, 당신 딸이 지난 몇년동안 그 고생을 해서 선택한 게 뭔지 아세요?”
“서연아, 아빠 생각에도 문신, 그건 아닌 것 같구나.”
“아빠, 그게…”
“장서연! 너 언제까지 엄말 속일 생각이였어? 그래도 해연이가 너보다 착해. 내가 따져묻자 이실직고하더라. 맨날 창업 창업하더니 기껏 선택한 게 문신이라니. 너 정말 이 정도밖에 안되는 애였어?”
“엄마, 그 일,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야.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나 너한테 너무 실망했어. 비싼 돈 들여서 그림을 배웠는데 기껏 생각해낸 게 문신이라니? 그것도 녀자애 둘이서 대체 너희 두 사람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뭐? 오픈 준비까지 다 마친 상태라구?”
“그래요, 엄마. 엄마가 반대해도 소용없어. 미리 말씀 못드린 건 죄송하구 미안해. 허지만 나는 할거구. 열심히 해서 반드시 성공할거야. 그래야 그동안 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온 나 자신한테 덜 억울할꺼잖아.”
“뭐? 그래서 이렇게 막 나가겠다?!”
“엄마,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그게 그거지. 결국 지금 엄마 말 완전 무시하고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거잖아. 그러면 그동안 너의 뒤바라질해온 이 엄마는 뭐가 되니?! 너만 힘들었어? 이 엄마도 너무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엄만 내가 뭘해도 안 믿잖아! 엄마가 얼마나 날 무시하는지 나두 알아. 그래서 엄마한테 미안해. 허지만 나 이제 찾았어.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돈두 벌 수 있는 일인데 엄마가 한번만 믿고 따라주면 안되겠어?!”
“꿈 깨! 돈을 못 벌어도 제발 니 직성에 맞는 정상적인 일을 하란 말이야. 문신? 그건 절대 안돼! 하지 마!”
“여보, 제발 그만해!”
“이제부터 나 너의 일 간섭 안할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문신을 하든 거리 청소를 하든 니 인생 니가 알아서 해!”
“알았어! 그 약속 나 반드시 지킬게! 아빠, 엄마, 미안해!”
나도, 서연이도 격해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였다. 단위에 출근해서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서연이도 온종일 방안에만 처박혀있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내 폰에 이런 문자가 떴다.
“연연 문신방 오픈!”
해연이랑 서연이가 자기들 이름의 뒤글자를 따서 문신방을 오픈한 것이다. 나와 언니는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하다가 그만두겠지 하는 생각에 일단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 오픈을 계기로 서연이는 아예 문신방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그가 그런 오기로 얼마나 버티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헌데 그 봄이 지나서 여름이 오고 다시 락엽이 거리에 내려앉는 11월이 오자 상황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비껴갔다.
그날, 서연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나는 해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함께 비빔밥을 시켜놓고 나는 잠간 서연의 생각을 했다. 너무 보고 싶었다. 딸을 못 본 지 한참 됐다. 바쁘다는 핑게로 서연이는 오픈한 뒤 단 한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가끔 밖에서 아빠랑 만나는 눈치였지만 나한텐 절대 련락하는 법이 없었다.
나는 기다렸었다. 그가 스스로 그 일을 접고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를. 해연이가 말했다. 현재 서연인 잘해내고 있다고. 서연이가 가게의 보스이고 자신은 보스 밑에서 일하는 일군이라고.
“이모, 서연이 잘 지내요. 아마 래년 이맘때면 2호점도 오픈하게 될 거예요.”
“그게 정말이야? 장사가 그렇게 잘 돼?”
“그럼요. 얼마 전에 투자자도 생겼는걸요.”
“뭐? 투자자? 그게 누군데?”
“있어요. 그렇게 궁금하면 한번 와보세요. 직접 보시면 딱 짐작 갈텐데…”
“아니야. 그냥 소식을 들었으니 됐어.”
“이모, 서연이 변했어요. 가게를 오픈한 후 얼굴이 밝아지구 몰라보게 이뻐졌어요. 몸매야 워낙 좋은거구. 따르는 남자도 엄청 많아요.”
“그럴 리가? 헌데 요즘 문신하는 남자들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니야? 그런 남자를 잘못 사귀면 인생을 완전 망치는 수도 있어.”
“이모, 서연이가 얼마나 야무진데요. 서연이를 믿어요. 아참, 또 한가지 빅뉴스 있는데… 아직은 비밀이라서…”
“비밀? 어서 말해봐. 너무 궁금하니까.”
“안돼요. 서연이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헌데 너 그 표정은 뭐야? 혹시 우리 서연이가 사고쳤어?”
해연이가 끝까지 함구하는 바람에 나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헌데 서연에게선 아무 소식도 없었다. 결국 내가 참지 못하고 문자를 보냈다. 헌데 서연이가 내게 전화를 걸어올 줄이야.
“엄마.”
“서연아, 엄마야.”
“미안해.”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후회하고 있었어.”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이니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서연의 젖은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
“엄마.”
“그래, 엄마 듣고 있어.”
“저 남자친구 생겼어요.”
“뭐?”
그제야 해연이가 말한 그 빅뉴스가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그 사람 언제 보여줄꺼야?”
“다음 주 금요일에.”
“뭐?”
“저희 두 사람 생각인데, 량가 부모님을 모시고 정식으로 인사드리려구.”
“그럼 그전엔 얼굴도 못 본다는거야?”
“암튼 그걸로 상견례를 대신하고 나면 저희 두 사람 결혼식 대신 제주도에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아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경우가 아닌 건 알겠는데 그 친구 엄마가 엄청 반대를 해서 우리끼리 그렇게 하기로 했어.”
“그 집 엄마가 반대를 하다니? 왜? 내 딸이 어디가 어때서 반대를 해?”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이 나보다 월등해요.”
“그렇게 대단한 집안이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단 내가 그 사람 좋아한다는 게 중요하지.”
나는 서연이의 배포에 어지간히 놀랐다.
“엄마는 그 집 엄마가 그렇게 반대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 넌 괜찮아?”
“응, 결혼은 우리 두 사람이 하는거니까…”
장소는 다시 문자로 보내준다며 서연이는 폰을 껐다. 아직 물어볼 게 많은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꺼버려서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내게 참 쌓인 게 많은가 보다 싶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서연이는 훨씬 더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아서 갑자기 가슴이 짠했다.
 며칠후, 나는 서연이가 사귄다는 남자친구 김군에게 데이트를 요청했다. 물론 해연이가 서연이 모르게 약속을 잡아주었다.
해연이를 통해 서연이가 만나는 남자가 지순애의 아들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만 기절초풍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그날 이후, 우린 단 한번도 얼굴을 본 적 없었다. 헌데 그런 우리가 어찌 사돈이 된단 말인가?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해연이가 두 사람에 관해 속속들이 얘기해주었다. 서연이한테 2호점을 제안한 것도, 그 투자자도 다름 아닌 서연의 남자친구 김군이였다. 두 사람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한 지 1년 쯤 됐다. 김군이랑 사귀면서 서연은 자신감을 찾았다. 일과 사랑, 두마리 토끼를 다 얻으면서 서연이는 늘 엄마생각을 했다고 했다…
 
대지에 따스한 해살이 가득 내려앉던 날, 강변둔치에서 나는 미래의 내 사위가 될 김군을 만났다. 훤칠한 키꼴에 준수한 외모… 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미남이 서연의 남자친구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지순애의 아들이 이 정도로 괜찮을 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아들을 둔 엄마는 좀 잘난 척해도 괜찮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순애를 보면 죽어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헌데 그 아들은 엄마랑 완전 딴판이였다. 너무 괜찮은 젊은이였다. 나는 지순애한테서 어떻게 이런 아들이 나왔는지 정말 신기했다.
우리는 강변을 따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다섯살이였던가? 아주 어렸을 때 한두번 봤던 꼬맹이가 어느새 30대초반의 의젓한 젊은이로 변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엄마랑 나, 썩 좋은 사이가 아닌 걸 알고 있지?”
“예.”
“엄마가 서연이가 내 딸인 거 알고 반대를 한건가?”
“예. 제가 폰에 있던 서연의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그날로 바로 서연에 대해 다 알아보셨더군요.”
“놀랐겠네. 나두 엄청 놀랐는데.”
“예. 세상이 참 좁다고. 저랑 인연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어요.”
“그래서? 그래도 엄마 말인데 무시할순 없잖아.”
“엄마께 말씀드렸어요. 저를 믿냐구?”
“그랬더니?”
“믿는대요. 그래서 절 믿고 제가 사랑하는 녀자를 받아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우시는거예요. 우시는 엄마를 보니 불효를 짓는 기분이 들었어요. 가슴이 아팠어요. 겉으론 강해보여도 단순하고 마음이 엄청 여려요. 말이 직설적이고 차가워도 내 사람이다 싶으면 하늘의 별도 따주실 사람이 엄마인걸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서연이와 저는 어머니 두 분이 축복해줄 때 정식으로 식을 올리기로 했어요.”
나는 듬직하고 선한 눈빛을 가진 김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고마워. 우리 서연이의 손을 잡아줘서.”
“제가 아무리 잘해준들 어머니만큼 하겠어요? 서연이를 만나면서 점점 더 이 녀자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렇게 예쁜 천사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너무 고마웠어요.”
나는 아주 잠간 지순애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자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건 누가 봐도 반칙이였다.
“헌데 난 그게 궁금해. 김군은 우리 서연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
“어쩜 우리 엄마랑 똑같은 질문을 하세요? 어머니도 서연이가 저보다 많이 부족하다 생각하세요?”
“내 딸이지만 그건 사실이니까.”
문득 김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점 없는 파아란 하늘에선 이름 모를 작은 새 두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고 있었다.
“어머니, 저기 하늘을 나는 저 새들을 보세요. 저 애들이 저랑 서연이에요. 전 그냥 좋아요, 서연이가. 제 눈엔 서연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녀자로 보여요. 제 나이 서른에 처음으로 제 가슴을 뛰게 만든 녀자가 서연이였어요.”
나는 그의 진심어린 고백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와 서연인 저 새들처럼 자유로운 삶을 원해요. 보세요. 저 새들도 저렇게 하늘을 날면서 비바람도 만나고 천둥번개도 만나겠죠. 허지만 그런 걸 감수하면서도 서로에 의지해 비상을 즐기는거잖아요. 저게 왜 저 새들만의 일이겠어요? 어머니. 저희 두 사람 자신 있어요. 잘살게요…”
내 눈에서 예고도 없이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이였다.
언제부터였을가. 내 눈에 서연이는 그저 엄마의 속을 팍팍 썩이는 미운 오리새끼요, 잘난 애들로 차고 넘치는 이 세상의 틈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엄마의 아픈 새끼손가락이였다. 헌데 그런 서연이가 이렇게 멋진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할 만큼 엄청난 안목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다.
“서연이가 그러더군요. 자기한텐 꿈이 있다고. 그 꿈은 잘 살아서 엄마한테 효도하는 거라고. 그게 30년을 키워준 엄마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서연이가? 우리 서연이가?”
김군은 고개를 힘있게 끄덕여보였다. 나는 이제 곧 내 사위가 될 김군의 준수한 얼굴을 정답게 바라보며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서연의 남자가 된 증표로 저 서연이한테 약속했어요. 서연의 꿈이 이제 저랑 서연이의 꿈이라고. 어머니, 저도 서연이랑 함께 서연이의 그 꿈을 이뤄드릴게요…”
나는 이 순간의 감동을 절대 못 잊을 것 같았다. 이 남자라면 이젠 서연이를 내 마음속에서 아무 걱정없이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김군, 내가 한번 안아봐두 돼?”
김군은 웃으며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어머니, 제가 안아드릴게요.”
“그… 그럴래?”
말은 그렇게 해도 너무 쑥스러워서 나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롱담이야. 나중에 꼭 해줘. 내가 주책이지? 미안!”
김군은 내 말에 소리 내서 웃더니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전 이 세상에서 저의 엄마가 제일 창피할 때 있었어요.”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저의 엄마랑 어머니, 두 분 자주 만나셨으니까 아실 거예요. 사춘기때, 전 엄마가 내 엄마인 게 너무 창피하고 싫어서 엄마를 학부모회의에도 못 가게 했어요. 제가 최고가 아닌데 엄만 맨날 제가 최고라고 떠들고 다녔거던요. 헌데 서연이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였어요. 서연이가 그러더군요. 자기 자식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믿는, 믿어주는 그런 엄마가 최고의 엄마라고. 친구들 앞에서까지 잘난 척 하던 저를 되돌아보게 한 것도 서연이였어요. 오래동안 밖으로만 돌며 가족에 소원했던 절 가족한테 돌아가게 만든 것도 다름 아닌 서연이였어요…”
 
김군과 헤여진 뒤, 나는 홀로 강변도로를 걸었다. 갑자기 서연이가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서연아, 엄마는 널 믿지 못한 게 아니라 내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던거야. 허나 그걸 아니? 엄마에겐 네가 하늘에서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란 걸… 사랑해. 그리구 미안해…’
나는 머리를 들어 허공을 날아예는 이름 모를 새떼들을 보았다. 적어도 백여마리는 될듯 싶었다. 아득한 창공을 가르는 새떼들을 따라 내 마음도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며칠후 있게 될 상견례가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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