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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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실면하는 밤의 저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
2019년 07월 17일 10시 01분  조회:362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실면하는 밤의 저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

김재국

 

나 이제는 정말 늙었는가 보다. 젊었을 때도 많이 실면했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더욱 잦은 빈도로 실면한다. 요즘은 잠이 잘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겨우 찾아든 잠을 일찍 깨기까지 해서 하루종일 기분이 통 말이 아니다. 물론 나의 실면은 하루이틀에 생긴 것이 아니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던 고중 때도 그랬고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그랬고 한국이나 일본에서 류학할 때도 그랬다. 

일본에서 박사론문을 쓸 때는 매일 수면부족으로 해서 생기는 초조와 불안 때문에 거의 신경쇠약증 변두리에서 헤매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밤 늦게 잠드는 버릇을 역리용해서 밤을 밝히며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했지만 나이 60을 바라보는 요즘에 이르러서는 지금 처한 대학교라는 특수한 환경과 이미 쇠퇴해진 체력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심각한 수면부족 때문에 나는 이미 두번이나 아침 8시 5분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제때에 학교에 출근하지 못한 황당한 실수를 범했다. 그 이틀은 모두 새벽 3시에 겨우 잠들어서 눈을 떠보니 이미 8시 반이였다. 요즘에는 두번 다시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이튿날 아침에 수업이 있는 전날 저녁이면 핸드폰에 알람을 설정해놓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모처럼 질 좋은 알람시계까지 사서 머리맡에 놓고 잔다. 

그런 날 저녁이면 찰칵거리는 알람시계 초침소리에 가뜩이나 예민한 나의 신경은 더욱 곤두서서 마치 환한 해빛 아래에서 전신을 로출한 채 찬바람을 맞으며 누워있는 기분이다. 

“어때요? 요즘은 잠이 잘 와요?” 

평소 내가 수면부족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안해는 매번 나에게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나의 수면에 대한 문안부터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 습관처럼 최근에 자기가 인터넷이나 여러 책들을 보면서 수집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나 비방 같은 것들을 알려주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그 무슨 술에 구기자를 담궈서 하루에 한잔씩 마시면 좋다느니 대추와 생강을 썰어서 뜨거운 물에 담궜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엽차처럼 마시면 좋다느니 양파를  반쪽으로 썰어서 머리맡에 놓고 자면 좋다느니… 어느 하루는 무식한 촌아낙네처럼 식칼을 베개 밑에 놓고 자면 좋다는 권고까지 해왔다.

언제인가 병원에 가서 의사를 보였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실면증은 일종 신경이나 심리와 관계되는 병이기 때문에 실면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잘 알아내서 그것들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나의 실면증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렸다. 왜냐 하면 나의 실면증의 근원은 아버지의 잠꼬대이고 아버지 잠꼬대의 근원은 또 전쟁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 근원들이 다 사라지고 없는데 이제 어디에 가서 그 근원을 다스린다는 말인가! 아버지의 잠꼬대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나는 정말 할 말이 많다…

잠꼬대는 잠을 자는 상태에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잠꼬대를 하는 당사자보다 듣는 사람이 더 괴롭고 힘들기 마련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나는 체험으로 조금 알고 있다. 옛날 아버지가 바로 자주 잠꼬대를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잠꼬대는 우리들이 일상에서 가끔씩 목격하는 잠꼬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고 유별했다. 잠꼬대를 하실 때 아버지는 그냥 입안으로 적당히 웅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당금 숨이 넘어갈 듯 단말마적으로 고함을 치기도 하고 악을 쓰며 사나운 짐승처럼 누군가를 욕하고 때리는 시늉까지 했다. 그 소리에 놀라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새웠는지 모른다. 

독방을 쓰는 지금 아이들과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와 한 정주칸에서 같이 잠을 자야 했던 나는 한밤중에 어머니가 일어나서 쪼크린 모습으로 잠꼬대를 하시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우는 모습과 아버지의 가슴을 아이처럼 다독여주시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다.  한달에 두세번씩 주기적으로 발작하는 아버지의 잠꼬대 때문에 나는 한때 아버지를 무서워했을  뿐만 아니라 싫어하기까지 했다. 

내가 아버지의 잠꼬대가 몽유병의 후유증이라는 것과 그것이 아버지가 경험한 전쟁과 관계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개 중학교 때였다. 그때 어머니가 신세타령하듯 걸핏하면 지나온 과거지사를 들먹이며 아버지의 흉을 봤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결혼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촌병원의 약제사였고 항미원조전장에서 다리를 상하고 돌아온 3등 상이군인이였다. 농촌에서 막로동하는 농민들과는 조금 우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촌병원 약제사라는 직업에 1년에 한번씩 현민정국으로부터 내려오는 상이군인보조금도 얼마간 받는다는(아버지는 다리에 파편이 박혀있었지만 절단수술은 받지 않았다) 것 때문에 어머니는 처음부터 별 거부감이 없이 아버지의 청혼을 수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와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림을 차리고 보니 아버지의 허물은 당초 걱정했던 다리가 아니라 몽유병이였다.

어머니와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되여 그동안 가까스로 감추어왔던 아버지의 몽유병은 그만 여지없이 들통나고 말았다. 신혼밤을 치른 지 며칠 안되여 어머니 곁에서 조용히 주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뛰쳐 일어나 “적들이 쳐들어온다-!”고 소리치며 팬티바람으로 마을 뒤산으로 뛰여올라갔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버지가 앓고 있는 병이 몽유병임을 알리 없는 어머니는 정신병환자에게 사기결혼을 당한 줄로 알로 이튿날 눈물을 흘리며 친정으로 달아났다. 그 뒤 마을 어른들과 주변 친척들이 나서서 아버지의 몽유병에 대해 해석하고 설명해주어서야 어머니는 겨우 아버지에게로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거의 일주일이 멀다 하게 발작하는 아버지의 몽유병은 고스란히 어머니 혼자 감내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늬들 애비의 몽유병이 전쟁으로 해서 생긴 것만 아니였어두 나 그때 친정에서 되돌아오지 않았을 거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생긴 병이라는데 나 몰라라 등을 돌릴 수는 없었지…”

매번 이런 말을 반복할 때면 어머니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으며 훌쩍이곤 했다. 그 눈물이 아버지에 대한 동정의 눈물인지 후회의 눈물인지 아니면 원망의 눈물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평소 너무나 말씀이 적으셔서 사람들로부터 새기(색시=함경도방언) 같다는 말까지 듣는 아버지였지만 일단 술만 한두잔 드시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당신의 가슴 속에 무겁게 담고 있던 전쟁담을 하나하나 꺼내군 했다. 어머니는 그러시는 아버지를 언제나 말로 취기를 깨운다며 원망하셨다. 

18살 젊은 나이에 처음으로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하여 전장에 나갔다가 어느날 밤 공주령 어느 다리 밑에서 적들이 쏘아댄 포탄에 맞아 몸체에서 떨어져나간 누군가의 허벅다리를 밟고 넘어진 것이 일생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의 시체였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언제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피로 얼룩져있었다.

그런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을 신물나게 들어온 어머니는 “아이들이 좀 제대로 잠이나 자게 불 끄고 어서 주무시라!”고 옆에서 끝없이 바가지를 긁어댔고 그것이 노엽다고 아버지는 또 어머니에게 마구 폭언을 퍼부어대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면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아들 다섯이나 낳아 키운 어머니의 배짱도 두두룩해져서 아버지에게 호락호락 굽어들려 하지 않았고 그렇게 네 옳니 내 옳니 옥신각신하다 보면 다들 잠자는 깊은 밤중에 점점 언성이 높아져 중학교에 다니는 형들이 방에서 뛰쳐나와 싸움을 말리고 나는 겁나서 옆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낮에 병원에 출근하여 약방에 계실 때면 말 한마디 없는 착하고 어진 ‘양’이였지만 밤이 되여 술이라도 드시면 피비린내 나는 전쟁담과 잠꼬대로 당신을 혹사하고 식구들을 괴롭히는 사납고 포악한 호랑이로 변하군 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언제나 낮이면 해빛이 잘 들고 화기애애한 천당이였지만 어둠이 깃든 밤이면 공포스러운 전쟁에 대한 아버지의 끝없는 추억담과 악몽으로 살벌한 ‘지옥’이였다. 

그래서 나는 낮과 밤에 따라 전혀 다른 두 얼굴로 변하는 아버지 앞에서 어려서부터 존경과 증오라는 판이한 감정적인 갈등을 느껴야 했고 사랑과 혐오의 이률배반으로 항상 방황하고 괴로와해야 했다.

  “아-!  앗-!”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한창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깊은 밤이나 새벽녘이면 이렇게 잠꼬대를 하시군 했다. 그 소리는 때로는 승냥이의 울부짖음 소리 같기도 했고 때로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달퍼하고 슬퍼하는 흐느낌소리나 통곡소리 같기도 했다. 그런 소리에 놀라 깨여나면 나의 달콤한 꿈은 산산이 쪼박나서 더는 다시 불러올 수 없었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란 온통 칠흑 같은 어둠과 뒤산 무덤가에서 번뜩이는 귀신불 같은 푸른 불빛만이였다. 그럴 때면 나는 온몸이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이불을 숨막히게 덮어쓰고 바들바들 몸까지 떨면서 새날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버지의 수많은 전쟁체험담 중에서 지금도 나의 기억속에 영화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다리에 부상을 입은 그 장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많고많은 악몽들 중에서 그 악몽이 가장 무서운 악몽이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매번 그 일을 회억하실 때면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세상에 천명이라는 게 확실히 있다!”는 말씀을 꼭꼭 하셨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숙명론자처럼 당신의 생명은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고 늘 말씀했다. 혹시 아버지는 당신이 서울 근교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던 그 한순간의 운명의 뒤바뀜으로 해서 누구보다 깊고 투철하게 운명이라는 낱말의 진의를 깨쳤는지도 모른다. 그 날, 서울 근교에서 미군과 한판 치렬한 공방전을 치르고 난 뒤 전장은 일시 소강국면에 처했다. 총소리가 뜸해지자 아버지와 전차를 모는 운전기사는 어느 담장 밑을 찾아 잠간 휴식을 취했다. 아버지는 자리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두 다리를 펴고 자리에 누웠고 운전기사는 곧게 앉은 자세로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운명은 바로 그 순간에 저승과 이승으로 갈라졌다. 아버지가 자리에 눕는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적군이 쏜 눈먼 포탄 하나가 아버지와 운전기사가 있는 자리 바로 옆에 날아와 터졌다. 순간 아버지는 다리에 중상을 입었고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운전기사는 그 자리에서 비명횡사했다. 

“내가 그때 피곤해서 자리에 눕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지! 그런데 하늘은 그 날 그 순간에 내가 피곤을 느끼게 했고 자리에 눕게까지 했지! 나의 목숨은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건져진 게야!…”

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건진 생명이였지만 아버지는 밤마다 찾아드는 전쟁의 악몽 때문에 언제 한번 평화롭게 발편잠을 주무시지 못하고 사셨다. 결국 아버지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지 3년이 되던 해의 어느 날  밤에 주무시다가 갑자기 돌아가고 말았다. 혹시 아버지는 운명하시는 그 날 밤에도 꿈속에서 적들과 치렬하게 싸우셨는지도 모른다. 셋째형님의 말에 의하면 한밤중에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방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서 건너가 보니 아버지께서 이미 운명하셨더라는 것이였다. 운명하시던 그 날 밤, 아버지는 악몽 속에서 중국 국내전쟁을 치렀을가 아니면 항미원조전쟁을 치렀을가? 나는 때로는 이것마저 궁금하다. 젊었을 때 아버지는 이 두 전쟁을 다 경험하셨다…

안해로부터 요즘 내가 실면으로 더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얼마전 북경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려서부터 나의 실면증 때문에 새벽잠을 자주 깨야 했던 딸은 나 때문에 자기도 ‘질’이 있는 깊은 잠을 지금도 못 잔다면서 이따금 나를 원망하군 한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가? 딸은 체험을 통해 수면부족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 알기라도 한 듯 퍽 동정에 어린 어조로 나에게 실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아빠, 아빠의 실면증 근원이 할아버지 잠꼬대라고 하셨지요? 그럼 의사의 말처럼 그 근원으로 다스려야 하지요! 아빠, 청명도 곧 다가오는데 돌아오는 청명에는 고향에 돌아가서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가 제사를 지내면서 한번 빌어보세요. 혹시 할아버지께서 지금도 저승에서 전쟁의 악몽을 꾸면서 잠꼬대를 하고 계실지 누가 알아요. 그 소리가 밤마다 아버지의 귀에 들려오는 거예요.”

딸의 말이 너무나 황당하게 들려와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냥 웃을 일만도 아니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향을 떠난 지난 37년 간 아버지는 매일 나의 곁에 계셨던 것 같다.  혹시 딸의 말처럼 돌아오는 청명에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서 아버지의 군혼(軍魂)을 위로해드리면서 전쟁과 아버지의 부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오면 그 잠꼬대소리가 들려오지 않을지 누가 알겠는가! 

출처:<장백산>2017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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