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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네 콩이야기
2020년 11월 06일 10시 28분  조회:644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혜나네 콩이야기

김홍남


서울에서 생활한 지 근 20년째 되던 어느 하루,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 지방으로 내려오라는 안해의 ‘불호령’에 나는 그동안 동거동락했던 직장 동료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서 충북 혁신도시로 가는 뻐스에 몸을 실었다.
얼마전, 안해는 외동딸의 이름을 따서 〈혜나네 콩이야기〉라는 가게를 차렸다. 그런데 주방에서 일하던 아줌마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일손이 딸린다면서 인건비도 아낄겸 내려와서 좀 도와주면 어떻겠느냐는 청을 보내왔다.
10년 넘게 주말부부로 살아왔던 터라 안해의 제의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20년 넘도록 국가미용관리사로만 일해온 내가 과연 식당 운영이라는 낯선 일을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였다.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안해랑 같이 식당을 운영할 거라고 말하자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였다.
우선 딸애부터 반대해나섰다.
“아빠, 서뿌른 결정은 금물이예요. 엄마랑 같이 일하면 엄마가 꼬박꼬박 월급을 줄 것 같아요? 아빠가 돈이 없으면 제 용돈은 누가 챙겨주나요? 엄마는 제 용돈을 끊은 지 오래됐다구요.”
직장 동료들도 “금슬 좋던 부부도 일단 함께 일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던데 그냥 여기서 일하는 것이 편할 거예요.”라며 조언해주었다.
심지어 소꿉시절 친구마저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겠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허둥지둥 찾아와서 안해와 함께 일하면 싸울 일만 남는다며 부부는 한곳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듣고 나니 더구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안해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오라고 할 때 곱다라니 내려오세요. 지금 내려오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요.”
안해가 ‘최후통첩’이나 다름없이 나오니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안해의 말 대로 오라고 할 때 내려가야지 아니면 나중에 꿔온 보리짝 신세가 돼도 어디 가서 한탄할 데조차 없을 거라는 예감에서였다. 한편 20년 넘게 이어온 직장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안해한테 가려고 뻐스에 몸을 맡기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녀자들한테나 익숙할 법한 설겆이, 홀서빙과 같은 일을 내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가? 직장동료와 친구들의 말처럼 같이 일하면서 안해랑 자주 다투지는 않을가? 그러다 정말 정이 멀어지면 어떡하지?’ 그렇게 기대와 걱정을 반반씩 안고 우리 가게가 있는 고장에 도착하였다.
나는 가게에 도착한 이튿날부터 주방에서 설겆이, 채소 다듬기, 바닥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 안해가 시키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나갔다. 딱 하루를 일했는데 저녁이 되니 삭신이 쑤셔났다. 이렇게 힘든 일을 여태 안해가 혼자서 도맡아했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짠해났다.
식당 운영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퍽 고된 일이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든 건 매일 필수로 해야 하는 두부 만들기였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은 어지간히 힘든 게 아니였다. 하루 동안 물에 불린 콩을 전기매돌로 간 다음 바가지로 갈아놓은 콩을 베천으로 만든 큰 주머니에 부어넣고 두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듯 콩물 진액을 짜면서 콩비지를 걸러내야 한다. 진액을 짜면서 콩비지를 걸러내는 이 작업은 온도에 맞춰 여러번 반복해야 콩비지를 깔끔하게 걸러낼 수 있다. 큰 쇠물통 우에 채반을 얹고 나서 짜낸 콩물을 부어넣은 후 40~50분 쯤 끓여준다. 그 다음 베천으로 된 흰 보자기를 나무틀에 깔고 새하얀 순두부들을 넣은 뒤 간수로 바다물을 반 소래 쯤 부어주면 응고된다. 조금전에 끓이고 남은 물을 양동이에 꼴딱 담아 틀 우에 얹어놓으면 물기가 빠지면서 두부가 서서히 굳어진다. 마지막으로 베천과 틀을 걷어내고 찬물을 부어주면 두부가 완성된다.
하지만 가끔은 두부의 모양새가 망가질 때도 있다. 콩물을 끓일 때 잠시만 눈을 팔아도 끓어넘칠 수 있기에 가스불 온도를 조절하며 노를 젓듯이 자주 저어줘야만 넘쳐나지 않는다. 모양새가 엉망인 두부는 순두부로 밖에 쓸 수 없기에 그런 날에는 다시 두부를 만들어야 했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재료가 바로 간수로 쓰이는 바다물이다. 안해는 차로 왕복 7시간이 걸리는 강원도 주문진 부근의 바다물만 고집했기에 가게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면 정오가 넘어서야 가게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가게가 쉬는 날이 없다보니 두달에 한번씩 바다물을 길으러 가는 날이 안해에게는 모처럼 찾아오는 ‘휴일’ 날이였다. 하지만 밤 늦게까지 일하고 나서 새벽같이 일어나 7시간 동안 운전을 해서 먼길을 오가야 하니 이 또한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가까운 인천이나 서해 충남 바다에 가라고 여러번 타일렀는데도 안해는 고집을 꺾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가게에는 메뉴가 꽤 많았는데 전부 두부와 관련이 있는 음식이였다. 그런데 이 모든 메뉴들이 안해가 직접 고안해낸 것이라고 하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안해는 처음부터 음식솜씨가 야무진 편은 아니였다. 손에 물 한번 묻혀본 적 없던 안해가 신혼초 처음으로 손님들을 모신 자리에서 느끼하기 그지없는 메기찜을 상에 올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당황케 했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 뒤 식당에서 일하는 와중에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료리솜씨를 익혀갔는데 요즘은 ‘장금이’가 울고 갈 실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은 정성이 반이라고 했다. 안해의 이런 정성 덕분에 두부가 맛 있다고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우리 가게는 거의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식당출입을 꺼려하는 고객들의 걱정에 안해는 또 배달써비스까지 추가하여 단골손님들이 집에서 안전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안해의 정성과 배려를 딛고 식당은 나날이 번창해갔다.
식당일은 전에 내가 해오던 일과 전혀 달랐다. 하루종일 분주하게 돌아쳐도 몸이 두개가 아닌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가게에 손님이 북적일 때면 혼자서 홀과 카운터를 봐야 했다. 또 메뉴마다 앞접시와 수저를 놓는 방식이 달라서 헛갈리기 일쑤였다. 특히 손님들이 몰려드는 점심, 저녁 때면 어찌나 바쁜지 정신이 헛갈릴 정도였다. 진작에 식당일에 길들여진 안해는 추호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직장동료와 친구들의 걱정 대로 안해와 싸우는 일도 잦았지만 웬만한 일은 지혜롭게 넘어가다 보면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 더 많았다.
우리 집은 가게와 5분 거리에 있었기에 한가할 때면 잠시 집에 들려 눈을 붙일 수 있는 ‘사치’도 있었다. 예전에 서울에서 출근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안해의 말 대로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안해는 “당신, 마누라를 잘 만나서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요즘 세상에 이런 늘어진 팔자 어디 있다구요?”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한달 쯤 지나니 나도 식당일에 나름 미립이 트기 시작했다. 제 집 가게라서 그런지 직장에서 일할 때와 달리 책임감도 배로 늘어났다.
요즘도 우리 부부는 장사를 하면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언성을 높이다가도 부부싸움이라야 칼로 물베기라는 아량으로 언제 그랬느냐는듯 금방 화해를 한다. 싸움 끝에 정이 붙는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부부의 정도 점점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 안해의 말처럼 우리 부부는 다툼을 즐기는 체질인가 보다. 세월의 부대낌으로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안해를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하지만 안해가 어떻게 변하든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은 전혀 변함이 없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알콩달콩 두부를 만들면서 우리만의 ‘혜나네 콩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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