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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같은 내 령감
2020년 12월 08일 14시 34분  조회:870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보따리 같은 내 령감

김춘실



엄마 또래들이 모여앉으면 항상 빠지지 않는 화제가 있었으니 바로 제 남편의 흉을 보는 것이였다. 엄마 친구들이 너나없이 남편 흉을 보는 모습에 나는 그저 실실 웃기만 했다. 처녀인 나로서는 도무지 리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지붕 아래에서 한이불 덮고 사는 남편이 저렇게도 미울 수가 있을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흘러 어느덧 나도 환갑나이를 넘기고 보니 그제서야 처녀시절에 남았던 그 의문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와닿으면서 저도 모르게 공감이 갔다. 요즘 들어 “령감이 미우니 소리없는 총이라도 있으면 쏴고 싶다.”던 엄마의 어느 친구 분의 말에도 얼마간 수긍이 갔다.
      
개인위생에 등한한 령감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꼭 우리 집 령감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소학시절, 개인위생을 검사하는 날이면 령감은 한쪽 발만 씻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씻은 발만 보여주어 얼렁뚱땅 통과했단다. 실로 허구픈 웃음만 나온다. 그 때의 그 습관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니 아마 안해인 내가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만 그 습관이 고쳐주기란 여간한 일이 아니다. 매일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발을 씻는 기본적인 위생습관을 남편은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독촉만 하지 않으면 며칠이고 할 념을 하지 않는다.
이 ‘불량한’ 습관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심해져갔다. 심지어 이제는 아무리 일러주어도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내가 더운물에 샴푸며 수건을 다 갖춰놓고 닥달해서야 성화에 못이겨 씻는 척한다. 요즘은 귀에 습진이 생겨 매일 약을 넣고 있는데 머리를 감으면 귀에 물이 들어간다면서 아주 당당한 핑게거리까지 만들어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만 나왔다. 그렇다고 그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였다. 싫은 대로 남편더러 량손으로 두 귀를 단단히 막게 한 후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머리를 감겨주었다. 나는 평생 같이 살면서 그런 대로 습관되여 어느 정도 봐줄 수 있다만 밖에서도 집에서 하던 대로 행동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근년에 손녀가 보고 싶어 천진에 사는 아들집에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 량주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아들집에 갔는데 글쎄 령감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손녀의 침대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순간 민망해서 며느리의 눈치를 슬쩍 살펴보니 며느리도 적잖게 당황한 기색이였다. 며느리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령감이 너무 밉살스러워 이마살이 찌프러졌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령감은 아들집에 가서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일관성이 있다고 해야 되나 싶은 게 어이가 없었다. 집에서도 함께 사는 식구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찾아볼 수 없이 자기가 편한 대로 아무 곳에나 양말을 벗어던지고 또 사용한 물건은 종래로 원래 위치에 놓는 법이 없더니 아들집에 와서도 그 모양새였다. 아들집에 머무르는 동안 그야말로 령감 때문에 만날 신경이 바싹바싹 곤두서니 여간 힘든 게 아니였다. 보다 못해 나는 살며시 령감한테 “여기서는 좀 행동에 주의를 돌리세요.”라고 귀띔을 했더니 글쎄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오히려 제 쪽에서 버럭 화를 내며 “여기도 앉지 말라, 저기도 앉지 말라. 그럼 날아다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기분이 잡친다느니 어쩌니 하며 란리였다.
‘어이구, 저 령감은 차라리 집이나 지키고 따라오지나 말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번 했지만 외출할 일이 있다 하면 먼저 채비하고 나서는 령감인지라 나로서는 속수무책이였다. 아들집에 있는 내내 나는 밉상스러운 령감 때문에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였다.
 
화를 잘 내는 령감

성질이 불같은 령감은 언제나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버럭 화부터 내는 편이다. 이런 령감의 성격 때문에 젊었을 적에 우리는 종종 얼굴을 붉히군 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 강산이 몇번 지나도록 령감의 불같은 성격은 여전하다. 사람은 늙으면 기력이 쇠해지면서 당연히 성질도 누그러들 것 같은데 령감은 다른 건 몰라도 그 성질머리 하나만은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래도 젊었을 적에는 내가 토라지면 슬며시 다가와 달래주는 멋이 있었고 다툰 후에는 서로 마주앉아 알콩달콩 ‘화해주’를 마시는 재미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랑만조차 야속한 세월에 좀이라도 먹은듯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고 했건만 령감은 말을 이쁘게 못하는 병에라도 걸렸는지 똑같은 말도 듣는 사람의 기분이 상하게 하는 재주가 남다르다.
며칠전에 있은 일이다. 령감은 나 보고 침실의 문고리가 고장 났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명심하느라 했는데 방문을 열면서 그만 고장난 문고리에 손을 댔더니 그걸 알아차린 령감이 단통 노발대발하며 언성을 높이는 것이였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는 령감이 너무 얄미워 맞서다보니 그 날 우린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그러고 나니 령감과 말도 섞기 싫고 얼굴도 보기 싫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령감은 가끔 밥상에 마주앉아 코물을 흘릴 때가 있다. 한번은 내가 얼른 코물을 닦으라고 일러주었더니 “알어!” 하고 짜증을 부리는 것이였다. “당장 입안에 들어갈 것 같아 알려주는데 왜 짜증을 내요?”라고 했더니 “지금 막 닦으려고 했어!”라며 소리소리 고함을 지른다. 그럴 때는 철부지 애들만도 못한 어른이라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엉덩이 무거운 령감
“일이 사랑이다”라는 말을 노래처럼 들려줬건만 령감은 늘 한쪽 귀로 듣고는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엉덩이 무거운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태껏 함께 살면서 령감이 자진해서 일을 찾아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령감은 오뉴월에도 손이 시려나는지 일을 시켜도 하는 둥 마는 둥 항상 건성으로 하는 척만 한다.
며칠전, 여름내 사용한 선풍기에 낀 먼지를 닦아내려고 령감한테 선풍기를 해체해달라고 청들었는데 웬걸, 베란다에 나가 도라이바를 가져오더니 선풍기 뚜껑만 달랑 떼내고는 쏘파에 들어앉아 신문과 한몸이 되여버렸다. 그럼 그렇지. 뚜껑을 열었으니 그대로 선풍기 날개를 닦으면 된다는 의미였다.
“나사를 틀어주면 날개랑 부속품은 모조리 분리시킬 수 있겠는데…”라고 내가 한마디 했더니 “그렇게 잘하면 당신이 해보구려!”라고 톡 쏘아붙이는 것이였다. 어쩔 수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힐끗 보니 쏘파에 누워 신문을 보고 있는 령감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라곤 눈곱 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한번은 화장실 전등이 나가서 불편하다고 말했더니 령감이 쓰고 있는 글을 다 쓰면 봐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발생했다. 글쎄 화장실 세탁기 우에 탁상등이 놓여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글 쓰는 열정의 십분의 일 만큼이라도 가정에 신경을 쓴다면 얼마나 감지덕지하며 살랴.
 
곁을 지켜주는 령감

며칠전, 나는 워이신에서 퍼그나 재미나는 영상 하나를 보았다.
오랜만에 동창모임에 다녀온 할머니가 옛친구들을 만나 기뻐하는 기색이 력력해야 하는 반면 얼굴색이 어두운 채 집으로 돌아오자 령감이 궁금해하면서 물었다. “다른 녀편네들이 명품가방을 자랑합데?” 할머니는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령감은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해외려행을 간다고 합데?” 이번에도 할머니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도 아니면 자식들이 용돈을 많이 준다고 합데?” 할아버지가 이렇게 묻자 할머니는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땅이 꺼지도록 한탄을 하더니 “친구들은 령감이 다 죽었는데 나만 령감이 살아있더라구요!”라고 하였다.
나는 이 영상을 보자마자 배를 끌어안고 깔깔 웃었다. 과장이 섞인 영상이 하도 웃겨서 가까운 친구에게도 공유하려고 영상을 전송했다. 이제 곧 친구한테서 깔깔 웃는 이모티콘이 오겠지 했는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 할매하고 넌 행복한 사람인 줄 알어라!”
몇년전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친구이다. 친구의 메쎄지를 보고 나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온종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말동무가 없어 마치 벙어리가 되는 것 같은 심정을 넌 아마 모를 거야. 난 가끔씩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면 빈방에 대고 ‘나 왔어!’라고 큰소리로 말하기도 해. 넌 그런 적 없지?”라고 친구가 음성메쎄지를 보내왔다. 나는 친구의 목소리에서 그간 그녀가 겪은 외로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밥을 해도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고 화가 나도 편 들어줄 사람이 없는 그 고독함과 쓸쓸함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모를 거야. 그러니 좀 깨끗하지 못하고 성질이 괴퍅하고 게으르면 어떠냐?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인 줄 알아라.”
친구의 진심어린 조언을 듣고 보니 그렇게 얄밉던 령감이 차츰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자식보다 만만하고 허물이 없어 언제든지 비빌 수 있고 화풀이할 수 있는 상대가 바로 령감이 아닌가?
실로 고운 정, 미운 정 고루 쌓으며 살아온 30여년 세월, 모든 것이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 이제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더 짧은 우리의 인생, 남은 황혼길에 같이 걸어줄 령감이 있다는 것, 여전히 밉살스럽게 굴더라도 내 삶에서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고 나니 이제는 웃으면서 오손도손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로년세계》2020년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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