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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의 유산
2021년 03월 30일 10시 02분  조회:563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시아버지의 유산
김염

며느리가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그리워한다면 가식일가? 하지만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고 나서 9년 동안 아버님이 그리워나 눈가를 적신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버님은 훤칠한 키꼴에 모든 면에서 신사다운 분이였다. 말수가 적은 편이였음에도 기분 좋은 날엔 빙그레 웃으면서 지나간 일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는 소탈한 성격까지 갖추고 있었다. 가끔 시아버지 얘기가 지겨워서인지 가족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도 타향에서 일하다 어쩌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아버님의 청중이 되여주었다. 아버님이 했던 이야기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아리송한 기억으로 멀어져갔음에도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하던 그 얼굴은 아직도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어머니가 안스러워 자식들은 집에 전화할 때면 늘 어머님부터 찾을 때가 많았다. 간혹 아버님이 전화를 받을 때도 있는데 어쩜 토 하나 바꾸지 않고 항상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셨다.
“며느리요? 우리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사돈이랑 사돈댁이랑 사돈처녀도 다 무사하지? 나는 아픈 데 하나도 없소. 자네들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되면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소.”
아버님은 젊었을 때 아주 멋쟁이였다고 한다. 좋은 세월을 만났더라면 영화배우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어머님은 괜히 들떠있었다. 심양에 있는 다이야공장에 출근했던 아버님은 어느 해 휴가철 고향에 놀러 왔다가 아릿다운 어머니한테 한눈에 반했다는 게 내가 들은 후문이다.
남색 중산복에 하얀 장갑을 낀 채 들에서 꺾어온 꽃다발을 들고 어머니한테 청혼을 했는데 글쎄 외할아버지가 심하게 막아나섰다.
“농사일도 못할 저런 허울이 멀쩡한 놈한테 내 딸을 못 줘!”라며 외할아버지가 심하게 반기를 내흔들었음에도 두분은 결국 첩첩산중을 헤치고 백년해로를 언약했고 그 뒤로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아 키웠다. 그중에서 아버님이 마흔살에 얻은 늦둥이인 남편은 큰아주버님과는 16년, 둘째 아주버님과는 12년, 시누이와는 8년 차이가 났다.
아버님은 난생처음이였음에도 농사일을 열심히 배우면서 척척 잘해나갔다. 새벽 서너시면 일어나서 어머니를 도와 아궁이에 불부터 피웠다. 외가집 근처에 살림을 차렸던지라 외할머니가 아플 때마다 아버님은 수레로 향병원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친아들 못지 않게 효도를 쏟았다. 마음씨도 어찌나 착한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량반이라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큰아들, 둘째아들은 분가를 시키면서 초가집 한채에 황소 한마리씩 장만해주었는데 막내인 우리한테는 결혼식은 물론 아무 것도 챙겨주지 못했다면서 아버님은 늘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평생 농사일을 하면서 자식들 뒤바라지를 하다 나니 남편이 대학을 졸업할 때는 아버님이 어느새 예순을 훌쩍 넘기신 뒤였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인차 취직을 했고 그 뒤로 다달이 부모님한테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드렸다. 련애를 하던 무렵에 남편은 집에 전화기를 놓아드리고 텔레비죤도 새것으로 바꾸어드렸는데 시부모님은 이게 다 내 마음이였다면서 나를 복덩이처럼 이뻐하셨다.
얼마 뒤, 시부모님은 농사를 그만두고 목단강 시내에 있는 둘째아주버님 집에 가서 당시 소학교에 다니는 손녀딸을 돌봐주게 되였다.
시골 집이 몇년째 비여있자 아버님은 그 집을 팔겠다고 서둘렀다. 초라한 오막살이라도 30년 가까이 살아온 정이 남아있어 팔기가 아쉬웠을 텐데 막내인 우리에게 시내에서 집은 못 사주더라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상 싶어 내린 결정이란 걸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아버님은 잊지 못할 추억들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시골집을 고작 1,000원이라는 헐값에 팔아넘겼다. 그런데 그 목숨 같은 돈을 뻐스에서 도적 맞힐 줄이야! 그 일로 아버님은 화병으로 일주일 넘게 드러누워있었다.
설에 모일 때면 아버님은 번마다 며느리들에게 술을 한잔씩 권했다. 술을 못하는 편인 나도 아버님의 사랑과 축복이 담겨있는 술이라 반갑게 받아마셨다. 만날 때마다 비슷한 말씀의 되풀이였지만 지겹지 않은 게 참 이상한 일이였다.
아버님은 술을 반기셨지만 절대 과음하는 걸 볼 수 없었다. 저녁 식사 때면 강술을 석냥씩 목구멍에 쏟아붓다싶이 했는데 그 힘든 재주를 남편이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맥주를 쏟아부으니 처음에는 깜짝 놀라 기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님은 축구를 무척 즐기셨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마당에 나가 축구를 찼는데 “내 거!” 하며 소리는 크게 질렀어도 헛발질을 할 때가 많았다. 남편이 중학교 때부터 축구에 싹수가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먹고살기도 힘든 세월이여서 전문학교에 보낼 엄두마저 못냈다면서 아버님은 쩍하면 입을 쩝쩝 다시군 하셨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문어구에 우두커니 앉아 식구들의 구두를 반짝반짝 빛이 날 때까지 닦으면서 흐뭇해하셨던 아버님이다. 신발이 빛이 나야 앞길도 창창하다는 나름 대로의 도리를 펼쳐가면서 아버님은 가족들이 그렇게 말리는데도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가 혼인신고를 할 때 친정의 식구들은 대부분 한국에 계셨는데 그 때는 한번 모이는 게 지금처럼 쉽지가 않아서 결혼식을 잠시 미루게 되였다. 몇년이 지나 아버님 년세도 여든에 가까워지니 더 지체하면 안되겠다 싶어 우리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서둘렀다. 시부모님도 한국에 가려고 서둘러 려권을 만들고 비자를 신청했는데 호구가 시골에 있었던지라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베란다에 나갔던 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입원하게 되였다. 젊었을 때 수레에서 떨어져서 허리와 다리를 다친 후유증으로 늘 힘들어했던 아버님이였기에 이번에도 다리가 아파서 넘어졌나 싶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였다. 암세포가 머리와 페, 방광 등 여러곳까지 퍼져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밖에 있던 자식들이 모두 한달음에 고향으로 달려갔다.
암세포가 대뇌에까지 전이되는 바람에 아버님은 종종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면서 그나마 어머님이라도 기억하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였다. 가끔씩 몇십년전의 추억 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할 때도 있어 가족들은 오래 동안 마음을 졸여야 했다.
아버님은 암진단을 받은 지 보름 만에 돌아가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둘째아주버님은 아버님이 평시에 사용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물론 값진 물건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 아버님이 쓰던 작은 나무바구니 하나를 유물로 남겼다. 하도 낡아 원색조차 알아보기 어려웠음에도 가끔씩 아버님을 떠올릴 수 있도록 뭐든 남기고 싶었다. 아버님이 그리운 날이면 바구니를 어루만지며 이런 사색에 잠긴다. 처자식을 위하여 한평생 살아왔던 아버님에겐 자기 꿈이 없었을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자리를 버리고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에서 농부로 보낸 평범한 일생을 아버님은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을가? 어머님이 잔소리를 할 때마다 아버님은 그저 허허 하고 웃어넘기면 그만이였다. 많이 화가 날 때는 “에이!” 하고는 집을 나가 뒤산을 한바퀴 돌면서 화를 풀고는 이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두 아주버님은 아버님의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가정적인 지혜를 모조리 물려받은 것 같다. 우락부락 모나고 억센 남편이 집에서 팔을 걷어올리고 설겆이랑 빨래를 한다면 남들은 잘 믿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힘들어할 때면 가정일을 도맡아주고 애들을 챙겨주었고 일요일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려고 다른 일정들을 잡지 않으려고 왼심을 썼고 방학이면 꼭 한번씩 가족려행을 데리고 떠났다. 남편은 처가에서도 점수가 꽤 높은 편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남편은 아버님이 물려주신 가장 소중한 유산이였다.
남편은 가끔 아버님 생각에 쓸쓸해한다. 그런 날이면 나도 같이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빠진다. 말수는 적어도 늘 따뜻했던 아버님의 소박한 사랑이 그립다. 아버님의 유산에 감사해하며 평범하지만 오붓하게 잘살리라 아버님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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