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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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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늪의 비사
2015년 01월 13일 14시 52분  조회:2058  추천:1  작성자: 김은철
              가물치늪의 비사(秘事)
                 김은철
내가 고향을 가본지도 어언 3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가목사에 살고있는 처남집에는 몇번 다녀왔지만 고향에는 들리지 못했다. 목가선을 타고 가목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벌리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40리를 가면 내가 나서 자란 대선마을에 이른다. 마을 동쪽은 동남쪽에서 뻗어내려온 완달산이고 서쪽에는 완달산굽이를 따라 내려온 왜긍강이 흐르고있었다. 강량안은 기름진 한전과 수전이 습지와 호수 사이들에 널려있었다.
고향에는 부모님들이 계셔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한 후에도 한해에 한두번씩 다녔다. 후에 부모님들마저 모셔간 후로는 다닐 리유가 없어 발길을 끊고 말았다. 그러나 때때로 고향이 머리에 떠올랐는데 그럴때면 한번 가보고 픈 생각이 간절해 지는것이였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고향의 왜긍하며 학교며 친구들이며 모두 눈앞에 떠오른다, 그런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추억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로왕톨네 고기막이였다.
어릴때 나는 자주 아버지를 따라 대선보에 가서 낚시질을 하였다. 대선보란 바로 우리 마을과 화남현 몇개 마을에서 논물을 쓰기위해 왜긍강을 막은 큰 보뚝이다. 보뚝 근처에 좀 두드러진 언덕이 있는데 거기에 로왕톨네 고기막이 있었고 그 막에서 북쪽가까이에 가물치늪이 있었다.
아버지는 낚시질을 하다가도 종종 로왕톨네 고기막에 들리군 하였다. 우리가 가면 로왕톨네 식구들은 아버지를 상전을 대하듯 높이 우러러 모셨다.
아버지는 그 일대 사람들에게 아주 신망이 높은 사람이였다. 해방전에 대선마을 촌장이였던 아버지는 토개당시 투쟁을 받게 되였는데 그 근처 사람들이 일떠나서 아버지를 보호해 주어서 처형울 면하게 되였다.
해방전에 이웃 따발랑 한족마을의 10여명되는 젊은이들이 항일련군에 식량을 날라 주다가 왜긍진에 있는 일본군 토벌대에 붙잡혔다. 일본놈들은 그 젊은이들을 마을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해버리려고 하였다. 그때 수십명되는 한족사람들이 일본말을 잘하는 아버지한테 몰려와서 붙잡힌 젊은이들을 구해달라고 울며불며  사정을 했다. 아버지는 구하기로 결심하고 먼저 현소재지인 벌리로 갔다. 벌리토벌대사령부는 화남현, 벌리현, 림구현,의란현,화천현등 일대의 항일세력을 숙청하는 토벌대를 지휘하고있었다. 마침 그때 김동환이란 사람이 관동군사령부의 파견을 받고 잠시 벌리토벌대 사령부에 와있었는데 악질 한간이였다. 아버지는 김동환이와 어릴때 함께 자란 연유로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항일련군들이 우리 집에도 들이닥쳤소. 내가 촌장이니까 그 사람들이 찾아온거요. 총앞에서 쌀을 내놓지 않을수 있겠소? 나두 쌀을 내놓구 우리 마을 청년들 등에 지워 보냈소.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 조선사람들은 죽이지 않고 중국사람들만 죽인다면 여기 조선사람들은 중국사람들한테 언제 어떻게 맞아죽게 될지 모른단 말이요! 죽이려면 나부터 죽이요!"
김동환이를 만나 한 아버지의 말이였다.
김동환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더니 아버지를 데리고 왜긍 경찰서를 찾아왔던것이다. 그때 경찰서장은 토벌대 대원들과 함께 총살할 11명 20대의 중국인 청년들을 바줄로 꽁꽁 묵은채 자동차에 끌어올리고 있었다. 따발랑부락과 가까이 있는 쥬리류(九里六)뒤산에 가서 총살하려고 떠날차비를 하고있었던것이다. 그때 왜긍진경찰소 소장도 김동환앞에서는 쩔쩔 매는 충견에 지나지 않았다. 김동환은 변절자로서 그때 이미 공산군토벌에서 혁혁한 공적을 쌓아 이름이 동만일대와 북만에까지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였다. 아버지는 끝내 김동환을 설득시켜 이튼날 중국인 청년들을 모두 데리고 따발령진에 왔던것이다.
중국인 청년 11명을 백성들앞에서 공개총살을 하여 공포를 불러일으켜 항일련군의 후근공급을 차단시키려한 왜긍토벌대와 경찰서의 피비린계획은 이렇게 아버지에 의하여 제지되였다.
이 일로하여 아버지는 그후 토개운동때에도 숙청대상이였으나 따발랑 중국인들의 보호를 받아 안전하게 지낼수있게 되였다. 아버지한테 구원을 받은 11명 중국인 청년들은 아버지를 큰형님이라고 부르며 충성을 다하고있었다.
기실 아버지는 촌장노릇을 하면서 일본군과 항일련군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였다. 일본군이 마을에 오면 일본군에 잘 보이려 했고 항일련군이 마을에 들어오면 또 항일련군에 잘 보이려했던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느 한켠에 서면 그 반면켠의 세력에 아버지 본인은 물론 마을사람들의 안전에도 매우 불리했던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량면파 처사는 마을 사람들의 안전에 아주 유리했다. 일본이 망한후 아버지가 구해준 11명 중국인중 류치산(刘治山)이라는 사람은 후에 토비 우두머리가 되였는데  유독 대선마을에 와서만은 바늘하나 실한오리도 략탈하지 않았다한다. 
아버지의 구원을 받은 중국인중에 왕진청(王真成)이란 사람은 장가도 못갔는데 대선보곁에 막을 짓고 살고있었다. 그는 고기도 잡아팔고 보뚝도 지키면서 살다가 후에 의지가지 없는 과부를 데려다가 그 고기막에서 같이 살았다. 그 과부는 피부가 검고 절구통처럼 실했는데 딸 하나있었다. 딸은 일여덟살 되였는데 벙어리였다. 얼굴도 못생긴데다가 벙어리여서 귀여운데가 조금도 없었다. 후에 로왕톨은 진가라는 사람을 데려다 함께 한집에서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 진가를 라방톨(拉帮套)이라고 불렀다. 라방톨이란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머슴처럼 그집의 일을 해주어야 하고 대신 그집 녀자를 데리고 살수있는 사람을 말한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 그 막에 몇번 들렸는데 그때마다 벙어리는 나와 친해보려고 내곁에서 떠날줄 몰랐다. 들판에서 친구들도 없이 사는 벙어리는 나와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무척 그리웠는 모양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애가 싫었다. 나는 곱지않게 생긴 벙어리가 곁에 오기만 하면 피하군 했다. 그럴때면 그애는 강가에서 주은 무늬돋친 차돌이나 구운 말린고기같은걸 들고와서 나에게 주군했는데 나는 머리를 저으면서 받지 않았다.
아버지가 년로하여 바깥출입이  불편하게 되자  로왕톨막에도 발길이 드믈게 되였다. 그때 나는 현성중학교를 다녔는데 방학이 되면 종종 병선이와 같이 낙시질을 가군했다. 병선이는 나와 함께 학교를 다녔는데 중학교입학시험에 그만 락방이 되여 촌에서 일할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기잡이에 귀신이였는데 내가 대학으로 가던 봄에 보뚝에서 고기를 잡다가 버들을 눌러놓은 큰 돌이 굴러내려오는 바람에 보뚝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버들을 펴고 돌로 눌러놓은 보뚝아래에는 송화강에서 올라온 고기떼들이 물을따라 올라오려고 펄떡펄떡 뛰였는데 사람들은 작살을 쥐고 있다가도 그런 고기를 보면 날래게 찔러서 잡군하였다.  보뚝아래는 물살이 세고 깊은데다 이른 봄이여서 병선이는 솜옷까지 입고있었으나 그래도 요행 헤염을 쳐서 기여나왔다. 그때 그는 로왕톨네 막으로 들어가서 하루밤을 지냈는데 벙어리가 그렇게도 살뜰하게 보살펴 주더라는것이였다.  
그때 벙어리는 다 큰 소녀였는데 나는 병선이 한테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작은 집안에서 어떻게 다섯사람이 누워잤을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날 넌 누구곁에서 잤니?”
내가 물었다.
“난 바닥에 새를 펴놓고 혼자 잤다. 그런데 누가 내 00를 만지기에 깨여나 보니 벙어리가 내곁에 온거야.”
“뭐? 벙어리가 니 00를 만져? 그래 어떡했니?”
“그래 나두 만져봤지. 허허,임마, 더 묻지마.”
나는 호기심이 나서 끝까지 캐여 물었으나 병선이는 시물시물 웃기만 하면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병선이는 그날밤 벙어리와 했을가?  했을거야. 이미 사춘기를 넘기고있는 나에게 그일은 너무나 신기하고 황홀하여 강력한 흡인력으로 이성에 대한 범접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한번 벙어리걸 만져볼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벙어리의 못난 얼굴이 떠오르며 께름직해 지는것이였다.
병선이는 이른 봄에 물에 빠진 후부터 시름시름 앓고있었다. 아마 그때 물이 페에 들어가 일으킨 후환인것 같았다. 그해 여름방학에 나는  대학입학통지를 기다리며 자주 대선보에 가서 낚시질을 하였다. 그런데 내가 대학가서 얼마 안되였는데 어머니한테서 편지가 왔다. 편지에는 병선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씌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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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몇십년후에 가보는 대선마을은 예전의 대선마을이 아니였다. 그때의 초가집들은 거의나 아담한 기와집들로 바뀌긴 했어도 기와집들 사이사이에 허물어진 초가집터들은 터전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도 허물어져 흙무지로 되였는데 누가 심었는지 호박들이 띠염띠염 풀속에 널려있었다. 너무도 쓸쓸했다. 양우리로 변해버린 학교동쪽에 “대선촌로인활동실”이라고 쓴 간판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몇몇 늙은이들이 화토를 놀고있었다. 모두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있었다.
“제가 리성관의 아들 리중일입니다. ”
“리성관의 아들 중일이?”
그제야 나를 알아보고 모두들 반가워 야단이였다. 윤철이, 용복이, 동해, 동숙이…모두들 고희의 문턱에 이르렀거나 갓 넘어선 어린시절의 고향친구들이였다.
“뉘긴가?”
우리가 마주 손잡고 기뻐할때 파파 늙은 안로인 한분이 나를 여겨보고있었다. 허리가 꼬불고 굵고 가는 주름으로 얼굴을 온통 얽어놓은 안로인이 였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병선이의 어머니였다.
“저를 몰라보겠습니까?  저 리성관의 아들 중일입니다.”
“아이고, 중일이락꼬? 어디가 있었깨 여태 깜깜했노? 아버지 어머니끼시는 아직 생전인고?”
“모두 세상뜬지 오래됩니다.”
“그라갔지, 자네 어머니하구는 내가 정동갑이였으니께. 그리고 죽은 우리 병선이하고 자네가 동갑이잖았어? 금년에 나이가 어떻게 됐능기여?”
“일흔 살입니다.”
“이런살이락꼬? 참 시월이 많이 갔다. 다 가고 나만 이리 남아 어쩌겠누, 빨리 가야겠능기.”
아흔한살에 나는 병선의 어머니는 내손을 잡고 놓을줄 모른다. 백여호도 넘던 마을이 이젠 14호만 남았는데 그것도 몇해 아니면 세상을 하직할 늙은이들뿐이였다. 젊은이들은 모두 외국이나 남방의 대도시로 돈벌러 나가고 대신 주위의 한족마을 사람들이 밀려들어 빈집들을 찾이하고 벼농사를 짓고있었다. 로인활동실이래야 모두 합쳐 20여명밖에 안되는데 어릴때부터 한마을에서 함께 자라며 늙어가는 친구들이라 한집식구처럼 다정히 보내고있었다.
내가 갔다고 술판이 벌어졌다. 모두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놀고있었다. 나도 얼근히 취해 춤판에 끼여들긴 했으나 치밀어오르는 쓸쓸한 심정은 달랠길이 없었다. 사람이야 늙어지면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지만 우리 세대마저 세상을 떠난다면 남겨놓은 고향마을은 어찌 될가. 타고향 타민족사람들이 몰려드는 고향마을, 생각하면 가을걷이를 끝낸 황량한 벌판같아 서글퍼지는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다.
한밤중이 되여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들은 자기들 집에 가서 자자면서 나를 끌었으나 활동실에 온돌도 있고 이부자리도 갖춰있는지라 내가 그냥 활동실에서 자겠다고 하니 그럼 나와 동무를 해서 자겠다면서 윤철이가 남았다.
그런데 병선이 어머니도 남아있는게 아닌가.
“이 아매 이 활동실에서 살고있어,”
“혼자?”
“손자가 있지 않아. 그래두 그자식이 종종 찾아와 할미를 보군해.”
“손자라니?”
“모르구 있었어? 대선보를 지키던 로왕톨의 딸 벙어리가 생각나지 않아? 그 벙어리 아들말이야.”
“뭐? 벙어리아들?”
윤철의 말을 들으며 나는 멍해졌다. 그러구 보면 물에 빠져 죽는다산다 하면서도 그날 저녁 병선이는 벙어리와 그걸 한거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병선의 어머니가 우리들의 말에 끼여들었다.
“그래두 거 우리 손자 인정이 있능기라, 자주 여기 댕기며 날 보고가는기여.”
“그럼 손자집에 가서 있지요. 여기서 어떻게 혼자 때시걱이랑 하시겠습니까?”
“그렇찮아도 우리 손자가 자꾸 지네집에 가자구 졸라대능디, 거기 어떻게 가누. 디늠이 다 돼서 말도 모르능기, 한국깐 딸이 금년엔 온다니께 그때까지 여기서 살문 되는기라. 여기분들이 나를 많이 생각해줘서 걱정없이 살아가잖노.”
병선의 어머니는 병선이 아래로 병옥이라는 딸이 하나있었다. 병선이가 죽을때 병옥이는 소학교를 졸업하였는데 그녀도 예순댓은 되였을것이다. 모두들 돈에 미쳐 당장 세상뜰 부모마저 홀로 남기고 돈벌러 다니는 세월이라 병선이 어머니의 팔자도 웬간히 기구한것이 아니였다.
“그래 병선의 아들이란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는가?”
나는 벙어리와 그 아들이 궁금하여 옆에 누운 윤철에게 물었다.
“로왕톨이 죽은 후에 라방톨이 보를 관리했댔는데 지금은 벙어리 아들이 수문관리원 일을 하고있어. 한때는 말성이 많더니만.”
“무슨 말성말이야.”
“시집도 안간 벙어리가 아들을 낳았으니 왜 말성이 없었겠나. 공사파출소에서 내려와 조사를 했지. 그때 경찰들은 라방톨을 의심했던거야. 그런데 로왕톨이 나서서 병선이가 물에 빠진 그날 자기네 집에서 자구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후에도 둘은 서로 좋아했다는거야. 그래서 요행 라방톨이 풀려났지. 그렇잖으면 라방톨이 몇년 징역살이를 면치 못했을거야. 그때 병선의 아버지가 생전이였는데 그래도 병선이는 살아있구나 하면서 그애를 가져다 기르겠다고 했지. 그런데 벙어리가 그앨 놔줘야 데려올게 아니가. 벙어리는 죽기내기를 하고 그애를 안내놓은거야. 그래 조선말 한마디도 못하는 중국사람이 돼버렸지.”
“아, 그랬구나, 병선이가 물에 빠진 그날 날도 저물고 옷도 몽땅 젖어서 로왕톨 고기막에서 잔건 나도 알고있었어, 하, 그자식 벙어리와 그짓을 했구나. ”
나는 병선이 어머니가 듣지 못하도록 나지막하게 옆에 누운 윤철에게 말했다. 귀가 좀 무딘 병선의 어머니는 우리와 멀리 사이를 두고 가마목에 누웠기에 우리가 하는 말을 못알아듣고 있었다.
“그때 로왕톨이 병선이가 저질러놓은 일때문에 당신 아버지를 찾아갔다구 하더군. 그때 동네에 퍼진 말은 당신 아버지가 로왕톨을 욕을 했다는거야. 네가 딸을 건사못해서 그렇게 됐는데 병선이가 죽긴해도 그렇게 더러운 명성을 남기게 해서야 되는가구 말이야. 그리고 벙어리가 기여코 애를 주지않는 바람에 병선의 아버지는 당신 아버지를 찾았대. 당신 아버지가 나서서 로왕톨이를 보고 애가 좀 크면 병선이부모한테 주라고 했대. 그래 로왕톨이 그러마 하고 대답했는데 로왕톨이 그 이듬해에 죽고 당신두 부모님들을 모셔갔으니 그앤 병선이 부모한테 오지 못하고 완전히 중국애가 돼버린거야.”
“아 그렇게 됐구만. ”
윤철의 말을 들으니 한번 그애를 보고싶은 생각이 났다. 고향에 온바에 병선의 아들도 보고 한번 옛날처럼 낚시질도 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대선보에 고기가 많은가? 가서 낚시질이라도 한번 해보고싶어,”
“ 지금은 고기들이 그렇게 많지 못하오. 농약들을 많이 쓰는데다가 왜긍강에 수문들을 많이 해서 송화강고기가 올라오지 못해 많지 못하오, 그래도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한데 별루 잡지 못하오. 구경도 할겸 한번 가보지.”
나는 윤철이와 약속을 하고 눈을 감았다. 잠이 몰려오긴 했으나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사라지지 않아 어쩐지 마음이 부산하기만 했다.

                            3
이튿날 우리 몇이 이침일찍 대선보로 낚시질 하러갔다. 옛날 버들을 펴고 그 우에 돌을 캐여다 눌러놓았던 보뚝흔적은 전혀 찾아볼수 없이 사라지고 대신 대형수문이 웅장하게 수축되여있었다. 수문곁에 작긴하나 아담한 2층집이 있는데 우리는 먼저 그집에 들렸다. 그 2층집이 바로 병선의 아들집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집앞에 이르렀을때 한 젊은 녀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낚시도구를 메고 들어선 우리를 보자 얼마짜리 낚시터에서 하려는가고 물었다. 수문곁에 세개나 되는 큰 양어장들이 있었다. 값은10원, 20원 50원이였다.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해도 돈을 받는 곳은 없었다. 지금도 강에서 하면 돈을 받지 않으나 고기가 없어 물리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돈 200원을 내놓았다. 윤철이가 나서며 자기가 내겠다면서 나를 막았다. 나는 먼저 젊은 녀자에게 돈을 주었다. 윤철이가 그 돈을 찾아 기어이 내 호주머니에  도루 넣어주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놀러온 친구인데 응당 자기네가 돈을 내야한다는것이였다.
바로 그때 한 로파가 집으로부터 나왔다. 윤철이가 벙어리라고 알려주었다. 벙어리? 찬찬히 보니 분명 벙어리였다. 수십년 세월이 흘러 가뜩이나 보기싫게 못났던 얼굴에 크고작은 주름살까지 깊이 패이고 얽히여서 똑 마치 늙은 성성이를 방불케 했다. 나는 윤철에게 내가 누구라는것을 벙어리에게 알리지 말라고 조선말로 알렸다. 그런데 벙어리가 한참이나 나를 주시해 보더니 괴상하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저어댔다. 그가 나를 알아본것이였다. 나는 속이 뜨끔해 났다. 병선의 아들만 보고가면 그만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벙어리는 무작정 내손을 잡아끌었다. 집으로 들어가자는것이였다. 나는 윤철이네를 보고 먼저 낚시질을 가라해놓고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을수 없었다. 집안에 들어가니 라방톨이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라방톨은 이미 늙을대로 늙어버린 로물이였다. 정신상태가 좋지않아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런데도 벙어리는  라방톨에게 손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련속 괴상한 소리를 질러댔다. 웃으며 소리를 지르고 손짓을 하는것을 보아 벙어리는 귀한 손님이 왔다고 라방톨에게 알리는것이 분명했다.
그때 40에 가까운 젊은이가 웃층에서 내려오고있었다. 아마 벙어리의 소리를 듣고 웬일인가하여 알아보려고 내려오는것 같았다. 생김새를 보아 그 사람은 벙어리의 아들인것이 틀림없었다. 벙어리가 그 사람을 보고 뭐라고 손시늉을 하였다. 그 사람은 벙어리의 손시늉을 보더니 얼굴에 즉시 놀라면서도 반가운 웃음을 담았다.
“이전에 대선마을에서 살았습니까?”
“양, 자네 할아버지 때부터 아주 가깝게 보냈다우.”
“아, 알만합니다. 일본토벌대놈들한테 당장 총살하게 될 저의 외할아버지랑 구해주셨다던 그 리성관이란 분의….”
“그렇소, 리성관이라면 우리 아버지요. 대선마을은 내가 나서 자란 곳이요. 그리구 자네 아버지하구는 같이 자란 동갑친구였소.”
“아, 그럼 저의 아버지를 잘 아시겠군요.”
“잘 알고말고. 한마을에서 같이 자랐고 학교도 같이 다녔소. 어릴때에는 늘 고기잡이를 같이하던 참 친한 동무였는데….”
“아, 그러니 저의 아버지와는 각별한 친구였겠군요. 정말 반가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젊은이는 눈치 빠른 총명한 사람이였다. 겉보기에 에미인 벙어리를 닮았으나 벙어리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얼굴의 못난 기관들이 채 죄이지 못한 라사들처럼 느슨하게 풀려있는  벙어리와는 달리 그 아들 젊은이는 어디를 보나 탄탄했고 키도 늘씬했다.
병선의 아들은 수문을 관리하면서 양어장도 꾸렸는데 수입이 괞찮아보였다. 그날 우리외에도 2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벌리진과 화남진에서 차를 타고와서 낙시질을 하고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젊은이가 낚시터에 우리를 데리려 왔다. 우리 몇의 점심을 준비했던것이다. 우리는 몇마디로 사양하다가 따라갔다. 우리가 낚시질을 하는 동안에 벙어리는 며느리와 같이 물만두를 빚었던것이다. 한입떼여 먹어보니 물만두의 소는 물고기를 칼탕쳐서 만든것이였다. 실로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물만두였다. 물만두의 소는 본시 돼지고기나 소고기따위로 만드는것이 중국인들의 상례이지만 로왕톨네는 자주 물고기로 소를 하여 물만두를 빚군하였다. 나는 어릴때 로왕톨네 초막에서 먹어본후 지금껏 먹어보지 못했는데 이런 만두는 아마 로왕톨네 집에서만 만드는 특색음식인것 같았다.
우리가 물만두를 술안주로 하며 한창 먹고있는데 윤철이가 주방에서 채를 볶고있던 벙어리를 보고 손짓했다. 와서 같이 술을 마시자는것이였다. 벙어리는 어느새 달걀볶음채를 들고 상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우리가 권해도 술상에 앉지 않고 옆에서 구경만 하고있었다. 벙어리 아들만이 내옆에 앉아 우리들에게 부지런히 술을 권했다. 그런데 벙어리가 내곁에 오더니 내귀와 자기아들의 귀를 가리키더니 두 엄지손가락을 마주붙혀 보이는것이였다. 그 뜻인즉 귀가 같게 생겼다는것이였다. 나는 어릴때부터 귀방울이 크다고 늘 사람들한테서 부처님의 귀같다는 소리를 듣군하였다. 그런데 병선의 아들의 귀가 심통하게도 내 귀처럼 귀방울이 남달리 크지 않겠는가.
“이제보니 귀가 심통히도 같게 생겼구만. ”
벙어리의 손짓을 보고 윤철이가 하는 말이였다.
“정말 그러구 보니 어딘가 선식(벙어리 아들이름)이와 당신이 닮은데가 많은것 같구만.”
용복이가 하는 소리였다. 나는 속이 뜨끔해났다.
“병선의 아들이 나를 닮다니, 허참,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쓸데없는 소린 작작하구, 자, 술이나 마시자구.”
물론 우리는 벙어리의 아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 말로 하였다. 조선말을 알지 못하는 벙어리의 아들은 우리의 눈치만 살피고있었다.
그날 우리는 얼근히 취했다. 벙어리 아들이 기어이 취한 우리를 차로 실어다 주겠다면서 어장에 나가서 투망을 치더니 둬서너근씩되는 잉어 10여마리를 잡아가지고 왔다. 그는 술상에서 술 둬잔을 마시고 우리 눈치만 살피면서 더는 술을 마시지 않아 취하지 않고있었다. 우리도 낚시질을 하여 잉어와 붕어를 한사람이 일여덜마리씩 낚았던것이다.  우리가 손잡이뜨락또르에 앉아 떠나려는데 벙어리가 나를 보고 손시늉을 하였다. 두손을 모아 귀에 대고 머리를 귀울이는것을 보아 자고가라는 뜻이였다. 나는 웃으며 손을 저어보였다. 우리가 떠나는것을 보며 벙어리는 몹시 서운해하는것 같았다. 나는 다시 손을 저어 잘있으라는 인사를 보내주었다.
그날저녁 로인활동실에서는 물고기를 삶아놓고 온 마을 20여명밖에 안되는 조선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집식구처럼 먹고 오락판을 벌렸다. 병선의 어머니는 손자가 물고기까지 가지고 오니 너무 반가워서 손자의 등을 몇번이구 쓰다듬었다.
“얘는 내게 참말로 끔찍하당께. 우리 병선이는 그래두 살아있능기여!”
그리고는 치마자락으로 눈을 문지르군 했다. 벙어리의 아들은 늦게까지 놀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 내가 로인활동실에서 일어도 나지 않았는데 손잡이뜨락똘
소리가 나더니 문앞에 와서 멎는것이였다. 내가 급히 옷을 주어입고 나가니 벙어리 아들이였다.
“밤 편히 주무셨습니까?  오늘 아침은 우리 집에 가서 식사를 합시다. ”
“아, 그럴 시간이 없소. 오늘은 집에 돌아가야 하오. 이번에 고향에 와서 친구들두 보구 대접도 잘 받고 가니 정말 기쁘오. 이 다음 연길에 놀러오우. ”
나는 한시급히 떠나고 싶었다.
“아이고 우리 손자 또 왔나?”
병선의 어머니가 손잡이뜨락똘소리를 듣고 나왔다. 한어를 한마디도 모르는 그는 손자가 이른 아침에 왜 왔는지 몰라 손자의 손을 잡고 눈치만 본다.
“나를 데릴러 왔습니다. 아침을 자기네 집에서 하니 같이가서 먹자구 말입니다.”
내가 조선말로 손자가 온 원인을 이야기 해 주자 병선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자의 등을 다독이였다.
“자네 아버진 이애 외할애비 은인이께. 그걸 잊지 않고 때까지 해놓고 데릴러 온것 보문 참 인정이있는 사람들이지. 이렇게 데릴러까지 왔는데 안가문 되누?”
“그럼 내 가서 아침을 먹고 인차 오겠습니다.”
나는 가고싶은 생각이 별로없었다. 그런데 어덴가 벙어리아들을 다시 보니 자석과 같은 어떤 힘이 끄당기고 있는 느낌이였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뻗힐수도 없어 손잡이뜨락또르에 올라탔다.

                        4
손잡이뜨락또르가 수문에 거의 이르자 벙어리가 집앞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것이 보이였다. 벙어리는 학생같아보이는 남자애와 나란히 서서 나를 보고 반갑다고 손을 저었다.
“저 애는 누구요? ”
“저의 아들입니다. 벌리에 가서 학교를 다니는데 오늘 토요일이라구 어제저녁에 왔습니다. ”
“몇학년인가?”
“금년에 초중에 들어가야 합니다. ”
차가 집앞에 가 멎자 남자애는 나한테 꾸벅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퍽 령리해 보이는 애였다. 벙어리가 반가워서 나를 보고 어서 집안에 들어가라며 손짓을 해댔다.
내가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돌아서는데 집안으로부터 한 로파가 나오고있었다.
“아이구, 이게 조카가 아니우?”
(조카라니?)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알고보니 그는 로왕톨의 녀동생이였다. 그도 이젠 80고개를 눈앞에 둔 늙은이라 옛날 모습을 전혀 찾을수 없었다. 이 녀인에 대해서는 내가 10여살  때 몇번 본것 같은데 참외막에서 참외를 기껏 먹고 올때 또 참외를 한 광주리나 담아주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때는 얼굴이 하얗고 곱게 생긴 새각시였는데 세월은 그를 파파 늙은 로파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옛날 미인의 자취는 주름살이  많아도 맑게 웃는 얼굴과 정결한 옷차림속에 아직도 슴배여있는것 같았다.
“큰오빠 (나의 아버지) 생전에는 우리 두집이 정말 친형제처럼 가깝게 보냈소. 오빠들이 다 세상뜨고나니 이젠 련락두 끊기구, 그래두 난 자주 조카네를 그리워 했다오. 그래 어제 선식이의 전화를 받자마자 저 애와같이 와보니 조카가 벌써 대선으로 가버렸더구만.”
“어제 낚시질을 왔다가 점심을 먹고 돌아갔소. 나두 연변에 가 살면서도 때때로 이곳 생각이 났소. 그래 이번에 가목사처남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향에 들렸소. 눈껌쩍할새에 모두들 늙은이가 돼버렸구만, 난 고모가 참외밭에서 참외를 한광주리 가득 담아주던 일이 생각나오, 그때 고모는 정말 고운 새각시였는데.”
“호호호. 그때야 옛날이였지. ”
그날 푸짐하게 차려준 아침을 먹고나서 나는 빨리 대선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이젠 집에 가야한다고 했더니 모두 좀 더 놀다가라며 만류하였다. 벙어리는 벽에 세워둔 낚시대를 가리키면서 낚시질을 하라는것이였다. 그런데 로왕톨의 녀동생이 나와 조용히 할말이 있다면서 나를 2층객실로 끌고가는것이였다. 나는 속이 후두두 해났다.
“이 일은 아무래도 조카에게 말해야 될것같소. ”
“무슨 일인데?”
나는 긴장해 났다.
“조카만 알고있소. 오빠들 생전에 오빠들이 우리 선식이의 애비가 대선마을에서 살다 죽은 병선이라는 사람이라 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모두 그렇게 알고있었소. 조카는 그때 병선이라는 사람과 아주 친했다하는데 조카보기에는 어떻소? 병선이라는 사람이 정말 선식이의 애비가 옳을가?”
그말을 들으니 나는 등골이 서늘해 났다. 어떻게 말한다? 한길도 더 되는 새밭에 있던 가물치늪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가물치늪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나는 한 평방은 잘될 새들을 서투른 발광으로 무참히 깔아뭉개며 야수의 본능을 터뜨린 일이있었다. 아, 결국 하늘이 숨겨놓은 비밀을 지켜주지 않는구나! 안된다. 그래도 이건 끝까지 지켜야 한다.
“거야 대선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니오? 병선이가 저녁때 보뚝에서 작살로 고기를 잡다가 물에 빠졌는데 요행 살아서 하루밤 삼촌네 고기막에서 자고 오지 않았소. 후에 내가 병선이와 물어보니 바닥에다 새를 펴놓고 잤는데 깨여나 보니 글쎄 선식의 어머니(벙어리)가 곁에 와서 누워있더라오.”
“그래서?”
“그래서 내가 물었지, 그래 어쨌는가구말이요. 그랬더니 병선이가 시물시물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구만. 그러니 병선이가 틀림없소.”
“조카는 그때 학교를 다니느라고 없었기에 잘 모르오. 글쎄 저 말못하는 우리 조카가 배가 하루 다르게 커지자 모두 작은 오빠(라방톨)를 의심했던거요…”
이렇게 말을 떼기시작한 로왕톨의 녀동생은 그때의 정황을 나한테 상세히 알려주는것이였다. 사람들이 라방톨을 의심하자 라방톨은 펄쩍 했고 벙어리도 아니라고 머리를 가로저었단다. 그러면서 벙어리는 왕청같은 사람을 짚었단다. 그 말을 듣고 로왕톨은 당황해서 나의 아버지를 찾아왔는데 아버지는 한참 생각을 하더니 죽은 변선이를 짚었단다. 로왕톨은 돌아와서 벙어리를 한바탕 두들겨팼는데 벙어리는 병선이가 물에 빠져 로왕톨네 막에서 하루밤 자던 그날밤 자기가 병선의 곁에서 잤다면서 손슈늉을 하더라는것이였다. 후에 파출소 사람들이 와서 조사를 했는데 벙어리는 로왕톨이 시킨대로 병선이곁에서 잤다는것을 흉내 냈다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파출소사람들도 더는 조사를 하지 않았고 라방톨도 풀려났다는것이였다. 그때 나는 방학이 되여 집에 오니 벙어리가 낳은 아들의 애비가 병선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고 그애가 병선이의 종자라하면서 병선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애를 자기네가 가져다 기르겠다고 로왕톨네 집에 문턱이 닳도록 다녔으나 벙어리가 딱 잡아떼는 바람에 어쩔수었었다는것이였다. “善植”이란 이름도 로왕톨이 우리 아버지를 찾아와서 지은것인데 그때 아버지는 “丙善“이란 이름자에서 善자를 뽑아 거기에다 심을 植자를  달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 뜻인지 병선이가 심어놓은 아들이라는것이 였다.
“고모, 이 일은 이미 삼촌이 살아계실때 결론이 내리어진것이니 이제와서 무엇을 어떻게 한단말이요? 라방톨아저씨도 이젠 아무것도 모르는 귀신이나 다름없는데 더는 라방톨아저씨를 의심해서는 안되오. ”
“라방톨아저씨를 의심하는게 아니오. 저… 저…”
로왕톨녀동생은 무엇을 말할듯말듯 하면서 후- 하고 긴 한숨을 내뿜는것이였다.  우리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선식이가 문을 떼고 들어왔다. 벙어리가 함께 들어오려는것을 선식이가 들어오지 말라면서 손으로 밀어냈다. 선식이는 나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내가 병선이하고 동갑이긴 하지만 생일이 병선이보다 몇달 늦었던것이다. 그는 들어와 제 고모곁에 앉았다. 보건대 어쩐지 풀이 죽은 양이다.
“삼촌, 저도 어릴때에 들은 소리가 있습니다. 제가 조금도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겁니다. 그러면서 저의 귀가 삼촌의 귀를 닮았다는겁니다. ”
“무슨 말을 하는건가? 자식이라 해서 다 부모를 닮는건 아니란 말이요. 부모와 자식의 생김새가 전혀 다른 경우도 많은거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DNA감정을 하기도 하오. DNA감정을 친자감정이라고도 하오. 즉 친혈육이 옳은가 아닌가를 알아내는 화험을 말하오.”
“DAN감정이라니? 그건 어떻게 하는겁니까?”
“피를 가지고 하기도 하고 피가 없으면 머리칼이라도 되지. 선식은 아버지가 없으니까 할머니의 머리칼이라도 되지. 검사를 해보면 한 혈통인가 아닌가를 정확하게 알수있소. 정 믿지 못하겠거든 할머니 머리칼과 선식의 머리칼을 한두오리 병원에 가지고 가서 화험해 보면 알수있소. 작은 병원에서는 할수없고…가만있자,  연변의학원에 내가 잘아는 교수가 있으니 이번에 갈때 내가 선식의 머리칼과 선식의 할머니 머리칼을 몇오리 가지고 가서 친자감정을 해주지.”
“정말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삼촌 고맙습니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서 양어장에 나가 오전 내내 낚시질을 하였다. 내가 어릴때 늘 낚시질을 다니던 가물치늪을 세토막으로 막고 양어장으로 만들었는데 옛날 늪주위에 무성하던 새밭은 논밭으로 변했고 언덕진 고기막자리에는 이깔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옛날의 흔적은 전혀 찾을바가 없었다. 나는 낚시질을 하면서 옛날을 추억하다 보니 낙시에 고기가 물린것도 모르고있었다.
“할아버지 고기가 물렸어요. 큰놈이예요!”
나를 따라나와 낙시질을 구경하던 선식의 아들녀석이 소리를 질러서야 나는 제정신을 차리고 낙시대를 당기군했는데 그때는 고기가 이미 달아난 뒤였다. 도저히 낙시질에 정신을 집중시킬수 없었다. 그렇게 몇번 실패를 하자 그녀석은 낙시질을 하는 요령에 대하여 나한테 가르치자고  달려들었다. 그녀석은 내가 대학교교수니까 낙시질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으로 보고있었다.
그녀석은 볼수록 마음을 끌어당기는 똑똑한 놈이였다. 생김새도 귀엽고 말하는것도 조리있게 엮어하는데 여간 령리한 애가 아니였다.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리문영이라고 해요.”
“리문영이라고? 그래 넌 어떤 사람이 되고프냐?”
“할아버지처럼 대학교 교수가 되고파요.”
“그래? 교수가 되려면 부지런히 공부를 잘해야 한다.”
그날 나는 선식의 아들 문영이와 같이 이야기를 하며 낙시질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대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벌리로 떠났다. 벌리에는 내가 벌리중학교를 다닐때의 선생님들이 몇분 계셨는데 모두 고령의 늙은이들이였다. 나는 선생님들을 만나보고 밤차로 집으로 돌아갈 예산이였다.

               5
연길에 돌아오자 나는 즉시 내 머리칼과 선식의 머리칼을 가지고 병원에 가서 친자감정을 하였다. 결과가 나왔다. 선식이는 틀림없는 내 아들이였다. 지금껏 올리쌓은 금자탑이 와르르 무너지는것 같았다. 이제 무슨 낯을 들고 세상사람들을 대한단 말인가.
며칠이 지나 선식이한테서 친자감정 결과가 어떻게 되였는가고 문의 전화가 왔다. 요새 일이 바쁘다보니 아직 병원에 가보지 못했다고 나는 우선 거짓을 할수밖에 없었다.
왜긍하강변의 호수들과 키를 넘는 새밭들이 눈앞에 얼른거린다. 떼를 지은 물오리들이 호수우에 내려앉는다.  “우-야”소리를 지르니 오리들은 다시 하늘에 날아 올라 어딘가로 떠나가 버린다. “우-야” 또 소리를 지른다. 호수우를 낮게 날며 수면을 살피던 조막가마우지들은 아랑곳없다. 그러다가도 물위에 원을 이루는 파문이 생기면 쏜살같이 물에 밖혔다가는 입에 물고기를 물고 다시 하늘로 떠오른다.
그때 나는 가물치늪가에 앉아 낚시질을 하고있었다. 얼마 멀지않은 초막앞에서 로왕톨이 점심을 먹으라고  나를 부르고있었다. 나는 배고프지 않으니 않가겠다고 손을 저어보였다. 내가 가지 않으니 벙어리가 물만두를 가지고 내곁에 왔다. 그는 어,어,하며 손시늉을 해댔는데 아마 내가 왔다고 물만두를 빚었다고 하는것 같았다. 나는 물만두 하나를 쥐여 입에 넣었다. 물고기를 칼탕쳐서 소를 넣은 물만두는 참 별미였다.
벙어리는 제 에미처럼 뚱뚱하지는 않았지만 피부는 흑인 사촌쯤이나 되게 검었다. 얼굴은 볼것없이 못나서 보는이들한테 아무런 탐욕도 불러일키지 못했다. 그는 푸른색 적삼을 젖싸개도 없이 입고있었는데 풍만한 젖무덤중심에 도드라진 젖꼭지가 엷은 적삼을 꿰둟고 나올듯하여 눈길을 뗄수 없었다.
갑자기 병선이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저도 몰래 손가락으로 벙어리의 젖꼭지를 꼭 눌러보았다。속이 호르르 떨렸다. 그런데 벙어리가 히죽이 웃고있지 않는가! 나는 무슨 용기가 났던지 적삼 사이로 깊숙하게 손을 넣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황홀한 쾌감이 전신을 달구었다. 그때 벙어리가 나의 다른 손을 당겨서 자기의 사타구니에 깊숙히 집어넣었다.
어느새 우리는 딩굴기 시작했다. 한길씩 되는 새이삭들이 마구 흔들리며 무수한 씨들을 하얗게 내 등과 벙어리의 얼굴에 흩날렸다.
어,어..벙어리가 즐거워서인지 괴로워서인지 아니면 싫어서인지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괴성을 질러대고있었다. 그때에야 나는 고기막에서 누가 달려나올것같아 급급히 서투른 동작을 멈추고 바지를 춰올리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는 손짓이였다. 벙어리는 어,어하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아무일도 없는듯 태연하게 낚시대를 찾았다. 그런데 낚시대가 없지 않는가. 한참 찾아서야 나는 낚시대가 호수 중간으로 떠가는것을 발견했다. 고기가 물려 큰 파문을 일으키며 낚시대를 끌어가고 있었다. 나는 옷을 벗고 호수로 헤염쳐 들어갔다. 5근도 더 될 큰 메기가 물렸던것이다. 그놈은 누에처럼 생긴 버들벌거지미끼를 우둔하게 삼켜서 낚시가 똥집에까지 들어가 걸렸던것이다.  나는 낚시대를 당겨보았다. 이렇게 큰 놈은 마구당겼다가는 낚시줄이 끊어질수 있었던것이다. 그때 로왕톨이 막안에서 무슨 기미를 챘는지 밖에 나와서 보더니 큰 고기가 물렸군 하면서 막안에 들어가 작살을 가지고 나왔다. 요행 고기를 늪옆에까지 끌고 나오자 로왕톨이 작살로 그놈을 찍어냈다.  메기를 찍어내자 나는 인차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후부터 나는 고향마을에는 다녀도 로왕톨 고기막에는 발길을 끊었다. 벙어리와 그 일을 저지른것이 늘상 께름직해서였다…
그때 로왕톨은 막안에서 분명 벙어리의 괴성을 듣고 나왔을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로왕톨은 벙어리의 그 과성을 낙시에 물린 큰고기를 보고 지른 환성으로 착각한것 같다.
그러나 그후 벙어리의 배가 점점 커가자 로왕톨은 벙어리에게 물었을것이고 벙어리는 배속애의 애비가 나란것을 알렸을것이다. 그래서 로왕톨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상의를 했을거고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먼저 대학에서 공부하고있는 이 아들의 장래를 위하여 법적책임을 피면시키려고 죽은 병선에게 험터기를 씌운것 같다. 그런데 벙어리가 승인하지 않으니 로왕톨이 벙어리 딸을 때리기까지 하면서 기어이 배속애의 애비가 병선이라하라고 윽박지른것 같다. 로왕톨은 이렇게 해서 자기를 구해준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은혜에 보답한것 같다. 그리고 로왕톨의 녀동생이나 벙어리도 그때 로왕톨과 나의 아버지와의 음험한 약속을 지켜 지금까지도 감히 내가 선식의 아버지라고 직방 말을 못하고 있는것 같다.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 선식이한테서 어떻게 되였느냐고 또 전화가 왔다. 나는 병원에 가지고 갔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선식의 아들, 아니 내 손자놈의 얼굴이 떠오른다. 참아 밀어버리지 못할 얼굴이다. 손자놈의 얼굴이 지꿎게 떠오를 때면 나는 내 얼굴에 똥칠을 해서라도 내 피줄을 찾아야한다는 드팀없는 욕망이 용암처럼 끓어번진다.
“선식아, 문영이가 이제라도 조선말과 조선글을 배워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 그애를 연길에 보내라. 학비같은건 근심도 하지말고.”
나는 끝내 이 한마디를 전화로 아들 선식이한테 전했을뿐이다. 애비로서, 할아버지로서 응당 감행해야할 의리가 무궁한 용기를 불러일으켰던것이다.
                                  2014, 11, 14          김은철
전화:13514332619



                                2015년 "연변문학"제 1기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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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설야
날자:2016-11-25 17:37:39
전설같은 이야기 재밋게 잘 감상합니다. 오래간만에 좋은 소설 감상했습니다. 좋은 소설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작품 계속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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