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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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최고의 음악
2019년 07월 12일 19시 31분  조회:272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최고의 음악

임은숙

 

‘어정칠월’이라는 말이 있다. 어정어정하는 사이에 칠월이 후딱 가버린다는 뜻이다. 어감도 재미있고 리듬감도 느껴지는 이 말을 우리 인생에 적용해도 참 멋지지 않을가 싶다. 찌는듯한 삼복더위 속에서도 용케 잎을 키우는 나무의 그림자가 8월에 들어서며 여유롭게 그 폭을 넓히고 있다.

8월의 한낮엔 졸음의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다.

깜빡 잠들었다가 사각사각하는 귀맛 좋은 소리에 억지스레 눈을 뜨니 저만치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은 딸애의 뒤모습이 보인다. 짧은 머리에 반나마 드러난 귀염성스러운 귀불 아래로 한쪽 볼이 실룩이는 것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내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덥고 짜증난 일상에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다.

노래말이 아름다워 귀가 솔깃해지는 그 어떤 발라드보다도,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분위기로 마음을 편케 해주는 그 어떤 연주곡보다도 이 시간 내 귀에 머물러있는 딸애의 사과 씹는 소리는 멋지다.

요즘은 거리에 나서면 바람에 날려갈듯 날씬한 몸매와 만화 속의 인물 같이 뾰족한 턱의 서로 비슷비슷해보이는 초고중생들을 많이 본다. 예전에는 아이 서넛을 낳은 중년의 아줌마들 중에서도 극히 소부분이 몸매를 가꾼다며 운동이나 이런저런 다이어트 광고에 관심을 가졌는데 요즘은 십대들 사이에 란무하는 낱말이 다이어트다.

반드시 누우면 배가죽이 등에 가붙은듯 얇고 납죽하고 허리 전체가 내 주먹 안에 들어올듯한 딸애의 입에서 다이어트라는 말이 나오자 눈이 뒤집혀졌던 것이 아마 작년 이맘 때였을 것이다.

워낙에 육류는 피하는 체질이다 보니 작은 도시의 캔터키나 해피나라 등을 전전긍긍하며 미식을 찾던 딸애가, 슈퍼에 가면 무작정 이것저것 쇼핑바구니에 주어담던 딸애가 집어든 과자, 음료 하나하나를 코앞에 바싹 들이대고 유심히 들여다본다. 열량이 얼마, 단백질이 얼마, 지방이 얼마… 하나씩 따져보며 아니다 싶으면 단호히 제자리에 놓아버린다.

그림자처럼 옆을 맴돌며 히히덕거리던 딸애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운동을 한답시고 한시간씩 거실에서 씩씩거리며 뛰지를 않나, 두다리를 곧추 들었다 놓았다 한시도 잠자코 있지를 않는다. 많이 움직여야 살이 찌지 않는다며 꼿꼿한 나의 눈길을 피하며 변명을 늘여놓는다.

끼니때가 되면 똑같이 반복되는 말들 “엄마 밥 조금만 떠주세요”, “저녁은 안 먹겠어요”.

이렇게 달래보고 저렇게 얼러보고 해도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너 그러다가 큰병이라도 생기면 어떡하겠니?”

몇년 전부터 위가 좋지 않아 하루 세끼 식전이면 위약을 먹는다. 약을 먹을 때마다 버릇처럼 한마디씩 해도 들었는지 말았는지 별 반응이 없던 딸애가 문자를 보내왔다.

서편 하늘을 불깃하게 물들이는 노을이 아름다운 오후였다. 

“엄마, 무작정 많이 먹는다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래요. 끼니를 거르지 말고 적당히 먹고 천천히 씹어넘기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며 야식夜食, 과식过食은 하지 말고 과일을 많이 먹는 등 건강한 식습관을 지켜야 한대요.”

오렌지빛 노을 속으로 딸애의 뽀얀 얼굴이 그려진다. 저도 모르게 찰랑이는 미소를 얼굴에 담아보며 바야흐로 땅거미 내려앉을 지평선 끝에 시선을 던졌다.

그 뒤로 놀랍게 변해가는 딸애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안 먹겠다”는 말은 결코 하는 법이 없었다. 한두술이라도 끼니때만 되면 밥을 찾는다. 약처럼 먹는 음식일지라도 열심히 먹으려고 하는 딸애가 사랑스러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

저도 모르게 한입 가득 침이 고이게 하는 새콤한 멜로디, 꽈드득 사각사각… 

내 생에 최고의 음악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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