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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수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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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글: 괄목상대
2011년 03월 23일 10시 23분  조회:6447  추천:24  작성자: 두만강수석회

시조와 수석(6)

괄 목 상 대

신 철 호

두만강수석회가 지난 한해에 걸어온 려정을 조글로(zoglo.net)의 수석코너에서 하루도 빠찜없이 지켜보아왔다. 회원들이 연하고질(煙霞痼疾)이라는 똑같은 벽(癖)을 몸에 담고 한몸 한마음으로 움직이며 거둔 성과들을 지켜볼 때마다 받은 감명을 어찌 다 표현하랴. 일부를 추려서 적으면서 아울러 새해의 새 성과들을 기대한다.

1. 오하아몽(吳下阿蒙)

괄목상대(刮目相對)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한다는 뜻으로서 학식이나 재주 등이 이전과 달리 놀랍도록 향상되었음을 이른 말이다.

『故事名言名句事典』(한국, 平凡社, 1976, p350)에서는 ‘오하아몽(吳下阿蒙)’ 또는 ‘괄목상대(刮目相對)’에 대해 이렇게 적고있다.

삼국시대에 오나라 손권(孫權)의 부하에 여몽(呂蒙)이란 장수가 있었다. 그는 무용은 뛰어났으나 학식이 별로 없었다. 그 여몽이 장군으로 승진이 되었을 때 손권은 그에게 무인도 학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그 뒤로 여몽은 열심히 학문에 힘썼다. 한동안 지난 뒤에 여몽이 노숙(魯肅)을 만났다. 노숙은 손권의 부하 중 가장 학식이 뛰어난 사람으로 여몽과는 오랜 친구 사이었다. 서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노숙은 여몽의 학식에 놀랐다.

노숙은 한편 놀랍고 한편 반가워 여몽의 등을 어루만지며 「나는 그대를 무략(武略)만이 있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학식이 어찌나 대단한지 옛날 오나라 시골에 있을 때의 그 여몽은 아니로군(吾謂大弟但有武略耳 至於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하고 말했다.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선비란 것은 헤어진 지 사흘만 되면 곧 다시 눈을 비비고 서로 대할 정도의 진보를 하는 법이거든(士别三日,卽更刮目相看).」 이 야기는 《삼국지》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 주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잠시 만나지 못한 사이에 놀라운 발전을 한 것을 보고 「오하아몽이 아니다」라고 하고, 반대로 언제나 만나도 늘 그 모양인 것을 가리켜「오하아몽」이라고 한다. 「아몽」의 아(阿)는 중국 사람들이 흔히 이름 위에 붙여 부르는 애칭이다.

또 여몽의 그와 같은 말에서 몰라볼 정도의 발전을 한 것을 보고 「괄목상대(刮目相待, 刮目相對)」할 정도하고 말한다.

수불석권의 보람으로 려몽은 일개 무식한 무장(武將)으로부터 지략이 뛰어난 통수로 되었으며 나중에 관우(關羽)를 물리치고 류비의 손에서 형주를 되찾아오는 공훈을 세웠다.

2. 석도오단(石道五段)

본론, 즉 올해 두만강수석회에서 보여준 괄목상대할 성과를 언급하기 전에 《수호전》을 한번 탐석하듯이 뒤져보자.

저 화화상(花和尙) 로지심(魯智深)이 잦은 말썽때문에 오대산에 더 있지를 못하고 동경에 있는 대상국사로 전근하여 채마전을 관리하는 채두(菜頭)로 임명되는 과정인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채두라는 직명에 로지심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왜 도사(都寺)나 감사(監寺)를 시키지 않고 채마전을 관리하라는 것입니까?”

이를 보고 지객(知客)이 말하였다.

“승문(僧門)의 직사인원(職事人員)들은 각기 등분이 있으니 소승같은 지객은 오가는 타관의 스님들을 접대하는 것이 소임이요, ……도사, 감사, 제점(提點), 원주(院主)는 상주제물(常住祭物)을 관장하는것이 소임이니 모두 상등직사요, 장주(藏主), 전주(殿主), 각주(閣主), 화주(化主), 욕주(浴主)와 같은것은 중등직사요, 다음에 탑두(塔頭), 반두(飯頭), 다두(茶頭), 정두(淨頭), 채두(菜頭)와 같은것은 말단직사지요. 사형께서 만약 일년간 채마전을 잘 관라하시면 다음엔 탑두를 시킬것이고 또 일년 잘하면 욕주를 시킬것이며 또 일년 잘하시면 그때엔 감사를 시킬것입니다.”

스님들이 승진하는데 이런 엄격한 기준이 확실히 있는지 아니면 지객이 몰골이 우악스레 생긴 로지심을 일부러 배척하느라고 꾸며서 말한것인지는 알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석도에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는 규칙이 있다.

석도란 수석을 찾고, 소장하고, 가꾸고, 감상하며, 교환하는 과정에 지켜가는 여려가지 불성문의 규칙을 가리킨다.

유영(俞莹)의 《관상석 투자와 소장(观赏石投资与收藏)》(2002년)에서는 석도를 다섯가지 차원으로 분류하여 서술한바 있는데 지금껏 가장 완벽한 견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실상 석도라는 개념은 대만에서 가장 먼저 생겼으며 20세기 80년대에 대륙에 건너와서 새로운 발전을 하였다고 한다. 하여튼 개혁개방의 덕분임을 명기해야 할 터이다.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잊지 말라고 하였으니.

석도는 차례로 초단이 취미관(趣味观), 2단이 미술관(美术观), 3단이 예술관(艺术观),4단이 추상관(抽象观), 5단이 철리관(哲리观) 등 다섯가지 차원으로 이뤄졌는데, 물론 초기에는 엄격한 귀천의 차이를 나타냈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수석 문화의 외연과 내포가 엄청 넓어지고 커지면서 감상방식의 다양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되었다.

말하자면 석도는 로지심이 채두에서 도사나 감사로 힘겹게 승진하는 그런 상하차별이 엄격한 세로규칙이 아니라 서로 평등하게 교차되면서 서로를 품어주는 가로규칙이다.

수석인들이 자유분방함이 몸에 밴데는 전후좌우를 남남으로 만드는 직함평의와 같은 신분제도의 구속을 벗어나 상대방의 재능과 기질과 습관을 모두 존중하고 받들어 주는 가로기준-석도를 지켜가기 때문이다.

최락당(最樂堂) 랑원군(朗原君, ?~1699)의 시조 “평생에 일이 없어”가 가히 수석인들 기질의 공통분모를 대변할 것 같아 적어본다.

平生에 일이 없어 山水間에 노니다가

江湖에 임자되니 世上일 다 잊었노라

어떻다 江山風月이 긔 벗인가 하노라

이 시조의 뜻풀이하는 것은 공자앞에서 론어를 이야기하는 부질없는 짓이니 보는이들의 자의에 맡기고 본문으로 들어가서 석도를 하나하나 읽어보고 풀어보자.

1) 취미관

림어당(林語堂)이 “인생의 즐거움 중에 취미만한것도 없으며 모든 학문에 있어서도 성취시키는 힘은 모두 취미에서 시작하여 이뤄지는것이다”고 말하였다.

사전에서는 취미를 인간이 기쁨을 얻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있는데 세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마음에 느껴 일어나는 멋이나 정취, 둘째는 아름다움이나 멋을 리해하고 감상하는 능력, 셋째는 전문이나 본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로 좋아하는 일 등이다.

마음에 느껴 일어나는 멋이나 정취를 갖고 재미로 하는 일이니 취미관은 석도의 첫차원이자 그 뒤의 네 차원을 모두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이고 경지이다. 취미를 좁은 의미에서 예술활동, 지식활동, 찾는 활동, 만드는 활동, 순수한 놀이, 모으는 활동, 기르는 활동 등으로 구분하는데 탐석에서부터 평석, 감상, 교류, 교환, 소장, 양석에 이르기까지 옹근 과정에 취미가 빠지면 이뤄질게 하나도 없다.

그러기에 취미관을 가장 저급적인 차원이라 평가하는것은 상당히 무리라 할 수 있다. 두만강수석회 회원들은 이런 공동한 취미를 분모로 하여 모인 “강호의 임자”들이다.

2) 미술관

수석이 되고 못됨은 모양(形), 질(質), 색(色), 자연미, 고태미(古態美) 등 다섯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를 수석미(壽石美)의 오대요소(五大要素)라고 한다. 미술관은 모양, 석질, 색감 등 수석의 형식미를 강조하는 취향에서 생긴것인데 산수경석이나 문양석(文樣石), 물형석(物形石) 등이 그 주요 감상대상이다.

한점의 산수경석이 한폭의 수려한 풍경화처럼 보인다거나, 또는 수석의 표면에 동물의 모습이 핍진하게 그려져 있거나, 수석의 옹근 모양이 마치 삼라만상의 어떤 개체를 닮았다든가 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형언할 수 없는 감탄을 한다면 미술관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돌밭을 땀벌창이 되어 헤매면서 발밑을 뒤지다가 한점의 수석을 발견했을 때 무의식간에 그 발견을 이끌어내며 무한한 희열을 안겨주는 것은 미술관이다. 미술관이 형성되어야 “강산풍월”의 진미를 알 수 있다.

3) 예술관

미술관이 발견의 학문이라면 예술관은 감상의 학문이다.

금방 수석에 입문한 이들의 배낭이 경력자들보다 하냥 무거운 것은 예술관을 바탕으로하는 선별력이 아직 미숙하기때문이다.

감상은 수석과 친숙해지는 행위이다. 수석의 감상은 단순한 느낌이나 생각에 머무는것이 아니라 수석을 깊이 음미하고 삶을 재창조하는 조건을 만드는 행위이다. 말하자면 수석속에 자신을 투영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관적인 행위이다.

가령 한점의 산수경석을 얻었을 때 “아, 멋지게 생겼네,” 또는 “아, 모아산처럼 생겼네” 하는 정도의 감탄에만 머문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상이 아니다. 산수경석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석에 사상과 령혼을 부여하면서 리상경(理想景)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석감상이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수석인들은 한점의 평원석에서 푸르른 초원과 맑은 실개천을 보아내고 한점의 폭포석에서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의 장쾌한 모습을 상상하고 우람찬 소리를 들으며 산정을 감도는 흰 구름을 보아낸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산수경석이 보여주는 표상적인 경관보다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보다 더 황홀한 “새로운 풍경”에서 예술관의 터득여하가 보여진다.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상상하는 것이니 예술관이야말로 아마추어 수석인과 프로 수석인을 구분하는 표준이라 할 수 있다.

4) 추상관

추상관이 무엇인지 알려면 우선 추상석을 말라한 수석의 종류부터 아는것이 바람직하다. 수석의 종류에 대한 나눔이 나라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대개 산수경석, 물형석, 문양석, 색채석, 추상석, 전래석, 화석 등으로 나누는것이 보통이다.

추상석이란 오랜 습관으로 이루어진 고정관념으로는 리해할 수 없고 또 우리의 시야에서 흔히 볼수 있는 형상이 아닌 것으로, 오직 마음속의 깊은 곳에 잠재해있던 령감(靈感)에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수석을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 주변의 사물과 전혀 다르다보니 무엇을 닮지도 않았고 또 뭐라 표현할 수도 없지만 강렬한 인상과 걷잡을 수 없는 감동을 충격처럼 안겨주는 돌을 가리켜 추상석이라 한다.

추상관은 미술관과 예술관이 결합어 한층 발전한 차원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산수석이나 물형석의 범위안에서 쉽게 인지하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떤 미지의 형상을 축소한것같은 어렴풋한 인상에 의해 찾아보고 그 다음 이리저리 관찰하다가 드디여 그동안 닦고 키운 예지가 발동하면서 점입가경하여 저도 모르게 깊은 감동을 받게 될 때면 추상관의 경지에 오른것이다.

추상석은 이처럼 추상관이라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리해되는 돌이므로 추상미를 발견하는 심미안을 키우는데는 일정한 시간과 끈질긴 실천과정, 그리고 리론탐구과정이 수요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리론탐구란 단지 탐석에 관련한 리론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관련한 다양한 리론지식을 가리킨다. 물론 전업적인 화가나 시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이는 누구나 다 될수 있는 일이 아니고 걸을 길도 아니다.

그러나 불문하고 펼경 애석(愛石)은 어떤 술(術)의 테두리가 아니라 학(學)의 테두리 안에서 행하는 예술활동인만큼 학문에 정진하는 자태를 갖춰야 한다. 초학자는 더구나…….

5) 철리관

철리(哲理)란 현묘한 리치 또는 철학상의 리치나 원리를 말한다. 수석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애석생활은 미리속에 형성된 감성적인 형상으로 수석이 간직하고있는 기호를 풀이하면서 인생을 탐구하는 예술적이 생활이다.

탐석은 구속이 없는 평화로운 려행이다. 산수간을 찾아 자연과 사귀면서 일상의 번거로움으로 겪게 되는 공허와 번뇌를 죄다 떨쳐버리고 인간의 본연을 찾아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며, 신선한 바람과 맑은 물과 일생일석같은 수석으로 지친 몸의 병을 털어버리는 일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나이의 차이를 떠나 같은 취미를 가진 선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이루고 다양한 새 지식들을 많이 접촉하면서 유유자적한 삶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이 있는 일이며, 또한 집안 분위기가 밝아지고 가정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한점의 수석은 하나의 자연적인 돌인것이 아니라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비춰주고 인생관과 세계관과 가치관을 도야시켜주면서 미래를 밝혀주는 명경(明鏡)이다. 신이 하사한 최고의 선물이다.

3. 송구영신하며

지난 한해 두만강수석회의 성과는 괄목상대할만하다고 감히 자찬하여도 누가 과하다고 눈을 흘기지는 않을 것이다.

첫째로 지난해에 회원들 모두가 나름대로 일생일석이라 내새울만한 명석들을 얻었다. 연변지역은 지난해에 사상 보기드문 엄청난 물란리를 겪었는데 이는 애석인들에게는 둘도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어느 모래톱이나 산비탈에서 수백년 내지는 수천년을 숨어있던 수석들이 홍수가 지난 후 살며시 나타나 볕쪼임들을 하다가 우리 회원님들의 혜안에 걸려 새세계를 찾게 되었으니 하느님의 은총에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성과가 주렁지니 조글로의 수석코너가 그러께에는 새색시처럼 잠잠하던 것이 지난 한해에는 오하아몽의 태를 싹 벗어버리고 활기찬 모습을 새록새록 보여주면서 연변수석문화 창달의 창구 구실을 출중하게 하여왔다.

모든 성과가 사진과 글에 담겨 만방에 전해졌으니 래년에는 우리의 코너가 더욱 울긋불긋 다채로와지리라 국게 믿는다.

둘째로 수석감상능력이 전례없이 높아졌다.

편지의 문안같았던 상투적인 찬양의 글귀들은 줄어들고 시들이 대거 등장했다. 김봉세회장님이 걸핏하면 시를 쓰더니 인민공원님도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단시가 아니라 장편이다. 그리고 시조로 전문 댓글을 쓰는 회원도 생겨났다.

물론 취미로 쓰는 시들이니 전문가들의 안목으로 보면 입맛이 씁쓰레하겠지만 나름대로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의 도(道)를 터득하여 쓴 시들이니 그 맛의 순수함을 어찌 부인하랴.

“…돌/ 돌을 줍는다/ 세월을 줍는다./ 돌/ 그 돌이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 그 돌이다.”

“광활한 만주벌판/ 천리에 눈 내리고/ 뭇산이 파도치며…”

“…어화라, 참삶도 돌속에서 소생하여/ 하늘밖으로 나는구나.”

… 수석산 진풍경에 내 발이 묶였으니/ 태산에 언제 갈지 내 일 내 몰라라.”

일일이 평어를 쓰는것은 사족이다. 지난해 가을에 추상석들이 많이 소장되면서 회원 모두의 탐석차원은 추상관을 넘어섰고 수석감상도 철리관을 뛰어넘었다. 이렇게 수석의 마력에 끌려서 다들 따로 배운 일이 없이 자연스레 시인으로 되었다.

셋째로 동맹군이 늘었다.

연변에 거주하는 한국 애석인들이 두만강수석회에 합류하여 합동탐석을 수차 하였고 년말총화에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두만강이라는 부름에 마음이 다들 하나로 엉켰으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수석을 통하여 수석의 민족성으로 검증되었다.

또한 소흥에 계시는 두만강님이 오래동안 남방을 싹쓸이 하면서 다니다가 상해에 있는 최성호관장님의 성심수석관과 좋은 인연을 맺고 자주 찾아보고 있다. 그리고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꼭 이룩할 것 같은 큰 꿈들을 키워가고 있다.

이외 조선족 문단의 중견 시인인 초행길님이 노크도 없이 불시에 수석코너에 들어와 수석사진을 올려놓았고 수석관련 시들을 계렬로 올리면서 오랜기간 홀로 익힌 탐석재주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여하튼 수석코너에 이채를 보태준 공로는 누구도 잊지 않을것이다.

넷째로 회원들 사이의 정이 더더욱 토타워졌다.

김회장님이 “그 돌이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 그 돌이다”고 쓴 듯이 두만강수석회 회원들은 하나같이 수석같은 사람들이다.

동서남북에 갈라져있고 국내외에 헤여져 있어도 지척에 있는 듯 서로의 성과를 치하하고 서로의 어려움을 걱정하면서 수석같은 정을 변함없이 나눴고 기회만 있으면 두만강수석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길을 탐색하는데 지혜를 모아왔다.

다섯째로 탐석 공간이 넓어졌다.

그동안 두만강이나 가아야하에 집중되던 탐석공간이 부르하통하 상류나 하류구간같이 이전에는 홀시하고 발길을 끊었던 곳으로 확장되였다. 실은 연변에서 두만강이 가장 큰 강이니 산지도 두만강에 대부분 집중되였지만, 이름없는 실개천이라도 유심히 찾아보면 명석이 나타나지 않을 리 없다. 산천경개 수려한 연변의 어느 강엔들 수석이 없으랴.

큰 곳과 많은 곳만 찾아가야 많은 것이 차려지는 것은 아니다. 얻는것보다 오히려 찾는것에서 더 보람을 느끼면서 천하를 도보로 주름잡는 사람들이 곧 애석인이다.

여하튼 지난 한해의 성과는 한마디로 괄목상대할만한 성과였다.

4. 마무리하며

정태화(鄭太和. 1602~1673)는 자가 유춘(囿春), 호는 양파(陽波). 본관은 동래(東萊). 아버지는 형조판서 광성(廣成)이며, 동생이 좌의정 치화(致和), 예조참판 만화(萬和)이다. 1673년(현종14) 심한 중풍으로 사직할 때까지 20여 년 간 효종·현종 때 영의정을 5차례나 지내는 등 생애에 여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정승 황희(黃喜)하면 누구나 알아도 그와 버금갈 정도로 오랜 기간 정승을 지낸 사람이 정태화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술을 취게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 하리라”

정태화의 시조를 읽노라니 호남아의 기질이 짙은 술향기처럼 풍겨온다.

애석인들에게 수석은 억만 시름을 전송하는 술이다. 완월장취(玩月長醉)라 했으니 달밤에 피여오르는 주향(酒香)처럼 석향(石香)도 한 사람을 취케하여 석도오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무아의 리상경을 찾아 가게 하노니 이보다 더 즐거운 재미가 어데 있으랴. 석향은 무르익어가는데 밤의 짧음을 한탄한적이 한두번뿐이랴.

억만 시름을 전송하는 초아의 경지, 참삶도 돌속에서 소생하여 날아가는 하늘밖- 수석이 보여주는 세계, 수석인들이 추구하고 살아는 리상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이다.

새해에는 우리의 수석코너를 통해 두만강수석회의 석향이 더 넓게 피여나 만방에 펴져가기를 바란다. (***)

2011년 01월 03일

한국에서

부록: 시진속의 평원석과 한점과 섬형석 두점은 필자가 수학여행을 가서 의외로 얻은 소품석들입니다. 전문 탐석을 할 수 없었던 경우였던만큼 얻은 것만으로도 기뻐서 그냥 잘 소장하고있습니다. 날마다 물을 주면서 이끼를 파랗게 키우는 재미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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