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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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단평
2016년 09월 14일 16시 09분  조회:2109  추천:4  작성자: 허창렬
오늘의 단평

"변형의 자유"

  허인

  변형의 자유ㅡ라고 적어놓고 보니 마음에 쏙 드는 글귀가 된것 같다. 변창렬시인을 다정하게 형이라 부를수 있는 속칭 "변형"도 되고 또한 변화의 조짐이나 그러한 형상을 통 털어 일컬을수 있는 변이상학적이 이미지도 되니깐 말이다ㅡ 변창렬시인의 자유의 무변에는 언제나 시인이 속사로 스케치하는 한폭의 민속화ㅡ 즉 우리들이 이 세상을 오손도손ㅡ 대대손손ㅡ 살아가는 모습이 생동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것이 특징이 된다.

  "별의 가게"는 시제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자연과 우주를 폭 넓게 우리들의 인생관,  자연관, 우주관을 통 털어 말 그대로 삶의 터전으로 삼고서 별을 장터에 내여놓고 값도 정하여 놓고 팔고 사려 하는 시인의 지극히 완결한 장인정신이 매우 돋보이게 하는 한수의 좋은 시임이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시속의 화자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가게의 난전에 올려놓고 무더운 여름밤에 수박 팔듯이 팔고 계시는 아버지의 익숙하면서도 노련한 장사꾼 형상이다. 왜서 시인의 이러한 구상이 저처럼 스스럼없고 거침없이 가능하였던것일가? 필자가 살펴 보건대 그것은 곧 달관의 경지에 올라선 자들만이 누릴수 있는 그러한 특권으로 보여진다.불교에 하늘이 아무리 크고 넓은듯 하나 결국 마음보다 작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상상의 폭도 넓은것이 이 시의 제일 큰 특징이 된다. 다 함께 조심스레 본문을 배우는 마음으로 읽어보도록 하자!

/북극성이 간판을 걸었다/아버지는 별을 팔고 계신다/에서는 긴장하지도 조급하지도 않게 더우기 느긋하나 군더더기 한마디 없이 직설적인듯이 은유의 극치로 시작한 시인의 첫 스케치에서 독자들이 자연스레 머리속에 떠올릴수 있는것은 번잡한듯이 번화한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이다. 다만 이렇게 다정다감한 모습이 실생활 우리들의 근처에서 벌어지는것이 아니라 만지면 말랑말랑한 인정이 금방 손에 묻어날듯이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작자는 우리네 인생을 달관의 경지로 우주관에 더욱 큰 무대를 설정하였기에 신비롭고 익숙하고 또한 자연스레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 모은것이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이였던것 같다.그리고 2련에서 /익는족족 팔려 나간다/와 3련에서 /한뼘 밫은 천냥/두팔 빛은 만냥/ 이라는 구체적인 별들의 가격에서 빛을 내려주시는 어버지의 형상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그 모습이 더욱 거룩하심을 우연이 아닌 자각적으로 발견할수가 있다. 절에 부처가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에 부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렇듯 작자의 천인합일의 인문주의적 사상, 즉 휴머니즘 정신은 더욱 돋보이기도 하다.

  ( 포스턴 미국시)를 저술한적이 있는 마자로(
Mazzarro)교수는 언어문제에 있어서 모더니즘은 서정시 형식속에서 언어를 다시 만들거나 정화시키는 반면 언어의 타락성과 우연성도 수용한다고 말한적이 있다. 초기의 농경시, 경물시와는 달리 너무나도 능수능란하게 언어련금술을 다루어가는 변시인의 모습은 말 그대로 그야말로 눈부시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다. 오직 나만이 쓸수 있고 오직 내가 써야  완성이 가능한 오늘의 좋은 시 한수 "별의 가게" 오늘도 한국 어디 건설현장에서 사람좋게 웃고 계실 변시인님, 변형ㅡ좋은 글 더 많이 쓰세요.

2016.9.11



우산 / 김 연

*
누구의것일까
고독과 외로움이
파르르 떨린다

*
저 비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초점 잃은 눈동자들이
파르르 떨려야 할가

*
모른다
모르겠다
오늘은 진짜 모를것 같다

*
고독이
내몸에서
한뼘씩 자란다

*
내 안의 흐느낌소리를
저 어둠속의 귀뚜람소리가
덮어주기엔 더 외로울것

*
우산을 들고 있은들
젖지 않을소냐
마음이 우산을 잃어버렸는데


2016.9.10


 오늘의 단평

허인

  김연의 시는 깔끔하고 항상 마무리가 좋다. 이번에 보내온 "우산"의 경우 자칫하면 군락을 이룬 고독속에서 갈길을 잃고 우왕좌왕 허덕이지나 않을가 읽는 순간 조금 근심스러웠는데 이외로 마지막 련 ㅡ 마무리에서 우산이라는 큰 그릇에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세상을 담고 서서히 시흥이 부풀어 오르는 자신도 담아 공명감이  큰것 같다.

   고백시에 속하는 이 시는 작자의 의문도 긍정도,  부정도 해학적으로 풀이해가면서 심층 저변에 깔려 있음직한 심리묘사를 단순히 토로한것이 아니라 색감을 조절해가듯이 어두운것 같지만 발랄하게, 부정적인것 같지만 아주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돋보이는것 같다. 한수의 시가 갖는 의미는 이외로 너무나도 크다. 그래서 시인은 시에 미쳐 사는 인생의 고달픈 길을 서슴없이 선택하고 거침없이 혼자라도 걸어가는것이 아닐가?

  시어의 선택은 흔히 접사와 부사, 그리고 형용사가 명사의 뒤에 따라붙는 경우가 허다한것 같다. 이 시에서도 곰곰히 살펴보면 /고독과 외로움/뒤에 /파르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다. /눈동자/뒤에 또 /파르르, 그리고 제 3련에서/모른다/모르겠다/오늘은 진짜 모를것 같다/는 참 미묘한 태도표시로써 전번 이 시를 은닉하듯이 처음으로 명확한 태도를 표시하여 오히려 당당한 느낌을 주는듯한 힌트로 보인다. 이러한 교대가 있었길래 고독이 한뼘씩 자라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등장하고 제일 마지막 련에서 /우산을 들고 있은들/젖지 않을소냐/마음이 우산을 잃어버렸는데/라는 리듬감이 있고 탄탄한 철리적인 구조물에 새롭게 페인트칠을 올려 더욱 생신하게 느껴지는 시어들을 견인해내여 전반 시의 흐름이 조금 어두운듯이 보이지만 곰곰히 수판알 튕겨가며 계산하듯이 따지고 보면 이외로 작자가 세상을 대하는  발랄한 모습이 보이는듯 싶다.
 
  예술가는 경험을 판단하는 재판관도, 삶을 가르치는 훈장도 아니며, 삶과 예술에 담겨 있는 경이로운 불확실성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주는 길잡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환상을 버릴수 있다는 환상도 다른 그 어떤 환상과 마찬가지로 환상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시인이 한수의 시를 세상에 내여놓는 순간 판단은 독자의 몫이 된다. 김연씨의 "우산"은 담담한 가을에 담담하게 읽기 쉬운 좋은 시라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 최문수
 
내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조용함이 좋아서 입니다.
말없이 옆에서 지켜주는 조용함이 좋아서 입니다.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눈빛이 좋아서 입니다.
담담한 웃음으로 가득찬 눈빛이 좋아서 입니다.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선량함이 좋아서 입니다.
저보다 남을 더 생각해주는 선량함이 좋아서 입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기에
무더운 날 서늘한 그늘이 되여주고 싶고
비오는 날 쥐여진 우산이 되여주고 싶고
눈오는 날 따끈한 화로가 되여주고 싶습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이 되였습니다.
그대와 있었던 때를 생각하면
행복의 웃음이 저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였고
자신의 책임을 알게 되였고
자신의 인생을 다시 알게 되였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설레임과 끌림으로 뿌린 종자를
편안함과 선량함으로 싹을 틔우고
믿음과 신임으로 정히 키워서
양보와 인내로 결실을 맺게하는 과정입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나와
나를 사랑하는 그대가
걸어야 할 길은 이제 시작입니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고
한발작 한발작씩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
 
===
 
시를 보내며:
저는 현재 북경의 모 미국IT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있는 최문수 입니다. 2004년 어느날, 홀몸으로 트렁크 하나 끌고 북경역에 내려서 시작된 저의 북경표류(北漂)가 지금 북경에 뿌리를 박고 사랑스런 안해, 귀여운 아들, 존경스러운 부모님, 든든한 동생까지 모두 함께하는 북경생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가 결혼 10주년을 맞으면서 저와 함께 북경에서 분투해온 사랑하는 안해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단평

최민수는 시인인가?

허인

   최민수가 누구이지? 시인인가? 기업인인가? 아니면 샐러리맨? 솔직히 필자도 아직 잘 모른다. 다만 익숙한 지인의 모멘트에 들어갔다가 이외로 그의 옹달샘처럼 시원 달콤하고 정갈한 사랑시 한수 읽고서 지금 이 글을 쓴다.

    60년대 기성의 모더니즘 시학을 해체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또 하나의 대안을 찾았던 시 동인들, 그들이 곧바로 "뉴욕파 시인"들이다. 그러나 올슨의 투사시, 긴수버그의 비트시, 블라이의 심상시는 명쾌한 시적 프로그램ㅡ즉 자신들만의 완정한 시학을 채 갖추지를 못하였다. 공통성의 결여라는 어려움이 있었기때문이였다. 허나 그들이 끈끈히 한시대 어울릴수 있었던 까닭을 필자는 비록 맡은바 분야는 다르지만 호상 상대를 존중하고 호상 배우려는 진지한 태도가 있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였을가 생각한다.

  말 그대로 최민수는 문단에서 아직 무척 생소한 그런 이름이다. 그런 그의 시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진지한 사랑이야기를 한줄로 엮어 차츰 무르익어 가는 꽃향기에 누구나 콧구멍을 벌름거릴 정도로  시샘이 날만한 시를 써내고 있다  ./ 내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조용함이 좋아서 입니다./에서의 조용함, 다음 2련에서의 눈빛과 웃음,
3련에서의 선량함에 대한 정확한 태도표시를 4련에서/무더운 날 서늘한 그늘이 되여주고 싶고
/비오는 날 쥐여진 우산이 되여주고 싶고/
눈오는 날 따끈한 화로가 되여주고 싶습니다./로 명확하게 전달한다. 누구나 알고 있다싶이 사랑은 받는것만이 아니고 또한 돌려 줘야 하는것이기에/그대를 사랑하기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이 되였습니다./그대와 있었던 때를 생각하면 행복의 웃음이 저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로 받은 것보다 몇배로 돌려주려 하는 작자의 진지한 삶의 태도가 감동의 하모니를 불러 일으키는듯 하다. 순수한 한편의 전통적 고백시에 속하는 이 시는 기승전결에 힘 입어 시의 구조가 뚜렷하고 주제가 더욱 뚜렷한것이 특징이 된다. 부족한 점이라면 전통에 너무 얽매여 새로운 기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것이 좀 아쉬운것 같다.

  스티븐스의 (삶을 발견하려는 시도)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시에 이런 구절이 한 대목 있다. /초록색 장미꽃들이 연기처럼 아련히 식탁에서 떠올랐다. /노란색의 광채를 띠고 부풀어 올랐다. /검은 꽃이 피는 속에서 흰 꽃이 피는 속에서ㅡ/같은 내용일지라도 표현하고저 하는 작자의 심미효과는 무척 다를수 있다는 그런 말이 된다. 암튼 최문수님의 사랑시 "사랑하는 그대에게"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강한 사랑의 충동에 빠져 보고싶은 이 느낌은 무엇이지? 최민수는 시인이 맞다. 이처럼 훌륭한 시를 써낼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틀림없으리라 믿는다. 최민수의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이 가을에 읽기 아주 딱 좋은 한수의 좋은 사랑시라고 생각한다.


수필

비를 부탁해/청도 전향미

비가 오려나보다.

쿰쿰한 흙냄새를 앞세우고 땅의 기운이 올라온다.
풀들은 살랑살랑, 나무들은 으쓱으쓱 목을 뺀다.

말라비틀어졌던 공기는 촉촉하게 살아나고, 촐싹대던 먼지는 몸을 잔뜩 움츠린다.
비가 오려나?

쌀뜨물을 확 뿌려놓은듯한 하늘에는 먹구름이 푹 퍼져있다. 비 오기 전 고요함과 어둑어둑함, 낮인지 밤인지 아리송해지는 공간에서, 내 신경세포가 흥분하기 시작한다. 날씨가 꾸리꾸리하면 굳어지는 얼굴들 사이로 유독 내 얼굴만 흐물흐물 빛나는거 같아 은근히 눈치가 보인다.
그러나 내 좋은걸 어찌하리.

툭! 첫 빗방울이 볼을 친다.  
비가 오나?  고개를 한껏 젖히고 하늘을 본다.  

툭툭! 올려 쳐다보는 면상을 제법 친다. 이마를 갈기고 코밑에 콧물처럼 매달린다. 두 뺨에, 관자놀이에, 입가에도 똘랑똘랑 떨어진다. 수분팩이 따로 없고 물안마가 따로 없다. 하늘이 베풀어주는 은총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툭툭툭! 빗방울이 흙바닥에 부딪치면 놀란 먼지가 해뜩 까뒤집히며 폴싹 날아오른다. 사람들 발뒤축에서 설치던 먼지도 간만에 흙을 깔고 앉아 목을 추기며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됐다.

이제 나는 젖을랑 말랑 하는 땅을 밟으며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해준 할머니의 풍경을 꺼내든다.   
 꽃비가 방울방울 내리꽂히며 늘쩡늘쩡 수작을 부릴 즈음이면 할머니가 날 부르는 소리가 노래처럼  빗속에 울려 퍼진다.

“향미야~ 비 온다. 비 온다! ”
“빨리 거둬야겠다.” 

타닥 타닥~ 아버지가 땔감으로 베어 말려놓은 풀들사이로 빗방울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
“다 말라가는데 비꼬치질하네.”

온 동네가 비설거지하느라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는 풍경에는 꼭 할머니가 계셨다. 싸리나무로 만든 발을 둘둘 감고, 널어논 빨래를 걷어들이고, 마른 땔감들을 긴 갈쿠리로 쓱쓱 긁어모은다. 그럴 때면 한참을 내려다보던 먹구름이 맞춤하게 시간을 잡아 쏴~하고 빗줄기를 쏟아붓는다. 기관총 쏘아대듯 따따따따 장독 뚜껑을 두드려대면 할머니는 급기야 아이구야 어이구야 소리질르시며 집안으로 뛰어들어오셨다. 그리고는 그린 듯이 방에 앉아계셨다. 비안개 가득한 앞 논밭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계시는 할머니는 18세 소녀보다 더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나는 그 어디에서도 우리 할머니보다 더 예쁜 할머니를 본 적이 없다고 감히 지껄이고 싶다. 갸름하고 아담한 얼굴에는 미국 사람처럼 오뚝 솟은 코가 한자리를 크게 차지했고, 머리는 항상 곱게 틀어올려 옆 사람 눈을 찌를 듯 기다란 비녀를 꼽았다. 여덟 살때 민며느리로 시집와서 두만강 건너 만주 땅에 정착한 할머니는 비 오는 날이면 무슨 상념에 잠기시는 걸까?
“할매 비 오는게 좋아?”

“어. 그래.” 할머니 입속에서 맴도는 소리 분명히 들었다. 
개학하여 장춘학교로 떠나는 날 새벽, 짐을 챙기는 나를 바라보면서 할머니는 갑자기 통곡하셨다.

“향미야. 너 학교 안 다니면 안 돼? 선생한테 한번 말해보렴.”
그날 길림을 거쳐 장춘으로 가는 길에는 무슨 비인지 모를 비가 오락가락 내렸고, 나는 비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꽤 오래동안 거의 페인이 되어 지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리고 꽤 오래동안 비 오기전 적막을 무서워했고, 비꼬치질 시작할 때의 그 빗소리를 무서워했다.
  그러나 이제 이 불굴의 아줌마는 비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좋아진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지나오면서 비가 주는 미학을 느껴가기 시작한 때문이다. 비오는 날은 비를 사랑한 할머니처럼 한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소녀 같은 감수성에 젖어 비가 오는 창밖을 넔 잃고 바라보던 할머니, 그러한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 뒤에는 쏟아져내리는 비를 넔 잃고 바라보는 내가 있었다.
이슬비, 보슬비, 소낙비, 비 소식은 항상 눈에 착착 들어온다. 간혹 오보가 되는 날에는 슬그머니 화가 난다. 비 오는 흉내를 내다가 어정쩡하게 해가 나면 또 화가 난다.

비가 오기나 하려나? 정말 오시려나?
오-이런 날 이런 때에는 그리움에 싹을 틔울 비다운 비나 쏟아져라- 빈다.



"비를 부탁해"

 오늘의 단평

   허인

   비 온뒤의 그 청신함을 잘 알고 있는 수필가 전향미씨는 맑은 날이 아닌 비 오는 날마저 녀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즐기려 한다. 지어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거나 회피하려는것이 아니라 깁스가 없고 기스도 아직 나지 않은 아주 순수한 소녀의 마음으로  오히려 간절히 바라기도 하며 즐기려 하는것 같다. 왜서 이처럼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도 같은 컨트롤에  독자들응 끌리듯이 동감이 가는걸가? 가만히 살펴보면 함께 공유할수 있다는 그 상상 하나만으로도 다 함께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후련해지고 싶은 간절한 소망때문이 아닐가 싶다. 마치 흙탕물이 튀여 올라 어지러워 지면 구겨진 옷, 혹은 인생일지라도 깨끗이 빨아 얼키고 설킨 빨래줄에 훌훌 널어 말리우고 싶은 세탁물처럼 다듬이질이 너무 필요한 우리들의 삶의 태도에 공명감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가고 생각도 해본다. 우리네 인생은  알고보면 더하기도 덜기도 아니다. 오직 오늘뿐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가진것이 점전 많아지고 추억도 점차 많아지는것은 시실이지만 인간은 태여난 그 순간부터 덜기 인생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생도리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전향미씨의 비를 기다리는 마음을 독자들은 함께 공유할수도 있고  또한 파편적인 아픈 기억으로 함께 실감할수가 있었던것 같다.그럼 여기서부터 우리 다 함께 전향미씨의 수필 "비를 부탁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쿰쿰(여기서 쿨쿨하다는 표현을 썼으면 더욱 좋을것 같은 느낀)한 흙냄새를 앞세우고 땅의 기운이 올라온다. /풀들은 살랑살랑, 나무들은 으쓱으쓱 목을 뺀다. /말라비틀어졌던 공기는 촉촉하게 살아나고, /촐싹대던 먼지는 몸을 잔뜩 움츠린다. /비가 오려나?/ 이러한 표현들은 너무 좋아 보인다./툭! 첫 빗방울이 볼을 친다.  /
비가 오나?  고개를 한껏 젖히고 하늘을 본다.  /
툭툭! 올려 쳐다보는 면상을 제법 친다. /이마를 갈기고 코밑에 콧물처럼 매달린다./ 두 뺨에, 관자놀이에, 입가에도 똘랑똘랑 떨어진다./ 수분팩이 따로 없고 물안마가 따로 없다./ 하늘이 베풀어주는 은총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이러한 구체적인 서술묘사에서는 순리를 거슬리려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기려는 작자의 성숙된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듯 하다./이제 나는 젖을랑 말랑 하는 땅을 밟으며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해준 할머니의 풍경을 꺼내든다. /짜깁기식이 아닌 작자의 이런 아주 자연스런 표현은 독자들을 할머니와 나, 그리고 아버지의 세계로 단번에 끌어들여 추억의 한 자락에 돛자리를 정히 펴놓은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향미야~ 비 온다. 비 온다! ”/“빨리 거둬야겠다.”  /에서부터
시작된 동년의 파아란 기억이 비를 기다리게 되는 작자의 가장 기본적인 스토리로 되고 있는듯 하다.

   한마디로 전향미의 수필  "비를 부탁해"는 물질문명의 충격으로 인정이 차츰 말라가는 요즘 시대 추억과 더불어 읽어볼만한 좋은 수필이라고 생각된다. 부족한 점이라면 거의 절반 정도 경물묘사에 치우치다 보니 할머니의 갑작스런 사망을 너무 간결하게 묘사하게 충격이 독자들에게 진한 아픔으로 잘 전달되지 않은듯 하다. 백문불여 일견이라고 한번쯤 읽어보고 함께 토의하여도 괜찮을 상 싶다. 전향미님, 더욱 좋은 글을 더 많이 쓰세요.


2016. 9.12


오늘의 단평

동시인 강려

허인

   동시인 강려씨는 몸이 좀 불편한줄로 안다. 그러한 그의 시적인 구상과 순발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간혹 누가 즉석에서 즉흥시 한수라도 읊을라 치면 그 자리에서 계발을 받고 깔끔한 동시를 척척 만들어내는 그런 재주가 있는것 같다. 실지로 며칠전 필자의 "악어의 눈물"이라는 시를 보고 단숨에 적어보낸 그의 "악어의 소리"라는 동시를 여기서 잠간 올려놓고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악어소리 / 강려

무엇에
놀랐니


놀랐니

악ㅡ
악ㅡ

   잡음 하나 없는 맑은 라디오 소리가 귓가에 챙챙하게 들려오는 그런 느낌이 든다. 또한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산들바람이 딲아놓은 가을 하늘처럼 깨끗해 보인다. 깔끔하면서도 여운이 큰것이 이 동시의 가장 큰 특징인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동시를 필자는 아직 써본적이 없다. 허나 시적인 운률이나 률동, 그리고 리듬감이나 울림이 남겨주는 여운은 성인시와 별반 다름이 없는것으로 보여진다. 제일 중요한것이 동심을 사로잡고 누구나 입에 쉽게 올릴수 있고 암기할수 있는 그런것이 동시가 아닐가 싶다. 이 방면에서 필자는 누가 뭐라해도 김철호, 림금산, 그리고 현재 소주에서 복장공장을 운영하고 있눈 김성룡씨를 첫손에 꼽고싶다. 그럼 여기서 다 함께 강려씨의 근작시들을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나비 (외 2수 )  / 강려
 
 
들꽃이
개여놓은
하얀 이불에
하늘 층계



 
바람이
노란 필통 살짝
열면
햇살같은
연필이



 
 
실국화
 
 
요기에선
노란 수세미 ( 清洁球)
꼬불꼬불
 
 
조기에선
노란 라면이
꾸불꾸불
 
 
이슬
 
 
빨강
노랑
하양
눈귀에
눈꼽재
방울
방울
매달렸네
 
 
봄바람이




솔솔 닦아주네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아름다운 선경과도 같은 절경이라 말을 해야 할것 같다. 말 그대로 작자의  창의력에 감탄이 나올뿐이다. 아직도 동심이 파릇파릇 싹 트고 있는 시인의 순진하고 해맑은 세상에서 불쑥 눈망울이 올롱한 사슴 한마리 만난듯이 동시를 읽으면서 함께 가슴 벅천 그런 느낌이 스며든다.들꽃, 하늘 층계, 그리고 실국화에서 꼬불꼬불과 꾸불꾸불은 완벽하리만치 나비와 실국화의 형상을 읽는이들의 눈앞에 재현하여 한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마주섰을때의 진한 감동과 공명감을 독자들에게 한꺼번에 선물하는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부족한 점이라면 김철호시인님의 "줄말"이나 "경비원 아저씨"처럼 인성화가 완성된 신선한 충격이 아직은 약해 보이는듯하다. 암튼 많지 않은 동시인중 강려씨의 동시는 항상 자신만의 특색이 있는것만은 분명하다. 첫술에 배 부를수는 없다. 강려씨 더 좋은 동시 더 많이 창작하여 중국 조선족문단을 짊어지고 나갈 동시인이 되세요.

2016. 9.12


수필

담담해지고 싶다

 (광동) 김금단

  요즘 들어 웬지 담담한것들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담담히 하늘을 맴돌고있는 하얀 구름, 담담한 향기를 뿜는 계화꽃 향기, 담담한 미소…담담한것들을 보노라면 나도 웬지 담담해지고싶다.
  엘리베이터안에서 전자감응 부위에 손을 내밀어 엘리베이터를 안전하게 탈수 있도록 하는 그 담담한 동작 하나에 타인을 배려하는 이웃의 너그러운 마음이 엿보인다.
  부엌에서 행주치마를 두른 엄마의 담담한 모습에는 한 가정의 음식과 건강을 챙기는 엄마의 정성이 엿보인다.
  남편의 손이 내 손을 잡아줄 때 나의 오른손이 왼손을 잡는것처럼 담담하게 느껴지는것은 남편과 내가 둘 아닌 일심일체가 되였다는 뜻이다.
  어렸을적 새옷을 사입은 기억이 나에겐 별로 없다. 언니에게는 늘 새옷이 차례졌지만 둘째인 나는 항상 언니에게서 옷을 물려 입었고 내가 물려 입은 옷은 대물림 보배마냥 동생들에게로 물려졌다. 나의 동년은 언제나 날고 색이 바랜 옷들이 나를 동반하였다. 그 세월이 비록 빨강, 노랑, 파랑, 분홍, 연두빛이 아닌 색바랜 담담한 나날들의 지속이였지만 집안에는 봄 아지랑이마냥 웃음이 가물가물 피여올랐다.
  현시대는 동년과 달리 물질이 란무하는 풍요로운 시대다. 견물생심이라고 이쁜 옷을 보면 사입고 싶은것은 누구나가 가질수 있는 마음이 아닐가. 욕심, 사치, 허영, 진실, 용기, 어리석은 거짓말, 아첨 등 단어를 떠올리는 안데르쎈의 동화 "황제의 새옷",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어른의 모습을 꼬집어서 보여주지만 다른 한 측면으로 새옷을 입기 좋아하는 인간의 천성을 그대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딸애가 유치원을 다닐 때인 다섯살적 일로 기억된다. 어느 한번 명절을 앞두고 일찍 유치원에 딸애를 데리러 갔을 때 마침 정장에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마침 아들을 데리러 왔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 아저씨는 너무나 품위 있어보이고 멋졌다. 딸애가 그 아저씨를 보더니 나를 잡아당기면서 내 귀에 대고 귀속말로“엄마, 나 저 아저씨랑 결혼할래.”라고 하는것이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딸애의 눈에도 그 아저씨가 너무나 멋져보였던 모양이다. 옷이 날개란 말을 그대로 보여준 한단락 이야기다.
  아빠트 1-3층에 백화점이 입주해있다보니 소금 한봉지를 사러 내려갈 때도 있고 무우 한뿌리를 사러 내려갈 때도 있다. 편리하다보니 자주 드나들게 된다. 백화점안에 발을 디디면 명품 가방이며 명품 신발, 명품 옷들이 눈길만 주어도 나를 향해 손짓하며 유혹한다. 특히도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같은 구두며, 마네킹에 이쁘게 입혀진 연한 색상 계렬의 원피스며 블라우스며 자연스레 조화된 멋진 디자인의 이쁜 옷들은 더욱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인가? 아니면 적당한 크기가 없어서인가? 그 어느쪽이든 백화점의 그 진한 명품 유혹에 빠져들기 전에 내가 담담해지고 마음을 비울수 있는것은 우리 집 옷장과 신발장에 명품 옷과 명품 신발들이 가득 차면 그만큼 남편의 어깨가 무거워진다는 도리를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진한 유혹에 담담해지는것이 내 가정을 지키는 비결임을 난 잘 알고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나는 명품 아닌 “못난 옷”을 입고 나의 가정을 지키련다.
  한달전에 남편은 한국에서 나와 딸이 입을 옷을 20여견지 부쳐왔다. 한동안은 입을만한 옷들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주 더 필요한 옷이 없는가 하고 문의한다. 나에겐 필요한 몇컬레의 옷만 있으면 된다. 날마다 새옷을 바꿔입는다 해도 그건 잠깐의 기쁨이지 행복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거절한다.
  남편이 급여를 남들보다 많게 받든 적게 받든 나는 종래로 남들과 비교한적이 없다. 욕심을 버리고 담담해져야만 내 마음이 편해지고 내 마음이 편해져야만 가정도 편해지기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부는 부엌아궁이의 석탄불처럼 처음에는 뜨거운 사랑으로 활활 불타오르다가 나중에 오른손이 왼손을 잡는 담담한 느낌으로 인생의 기나긴 려정을 함께 걸어가는 삶의 동반자다. 담담한 느낌으로 서로 이마의 늘어나는 주름살도 보면서, 한올 두올 늘어나는 흰머리도 보면서 인생을 수놓아가는것이 행복이 아닐가.
  얼마전 신문에서 비오는 날 교통사고로 길가에 쓰러진 할머니에게 우산을 받쳐 비를 막아주면서 구급차를 기다린 9살 어린이의 이야기를 실은 기사를 본적이 있다. 갈수록 살벌하고 인정이 삭막해지는 사회에서 9살 어린이는 여린 손으로 담담하게 우산을 들어 온 세상에 훈훈한 사랑을 과시하였다.
  빈손으로 태여났다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인간은 남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바줄에 목매여 의기소침해지고 기쁨을 상실하며 세상살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타인과의 무의미한 비교, 완전완미하게 살아보겠다는 덫이 행복을 야금야금 좀 먹고있음을 망각하고있는것 같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것은 신기하다고 하고 싫어하는것은 썩었다고 한다. 그러나 썩은것이 다시 변하여 신기한것이 되고 신기한것이 변하여 썩은것이 된다.”는 장자의 말처럼 세상에는 어쩌면 영원한 진리나 진실은 없는것 같다. 내가 오늘 굳게 믿는 신념이 래일에는 허영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늘의 모든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욕심을 버리고 담담하게 살아야만 인간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수 있는것이 아닐가.
  비록 사치스런 소비가 없고 큰일을 해내지 못했고 뭔가 남들보다 부족해도 마시는 물처럼 담담한것이 생활이고 또 행복인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담담한 마음으로 마주할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단평

    김금단의 수필은 말 그대로 담담하다. 담담하다 못해 조금 지루할 정도로ㅡ 헌데 읽다보면 애써 담담해지려는 작자의 노력이 더욱 가상하게 느껴지며 수풀을 이룬 물방울들의 즐거운 환성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단지 둘째라는 피면치 못할 리유에서 오는 피해의식은 평생을 가는가 보다. 어려서 부터 언니의 퇴물림 옷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이 세상의 알록달록 고운 색깔에 둔감한척 너무 민감한 자신의 본능을 일깨워 가며 현시대의 금전만능, 물질주의 현상에 슬며시 비판의 자대를 대여도 보고 담담해져야 하는 리유를 독특한 개인의식으로 설파하려는 김금단씨ㅡ 그래서 독자들도 담담한 기분으로 차 한잔에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게 드는듯 하다.

   수필의 매력은 단순한 신변잡기가 아닌 자유분방한 필치, 울림이 있고 재차 울림이 더 있고 예상치 못한 파멸 효과, 즉 일반적인 인식에 관한 파괴력이 있어야 공명감이 큰것으로 짐작된다. 이 방면에서 청도 장학규형의 (인성을 석방하라), (머리 잃은 곤혹)을 필자는 비교적 높은 좀수를 주고 싶다. 제목이 시사하는바와 같이 울림이 크기때문이다. 마치 읽기도전에 제목만 보고서도 공명감이 산생하는 그렁 마력적인 파급효과가 있기때문이 아니였을가 필자 너름대로 생각해본다.
솔직히 김금단 님의 담담하고싶다는 그런 공명감이 좀 많이 약해 보인다.

   허나 깔끔한 문필이 성숙한 작자의 운치를 한결 돋보이게 하는듯 하다. 어디 한구석도 빈틈이 없이 자신의 넓은 세상을 비교로, 대조로 밝은 해빛으로 꽉 채워 보려하는 진보적인 인생모습, 그리고 잘 짜여진 인생극본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듯한 한결 완숙한 녀인의 세계에서 작자의 일상 생활이 두눈에 또렷이 보이는것이 특장이라 해야 할것 같다. 공자는 일찍 논어에서 배움은 끝이 없다고 말을 한적이 있다. 김금단씨 덕분에 수필 잘 읽었구요, 좋은 글 더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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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전향미
날자:2018-04-11 01:00:54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다시 단평을 읽어보며, 부족한 글에 시간을 할애하여 평론까지 해주신 허선생님께 머리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2   작성자 : 김금단
날자:2016-09-16 12:52:11
허선생님: 단평 감사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1   작성자 : 강려
날자:2016-09-14 19:45:06
졸작인데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더 잘 쓰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입니다 허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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