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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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
2009년 02월 02일 10시 40분  조회:3001  추천:32  작성자: 허련순

[단편소설]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


허련순



1

    그때  어렴풋이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세번을 울리고 조금 쉬였다가 다시 세번씩 꾸준하게 울리고있었다. 누구지? 무심히 몸을 일으키다가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도로 누워버렸다. 어제밤에 밤늦도록 장사를 하고 새벽녘에 돌아와 겨우 눈을 붙인지 얼마 안되였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낮장사를 할려면 만사 젖혀놓고 잠을 자두어야 했다.  열어주지 않으면  물러가겠지… 제가 바쁘면 다른 시간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라구… 나는 다시 잠을 청하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하지만 주저하듯 주춤주춤 움추린 소리가 끊어지는듯하다가는 다시 이어지면서 지루하게 울렸다. 마치 쇠붙이로 유리를 긁는 소리처럼 신경을 자극하여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쉽게 포기할것 같지 않았다. 열어주지 않으면 그냥 돌아갈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열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차피 다시 잠들기는 틀렸다. 나는 침대아래에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들과 헝클어진 잠자리, 그리고 자다 깬 푸수수한 나의  모습에 망설여졌다. 여직 단 한번도 가족 아닌 다른 사람한테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적은 없다. 물을 팔아먹고 사는 녀자는 절반은 얼굴을 팔고 산다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다. 
    망설이고있는 사이, 문뜩 노크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쳐 부르거나 아니면 주먹으로 문을 세게 때리거나 발로 차지도 않고 비소리가 멎듯 슬그머니 끊겨버린것이다. 상대가 미처 알아차릴 새도 없이 말이다.   
    한참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혹시나 하고 귀를 기울려도 다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때 오히려 이른새벽에 남의 집을 찾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 방문객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나는 쫓기듯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마치 오래동안 기다리고있었던 사람이 가버렸을 때처럼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는 문을 따고 아직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둑스레한 복도를 내다보았다. 거기에는 아무도 있질 않았다. 좀 더 빨리 열었을걸. 하고 후회하며 문을 도로 닫으려던 참에 층계아래 맨끝자락에서 인기척이 났다. 거기에 까만색 바바리를 입은 녀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올케였다. 그녀는 원래도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오늘따라 몸집이 더 왜소해보였다. 아마 까만색 바바리때문일거라고 나는 단정했다. 
    ―우머, 난 또 누구라구. 이렇게 일찍한 시간에 올케가 웬 일이야? 련락도 없이. 하마트면 문을 열지 않을번했잖아. 새벽에 장사를 하고 늦게 와서 어찌나 피곤한지 밖에 누가 온줄을 알면서도 그냥 자려구 하다가 느낌이 좀 이상하더라니깐. 그래서 문을 열었지 뭐야. 
    그녀를 밖에 오래 세워둔것이 미안하였던지 내 마음 같지 않게 말이 수다스러웠다.  내가 듣기에도 지나치게 수선을 떠는것 같아 민망하고 어색했다.  
    그녀는 그러는 나의 말과는 상관없는 사람인듯 묵묵히 다른 곳에 시선을 주고있었다.  집안에 사람이 있으면서 열어주지 않은줄을 이미 알고있은 사람처럼 담담했다. 
    ―뭘 해? 얼른 들어오지 않고?
    그제야 그녀는 뚜벅뚜벅 문께로 다가섰다. 바닥 전체에 밑창을 잔뜩 높인 구식구두가 불편한듯 걸음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저 구두를 아직도 신었나? 몇해전에 내가 그녀한테 줄 때에 벌써 한물갔던 구두였는데 지금도 버리지 않고있다니. 알뜰한건지 아니면 시체를 모르는건지. 나는 속으로 칭찬도 비평도 아닌 경탄을 했다. 
    거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두발은 맨발이였다. 여위고 작은 두발이 맨발인것이 부끄러운듯 빨갛게 상기된채 발가락이 안으로 잔뜩 꼬불어져있었다. 무슨 조짐처럼 다가서는 그 벗은 발을 보면서 나는 올케가 집에서 오는것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때문만은 아니였다. 어딘가에서 아무렇게나 밤을 지내고 온것 같은 비일상적인 흔적이, 아니 타인의 체취 같은것이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배여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례사롭지 않은 그녀의 방문으로 나는 숨을 죽인채 조심스럽게 방바닥에 방석을 깔아주면서 앉기를 기다렸다. 허탈한 모습으로 잠자코 서있던 그녀가 방석을 한쪽에 밀어놓으며 앉았다. 그리고 방석으로 벗은 발을 가렸다. 
    집에서 오는것 같지 않구만. 그런 말을 하려다가 나는 그만 두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냐고 묻고싶었지만 그것도 묻지 않았다. 잘못된 의문이 되려 상대를 괴롭히게 되므로 그냥 내버려두는것이 좋을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한 리유같은것은 없었다. 웬지 세상에서 슬쩍 비켜서있는듯한 그녀가 늘 조심스러웠고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나를 피한건지 아니면 내가 그녀를 피해온건지 모르게 우리는 서로 어렵게 지내오는 사이였다. 그랬으므로 우리들 사이에는 어려운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외에 끈끈한 정 같은건 별로 형성되여있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텅비여있었다. 주위를 보는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않는듯 그녀의 시선은 늘 이렇게 비여있었다. 
    ―저, 집에서 나왔어요.
    놀라우리만침 목소리가 차분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나는 놀라지도 않았다. 나왔다는 말, 가출이라는건지 아니면 리혼을 뜻하는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나왔다는 말인지, 아무튼 그 세가지중 어느 한가지도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서 쇼를 하는것처럼 여겨졌다. 자라지 않는 식물처럼 언제나 한곳에만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던 녀자였다. 시집와서 밖에 나가 돈을 버는 일을 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다. 마치 아이를 낳고 집안 살림을 하기 위해 태여난 사람처럼 시집와서 아들 둘을 낳고 묵묵히 집안에만 박혀있었다. 할 일이 없으면 집에서 하루종일 낮잠을 자면 잤지 옆집 출입도 하지 않는다. 가정에 큰일을 결책할 때 끼이는 일도 없었고 자기 주장을 세워 빡빡 우기는 일도 없었다. 가끔씩 불만스러운 일이 있으면 한번쯤 빤히 쳐다보다가 하루나 이틀씩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닫고있는것이 고작이다. 그래서였던지 누구든 그녀에게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얻는 사람이 없었고 다만 결정을 통보만하면 되였다. 그만큼 그녀는 우리 가정에서 쉽고 편안한 존재였던것 같다. 가끔 명절이나 어머니생신때에 만나긴 해도 그녀는 조용조용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식사가 끝나면 설겆이를 하고 설겆이를 끝난 다음에도 가족끼리 하는 마작이나 트럼프패에도 끼이지 않는다. 명절이면 놀음에서 소외되는 아이들과 시어머니와 함께 화투장을 번지면서 10전내기를 하는것이 고작이였다. 체질적으로 놀음을 좋아하지 않는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소외되는 아이들과 어머님을 배려하기 위한 노력인지 굳이 테스트해본적은 없지만 그녀가 놀음에서 설치는 일은 여직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마을에서 자기 또래들이 즐기는 놀음에도 잘 나가지 않아 친구도 없다. 어찌 보면 어머니의 말대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였는지 모른다. 
    ―집에서 나오다니? 왜? 
    ―싸웠어요.
    나는 어처구니없어 픽 웃어버렸다. 
    ―싸웠다구 집 나와? 배짱두 좋구만.
    너무 황당하여 웃었는데 그 웃음이 그녀의 비위를 거슬렸던 모양이다. 
    ―왜요. 난 집 나오면 안돼요?
    그녀가 발끈했다. 그리고 두눈을 똥그랗게 뜨고 노려보고있었다. 눈빛이 심드렁했다. 두려움이나 불안도 분노도 아닌 심드렁이라니. 그것은 거만이였고 상대에 대한 철저한 거부 내지 무시였다. 순간에 나는 서늘한 단절의 기운과 함께 차거운 생소함을 물씬 느꼈다. 그리고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반응에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나는 얼버무렸다. 
    ―안된다는건 아니지만 부부싸움이라는건 집에서 해야 되는게 아니야? 싸우구 집 나오면 다시 들어갈 땐 괜히 쑥스럽구. 부부지간의 사이만 더 멀어지더라구.  그래서 나는 아무리 크게 싸워도 집은 안나갔어. 그러니깐 이튿날이면 모순이 풀어지더라구.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을 리해시키려는듯 나는 이렇게 입을 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격한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는듯 두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오래동안 말이 없었다. 나의 말을 듣고있는것 같기도 하고 아예 듣지 않고있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녀는 깊이 갈등하고있었다. 무얼가? 그새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가. 요즘엔 내 장사가 바쁘다보니깐 동생네 소식은 전혀 모르고 살았다.  
    어머니때문일가?
    어머니는 당신 며느리를 마음에 안들어하는 눈치다. 전화할 때 올케는 뭐 하는가 물으면 뭐 할게 있냐? 매일 노는게 업이지 한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외국 가서 돈을 벌고있는 다른 집 며느리들의 칭찬을 늘여놓는다. 
    ―그 알지, 그 귀머거리네 며느리 말이다. 외국갔다가 7년만에 왔는데 그 집식구들 며느리덕에 호강을 누린다니깐. 호강두 그런 호강이 어딨겠어. 그 로친은 손가락에 금반지 은반지 줄줄이 차구 다니는데 빈손가락이 없어. 
    그 말이 귀에 익어서 그 알지? 귀머거리네 며느리, 하는 말만 나오면 나는 지레 엄마, 일절만 하세요. 하고 일침을 놓기도 하였다. 자꾸 그러지 마세요. 노는 사람마음 더 답답할거예요. 편만 들지 말구 어디 알아봐. 헐 일 없는지… 나와 어머니는 이런 대화를 수도 없이  하였다. 내가 그녀를 두둔하는것은 어머니와의 대화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일뿐이지 그녀의 편이여서가 아니다. 실은 나도 그녀의 대책 없는 생활태도에는 고운 시선일수 없었다.  
    어머니의 부탁도 있고 하여 한달가량 내가 그녀를 데리고 일해본적이 있었다. 솔직히 물장사는 웃음장사다. 그런데 그녀는 웃는것에 린색했다. 웃으라 그러면 처음 보는 사람을 보구 어떻게 웃느냐구 발끈한다. 아무리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어도 오히려 제쪽에서 천성이 그렇지 못한것을 어쩌냐고 화를 내여 말하는 사람의 립장만 곤난해지게 했다. 매일매일 답답함만 더해가고있을 때 그녀 스스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되면서도 한달도 못참고 나앉는 그녀가 한심스러워 한소리했다.  
    ―이런 일도 못하면 어떤 일을 할건데?
    ―전 매일 낯선 사람이랑 만나는게 싫어요.
    그때처럼 그녀가 가증스러웠던적은 없었다. 털면 먼지밖에 나올것이 없는 주제에  고상한척은. 나는 욕이 터지는것을 겨우 참으면서 말을 꼬았다.
    ―물장사를 우습게 보는것 같은데 그러는게 아니야. 두손 두발 치켜들고 앉아 놀면서 남의 손이나 바라며 사는것보다는 훨씬 좋은 직업이야. 
    그녀가 한마디 할줄 알았는데 눈빛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그녀가 간 뒤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싫어하는 그녀에게는 사람 만나는 일이 죽기보다 싫을수 있다. 하긴 물장사를 아무나 하는건가. 오히려 그녀의 순수성과 솔직함에 감사했고 그런 녀자와 사는 동생이 안심되기도 했다…
    그녀가 무릎사이에 묻고있던 얼굴을 들고 나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벌겋게 상기되여있었다.  
    ―제가 무슨 일로 집을 나왔는지  알고싶지 않아요?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글쎄 무슨 일인지… 알구싶었지만 내가 묻는다고 말할것 같지도 않고… 그냥 올케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있었소.
    ―내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그 거리만큼 우리사이는 멀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그녀는 그간에 자기에 대한 나의 감정의 거리를 보아버린것이다.  
    그녀의 눈빛이 잠간 흔들리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를 올 때는 다 말하려구 했는데 생각을 바꾸었어요. 저의 말은 누구도 믿지 않을거니깐요… 듣고싶으셨다면 직접 동생한테가 들으세요. 아님 어머님한테가 들으시든지. 저두 이젠 모르겠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르겠다는 말 무얼 뜻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무슨 결별처럼 들렸던것은 그녀의 단호하고 완강한 어감때문이였던것 같다. 순간 그녀가 가족이 아니라 전혀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들어온 식구는 아무리 오래 함께 살아도 어느 한 순간에 남이 되여버리는 아마 그런 존재인 모양이다. 그것이 어처구니가 없어 허, 하고 입을 벌린채 나는 한참이나 허무하게 서있었다. 이렇게 변할수가 있다니. 나는 그녀의 그같은 변화를 인정하기 싫었다. 그녀의 그같은 변화는 우리식구들한테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됐기때문이다. 그녀는 아예 처음부터 우리 가까이에 와있지 않았고 마음의 빗장을 꽁꽁지른채 멀리서 우리를 비켜서있었던것이라고 나는 우기고싶었다. 
    그때 그녀는 간다는 말도 없이 문께로 걸어갔다. 밖으로 뛰쳐나가고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고있은 사람처럼 걸음이 가벼웠다. 
    ―아직 하던 말 채 끝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가문 어쩌자는거요? 날 무시하는거요?
    그녀의 뒤에서 하는 나의 말은 무기력했다.
    ―무시하긴요. 여태 무시당하고 산 사람은 저잖아요. 이 집 식구들이 언제 한번 저를 사람으로 대우한적이 있어요?
    그녀는  내쪽으로 천천히 돌아서며 싸늘하게 웃었다. 이런 교활함이라니, 짐짓 몸서리쳐졌다. 혼돈, 실망, 원망의 상태를 차례로 겪으며 결국 나는 그녀에 대한 분노를 삭일수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올케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해온 사람이라고 자부하고있었다. 해마다 올케네 집으로 들어가는 나의 돈은 공식적인 기준이 없다.  엄마의 생활비외에도 조카들의 학잡비를  대주기도 했다.  어머니의 생활비 역시 마찬가지다. 드릴 때만  어머니 손으로 받을뿐이지 고스란히 조카들의 교육비나 집안 생활비로 써지고 어머니의 몫은 없다. 그게 안쓰러워서 엄마의 용돈은 따로 동생들 몰래 어머니의 호주머니에 가만히 넣어준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그 돈도 결국 아들이나 손자들의 호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이랬으면 시누이로서 할만큼 한건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참 기가 막혀서. 내가 어이없어하는 리유를 아는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형님이 도와준건 알아요. 하지만 그건 나땜이 아니구 어머니땜이 아니예요? 사실 전  그렇게 돕는건 단 한번도 바라지 않았어요. 어머니께서는 당신 따님이 드리는 돈의 높이만큼 저를 무시해왔으니깐요.
    나는 일종 멀미같은 어지름증을 느꼈다. 종래로 그녀가 그렇게 긴 말을 한적도 없었고 또 그렇게 어려운 표현을 정확하게 구사해낸적도 없었다. 진짜로 다른 사람과 마주선 기분이 들었다. 억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내가 그녀를 도와준것은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서라는 말은 사실이다. 어머니가 동생네 집에서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있도록 하기 위함이였다. 어머니께서 그것을 한 밑천으로 며느리한테 눈치를 주었다면 그녀의 말을 반박할만한 다른 리유는 없는것 아닌가. 
    처음으로 그녀한테 두려움을 느꼈다. 주위의 모든것에 대한 깊은 무관심, 그것은 그녀의 주위에 대한 깊은 반발이였음을 모르고 언제든지 흔들지만 않으면 마냥 한곳에만 머물러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손에 쥐이는대로 그녀한테 던지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런데 그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문을 나섰다. 탕 하는 문소리를 단절음처럼 들으며 나는 맥없이 주저앉고말았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튀여나온 아이한테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내가 동생네 집에 전화를 넣은것은 그녀가 나가서 반시간 쯤 지난후였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일로 새벽에 와서 남의 속을 뒤짚어놓고 간건지 동생한테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뚜― 뚜― 하는 전화소리만 거칠게 들릴뿐 받는 사람이 없었다. 슬슬 걱정이 다가온다. 이 시간에 다들 어디로 간것일가? 어머니는 웬만하여 집을 비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였다. 거실에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니 오전 아홉시, 벌써 가게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 다되여가고있었다. 일하는 아가씨가 있을 때는 전화 한통화만하고 나는 나대로 돌아다녔지만 장사가 안되여 아가씨를 내보낸 다음부터는 꼼짝 못하고 가게에 묶인 몸이 되였다. 장사라는건 하루가 아니라 몇시간이래도 문을 닫아버리면 손님을 잃게 된다.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가게로 나갈 차비를 서둘렀다.   


2

    가게문앞에는 하얀색과 회색빛의 얼룩 고양이가 기다리고있었다. 웅크리고있던 놈이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듯 등을 말아 올리며 길게 일어서고있었다. 얼마전에 집을 나갔던 놈이 꼭 밥은 주인한테 와서 얻어먹는다. 배부르면 어디론가 돌아다니다가는 배고프면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오군 한다. 그런데 죽어도 집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할수없이 문밖에 먹이를 놓아주는데 그것을 먹고는 또 떠난다. 어떤 때는 며칠씩 보이지 않다가도 잊을가 하면 또 나타난다. 내 집은 아마 고양이에게 떠나기 위하여 돌아오는 곳이 아니면 돌아다니는 어딘가에서 떠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는 곳이였는지 모른다. 
    억지로 잡아볼려고 손을 내밀면 미처 손대기전에 도망가버린다. 그런 날에는 아무리 좋은 먹이로 꼬셔도 보는척도 안하고 가버린다. 늘 사람의 손안에서 재롱을 부리며 살았던 고양이였는데 한번 집을 나간 뒤로는 랭정하게 사람의 손을 거부하였다. 
    나는 가게문을 일부러 활짝 열어놓았다. 그러고나서 알은체도 않고 가스레인지에 뜨거운 물을 올려놓았다. 고양이를 가게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양이는 문턱밑에서 고개만 갸웃거리며 그녀의 손놀림만 지켜보고있었다. 먹이를 기다리고있는것이 분명하다. 나는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숟가락으로 천천히 저었다. 그러고나서 고양이와 눈을 맞추면서 조금씩 홀짝홀짝 마셨다. 고양이의 식욕을 유발하고 갈증을 자극하기 위함이였다. 하지만 고양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만 완고하게 버티고있었다. 나는 빵 한쪼각을 일부러 땅에 부스러기를 흘리면서 먹었다. 고양이는 두귀를 쫑긋 세우면서 땅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노려본다. 그리고는 재롱스럽게 한쪽 앞발을 들었다놓으면서 먹이를  유혹해본다. 그저 그럴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도 집에 끌어들이는 일은 희망이 없었다. 매번 시도하는 일이지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뭐가 고양이한테 저처럼 집을 경원하게 만들었는지 알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한번 집을 나간 고양이는 다시 집에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할수없이 나는 밥과 물을 문밖에 놓아주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나서 유리창너머로 슬그머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먹이를 먹으면서도 고양이는 시름이 안놓이는듯 귀를 날카롭게 세우고 예민하게 문쪽을 할끔거리고있었다. 나는 잠간 잊고있던 그녀를 떠올렸다. 어딘가를 떠나고싶어하는 그녀의 벗은 발이 머리속에서 바람처럼 맴돌았다.  
    그때 껑충하게 키가 큰 한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있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 서슬에 고양이가 담을 뛰여넘는다.  
    ―어서 오세요. 그새 통 보이지 않더니 어디 외출이라도 하셨던거예요?
    허허, 하면서 남자는 내가 열어주는 문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외출은 아니고 좀 바빠서…
    한때는 나를 애인한다고 치근거리기도 했던 남자다. 나는 그것을 그 남자의 진실이라고 믿은적은 단 한번도 없다. 장사하다보면 어디 그런 남자가 한둘이라고. 녀자만 보면 애인하자 그러고 올 때마다 파트너를 바꾸는 남자가 요즘은 끼도 아니라 하지 않는가. 후에 일하는 아가씨, 미스리가 오자 그 남자는 걔를 자기 애인이라고 가끔씩 옆에 앉이고 커피를 사주기도 했다. 그럴 땐 본의 아니게 작은 질투같은것을 느끼군 했던것을 보면 그 남자를 별로 싫어하지는 않았던것 같다. 어디서 무얼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얼굴 잘 생기고 돈을 잘 쓰는 남자라는것 정도쯤은 알고있었다. 그의 마누라가 외국에서 돈을 벌고있고 그가  혼자 생활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미스리를 통하여 썩 후에  알게 된 일이다. 
    ―혼자 오셨어요?
    ―그럴리야 있겠소?
    ―설마했어요. 자꾸 그러시다가 집에서 아심 어쩔라구요.
    ―그쪽두 가만있을라구요. 5년이나 됐는데.
    ―그래두 괜찮은거예요?
    ―돈만 보내준다면.
    그 말을 하면서 남자는 의미있게 웃었다. 돈만 보내준다면 자기 녀자의 외도도 용서할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잠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어쩌면 그 말이 옳은지도 모른다. 돈만 준다면 이 세상에 안되는것이 무얼가. 이곳에서만도 그렇다. 20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수없이 안되는 말을 하고 수없이 안되는 짓들을 하고 간다. 나는 돈만 받으면 그만이다. 오히려 안될 짓을 하고 가는 그 사람들의 돈을 받으면서 늘 감사하군 했다. 
    그때 문쪽에서 한 녀자가 발작소리도 없이 바람처럼 살풋이 남자의 곁에 와앉았다.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을것 같은 인상의 녀인이였다.
    ―많이 기다렸죠?
    ―아니.
    ―지루하셨죠?
    ―미인 기다리는데 지루하긴. 즐거웠지.
    그러면서 남자는 익숙한 솜씨로 녀자의 흰색 외투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준다. 많이 듣던 소리고 많이 보던 손짓이다. 이런 곳에서는 그것이 류행어처럼 듣는 말인데 많은 녀자들은 저런 말과 손짓에 약하다. 녀자는 벌써 꽈배기처럼 몸을 꼬며 남자의 품을 파고들고있었다. 
    카운터의 전화벨이 울렸던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그녀는 커피를 타다말고 전화기를 들었다. 송수화기에선 이윽히 격한 숨소리가 잡음처럼 들려올뿐이다. 바빠 죽겠는데 웬 장난질이야. 툴툴거리며 전화를 놓으려는데 누나, 하고 갈린 남자의 목소리가 손목을 잡았다. 동생이였다.
    ―너 웬 일이야? 안그래도 전화를 할려구 했는데.  
    ―집사람이 없어졌소.
    ―아침에 우리 집에 왔댔어. 
    ―누나네 집에 들렸다가 집에 왔었소. 집에 왔다가 가방이랑 옷이랑 다 벗어놓고 화장실을 간다고 나갔는데 지금… 없소.
    ―설마 나쁜 일이야 있을라구. 주위를 잘 찾아봐.
    ―동네를 발칵 뒤집었는데도 없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동생의 목소리가 울고있었다.
    ―도대체 니들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
    ―누나 그건 만나서 얘기하구, 지금 빨리 오면 안돼?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리고 절실했다.
    또다시 그녀의 벗은 발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침에 있었던 그녀의 행동이 조금 반상적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게 무슨 징조는 아니였을가. 갑자기 나의 마음은 불안하게 움직였다. 
    나는 손님에게 량해를  얻어내고나서 가게문을 닫았다. 

3
  
    그뒤, 세시간후 작은올케가 맨처음 발견된 곳은 비워두었던 낡은 초가집에서였다.  어렸을적에 내가 아버지랑 함께 살았던 집이다. 여름이면 봉선화 피는 울타리밑에 쪼크리고앉아서 빨갛게 손톱눈을 물들이며 동년을 키웠던 곳이다. 그곳에서 달빛과 이슬에 젖는 밤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풀벌레우는 소리와 개구리우는 소리를 들으며 내 감성을 키웠다. 아직도 추억과 동년이 머물고있는 정든 초가집이다. 다만 새집으로 이사가면서 오래 비워두었던 탓에 문짝이 다 뜯겨나갔고 앞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있어 그동안 흘러간 세월의 깊이를 아프게 느끼게 했다. 
    내가 그곳에서 잠간 집안을 들여다본것은 순전히 우연이였다. 그녀를 찾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들린것이지 그녀가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다. 구들장을 들어내느라고 바닥을 마구 헤집어놓아 구들고래가 까만 속을 밖으로 드러내고있는 집안은 마치 고기내장이 시시각각 썩고있는것 같았다. 그 한가운데에 그녀가 누워있었다.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아침에 보았던 하얀 그녀의 발이 여전히 맨발인채로 항거를 하듯 우로 향해 놓여있었다. 그곁에 그녀가 이곳에 올 때 신었을 하얀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버려져있었다. 발은 아침에 보았을 때보다 더 작아진듯싶었다. 그 작은 발이 너무 애처로워 나는 울면서 그녀의 발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였다. 아침에 내 집에 찾아왔을 때 그 발을 그렇게 끌어안아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나는 그 순간처럼 내가 미웠던적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달려와서 그녀를 차에 실었다. 병원으로 가는 차안에서 동생은 지독한것, 지독한것, 하는 말만 되뇌일뿐이였다. 나는 아직도 더 자라야 될것만 같은 올케의 작은 발을 품에 꼭 끌어안은채 연신 중얼거렸다. 
    ―살아야 해. 죽으면 안돼…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외로웁게 했을가. 아침에  했던 그녀의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무시하긴요. 여태 무시당한건 제쪽이죠. 그집 식구들이 절 사람취급이나 했어요?
    그것이 그녀의 유언처럼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는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논농사로 살아가다가 비행장을 건설하는데 땅을 떼운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도시호구로 옮겨졌다. 땅대신 돈을 얼마씩 받긴 했지만 대신 직업을 잃게 되였다.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밭뙈기가 없고 그렇다고 도시에 들어가 직업을 얻는다는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였다. 하루사이에 이 마을 남자들은 백수가 되여버렸다.  땅판 돈을 쥐 소금녹이듯 녹이면서 겨울이면 마작이나 화투을 치고 여름이면 베짱이처럼 나무그늘밑에서 신세타령이나 하는것이 고작 이 마을 남자들이 할수 있는 일이였다. 그중에도 딸이나 안해가 외국에 가 돈을 버는 집 남자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지만 그렇지 못한 남자들은 작은 놀음에도 자주 끼우지 못해 그야말로 사람축에도 못들어간다고 했다. 동생도 사람축에 못들어가는 부류의 한사람이였다. 
    작년인가.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간적이 있다. 사실은 어머니가 아프신것이 아니고 동생 내외가 싸운 일로 어머니가 그 뒤풀이를 하라고 부르신것이였다. 여름이 다 끝나가는데 동생은 웃통을 벗고 반바지만 걸치고있었다. 부은듯 살이 찐 얼굴에 삶에 대한 권태로움이 메주에 핀 곰팡이균처럼 확 피여있었다. 채색인지 흑백인지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가 찍찍거리고 그 한쪽에 어머니가 쉬여버린 밥덩어리처럼 댕그랗게 앉아있을뿐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망했소.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그 말부터 했다.
    ―왜?
    우리 집의 저 왕재수가 땅 판돈을 다 날려버렸소. 우린 이제  하늬바람이나 마시고 살게 됐소.
    알고보니 올케가 외국가는 수속을 하다가 돈만 날린것이였다. 그때 어머니가 길게 탄식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차라리 가만히 있기보담 못했잖여. 얌전하게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 돈이래두 살아있었을텐데 괜하게스리 설쳤어. 
    그때 중간 미닫이 문이 벌컥 소리를 내며  그녀가 나왔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능력이 없고 융통성이 없다고 몰아붙인건 누구신데 지금 와서 이런 얘기하세요.
    ―그렇다고 내가 돈을 날리라고 했나?
    ―제가 일부러 돈을 날렸나요?
    ―다 자네가 복이 없어 그런거지. 남들은 사고없이 잘되기만하더만, 왜 자네는 하는 일마다 그렇게 씨원찮은겨.
    그녀는 이쯤해서 입을 다물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것을 알고있었다. 틀림없이 자기의 친정사까지 끄집어내여 비위를 긁을것이기때문이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입으로 친정집 말을 듣는것이 죽는것보다 싫었다.          
    친정집 오빠가 어릴 때 다락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후 실성한 상태로 살다가 집을 나간후 종무소식이고 그 자식땜에 속을 썩이며 사시던 어머니도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확실히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다 통하는것은 아니다. 분명히 삶에는 운명이라는 말로밖에는 다르게 해석할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것을 어머니는 팔자가 사납다는 말로 표현을 하군 하셨다. 결혼전에 동생이 그 녀자를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어머니는 그런 사실은 모르고 다만 그녀의 작고 여윈 몸매를 꺼렸다. 하여 애들이 아파도 에미가 시원치 못해 애들이 모두 비실비실하다고 나무렸는데 나중에 그녀의 친정사를 알게 된 뒤로는 집안에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의례 그녀와 련계짓기가 일쑤였다. 

4

    병원에서 위세척을 하고 다시 응급실로 옮겨진 그녀는 튜브를 코에 꽂은채 조용히 누워있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위험할번했다고 했다. 그것은 이미 위험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나와 동생은 서로 바라보면서 깊은 숨을 몰아쉬였다. 
    응급실밖에서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왜니?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라이타를 켜는 그의 손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심하게 떨고있었다. 벌써 세번째로 시도하는데도 켜면 꺼진다. 
    ―줘봐.
    내가 한번에 라이타를 켰다. 동생은 입에 담배를 문채 불을 붙이고나서 긴 호흡을 하듯  길게 빨아들이였다. 그리고나서 토하듯 연기를 뱉으면서 허전하게 말했다. 
    ―별거 아닌데 그렇게 됐어…
    삼일전이였다. 오후 네시쯤되자 그녀가 공항으로 간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될 사람이 오는것이다. 위장결혼이라고 하지만 법적인 보호를 받는 남편이니깐 진짜부부인 셈이다. 위장이라는 말은 그녀와 동생, 그리고 결혼하게 될 낯선 남자, 세사람지간의 약속뿐일뿐, 어디에 가서도 법적인 근거는 남아있지 않았다. 속된 말로 눈을 펀히 뜨고 자기 녀자를 다른 남자한테 내여준것이다.  여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처절함과 배신감, 그리고 질투와 분노까지 겹쳐서 동생은 미칠것만 같았다.  
    ―가만.
    그녀가 문을 나서려는데 동생이 불러세웠다.
    ―남의 남자를 만나는데 멋은 왜 이렇게 부렸어?
    ―뭔 멋을 부렸다구 그래요? .
    하면서 그녀가 살짝 문옆에 걸려있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입술 좀 지워. 쥐 잡아먹은것 같어.
    그는 커다란 손으로 안해의 입술을 쑥― 문질러갔다. 
    ―왜 안하던 짓하구 그래요.
    ―너야말로 왜 안하던 짓을 하구 그래. 그깐 거지 같은 놈한테 잘 보일 필요가 뭐가 있어? 그놈들 다 거지야 거지. 돈이 없어 위장결혼으로 돈이나 받아 처먹고 사는 거지중의 상거지라구. 들을라니깐 집도 없는 놈들이라더라. 난 그래도 집이 있잖어. 그러니깐 그깐 놈들앞에서 쩔쩔 맬 필요가 하나두 없어.
    동생은 먼 곳에서 오는 낯선 남자를 비하시키려고 악을 썼다. 그렇게라도 그녀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싶었을것이다.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핸드빽에서 립스틱을 꺼내서 지워진 입술에 다시 칠했다. 남자는 안해의 손에서 립스틱을 뺏더니 쓰레기통에 확 던져버렸다.
    ―거지같은 놈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다니깐.
    그러는 남편을 이윽히 바라보고만 있던 그녀가 실소를 하듯 픽 하고 허구프게 웃었다.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예요. 돈때문에 호적 팔아먹는 놈이나 돈때문에 마누라를 남한테 팔아먹는… 남―자―나 다를게 뭐겠어요. 그 사람이 알면  아마 마누라 파는 놈이 호적 파는 놈을 웃는다구 당신을 욕할걸요.
    순간 동생은 비칠했다. 안해를 다른 남자한테로 보내면서 그 남자를 폄하했던것은 같은 남자에 대한 질투보다 안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였을지 모른다. 한때 안해의 파트너로 적극적으로 수속에 협조해주기를 바랬던 동생이였다. 그 남자를 죽이고싶도록 미웠던것은 오로지 그 남자의 가까이로 다가가는 자기 녀자에 대한 위태로움과 두려움때문에서였다. 
    그녀의 말은 동생의 불안을 증폭시켰을뿐이다. 당신은 할 말이 없다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꽃혔다. 동생은 위장결혼을 해서라도 가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그녀의 말을 믿고 그녀와의 가짜리혼에 수락했다. 했는데 리혼은 도장이 찍힌 날부터 3개월 지나야 재결혼이 가능하다는 말에 안해의 위장결혼수속을 다그치기 위하여 살아있는 자신의 사망자신고를 냈다. 동생의 호적에는 그의 이름우에 사망이란 도장이 찍혀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어다니는 유령일뿐이다. 이제 올케가 정말로 그 낯선 남자를 따라가서 부부로 살더라도 죽은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일뿐이다. 
    ―안돼. 
    그는 죽어라고 소리쳤다. 
    ―이 결혼은 무효야.
    하지만 그녀는 악을 쓰는 동생을 뒤에 남겨두고 그예 공항으로 빠져갔다. 
    아마 그럴수밖에 없었을것이다. 이미 수속비 절반은 내여준 상태여서 지금 그만둔다는것은 경제적손실외에도 다시 령으로 돌아오고마는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 비참해진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이제 와서 그만두는것은 결코 동생의 바램이 아니였다. 올케 못지 않게 이번 수속의 성공을 위하여 고심했던 동생은 자신의 운명과 전 가정의 운명이 그녀의 성공에 달려있다고 믿고있었다. 그런데 그 자신이 지금 그것을 부정하고있다. 지금에 와서야  동생은 자신이 애써 추진해온 일이 저 자신도 미처 몰랐던 자기 함정이 도사리고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그 모순된 심리야말로 동생을 끝없는 정신적인 공황에 빠뜨렸다.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집안에 앉아 편안히 기다릴 자신이 없은 동생은 그녀를 쫓아 공항을 따라나섰다. 미행을 한 셈이다. 
    마침 비행기가 도착했는지 공항입구로 손님들이 쏟아져나오고있었다. 그속에 그녀도 있었다.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는 그런줄도 모르고 남자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있었다. 남자가 그녀를 보면서 무슨 얘긴가 하자 그녀는 허리를 꼬며 깔깔 웃었다. 마치 오래동안 함께 살았던 부부처럼 다정해보였다. 녀자란 저런것인가.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남자가 아니라 녀자일지라도 처음 보는 사람하고는 말도 안하는 그녀였다. 숫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싫어했다. 웬지 여러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외롭고 견디기 힘들고 혼자 있으면 편안하다고 했던 녀자였다. 녀자는 남자에 따라 다를수 있음을 동생은 처음 알고 당혹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 나에 대한 감정이 진실한것일가 아니면 그 남자에 대한 감정이 진실한것일가. 깊은 잠에서 깨여난듯한 그녀의 활짝 열린 얼굴이 그녀의 진실이라면 이제까지는 철저히 자신을 은페하고 살았다는 말이 된다. 그녀가 철저히 가면을 쓰고 살았을거라는 생각을 하자 새로운 분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빈껍데기만 끌어안고 살았다는 상실감은 동생더러 리지를 잃도록 부추켰다…
    그날 밤 늦은 귀가를 한 그녀를 동생은 집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그녀가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이불과 옷견지들도 비오는 진탕길에 내동댕이치고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꿈을 꾸고있는것 같어. 
    동생의 푸석푸석한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굳은 살처럼 박혀있었다. 
    ―어쩔수 없는 현실이라면 감수해야 되는게 아닐가?
    ―마음이 너무 아퍼. 이렇게 아플줄 정말 몰랐어.
    ―홍역을 치른다고 생각하고 참어라. 
    ―누나가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난 정말 용서할수 없을것 같애. 
    ―그럼 어쩌겠다는거니? 설마 헤여지려고 하는건 아니겠지?
    ―그럴지도 모르겠어. 
    동생은 이미 마음을 정한것  같았다.


5

    그뒤 얼마 안있어 나는 헤여졌다는 소식대신에 그녀가 낯선 남자를 따라 출국을 하였다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었다. 그리고 인편으로 그녀가 그 남자와 한방을 쓰고 산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그것은 국적을 얻기 위한 필요한 절차라고 했다. 하도 위장결혼이 많아서 관계부문에서 불의습격으로 조사를 내려오기때문에 국적을 얻어내기까지는 한집에서 낯선 남자와  진짜부부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있었지만 동생한테 말해줄수 없었다.
    가랑비가 내리던 어느날 오후, 동생이 갑자기 가게를 찾아왔다. 혼자가 아니고 뒤에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셋이 더 있었다. 하나는 남자고 두사람은 녀자였다. 동생까지 합치면 남자 둘 녀자 둘인 셈이다. 동생은 넥타이까지 매고 정장을 하긴 했지만 잘 잠궈지지 않은 바지 벨트와 조금 열려진 지퍼땜에 금방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처럼 흐트러져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손에 들었던 커피잔을 엎질렀다. 언제나 동생을 만나면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앞서는것은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아마 동생에 대한 불안감때문이였을것이다. 그것이 동생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안된다. 다행히 동생은 내 놀람을 눈치채지 못한듯했다. 여기저기 고개를 기웃거리며 실내를 살피고나서 나를 보며 심드렁하게 웃었다. 차집이란것두 별거 아니구만 하고 말하는것 같았다. 
    ―갑자기 웬 일이야?
    ―누나네 매상고 올려줄려구.
    동생은 두팔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면서 나의 얼굴 가까이에 입을 대고 말했다. 풍겨오는 술냄새에  뜨겁고 끈적한 기운이 날아왔다. 
    ―대낮부터 웬 술이니?
    ―동창들끼리 오래간만에 만나서 한잔 했소. 
    ―돈은 어디서 났니?
    ―아무리 돈이 없다구 술마실 돈두 없겠소? 누나 이제 우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우. 나두 이제 큰 소리치면서 살게 됐소. 
    그러고보니 동생은 예전보다 달라보였다. 축 처졌던 어깨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있는듯했다. 
    ―어디 복건이래두 당첨됐니?
    갑자기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하하 크게 웃고나서 동생은 무슨 큰 비밀이나 있듯이  나직히 말했다. 
    ―누나, 나 끝내 성공했소. 축하해주우.
    짐짐하게 풀어진 동생의 눈꼬리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개신개신 울음을 터뜨릴것 같은 그의 얼굴을 나는 미타하게 바라보기만했다. 성공이라니, 성공이라고 이름 붙일만큼 하는 일도 없는 동생이 눈물을 지어가며 성공을 례찬하는것이 그저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심란하였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동생은 카운터너머로 손을 뻗어 나의 손을 잡아다가 자기의 양복 안쪽호주머니를 만져보게 하였다. 뭔가 두툼한것이 손에 묵직하게 와닿는다. 돈인것 같았다. 
    ―이게 뭐야?
    ―돈두 몰라?
    ―무슨 돈인데? 이렇게 많어?
    ―집사람이 부쳐왔소. 그래서 한턱 쏘는거야. 우리 동창생들은 다 나보다 형편이 못해. 아까 봤지. 사는게 어려워뵈지 않았어? 그중 내가 제일이야. 난 이제 성공했거든. 성공한건 동창들중에 나밖에 없어…
    하마트면 나는 푸, 하고 경멸의 미소를 지을번하였다. 이런 성공이라니, 호적에 이름도 없는 죽은 자의 성공이라니, 입안이 허전해지면서 바짝 말라들었다. 그녀의 낯선 남자에 대한 친절을 용서 못해 절규하고 절망하고 헤여지려 했던 동생이였다. 어떻게 변한것일가. 어떤 식으로든 나는 리해가 되지 않았다. 사랑의 이름으로도 증오의 이름으로도 설명과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자처해서 기생충이 될려고 작정을 하는것외에는 다른 설명이란 불가능했다. 아마 동생은 그러기를 원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할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가 그 남자와 한방을 쓰고있다는 사실을 모르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알면서도 감히 성공했다고 말하지는 않을것이다. 아니 안다고 하더라도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무것도 달라질것이 없다. 동생이 할수 있는 일은 오직 자기 체념일뿐이였을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동생을 나는 리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분노가 치민다. 그리고 이토록 대책없이  무기력해진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불쌍하고 속상하여 울것 같았다. 동생이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왜? 누나 울어?
    ―아니야. 
    ―울고있잖어?
     ―미안해서 그래.
    그런 말을 할려고 했던건 아닌데,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말았다. 그런데 예기치도 못했던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쏟아지고말았다. 여태까지 나를 괴롭혔던 불편함이나 정체 모를 분노, 지어 동생에 대한 경멸까지 모두 그에 대한 나의 미안함이였던것 같다.  
    ―누나가 뭐가 미안해, 미안한건 나지. 이제부턴 내가 누날 호강시켜줄게. 알았지?
    나는 소리를 놓아 통곡을 할것 같아 동생한테 잠간 카운터를 보아달라 하고 위생실로 갔다. 위생실문을 안으로 잠그고 수도꼭지를 크게 틀어놓았다. 그리고 소리를 작게 쪼개며 울음을 토해냈다. 세면대를 넘치는 물이 도랑물소리를 내며 하수구로 빠져나가고있었다. 며칠전에 친구들이랑 함께 갔던 하수구식당 이름을 떠올린것은 바로 그때였다. 식당 이름이 하도 괴의하여 찾아들어갔었는데 그 음식점의 메뉴는 딱 한가지였다. 여러가지 료리를 한번에 쏟아넣고 여러가지 맛을 동시에 먹을수 있는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뭐든 한꺼번에 쏟아부을수 있다는 하수구의 특징을 살린 메뉴라고 사장이 설명을 하면서 여러가지 료리를 놓고 어느것을 집을가 고민하는 노력도 없이 편안하게 여러가지 칼로리를 섭취할수 있다는 편안함 또한 하수구식당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어쩌면 신통히도 우리의 삶을 닮은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동생은 카운터를 비워둔채 친구들속에 어울려 떠들고있었다. 성공자의 소임을 다할려는듯 동생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있었다. 이제부터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하여 살아지는 인생, 아니 살아지는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인생인것을 동생은 느끼지 못한채 성공한 자신의 인생으로 하여 오기를 부리고있었다. 동생이 성공이라고 이름지은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것인지 모두가 그녀한테 달려있다. 지금 낯선 남자이지만 법적으로 자기 남편인 사람과 한방을 쓰고 사는 그녀의 장래는 어디로 튈지 그녀 자신도 아마 모르고있을것이다. 나는 그녀의 작은 발을 떠올렸다. 마치 열살에 성장을 멈춘듯한 그 작은 발, 그것은 아마 바로 지금부터 커질려고 작았던것인지도 모른다. 이제야 나는 그녀의 그 작은 발에 대한 징크스의 정체를 알것 같았다.  
    밖에서 고양이가 서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고양이 밥그릇을 건드리는 자취가  들리고 이어 고양이가 담장을 뛰여넘는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는 다시 돌아올것이다. 하지만 집을 나간 고양이가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고양이 자신도 알수 없는 일이다. 
    멀리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생도 그 소리를 듣고있을것이라고 나는 믿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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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라주
날자:2015-03-09 23:07:50
여기에 실린 허선생님의 단편소설들을 다 보았습니다. 소설창작에서 독특한 특색을 갖춘품격에 배울바가 많았습니다. 한때 우리 소설들이 소설의 기본요소를 떠나서 소위 현대소설을 써낸다고 설치던 작가들과는 달리 소설로서의 진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현대소설을 써낸다고 해도 소설은 소설이여야지요. 제가 말하는 소설은 어떻게 쓰던 소설의 기본요소를 떠나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야기,인물성격,환경교대를 떠날수 없지요. 선생님의 소설들은 기본요소들이 선명하면서도 진실성있게 인간들의 인지상정을 에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더 좋은 작품들을 우리 독자들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Total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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