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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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나를 부탁해(외2편)
2019년 07월 17일 09시 24분  조회:257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나를 부탁해

주향숙

 

우리는 모두 한번 뿐인 유한한 생에서 보다 건강하고 매력적인 모습이기를 바라며 시처럼 아름답고 빛나는 정서로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흔히 아등바등 살아가다가 후줄근히 늙어가면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병들고 나중에 죽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를 노력하며 갈망하든지를 막론하고 늘 슬프고 힘들고 실망할 때가 많다. 그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믿고 의지할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수시로 머리가 아파지던 쯤의 어느 날 문득 치매에 대해 조금 생각해본 적 있다. 그 때가 된다면 과연 어떡할가? 더는 스스로 정신을 추스릴 수도 없을 테니 멀쩡한 육체만으로 바보스럽게 살아있는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도 없다. 구질구질하게 누군가에게 매달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병, 너무 비참하고 너무 잔인하다.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네 삶인데 언제 어떻게 당할지 알 수는 없다. 너무나 불행하고 미칠 듯이 고통스럽겠지만.

어쩌면 치매라는 병은 사람들을 위해서 찾아오는지도 모르겠다. 여태의 고된 삶을 부려놓고 훨훨 가볍게 날아보라고. 여태 쏟아놓은 부끄러움이나 죄스러움을 감감 잊고 철부지로 즐겁고 신나게 살아보라고. 여태 불리워온 이름과 그에 따르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떨쳐내고 자신만 산뜻하게 챙겨보라고. 여태 아득바득 애쓰며 더 가지지 못해 안달아했던 모든 것들과 전 생애를 지배하던 육체와 정신까지도 진정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다 놓아버리고 한껏 편해지라고…

과연 그 때가 온다면 이렇게 너그러이 받아들이며 순응할 수 있을가? 내가 따르든 말든 관계없이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다소곳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만약 그 때가 온다면 이러한 나를 누가 진심으로 맡아서 함께 해줄지 심히 걱정스럽고 동시에 무척 쓸쓸해진다.

많은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그러나 정작 나를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때에 내 곁에 계셔줄지 모르는 부모님을 제외하면 말이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완전한 사랑에 의지하여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조용하게 향기로운 바람 한오리에 실려 그렇게 가고 싶다. 그러나…

이 때 딩동 하는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잘 있느냐는 안부 이모티콘.

“나를 부탁할게. 어느 날 문득 바보가 된다면 맡아줘”. 하고 내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답장 메시지를 띄운다. 

참 놀랍고 황당한 말이여서인지 한참을 대답 없이 잠잠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쨍하니 빛나고 류달리 파란 하늘이다. 

하늘을 사진에 담아 날린다. 

“이토록 파란 하늘 아래서 약속했어.” 

일방적으로 말해놓고 약속이란다. 

또 한참이 지나고 피를 토하는 이모티콘이 날아온다. 

한심한 내게 피라도 울컥 올라오나 본다. 그 이모티콘과 그 사이에 흐른 침묵이 주는 상징성으로 나는 그의 복잡한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누다가 끊고 스스로도 어이없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다행스러운 행운에 나는 불현듯 눈물이 솟는다. 그에게 감격하고 이 세상에 감격한다. 

그러나 그 뒤로 나는 왜 나에게 나를 부탁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걸가? 나는 나에게서 얼마나 먼 사람일가? 나는 지금의 나에 대해 잘 알고나 있는 걸가? 나에 대한 해야 할 사랑을 다하고 있는 걸가? 하는 물음에 시달린다. 그리고 어느 만큼 끊임없이 따져묻든지를 막론하고 결국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의 부재를 느끼며 죄책감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살다 보면 가끔 몸이 여기저기 아파오기도 한다. 그것은 기실 몸의 그 한부분이 나에게 자신을 좀더 보살펴달라고 부탁해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루어왔고 무관심했고 지어는 좀 짜증까지 냈다. 괜찮아지겠지 이 정도라면 심하지 않아, 며칠 지나다보면 나아지겠지, 왜 벌써 아프고 이러지…그렇게 자신의 몸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되려 몸을 너무나 함부로 굴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찬바람이나 소나기 속에서 떨게도 했고 밤을 하얗게 새기도 했고 엄청난 량의 술을 마시기도 했고 온몸의 맥이 다 빠지도록 무리하게 자신을 혹사시키기도 했고…

그리고 또 내 마음도 제대로 챙겨주고 달래주지 못했다. 가끔 힘들고 지치고 쓰러지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어떤 위로도 하지 않았으며 지어 만져주고 공감해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처는 늘 덧나고 슬픔은 더 깊어져가고 허무는 더 지독해졌고… 나는 나에게마저 내심의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나의 감정들을 쏟아놓지 못한 채 혼자서 상처를 껴안고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감감 모른 척 의연히 랭담했고 어서 지워지고 잊혀져가기를 원했다. 

왜 그렇게 함부로 팽개쳐 두었을가? 나는 또 다른 나에게 모든 걸 깡그리 밀어버리면 정말 그것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건강한 삶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을가? 내가 외면하면 다 존재하지 않거나 지나가고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얼마나 우스운 기대인가. 어쩌면 나는 나의 진실을 인정하기가 불안하고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대로 인정하면 무거운 어둠에 눌리워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채 더는 멋진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완벽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늘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름답고 싶었고 빛나고 싶었고 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러내지 못하고 안으로 숨 죽여 울어야 했던 흐느낌은 얼마나 힘들었을가. 소리내여 울지도 못하고 마음껏 표현도 못하고 소외당한 채 얼마나 외롭게 홀로 아팠을가. 혼자 감당하고 극복해내느라 한조각 위안이 얼마나 절박하게 그리웠으며 또한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가. 상처 입거나 눈물을 흘린다고 추한 게 아니고 비겁한 게 아닌데 말이다. 더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고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다독여주며 긍정의 힘을 길러가야 한다. 

따뜻한 손을 내밀어 상처들과 그 흔적들을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쓴 그 상처들의 신음이 들리고 그들의 괴로움이 보여진다. 많이 아팠구나, 참 많이도 아팠구나, 어찌 다 견뎌냈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하고 속삭이며 나는 한없이 부드럽게 나를 껴안는다. 순간 눈물이 흐른다. 내가 나를 버려둔 사이에 나는 아프고 아팠을 뿐이다. 내가 표현해낸 기쁨이나 환희나 설레임이나 행복이나와 같은 향기로운 감정과 당당하고 씩씩하고 화려하고 눈부신 모습들은 기실 모두가 아주 정교하게 꾸며진 거짓된 자아였을 뿐이다.   

나를 부탁해.

그 말이 나의 가슴에 깊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울려펴진다. 그 울림이 무겁고 강렬하게 나를 흔든다. 점점 더 커지며 나를 파고 드는 전률 속에서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누구도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령혼을 온전히 모르며 오로지 나만이 나의 외면과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챌 수 있고 바르게 읽어낼 수 있다. 나를 그 누구에게 더 부탁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나를 책임져야 한다. 우선 나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며 그리고 사람은 다 약한 존재임을 승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안 아픈 척 안 슬픈 척 안 외로운 척 안 두려운 척 안 불안한 척할 필요는 하등 없다. 몸이 피곤하고 지치면 견디지 말고 이런 일 저런 일 다 제쳐놓고 편안히 누워있게 해주어야 한다. 서럽거나 괴로우면 참지 말고 거침없이 드러내고 하염없이 울게 해주어야 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억지로 하도록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좀은 부족하고 느리더라도 자신을 믿으며 힘을 고여주어야 한다. 더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권리를 스스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나를 부탁했다. 이제부터 나를 기다려온 나와 내가 새롭게 만나 치열하게 그리고 찬란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의 별것 아닌 날들

 

저녁 설겆이를 마치고 주방을 나선다. 그러는 내 눈에 남편이 아무렇게나 벗어서 쏘파에 던져놓은 양말이 보여온다. 못 본 척하려고 다짐하며 텔레비죤의 화면만 쏘아본다. 그러나 양말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별것 아닌 일에 나만 괜히 이상해질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남편의 퉁명스러움에 나 또한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댈 게 뻔하다. 나는 눈길을 애써 돌리다가 탁상시계가 조금 비뚤어졌다고 여기며 바르게 고쳐놓는다. 무의식적으로 다가가서 한 행동이다. 그리고 차라리 양말을 내가 빨래바구니에 가져다 넣기로 생각하는 동시에 역시 행동한다. 어쩌면 행동에 이어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서랍을 뒤진다. 분명 있을 것 같았던 감기약이 없다. 다시 찾아본다. 없다. 꼭 있어야 할 듯한데 없다는 게 누구의 탓처럼 화가 나려고 한다. 정리해놓은 것들이 자꾸만 이렇게 흐트러지는 게 참을 수 없다. 나는 입을 앙다물다 싶이 하며 옷을 주어입고 문을 쾅 닫아버리며 집을 나선다. 짜증을 낸 리유와 무관하게 애가 아프다는데 짜증을 낸 데 대해 량심의 가책을 느낀다. 약을 사들고 집에 들어와 애에게 약을 먹인다. 

다시 텔레비죤에 눈길을 준다. 그러다가 문득 세탁점에 맡겨둔 옷을 찾아오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오늘 한 일들을 떠올린다. 휴식일이여서 아침에 예전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아침을 만들어 먹고 기름때가 끼여있는 가스레인지를 청소했다. 목욕을 조금 오래 했다. 빨래를 돌리는 한편 집안 구석구석을 닦았다. 채소를 사러 시장에 다녀오며 상점에 들려 소금을 샀다. 옷장을 정리했다… 너무 자질구레하고 복잡하고 시시한 일상이다. 

그래서일가 때로는 발작적으로 정체불명의 감정에 휘둘리며 그 지리멸렬함과 진부함에 진저리가 나기도 했다. 꼭 마치 오늘처럼 괜히 화가 나듯이 말이다. 그래서 모두를 떨쳐내고 아무도 모르게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싶기도 하고 아무 리유도 없이 줄줄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때로는 차라리 확 미쳐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면 얼마 동안은 무기력해지고 허무해지고 딱히 대상도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분노 같은 감정으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별것 아닌 날들로 이어지는 일상이 권태롭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인 줄 잘 안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그 익숙한 반복들을 지극히 정상적으로 여기며 되려 다정하고 친절하게까지 받아들일 때도 있다. 이 단순하고 지어 멍청해보이기까지 하는 어이가 없는 감정들은 대신 당황스럽거나 혼란스럽거나 위태로운 국면 같은 걸 초래해주지 않는다. 늘 하등의 감정과 생각의 이입이 없이도 잘살아지며 태평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일상을 통채로 부정하는 나의 대책 없는 충동을 비난하기도 하고 다시 안도감이 드는 일상 속으로 꾸역꾸역 스며드는 자신에게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별것 아닌 삶들 속으로 돌아와 깊숙이 가라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도 분명하게 말해준다. 작디작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서 편안하게 안전한 령역으로 숨어들려는 게 아니다. 삶은 화려한 랑만이나 강렬한 열정이나 신비로운 환희 같은 것만으로는 살 수 없으며 그것은 어쩌면 잘못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 신기루 같은 희망들은 정작 우리가 정착해야 할 곳이 가장 평범한 현실이며 그 일상 속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역으로 설명하려고 우리의 리상 속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깊숙이 침전하여 단단한 현실을 밟고 서서 가장 온당한 자세로 리상과 현실을 바르게 직시해야 한다. 그때면 비로소 삶의 참모습을 보게 되며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을 더 잘 리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워가는 그 세심한 노력들과 절대적인 헌신이, 달마다의 로임을 랑비가 없이 잘 계산하며 살아가는 그 치밀함이, 려행이나 장신구나 집이나 옷이나 등과 같은 욕심을 버려가는 용기가, 새로 만나는 사람도 일도 없는 오래된 날들을 계속 살아낸다는 것이, 서로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유약한 내면이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알면서도 마지막 면사포를 벗기지 않으며 스스로 아픔을 위안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일인지를 아무도 감탄하지 않지만 나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살면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거나 세계명작을 펴내거나 세상을 구하거나 하는 위대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가? 

문득 얼마 전에 나누었던 문안인사를 떠올린다. 새해를 맞이하며 따뜻한 마음을 담아 문안메시지들을 띄웠고 나는 몇통의 답장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아름다왔던 그 새해인사에 며칠을 두고두고 행복했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문안인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아무 문제될 일은 없다. 결국 나의 생활은 내가 느끼기 나름이니까. 그렇게 삶의 틈틈이마다에서 스스로 반짝이는 날들을 이끌어내고 느끼며 살아가는 게 성숙된 삶의 지혜가 아닐가 생각한다. 때로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때로는 꽃향기를 가슴에 담기도 하고 때로는 하염없는 그리움에 넋을 놓고 시간을 허송하기도 하고 비가 오면 우울해져도 좋고 눈이 오면 고요한 환희를 느껴도 좋고… 짜릿함이나 찬란함은 없어도 너무 따뜻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평이하고 단조로운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설레이고 감동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숨막히도록 괴롭게 만들어주는 건 우리의 일상이 아니라 그 일상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느끼지도 가꾸어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별것 아닌 삶을 초월해서 다르게 살고 싶지 않다. 기존의 친근함 속에 온몸과 맘을 열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미처 듣지 못햇던 것을 듣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느끼고 싶을 뿐이다. 삶 자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순수하고 진실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오감으로 느끼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무심히 지나쳤거나 아니면 떨쳐내고 싶었던 일상들이 기실은 얼마든지 사랑스럽고 감미로운 존재들이라는 걸 깨닫고 싶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금방 양말을 빨래바구니에 갖다 넣을 때 남편이 가볍게 지어주던 미소와 약을 사다 먹여주는 나에게 어리광 부리듯 안겨들 때 내 얼굴에 닿아오던 딸애의 보드라운 살갗의 감촉과 한 집안에서 따스하고 고르로운 숨결로 함께 엮이고 있는 이 시간과 적당한 소음과 적당히 널린 공간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지극히 평온한 분위기…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내 마음의 깊은 곳으로 조용조용히 흘러들어 고운 무늬로 번져가는 걸 느낀다. 소박하지만 또한 싱그러운 이 감정들은 매 하나의 선들이 그어지고 매 한점의 물감이 칠해지면서 완벽하게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듯이 나의 아름다운 삶을 완성시켜가는 것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기실 하찮아보이는 것들이 소중한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나의 별것 아닌 날들을 사랑으로 껴안는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미 행복했다. 


 

어떤 기다림

 

1.

아침 여느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창이 푸르스름한 새벽빛으로 밝아온다. 조금 그대로 누워 바라보다가 나는 전등을 켠다. 환한 불빛이 삽시에 방안에 가득 채워진다. 나는 혼자서 활짝 웃어본다. 가슴이 밝은 기쁨으로 채워진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날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무 우습다. 어떻게 오늘이 어제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깨여난 시각만 보아도 나는 여느때보다 정확히 42분 빨리 깨여났다. 늘 잠이 많아서 알람에 의해 깨여나는 나에게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창으로 비쳐드는 저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너무 깊은 아름다움이 배여있는 색갈이라고 느끼며 순간적이지만 온몸으로 감동했다. 그리고 전등을 켜며 여느때처럼 이제 만들어야 할 아침반찬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불빛처럼 따뜻하고 빛나는 기쁨이 내 가슴 속으로 스며 들어온다고 느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오늘은 새로운 하루로 시작되였음을 알려주고 있지 않는가.

어제가 늘 같은 어제로 사라졌어도 오늘은 새로운 오늘일 뿐이다. 새롭게 다시 밝아오는 저 하늘과 새롭게 다시 떠오를 태양과 새롭게 불어갈 바람… 그리고 결코 어제의 모양이 아닐 구름들과 어제의 차량과 어제의 사람들로 흐르지 않을 거리와 어제와 다른 표정으로 웃을 꽃들과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마주칠지도 모를 골목길의 강아지와…  그래, 오늘은 분명 새로운 하루로 마련되여 나의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왠지 경이롭게 행운이 다가와줄 것만 같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될것 같다. 가끔 왜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 어떤 근거도 없이 지어 해몽에 의한 의거도 없이 좀은 엉뚱하고 허망한 줄 안다. 그러나 오늘 갑작스럽게 이런 간절한 생각이 드는 자체가 바로 특별한 날로 이어져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것 같다. 나는 나만의 행운에 대한 환상으로 부풀어오른다. 다시 한번 입가에 미소를 지어본다. 아주 달콤한.

나는 침대에 누워서 오늘 할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한다. 완벽하게 모든 일들을 끝내고 싶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느 일을 하는 시간에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와 그러면 시간이 얼마 정도 절약될지에 대해서도 아주 치밀하게 계산한다. 이렇게 자질구레하고 힘들고 복잡한 일들에 계획까지 세워가며 열성을 부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해지지 않는다. 오늘은 행운이 찾아올 거니까.

나는 늘 무언가에 푹 빠져들고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주변의 정리를 아주 알뜰히 해야 했다. 그래야만 그 무엇에도 신경이 쓰이지 않고 오로지 내가 생각하거나 하려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오래된 습관이다. 그러니 오늘처럼 특별한 날을 위해서는 내 주변의 한톨의 먼지나 한치의 흐트러짐들을 절대로 허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일을 시작한다. 빨래를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그리고 집안의 물건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낸다. 주방에서 기름때를 닦아낸다. 그릇들을 다시 한번 깨끗이 씻는다. 옷장 안의 옷도 다시 한번 정리한다. 책상 우에 그냥 놓여졌던 책도 제자리에 꽂아놓는다. 그리고 침대에 펴진 이불도 반듯하게 잘 잡아당겨놓는다. 나는 이런 일들이 예전에는 좀은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할수없이 했었던 일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매우 정성스럽게 일을 한다. 그리고 공연히 신나고 즐겁다.

가끔은 살다가 이렇게 무턱대고 특별한 하루가 될 거라고 혼자 꿈을 꾸고 비현실적으로 믿어가는 일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나중에 얼마나 더 큰 슬픔으로 만들어질지를 감감 모르는 채 말이다. 

 

2.

그의 표정을 떠올린다. 입귀가 올라가며 그려지던 조용한 미소와 장난스럽게 눈을 크게 뜨며 우습강스러운 표정으로 만들어내던 미소와 크게 소리내며 웃던 웃음들… 나는 가만히 떠올려보면서 흉내내여 같이 웃어본다.

혼자서 조용히 그와의 일들을 떠올려본다. 밥을 먹거나 거리를 걷거나 함께 책을 읽거나 마주 바라보거나… 그러면서 이렇게 남보기에 밋밋하고 사소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들이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에 남아서 언제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

가슴이 활랑거린다. 은밀한 기다림이 나를 환상 속에서 설레이게 해준다. 나는 조금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두 팔로 가슴을 꼭 껴안는다.

전화를 열어본다. 이 시간 쯤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없다. 아직 일찍한 거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닫는다. 이제 조금 더 기다린다면 그의 전화가 오거나 아니면 메시지가 도착해줄 것만 같다. 

텔레비죤을 켠다.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 프로가 없는지 모르겠다. 나의 요구가 다른 사람들보다 빗나가서인지 내 구미에 당기는 프로가 없다. 1초 간격으로 원격조종기의 단추만 눌러댄다. 나는 아예 무엇을 찾으려는 의욕도 없이 그냥 채널만 바꾸어대는 자신을 느끼지만 한참 그런대로 내버려둔다.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는 상황이고 다르게 무언가를 할 일도 없으니까.

다시 전화를 열어본다. 겨우 몇분이 지나가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다시 또 확인하고 싶어진다. 메시지가 도착하는 데는 몇분이 걸릴 필요가 없는거니까. 역시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 조금 풀이 죽는다. 전화를 한쪽에 내려놓는다. 그 순간 메시지가 들어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울린다. 후닥닥 다시 전화를 집어든다. 그냥 위챗그룹에 띄운 누군가의 메시지다. 나도 같이 흥미있는 척 익살스러운 이모티콘을 하나 보낼가 말가 망설인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러고 싶지 않은 자신을 느낀다. 그래도 그만큼 가깝게 지내는 친구인데 함께 반응해주는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마땅한 이모티콘을 찾기도 싫다. 또 보내놓고 다시 나에게로 건너올 말을 받아주기도 싫다. 그 건너온 말에 대꾸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질 용기도 없다. 그렇다고 구태여 아득한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재간도 없다. 굳이 많은 대화가 아니여도 된다고 여기지만 그 어떤 말도 나는 지금 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 어떤 말도 나는 지금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전화를 다시 놓아버린다. 

괜히 초조해진다. 텔레비죤을 꺼버린다. 그냥 귀에 들려오는 란잡한 소리와 요란하게 번쩍이는 화면이 거슬린다. 조용해진 집안에서 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난히 높게 들린다. 그 초침소리를 따라 자꾸 마음이 조급해진다.

무슨 일인가를 찾아서 해야 했다. 그것이 지금 안절부절하는 내 마음을 달래줄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였다. 나는 책을 쥐여든다.

첫 구절을 읽는데 손이라는 단어로부터 그의 손이 떠오른다. 두툼하고 부드러웠던 손… 내 손을 잡아줄 때, 껴안고 내 잔등을 토닥여줄 때, 내 얼굴을 만져줄 때… 그렇게 나는 또다시 기다림을 시작한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여 읽는다. 그런데 얼마를 못 가서 나는 감사라는 하나의 단어로 또다시 그가 나에게 미친 영향들을 생각해본다. 나를 웃게 해주고 용기를 갖게 해주고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참으로 감사한 사람… 나는 또다시 기다림을 시작한다.

나는 도무지 내용으로 읽히지 못하는 책을 다시 첫 구절부터 읽으며 책의 내용에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작가가 찍어놓은 점 하나 물음표 하나마저도 나에게는 무한한 상상의 연장선이 되여 모두 그에게로 닿아간다. 이 글을 쓴 작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글이 수고했던 의도와 다르게 누군가에게서는 지극히 개별적인 상상으로 어어져갈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현란한 상상을 하는 작가들은 이미 독자의 이런 마음을 알지도 모르겠다. 암튼 나에게로 다가와준 이 타국의 작가와 그가 쓴 글이 오늘 나와 만나서 나를 그에게로 데려다 주었음에 감사를 드린다. 

결국 책은 그 어떤 내용도 나에게 읽히지 못했다. 나는 지금 내가 읽은 두어페지 되는 책에서 손이나 행운이나 감사라는 서너개 남짓한 단어만 기억해낼 뿐 분명하게 제시된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아예 책을 읽기를 포기한다. 책을 덮어 한쪽에 던져버린다.

왜 하필이면 오늘 맹목적으로 이러지 하고 생각해보아도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한다. 그 어떤 리성적인 사고나 객관적인 지식으로는 도저히 리해가 안되는 이러한 막무가내의 기다림은 계속되며 더 강렬해진다.

 

3.

나는 창가에 붙어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바람과 나무는 저렇게 만나서 저희들만의 춤을 멋지게 추고 있다. 저 바람이 찾아떠났던 나무였을가? 저 나무가 기다렸던 바람이였을가? 왠지 그 춤이 그토록 조화롭게 여겨지고 도저히 다른 무엇이 개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비밀이 스며있는 듯 싶다. 오로지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셔 자아마저 잊은 듯한 신 들린 춤이다. 고개를 조금 들어 하늘에서 뭉게뭉게 흘러가는 구름들을 바라본다. 서로 엉겨들고 서로 섞여들고 서로 흡입하고 스며들면서 화려한 몸짓을 한다. 그들도 내내 기다렸던 서로였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그 몸짓에 오래된 절박함이 묻어난다고 느낀다. 그 친밀하고 다정하게 하나가 되여가는 몸짓이 부럽다. 어쩌면 모두에게는 령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렇게 령혼들은 서로를 애타게 찾고 기다리다가 어느날 만나서 참된 사랑을 나눌 것이다. 서로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이 못내 부러워진다. 눈물이 고여오며 앞이 흐릿해진다.

나만이 완전히 혼자가 되여 어둠 속으로 움츠러드는 듯한 느낌이다. 무엇을 보아도 모두 서로 어우러진 듯 행복해 보인다. 오로지 이 세상 속에 나만이 덩그러니 혼자 남은 듯 싶다. 너무 쓸쓸해진다. 주위로는 적막하고 서늘한 고요만 밀려온다. 그리고 나는 소리도 없고 색갈도 없는 깊고 커다랗고 차거운 동굴 속으로 추락한다.

나는 두 눈을 꼭 감는다. 마치 두 눈을 감아서 이 세상을 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축복을 받은 듯 혼자가 아니다. 그것들이 더는 나의 세계로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즐거움은 나에게 괴로움만 더해준다. 나는 아무 생각도 아무 의욕도 아무 열정도 없다. 그냥 조금씩 아프고 더 아파지는 자신을 시체처럼 내버려두고 그 아픔을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다. 

기다림에 대한 공연한 집착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린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좀처럼 기다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기다림 때문에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도 일상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한다. 그러나 가슴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어떻게 되든 기다림을 떠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단호한 의지를 보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아주 또렷한 정신으로 기다림이라는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가 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그 지칠 줄 모르는 기다림.

그것이 내가 온전히 나를 숨쉴 수 있는 일이였다. 기다리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다림은 나에게로 와서 깊어지고 나는 그 기다림에 의지해서만이 아프더라도 현실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마약중독환자가 마약을 흡입하지 않으면 발광하듯이 나의 삶에 기다림이 없다면 나 역시 그렇게 발작하며 미쳐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기다림은 지극히 본능적이 되여간다. 나의 리성으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손쓸 수 없는 일에 불과해진다. 나는 다만 기다림에 더욱 몰두되여간다.

 

4.

나는 문득 점쟁이를 생각한다. 점쟁이는 나의 기다림의 끝이 언제일지를 알고 있을가? 여태 늘 제 좋은 소리만 한다며 나도 얼마든지 상대의 외모나 표정으로부터 정황을 읽어내고 뒤에 어떻게 다시 방향을 틀 수 있을지를 고려해가며 아무래도 좋을 말을 몇마디 건네며 상대를 더 알아가고 알게 되는 조건에 맞추어 또다시 더 적중한 듯한 몇마디를 아주 지혜롭게 그리고 신중한 표정으로 말해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비하했던 점쟁이를 나는 찾고 있다. 그가 만약 내가 요구하는 결과를 제시해주지 않는다면 원래 아무 것도 모르는 거였다고 다시 비웃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원하는 결과를 점쳐 준다면 그의 말에 간절히 매달리고 싶다. 나는 지금 아무에게서나 나의 기다림의 해피엔딩을 긍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점쟁이를 찾아나서지 않았다. 그를 마주하고 내 마음속의 이토록 소중한 기다림을 나누고 싶지 않다. 기다림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그 누가 함부로 끼여들어 이런저런 견해를 늘여놓는 걸 용서할 수 없다. 오로지 나 혼자서 깊숙이 간직하고 오래오래 사무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차라리 그가 있을지도 모를 거리로 뛰쳐나가 그 거리의 공기를 함께 숨쉬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란걸 잘 알지만 나는 그러고 싶다. 그는 내가 어느 거리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헤매고 있을지를 감감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머무를지도 모를 거리를 찾아 돌아다닐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조금도 유치하다거나 창피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나의 상처받는 기다림을 조금이나마 치유를 해주고 싶었다. 남이 보기에는 참 어리석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누가 뭐라든 그렇게 진행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언젠가 함께 걸었던 거리에 들어선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나는 여기저기 눈길을 돌리며 그를 찾는다. 그리고 어느 바람에 그의 체취가 묻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공기중에 그의 체온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찬바람 속에서 그 어떤 분출구도 없이 뜨겁게 타오르던 기다림이 더더욱 타오르는 듯하다 나는 내 안에서 훨훨 타오르며 너울거리는 기다림을 느낀다. 

얼마 쯤 걷다가 그와 비슷한 모습의 한 사람을 만난다. 분명 그가 아님을 잘 안다. 그러나 따라서 걸어간다. 그리고 내가 그의 등뒤에서 걸으며 너무 행복했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저도 모르게 미소짓는다.

그와의 기억들은 내가 간직해온 모든 기억들보다 제일 선명하게 남아있다. 매 하나의 기억들은 세부까지도 생생하게 내 머리 속에 남아있고 미세한 감각의 여운까지도 선명하게 내 가슴에 남아있다. 그 기억들은 늘 내게 충만감과 따뜻함과 즐거움을 주면서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너무 절실하게 필요하다.

얼마를 걷다가 나는 거리 한가운데 멈추어선다. 그리고 두 눈을 꼭 감는다. 아주 어렸을 때 어른들이 “두 눈을 감아봐” 하고는 내 손바닥에 사탕이나 사과를 감쪽같이 쥐여주었을 때의 쨍하게 빛나던 기쁨을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이제 두 눈을 뜰 때면 그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나서 놀라운 행복과 커다란 감동을 안겨줄 것만 같다. 속으로 열까지 세고 두 눈을 살그머니 떠본다. 없다. 보이지 않는다. 상실감이 갈마든다. 그렇게 신기루처럼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허망한 공상을 하는 내가 한심해지기도 한다. 

해살이 나의 얼굴에 닿아온다. 늘 밝고 따뜻하고 튕기면 고운 소리가 울릴 것만 같던 해살이 오늘은 어딘가 어둠에서 배여나온 듯 희뿌연 색갈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닿으면 점액처럼 끈적끈적할 듯한 느낌이다. 그 해살이 내 몸에 쏟아지면서 나는 어떤 점액성의 가느다란 줄들에 내 온몸이 칭칭 감기며 조여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바로 아주 오래되고 또 먼 후날까지 이어질 기다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렇게 잔인한 기다림에 결박당한 것이였다. 이 세상 누군들 한번 쯤 기다림의 포로가 된 적 없으랴. 

 

5.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진다. 이불을 와락 당겨 머리끝까지 덮어쓴다. 그러나 틈새로 밝은 빛이 스며들어와 내 몸 우를 슬금슬금 기여다니듯이 기다림도 여전히 스밀스밀 내 몸 속으로 기여다니며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온몸이 참을 수 없이 근질거려온다. 손으로 팔이며 다리며를 박박 긁어댄다. 더 자주 더 세게 … 팔목 근처의 살갗이 벗겨지며 빨간 피방울이 배여나온다. 기다림도 이런 진한 피빛이였을가 생각해본다. 내 온몸과 맘을 자양분으로 자라는 이미 육질화되여지고 자기만의 의식을 갖춘 기다림이니 색갈을 굳이 지적하라면 아마 피빛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는 자신이 조금 두려워진다. 무언가를 찾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벌떡 일어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불을 와락와락 뜯었다. 그리고 커다란 대야에 물을 붓고 이불거죽을 넣었다. 반드시 손으로 해야 했다. 두 팔을 걷고 대야 앞에 자못 엄숙하게 마주선다. 꼭 마치 아주 위대한 사명을 수여받은 존재처럼. 예전에 그렇게 앉아서 빨래를 할 때면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군 했다. 나는 오늘도 그 방법을 사용해보려고 한다. 

비누를 바르고 이불거죽을 비비고 다시 비누를 바르고 다시 비비고 … 힘을 주어 필사적으로 비벼댄다. 꼭 마치 이 일을 끝내고 나면 내가 바라는 행운이 당도해줄 것만 같다. 얼마 쯤 지나 나는 두 손의 손가락 바깥쪽과 손바닥의 가장 웃부분이 아려온다. 예전이라면 호들갑을 떨었을 아픔이 지금은 별로 느껴지지 못한다. 아마도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내 모든 의식과 감각기관까지 점령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제 더는 다른 일에 아무런 반응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냥 전화에 자꾸 마음이 간다. 혹 내가 전화벨소리를 듣지 못한 건 아닐가? 혹 문자라도 들어온 건 아닐가? 혹시 나는 이렇듯 사람을 미혹시키고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복종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박장에서 혹시나에 돈을 잃고 마약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을 대여 삶을 망가뜨리고 혹시나 하고 상대방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고… 혹시나는 참 못됐다. 너무 사람들을 제멋대로 가지고 논다. 나도 아닐 거야 빨래를 다 씻고 보아도 돼 하고 자신을 달래보지만 그 힘이 너무 미약하거나 아예 존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결국 비누 묻은 손을 급급히 헹구고 마른 수건으로 문지르고는 전화를 열어본다. 비여있다. 이것저것이 들어와있지만 내가 바라는 건 없다. 그럼 비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순간 내 마음도 텅 비는 것 같다. 가슴 속에 꽉 차있던 무언가가 삽시에 새여버린 듯 허전하고 허망하다. 나는 그만 슬퍼지고 말았다. 

손이 아리도록 빨래를 더 이악스레 비벼댄다. 내가 그 어떤 알수 없는 사명감으로 전력하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좀처럼 진정하지를 못한다. 커다란 이불거죽을 다 씻고 여러번 물을 받아 헹구고 빨래를 널고… 손도 아리고 팔도 아프고 다리도 저려온다. 그럼에도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 

이 때 전화가 울린다. 그냥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뜬다. 심드렁하게 받는다.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나는 별로 생각지도 않고 나가기로 한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기다림에 시달리는 자신에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 나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떠들리라. 곁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서 알뜰하게 비워지리라. 나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아버린 그들 속에서 나만의 기다림과 완벽한 사랑을 나누리라. 그리고 술을 잔뜩 마시리라. 그리고 집에 돌아와 취한 채 쓰러져 하루를 보내리라. 잠재울 수 없는 기다림이라면 차라리 알콜을 부어넣으며 더더욱 타오르게 놔두리라. 그래서 그 미친 듯 타오르던 불길에 나는 흔쾌히 데이고 화상을 입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 이 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다. 

 

6.

나는 그의 얼굴을 만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만진다. 아주 정성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세심하게. 꼭 마치 내 손가락 끝으로 그의 얼굴의 매 하나하나의 세포를 감각하고 그 세포마다에 스며있는 그의 이야기를 알아내려는 듯 집중해서 만진다. 눈가에 난 주름이 아프다. 언뜻언뜻 보이는 흰 머리카락이 아프다. 피곤한 듯 감은 두 눈이 아프다…

나는 속으로 가만가만히 그러나 아주 간절히 속삭인다. 많이 기다렸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는 분명 그가 나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있다. 아득한 소리로.

나는 소리없이 울며 눈물을 흘린다. 안온한 만남을 이룬 우리의 곁으로 영원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주위가 온통 온화한 색갈로 차오른다… 

깨여보니 꿈이다. 그리고 나는 고열로 끓고 있다. 온몸이 덜덜 떨린다. 

차라리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마음의 일이라고 몸이 모른 척해버린다는 건 옳지 못한 것이다. 

내 두 눈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흐느낌이 점자 더 커지고 그러다가 엉엉 소리내여 울어가는 자신을 내버려둔다. 그래 실컷 울어. 참지 마. 운다고 부끄러운 게 아니야. 운다고 원망하는 게 아니야. 운다고 실망하는 게 아니야. 운다고 억울해하는 게 아니야. 운다고 두려운 게 아니야. 운다고 지우는 게 아니야.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눈물은 언제나 이렇게 마지막에 늘 찾아온다. 모든 아픔을 다 겪어낸 후에야 그 아픔의 찌꺼기들을 씻어가려는 듯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조금 더 말갛게 개여오는 가슴으로 현실을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

이 때, 나는 아주 불가사의하지만 웬 부드러운 손길이 내 눈물을 닦아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 때의 그 따뜻함과 그 섬세함으로 머물렀던 육체적 느낌은 너무 진실하고 너무 또렷하다. 이것은 창으로 비쳐든 해살이 한 일은 아니다. 분명 그것은 손길이였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줄 알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어쩌면 그의 령혼이 잠간 이 해살에 실려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여태 무수한 해살이 그렇게 내 얼굴에 닿아왔지만 그의 손길처럼 머무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은 분명 그의 손길이였다. 그가 나의 얼굴을 만져준 적이 있었으니 내가 그 감각을 모를 리 없다. 그가 그렇게 해살로 다가올지 누가 아는가.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 속에는 엄연히 이런 일이 존재하는데 우리의 감각이 무디거나 다른 일에 정신을 앗겨서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직 다 모르는 우주의 비밀이 얼마인데.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반발이 아무리 예리하더라도 너무나 엉터리가 아닌가. 

 

7.

나는 지금껏 내 안에 있는 기다림을 남이 알지 못하게 잘 가두고 혼자서 몸부림치며 살아왔다. 그것은 아무때나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나를 훑고 지나갔다. 거기에 관해 나는 늘 속수무책이였다. 가끔 나를 무너뜨리고 쓰러뜨리지만 기다림은 나더러 더 평화롭게 더 따뜻하게 더 많이 웃으며 살아낼 용기와 힘을 준다. 기다림은 반짝이는 눈물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기다림이 있는 한 나는 그와 그가 사랑하는 나를, 그리고 그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고마와하고 사랑할 것이다. 기다림에 의지해서만이 나는 온전히 나일 수가 있고 생활은 온전히 생활일 수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행운보다는 행복을 더 믿어야 한다고 누가 말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만남이 행운이라면 나의 기다림은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다림 그 이상의 것을 더 바라는 욕심을 조금씩 버려가는 련습을 해야겠다. 

기다림은 언제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이다. 

출처:<장백산>2017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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